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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품사람

작성자갈대처럼|작성시간26.06.16|조회수3 목록 댓글 0

 

 

 

 

 

 

명품사람 

 

 

 

 

 

 

 

 

 

 

그녀와 인연이 된 것은 동네 모임에서였다. 삼십여 명이 모이는 봉사단체에서 나와 그녀는 나이가 어금버금하고 마음이 잘 통해서 자주 만나는 사이가 되었다. 그녀는 우윳빛 얼굴에 커다란 눈망울을 가졌다. 까맣고 긴 속눈썹을 껌뻑거릴 때는 순박해 보이기 그지없다. 옷마저 흰색 계열을 즐겨 입으니 마치 백합을 보는 듯하다.

 

거기에 성실하고 따사로운 마음까지 장착했다. 모임에서 일을 하다 보면 버거운 일은 대부분 꽁무니를 빼는데, 그녀는 팔을 걷어붙이고 나선다. 짐을 들고서도 빈손인 나보다 행동이 더 민첩하다. 백합 같은 모습에 어찌 저런 행동이 나올까싶어 눈을 동그랗게 뜨고 볼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간혹, 잘 통하는 사람 몇이서 만나는 날에는 밥값 계산에 선수를 치는 예쁜 짓도 서슴지 않는 그녀다.

 

하루는 그녀 집에 들렀었다. 상차림을 보고 깜짝 놀랐다. 나는 기껏해야 빵조각에 차 한 잔 대접했는데 반찬이 스무 가지는 됨직했다. 요것조것 권해주는 그녀의 손길에 배를 두드려가며 그릇을 비웠다. 설거지를 돕느라 냉장고 문을 열어보니 음식 재료가 가득했다. 객지에 있는 자녀들과 연로한 모친께 찬을 나르기도 해서 항상 준비해두는 거라고 했다. 평소에 오일장까지 가서 장을 본다던 의문도 풀렸다. 음식 만들기를 즐길 뿐 아니라 정원도 잘 가꾸어서 그녀 집에 가면 사철 꽃을 볼 수 있다. 한 평 남짓한 우리 집 꽃밭도 눈여겨보고 손길을 보태준다.

 

최근, 그녀가 지나가는 길에 우리 집에 들렀다.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던 중, 의자에 걸려있는 내 가방을 보았다. 그 가방이 마음에 들었는지 며칠 뒤에 동창회를 가는데 좀 빌려줄 수 있는지 물었다. 내 손에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은 것이었지만 흔쾌하게 쓰라고 했다. 그녀가 가방을 빌려가고 일주일이 지나도 깜깜소식이었다. 인품으로 보아 쓰고 나면 바로 가져올 사람이다. 그런데 무슨 사연인지 날을 자꾸 보내고 있었다.

 

일주일 후, 마침내 그녀가 우리 집 문을 두드렸다. 흙빛의 얼굴에 몸 둘 바를 몰라 하는 모습이 평소 같지 않았다. 분명히 가방을 돌려주러 온 것 같은데 머뭇거리기만 했다. 왜 그러냐고 물었더니 자초지종을 풀어놓았다. 동창회 날, 깔맞춤해서 기분 좋게 길을 나섰다. 일 년에 한 번 모이는 행사인지라 많은 친구가 와서 손인사, 눈인사하기 바빴다. 먹음직스러운 음식도 상에 가득 차려있었다.

 

동창들이 어느 정도 모여들자 회비를 거둔다고 했다. 들뜬 마음으로 봉투에 기부금을 넣고 이름을 써서 냈다. 이때까지만 해도 마음이 붕붕 떴다. 볼펜을 가방에 넣는 찰나, 그만 가방 속을 긋고 말았다. 그때부터 ‘맨붕’이 되어 반가운 친구도, 먹음직스런 음식도 뒷전이었다. 그 즐거운 자리를 박차고 잰걸음으로 귀가했다.

 

여기저기 가방 세탁법을 수소문해보았다. 마침내 인터넷 사이트에서 찾아낸 뒤, 가방을 세탁해서 줘도 되는지 물어보러 온 것이었다. 그녀의 태도로 보아 흠이 크게 난 모양이었다. 나도 당황스러워 당기다시피 가방을 받아서 살펴보았다. 그런데 손가락 길이만큼 볼펜 줄이 그어져 있었다.

 

나는 안도하며 그냥 줘도 된다고 했다. 사용하는 물건이 영원히 새것일 수 있겠냐고, 시간문제이지 내가 쓰다가도 흠은 언제라도 낼 수 있으니 괜찮다는 마음을 전했다. 미안해하는 그녀에게 내가 한 거나 마찬가지라며 어깨를 감싸주었다.

 

그녀는 뒷머리를 긁으며 세탁비로 쓰라고 내게 봉투를 건넸다. 나는 손사래를 치며 그녀의 가슴팍에 봉투를 도로 넣어주고 그녀의 등을 떠밀었다. 하지만 그녀는 한사코 봉투를 다시 내 주머니에 깊이 찔러주고 갔다. 다가오는 그녀의 딸 혼사에 축의금에 딸려 보낼 요량으로 더 이상 실랑이를 벌이지 않았다.

 

그런 일이 있고 가방 일을 새까맣게 잊고 지냈다. 거의 반년이 지났을 즈음 그녀가 카페로 나를 불렀다. 굳이 카페에서는 잘 만나지 않는데 웬일인가 싶었다. 그녀는 의자 뒤에서 무언가를 주섬주섬 꺼냈다. 눈에 익은 물건이었다. 그녀에게 빌려주었던 가방이 내게 처음 왔을 때 포장 주머니와 같았다. 주머니에서 꺼낸 가방도 내 것과 똑같은 것이었다. 그 가방을 내 앞으로 밀었다.

어떻게 된 거냐고 묻자, 그 일 이후 가시방석에 앉은듯해서 그냥 있을 수가 없더라는 것이었다. 마침 올해가 회갑이어서 자녀들이 어떤 선물을 받고 싶은지 묻길래 그 가방을 원한다고 했단다. 아이들이 여러 곳에 알아보고 해외 매장에서 주문했다는 것이다.

 

사실, 나는 명품에 대한 로망이 별로 없다. 없는 것이 아니라 내 형편에 맞게 그저 경제적, 합리적인 면으로 물건을 구입하는 처지라 명품과 나는 가깝지가 않다. 외국에서 사업을 하면서 살고 있는 시누이가 우리 집에 올 때 사다 줘서 지니게 된 것이다. 새 가방이라고 들고 다니면 사람들이 명품이라고 말해줘서 그런 줄로만 알고 있다.

 

나는 도저히 받을 수 없다 했고 그녀는 내가 받지 않으면 계속 빚진 기분이 들 거라고 맞섰다. 그녀와 밀고 당기는 사이 테이블 위에서 가방이 그녀와 나 사이를 오고 갔다. 실랑이를 매듭지어야 했다. 가방을 테이블 중간에 멈춰놓고 진심을 전했다. 내 가방에는 시누이의 정이, 그녀의 가방은 자녀들의 정성이 담겨 있으므로 가방을 바꿀 필요 없이 각자 자기 것을 쓰는 것이 좋겠다고. 같은 가방일지라도 서로에게 소중한 사연이 담겨있는데, 바꿔서 쓰게 되면 그 기분은 또 얼마나 불편하겠냐고 하자 그녀의 마음이 수그러들었다.

 

물건에만 명품이 있는 것이 아니다. 사람도 명품이 있다. 사람의 명품은 한낱 물건보다 훨씬 귀하다. 한 사람의 ‘명품사람’을 마주한 감동으로 가슴이 벅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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