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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종말은 어떻게 오는가(주요 현대신학자들의 신학과 종말론 요약)

작성자동주|작성시간26.06.18|조회수1 목록 댓글 0

종말은 어떻게 오는가(주요 현대신학자들의 신학과 종말론 요약)              

현대신학(Contemporary theology, Modern Theology)은

18세기 시작된

“사페레 아우데”(sapere aude, dare to be wise)를 내세운 계몽주의 이후

그 영향 속에서 형성된 신학입니다.

이성을 앞세운 계몽주의운동은

성경 계시와 교회 역사 속 형성된 교리나 신조 중심이 아닌

이성과 경험 그리고 철학적 사유와 합리적 과학 등을 동원하면서

신앙과 신학에도 다양한 영향을 주게 된 것이지요.

따라서 현대신학은

정통신학과는 조금은 다른 경향을

지니게 됩니다.

여기서는 종말론과 관련된

이들 주요 현대 신학자들 중 몇 사람을

그들의 간략한 생애와 함께 살펴봅니다.

Ⅰ. 칼 바르트(Karl Barth)의 "그리스도 중심적 종말론"

(1886-1968, 하나님의 자유로서의 초월성)

20세기 가장 중요한 신학자 중 한 사람이었던

칼 바르트처럼 한국 신학 안에서 극명하게 평가가 나누어지는 신학자도 그리 많지 않습니다.

실존주의, 기독론중심의 신학자, 신정통주의, 변증법적 신학, 위기의 신학, 반자연신학주의자, 신보편구원설 등 그를 지칭하는 신학의 색깔이 다양하게 표현되는 것도 바로 그 때문이지요.

국내적으로 바르트 신학은

비판적인 교단(예장 고신, 합동, 합신, 예장 개혁, 예성 등)이 있는 가하면

대체적으로 우호적인 교단(예장 통합, 기성, 한신 등)의 신학자들로 나누어집니다.

또한 같은 교단 안에서도 신학자들마다 바르트에 대한 입장이 서로 갈라지기도 합니다.

따라서 본 강좌는

바르트에 대한 개인적인 직접적인 옹호나 비판이 아닌

신학도들에게 단순한 정보 제공을 통해 앞으로 여러분들의 바른 신학적 판단에 도움을 주고자 합니다.

1. 생애

1) 1886. 5.10. 스위스 바젤 개혁파 교회 목사(Fritz 바르트) 장남. 소년, 청년기 베른.

2) 1904. 베를린대. 종교사학파 구약학 궁켈(1862-1932), 하르낙(1851-1930) 사사

3) 튀빙겐에서 보수신학자 슐라터(1852-1938), 바르부르그 대학 헤르만 사사(당시 불트만, 고가르텐 동문)

4) 1911-21. 스위스 자펜빌 목회

5) 1911년 로마서 주석 출판("하나님을 하나님 되게 하라", "하나님과 인간, 시간과 영원 사이의 간극"-변증법 사용-, "자유주의 신학자들의 놀이터에 떨어진 폭탄"-가톨릭 신학자 Karl Adams)

6) 1921 괴팅겐 대, 1925 뮌스터 대 교수, 1930 본 대학 교수 취임(1932, 모차르트 음악 들으며 <교회교의학> 집필 시작 1968까지 계속, 8천면에 달하는 12권 미완성 저서)

7) 1933년, 나치가 복음교회 사실상 지배(롬 13:1). 1933년 복음교회는 75% 나치 지지

8) 당시 제자 본 회퍼(1906-1945)- 본 대학

9) 1934. 5. 31. 바르멘 선언 주도- 5개 조항(히틀러 정권에 대한 충성 서약 거부와 고백 교회 운동)-외국인으로 추방

10) 고향 바젤로 돌아와 신학 강의

11) 종전 후 다시 독일(1946-47) 교의학 강의

12) 바젤대 강의, 1968. 12.10일 83세 일기로 세상 뜨다. 명예박사는 많으나 학위는 못함

2, 신학적 방법(긍정과 부정)

1) 부정: 자연신학에 대한 회피

2) 긍정: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 만남

3. 하나님 말씀과 성경

1) 하나님 말씀 세 가지(계시·복음 자체로서의 그리스도, 성경, 교회의 복음 선포 곧 설교)

2) 성경과 하나님 말씀의 구분

4. 그리스도 중심적 삼위일체 신학

1) 바르트 신학 구조의 핵심(하나님의 자기 계시의 중심으로서의 예수 그리스도를 모든 신학의 기본으로 간주-네 가지 주제=(1) 하나님의 말씀론, (2) 신론, (3) 창조론, (4) 화해론==> 성령은 제 2장 하나님의 계시 제 1부분 §12. 성령 하나님과 제 3Part 성령의 유출 §16. 계시의 주관적 실재와 계시의 주관적 실현가능성으로서의 성령 등에서 다루고 있다)

2) 삼위일체 회복(존재 양태Seinsweise로서 위격보다 양태라는 말을 좋아함)

5. 자유로이 사랑하시는 분으로서의 하나님

1) 신적 탁월성으로서의 자유로운 사랑

2) 세상에 대한 하나님의 절대적 초월

6. 선택 교리

1) 예수 그리스도만이 배척받은 유일한 사람이다

2) 보편적 구원apokatastasis 문제에 대한 에밀 부룬너의 질문에 답변 거부

칼 바르트(사진 우편)와 에밀 브룬너(유광웅 교수님 제공)

7. 바르트의 종말론

1) 신학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

(1) 바르트는 종말론을 역사의 끝에 일어날 부록이 아니라, 신학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으로 보았다.

(2) 부활의 실재성: 그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역사의 한복판에 개입한 하나님의 결정적 사건으로 파악하며, 이를 통해 종말이 이미 시작되었음을 선포한다. 이는 관념적 종교를 넘어선 실재적 개입이다.

(3) 역동적 평형: 영원하신 하나님이 시간 속으로 들어오시는 사건을 통해, 시간과 영원 사이의 긴장과 평형 유지

2) "그리스도 중심적 종말론"

(1) 종말은 단순한 미래 사건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미 시작된 현실

(2) 하나님 계시는 그리스도 안에서 완성됨

(3) 종말론을 신학 전체의 중심에 둠

(4) 예수의 부활은 새 시대의 시작

(5) 인간 역사는 하나님의 심판과 은혜 아래 있음

(6) 종말은 인간이 계산할 수 있는 연대기가 아님

(7) “종말은 그리스도 자신이다.”

(8) 실존주의적 종말론과 변증법 신학에 큰 영향

3) 바르트의 보편구원론(Universalism, 보편적 회복apokatastasis)

(1) 사랑의 하나님 개념​

(2) 성경의 만유 회복(행 3:21)

(3) 만물의 통일(엡 1:9-10)

(4) 사후 구원의 기회가 있다?(벤전 3:19)

(5) 한시적 형벌론(마 25:46, aionion은 무한한 기간이 아닌 제한된 기간)

(6) 초대교회 알렉산드리아 학파(오리겐 등)와 닛사의 그레고리

(7) 라틴신학자들은 반대

(8) 종교개혁자들 역시 어거스틴의 전통을 따라 보편구원론 반대

(9) 바르트는 보편구원론 암시하기는 하였으나 공개적으로 시인하거나 찬성하지는 않음

(10) 바르트의 보편 화해론: 그리스도가 이룩한 하나님과 인간의 화해는 보편적이다.

(11) 로마서 주석의 신적 변증법(divine dialectic): 신적 아니오는 신적 Yes!

(12) 바르트가 보편 구원론을 선호한 것은 분명한 듯(John Hick)

(13) 바르트와 브룬너와의 자연신학 논쟁!

 

 

칼 바르트와 에밀 브루너(브룬너)의 자연신학 논쟁

1. 자연에 대한 바르트의 관점 구약 신학자 폰 라드가 구속사에 집중한 것처럼 교의학에서도 창조보다 구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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Ⅱ. 오스카 쿨만의 “이미와 아직”의 종말론

1) 생애

(1) 스트라스부르그 대학교 (당시 독일, 현 프랑스)

(2). 헬라어, 고대 교회사 교수

(3) 스위스 바젤대학교 다시 돌아와서 신약학 교회사 교수

(4) 칼 바르트의(k.Barth)영향 받아 신정통주의자가 됨

(5) R.Bultmann 비판, 비신화와 초대교회 상황에 대한 것을 비판함

(6) 신정통주의자는 성경의 무오성을 신뢰하지 않는다.

(7) 그래서 성경의 무오성을 의심하고 역사 속에서 발견되는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구속)가 참된 기독교요, 그리스도이다. 하나님의 구원을 역사 속에서 찾아야 한다.

(8) 정 통 : 성경에서 말씀하시는 그리스도를 믿어야 한다.

(9) 구속사 : 역사 속에서 나타나는 그리스도를 믿음. 성경보다 역사이해로 흘러감.

2) Die Christologie des Neuen Testaments(1957), 영역본 The Christology of the New Restament(1959)

(1) 급진적 역사 비평

(2) 구속사적(구원론적) 관점에서 예수의 인격과 사역을 ‘역사적 예수’와 실존적 의미로 이해하려는 '메시지(케리그마)'의 매개체로 이해

(3) 오스카 쿨만은 기독론을 구속사적 해석방법과 연결해, 예수의 사역을 구원과 구속의 사건으로 읽는 접근 강조

(4) 불트만의 양식비판은 ‘그리스도교 신앙이 부활 이후의 케리그마(그리스도) 선포에 기반한다’는 점을 강조하며,역사적 예수 탐구를 ‘부질없는 노력’으로 언급

(5) 예수에 대한 신약성경의 표사에 있어 기본적 통일성을 구원사(Heilsgeschichte, Salvation History)라는 말로 표현

(6) 기독론은 구원사를 깊이 숙고하는 데서 나오는 것이지, 단지 한 인간이 존재하다가 죽었다는 것이 최초 교회의 그리스도인 설교의 주제였다는 사실의 의미를 신화적으로 표현한 것은 아니다.

3) 오스카 쿨만의 종말론(“Already / Not Yet”“이미와 아직”의 종말론, 시간에서의 구원을 이야기함)

(1) 예수의 초림으로 종말이 이미 시작되었지만 완성은 미래

(2) 그리스도의 성육신(이것만 믿음) 이후 시간(역사)안에서 성취됨. 오직 성경이 아니라, 성경에서 말하는 구원이 아니라, 시간 속에서 우리의 구원을 성취해 간다고 봄으로 시간이 더 중요하게 됨=>신정통주의

(3) 성경은 구속사 해석의 도우미로 본다. 구속사를 성경 위에 둔다. 카톨릭에서 교황을 위에 두고 성경해석권이 있다고 하는 것과 유사.

(4) 창조와 재림을 신화라고 말함.

(5) 성경의 언어를 불신함으로 역사 속에서 재해석하고자 함.

(6) 기독교의 배타성과 절대성(이것 때문에 순교, 선교함)이 무너지면 기독교 자체가 사라질 수 있다.

(7) 구속사 학파는 역사 속에서 재해석할 때 다른 종교에도 창조와 재림이 있다고 주장.

4) 역사 속의 시간을 통한 재해석(시간 재해석)

(1) 하나님의 절대 시간 속에서 하나님이 계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역사의 시간 속에 계시 는 분이시며 하나님은 역사의 시간 속에서 구원을 이루어 가신다고 함.

(2) 하나님을 시간 안에 묶어버린다. 이것 때문에 만유내재신론으로 의심 받는다.

cf)*범신론(pantheism)=>

GOD is nature(불교, 스피노자) 신이 곧 자연이다. 자신이 신이 되시오 .죽어서 다시 윤회함. 윤회하다가 해탈해서 신이 되는 것이다.

*이신론(Deism)=>

신이 창조 하신 것을 믿음. 세상을 기계처럼 정교하게 만들어서 너희들끼리 잘 살아라. 뉴튼(성경을 신뢰하는 이신론자?).

볼테르 (성경에 대해 회의를 가지는 이신론자). 성경 하나님과의 소통이 전혀 없는 이신론자?

5) 하나님도 역사의 시간 속에 계시는 분

(1) 하나님은 역사의 시간 속에 구원을 이루어감.

(2) 칼 바르트 신학은 그리스도와의 초월적 만남 사건 중시(초월적으로 하나님이 만나주어야 하지만), 오스카 쿨만은 범신론, 이신론도 아닌 Panenthesm(만유내재신론)과 유사.

*만유내재신론

God is in nature(창조하신 하나님이 자연에 깃들어 있다.)

=> Animism(정령사상)유사성: 잡신이 성황당, 산, 바위에 있는 것.

하나님은 인격적인 신인데 성령을 파워풀하게 생각한다.

불 받아라 하는 것이 일종의 만유내재신론이다.

부흥사들이 만지면 쓰러지는 것들, 간증 가운데 성령이 충만한 것 같다는 내용.

사람의 마음을 고양 시키는 것.

하나님이 시간 속으로 들어와 역사하신다는 것이 구속사이며, 쿨만의 이야기다.

시간 속으로 들어와 역사하신다는 것은 과정신학이며, 정상적인 기독교가 아니다.

정통기독교는 시간을 초월(시간이 무의미)한다. 하나님이 시간, 공간, 물질을 창조하셨다. 이것이 사물이고, 자연이다.

Augustine(354-430): 하나님은 하루가 천년 같고 천년이 하루 같다고 하며, 시간의 무의미를 말함.

A. Einstein이 과학적 검증을 했다. 시간이 빛의 속도로 가속되면 시간이 멈춘다.

제일 밝은 별이 시리우스별인데 지구에서 9광년 떨어져 있다. 빛의 속도로 시리우스 별을 갔다 오면, 지구는 18년이 흘러가지만 내가 귀가해서 보면 나는 그대로 있다는 것이다.

하나님 앞에서는 모든 것은 현재이다!

※00대 신대원 000 전도사(당시)의 필기 노트 원고(교수 조덕영)

Ⅲ. 위르겐 몰트만(Jürgen Moltmann, 1926~2024)의 "희망의 종말론"

 

몰트만의 고향, 독일 제 2 도시 함부르크. 한때 손흥민 선수가 몸담았던 함부르크 SV의 연고지인 함부르크 시내 전경(멀리 복음주의 5대 교회 첨탑이 보인다)©조덕영

1. 몰트만의 생애

1) 위르겐 몰트만(Jürgen Moltmann, 1926~2024 )은 로마 가톨릭이 아닌 복음주의 교회들이 중심이 되어 있는 한자 동맹 중심 도시인 독일 북부 함부르크 태생의 개신교 신학자다.

2) 제 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 육군에 입대했으나 영국군에게 포로가 되었고 스코틀랜드에 있는 포로수용소에서 그는 기독교 신앙을 갖게 되었다고 알려져 있다.

3) 괴팅겐 대학에서 수학하고 오토 베버(1902, 바르트 영향, 칼빈 <강요> 獨譯)의 지도 아래 1952년 박사학위를 취득했으며 일 년 후인 1953년 목사 안수

4) 1954년부터 시골 교회에서 약 5년 동안 목회를 경험하고 브레멘의 교회 대학(Kirchliche Hochschule)에서는 교목 생활을 경험

5) 이후 본(Bonn) 대학교를 거쳐 1967년 튀빙겐 대학의 조직신학교수가 되어 1994년 은퇴할 때까지 그곳에서 신학을 가르쳤고 일반적인 신학자들이 장수하는 것처럼 그도 장수하면서 튀빙겐 대학의 명예 교수로 있다.

6) 1975년 한국을 방문하여 정치 신학을 강연한 이래 꾸준하게 한국의 신학교와 교회들을 방문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7) 오토 베버, 칼 바르트, 게오르크 빌헬름 프리드리히 헤겔, 에른스트 블로흐(유대인, 동독 마르크스 철학교수, 1961년 서독 이민 튀빙겐대 철학교수, Das Prinzip Hoffnung) 등의 영향 아래 희망의 신학(1964), 종말론, 정치신학, 그리스도론Der gekreuzigte Gott(1972), 성령론(성령의 능력 안에 있는 교회, 1975), 창조론, 기독교와 과학(과학과지혜,Wissenschaft und Weisheit) 등에 관한 저서를 남기고 있다.

8) 국내에서의 몰트만

(1) “희망의 신학자”라서 그럴까? 몰트만처럼 한국교회와 목회자들이 좋아하고 신뢰하는 신학자를 찾아보기란 그리 쉽지 않다. 그는 한국의 보수와 진보 심지어 오순절 계통 교회로부터도 초청 받고 환영받는 보기 드믄 신학자다.

(2) 그의 신학이 한국인의 정서와 보이지 않는 일정한 소통의 끈이 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3) 그렇다면 몰트만은 어떤 창조 신앙을 가진 신학자일까? 몰트만의 <창조 안에 계신 하나님>은 어떤 분일까? 몰트만의 창조 신앙은 전통적인 성경적 구속 신앙과 연결되는 그러한 성경적 창조 신앙일까? 한국 기독교인들의 폭넓은 호응과 지지를 받는 그의 창조 신앙은 정말 한국의 보수와 진보와 오순절 계통을 포괄하는 성경적 틀 속에 있을까? 이런 흥미를 가지지 않을 수 없다.

 

몰트만 저, Translated by M. Kohl, SCM Press, 2003

2. 몰트만의 <희망>(Hoffnung)과 미래(Zukunft)의 종말론

1) 1961 <Theologie der Hoffnung>

2) 블로흐 <희망의 원리> 영향

3) 몰트만의 희망은 미래(종말론)과 연결

4) 희망의 종말론

(1) 오고 계시는 하나님: 하나님은 지금도 자신의 피조 세계로 오고 계신다.

(2) 즉 하나님은 되어감(becoming)이 아니라 오심(coming)으로써 미래를 존재의 양태로 가진 분이다.

(3) 그리스도 부활 사건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미래로부터 마지막 부활을 바라보라, 이것이 바로 희망이다!

(4) 진정한 희망일 수 없는 블로흐의 유토피아(하나님 없는 인간의 유토피아?) 비판

5) 만인구원론(?)

(1) 희망 속 창조와 종말의 관련성

(2) 창조의 종말론적 이해

(3) 창조이시며 구속자이신 하나님의 종말론

(4) 종말론적 기독론에 근거, 지옥은 이미 해소된 것으로 보다

(5) 따라서 종말론적 희망, 즉 그리스도의 십자가 구속은 만인, 비록 지옥에 있는 죽은 자들에게조차 종말은 희망이다.

6) 하나님의 내주(Shekinah, indwelling)

(1) 만유 안에 내주하시는 하나님의 쉐키나

(2) 하나님의 영원한 내주

(3) "시간을 지배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의 관점에서의 영원의 시간"(W. Moltmann, Science and Wisdom, Translated by M. Kohl, SCM Press, 2003), 71.

(4) '창조세계의 공간'을 삼위일체 삼위일체 하나님의 Phrichoresis(상호상통, 상호침투) 공간이념으로 상응하여 이해한 몰트만

(5) 쉐키나 사상은 무한한 하나님과 유한하고 지상적인 공간의 중요한 관계를 제공하는 "성전신학"이다.

(6) 하나님과 창조 사이의 거리는 종말의 때에 하나님의 자기-제한을 해제함으로써 창조는 영원한 생명과 신적인 무소부재에 참여하게 될 것이다.

(7) "만유 안에 만유가 되실 하나님"

7) 창조주 하나님과 시간과 미래

(1) 정통 신학은 시간을 초월해 계시고 섭리하시는 창조주 개념

(2) 반면 몰트만의 시간론은 미래를 본질로 소유하시는 하나님

(3) 즉 시간 속에 하나님을 예속(잘못하면 만유재신론)-> 신학 방법도 과거로부터 시작하는 것이 아닌 미래로부터 시작하는 것

(4) 미래는 감추어진 상태요 미래를 향하여 열려진 자유-> 현재나 과거가 아닌 미래 중시 -> 미래로 열려진 인간!

3. 몰트만의 삼위일체론 속 창조론과 성령론 그리고 종말론

1) 아버지와 우주적 그리스도와 성령(삼위일체 속 성령) :

(1) 그리스도가 모든 창조를 위한 죄 된 인간과 “노예화된 피조물”을 위한 구원의 근거라면, 그는 모든 창조와 인간과 자연의 실존을 위한 근거이기도 하다.

(2) 성령은 아들(Christ)에 의해 보냄을 받았지만 아버지(God)로부터 나오며 아버지가 아들 안에서 활동하게 비추어 준다.

(3) 여기서 몰트만은 'filioque'를 버리고 '성자의 아버지로부터'(from the Father of the Son) 나오시는 성령을 창안한다.

(4) 이 성령은 예수를 통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

(5) 몰트만은 이 같은 우주적 삼위일체론을 확장하여 서방교회와 동방교회의 삼위일체론에 대한 대화의 시도를 통해 에큐메니칼적인 삼위일체론으로 나아가면서 '사회적 삼위일체론'(the social Trinity)을 주창한다.

(6) 몰트만은 자신의 이 사회적 삼위일체론을 설명하기 위해 갑바도기아 교부들의 페리코레시스(perichoresis, 상호내주, 상호침투) 개념을 활용한다.

(7) 문제는 <창조 안에 계신 하나님> 개념이 판넨베르크처럼 몰트만도 창조 안에 있는 하나님의 영의 활동과 사역과 원리가 작동하게 유도한다는 점에서 성령론이 기독교 만유재신론의 길로 들어서는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고 보여진다.

2) ‘창조주로서의 영’ :

(1) 신약성서의 증언에 의하면 구원의 종말론적 경험은 영의 부음과 그리스도의 공동체 안에서 일어나는 성령의 능력의 경험과 결합되어 있다.

(2) 성령의 은사는 영광의 “보증”이다(고후 12: 2, 5,6: 엡 1,14).

(3) 성령의 능력은 새 창조의 능력이다.

(4) 성령은 창조에 있어 아버지와 아들과 동일하게 활동하신다.

3) 성령의 인격과 그리스도의 관계

(1) 성령은 하나님 안에 있는 그리스도를 영원히 반영하며 동시에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을 반영한다.

(2) 성령이 하나님에 의해 숨으로 내 쉼을 받으면, 성령은 아들의 아버지로부터 나온다. 따라서 성령의 임재는 그리스도의 실존과 하나님의 상호 관계를 전제하게 된다.

(3) 성령은 하나님으로부터 “신적인 실존(divine existence)”을 소유하며 그리스도로부터는 “관계적 형태(Relational form)”를 갖는다.

4) 창조 안에 있는 성령의 현존과 활동 방식

(1) 그리스도교 신앙에 있어서 성령의 첫 경험은 ‘창조자의 능력의 경험’이다. 신앙인은 성령의 능력으로 다시 태어나며(요 3:5), 그리스도 안에서 그는 새로운 피조물이다(고후 5:7).

(2) 성령의 둘째 경험은 같은 근원에 속한 것인데 그것은 달리는 극복될 수 없는 사회적, 종교적, 자연적 한계를 극복하고 이루어지는 ‘사귐의 경험이다.

(3) 자기의 소명과 자기가 받은 성령의 은사의 ‘개인화에 대한 경험’은 이 사귐의 경험과 동일한 근원에 속한 것이다. 각자에게 다른 성령의 은사가 내린다.

(4) 성령은 세상을 통해 하나님께 기쁨을 돌리며 뿐만 아니라 성령은 하나님과 세상과의 결합을 성취 시킨다.

(5) 끝으로 성령의 임재에 대한 이 경험 속에서 희망이 확실해진다. 왜냐하면 선취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여 ‘새로운 창조의 미래’, 영광을 향한 우주의 거듭납, 모든 분리된 피조물들의 축복받은 창조의 사귐, 그리스도 안에서 연합되어 있고 성령 안에서 새로워진 창조의 직접적인 하느님과의 사귐이 선취되기 때문이다.

5) 자연 속에 있는 우주적 영(성령)의 활동 방식

(1) 영은 물질과 살아 있는 것의 모든 영역 속에 있는 ‘창조성의 원리’이다. 그것은 새로운 가능성을 창조하며 물질적이며 살아 있는 유기체들의 새로운 기획들을 그들 속에 선취한다(=앞당겨 온다). 이러한 점에서 영은 진화의 원리이다.

(2) 영은 ‘전체론적 원리’이다. 진화의 모든 단계에서 그것은 상호작용과 이 상호작용들 속에서의 일치와 상호간의 침투와 동지적이고 연대적인 삶을 창조한다. 하느님은 영은 창조의 “공동체영”이다.

(3) 영은 상이한 차원에 속한 특별한 물질의 기획들과 삶의 기획들의 ‘개체화’와 분화의 ‘원리’인데 이것은 위의 원리와 동일한 근원에 속한 것이다.

(4) 끝으로 모든 창조는 목적에 있어서 개방된 피조물들이다. 그들은 각자의 방법으로 그들의 가능성을 지향하고 있기 때문에 그들이 공통된 미래를 향하고 있다. 이러한 ‘목적성의 원리’는 모든 개방된 물질의 체계들과 삶의 체계들 속에 내재하고 있다.

6) 몰트만이 본 창조자 하나님과 종말론 속 성령

(1) 몰트만의 창조주 하나님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창조 안에 계신 하나님>이 나오기 이전 1967년 그가 쓴 <희망의 신학(The Theology of hope)>과 1969년 저술한 <종교와 혁명과 미래(Religion, Revolution and the future)>에서 그가 말하고자 했던 것을 살펴봄으로서 <창조 안에 계신 하느님>에서 다루고자한 자연의 신학에 배경이 되는 창조자 하나님을 어떤 의미로 표현하고자 한 것인지 살펴볼 수 있다.

(2) 첫째, 몰트만에게 있어 하나님은 미래로 나아가는 하나님으로서 시간의 일부이지 완전한 하나님으로 보이지 않는다. 즉 몰트만에게 있어 하나님이란 “미래를 그의 본질로 가지는” 하나님이다. 따라서 몰트만에게 있어 하나님에 대한 관심은 "창조자 하느님에서 다루고자 했던 하느님 자신보다는 그가 미래에 어떤 분이 되실 것인지에 관심"이 많다.

다시 말하면 그가 과거와 현재에 누구이신가 하는 것은 몰트만의 관심 밖이라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몰트만의 하나님은 절대적이신 분이라기보다 우리의 미래에 대하여 약속하시는 신실의 하나님이요 미래를 정하시는 하나님이다.

(3) 둘째로 창조와 관련된 종말의 사상에 있어서도 몰트만의 관심은 전통적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한 대망과 조금 다른 낯선 주장을 편다. 기독교의 종말 개념은 이미 창조의 때로부터 출발한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완성이 이미 예언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몰트만의 종말론은 마치 우리와 다른 창조자 하느님을 염두에 두고 있다고 보여질만큼 낯설다.

그에게 있어 '하느님이란 영원 가운데 존재하시는 초자연적인 분'이 아니라 단지 미래에 대해 열려진 것이요 미래의 자유처럼 느껴진다. 그런 하느님이라면 이미 그가 다루는 창조자 하느님은 우리의 믿음의 영역을 벗어난 분으로서의 하느님을 다루고 있다는 의심이 가기도 한다.

(4) 셋째, 복음적 그리스도인이 그리스도의 부활을 종말론의 전제로 믿는데 반하여 이제 미래의 소망으로 단순히 앉아 계신 하느님이기에 그에게 있어 갈보리는 그다지 의미가 없다. 그는 '갈보리를 통한 새예루살렘을 바라보지 말라'고 한다. 오히려 미래를 통해 갈보리를 보아야 한다고 했다.

전통 신앙의 예수의 부활은 마지막 부활의 근거이다. 하지만 몰트만에게 있어서는 거꾸로 마지막 부활이 예수 부활의 근거가 된다<J. Moltman, Religion,Revolution and Future(N.Y:Charles Scribner's Sons, 1969), 52.>.

이런 변증적 사변과 예수의 비유적 하나님 나라는 일치하는 것일까?

*나가면서

1) 결론적으로 몰트만의 하나님은 얼핏 보면 우리가 믿는 정통적인 하나님과 별 차이가 없는 듯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몰트만이 자신이 서술한 창조자 하느님을 믿느냐 믿지 않느냐 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몰트만에게 있어 세상은 하나님이 창조 시에 주신 일정한 형식이나 구조가 없다.

2) 이것은 전통적인 기독교의 입장과는 분명 낯설다. 몰트만에 있어 미래는 자유를 말하며 자유는 상대성을 의미한다(Religion, Revolution and Future, p.138.).

3) 몰트만의 말대로 미래를 실현시키기 위해 사용될 권위주의적인 형식이 설정되지 않았다면 그런 하나님은 몰트만이 비판하는 기계론자들의 하나님과 무슨 차별이 있을까?

4) 더욱이 몰트만의 종말론의 중심에 예수 그리스도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은 그가 말하는 '창조자 하느님'에 대해 회의를 갖게 하는 것도 사실이다. 도대체 예수 그리스도가 없이 그가 그리는 희망이란 어디에서 오는 것인지 궁금하다.

5) 몰트만이 바라보는 성령도 인격적인 하나님으로서의 성령보다는 행동을 요구하는 성령으로 느껴진다. 하나님의 자리에 인간 지향의 의지가 강조되는 경향이 있다. 몰트만의 행동 강조가 해방 신학으로 이어짐은 어쩌면 당연하다고 보여 진다. 그렇기 때문에 몰트만에게 있어 미래의 최종 목표는 예수 그리스도의 충만한 현시가 아니고 지상에 건설될 이상향이다. 사도 바울과 달리 몰트만의 하나님 나라는 정치와 혁명으로 나타날 평강일 수 있는 이유다.

6) 몰트만의 관심이 하나님 자신이 어떤 분인가에서 이탈되어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그렇다면 그가 다루는 창조자 하느님은 눈뜬장님처럼 스쳐가는 하나님이거나, 최소한 몰트만 스스로 하나님을 그저 무신경하게 다루고 있다고 보여 진다.

7) 몰트만이 말하듯 단지 미래에만 자신을 계시하시는 하나님이라면 이미 그가 말하는 창조자 하느님은 그가 아무리 현학적 언어를 동원해서 창조자 하느님을 노래해도 그것은 우리에게 공허한 메아리로 들릴 뿐이다.

8) 따라서 몰트만은 과거에 주어진 역사적 계시를 받아들이지 않는 듯한 인상(smith의 책 A Handbook of Contemporary Theology를 인용하여 목창균 교수가 『현대신학 논쟁』(두란노서원,1995)에서 희망의 신학 결론(329쪽)에 서술)을 늘 우리에게 주고 있는 것이다.

9) 몰트만은 국내 진보와 복음주의 신학 모두에게 늘 찬사를 받는 현대신학자다. 하지만 모든 신학자들이 늘 칭송만 하는 신학자이기에 필자는 다른 생각을 전해본다. 몰트만이 정통개혁신학자는 아니더라도 탁월한 현대신학자인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오순절 성령운동의 중심에 있다는 순복음교회가 몰트만을 성령론의 권위자라며 초청했던 것은 일종의 난센스일 수도 있다고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Ⅳ. 루돌프 불트만(Rudolf Bultmann, 1884-1976)의

"케리그마의 초월성" 속의 실존론적 종말론

1. 생애

1) 복음주의 루터파 목사(아프리카 선교사) 아들

2) 하르낙, 양식비평 궁켈 사사

3) 기독교 실존주의

2, 신앙과 역사적 예수

1) 양식 비평

2) 역사의 예수에 대해 부정적

3. 종말론

1) 핵심 요약

(1) 초기 기독공동체는 하나님 나라 도래에 대한 종말적 착각

(2) 현재적, 실존적 존재로서의 종말

(3) 종말 사건을 “미래 우주적 사건”보다 인간의 실존적 결단으로 해석

(4) 신약의 묵시적 표현을 “비신화화(demythologization)” 함

(5) 마지막 심판은 현재의 결단 속에서 일어남

(6) 믿음으로 사는 순간이 종말적 순간

(7) 종말은 역사적 예언보다 존재론적 의미를 가진다.

(8) 역사적·미래적 종말을 약화시켰다는 비판을 받음

2) 역사와 종말론

(1) 인간들이 간직하고 있는 가장 로래된 이야기는 역사가 아니고 신화이다.

(2) 한 민족이 국가를 형성할 때 발생하는 역사의 현장

(3) 하나의 통일체로 이해되는 구약 성경의 역사

(4) 구약의 심판 역사는 세계 심판이 아닌 역사의 부분적 심판

(5) 신약 성경의 종말론은 구약의 역사와 계시문학의 내용을 같이 수용하였으나 계시문학의 사상이 더 많이 포함된 책

(6) 예수의 종말론적 설교는 유대교 계시문학의 내용을 수용하여 구성

(7) 초기 기독교의 역사는 종말론적 신앙을 흡수하였는데, 그것을 역사적으로 이해한 것이 아닌 종말론적으로 이해함

(8) 따라서 그리스도 재림을 목격하지 못한 신자들은 절망하고 의심하였으며, 교회는 종말보다 실존론적 역사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지게 됨

(9) 결론적으로 Oral Traditions 중심의 신화로 가득한 성경은 "비신화화"(Entmythologisierung)해야 되는 책이다.

(10) 성경의 역사적 기초를 완전히 제거하고 "비신화화"함으로써 기독교 진리의 기반이 되는 성경을 해체한 현대신학자 불트만(불트만을 따르는 한국의 학자들은 누구인가?)

4. 신화론

1) 신화로 덮여있는 책 성경

2) 비신화화 해야

5. 해석학

1) 해석을 위한 전이해

2) 실존주의적 인간 이해

6. 하나님의 초월

1) 고전적 우주관은 현대의 과학적 세계관과 모순

2) 실존적 하나님 만남

7. 실존주의와 신학:

신정통주의적

8. 하이덱거와 신학성경:

하이덱거의 실존적 철학

9. 실존주의와 범주들:

실존과 세계 구분

10. 본래적 실존:

본래적 실존과 비본래적 실존

11. 역사 개념:

히스토리와 게쉬히테 구분

12. 신앙과 복음: 케리그마

13. 비판: 성경 권위에 대한 추락

14. 일방적인 주해: 실존주의를 통한 단순화된 주해

15. 사유화된 신앙: 복음이 메시지에 대한 좁은 이해

16. 왜곡된 하나님: 무한한 질적 차이에 의한 하나님에 대한 이해 왜곡

17. 결론

1) 친구인 칼 바르트와 함께 독일 개신교 신학 지평 재형성

2) 역사적 기독교 파괴

3) 기독교 초자연주의 완전 배제

4) 실존주의를 통한 성경 왜곡

 

 

Ⅴ. 톰 라이트의 종말론
톰 라이트©sns


톰 라이트(1948~, Nicholas Thomas Wright)는
옥스퍼드대 엑스터 칼리지를 나와 케임브리지 다우닝 칼리지에서 학위(신약학 박사)를 받고
캐나다 맥길대에서 신약학 조교수를 지냈으며
2003년에는 더럼의 주교를 역임한 성공회 출신의 신약학자입니다.
역사적 예수 탐구와 바울 신학 분야의 전문가로
' 21세기의 씨 에스 루이스'라 불릴만큼 주목받는 변증가이기도 합니다.

그의 종말론은 주로 『역사와 종말론-예수 그리고 자연신학의 가능성』
《History and Eschatology: Jesus and the Promise of Natural Theology》을 중심으로 전개됩니다.
이 책은 2018년 기포드 강연(Gifford Lectures)을 바탕으로 출간된 책입니다.
1888년부터
스코틀랜드(아버딘, 에딘버러, 글라스고우, 세인트 앤드루스대)에서 시작되어
자연신학에 대한 학제간 연구를 추구해 온 기포드강연에는
노엄 촘스키, 닐스 보어, 아놀드 토인비, 알리스터 맥그라스, 알버트 슈바이처, 베르그송, 알프레드 노스 화이트헤드, 존 듀이, 루돌프 불트만, 폴 틸리히, 몰트만뿐 아니라 자연신학에 부정적이었던 칼 바르트에 이르기까지 당대 최고의 지성들이 강연자로 나선 역사 깊은 모임입니다.

이 책에서 톰 라이트는
아주 독특한 주장을 합니다.
바로 “역사”와 “종말론”을 분리해 온 기존의 근대 서구 사상을 비판하면서,
예수의 역사성과 성경의 종말론이
오히려 “자연신학”의 핵심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조직신학자요 창조신학자인
필자도 관심을 끄는 종말론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는 94세이신 자신의 어머니가 기포드 강연이 무엇인지 물으시고,
자신이 자연신학에 대해 거론한데 대한 모친의 반응을 통해,
이 책이
성서학자는 자연신학을 어떻게 볼 것인지를 종말론과 함께 다룬 강좌임을 소개합니다.
이 내용을 중심으로 살펴봅니다.

이 책의 구조
부분내용
1부자연신학과 역사적 정황: 근대 역사관과 자연신학 비판
2부역사, 종말론, 묵시: 세상의 종말? 역사적 관점에서의 종말론과 묵시
3부유대 세계에서의 예수와 부활절: 건축자들이 버린 돌 예수, 성전 하나님 나라, 부활과 새 창조
4부자연신학의 위험과 가능성: 망가진 이정표? 올바른 질문들에 대한 새로운 답변들, 자연신학과 하나님의 선교, 자연신학 재구성
“하나님은 역사 안에서 실제로 행동하시는가?”
1. 톰 라이트의 질문

1) 근대 계몽주의 이후 많은 학자들의 문제(구분법)
(1) 자연은 과학의 영역
(2) 하나님은 종교의 영역
(3) 역사는 인간 사건
(4) 종말론은 비역사적 신화

2) 특히 자연신학(natural theology)의 문제
(1) 자연 세계를 통한 하나님을 추론하려 했다.
(2) 하지만 예수와 성경의 역사적 사건은 제외한 것은 잘못이다.
(3) 그 이유는 예수는 실제 역사 속 인물이고, 복음서는 실제 사건을 증언하며, 하나님은 역사 안에서 행동하셨기 때문이다.

2. 루돌프 불트만 비판

1) 이 책 제목은 사실 Rudolf Bultmann의 《History and Eschatology》를 의도적으로 떠올리게 한다.
2) 라이트의 강한 불트만 비판
(1) 불트만은 종말론을 실존적(symbolic existential) 의미로 해석
(2) 역사적 사건보다 “개인의 실존적 결단” 강조
(3) 초자연적 사건을 비신화화(demythologizing)

3) 슈바이처(그리고 바이스)
(1) 지나친 단순화의 위험은 있으나 세상 종말의 예수를 직면한 바이스는 우파 계열의 헤겔주의로 돌아섰고, 슈바이처는 좌파 계열로 돌아섰다.
(2) 슈바이처는 우리는 서서히 도래하는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릴 수 없다고 말한다.
(3) 니체의 콧수염까지 따라할 정도로 슈바이처 체계는 그의 영웅인 니체에 훨씬 더 가까웠다.
※ 알버트 슈바이처의 종말론(자유주의적 해석?)

(1) 사도 바울의 신비주의에 담긴 종말론적 해석의 가능성(헬레니즘과 유대주의와 기독교)
① 교리사: 바울의 가르침을 부분적으로는 종말론적으로, 부분적으로는 헬레니즘적인 것으로 해석하여 부담을 나눔
② 바울의 가르침을 순수 종말론적으로 해석
③ 그리스도교의 헬레니즘화는 바울과 함께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바울 이후에 비로소 시작
④ 즉 바울은 기독교를 헬레니즘화하지 않았다.
⑤ 예수의 가르침과 바울의 가르침은 완전히 일치
(2) 구속에 관한 종말론적 가르침
(3) 바울 종말론의 이슈들(메시아 종말론과 인자 종말론)
(4) 예수 종말론(그리스도와 함께 고난, 죽음, 부활, 부활한 존재의 현상)
(5) 바이스와 슈바이처의 철저적 종말론konsequente Eschatologie

4) 계몽주의의 가현설(Docetism) 비판
(1) 톰 라이트는 근대 계몽주의가 역사와 신학을 분리함으로써 기독교를 일종의 관념적 '가현설'로 전락시켰다고 비판한다.
(2) 이분법의 파괴: 계몽주의는 '객관적 역사'와 '주관적 신앙'을 나누었다.
(3) 라이트는 이것이 우주와 역사를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실재적 통치를 가리는 행위라 보았다.
(4) 에피쿠로스주의 비판: 그는 근대 과학과 철학이 신을 세상 밖으로 밀어낸 '에피쿠로스주의'에 기반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이는 하나님이 세상사에 개입하지 않는다는 가상적 전제를 깔고 있다.

5) 기독론적 실재론: "역사의 중심으로서의 예수"
(1) 라이트는 역사를 이해하는 유일한 열쇠가 나사렛 예수라는 역사적 실재에 있다고 주장한다.
(2) 성전으로서의 예수: 예수는 하늘과 땅이 만나는 '실재적 지점'이다. 그는 추상적인 종말이 아니라, 역사 한복판에서 하나님 나라를 시작하신 분이다.
(3) 부활의 역사성: 라이트에게 부활은 단순히 '영적인 의미'가 아니라, 썩어짐의 종노릇 하던 창조 세계에 일어난 물질적이고 역동적인 새로운 창조의 시작이다.

4) 라이트의 관점 정리
(1) 예수의 부활은 실제 역사적 사건이다.
(2) 하나님 나라 역시 역사 안에서 시작했다.
(3) 종말론은 단순 심리학이 아니라 우주적 새 창조(new creation)
라고 주장한다.

3. 라이트의 종말론 핵심

1) “세상 멸망론”과 다른 라이트의 종말론
(1) 그는 신약의 종말론을 “세상의 끝”보다 “새 창조”로 이해한다.
(2) 많은 현대 기독교인은 종말을 지구 폭발, 물질세계 폐기, 영혼의 천국 탈출
처럼 이해한다.
(3) 그러나 라이트는 이것을 플라톤주의 영향이라고 본다.
(4) 성경의 종말론은 "하나님이 창조세계를 새롭게 회복하시는 것"
(5) 즉 성경은 창조 → 타락 → 구속 → 새 창조를 말한다.
(6) 하나님은 세상을 버리지 않으심
(7) 부활은 “탈출”이 아니라 “새 몸”의 시작이다.
(8) “교회는 성령으로 충만해 하나님의 미래를 현재 속에서 살아내며 이를 증거하는 공동체로 부름받았다”.

2) 예수의 종말론은 “임박한 세계멸망”이 아니다
(1) 라이트는 복음서의 묵시적 언어(apocalyptic language)를 유대적 상징으로 해석한다.
(2) 예를 들어 해가 어두워짐, 별이 떨어짐, 인자가 구름 타고 옴같은 표현은 문자적 우주붕괴가 아니라 성전 심판, 로마 권세 심판, 하나님의 통치 도래를 의미하는 상징적 언어라는 것이다.
(3) 따라서 예수는 “곧 우주가 끝난다”고 말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가 역사 안에 침입하고 있다”고 선포한 것이라 해석한다.
(4) 종말론의 재정의: 종말은 "하늘로 가는 것이 아닌, 땅으로 오는 것"
4. “하늘과 땅”의 통합

1) 라이트는 서구 사상이 하늘/땅, 영혼/육체, 하나님/세계를 지나치게 분리했다고 보았다.
2) 반면 성경적 세계관에서는 하늘과 땅은 원래 연결됨, 성전은 그 접점, 예수 안에서 하늘과 땅이 만남 , 새 창조에서 완전한 통합이 이루어진다고 보았다.
3) 따라서 종말론은 “이 세상 탈출”이 아니라, 하나님이 세상을 충만하게 회복하시는 사건인 것이다.
4) 변화산 사건에 대한 기존 해석과 다른 관점: 예수와 함께 등장한 모세와 엘리야는 부활한 존재가 아니라, 하나님 안에서 살아 있는 상태가 드러난 것이다. 이는 “미래의 사건이 현재로 당겨진 것이 아니라, 감춰진 현실의 장막이 잠시 열린 것”이다.
5) ‘보이지 않는 영역’(천사와 영적 존재들): “욥기, 이사야서, 열왕기 등 구약 본문이 하나님 중심의 ‘하늘 회의’ 개념을 보여준다”. 하지만 “이러한 영역에 대한 과도한 집중은 경계해야 한다”. “신약에서는 오히려 하나님과의 직접적인 관계가 강조되며, 천사의 역할은 상대적으로 축소된다”.

5. “사랑의 인식론”(Epistemology of Love)

1) 이 책의 중요한 철학적 주제 중 하나다.
2) 라이트는 계몽주의 이후 서구 학문이 관찰자(observer), 객관성(objectivity), 거리두기(detachment)만 강조했다고 비판한다.
그러나 하나님을 아는 참된 지식은 사랑과 참여를 통해 얻어진다.
3) 즉 하나님 인식은 단순 데이터 축적이 아니라, 언약과 관계 속에서 가능하다는 것이다(어거스틴).

6. 신학적 평가

1) 종말론 이해의 재정립

(1) 이 책은 단순 종말론 책이 아니다. 역사철학, 신약신학, 자연신학, 과학과 신앙, 부활론, 창조론을 통합하려는 시도다.
(2) 그는 최근 자신의 팟캐스트 ‘Ask NT Wright Anything’에서 재림의 의미부터 복음을 한 번도 듣지 못한 이들의 운명에 이르기까지 기독교의 주요 신학적 쟁점들을 폭넓게 다루며, 종말론에 대한 기존 이해를 재정립할 필요성을 제기하기도 했다.
(3) 라이트는 먼저 재림 이해의 출발점을 성경 전체의 서사에서 찾아야 한다고 강조하며 “성경은 ‘창조–타락–회복’이라는 구조를 갖고 있으며, 그 결말은 인간이 세상을 떠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세상을 새롭게 하시는 데 있다”고 했다.
(4) 특히 라이트는 역사적 예수, 부활, 새 창조, 하나님 나라, 자연신학을 연결한다. 즉 “예수의 역사 자체가 하나님을 드러낸다”고 했다.
(5) 그는 “하나님께서는 처음 창조를 ‘심히 좋다’고 선언하셨고, 마지막에는 ‘새 하늘과 새 땅’을 이루신다”며 “이 땅을 떠나 천국으로 가는 것이 신앙의 중심이라는 생각은 성경 전체 이야기와 맞지 않다”고 설명했다. 재림을 단순한 탈출이 아닌 창조의 완성으로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다.

2) 재림론

(1) 복음서에 등장하는 “인자가 구름을 타고 온다”는 표현에 대해 라이트는 전통적 해석과 다른 관점을 제시. 이 구절은 다니엘서 7장을 배경으로 하고 있으며, 해당 장면은 하늘에서 땅으로 내려오는 사건이 아니라 ‘인자 같은 이’가 하나님께 나아가 권세를 받는 장면으로 해석.
(2) “이 장면은 재림이 아니라 예수의 승리 선언과 부활·승천 이후 이뤄진 왕권 선포를 의미한다”며 “이를 재림으로만 읽는 것은 본문의 방향을 거꾸로 이해한 것”이다.
(3) 사도행전의 승천 장면을 근거로, 재림의 본질을 ‘이동’이 아닌 ‘드러남’으로 규정. 그는 “예수의 승천을 본 제자들에게 천사가 ‘그가 다시 오실 것’이라고 말한 것은 물리적 이동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고 했다.
(4) 따라서 “성경의 ‘하늘’을 물리적 공간이 아닌 현재 세계와 겹쳐 있는 하나님의 차원으로 이해”해야하며, 열왕기하에 등장하는 엘리사의 사례가 “당시 보이지 않던 하늘의 군대가 특정 순간에 드러난 것처럼, 재림 역시 감춰진 실재가 드러나는 사건”이다.
(5) 신약성경이 재림을 설명할 때 ‘온다’는 표현과 함께 ‘나타난다(appearing)’는 표현을 사용하는 점에 주목, 요한일서와 바울서신들을 근거로 “현재 감춰져 있는 실재가 그리스도의 나타남과 함께 공개된다”고 했다. 결국 “이 사건은 단순한 재방문이 아니라 이미 시작된 하나님의 통치가 완성되는 순간”이며, 빌립보서를 인용해 “그리스도가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시키고 인간의 몸 또한 변화될 것”이라고 했다. 이는 십자가와 부활, 승천으로 시작된 구속사의 흐름이 우주적 차원에서 완결되는 시점을 의미한다.
(6) “신약성경의 핵심 메시지로 돌아가야 할 필요가 있다”, “예수의 죽음과 부활, 승천을 통해 이미 새 창조는 시작됐다”. “그리스도는 모든 원수가 굴복할 때까지 다스리신다”(고린도전서 15장 인용).

3) 비판

(1) 묵시문학의 상징성 과도 강조: 일부 학자들은 라이트가 유대 묵시문학의 실제 우주적 종말 기대를 약화시킨다고 비판한다. 즉 예수와 바울은 실제 우주 종말도 기대했다는 주장이다.
(2) 지나친 역사 강조: 일부 조직신학자들은 라이트가 역사 연구에 너무 의존한다고 비판한다.
(3) 전통적 자연신학과 차이: 고전적 자연신학이 자연으로부터 하나님을 추론하는 반면, 라이트는 예수의 역사를 통해 하나님 인식을 한다는 점에서 전통적 의미의 자연신학과는 꽤 다르다.
(4) 한 문장으로 요약하면 톰 라이트의 거대한 신학 프로젝트 《역사와 종말론》은 “예수의 역사와 부활 안에서 이미 새 창조가 시작되었으며, 종말론은 세계 폐기가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완성”이라 할 수 있다.
​​​
조덕영 교수(창조신학연구소 소장, 조직신학, Th. D.)

      

/출처ⓒ† : http://cafe.daum.net/cgsb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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