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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연구와 이해

[스크랩] 성령과 불(눅 3:16)에 대한 다양한 해석

작성자동주|작성시간26.06.09|조회수3 목록 댓글 0

성령과 불(눅 3:16)에 대한 다양한 해석             

1. 오순절에 일어날 일

 

   이 견해는 '성령과 불'로 주는 침례를 하나로 본다. 오순절에 모여 있던 자들, 각 사람 위에 불의 혀처럼 갈라지는 것이 하나씩 나타났는데, 예수의 성령과 불 침례가 바로 사도행전 2장 3절의 사건을 지칭한다는 해석이다.

 

   초대교회 교부 요한 크리소스톰은 불을 성령과 관련지어서 이해했으며, 요한이 말하고자 한 것이 바로 성령의 불(the fire of the Holy Spirit)이라고 생각했다. 현대 학자 중에 이 견해를 따르는 학자는 많지 않지만, F. Bovon의 해석은 의미상으로 이 견해와 맥을 같이한다. Bovon은 '성령과 불'이라는 표현 중 '불'만 마태복음-누가복음 공동 부분에 있으며 '성령'이라는 표현은 후대 해석자들에 의해 덧붙여진 것으로 보는데, 여기에서 '불'을 종말론적 심판의 의미가 아닌 사도행전 2장 3~4절의 시각적 비유를 표현한 것으로 본다.

 

   하지만 사도행전 2장 3절의 '불의 혀처럼 갈라지는 것들'이라는 표현에서 알 수 있듯이, 이 구절은 그곳에 있던 자들이 ‘불 침례’를 받았다는 것이 아니라, 성령이 불의 혀처럼 각 사람 위에 임했다는 것을 말한다. 또한, 이 견해는 불 침례를 단지 사도행전 2장에만 국한해 해석할 뿐, 누가-행전에 πὐρ가 나오는 다른 본문과 연관성이 떨어지는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성령과 불이 나오는 누가복음 3장 16절의 근접 문맥인 3장 9절과 3장 17절에 심판에 관한 내용이 명확하게 나오는데, 이 견해는 심판에 대한 어떠한 언급도 없다.

 

2. 오직 심판

 

   이 견해를 따르는 자들은 '성령과 불'로 주는 침례를 하나로 보며 이 표현이 오직 심판에 관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 해석은 앞뒤 근접 문맥을 볼 때 설득력이 있어 보인다. 

  침례 요한은 누가복음 3장 9절과 3장 17절에서 불을 심판의 이미지로 사용하기 때문이다. 이 견해를 지지하는 학자들은 또한 πνεὐματι αγίω에서 αγίω를 후대 해석자들에 의해 덧붙여진 것으로 이해하거나 혹은 두 단어 중에 오직 πνεὐματι만 집중하여 해석하는 경우가 있다. 즉, 성령은 심판을 상징하는 바람으로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바람은 누가복음 3장 17절에 나와 있듯이 키질을 할 때 알곡과 쭉정이를 가려내는 역할을 함으로 불과 함께 최종적인 심판을 완결한다고 본다.

 

   하지만 이 해석은 예수의 침례를 단지 심판에만 국한한다. 누가복음 3장 3절을 보면 알 수 있듯이 침례 요한의 침례는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의 침례'였다. 그리고 이사야 40장 3~5절을 인용하는 3절 4~6절을 보면 6절에 명시하듯이 그 목적이 분명히 하나님의 구원하심을 보기 위한 것임을 알 수 있다. 누가복음 3장 16절에서 침례 요한이 선포하듯이 죄 사함을 받게 하는 침례 요한의 물 침례는 그 자체에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예수의 성령과 불 침례를 바라보게 한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의 침례도 역시 침례 요한의 침례와 마찬가지로 분명히 심판의 이미지가 강하게 나타나지만, 구원의 요소를 배제할 수는 없다. 또한 17절에서 쭉정이에 대한 언급뿐만 아니라 알곡에 대한 언급도 나오기 때문에 예수의 침례를 오직 심판으로만 보는 것은 무리가 따른다.

 

3. 성령은 구원, 불은 심판

 

   이 견해는 예수가 베풀 침례를 성령 침례와 불 침례로 나누어서 서로 다른 침례로 보는 해석이다. 예수가 베풀 침례는 회개하여 열매 맺는 자에게는 구원을, 회개하지 않아 열매 맺지 못하는 자에게는 심판을 가져온다는 것이다. 즉 성령 침례는 구원에 관한 것이며, 불 침례는 심판에 관한 것이라고 본다.

 

   초대교회 교부 오리겐이 이와 같은 견해를 보였다. 현대 학자로는 R. H. Stein과 유상섭이 이 견해를 따른다. 누가복음 3장 17절은 다음과 같은 단서를 제공한다. 오실 그리스도가 키질할 때 사람들이 둘로 나뉘게 되는데, 어떤 사람은 알곡으로 분류되어 곳간에 들어가게 되고, 어떤 사람은 쭉정이로 분류되어 꺼지지 않는 불에 태워지게 된다. 즉 어떤 사람은 구원받게 되고, 어떤 사람은 심판받게 된다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성령 침례와 불 침례로 인한 각각의 결과라고 본다. 또한, 예수의 침례를 '성령과 불'로 표현한 누가복음 3장 16절의 정황과 예수의 침례를 '성령'으로 표현한 사도행전 1장 5절, 11장 16절의 정황이 다르다는 것이 이 견해를 주장하는 자들의 지적이다. 누가복음 3장 16절에서 침례 요한의 설교의 청중들은 믿는 자들과 믿지 않는 자들이 함께 있는 불특정 다수였기 때문에 침례 요한이 성령 침례와 불 침례를 함께 언급했다는 것이다. 즉, 믿는 자들에게는 구원을, 믿지 않는 자들에게는 심판을 선포하기 위해 침례 요한이 '성령과 불'(πνεὐματι άγίω καί πυρί) 이라는 표현을 썼다는 것이다. 이와는 다르게 사도행전 1장 5절과 11장 16절의 청중들은 모두 믿는 자이었기 때문에 심판을 의미하는 '불'이라는 표현을 제외하고 '성령'이라는 표현만 썼다는 것이 Stein의 주장이다.

 

   하지만 이 견해는 누가복음 3장 16절을 문법적으로 살펴볼 때 몇 가지 문제점이 제기된다. D. W. Pao와 E. J Schnabel은 αὐτός ὐμάς βαπτίσει έν πνεὐματι καί πυρί에서 전치사 έν이 하나임을 지적한다. 또한, J. A Fitzmyer는 이 문장에서 목적어 ὐμάς가 하나임을 지적한다. 그리고 D. L Bock은 두 단어를 대조시키는 접속사 ή가 아닌 연결 접속사 καί를 사용한 것을 지적한다. 여기에서 지적되는 ὐμάς와 έν이 하나뿐이다.

 

   이뿐만 아니라 근접 문맥인 누가복음 3장 17절을 볼 때도 이 주장은 설득력이 떨어진다. 침례 요한은 손에 키를 들고 키질을 한다. 그리고 키질을 통해서 알곡과 쭉정이가 구분된다. 같은 키질을 통해서 알곡과 쭉정이가 구분되는 것을 볼 때 성령 침례와 불침례를 인위적으로 나누는 것은 문맥상 맞지 않는다.

 

4. 심판과 정화의 이중적 성격

 

   이 견해는 '성령과 불'이 하나의 침례를 가리키며, 심판과 정화의 이중적 성격을 가진다는 해석이다. 예수의 성령 침례와 불 침례는 하나의 침례이며 그것을 받아들이고 회개하는 자는 죄가 씻기고 정화되어 구원을 받게 되지만, 받아들이지 않고 회개하지 않는 자는 심판을 받게 되는 이중적인 성격을 가진다는 것이다.

J. D. Dunn, I. H. Marshall, Fitzmyer, J. B. Green, J. Nolland, Bock, M. Tuner, F. B. Craddock, Pao와 Schnabel, 정창욱이 이 견해를 주장한다. 예수가 주는 성령과 불 침례 안에 분명히 심판의 요소가 들어있지만, ‘침례준다’라는 말을 ‘심판한다’라는 말로 1:1로 대체시킬 수 없다는 것이다.

 

   이 견해의 가장 큰 난관은 불을 심판으로 비유하고 있는 누가복음 3장 9절과 3장 17절을 어떻게 해석할 것이냐 하는 문제이다. 

 

 

III. 불에 대한 서론적 의미 고찰

 

   본격적으로 누가복음 3장 16절의 ‘성령과 불’의 의미를 논증하기 전에 구약, 유대 문헌, 신약에서는 과연 πυρ가 어떤 의미로 사용되었는지 살펴볼 것이다. 그리고 πνεὐμα와 πὐρ가 함께 쓰일 때는 어떤 의미로 사용되었는지도 함께 살펴볼 것이다.

구약과 유대 문헌은 누가가 누가복음을 기록하던 당시 통용되던 문헌이고, 신약은 동시대 문헌이기 때문에, 이 문헌들에 나타난 πὐρ의 의미는 누가가 누가복음에서 이 단어를 사용할 때 어느 정도 영향을 주었을 것이라고 볼 수 있다.

 

1. 구약에서 불의 의미

 

1) 심판

 

   πὐρ는 구약성경에서 심판의 이미지로 빈번하게 사용된다. 하나님께서 불로 하신 심판 중에 첫 번째이자 가장 대표적인 사건은 소돔과 고모라 성을 멸망시킨 사건이다. 창세기 19장 24절에서 하나님은 유황과 불을 소돔과 고모라에 비같이 내리셔서 그 성들과 그곳의 모든 백성, 그리고 땅에 난 모든 것을 다 없어 멸하신다. 레위기 10장 2절에서 나답과 아비후는 여호와께서 명령하시지 아니하신 다른 불로 분향하다가 불이 여호와 앞에서 나와 심판을 당하게 된다. 민수기 11장 1절에서 광야 생활중에 있던 이스라엘 백성이 악한 말로 원망하자 여호와의 불이 그들 중에 붙어서 진영 끝이 불타게 된다. 호세아 8장 14절에서 이스라엘 백성이 우상 숭배를 하자 하나님께서 불을 보내셔서 유다의 성읍들을 삼키신다. 요엘 2장 3절에서 요엘은 여호와의 날을 설명하며 그때가 이르면 불이 내려서 땅을 황폐하게 할 것이고 그것을 피할 자가 없을 것이라고 말한다. 아모스 2장 4절에서 유다 백성들이 여호와의 율법을 멸시하고 율례를 지키지 아니하며 그의 조상들이 따르던 거짓 우상에게 미혹되자 하나님께서 유다에 불을 보내셔서 예루살렘의 궁궐들을 사르신다. 그 외에도 구약의 많은 구절에서 불은 심판의 이미지로 자주 활용된다.

 

2) 하나님의 현현

 

   πὐρ는 또한 구약성경에서 하나님의 현현으로 종종 사용된다. 출애굽기 3장 2절에서 하나님께서 떨기나무에 붙은 불을 통해 모세에게 나타나셨다. 또한, 출애굽기 19장 18절에서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불 가운데 내려오셔서 모세를 부르시는 장면이 나온다. 민수기 9장 15~16절에서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저녁이 되면 불 모양 같은 것이 나타나는데, 이것 역시 하나님의 현현을 나타낸다.

 

3) 정화

 

   πὐρ는 또한 구약성경에서 깨끗하게 하는 성화의 의미로도 종종 사용된다. 이사야 1장 25절을 보면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의 찌꺼기를 잿물로 씻듯이 녹여 청결하게 할 것이라고 나온다. 스가랴 13장 9절을 보면 여호와가 남아 있는 백성들을 불 가운데 던져 은같이 연단하며 금 같이 시험하여 결국 그들이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게 할 것이라고 나온다. 말라기 3장 2절에서 말라기는 여호와를 설명하며 그는 금을 연단하는 자의 불과 표백하는 자의 잿물과 같을 것이라고 말한다.

 

2. 유대 문헌에서 불의 의미

 

1) 심판

 

   유대 문헌에서도 πὐρ는 심판의 이미지로 가장 많이 사용된다. 다니엘서 추가본인 3장 50절을 보면 불은 사람을 다치게 하는 심판으로 나타난다. 에녹1서(이디오피아 에녹서) 90장 24~27절에서도 불을 심판과 연결한다. 양을 잘못 인도한 목자들과 눈먼 양들이 심판 때에 불 골짜기에 던져져 불탈 것이라고 나온다. 쿰란 문헌 1QS 2:8에서도 불을 심판과 연결한다. “영원한 불의 심판을 받을지어다. 너희가 하나님께 간청할 때 그가 너희에게 자비를 베풀지 않으시기를 원하노라. 그가 너희 범죄를 깨끗이 씻김으로써 너희를 용서하는 일이 없기를 원하노라” 이 본문은 '불의 심판'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며 불을 직접적으로 심판과 연결한다. 쿰란 문헌 1QS 4:13도 불을 심판과 연결한다. “그리고 어둠의 세계에 속한 불에 의해 파멸당하는 수치를 끝없이 맛볼 것이다. 그들 세대의 모든 인생은 쓰라린 눈물과 어둠의 심연에서 느끼는 호된 재앙을 겪게 될 것이다.” 이 본문은 거짓의 영에 속한 자들은 불에 의해 파멸당하는 수치를 끝없이 맛볼 것이라고 말한다. 이것을 포함하여 πὐρ에 대한 심판의 이미지는 유대 문헌에서 빈번하게 나타난다. (Jub 9:15, 36:10, 1 En 10:6, 54:6, 90:24-27, 2 Esdr〔=4 Ezra〕 7:36-38, 13:4, Ps. Sol. 15:4-7. 2 Bar. 48:39, T. Abr. [AJ 14:11, 1QH 3:28-31, 6:18-19, 1QS 2:8, 15, 4:13)

 

2) 구분

 

   쿰란 문헌 1Q29 1:3과 2:3에서 ‘불의 혀들’이라는 표현이 나온다. 이 표현은 대제사장의 에봇에서 나오는 불을 나타내는데, 대속죄일에 선지자들을 구분하는 예식을 치를 때 사용된다. 즉, ‘불의 혀들’이라는 표현은 이것을 통해 진짜와 가짜를, 한 걸음 더 나아가 구원과 심판을 구분하는 의미로 사용된다고 볼 수 있다.

 

3. 신약에서 불의 의미

 

1) 심판

 

   πὐρ는 신약성경에서 심판의 이미지로 빈번하게 사용된다. 마태복음 13장 40절에서 예수는 가라지를 거두어 불에 사르는 것 같이 세상 끝에도 그러할 것이라고 말한다. 요한복음 15장 6절에서 예수는 포도나무 비유를 이야기하며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있지 아니하면 밖에 버려져 불에 태워지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야고보서 5장 3절에서 재물을 쌓는 자들은 결국 그것이 녹이 되어 불같이 그들의 살을 먹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특히, πὐρ는 요한계시록에서 심판의 의미로 자주 사용된다. (계 8:7-8, 9:17-18, 14:18)

 

2) 하나님의 현현

 

   πὐρ는 신약성경에서 하나님의 현현을 묘사할 때도 종종 사용된다. 특히, 요한계시록에서 하나님의 현현은 하나님 영광의 이미지를 동반한다. 요한계시록 2장 18절에서 사도 요한이 두아디라 교회에 보내는 편지에 하나님의 아들을 소개하며 그의 눈이 불꽃과 같다고 묘사한다. 요한계시록 4장 5절에서 사도 요한은 하늘의 예배를 설명하며 등불을 하나님의 현현으로 표현한다. 또한, 요한계시록 10장 1절에서는 하나님의 발을 불기둥과 같다고 표현한다.

 

3) 구분

 

   πὐρ는 신약성경에서 구분의 이미지로도 사용된다. 고린도전서 3장 13절을 보면 사람의 공적을 불로 드러낼 것이라고 설명하는데, 예수 그리스도라는 터 위에 세운 공적이 그대로 있으면 상을 받게 될 것이고, 그 공적이 불타면 해를 받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4. πνεὐμα와 πὐρ가 함께 쓰이는 경우

 

   누가복음 3장 16절에서 침례 요한은 예수를 소개하며 ‘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침례를 베푸실 것’이라고 말한다. 여기에서 πνεὐμα와 πὐρ가 함께 사용된다. 구약과 신약에서 두 단어가 함께 쓰이는 용례를 살펴보면 πὐρ의 의미를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1) 심판

 

   구약에서 πνεὐμα와 πὐρ가 함께 쓰이는 용레는 총 8번 나오는데 그중에서 πὐρ가 '심판'의 의미로 사용되는 경우는 총 세 번이다. 시편 11장 6절에서 시편 기자는 여호와께서 악인에게 그물을 던지시는 것 중 하나가 πὐρ라고 말한다. 여기에서 이 단어는 심판을 뜻한다. 이사야 33장 11절에서 이사야는 전쟁을 주도한 자들의 행동은 자신들을 모두 태워버릴 πὐρ와 같다고 말한다. 여기서도 이 단어는 심판을 의미한다. 에스겔 5장 2절에서 에스겔은 앞에 4장 16~17절에서 나타난 언약 파기에 대한 보응으로 πὐρι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여기서도 마찬가지로 이 단어는 심판을 의미한다.

 

2) 하나님의 현현

 

   구약에서 πνεὐμα와 πὐρ가 함께 쓰이는 총 8번의 용례 중, πὐρ가 ‘하나님의 현현’의 의미로 사용되는 경우도 심판의 의미와 같이 총 세번 나타난다. 사사기 15장 14절에 여호와의 영(πνεὐμα)이 임하자 삼손 팔 위의 밧줄에 불(πὐρι)이 붙어서 떨어진다. 여기에서 이 단어는 하나님의 현현을 나타낸다. 시편 104장 4절에시 시편 기자는 3절에 나오는 '바람 날개'를 좀 더 세밀하게 표현하며 πνεὐμα와 πὐρ를 사용한다. 여기에서 주어는 1절에 있는 여호와인데, πνεὐμα와 πὐρ는 단순한 자연현상이 아니라, 신현(神顯)의 영광을 나타내는 표현이라고 볼 수 있다. 에스겔 1장 4절에서 에스겔은 여호와와 환상 중에 만나는 모습을 표현하며 πὐρος와 πνεὐμα를 사용한다. 여기서도 πὐρος는 하나님의 현현을 나타낸다.

 

   신약의 경우 히브리서 1장 7절은 시편 104장 4절을 인용한 본문이기 때문에 위에서 설명한 것처럼 πὐρ를 신현의 영광을 나타내는 표현으로 볼 수 있다. 요한계시록 4장 5절에서 사도 요한은 하늘의 예배를 묘사하며 πὐρος가 하나님의 영이라고 말한다. 즉 신약성경에서 πνεὐμα와 πὐρ가 함께 쓰이는 용례들은 모두 πὐρ를 하나님의 현현과 연관시키고 있다.

     

5. 정리

 

   구약에서 πὐρ는 대체로 '심판'의 의미로 많이 사용되나 ‘하나님의 현현’, ‘정화’의 의미로도 사용된다. 유대 문헌에서도 역시 πὐρ는 심판의 의미로 가장 많이 사용된다. 하지만 진짜와 가짜를, 한 걸음 더 나아가 구원과 심판을 구분하는 표현으로도 사용된다. 신약에서도 πὐρ는 심판의 의미로 많이 사용되나, 하나님의 현현, 심판과 구원을 구분하는 표현으로도 사용된다. 또한, πεὐμα와 πὐρ가 함께 쓰인 용례는 구약에서 총 8번 나오는데, 그중에 '심판'의 의미로 3번, ‘하나님의 현현’의 의미로 3번 사용된다. 하지만 ‘정화’의 의미로는 단 한 번도 사용되지 않는다. 신약에서 πεὐμα와 πὐρ가 함께 쓰이는 용례는 두 번 나오는데, 두 번 다 ‘하나님의 현현’을 나타낸다.

 

  구약, 유대 문헌, 신약에 걸쳐 πὐρ의 용례를 정리해보면, ‘심판’의 의미로 가장 많이 사용된다. 그리고 ‘하나님의 현현’, ‘정화’, ‘구분’의 의미로도 종종 사용된다.

  πὐρ가 구약, 유대 문헌, 신약 전반에서 어떤 의미로 통용되는지를 살펴보았다. 누가복음 3장 16절에서 ‘성령과 불’을 해석할 때 이러한 기본적인 개념들을 염두에 두고 접근해야 한다. 왜냐하면, 누가 역시 당시 통용되던 πὐρ에 대한 이러한 기본적인 개념들을 암시한 상태에서 누가복음을 저술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IV. 누가-행전에서 불의 의미

 

   누가복음 3장 16절에 나오는 '성령과 불'의 의미를 파악하기 위해서 누가가 자신의 저술에서 πὐρ를 어떤 의미로 사용했는지 살펴보는 것은 필수적이다. 먼저 누가복음을 살펴본 후 누가의 두 번째 저술인 사도행전을 살펴볼 것이다.

 

1. 누가복음에서 불의 의미

 

   누가복음에서 3:16을 포함하여 πὐρ의 용례는 총 7번 나온다.

 

1) 심판

 

   누가복음의 πὐρ의 용례 중에서 '심판'의 의미로는 총 4번 사용된다. 누가복음 3장 9절에서 침례 요한은 회개의 침례를 전파하며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πὐρ)에 던져질 것이라고 말한다. 여기에서 이 단어는 심판을 의미한다. 또한, 누가복음 3장 17절에서도 마찬가지로 침례 요한은 알곡은 모아 곳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πὐρι)에 태울 것이라고 말한다. 여기서도 이 단어는 심판을 의미한다. 누가복음 9장 54절에서 예수의 제자 야고보와 요한은 사마리아 사람들이 예수를 받아들이지 않자 그들을 불 (πὐρ)로 멸하자고 말한다. 여기서도 마찬가지로 πὐρ는 심판을 의미한다. 누가복음 17장 29절에서 예수는 소돔의 멸망을 이야기하며 불(πὐρ)과 유황을 언급한다. 여기서도 πὐρ는 심판만을 의미한다.

 

2) 구분

 

   누가복음에 총 7번 나오는 πὐρ의 용례 중에서 ‘구분’의 의미로 사용되는 경우는 누가복음 12장 49절 한 번이다. 누가복음 12장 49절에서 πὐρ는 '구분'의 의미로 사용된다. 누가복음 12장 49절은 다가올 심판을 준비하라는 것에 대한 큰 문맥(눅 12:1-13:9)에 속하는 단락(눅 12:49-53)이다. 누가복음 12장 49절의 πὐρ는 누가복음 12장 51절의 διαμερισμον과 평행하는 단어이다. 왜냐하면, 누가복음 12장 49절의 πὐρ뒤에 '땅에'(πί τήν γήν)가 따라 나오는데, 이와 마찬가지로 누가복음 12장 51절의 είρήνην도 뒤에 '세상에'(πί τήν γήν)가 따라 나오긴 하지만, 누가는 είρήνην이 아니라 διαμερισμον이 라고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여기에서 πὐρ는 διαμερισμον과 평행한다고 볼 수 있다. 즉, 누가복음 12장 49절의 불을 '심판'의 의미로 보는 것보다는 12장 51절의 '구분'의 의미로 보는 것이 더 타당하다.

 

   누가복음에 총 7번 나오는 πὐρ의 용례 중에서 아직 언급되지 않은 누가복음 22장 55절에 나오는 πὐρ는 베드로가 예수를 부인하기 전에 사람들과 함께 있었던 불을 나타내는데, 여기에서 이 단어는 단지 베드로가 있었던 곳을 의미할 뿐이지 심판과 구분 중 그 어떤 의미로도 사용되지 않는다.

 

2. 사도행전에서 불의 의미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은 동일한 저자 누가에 의해 기록되었기 때문에 누가복음 다음으로 (혹은 더불어) 사도행전의 용례를 살펴보는 것은 누가복음 3장 16절에서 πὐρ의 의미를 파악하는데, 도움을 줄 수 있다. 사도행전에서 πὐρ의 용례는 총 4번 나온다.

 

1) 심판

 

   πὐρ는 사도행전에서 4번의 용례 중에서 '심판'의 의미로 두 번 사용된다. 사도행전 2장 19절에서 πὐρ는 베드로의 오순절 설교 시 요엘 선지자의 말씀을 인용할 때 사용되는데, 사도행전 2장 19절은 요엘 2장 30절을 인용한 말씀이다. 사도행전 2장 19절과 요엘 2장 30절에서 πὐρ는 καπνοὐ와 함께 사용된다. 두 단어가 함께 쓰이는 용례는 70인 역에서 요엘 2장 30절을 포함하여 총 8번 나온다. 이 용례들 중 사무엘하 22장 9절, 시편 18장 8절, 68장 2절, 집회서(시락서) 22장 24절, 이사야 65장 5절에서 πὐρ는 심판의 의미로 사용된다. 동시대 문헌인 신약성경에서 πὐρ와 καπνός가 함께 쓰이는 용례는 사도행전 2장 19절을 포함하여 총 3번 나오는데, 사도행전 2장 19절을 제외하고 나머지 두 번이 요한계시록에서 나온다. 요한계시록 9장 17~18절에서 καπνο는 모두 심판의 의미로 사용된다.

 

   하지만 καπνο와 καπνός가 함께 쓰인다고 해서 모두 심판의 의미로 사용되는 것은 아니다. 욥기 41장 20~21절에서는 리워야단의 위엄으로 사용되고, 시편 18장 8절과 이사야 4장 5절에서는 하나님 현현의 의미로도 사용된다. 하지만 시편 1장 8절과 이사야 4장 5절에서는 하나님의 현현과 심판의 이미지가 정확하게 분리되지는 않지만, 이 경우에도 심판의 의미가 전혀 없다고 볼 수는 없다.

 

   사도행전 2장 19절은 누가가 요엘 선지자의 말씀을 그대로 인용한 구절이기 때문에 πὐρ의 의미를 더 자세히 살펴보기 위해서는 요엘서에 나타나는 πὐρ의 용례를 확인해 볼 필요가 있다. 요엘서에서 πὐρ는 2장 30절을 포함하여 총 6번 나온다. 요엘 1장 19~20절에서 불(πὐρ)이 목장의 풀을 살랐다고 농부가 여호와께 부르짓는 모습이 나온다. 여기에서 πὐρ는 '재앙', '피해'. 더 강하게는 '심판'의 의미로 볼 수 있다. 요엘 2장 3절에서 여호와의 날이 임박하여 불(πὐρ)이 사르자 에덴동산 같았던 땅이 황폐한 들같이 되었다고 나온다. 또한, 요엘 2장 5절에서도 마찬가지로 침략자들이 쳐들어오는 소리가 불(πυρός)꽃이 검불을 사르는 소리와 같다고 나온다. 두 구절 모두 다 마찬가지로 πὐρ는 여호와의 날에 임할 심판을 의미한다. 요엘서에 나타난 πὐρ의 용례를 볼 때, 사도행전 2장 19절에서 누가가 요엘 선지자의 말씀을 인용하며 사용한 πὐρ도 역시 심판의 의미로 볼 수 있다.

 

   또한, 사도행전 28장 5절에서도 πὐρ가 심판의 의미로 사용된다. 바울은 멜리데 섬에서 독사에게 손을 불리게 되는데, 그 독사를 불(πὐρ)에 떨어 버린다. 여기에서 πὐρ는 직접적으로 심판이라고 지칭되진 않지만, 바울이 자신을 물고 있던 독사를 불에 떨어 버렸기 때문에 심판의 의미로 볼 수 있다.

 

2) 하나님의 현현

 

   πὐρ는 사도행전에서 총 4번의 용례 중 '하나님의 현현'의 의미로 나머지 두 번이 사용된다. 사도행전 2장 3절에서 누가는 오순절 성령 강림을 '불의 혀처럼 갈라지는 것들‘이라고 표현한다. 여기에서 πυρός는 각 개인에게 인한 성령의 역동적인 모습을 의미한다. 사도행전 7장 30절에서 πυρός는 또한 스데반의 설교 중 여호와께서 모세를 부르실 때 사용되는데 하나님 현현의 의미로 사용된다.

 

3. 정리

 

   누가-행전, 즉 누가 자신의 저술에서 πὐρ가 어떤 용례로 사용되었는지 살펴봤다. 누가복음에서 πὐρ의 용례는 총 7번 나오는데, 그중에서 심판의 의미로는 4번, 구분의 의미로는 한 번 사용된다. 또한, 사도행전에서 πὐρ의 용례는 총 4번 나오는데 그중에서 '심관'의 의미로는 두 번, '하나님의 현현'의 의미로도 두 번 사용된다.

 

   누가복음 3장 16절에 나오는 ’성령과 불‘의 의미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누가가 자신의 저술에서 사용한 πὐρ의 의미들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누가복음 3장 16절의 πὐρ도 위에서 살펴본 의미들 안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을 것이다.

 

 

Ⅴ. 구조 분석과 문맥 연구

 

   누가복음 3장 16절을 중심으로 구조 분석과 근접 문맥 연구를 통해 누가복음 3장 16절에 나오는 '성령과 불'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살펴보겠다.

 

1. 침례 요한 사역의 성격 : 누가복음 3장 1~6절

 

1)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의 침례

 

   누가복음 3장 2절을 보면 하나님의 말씀이 '빈 들'에서 침례 요한에게 임했다고 나온다. '빈 들'이라는 단어는 έρήμω인데, 이것은 누가복음 3장 4절의 '광야'와 동의어이다. 누가복음 3장 4절은 이사야 40장 3절을 인용하는 구절인데, 여기에 나오는 '주의 길'은 이사야서 본문의 문맥을 볼 때 바벨론 포로에서의 해방을 가리킨다.

 

   하나님의 말씀이 ’빈 들‘, 곧 '광야'에서 침례 요한에게 임하자(눅3:2), 침례 요한은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의 침례'를 선포하였다. (눅 3:3) 여기서 회개의 침례의 내용인 ’죄 사함은 과인 무엇을 의미하는가?‘ 누가복음에 ’죄 사함‘이라는 표현의 용례는 총 11번 나타난다. 누가복음 1장 77절에서 사가랴가 침례 요한의 장래를 예언하며 “주의 백성에게 그 죄 사함으로 말미암는 구원을 얻게 하리니:라고 말한다. 누가복음 5장 20, 21, 23, 24절에서 예수는 중풍병자를 고친 후 그에게 죄 사함을 선포한다. 누가복음 7장 47~48절에서 한 여인이 예수에게 향유를 붓자 예수는 그 여인에게 죄 사함을 선포한다. 누가복음 11장 4절의 주기도문에서 죄 사함에 관한 내용이 나온다. 누가복음 24장 47절에서 예수는 부활 후 승천하기 전에 마지막 당부를 하며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가 전파될 것이라고 말한다. 누가복음의 용례를 살펴볼 때 ’죄 사함‘은 ’해방‘ 혹은 ’구원‘과 연관이 있음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여기에서 또 한 가지 살펴볼 것은 바로 ’회개‘의 의미이다. 왜냐하면, 누가복음 3장 3절에 나오듯이 죄 사함을 받기 위해서는 회개의 침례가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죄 사함, 곧 해방 혹은 구원을 받기 위해서는 회개가 선행되어야 한다. 침례 요한은 이것을 자신이 베풀 침례라고 말한다. 누가는 회개(μετάνοια)라는 단어를 누가복음 3장 3절을 포함하여 총 5번 사용한다. 누가복음 3장 8절에 회개와 합당한 열매를 연관시키고 있다. 회개는 반드시 행동이 따라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3장 9절에 나오듯이 도끼에 찍혀 불에 던져지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누가복음 5장 32절에서 예수가 세리인 레위를 제자로 부르자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예수를 비방한다. 그러자 예수가 그들에게 자신은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다고 말한다. 여기서 회개는 죄인이 예수를 따르는 것 정도의 의미로 볼 수 있다. 이것은 주권에 관한 것으로서, 주권 이양이 곧 회개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의미는 누가복음 15장 7절에도 동일하게 나타난다. 예수는 잃은 양이 주인에게 돌아가는 것을 회개라고 표현한다. 누가복음 24장 47절에서도 회개에 대한 언급이 나온다. 누가복음에 나오는 회개μετάνοια()의 용례를 통해 알아본 침례 요한이 말한 회개의 의미는 합당한 열매를 맺는 것. '주인에게 돌아가서 그들 따르는 것’ 정도로 정리할 수 있다. 이것은 최 사함을 받기 위해 필수적으로 선행되어야 하는 것들이다. 즉 회개가 구원을 위한 준비라는 것이다. 이를 볼 때 침례 요한이 선포하는 것은 단순한 구원이 아니라 회개라는 대가를 반드시 지불해야 하는 구원이다. 이것을 뒤집어서 얘기한다면 회개라는 대가를 지불하지 않으면 해방과 구원은없고 여전히 속박과 심판의 상태에 놓여있게 된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 볼 때 침례 요한 사역의 성격은 그의 선포에서 드러나듯이 구원을 나타내지만, 그와 동시에 심판의 메시지도 나타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2) 준비하는 사역

 

   누가복음 3장 4절에서 이사야 40장 3절을 인용하며 침례 요한의 침례가 주의 길을 준비하고 그의 오실 길을 곧게 하는 사역이라고 설명한다. 누가복음 1장 17절에서 누가는 침례 요한의 출생을 예고하며 그는 엘리야의 심령과 능력으로 주 앞에 먼저 와서 주를 위하여 세운 백성들을 준비할 것이라고 말한다. 누가복음 1장 76절에서 사가랴가 침례 요한의 장래를 예언하며 주 앞에 가서 그 길을 준비하라고 말한다. 이런 내용을 볼 때 침례 요한 사역의 성격은 준비하는 사역임을 일 수 있다. 즉, 뒤에 오실 분이 행하실 본격적 사역의 예비적 단계의 일을 하는 자라고 볼 수 있다.

 

   이것은 결정적으로 누가복음 24장 47절에서 드러난다. 누가복음 3장 3절은 침례 요한의 사역을 설명하며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라고 특징 짓는다. 그런데 누가복음 24장 17절을 보면 이와 같은 표현이 예수의 사역을 설명할 때 나온다. 예수의 이름으로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가 선포된다는 표현이 나온다. 이것은 비로 침례 요한의 사역이 예수의 사역을 준비하는 것임을 그대로 보여준다. 여기서 또한 주목해야 할 것은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눅 24:47)와 함께 전파될 것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그리스도가 고난을 받고 제 삼일에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난다.“(눅 24:46)라는 것이다. 여기서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는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과 연관이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 말은 곧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의 침례'를 주는 침례 요한의 사역 또한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과 연관이 있다는 것을 알려준다.

 

   이것을 다시 침례의 문제로 환원하면 누가복음 3장 16절의 '침례 요한의 물 침례'는 '예수의 성령과 불 침례'를 준비하는 사역이고, '침례 요한의 물 침례'가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과 연관이 있기 때문에 '예수의 성령과 불 침례'도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과 연관이 있다고 볼 수 있다.

 

2. 구조 분석 : 누가복음 3장 16절

 

   누가복음 3장 16절은 다음과 같은 샌드위치 구조로 되어 있다.

 

                            A 침례 요한의 물 침례

                                    X 나보다 능력이 많으신 이가 오시나니

                            A' 예수의 성령과 불 침례

 

   누가복음 3장 16절은 침례 요한의 침례와 예수의 침례를 비교하는 구조를 가신다.

 

   A(침례 요한의 물 침례)와 A'(예수의 성령과 불 침례)에서 βαπτιξω 동사가 동일하게 사용되어 평행 구조를 암시한다. 마가와는 다르게 마태와 누가만 예수의 침례를 '성령과 불'로 설명하여 침례 요한의 '물' 침례와 비교하는데, 누가는 마태와 다르게 A에서 ὐδατι를 동사 앞으로 가져와 문장 앞부분에 놓음으로 침례 요한이 예수와는 다르게 물로 침례를 줬다는 사실을 부각한다. 또한, 마태는 ὐδατι와 πνεὐματι άγίω καί πυρί 앞에 모두 έν을 사용하지만, 누가는 이와 다르게 ὐδατι 앞에는 μέν을 사용하고 πνεὐματι άγίω καί πυρί 앞에만 έν을 사용하여 두 침례가 다르다는 것을 더욱 부각한다.

 

마태복음 3:11 ejgw; me;n baptivzw uJma'" ejn u{dati eij" metavnoian: oJ de; ojpivsw mou ejrcovmeno" ijscurovterov" mouv ejstin, ou| oujk eijmi; iJkano;" ta; uJpodhvmata bastavsai: aujto;" uJma'" baptivsei ejn pneuvmati aJgivw/ kai; puriv:

누가복음 3:16 ajpekrivnato oJ !Iwavnnh", a{pasin, levgwn, !Egw; me;n u{dati baptivzw uJma'": e[rcetai de; oJ ijscurovterov" mou, ou| oujk eijmi; iJkano;" lu'sai to;n iJmavnta tw'n uJpodhmavtwn aujtou': aujto;" uJma'" baptivsei ejn pneuvmati aJgivw/ kai; puriv: 

 

   누가는 이러한 대비를 통해 A(침례 요한의 물 침례)와 A'(예수의 성령과 불 침례)를 대조시킨다. 하지만 이것은 두 침례가 다르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비교일 뿐이지 반대의 의미를 나타내지는 않는다. 누가복음 3장 4절에서 이사야 40장 3절을 인용하며 침례 요한의 침례가 주의 길을 준비하고 그의 오실 길을 곧게 하는 사역이라고 명시한다. 그러므로 침례 요한의 침례와 예수의 침례가 대조되기는 하지만, 내용적인 면에서는 발전되며 심화된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침례 요한이 침례를 베푸는 방편인 ὐδατι는 예수가 침례를 베푸는 방편인 πνεὐματι άγίω καί πυρί와 어느 정도 유사성을 가진다고 할 수 있다. 그러면 ὐδατι가 무슨 의미인지 알아보는 것은 πνεὐματι άγίω καί πυρί가 어떤 의미인지 추론하는 데 도움을 줄 것이다. ὐδατι는 70인 역에서 여러 가지 의미로 사용된다. 씻음, 정화의 의미로 사용되기도 하고 심판의 이미지가 담긴 억압, 압제의 의미로도 사용된다. 누가복음 안에서도 7장 44절에서 씻음의 의미로 사용되기도 하고, 8장 24~25절에서 심판의 이미지가 담긴 혼돈의 의미로 사용되기도 한다. 이를 통해 볼 때 πνεὐματι άγίω καί πυρί도 심판과 정화의 의미 사이의 어느 지점에 위치해 있을 것이라고 추측해 볼 수 있다. 물론 πνεὐματι άγίω καί πυρί는 ὐδατι보다 내용적인 면에서 좀 더 발전된 의미일 것이다.

 

   A(침례 요한의 물 침례)와 A'(예수의 성령과 불 침례)의 대조(혹은 대칭)를 통해 또한 알 수 있는 중요한 사실이 하나가 있다. 침례 요한은 자신의 사역과 예수의 사역을 대칭시킨다. 즉 자신이 물로 베푸는 침례와 예수가 성령과 불로 베푸는 침례를 대칭시킨다. 여기에서 이 대칭을 통해 예수가 '성령과 불'로 베푸는 침례 또한 세례 요한 이 '물'로 베푸는 침례처럼 하나의 침례라고 추론해 볼 수 있다.

 

   X에서 침례 요한은 예수를 소개하며 ”나보다 능력이 많으신 이가 오시나니“라고 설명한다. 또한, 부연 설명으로 "나는 그의 신발 끈을 풀기도 감당하지 못하겠노라."라고 말한다. 침례 요한의 예수에 대한 소개에서 두 가지 논쟁점이 있다. 첫 번째는 έρχεται에 대한 것이고, 두 번째는 ό ίοχυρότερός에 대한 것이다.

 

   누가는 έρχεται를 문장의 맨 앞에 위치시킨다. 동사로 문장이 시작되는 경우를 모두 강조라고 볼 수 없지만, 누가복음 3장 16절의 경우 이 문장의 앞뒤 문장이 모두 주어로 시작되기 때문에 동시로 시작되는 이 문장에서 έρχεται는 강조적 위치에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έρχομαι의 분사형인 ό έρχόμενος(오시는 이)는 누가복음 7장 19~20절에서 '예수‘, 13장 35절에서 '찬송 받으실 분’. 19장 38절에서 '왕'으로 묘사되는데, 이것은 메시아와 연관된 표현들로 볼 수 있다. 또한, 근접 문맥인 누가복음 3장 15~16절을 볼 때 침례 요한은 메시아에 관한 질문의 대답으로 '오시는 분'을 언급하고 있기 때문에 έρχεται를 메시아와 연관하여 생각할 수 있다.

 

   침례 요한의 예수에 대한 소개에서 두 번째 논쟁점은 ό ίοχυρότερός이다. 이 표현을 곧바로 메시아로 연결하려는 시도들이 있지만, 누가복음의 용례들을 볼 때 이것은 논리적인 비약이다. 누가복음 11장 21절에 '강한 자'(ό ίοχυρός)가 나오는데, 11장 22절에서 '더 강한 자'(ίοχυρότερός)가 와서 그를 굴복시키고 그가 믿던 무장을 빼앗고 그의 재물을 나눌 것이라고 말한다. 이 관계를 볼 때 11장 21절의 '강한 자'(ό ίοχυρός)를 메시아라고 해석할 수는 없다. 그렇기 때문에 3장 16절의 ό ίοχυρότερός를 메시아 칭호로 보기는 어렵고 단지 예수가 어떤 존재라는 것을 침례 요한이 자신과 비교하여 설명해줄 뿐이다. 결국, X에서 중요한 것은 침례 요한이 ”능력이 많으신 이가 오시나니“라는 표현을 자기 자신과 대조시켜 표현하고 있다는 점이다. 또한, ”나는 그의 신발 끈을 풀기도 감당하지 못하겠노라“라는 표현 역시 침례 요한이 자기 자신과 대조시켜 표현하고 있다는 점이다.

 

   X(나보다 능력이 많으신 이가 오시나니)는 A(침례 요한의 물 침례)와 A'(예수의 성령과 불 침례)의 대조를 더욱 극대화해 준다. 더 자세히는 '물'(ὐδατι)과 '성령과 불'(πνεὐματι άγίω καί πυρί)이 대칭한다는 것을 부각해 준다. 하지만 누가가 누가복음 3장 4절에서 이사야 40장 3절을 인용하며 침례 요한의 침례가 주의 길을 예비하고 그의 오실 길을 곧게 하는 사역이라고 언급하는 것을 볼 때 이것은 대조를 위한 대조가 아니라 내용적인 면에서는 발전되며 심화되는 대칭이라고 볼 수 있다.

 

3. 근접 문맥 구조 분석 : 누가복음 3장 7~18절)

 

   근접 문맥인 누가복음 3장 7~18절을 분석하면 다음과 같다.

 

                        A. 심판과 구원(7-9)

                            a 침례 요한의 진노 경고 (7)

                                 b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으라 (8)

                            a' 침례 요한의 심판 경고 (9)

 

                       B 회개에 합당한 열매(10-14)

                          a 무리의 질문 (10)

                          b 우리에게 요구되는 회개의 열매 (11)

                          a' 세리들의 질문 (12)

                          b' 세리들에게 요구되는 회개의 열매 (13)

                         a" 군인들의 질문 (14a)

                         b" 군인들에게 요구되는 회개의 열매 (14b)

 

                   A' 심판과 구원(15-18)

                        a  침례 : 알곡과 쭉정이 (15-17)

                        a' 좋은 소식 (18)

 

   누가복음 3장 7~18절은 샌드위치 구조로 되어 있다. A와 A'에 심판과 구원'의 내용이 모두 나타난다. 

 

   A의 구조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a(7절)의 독사의 자식들은 a‘(9절)의 열매 맺지 못하는 나무와 평행한다. 또한, a(7절)의 진노는 a’(9절)의 불과 평행한다. 이 둘은 또한 b(8점)와 연관되어 있다. a(7절)와 a'(9절)에 나타나는 '진노'와 ‘심판’을 피하기 위해서, 즉 구원을 받기 위해서는 8절에 나와 있듯이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A(7-9절)는 분명 '진노와 심판'을 강조하지만,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으라'라고 이야기하며 구원에 대한 소망을 열어 놓는다.

 

   A와 평행을 이루는 A'의 구조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위에서 누가복음 3장 16절의 구조를 세부적으로 살펴봤듯이, a에서 '물‘과 '성령과 불'이 대조적 평행을 이루지만, 내용적인 면에서는 발전되며 심화된다. 이렇게 침례에 관한 이야기가 나온 후, 17절에서 곳간에 들일 '알곡'과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울 '쭉정이'가 대조되어 나타난다. 여기에서 '알곡과 쭉정이'는 '침례 요한의 침례와 예수 침례의 대조'와 평행을 이루는 것이 아니라, 침례 요한과 예수의 침례를 모두 포함한 '침례' 자체와 평행을 이룬다. 우리는 여기서 알곡과 쭉정이의 비교처럼 침례 안에도 심판과 구원의 내용이 모두 포함되어 있다고 추측해 볼 수 있다. 마지막으로 a’(18절)를 보면 침례 요한이 백성들에게 그 밖에 여러 가지 '좋은 소식'을 전했다고 나온다. 여기에 나오는 '좋은 소식'은 누가복음에서 총 10번 사용되는데, 모두 복음의 의미로 사용된다. 복음은 그것을 받아들이는 자들에게는 구원의 소식이지만, 받아들이지 않는 자들에게는 심판의 소식이다. '침례'(16절), '알곡과 가라지'(17절)와 마찬가지로 '좋은 소식(18절)에도 심판과 구원의 내용이 모두 들어있다. 즉, a(15~17절)는 a'(18절)와 내용적인 면에서 평행한다.

 

   중간에 놓인 B의 구조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회개에 합당한 열매가 무엇인지 여러 사람의 질문과 침례 요한의 대답이 번갈아 가며 3번이나 평행하여 나타난다. a(무리의 질문), a'(세리들의 질문), a"(군인들의 질문)에서 모두 ”우리가 무엇을 하리이까?“라는 표현이 동일하게 나온다. 침례 요한은 이에 대해 b, b‘ ,b"에서 모두 명령법을 사용하여 대답함으로 확실한 평행 구조를 보여준다. 이렇게 침례 요한은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강조하기 위해, 그리고 구체적으로 그것이 대상에 따라 어떤 내용인지를 알려주기 위해 세 번이나 같은 형식으로 표현한다.

 

   이제 A와 A'가 어때한 연관이 있는지 그리고 이것이 다시 B와 어떠한 연관이 있는지를 살펴보겠다. A(7-9절)에서 누가는 “장차 올 진노와 심판을 피하기 위해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어야 한다.”라는 명제를 이야기한다. 누가는 이 명제를 A'(15-18절)에서 앞으로 역사 속에 일어날 일들로 시각화하여 '침례 요한과 예수의 침례' 그리고 '알곡과 쭉정이'로 묘사하고, 이것이 침례 요한이 전할 '좋은 소식'이라고 설명한다. 즉, A와 A'는 '회개에 합당한 열매', '알곡', '좋은 소식'을 언급하며 구원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지만, 이와 동시에 '도끼에 찍혀서 불에 던져지는 나무', ’쭉정이'를 언급하며 심판에 대해서도 이야기하고 있다.

 

   A와 A'는 또한 B와 연관된다. A와 A'를 단순화하면 위에서 살펴봤듯이 '심판과 구원'이 중심 메시지이다. 그렇다면 심판을 피하고 구원을 얻기 위해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어야 하는데, 그 구체적인 내용이 바로 B에 나온다. B의 내용에 합당한 행동 양식과 상태에 있는 자들은 구원을 받게 되지만, 그러지 못한 자들은 심판을 받게 될 것이다.

 

4. 정리

 

   누가복음 3장 1~6절에 나오는 침례 요한의 사역의 첫 번째 특징은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의 침례'이다. 여기서 회개의 침례의 내용인 '최 사함'은 '해방' 혹은 구원을 의미한다. 하지만 ‘죄 사함'을 받기 위해서는 반드시 '회개의 침례'가 필요하다. 누가복음에서 회개의 의미는 '합당한 열매를 맺는 것', '주인에게 돌아가서 그를 따르는 것'이다. 이를 볼 때 침례 요한이 선포하는 것은 단순한 구원이 아니라 회개의 대가를 지불해야 하는 구원이다. 이것을 뒤집어서 얘기하면 회개라는 대가를 지불하지 않으면 해방과 구원은 없고 여전히 속박과 심판의 상태에 놓이게 된다. 

 

   또한, 누가복음 1장 17, 76, 3:4, 24:47절을 보면, 침례 요한 사역의 성격이 뒤에 오실 예수를 준비하는 사역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특히 침례 요한의 사역을 설명하는 3장 3절과 예수의 사역을 설명하는 24장 47절에서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라는 같은 표현이 나온다. 여기서 누가복음 24장 46절을 보면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에 대해 나오는데, 이것을 통해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는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과 연관이 있다는 것을 알 수있다. 이것은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의 침례'를 주는 침례 요한의 사역 또한, 예수의 사역과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과 연관이 있다는 것을 알려준다.

 

   누가복음 3장 16절은 샌드위치 구조로 되어 있다. '침례 요한의 물 침례'와 '예수의 성령과 불 침례'가 평행하는데, 그 사이에 있는 '나보다 능력이 많으신 이가 오시나니'라는 표현은 침례 요한과 예수의 사역을 더욱 극적으로 대조시켜 준다. 하지만 침례 요한의 사역은 예수의 사역을 준비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 대조는 침례 요한의 침례가 예수의 침례를 준비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대조일 뿐 반대의 의미를 나타내지 않으며, 오히려 의미상으로 침례 요한에서 예수 쪽으로 더욱 발전되며 심화한다고 볼 수 있다. 또한, 침례 요한은 자신의 침례와 예수의 침례를 대칭시키는데, 이 대칭을 통해서 예수가 '성령과 불로 베푸는 침례도 요한이 '불'로 베푼 침례처럼 하나의 침례라고 추론할 수 있다.

 

   근접 문맥인 누가복음 3장 7~18절은 샌드위치 구조를 가진다. 3장 7~9절은 침례 요한의 심판 경고와 그것을 피하기 위해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으라는 내용이 나온다. 3장 15~18절은 침례 요한과 예수의 침례, 알곡과 쭉정이, 좋은 소식에 관한 내용이 나온다. 이렇게 3장 7~9절과 3장 15~18절이 평행을 이루는데, 둘 다 '심판과 구원'에 대한 내용이 모두 나온다. 이 두 평행의 중간에 있는 3장 10~14절은 회개에 합당한 열매에 관한 내용이 나온다. 이러한 행동 양식과 상태에 있는 자들은 '구원'을 받게 되지만, 그러지 못한 자들은 '심판'을 받게 된다.

 

   정리해보면 요한의 침례는 예수의 침례를 준비하는 '예비적인 침례'이다. 그리고 침례 요한의 선포에는 ‘구원과 심판'이 함께 포함되어 있다. 그러므로 예수의 성령과 불 침례 또한 구원과 심판의 의미가 모두 포함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성령과 불에 대한 네 가지 해석' 중에서 심판을 완전히 배제하는 '오순절 날 일어날 일'이라고 주장하는 견해와, 반대로 구원을 완전히 배제하는 '오직 심판'이라고 주장하는 견해는 구조 분석과 문맥 인구를 통해 볼 때 설득력이 떨어진다고 볼 수 있다.

 

 

VI. 문법 연구 : ὐμάς와 έν이 하나뿐인 문제

 

   구조 분석과 문맥 연구를 통해 심판을 완전히 배제하는 '오순절 날 일어날 일'이라고 주장하는 견해와 반대로 구원을 완전히 배제하는 '오직 심판'이라고 주장하는 견해는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이제 남은 가능성 있는 견해는 심판과 구원의 내용이 모두 포함되어 있는 '성령은 구원, 불은 심판'이라고 주장하는 견해와 역시 동일하게 심판과 구원의 내용이 모두 포함되어 있는 '심판과 정화의 이중적 성격'이라고 주장하는 견해이다. 두 견해의 내용은 유사하나 형식에 있어서 전자는 예수가 베푸는 침례를 두 개로 보고 후자는 하나로 본다.

 

   '성령과 불'로 베푸는 침례가 심판과 구원의 의미를 모두 포함한다는 사실은 구조 분석과 문맥 인구를 통해 확인했기 때문에, 이제 문법 연구를 통해 과인 '성령과 불'이 하나의 침례인지 아니면 두 개의 침례인지에 대해 살펴보겠다.

 

   αύτός ύμας βαπτίσει έν πνεύματι έγίω και πυρί 이 문장에서 ’성령과 불‘의 의미를 파악하기 위해서 풀어야 할 두 가지 문법 사항이 있다. 첫 번째는 하나밖에 없는 목적어 ύμάς의 문제이고, 두 번째는 하나밖에 없는 전치사 έν의 문제이다.

 

1. ύμάς의 문제

 

   αύτός ύμάς βαπτίσει έν πνεύματι άγίω καί πυρί(그는 성령과 불로 너희에게 침례를 베푸실 것이요)라는 표현에서 목적어는 ύμάς 하나뿐이다. Fitzmyer, Bock, Pao와 Schnabel, 정창욱은 이 이유로 ’성령과 불‘이 서로 다른 부 개의 침례가 아니라 하나의 침례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여기에서 ύμάς가 어떤 대상을 가리키는지 확인해볼 필요가 있다. 누가의 관심은 누가복음 3장 6절 “모든 육체가 하나님의 구원하심을 보리라.”라는 말씀에서 앞 수 있듯이 이방인을 포함한 모든 사람에게 향해 있다. 그리고 누가복음 2장 30~32절에 주의 구원은 이방을 비추는 빛이며 만민에게 제시될 것이라고 나온다. 또한, 누가복음의 1차 독자인 데오빌로는 이방 그리스도인이며 이것은 누가가 염두에 두고 있는 독자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누가의 관심은 '침례 요한의 설교(눅 3:7-18)에서도 그대로 나타난다. 마태는 마태복음 3장 7절에서 나오듯이 침례 요한의 설교(마 3:7-12)의 청중을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로 한정한다. 반면에 누가는 누가복음 3장 7, 10절에서 이 설교의 청중을 '무리'(όχλος)라고 말한다. όχλος는 누가복음에서 단순히 침례 요한이나 예수의 사역의 현장에 있는 불특정 다수의 청중을 가리킨다. (눅 3:7, 10, 4:42, 5:1, 3, 15, 7:24, 8:4, 9:11. 18, 37, 11:14-29, 12:1, 54, 14:25, 22:6, 23:4, 48) 누가는 동일한 문맥인 누가복음 3장 15, 18절에서 청중을 '백성(λαός)이라는 단어로 표현한다. 또한, 누가는 3장 8절에서 아브라함을 육적 조상으로 모시는 유대인이라는 사실이 구원의 조건이 될 수 없다고 말한다. 결정적으로 ύμάς가 나오는 3장 15~16절에서 누가는 마가복음 1장 7절과 마태복음 3장 11절에 나와 있지 않은 πάσιν이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이러한 누가복음의 특징을 볼 때 ύμάς는 어떠한 공통성을 가지고 있는 부류의 사람들이 아니라, 침례 요한의 침례를 받으러 나온 불특정 다수의 청중들이라고 볼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έν πνεὐματι άγίω καί πυρί가 지칭하는 목적어가 ύμάς 하나뿐이기는 하지만, 그들이 성령과 불로 침례를 받을 때 모두 동일한 결과를 얻게 되지 않고 그들의 반응에 따라 다양한 결과로 나뉘게 될 것이다. 즉, 목적어가 ύμάς 하나라고 해서 두 개의 침례가 아닌 하나의 침례라고 말하는 것은 누가의 독자층과 누가복음의 문맥을 고려하지 않은 문법적 비약이라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여러 학자가 제기한 ύμάς가 하나인 문제는 '성령과 불'이 하나의 침례인지 두 개의 침례인지에 대해 어떠한 정보도 제공해주지 않는다고 봐야 한다.

 

2. έν의 문제

 

   '성령과 불로'라는 전치사구(έν πνεὐματι άγίω καί πυρί)에서 πνεὐματι άγίω καί πυρί는 έν이라는 하나의 전치사에 모두 종속된다. Nolland, Pao와 Schnabel, 그리고 정창욱은 이 이유로 '성령과 불'이 서로 다른 두 개의 침례가 아니라 하나의 침례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 주장이 논증되기 위해서는 누가복음에서 이와 동일한 전치사구 표현이 나올 때, 과연 καί로 연결된 두 개의 명사가 다른 두 가지를 지칭하는지, 아니면 한 가지를 지칭하는지 확인해 봐야 한다. 여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혹시 두 가지를 지칭한다 할지라도 두 단어가 성질상 분리될 수 있는지 분리될 수 없는지 누가복음의 용례를 통해 살펴볼 것이다.

 

1) 한 가지 지칭(가능성), 유사한 의미

 

   καί로 연결된 두 개의 명사가 έν에 종속되어 있는 전치사구 표현(έν + 명사 καί 명사)은 누가복음에서 모두 14번 나타난다.

 

   누가복음 1장 6절에서 ’주의 모든 계명과 규례대로‘라는 표현이 나온다. 계명과 규례로 번역된 이 두 단어 έντολή와 δικαίωμα는 신약에서는 이 본문에서 한 번 나오고, 70인 역에서는 무려 24번 함께 사용된다. 이를 볼 때 έντολή καίδικαίωμα는 구약적인 표현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70인 역 24번의 용례는 모두 이 두 단어를 병렬식으로 나열한다. 또한, 유사한 의미를 연속적으로 강조하여 표현한다. 이 점을 볼 때 A. Plummer의 주장처럼 계명과 규례를 동의어로 볼 수도 있다.

 

  누가복음 1장 17절에서 έν πνεὐματι καί δυνάμει(심령과 능력으로)라는 표현이 나온다. 누가는 이 두 단어를 종종 같이 사용한다. (눅 1:35, 4:14, 행 1:8, 10:38) 유대 문헌에서 두 단어는 한 번 같이 사용된다. (1QH 7:6), 누가-행전을 제외한 신약성경에서 두 단어를 연관하여 사용한 본문은 총 4번 나온다. 로마서 15장 13, 19절은 '성령의 능력', 고린도전서 2장 4절은 '성령의 나타남과 능력', 데살로니가전서 1장 5절은 '능력과 성령'이라고 표현한다. 누가-행전의 용례와 마찬가지로 나머지 신약의 용례에서도 이 두 단어는 '복음이 가지오는 어떠한 것'을 나타낸다. 즉, έν πνεὐματι καί δυνάμει(심령과 능력으로)라는 표현에서 πνεὐμα와 δὐναμις가 구분되기는 하지만, 두 단어를 상이한 성질의 것으로 구별할 수는 없다.

 

   누가복음 1장 79절에서 έν σκότει καί σκιά θανάτου(어둠과 죽음의 그늘에)라는 표현이 나온다. σκότος와 θανάτος는 70인 역에서 12번 함께 사용된다. 용례를 살펴볼 때 두 단어가 함께 나오는 표현은 모두 '극심한 고난과 환난 상태'를 묘사한다 시편 107장 10절 έν σκότει καί σκιά θανάτου에 대한 김정우의 해석처럼 전자(σκότει)는 감옥의 상태를 후자(σκιά θανάτου)는 감옥의 고통을 표현한다고 나누어서 설명할 수도 있지만, 의미상 두 단어가 크게 구분되지 않고, 나머지 다른 용례에서도 두 단어의 의미는 크게 구분되지 않는다. 즉, σκότος와 θανάτος를 중언법으로 볼 수도 있다.

 

   누가복음 21장 25절에서 έν άπορία ήχους θαλάσσης καί σάλου(바다와 파도의 성난 소리로)라는 표현이 나온다. 여기에서 바다와 파도는 같은 대상이다. 즉, 의미상으로 '바다와 파도의 성난 소리'라는 표현보다는 이중소유격을 사용하더라도 '바다의 파도의 성난 소리'라는 표현이 더 적절하다고 볼 수 있다.

 

2) 두 가지 지칭, 유사한 의미

 

   누가복음 2장 44절에서 έν τοίς συγγενεὐσιν καί γνωστοίς(친족과 아는 자 중에)라는 표현이 나온다. 친족과 아는 자는 분명 다른 두 대상을 지칭한다. 하지만 두 단어가 지칭하는 것이 서로 반대되거나 다른 것을 가리키지 않으며 같은 무리 안에 포함된다.

 

   누가복음 2:52에서 [έν τή] σοΦία καί ήλικία(지혜와 키)라는 표현이 나온다. 지혜와 키는 서로 다른 대상이다. 하지만 지혜와 키, 둘 다 예수의 성장을 긍정적으로 표현한다는 의미에서 하나의 유사한 의미군으로 볼 수 있다.

 

   누가복음 4장 36절에서 έν έζουσία καί δυνάμει(권위와 능력으로)라는 표현이 나온다. 70인 역에서는 έζουσία와 δυνάμις가 마카비1서 3장 24절에서 한번 같이 사용된다. 신약성경에서는 누가복음 4장 36절을 제외하고 모두 7번 같이 사용된다. 전자는 존재론적인 의미, 후자는 기능적인 의미로 구분할 수 있으나, 두 단어(έζουσία와 δυνάμις)는 하나의 유사한 의미를 가리킨다고 볼 수 있다.

 

   누가복음 7장 17절의 ’온 유대와 사방에‘, 10장 13절의 ’두로와 시돈에서‘, ’베옷과 재에‘, 21장 25절의 ’해와 달과 별들에서‘, 21장 34절의 ’방탕함과 술 취함과 생활의 염려‘, 24장 19절의 ’말과 일‘, 24장 44절의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에‘라는 표현들은 모두 다 두 개의 대상을 지칭하고 있지만, 서로 묶여 있으며 보완해 주기 때문에 분리할 수 없다.

 

3. 정리

 

   누가복음 3장 16절에 나오는 '성령과 불'의 의미를 파악하기 위해 풀어야 할 두 가지 문법 사항에 대해서 살펴봤다. 첫 번째는 하나밖에 없는 목적어 ὐμάς의 문제였고, 두 번째는 하나밖에 없는 전치사 έν의 문제였다.

 

   위에서 살펴봤듯 이 목적어 ὐμάς가 하나인 문제는 '성령과 불'이 하나의 침례인지 두 개의 침례인지에 대해 어떠한 정보도 제공해주지 않는다.

 

   전치사 έν이 하나인 문제는 '성령과 불'이 하나의 침례인지 두 개의 침례인지, 혹 두 개의 침례를 지칭한다면 두 침례가 성질상 분리될 수 있는지 분리될 수 없는지에 대해 많은 정보를 제공해준다. καί로 연결된 두 개의 명사가 έν에 종속되어 있는 전치사구 표현(έν + 명사 καί 명사)은 누가복음에서 3장 16절을 제외하고 모두 13번 나오는데, 그중에서 4번은 두 명사가 한 가지 지칭의 가능성을 지님과 동시에 유사한 의미를 가지는 경우이고, 9번은 두 명사가 두 대상을 지칭하지만, 동시에 유사한 의미가 있는 경우이다. 두 경우 모두 다 하나의 대상을 지칭하고 있든 두 개의 대상을 지칭하고 있든 서로 묶여 있으며 보완해 주기 때문에 분리할 수는 없다.

 

   '성령과 불에 대한 네 가지 해석' 중에서 '성령은 구원, 불은 심판'이라고 주장하는 견해만이 '성령'과 '불'을 완전히 분리하며 반대되는 내용으로 본다. 이 견해는 문법 연구, 즉 누가복음에서 ‘έν + 명사 καί + 명사'의 용례를 통해 볼 때 누가가 의도한 해석으로 보기 어렵다.

 

   또한, 'V. 구조 분석과 문맥 연구'에서 살펴봤듯이, 침례 요한은 자신의 침례와 예수의 침례를 대칭시키는데, 이 대칭을 통해서 예수가 '성령과 불'로 베푸는 침례도 침례 요한이 '물'로 베푼 침례처럼 하나의 침례라고 추론할 수 있다. 이 사실은 본 단원에서 연구한 결과를 지지해준다.

 

   앞선 연구에서 살펴봤듯이, '성령과 불에 대한 네 가지 해석' 중에서 심판을 완전히 배제하는 '오순절 날 일어날 일'이라고 주장하는 견해와 반대로 구원을 완전히 배제하는 '오직 심판'이라고 주장하는 견해는 구조 분석과 문맥 연구를 통해 볼 때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사실을 확인하였다. 그리고 이번 단원에서 누가복음에 나오는 ‘έν + 명사 καί + 명사’의 용례를 통해 볼 때 '성령은 구원, 불은 심판'으로 보는 견해는 '성령'과 '불'을 완전히 분리하기 때문에 역시 누 가가 의도한 해석으로 보기 힘들다.

 

 

Ⅶ. 요약 및 결론

 

1. 요약

 

이 논문의 목적은 누가복음 3장 16절에 나오는 '성령과 불'이 어떤 의미인지 파악하는 것이다. 

 

목적에 따라 가장 먼저 성령과 불에 대한 다양한 해석에는 무엇이 있는지 살펴보았다

 

첫 번째 해석은 '오순절에 일어날 일'이라고 보는 견해다. 

이 견해는 불 침례를 단지 사도행전 2장에만 국한해 해석할 뿐, 누가-행전에 πὐρ가 나오는 다른 본문과 연관성이 떨어지는 문제점을 가지고 있으며, 심판의 의미를 완전히 배제하고 있기 때문에 올바른 해석이라고 볼 수 없다. 

 

두 번째 해석은 '오직 심판'이라고 보는 견해다. 

불을 심판의 이미지로 나타내는 누가복음 3장 9절과 3장 17절이 이 견해를 지지하지만, 이 해석은 구원의 여지를 전혀 두지 않고 예수의 침례를 오직 심판으로만 국한하는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 

 

세 번째 해석은 '성령은 구원, 불은 심판'이라고 보는 견해다. 

이 견해는 성령 침례와 불 침례를 구분하여 성령 침례는 구원에 대한 것이고 불 침례는 심판에 대한 것이라는 주장인데, 하지만 이 해석은 누가복음에서 έν이 하나일 때 두 단어를 분리할 수 없는 용례에 맞지 않고, 같은 키질을 통해서 알곡과 쭉정이가 구분되기 때문에(눅 3:17), 성령 침례와 불 침례를 임의로 나누는 것은 문맥상 맞지 않는다. 

 

마지막 해석은 '심판과 정화의 이중적 성격'으로 보는 견해다. 

이 견해는 '성령과 불'이 하나의 침례를 가리키며, 심판과 정화의 이중적 성격을 가진다는 해석이었다. 이 견해의 가장 큰 난관은 불을 심판으로 비유하고 있는 근접 문맥인 누가복음 3장 9절과 3장 17절을 어떻게 해결할 것이냐 하는 문제인데, 이것은 구조 분식과 문맥 연구를 통해 결론을 내릴 수 있다.

 

다음으로 불에 대한 서론적 의미에 대해 살펴보았다

구약에서 πὐρ는 심판의 의미로 많이 쓰이나 '하나님의 현현', '정화'의 의미로도 사용된다. 유대 문헌에서도 역시 πὐρ는 심판의 의미로 많이 사용되었다. 하지만 진짜와 가짜를, 한 걸음 더 나아가 구원과 심판을 구분하는 표현으로도 사용된다. 신약에서도 πὐρ는 구약과 마찬가지로 심판의 의미로 가장 많이 쓰이나, 하나님의 현현, 심판과 구원을 구분하는 표현으로도 사용된다. 또한, πνεὐμα와 πὐρ가 함께 쓰인 용례는 구약에서 총 8번 나오는데, '심판'의 의미로 3번, '하나님의 현현'의 의미로 3번 사용된다. 하지만 '정화'의 의미로는 단 한 번도 사용되지 않았다. 신약에서 πνεὐμα와 πὐρ가 함께 쓰이는 용례는 두 번 나오는데, 두 번 다 '하나님 의 현현'을 나타낸다. 구약, 유대 문헌, 신약에 걸쳐 πὐρ의 용례를 정리해보면 '심판'이 가장 많이 사용되고 '하나님의 현현', '정화, '구분'의 의미로도 사용되는 것을 알 수 있다.

 

다음으로는 누가-행전에서 불이 어떤 의미로 사용되었는지 살펴보았다

누가복음에서 πὐρ의 용례는 총 7번 나오는데, 그중에서 '심판'의 의미는 3번, '구분'의 의미로는 한 번 사용된다. 사도행전에서 πὐρ의 용례는 총 4번 나오는데, 그중에서 '심판'의 의미는 두 번, '하나님의 현현'의 의미로도 두 번 사용된다.

 

다음으로는 구조 분식과 문맥 연구를 하였다. 

침례 요한의 사역의 핵심은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의 침례'이다. 여기서 회개의 침례의 내용인 '죄 사함'은 누가복음 용례를 살펴볼 때 '해방' 혹은 '구원'을 의미한다. 하지만 ‘죄 사함'을 받기 위해서는 반드시 '회개의 침례'가 필요하다. 누가복음의 용례에서 회개는 ‘합당한 열매를 맺는 것’, '주인에게 돌아가서 그를 따르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누가복음 1장 17, 76, 3장 4, 24장 47절을 보면 침례 요한 사역의 성격이 뒤에 오실 예수를 준비하는 사역임을 알 수 있다.

 

누가복음 3장 16절은 샌드위치 구조로 되어 있다. 침례 요한의 물로 베푸는 침례와 예수의 성령과 불로 베푸는 침례가 평행하는데, 침례 요한의 사역은 예수의 사역을 준비하는 것이기 때문에, 이 대조는 침례 요한의 침례가 예수의 침례를 준비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대조일 뿐 반대의 의미를 나타내지 않으며, 오히려 의미상으로 침례 요한에서 예수 쪽으로 더욱 발전되며 심화된다고 볼 수 있다.

 

누가복음 3장 16절을 포함한 근접 문맥인 누가복음 3장 7~18절은 샌드위치 구조로 되어 있다. 3장 7~9절과 3장 15~18절이 평행을 이루는데, 둘 다 '심판과 구원'의 내용이 모두 들어있다. 두 평행의 중간에 있는 3장 10~14절은 회개에 합당한 열매에 대한 내용이 나온다. 이러한 행동 양식과 상태에 있는 자들은 ‘구원'을 받게 되지만, 그러지 못한 자들은 '심판'을 받게 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성령과 불에 대한 네 가지 해석' 중에서 심판을 완전히 배제하는 '오순절 날 일어날 일'이라고 주장하는 견해와 반대로 구원을 완전히 배제하는 '오직 심판'이라고 주장하는 견해는 구조 분석과 문맥 연구를 통해 볼 때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마지막으로 누가복음 3장 16절에서 ὐμάς와 έν이 하나뿐인 문제에 대해 살펴봤다.

ὐμάς가 하나뿐인 문제는 '성령과 불'이 하나의 침례인지 두 개의 침례인지에 대해 어떠한 정보도 제공해주지 않는다. καί로 연결된 두 개의 명사가 έν에 종속되어 있는 전치사구 표현(έν + 명사 καί 명사)은 누가복음에서 3장 16절을 제외하고 모두 13번 사용되는데, 그중에서 4번은 두 명사가 한 가지 지칭의 가능성을 지님과 동시에 유사한 의미를 가지는 경우이고, 9번은 두 명사가 두 가지를 지칭하며 동시에 유사한 의미를 가지는 경우이다. 두 경우 모두 다 하나의 대상을 지칭하고 있든 두 개의 대상을 지칭하고 있든 서로 묶여 있으며 보완해 주기 때문에 분리할 수 없음을 알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성령'과 '불'을 완전히 분리하여 '성령은 구원, 은 심판'이라고 보는 견해는 문법적 연구, 즉 누가복음에서 ’έν + 명사 καί 명사‘의 용 례를 살펴 볼 때 누가가 의도한 해석으로 보기 어렵다.

 

2. 결론

 

   πὐρ는 구약, 유대 문헌, 신약에 걸쳐서 '심판'이라는 의미로 가장 많이 사용된다. 이것은 누가-행전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누가복음 3장 9절과 3장 17절의 문맥을 고려할 때 3장 16절의 πὐρ는 분명 '심판'의 이미지를 담고 있다.

 

   하지만 누가복음 3장 7~9절에 ‘심판과 구원'의 내용이 모두 나오고, 3장 17~18절에도 '심판과 구원'의 내용이 모두 나오기 때문에, 3장 16절의 '성령과 불'로 침례를 준다는 것도 심판과 함께 구원의 의미가 모두 포함되어 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그렇다면 이제 성령과 불을 두 개의 침례로 봐야 하는지 하나의 침례로 봐야 하는지의 문제가 남게 되는데, 이것은 έν이 하나인 문제를 통해 해결할 수 있다. 누가복음에서 καί로 연결된 두 개의 명사가 έν에 종속되어 있는 전치사구 표현(έν + 명사 καί + 명사)의 용례를 살펴볼 때, 13번 모두 다 두 명사(구)가 하나의 대상을 지칭하고 있든 두 개의 대상을 지칭하고 있든 서로 묶여 있으며 보완해 주고 있기 때문에 두 명사(구)를 분리할 없다. 그러므로 '성령은 구원, 불은 심판'이라고 주장하는 견해는 '성령과 불'을 완전히 분리하기 때문에 누가가 의도한 해석으로 보기 어렵다.

 

   침례 요한의 관점에서 '성령과 불'로 침례를 준다고 할 때, 그 침례를 심판을 배제한 침례나 구원을 배제한 침례, 또는 성령과 불을 완전히 구별하는 침례로 보기는 어렵다. 결과적으로 '성령과 불'로 베푸는 침례는 하나의 침례로서 두 국면을 가리킨다고 볼 수 있다. 누가복음 3장 16절에 나오는 '성령과 불'로 주는 침례는 하나의 침례이며, 불특정 다수에게 전한 선포이기 때문에, 그들 중에 회개하고 합당한 열매를 맺는 자들에게는 구원이 임할 것이고, 불순종하고 거부하는 자들에게는 심판이 일한다는 것이다.

 

   현대의 많은 신학자와 목회자 중에 심판의 메시지가 빠진 반쪽 복음만을 전하는 자들이 있다. 침례 요한은 구원과 함께 심판의 메시지도 전했다. 침례 요한은 예수가 베풀 침례를 설명하며 그것을 받아들이는 자와 받아들이지 않는 자에게 각각 구원과 심판이 임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실제로, 예수가 베푼 침례의 결과로서 구원은 오순절 성령 강림 때 성취되었으며, 심판은 재림 때 성취될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출처ⓒ† : http://cafe.daum.net/cgsb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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