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배와 성례와 예식에 대해(고신 교회)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로 구원받은 그리스도인들이 모여 참되고 유일하신 하나님 앞에 예배하는
공동체이다. 하나님은 예배의 방식을 직접 제정하셨다.
따라서 사람의 상상이나 성경이 지시하지 않은 방식으로 예배해서는 안 된다.
이 예배가 고신 교회에서 지난 70년 동안 어떻게 이루어져 왔을까?
그 답을 고신 교회의 <예배 지침>과 <예식서>의 역사를 통해 그리고 이와 관련한 총회의 결정을 통해
살피고자 한다.
이로써 예배와 성례, 예식의 관점에서 70년을 돌아보고 이를 계기로 고신 교회가 다시 참 예배 공동체로
바로 서기를 바란다.
1. <예배 지침>과 <예식서>의 역사에 나타난 변화
1952년에 출발한 고신 교회는 1934년의 조선 예수교장로회 헌법을 모법으로 삼았다.
여기에 실린 예배 지침은 영국의 웨스트민스터 총회(1643-1649)에서 작성된 <예배 지침>에서 나와
미국 장로교회를 통해 왔다.
고신 교회는 1934년의 ‘예배 모범’을 1981년까지 유지하다 1992년에 대폭 개정하였다.
‘예배 모범’을 ‘예배 지침’으로 변경하고 기존 18장을 10장 40조(헌법적 규칙 6조)로 수정했다.
2011년의 예배 지침은 1992년의 예배 지침을 거의 이어받았다.
이 과정에서 주목할 몇 가지 변화(둘은 부정적이고 하나는 긍정적인 것)를 살피고자 한다.
첫째, 1981년 이전에는 별도로 취급된 ‘헌금’ 항목이 1992년 개정부터는 제3장(주일예배) 안에 포함되었다.
무엇보다 내용이 전면적으로 개정되는데 헌금의 종류를 열거하고 헌금과 십일조를 교인의 의무로 강조하여
제시했다(제15조 예배와 헌금). 이는 이전 1981년 예배 지침과 비교할 때 차이가 난다.
1981년 예배 지침은 헌금의 의의를 서술하였다.
“교회의 각 신도는 주께로부터 받은 재물을 가지고 정한 규례대로 헌금하는 일을 배양할지니 이로써
주 예수 그리스도의 명하신 대로 복음을 천하 만민에게 전파하는 일을 도움이 옳으니 주일마다 이 일을 위하여
회중으로 헌금하는 기회를 정하는 것이 합당하고 매우 아름다운 일이다.
성경에 가르친 대로 이같이 헌금하는 것은 전능하신 하나님께 엄숙히 예배하는 것의 일부분으로 한다.”
예배의 요소인 헌금을 서술하면서 의무를 강조하여 제시한 것은 유례없는 일이다.
한국 장로교회 합동, 통합 교회 예배 지침에도 없다.
예배에서 헌금이 가진 감사의 정신보다 의무를 강조한 점은 율법주의로 오해할 여지를 줄 수 있다.
둘째, 이전(1981년)까지는 <교회 정치>에서도 예배의 요소를 다루었지만(제8장 교회 예배의식)
이제 이를 삭제하고 <예배 지침>에서만 다루고 있다.
이는 직원과 치리회를 규정하는 교회 정치가 무엇보다 예배를 위해 있음을 간과하는 것이다.
교회 정치와 예배 지침의 관련은 성경(고전 14장)에서 볼 때 명확하다.
셋째, 2011년 예배 지침 개정은 이전과 달리 예배의 본질(제2조)과 요소(특히 성례식과 세례, 성찬)를 서술할 때
언약을 강조함으로 예배가 본래 언약에 토대한 것임을 밝혔다.
고신 교회는 미국교회 전통을 따라 예배 지침 외에 예식서가 있다.
고신총회는 1982년, 1999년, 2014년에 예식서를 제정했다.
제1차 예식서(1982년)는 가장 중요한 예식인 주일 공예배 순서를 생략함으로 오점을 남겼다.
제2차 예식서(1999년)는 목사인 직식을 목사 안수식으로 개칭하고 치유 예배를 추가한 것이 특징이다.
제3차 예식서(2014년)는 공예배와 기도회를 구분하고 시벌과 해벌, 기도문, 환자와 임종대 심방을 추가했다.
상례와 예배당 봉헌 예식을 단순하게 했다.
그러나 현 예식 서는 그 토대가 되는 신아고 백서, 예배 지침을 여전히 온전히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은
앞으로 남은 과제이다.
2. 개체교회 당회에 맡긴 강단
강단은 바른 교리를 전하는 곳이며 이로써 고신 교회 성도가 하나가 된다.
이를 위해 총회는 강단을 지킬 의무가 있다.
그런데 지난 역사에서 총회는 이 책임을 개체교회 당회에 떠맡겼다.
제21회 총회(1971년 9월)는 강단교류에서 국내외를 막론하고 칼뱅주의 신앙과 신학, 생활에 맞지 않는 교단은
거부하기로 했다. 제27회 총회(1977년 9월) 역시 다시 선명하게 입장을 밝혔다.
그런데 제35회 총회(1985년 9월)는 몇 년간의 연구와 유보와 고심 끝에 종전 입장에서 후퇴하여 개체교회
당회 재량에 위임하는 결정을 내렸다.
나아가 제49회 총회(1999년 9월)가 <개역개정 성경>을 고려신학대학원 교수 회의 보고서를 통해 강단용
성경으로는 적합하지 않다는 지적을 받았음에도 제56회 총회(2006년 9월)는 대한 성서공회의 요청과
다수 한국교회가 채택하고 있다는 논리로 개체교회 당회에 맡기는 결정을 내렸다.
이때 고신 교회는 복음 병원 부도라는 고신 교회 역사 초유의 사태에 온통 신경을 쓰고 있었다.
3. 십일조에 대한 율법적인 태도를 삼가는 결정
예배 지침에서 헌금을 의무로 제시하다 보니 이를 율법적 태도로 대하는 것은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다.
제53회 총회(2003년 9월)는 고려신학대학원 교수회가 보고한 ‘그리스도인의 헌금 생활의 표준으로서
십일조’ 보고서를 받았다. 핵심은 다음과 같다.
“구약과 신약의 원리에 따라 십일조를 하는 것이 합당하나 너무 ‘십일조’라는 문자에 얽매여 율법적인 태도로
지킬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부터 왔다는 사실을 믿고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감사의 마음으로
자원하여 기쁨으로 힘써 드려야 한다는 것이다.”
4. 흔들리는 성례
제55회 총회(2005년 9월)는 예배 지침 제6장 제26조에 나오는 ‘학습제도’ 폐지 건의를 다루었으나
현행대로 하기로 했다.
학습제도가 초기 한국교회의 상황에서 비롯된 것이므로 폐지하자는 취지나 총회는 계속 두는 것이 훨씬
유익하다고 판단하였다.
제56회 총회(2006년 9월)는 사직 된 목사가 시행한 세례를 인정하는 여부를 두고 해당 교인이 다시 세례 받기를
희망하면 줄 수 있는 것으로 가결하였다.
그러나 이는 신아고 백서 제28장에 있는 대로 “세례의 성례는 어느 사람에게든지 단 한 번만 베풀어져야 한다"
라는 것과 성례의 효과가 이를 시행하는 사람의 경건에 있지 않고 성령의 역사와 성례 제정의 말씀에 있음을
위배하는 결정이었다.
제69회 총회(2019년 9월)는 고려신학대학원 교수회가 보고한 ‘지체장애인의 세례에 대한 연구 보고서’를
받았는데, 보고서에는 부모가 불신자인 중증 지체장애인도 교인 중에 영적 부모나 후견인을 세워 대신 서약하고
세례를 허락하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언약의 유비와 교회론을 그 근거로 제시했다.
일찍이 제60회 총회(2010년 9월)는 중증 지체장애인의 세례 가능성을 신중하게 타진만 했을 뿐인데,
제69회 총회(2019년 9월)는 이를 과장하여 충분한 토론과 검증 과정 없이 허락하였다.
제60회 총회(2010년 9월)는 ‘성찬식의 엄격한 시행’을 확인한 적이 있다.
이는 일부 해외 자매교회가 고신 교회의 현 성찬 시행에 관해 총회 섭외위원회에 의구심을 표시한 것에서
발단하였다.
성찬 시행 한 주일 전에 미리 광고할 것과 손님으로 온 자에 대해 엄격하게 하고, 총회와 노회에서 시행할 때
중창단의 찬양을 하는 등 참된 의미를 훼손하는 일이 없도록 하였다.
5. 본래 의미를 되찾은 직원 임직과 혼인 그리고 기타
최근까지 총회는 교회 직원 임직을 주일성수를 이유로 허용하지 않았다(제47회 총회, 제56회 총회).
그런데 제69회 총회(2019년 9월)는 고려신학대학원 교수 회의 보고를 토대로 ‘임직은 하나님께 서약하는 일이며 그 자체가 예배 요소 중 하나이므로’ 주일 임직이 가능하다고 결정했다.
직원 임직이 본래 의미를 제대로 찾은 셈이다.
또 동 총회는 세속화되는 결혼의 의미를 성경 원리를 따라 다시 정립하였다.
특히 혼인은 반드시 공적인 서약이 포함되며, 목사의 주례가 없는 혼인을 삼가며 장소는 예배당이
바람직함을 밝혔다.
이 외에도 제37회 총회(1987년 9월)는 장례식 때 하는 헌화는 우상숭배가 아닌 고로 무방하나 혹 양심에
거리낀다고 생각하는 자는 참여하지 않아도 무방하다고 하였고, 제53회 총회(2003년 9월)는
목사 위임식이나 직원 입직식에서 세족식을 시행하는 것을 금하였다.
6. 예배와 예식의 나아갈 길
이상에서 우리는 지난 70년 동안 고신 교회에서 예배와 성례와 예식이 변해온 모습을 간단하게 살펴보았다.
대가 변하면 예배와 예식의 모습이 바뀔 수밖에 없다.
하지만 우리 예배는 종교개혁의 정신에 입각하여 은혜의 방편인 하나님의 말씀이 온전하게 선포되고,
성례가 제대로 시행되는 예배, 또한 우리 고유의 문화를 잘 반영한 아름다운 예식을 해야 하겠다.
코로나가 가속화했지만, 세상이 교회의 예배를 주목하고 있다.
우리는 예배에 목숨을 걸라고 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지만, 우리 예배가 복채를 내고하는 무당의 푸닥거리와
하나도 다르지 않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하나님이 예배를 닫으시고 흔들어놓으신 이유가 무엇인지 깊이 헤아려야 하겠다.
우리가 스스로 예배를 지겨워하고, 예배를 통해 우리 욕망을 채우려고 하고, 그래서 예배가 하나의
공연이 되어가고 있지 않은가?
우리 예배와 예식은 계속해서 발전해야 한다.
개신교회의 예배와 예식은 천박하게 보이는데 로마교회의 예식은 아름답고 영적(?)이라고 생각해서 청년들조차
그것에 빠져들고 있다는 것을 뼈아프게 생각해야 하겠다.
예배와 예식이라는 형식 속에 복음을 제대로 담아내지 못하면 우리의 성숙도 세상의 구원도 요원할 것이다.
우리 예배는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자라가야 하겠고, 우리 성례는 표현이 성숙해져야 하겠고, 우리 예식은
아름다움이 커져야 하겠다.
그래서 세상에 저것이야말로 우리가 그리는 예배하려는 모습이라고 말할 수 있다면 좋겠다.
※ 이 내용은 ‘월간고 신 생명나무’에 2022년 4월 호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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