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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상 신학 철학

[스크랩] 죄 죽임의 교리

작성자동주|작성시간26.06.07|조회수1 목록 댓글 0

죄 죽임의 교리              

I 존 오웬

 

차례

1. 죄의 본질

2. 죄의 세력

3. 죄의 미혹

4. 죄의 유혹

5. 죄의 잉태

6. 죄의 효과

7. 시험의 본질

8. 시험에 들지 말게 하옵소서.

9. 시험의 세력

10. 시험의 위험성

11.깨어 시험을 이기라.

12. 그리스도의 말씀을 지키라

13. 내면의 죄를 죽이는 일

14. 왜 죄를 죽이는 일이 필요한가?

15. 죄를 죽이기 위한 준비

16. 죄를 죽이는 일을 실천하라.

 

서문 ; 제임스 패커

 

오웬은 청교도들 중 가장 경건한 사람으로서, 오웬의 장례식에서 그의 친구의 한 사람이었던 데이비드 클락슨은 " 거룩함은 그의 모든 업적들에게 신적 광채를 더해 주었습니다" 고 설교했습니다. 그는 겸손한 사람이었습니다. 오웬은 그의 설교를 통해 " 겸손한 영혼을 지닌 사람들에게 어울리는 것이 두 가지가 있는데, 첫째는 하나님에 대한 합당한 생각을 하는 것이요, 그 다음에는 자신에 대해 합당하게 생각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에 대해서는 그의 위대하심과 영광과 거룩하심과 능력과 위엄과 권위를 생각해야 하며 우리 자신에 대해서는 천하고 가련하고 악하다고 생각해야 합니다."고 설교했습니다.

 

하나님의 관점에서 볼 때 기독교인의 생활은 점진적으로 발전해 가는 성화의 약속입니다. " 성화는 하나님이 영이 신자의 영혼에 직접적으로 행하시어 인간의 본성에서 죄의 더러움을 깨끗이 씻어 주시며 인간의 내면에 있는 하나님의 형상을 새롭게 하시어 인간으로 하여금 신령하고 계속적인 은혜의 원리에 따라 하나님께 복종하게 하시는 사역입니다....간단하게 말하자면 성화란 성령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 본성을 보편적으로 개혁하여 하나님의 형상으로 화하게 하는 것입니다. 여기에 우리의 거룩함이 뒤따릅니다. 그것은 이 사역의 결과요 열매입니다. 그것은 우리 안에 새로이 이루어진 하나님의 형상을 포함하므로 은혜의 언약을 따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대한 거룩한 순종 안에 존재합니다."

 

기독교에서 말하는 거룩함이란 " 우리 영혼 안에 복음이 심기어지고 기록되고 실현되는 것... 말씀이 우리 마음 안에서 은혜로 변화하는 것입니다. 은혜 안에서의 성장이란 그 말씀에 더욱 일치하는 것입니다" 라는 것입니다.

적극적인 면에서 성화는 중생에 의해 우리 안에 심기운 새로운 능력들과 기호들을 소생시키는 것입니다. 부정적인 의미에서의 성화는 죄를 죽이는 것입니다. 죄는 점진적이고 계속적으로 약화시키는 것 외의 다른 방법으로는 죽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이 모든 기독교인의 생활의 내면 상태에 관한 오웬의 전반적인 견해는 다음의 세 책에 잘 나와 있습니다. <내면의 죄>는 마음에서 일어나는 일을 놓고 죄와 은혜가 서로 상충하는 것을 한편의 드라마로 볼 수 있게 하는 책입니다. <유혹>은 상기의 책과 비슷한 구성으로 되어 있으나 보다 더 자세한 설명을 곁들인 책입니다. <죄를 죽이는 것>은 은혜로운 삶을 살 수 있게 하는 고차원적인 방안을 제시한 책입니다. 오웬의 이들 세 저서는 모두 성경에 기초를 두고 있습니다. 오웬은 성경의 진리를 깨닫고 이를 다시 삶에 적용하였으며, 자신이 제시하는 모든 점에 대해 성경으로 뒷받침해 주었습니다. 이 세 가지 책은 모두 영적으로 매우 깊은 책입니다. 인간의 심령에 대한 오웬의 통찰에는 초인적인 신비로움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러한 그의 통찰을 얼핏 보기에는 특색이 없고 개괄적인 표현으로 보이지만, 한편으로 이 점이 바로 그의 능력의 특징입니다.

 

앤드류 톰슨은 <유혹>에 대해서 말하기를 "그 책은 구구 절절 독자들의 마음에 빛을 비추어 주어 그들로 하여금 마치 그 책이 그들 각각을 위해 쓰여진 듯이 느껴진다." 고 했습니다. 약 백년 전 유명한 랍비인 던칸은 제자들에게 <내면의 죄>를 읽으라고 하면서 "그러나 칼을 준비하라"고 부언했습니다.

 

내면에 거하는 죄

 

"그러므로 내가 한 법을 깨달았노니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 (롬 7:21 )

 

1. 죄의 본질

 

죄는 인간의 마음에 있다는 교리는 기독교 교리의 기본이 됩니다. 이 진리에 대한 지식은 하나님을 알고 거룩한 계시에 의해 살아가는 사람들만 소유하는 특별한 것입니다.

 

(1) 죄의 법은 마음 안에 거합니다. 바울은 로마서에서 내면에 거하는 죄를 '법'이라고 했습니다. 자신의 본질에 합당한 행위를 하도록 강요하고, 그러한 마음을 내키게 하는 강력히 내재하는 원리이기 때문입니다. 죄를 가장 적게 느낄 때가 사실은 죄가 가장 강력한 힘을 발휘할 때입니다.

 

(2) 믿는 사람들은 자신의 마음의 죄를 알아야 합니다.

 

(3) 믿는 사람들은 선을 행하기 원할때에 자신의 내면에 이 법이 있음을 발견합니다.

 

(4) 내면에 있는 죄의 상태와 행위를 관찰하십시오.

죄의 원리는 마음 안에 있으며 죄의 현주소는 마음입니다.

 

2. 죄의 세력

 

(1) 죄는 증오심입니다. 죄는 하나님에 대한 증오심입니다. 죄의 본질이 증오심이므로 발견할 수 있으며, 유일한 대책은 증오심을 완전히 파괴하는 것입니다. 첫째, 죄는 하나님에 대한 보편적인 증오심입니다. 둘째, 영혼을 대적하는 죄의 증오심은 보편적입니다. 셋째, 죄의 증오심의 세력은 지속적입니다.

 

(2) 죄는 하나님에 대한 반항입니다. 사단은 사람들의 눈을 멀게 하여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를 갖지 않은 채 하나님을 섬기게 합니다. 우리의 생활에서 죄를 내버려두면, 그것은 자라나서 양심을 마비시키고 소경이 되게 합니다. 우리가 죄를 정복하지 않으면 오히려 죄에 정복당하고 맙니다.

 

첫째, 마음의 경향을 하나님께 고정시키라 우리는 개인적인 의무나 공적인 의무를 행함에 있어서 일관성을 유지해야만 한다. 왜냐하면 순종하는 데에 조화가 있기 때문입니다. 둘째, 반감의 사역이 시작되지 못하게 하라. 최초의 싸움에서 그것들을 공격하지 못하면, 나중에는 그것들이 승리할 것입니다. 셋째, 비록 죄가 역사하더라도 이기지 못하게 하라. 넷째, 우리의 본성 안에서 죄가 영적 생명에 대해 갖는 반감을 의식하고 겸손하게 사십시오. 다섯째, 신령한 것들의 아름다움 및 탁월함과 더불어 이 마음을 소유하려고 노력하십시오.

 

(3) 죄는 하나님께 대한 대적 행위입니다. 첫째, 죄는 정욕으로 하나님을 대적합니다. 마음은 악을 행하려는 은밀한 경향을 가지고 있습니다. 어리석고 죄악 된 상상들에 의해서 예기치 않게 죄가 영혼으로 분출해 들어올 때에, 우리는 자신의 소유하고 있다고는 생각하지도 않았던 악한 생각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무의식중에 영혼 안에 침입하는 죄보다 더 큰 짐은 없습니다. 이러한 죄의 침입은 의지의 동의와는 상관없이 이루어지기 때문에 무의식적인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그러한 악의 유입의 원천은 의지의 타락입니다.

정욕은 실질적인 접촉 속에서 악을 인정하며, 계속 마음을 침입하고 공격합니다.

 

둘째, 죄는 하나님을 대적하여 싸웁니다. 죄는 감정들을 혼란하게 만들며, 그것들로 하여금 연합하여 정신을 대적하게 만듦으로써 전쟁을 수행합니다. 우리를 겸손하게 만들기 위해서는 두 가지가 필요합니다. 먼저 우리는 위대하시고 영광 중에 거하시고 거룩하시며 능력이 있으시고 위엄이 있으시며 권위가 있으신 하나님을 생각해야 합니다. 그런 후에는 비천하고 죄악 되고 비참한 상태에 있는 우리 자신을 생각해야 합니다. 자신의 마음에 악이 있음을 인식하는 사람만이 유익하고 열매를 맺는 견고한 신앙과 순종을 소유한 사람입니다.

 

셋째, 죄는 영혼을 사로잡음으로 하나님을 대적합니다. 우리는 죄에 사로잡힘과 관련하여 네 가지 사실을 살펴 볼 수 있습니다. 가장 먼저 죄의 세력은 우리를 노예 상태로 이끌어갑니다. 그 다음, 죄는 사람들을 사로잡는 일에 크게 성공을 거둡니다. 물론 사람들이 노예 상태로 전락하는 데는 많은 단계가 있습니다. 그 다음으로 사로잡힘은 견디기에 비참하고 불행한 상태입니다. 사람이 싫어하는 상황에 억지로 끌려 들어갈 때에 그의 멍에는 그를 세게 조입니다. 그것은 심지어 마음을 상하게 하기도 합니다. 마지막으로 사로잡힘이란 기독교인만이 처하는 특별한 상태입니다. 중생하지 못한 사람들은 결코 죄의 법에 사로잡히지 않습니다. 그들은 한두 가지 특별한 죄에 사로잡힙니다. 그러나 이것은 범죄를 원하지 않는 신자들의 사로잡힘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사랑하며 죄를 미워하기를 원합니다.

 

넷째, 죄는 광기를 발합니다. 죄의 격노함과 광기는 비록 일시적인 것이기는 하지만 법을 거부하게 만듭니다. 그 때에 그리스도의 현존 의식이 상실됩니다. 이러한 광기에는 종종 무모함과 담대함이 따릅니다. 일관성이 있는 판단 능력은 그것이 발휘하는 영향력과 함께 소멸됩니다.

 

3. 죄의 미혹

 

(1) 정신에 대한 죄의 유혹. 죄는 정신을 미혹합니다. 유혹이 정신에 영향을 주면, 범죄의 기회는 배가됩니다. 정신이 어떤 행동의 방침이나 대상에 고정되어 있으면,의지와 감정은 정신이 하는 대로 따를 뿐입니다. 그러므로 죄 속에 감정들이 뒤얽혀 괴로울 때에 가장 위험한 상황은 정신의 유혹입니다. 모든 죄의 책임은 오직 죄인에게 있습니다. 죄의 주된 목적은 우리의 정신을 분산시키고 산란하게 하여 신자로서의 의무를 이행하지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정신은 두 가지 의무가 있습니다. 첫째는 순종하며, 모든 악한 유혹을 깨어 지킬 수 있는 정신 상태와 자세를 유지하는 것입니다. 둘째는 하나님께서 자기의 뜻에 따라 요구하시는 모든 행동에 주의를 기울이고 수행하는 것입니다. 죄에 대한 두려움과 여호와에 대한 경외심은 동일한 것입니다. 죄는 영혼으로 하여금 하나님에 대한 경외심에서 떠나게 만든 후에 은밀하게 영혼을 공격하여 서서히 죄에 대해 무감각하게 만듭니다.

 

첫째, 죄는 “값없이 주시는 은혜”를 강조함으로써 정신을 어지럽힌다. 확실한 죄 사함이라는 교리를 빙자하여 은밀하게 죄에 대한 방심을 심어줍니다. 신앙의 지혜와 능력은 그러한 속임을 대적합니다. 복음의 지혜와 은혜의 위대한 효과는 우리의 마음을 항상 겸손하고 죄를 혐오하며 자기 낮춤의 상태로 유지해 줍니다. 둘째, 죄는 정신을 미혹하여 세상 사람들의 올바른 상태와 처지를 보지 못하게 합니다. 죄 자체에 대한 진정한 자책감이 없는 영혼은 강퍅해질 위험이 있습니다.

 

(2) 유혹을 약화시키는 묵상과 기도. 영혼으로 하여금 항상 하나님과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거룩한 관심을 가지게 하는 것이 정신의 의무입니다. 첫째, 하나님과 더불어 하나님에 대해 묵상하십시오. 우리는 하나님 및 그의 탁월하심, 영광, 위엄, 사랑, 선하심 등에 대해 생각할 때에 하나님 앞에서 지극히 겸손하고 의지하는 심령으로 하나님께 직접 이야기하듯이 해야 합니다. 이것은 우리의 정신을 집중시키고,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것들을 합당한 방법으로 차례로 이끌어냅니다. 이것은 영혼에 영향을 주어 하나님께 대한 거룩한 찬미와 하나님 안에서의 즐거움을 발휘하게 할 것인 바, 이것들은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것들입니다. 기도하거나 찬송하기를 원할 때에는 하나님과 더불어 이야기하면서 묵상하십시오.

 

둘째,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말씀을 묵상하십시오. 성경 안에서 하나님의 뜻과 정신을 발견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고 인도해 주시고 지시해 주시기를 하나님께 구하십시오. 그런 다음에 그것에 의해 당신의 마음이 감화를 받도록 노력하십시오. 셋째, 자주 묵상하십시오. 이 의무는 모든 죄의 은밀한 역사와 활동들을 드러내주며, 그것에 함축된 위험을 인식해 줍니다. 넷째, 자주 기도하십시오. 기도의 효과는 죄악에 대한 깊고 풍만한 의식과, 죄를 미워하는 새로운 감정을 줍니다. 우리 앞에 죄를 제시하고, 그 사악함과 가증함과 심각함을 알게 하여 우리로 그것을 버리게 하는 것이 기도의 목적입니다(사30:22). 하나님께 죄 사함을 간구하는 사람은 자기 영혼에게 그것을 미워하라고 요구합니다(호 14:2-3) 그리하여 죄는 하나님의 이름으로 심판을 받습니다. 그것은 또 하나님께서 죄를 미워하시며 심판하신다는 것을 영혼에게 확증해 줍니다. 기도는 영혼으로 하여금 죄를 민감하게 대적하게 하므로 기도하는 영혼은 한 순간이라도 은밀하게 죄의 인정을 받거나 매수되지 않을 것입니다. 기도는 신자의 내면에 거하는 죄를 약화시킵니다. 기도는 죄를 대적하는 힘과 능력을 얻기 위해 하나님께서 정하시고 축복하신 것입니다.

 

기도와 묵상은 죄의 온갖 거짓된 작용을 좌절시키며, 죄에 대한 모든 싸움에서 항상 하나님과 연합합니다. 신자의 영혼이 이유 없이 피곤하거나 권태로 인해 병드는 것은 죄악된 질병이 그 영혼 안에 머물러 있다는 확실한 징조입니다. 정신이 기도나 묵상이 아닌 일을 곰곰이 생각해야 하며, 또한 그것이 타당한 일이라고 주장할 때 발생합니다.

 

죄는 육체의 피곤함을 이용하며 죄의 유혹은 생활 속에서의 절박한 상황에 대하여 거짓된 주장을 합니다. 특별한 의무들은 쉽사리 일반적인 기도의 실천을 제거해 버립니다. 또한 죄는 보충 의무들을 주장하며 어떤 특별한 의무에 집착시킴으로써 우리의 정신을 분산시키며 거짓 약속과 목적으로 영혼을 먹입니다. 영혼을 돌보고 보호하는 주된 의무는 정신에 있습니다. 정신이 그 의무를 행하지 못하고 실패하는 것은 파수꾼이 자신의 의무를 이행하지 못하는 것과 같으며, 이로써 모든 것을 잃게 됩니다. 그러므로 견고함의 참된 본질은 첫째는 하나님에게 완전히 매달리는 것이요, 둘째는 날마다 새롭고 소생하는 마음으로 모든 의무를 이행하는 것이요, 세째는 그러한 의무를 소홀히 하지 않으려는 결심입니다.

 

(3) 특별한 의무에만 정신을 집중하지 않는 방법. 정신이 분산되고 부패하고 연약해지고 자신의 역할을 태만히 한다면, 영혼 전체가 그 영향을 받습니다. 죄가 유혹에 의해서 우리의 정신에 영향을 줄 때, 우리는 말씀의 생명과 능력과 감각과 감명을 상실합니다. 이것은 지극히 심각한 일이며, 우리 영혼의 큰 염려의 원인입니다. 첫째, 죄는 정신에게 개개의 특별 의무는 피하고 일반적인 것들만 다루라고 권면합니다. 둘째, 정신은 은밀하게 범죄하면서도 의무를 행하는 데서 만족을 느낍니다. 셋째, 정신은 종종 형식적으로 의무를 이행합니다. 넷째, 죄는 정신의 부지런함을 유지하지 못하게 합니다. 죄가 성공하면 영적 나태함을 낳는다. “깨어 있으라”는 성경의 명령은 이러한 위험에 대한 경고입니다. 놀라지 않고 미혹을 받지 않기 위해서 지극히 부지런해야 합니다. 영적 나태함의 특성은 다음과 같습니다. 우선 부주의하며, 자신의 의무를 행하기 위한 자극을 받을 때 달가워하지 않습니다. 또한 자신을 보호하고 자기 일을 완수하려는 시도를 하지만 연약하고 무익한 것에 지나지 않으며, 도덕적인 불굴의 정신이 결여되어 있습니다.

 

다섯째, 죄는 불시에 습격하여 정신을 유혹하고 분산시킵니다. 우리는 죄와 협상하기 위해서 지혜를 사용해서는 안 됩니다. 그것은 예기치 않은 공격으로 영혼을 놀라게 할 뿐입니다. 여섯째, 죄는 빈번하고 끈질지게 유혹하여 정신을 미혹합니다.

 

(4) 특별한 의무에 정신을 집중하는 방법. 우리가 이러한 의무를 수행하기에 합당한 영혼을 소유하지 못한다면 우리의 수고는 헛된 것입니다. 첫째, 전심으로 하나님께 순종해야 합니다. 둘째, 하나님께 순종하려면 믿음으로 하나님께 의지해야 한다. 셋째, 하나님께 순종하려면 우리의 지혜와 욕구를 발휘해야 한다. 우리가 행하는 모든 의무는 신령한 욕구와 더불어 수행되어야 합니다. 넷째, 하나님의 주권을 생각해야 합니다. 다섯째, 죄에 대한 형벌을 생각해야 합니다. 여섯째, 죄와 대적이 되는 하나님의 사랑과 인자하심을 생각해야 합니다. 일곱째, 그리스도의 보혈과 중보를 생각해야 합니다. 여덟째, 우리 안에 계시는 성령을 생각해야 합니다.

 

4. 죄의 유혹

 

죄의 유혹은 생각이 정신을 지배할 때에 절정에 달합니다. 그것은 정신 안에 헛된 생각들을 심으며, 자기 만족 속에 은밀하게 즐거움을 심습니다. 비록 우리의 의지가 금지된 행동을 수행하는 일에 동의하지 않았다고 해도 기꺼이 금지된 것에 대한 생각에 몰두하는 것은 죄를 범하는 것입니다. 죄는 항상 자기가 정신에 미치는 심각함을 축소하고 변명하려 합니다. "그것은 작은 범죄에 불과하며, 머지않아 그것을 버릴 것입니다."라고 말합니다.

 

죄는 정신의 성향을 이용합니다. 그것은 거짓된 추론과 구실을 사용하여 정신으로 하여금 위험을 느끼지 못하게 한 후 감정에게 그물을 씌워 잡히게 합니다. 죄는 삶의 양상을 이용하여 죄를 바람직한 것으로 보이게 합니다. 죄는 영혼을 어지럽게 하기를 원할 때에, 마음을 꾀기 위해서 자신을 아름답고 만족스러운 것으로 채색함으로써 우리의 생각을 설득 시킵니다.

 

이처럼 강력하게 정신을 유혹할 때에, 죄는 영혼에게 여호와의 지엄하심을 숨기기 위해 수많은 간계를 사용합니다. 그것을 숨기기 위해, 용서의 소망을 이용합니다. 현재 정욕과 특별한 유인과 기회를 고집하면서 장차 회개할 것이라는 핑계가 사용되기도 합니다. 이러한 죄의 속임수를 피하기 위한 처방으로 우리는 깨어 자신의 감정을 지켜야 합니다. 감정을 지키는 두 가지 방법은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육체를 죽여야 합니다. 우리는 자신의 지체들을 죽임으로써 감정을 보호합니다. 우리의 감정을 견고하게 하고 거룩한 것으로 채우면 죄를 죽이게 될 것입니다. 그것들은 영광스럽고 아름다우신 하나님, 지극히 사랑스러우시며 그 정체가 사랑스러운 주 예수 그리스도, 은혜와 영광, 복음의 비밀, 그리고 복음이 약속한 축복을 포함합니다. 이것들이 우리 감정의 주요 관심사들인데, 죄는 어떤 영역에서 유혹하며 우리 마음에 들어오기를 원하겠습니까 (고후 4:17-18) 둘째, 십자가를 바라보십시오. 자신의 감정을 십자가와 그리스도의 사람에 고정시키는 사람은 세상을 죽은 것이요 바람직하지 못한 것으로 여겨 십자가에 못 박습니다. 죄의 미끼들은 매력을 잃고 사라집니다. 우리의 감정에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가득히 채우십시오.

 

5. 죄의 잉태

 

죄는 열매를 맺습니다. 이것은 의지의 동의를 얻었다는 뜻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향해 순결한 상태에 머물지 않게 되는 일입니다.

 

(1) 죄의 잉태의 네 가지 측면. 첫째, 의지는 순종이나 불순종의 원인입니다. "모든 죄는 자발적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발적인 것이 아닌 것은 죄가 아닙니다." 둘째, 의지는 죄에 동의합니다. 때때로 완전하고 충분한 고려 끝에 의지가 완전히 약해지거나 정복되거나 설득당합니다. 셋째, 그러나 의지는 죄에 완전히 동의하지는 않습니다. 기독교인의 내면에 있는 은혜의 원리는 그로 하여금 선을 향하게 만듭니다. 신자의 내면은 죄가 아니라 은혜가 지배합니다. 따라서 비록 그의 의지가 죄에 동의 한다 할지라도 그것은 절대적인 동의가 아니라 부분적인 동의일 뿐입니다. 의지는 죄에 대한 은밀한 협오감을 소유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영혼이 항상 민감하게 이 협오감을 발휘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죄가 일시적으로 영혼을 휩쓸어 가기도 합니다. 넷째, 의지는 성향에 의해 조절될 수 있습니다.

 

(2) 의지는 어떻게 죄에 동의하는가! 첫째, 의지는 죄의 미혹의 결과로 죄에 동의합니다. 우리는 하나님과 동행해야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로 가야 합니다. 죄의 커다란 목표는 이와 같은 은혜의 목적을 변화시켜 은혜의 감화를 방해하는 것입니다. 죄가 갑자기 정신을 미혹하여 방비할 틈을 주지 않으면, 행위로는 범죄 하지 않지만 의지는 실족합니다. 죄는 자신의 죄의식을 축소시키려 합니다. 그것은 절대적으로 그렇게 행하기를 추구하며, 악한 성향이 그다지 나쁜 것은 아니라고 주장합니다. 또 죄는 자신을 다른 것들과 비교함으로써 자신의 죄를 면제합니다. 이것은 또 하나의 중요한 미혹의 범주입니다. 이런 방법 및 그 밖의 방법에 의해서 죄는 자신의 참 특성이 이식되지 못하게 하려 합니다. 둘째, 의지는 선을 택하며, 선한 모습을 갖지 않은 것에는 동의하지 않습니다. 셋째, 의지는 합리적인 욕망으로 작용한다. 죄가 감정들을 유혹하고 정신을 미혹한 후에 의지의 동의에 의해서 죄가 잉태됩니다. 기독교인들의 내면에도 어두움이 거합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부분적으로 알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섭리는 하나님의 표면적인 행동에 나타내며, 하나님의 은혜는 삶을 변화시키기 위해 내적으로 역사합니다. 당신이 죄를 생각할 때에 하나님께서는 그 죄의 실행을 방해하십니다. 우리로 하여금 죄에 더 깊이 빠지지 못하게 방해하시는 자비하신 하나님께 감사하십시오.

 

6. 죄의 효과

 

(1) 죄의 기습. 당시의 의인이요, 완전한 자요, 하나님과 동행한 사람이었던 노아보다 선하다고 자랑할 수 있는 사람이 있는가? (창6:9) "무법한 자의 음란한 행실을 인하여 고통 하는 의로운 롯" (벧후 2:7-8)보다 우리가 더 선하다고 할 수 있는가?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사람이었던 다윗(삼상13:14)보다 우리가 더 선한가? 우리는 진실과 전심으로 하나님을 섬겼다고 하나님께 기도하였던 히스기야(사38:3)보다 선하다고 할 수 있는가? 그들의 증언은 그들을 파선하게 했던 죄의 모래밭과 암초와 모래톱이 있는 곳을 가리켜 주는 부표로 떠 있습니다. 신실하신 하나님만이 그들을 완전한 멸망과 몰락으로부터 보호하셨습니다.

 

(2) 점진적인 도덕적 쇠퇴. 죄는 신자의 하나님께 대한 순종 및 하나님과의 교제에 있어서의 거룩함과 열심을 점진적으로 쇠퇴하게 만들기도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삼가 우리의 일한 것을 잃지 말라", "어디서 떨어진 것을 생각하고 회개하여 "라고 경고해 줍니다. 이러한 경고들에 비추어 볼 때 우리는 무엇으로 자신의 쇠퇴의 범위를 시험해 보아야 합니까?

 

첫째, 하나님을 향한 당신의 열심을 평가해 보십시오. 둘째, 예배에 대한 기쁨이 어떤지 측량해 보십시오. 셋째, 죄에 대해 얼마나 민감한지 조사해 보십시오. 모든 도덕적 쇠퇴는 마음 안에 있는 죄에서 비롯됩니다. 우리는 죄의 세력의 실체를 슬퍼할 때에 또한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더욱 큰 능력을 기뻐할 수도 있습니다. 그의 생명은 영원하고 충만합니다. 그런데 이러한 자원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우리가 자라지 못하고 번영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 그것은 그리스도의 은혜로우신 교제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정욕과 죄가 우리 안에서 만들어 내는 방해 때문입니다. 가장 심각한 죄의 위협은 신자로 하여금 하나님 앞에서 도덕적으로 쇠퇴하게 만드는 능력입니다.

 

도덕적 부패의 열 가지 원인. 첫째,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나태함과 태만함. 마음 안에 있는 죄가 부주의와 무관심으로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과거의 견해를 차단하고, 도덕적인 태만함으로 계속적인 믿음의 생각을 차단할 때 일어납니다. 둘째, 하나님에 대한 경외심의 상실 셋째, 복음에 대한 단순성의 상실 넷째, 사단을 대적하여 깨어 지키는 일의 부족 사단은 자신이 유익하게 사용할 수 있는 약점을 신자에게 발견할 때마다 내재하는 죄로 신자를 함정에 빠뜨리려 합니다. 다섯째, 신앙을 고백하는 신자들의 보잘 것 없는 본보기를 모방하는 것 처음 믿는 신자들이 신앙을 고백한 기독교인들의 특이한 연약함을 인식하지 못하여, 이 연약함을 규범으로 삼기 때문에 발생합니다. 여섯째, 마음으로 은밀한 정욕을 즐기는 것입니다. 어떤 정욕에 대해서는 싸워야 함에도 불구하고 지극히 연약하게만 대적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우리 마음에 정욕이 숨어 있으면, 거룩함이 계속적으로 쇠퇴합니다. 죄가 마음에 들어오면 영적인 힘이 약해집니다. 은밀한 정욕은 하나님에 대한 신뢰를 서서히 해치며 믿음과 기도의 훈련을 방해하므로 영혼은 '우러러 볼'(시40:12) 수 없게 됩니다. 그것은 마음을 어둡게 합니다. 그것은 이따금 수치스러운 죄로 나타납니다. 그것은 악성의 질병처럼 영혼을 사로잡습니다. 그것은 대단히 악하기 때문에 결국 영혼은 거의 살지 못하게 됩니다.

 

일곱째, 하나님과의 개인적인 고통을 등한히 하는 것. 사람이 은밀하게 하나님의 임재와 은혜를 누리려 할 때에는 어떤 은밀한 동기도 영향을 미치지 못합니다. 내재하는 죄가 부지런하고 계속적으로 하나님과의 교제로부터 사람을 분리시키면, 필연적으로 전체적인 순종의 쇠퇴가 뒤따릅니다. 여덟째, 실천이 따르지 않는 지식의 증가 사람들은 자신의 심령 안에서 진리의 능력을 경험해 보려고 노력하지는 않고 진리의 개념에 만족합니다. 아홉 번째, 세속적인 지혜의 증가. 열 번째, 회개하지 않은 대죄. 부러진 뼈가 제대로 붙지 않으면 평생 절름발이가 됩니다. 마찬가지로 회개하지 않는 사람은 결코 완전히 나음을 받지 못합니다. 죄는 오직 영혼을 완악하고 부패하게 만들 뿐입니다.

 

(3) 내재하는 죄의 불법에 대한 저항. 첫째, 율법은 죄를 발견해 낸다. 둘째, 율법은 죄의 위험을 인식한다. 셋째, 율법은 죄인을 심판한다. 율법의 올바른 사역은 죄를 심판하기 위해서 죄를 드러내는 것입니다. 넷째, 율법은 마음을 불안하게 만든다. 영혼은 마치 옆구리에 깊은 화살을 맞은 불쌍한 짐승처럼 어디를 가든지 불행합니다. 다섯째, 율법은 영혼을 죽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잠시 일반적으로 죄를 멀리할 뿐 다시 과거의 죄악 된 습관에 빠집니다. 그들은 기껏해야 분명하고 공개적인 죄의 증거들을 삼가기를 소망할 수 있을 뿐, 내면적으로는 계속 죄짐을 지고 고생합니다. 복음의 은혜만이 인간의 심령을 변화시킵니다. 우리는 겸손하고 자기를 낮추며 경성하며 부지런하며 그리스도에게 위로를 간구해야 합니다.

 

믿는 자에게 오는 시험

 

7. 시험의 본질

 

(1) 하나님께서 믿는 자들을 시험하시는 방법.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내면에 있는 것이 은혜인지 타락인지를 보여 주시기 위해 시험을 합니다. 이와 같이 영혼은 불확실한 상태에 머물러 있으므로 우리는 자신을 시험하는 일에 실패합니다. 하나님만이 우리 영혼의 깊은 곳을 조사하실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사용하시는 도구는 하나님의 시련입니다. 그것은 영혼의 깊은 곳 까지 뚫고 들어가서는 영혼으로 하여금 그곳에 있는 것을 보게 해 줍니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자신을 보여 주시기 위해서 우리를 시험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위하여 은혜를 새롭게 하신다는 것을 보여 주시려고 우리를 시험하십니다. 약의 효능은 병에 걸려야만 알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시험을 당해 봐야만 하나님의 은혜의 힘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람들이 착수하거나 성취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무거운 의무와 책임을 그들에게 부과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큰 고난에 의해서 자신을 계시하시며 섭리에 의해서 자신을 계시하십니다.

 

(2) 사단이 믿는 자들을 시험하는 방법. 시험이란 단어를 특수한 의미로 사용하면 범죄를 향한 적극적인 능력을 가리킵니다. 그것은 악을 낳는 악입니다. 이런 종류의 시험은 사단, 세상, 세상 사람, 자아, 혹은 이러한 근원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올 수 있습니다. 사단은 홀로 시험하며 세상을 이용하며 우리 자신에게 도움을 취합니다. 우리는 죄와 전혀 관계가 없으신 그리스도와 다릅니다. 우리 자신의 욕망이 우리를 유혹합니다.

 

8. 시험에 들지 말게 하옵소서

 

(1) 시험을 받는 것과 시험에 드는 것의 차이. 시험에 드는 것은 단순히 시험에 직면하는 것이 아닙니다. 시험에 든다는 것은 사단과 우리의 정욕의 일반적인 사역 이상의 것을 언급합니다. 시험에 든다는 것이 시험에 정복되는 것을 암시하지는 않습니다. 시험에 얽혀 고난을 당하는 것을 시험에 들었다고 합니다.

 

(2) 시험에 들게 되는 상황. 영혼은 종종 경계할 틈도 없이 함정에 빠지거나 기습을 받아 시험에 들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이 알고 계시는 가장 선한 목적을 위해서 사단이 사람을 특이하게 이용하는 것을 허락하실 때에 발생합니다. 또한 사람의 정욕과 연약함이 특이하게 도발적인 대상이나 유혹을 만날 때 발생합니다. 이러한 시험이 자기의 때에 이르는 세 가지 방식이 있습니다. 첫째, 오랜 기간에 걸쳐 정신을 강요하며 악한 생각에 익숙해지게 함으로서 자기의 때에 이릅니다. 둘째, 죄가 어떤 사람의 영혼을 정복하며 그 영혼이 불쾌함이나 협오감을 나타내지 않을 때, 시험은 우리를 이용합니다. 셋째, 죄는 본질적으로는 악하지 않은 생각과 결합합니다.

 

9. 시험의 세력

 

우리들의 마음 속에는 멸망을 당하거나 승리하지 않는 한 결코 굴복하지 않는 은밀한 정욕이 숨어 있습니다. 우리는 이론적으로 정욕적인 생각들을 미워하지만 시험이 마음에 들어오면 시험에 역행하는 모든 주장들은 정복되고 침묵하게 될 것입니다.

 

(1) 시험의 세력을 저항하기에 합당치 못한 안전장치. 진실로 사람은 결코 자기의 마음을 신뢰하지 말아야 합니다. 시험의 때에 마음을 지키기 위해 우리가 사용하는 부적당한 조처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세상의 명예욕 둘째, 수치와 비난에 대한 두려움. 셋째, 마음의 평화를 어지럽히거나 양심에 상처를 주지 않고 지옥에 떨어질 모험을 하지 않으려는 소원.

 

(2) 시험의 세력. 생각과 상상이 어떤 대상에 사로잡히면 정신은 그것을 돕거나 구해 줄 수 있는 사물로부터 이탈하게 됩니다. 시험은 우리의 정욕들을 선동하고 자극하여 연료를 공급하여 그것들을 끝없는 소용돌이에 휩싸이게 만듭니다. 공적인 시험들은 복음을 멸시하거나 등한히 한 사람들, 혹은 거짓 신자로서 배반자로 행한 사람들에게 임하는 하나님의 심판의 결과로서 임하며 경건하게 살아야 함에도 불구하고 입으로만 신앙을 고백하는 사람들로부터 전염병처럼 퍼집니다. 또한 강력한 근거들과 영향력을 동반하는 공적인 시험은 극복하기 어렵습니다. 개인적인 시험에서는 영혼의 내면 한 부분에 거하는 정욕이 그의 인격 전체에 영향을 준다는 것을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10. 시험의 위험성

 

우리는 종종 시험이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인식하지 못한 채 우리를 덮친 죄를 회개하는데, 이것은 우리로 하여금 또 다시 죄에 빠지기 쉽게 만듭니다. 본래 선한 것이든 악한 것이든 우리가 행하기를 원하는 일들은 모두 우리의 정욕에 양식을 제공하며, 우리로 하여금 시험에 들게 만드는 경향이 있습니다.

 

시험의 위험을 대비한 경계. 첫째, 시험에 드는 것은 대단히 위험한 일입니다. 둘째, 시험에 빠지지 않도록 자신을 지킬 수 없습니다. 우리는 마음으로 다음과 같이 인정해야 합니다. "나는 가난하고 연약하며, 사단은 지극히 간교하고 지극히 교활하며 지극히 강하다. 그는 항상 내 영혼을 점령할 수 있는 고지를 찾고 있다. 세상은 온갖 종류의 핑계와 구실과 압력으로 우리를 공격해온다. 나 자신의 부패함은 거세고 소란하며 유혹적이며 혼란스럽다. 그것이 죄를 잉태하게 되면 내 속에서 나를 대적하여 싸움을 벌인다. 시험의 유인들과 기회들은 무수하다. 내가 죄에 얼마나 깊이 관련되었는지 모르는 것은 결코 기이한 일이 아니다. 그러므로 나는 오직 하나님께 나를 보호해 주시기를 의지해야 한다. 나는 끊임없이 하나님을 의지하겠다." 이런 식으로 우리 자신을 하나님께 맡기면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하심의 실체를 경험하게 되고 자신의 위험, 그리고 하나님의 보호하심의 필요성을 알게 될 것입니다.

 

셋째, 기도를 가장 중요한 일로 삼음으로써 시험에 대항하십시오. 우리는 날마다 " 하나님이시여, 내 영혼을 보호해 주시며 내 마음과 그 모든 길을 보호해 주시사 시험에 빠지지 않게 하여 주시옵소서." 라고 간구해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의 생활 속에서 진리가 된다면 지나가는 시험이 우리를 이기지 못할 것입니다.

 

11. 깨어 시험을 이기라.

 

(1) 깨어 시험의 때를 지키라. 첫째, 우리는 형통할 때에 시험에 직면한다. 둘째, 은혜에 무관심하고 하나님과의 교제를 소홀히 하고 형식적으로 의무를 행할 때에 시험에 듭니다. 셋째, 하나님과의 큰 교제를 경험한 후에 시험 당합니다. 넷째, 자만할 때에 시험에 듭니다.

 

(2) 시험이 다가오는 것을 경계하십시오. 시험을 피하려면 자기의 본성적인 기질을 알아야 합니다. 각자의 내면에서 죄가 강하고 은혜가 약한 곳이 어디인지 살펴보십시오. 또한 시험의 접근에 대비하여 마음을 튼튼히 하십시오. 하나님의 평강이란 하나님의 사랑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은혜에 대한 인식입니다.

 

(3) 시험의 기습에는 이렇게 하십시오. 첫째, 그것이 우리에게서 떠나게 해달라고 하나님께 여러 번 간청하십시오. 둘째, 우리 자신을 유혹 하는 것에 대해 곰곰히 생각하지 말고 (그것은 더욱 시험에 휩싸이게 만들 뿐입니다) 다만 시험 자체를 대적해야 합니다. 셋째, 그리스도께서 때를 따라 우리를 도우실 것을 알고 그리스도께로 피하십시오. 넷째, 주님에게서 약속된 구원을 기대하십시오.

 

12. 그리스도의 말씀을 지키라.

 

(1) 그리스도의 인내의 말씀을 지킴. 첫째, 그리스도의 인내의 말씀을 알아야 합니다. 둘째, 그리스도의 인내의 말씀을 귀하게 여기십시오. 셋째, 그리스도의 인내의 말씀에 순종하십시오.

 

(2) 하나님께서 시험의 때에 우리를 지키는 법. 첫째, 그리스도의 인내의 말씀은 우리를 지키겠다는 하나님의 보증을 내포합니다. 둘째, 우리가 그리스도의 인내의 말씀을 지킬 때 하나님은 우리를 보호하십니다.

 

(3) 마지막 권면. 자신의 충고, 이해, 추론 등을 신뢰하지 마십시오. 열심으로 자신을 연단한다 해도, 세속성, 안일한 생활, 도덕적인 태도 등에 대한 경계를 소홀히 한다면 실족할 것입니다.

 

내면의 죄에 대하여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 (롬8:13)

 

13. 내면의 죄를 죽이는 일

 

(1) 신자에게는 죄를 죽이는 일이 반드시 필요하다. 죄의 세력에서 자유함을 얻기를 원하는 성도들은 내재하는 죄의 세력을 죽이는 것을 자기의 평생의 사업으로 삼아야 합니다.

 

(2) 죄를 죽이는 일의 성경적 정의. 죄를 죽인다는 것은 죄를 완전히 제거하는 것이 아니며, 또한 선천적으로 우리가 지니고 이는 기질을 정화시킴으로서 이루어지는 일이 아닙니다. 첫째, 죄를 죽이는 것은 죄를 약하게 만드는 것이다. 정욕은 계속적으로 마음을 악한 경향으로 흐르게 하는 부패한 습관이나 성향입니다. 죄를 죽이는 일의 주된 일은 이러한 죄의 습관을 약화시켜 죄의 세력이 거칠고 빈번하고 불안하고 떠들썩하게 나타나지 못하도록 억제하는 것입니다. 둘째, 죄를 죽이는 것은 죄와 부단히 싸우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 우리가 대면하고 있는 적을 알아야 하고 죄의 전략을 알아야 합니다. 내재하는 죄의 정책과 간교함과 심오함을 아는 것이 중요하고 그것의 전형적인 핑계, 구실 등을 인식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그런 후에 그것의 계략을 예상하고 경계해야 합니다.

 

셋째, 죄를 죽이는 일은 죄에 대한 승리로 증명됩니다. 승리라는 것은 죄의 타파가 아니라 죄를 완전히 정복하기 위해 죄를 추적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죄를 죽인다는 것은 죄의 내재하는 성향이 약화되는 것입니다. 겸손이 심기워지고 성장함에 의해서 교만이 약화되며, 인애에 의해 욕망이 정화되며, 깨끗한 마음과 양심에 의해서 부정함이 씻겨지며, 거룩한 마음에 의해 이 세상 사랑이 억제됩니다. 이러한 은혜는 성령으로부터 옵니다. 또한 죄를 죽인다는 것은 정욕을 대적하여 싸우는 성령이나 새사람의 즐거움, 활력, 민첩함 등입니다. 죄를 죽이는 일의 성공에는 정도의 차이가 있으며 문제가 되는 죄가 본성적인 기질 안에 깊이 뿌리를 내리고 있지 않을 때 완전한 승리를 거둘 수있습니다.

 

14. 왜 죄를 죽이는 일이 필요한가?

 

우리의 영적 생활의 생명과 활력에 대한 약속은 죄를 죽이는 데에 달려 있습니다. 우리가 영적 능력을 얻으려면 죄를 약하게 만들며, 그릇된 야심에서 마음을 해방시키고, 생각을 정화해야 합니다. 또한 우리는 감정을 극기하여 우상을 섬기지 않고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 열중해야 합니다. 죄를 죽이는 일은 마음 안에 있는 죄를 제거하며 우리의 생활 속에서 하나님의 은혜가 활기차게 자라게 합니다.

 

참 기독교인이 자기의 내면에서 죄가 자기를 에워싸고 사로잡고 있는 것을 보십시오. 그렇게 되면 환난으로 마음을 여위게 하며, 정신을 혼란하게 하며, 하나님과의 교제를 약하게 만들며, 마음의 평화를 무너뜨리며, 양심을 더럽게 합니다. 심지어 죄의 미혹 때문에 마음이 강팍해지기 시작합니다.

 

(1) 날마다 죄를 죽이라. 죄의 세력으로부터의 자유롭게 보이는 거룩한 신자들은 실은 날마다 자기 안에 있는 죄의 세력을 죽이는 것을 매일의 의무로 삼고 있는 사람입니다. 마음 안에 있는 죄는 항상 신자의 내면에 거하므로 우리는 항상 그것을 죽여야 합니다. 날마다 속 사람을 새롭게 함으로써(고후4:16) '은혜 안에서 자라는 것'(벧후 3:18),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가운데서 거룩함을 온전히 이루는 것'(고후7:1)이 우리의 의무입니다. 죄를 죽이지 않는 신앙 고백자들은 자신의 생활 속에 있는 죄의 실체에 대해 거의 관심을 갖지 않습니다. 또한 죄를 죽이지 못한 상태에 있으면서 다른 사람들을 미혹합니다.

 

(2) 죄를 죽이는 성령의 능력. 성령은 우리 마음에 육체의 행위를 대적하는 은혜와 성령의 열매들이 풍성하게 하십니다. 또한 성령은 '심판하는 영과 소멸하는 영'(사4:4)에 의해서 죄를 죽입니다. 성령은 정욕의 뿌리까지 태워 버리시는 불입니다. 성령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우리 마음에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가지고 들어옵니다. 성령은 우리 안에서 우리로 하여금 자기의 기쁘신 듯을 원하고 행하게 하시기 때문에 우리는 몸의 행실을 죽이라는 명령을 받는 것입니다. 죄를 죽이는 것은 성령에 대한 우리의 순종의 일로 남아야 합니다.

 

(3) 죄를 죽이는 일의 주체는 참 신자입니다. 첫째, 중생하지 못한 사람은 죄를 죽일 수 없습니다. 둘째, 죄를 죽이는 것은 믿음의 사역입니다. 베드로는 우리가 진리를 순종함으로 영혼을 깨끗하게 한다고 말합니다. 당신은 죄를 죽이려고 합니까 ? 그렇다면 반드시 그리스도를 믿고 의지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결코 죄를 죽일 수 없습니다. 또한 악을 억제하기 위해서 말씀을 계속 전파해야 합니다.

 

(4) 죄를 죽이는 일에는 순종이 요구됩니다. 우리 안에서 하나의 특별한 죄나 정욕이 거세게 요동하며 지배하는 것은 흔히 부주의하고 소홀한 생활의 결과입니다. 정욕은 우리 모두의 마음 속에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부지런히 깨어 지키는 동안에는 우리를 지배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경계를 늦추게 되면 그것은 우리를 점령합니다.

 

15. 죄를 죽이기 위한 준비

 

(1) 죄가 나타내는 특별히 위험한 징후를 생각해 보십시오. 죽임을 당하지 않은 죄에게 은혜와 자비를 적용하거나, 그것을 성실하게 다루지 않는 것은 속이는 일입니다. 그리고 자비를 바라면서 죄에 빠지는 것도 기독교인의 성실함에 어긋나는 일입니다. 우리는 죄가 죽임을 피하여 빈번하게 도망치는 일에 유의해야 합니다. 이것은 우리가 표면적으로는 전혀 그릇된 일을 행하지 않지만 우리의 의지가 죄를 즐기며 은밀하게 죄와 사이좋게 지낼 때에 발생합니다. 그리스도의 사람들은 그리스도의 죽으심, 그리스도의 사랑, 죄에 대한 협오감, 하나님과의 교제를 가지고 있으므로 죄를 죄로 여겨 미워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한다면 우리는 어떠한 죄의 유혹이라도 대적할 것입니다.

 

(2) 죄의 죄악성, 위험, 악을 분명히 인식하라. 사람의 마음을 감찰하시는 하나님께서는 마음에 숨겨진 죄가 공개된 죄보다 더 악할 수 있다는 것을 아십니다. 죄의 심각성을 경계하십시오. 왜냐하면 그것은 공개되고 눈에 보이지 않을 때에도 우리의 생활 속에서 힘을 모으면서 조용히 자신을 변명하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아름다우심과 영광 속에서 행하는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합니다. 이렇게 된 많은 이유 중의 하나는 은밀하게 죄를 품는 것입니다. 죄는 식물의 뿌리를 갉아 먹는 벌레처럼 하나님께 대한 우리의 순종을 갉아 먹습니다.

 

(3) 죄 짐이 당신의 양심을 괴롭하게 하십시오. 자신의 양심에게 정욕과 부패에 대한 모든 율법의 말씀에 부지런히 귀를 기울이라고 스스로 권면 하십시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무한하신 인내와 관용을 생각하십시오. 우리의 마음이 죄의 미혹으로 말미암아 강팍해질 지경에 처했으나, 무한히 풍성하신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하나님과의 교제를 회복했었다는 것을 생각해보시오. 구원, 고통, 자비, 축복 등으로 당신을 다루시는 하나님의 섭리의 방법에 대해 생각해 보십시오. 당신의 양심에 이러한 것들로 채우고 하나님 앞에서 회개하십시오.

 

(4) 죄의 세력에서의 구원을 갈망하십시오. 잠시라도 우리의 마음이 현상에 만족하는 것을 허락하지 마십시오. 본질적으로 구원에 대한 동경, 열망, 갈망은 은혜이며, 영혼으로 하여금 동경하는 대사을 닮게 하는 막대한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5) 악이 우리의 본성에 뿌리를 두고 있으며, 우리의 기질에 의해 양육되고 있지 않은가 주의하십시오. 이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은 오직 하나 뿐입니다. 바울은 "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한다 " (고전9:27)고 말했습니다. 이것은 죄를 죽이기 위한 의식입니다. 이것은 죄를 향하는 본선적인 경향을 억제합니다.

 

(6) 당신에게 악한 성향이 처음 생길 때 강력히 대응하십시오. 죄의 최초의 제안에 전력을 다하여 맞서며, 그것이 이미 그 목적을 달성했을 때처럼 분노하십시오. 죄가 감정 안에 자리를 잡은 후에는, 우리의 지혜로 그것을 대처하기가 더욱 어렵게 됩니다.

 

16. 죄를 죽이는 일을 실천하라.

 

(1) 그리스도의 능력을 믿으십시오. 첫째, 그리스도만 기대할 때 우리는 그의 인자하심을 만납니다. 둘째, 그리스도는 우리를 도우시고 우리의 고통을 제거해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신실한 분이십니다. 셋째, 그리스도에 대한 당신의 기대의 초점을 그의 죽으심과 부활이라는 실체에 두십시오.

 

(2) 죄를 죽이기 위해 성령을 구하십시오. 첫째, 성령은 우리의 마음으로 하여금 죽임을 당해야 하는 죄악과 악을 분명하고 충분히 자각하게 합니다. 둘째, 우리의 위로를 위한 그리스도의 충만하심을 우리에게 계시합니다. 셋째, 우리의 마음으로 하여금 그리스도에게서 도움을 기대하게 해 주십니다. 넷째, 죄를 죽이는 능력을 지닌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우리 마음에 가져오십니다. 다섯째, 거룩함과 성화를 위한 은혜의 새로운 감화력과 자원들을 공급하십니다. 여섯째, 영혼과 하나님의 모든 관계에 있어서 우리는 성령의 도움을 받아야 합니다.

        

/출처ⓒ† : http://cafe.daum.net/cgsb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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