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중생활 (신인상 당선작) - 박순길

작성자김연희|작성시간26.06.22|조회수14 목록 댓글 0

 

 

이중생활 (신인상 당선작)


- 박순길




  모자를 쓰고 간이침대에 누워 자는 사람이 나인 줄 알고 깨웁니다
  어깨를 흔들고 툭툭 뺨을 칩니다


  푸시시, 내 얼굴을 한 사람이 벌떡 일어나 모자를 벗고 급하게 세
수를 하고 작업복을 갈아입고 밖으로 나갑니다


  바깥이 창문에 가득 들어차 있습니다


  도어락은 경쾌한 울음을 가졌습니다
  작업복을 태운 트럭이 막 출발한 후 멀뚱하게 서 있습니다 진눈깨
비는 치열하게 흩날리고


  옆에서 인사를 합니다
  우리는 서로에게 영구적인 옆인 것이고


  방금 내가 트럭을 타고 떠났는데 옆이 우두커니 서 있는 나를 알아
봤나 폭설처럼 처진 기분이고
  눈치 없는 옆을 의심하고


  능숙하게 도어락 번호를 누릅니다
  모두 잠김에서 겨우 열림으로
  후드티를 벗고 간이침대에 놓인 모자를 깔고 앉아 팔다리를 훑어봅
니다 이들에게 부끄럼이 생겨나고


  이상하게 자란 꿈이 나와서 스르르 눈을 감겨주고


  작업복을 벗어 놓은 뒤에는
  곤히 잠들어 있는 사람이 나란 걸 잊고 깨웁니다
  가련해서 깨우는 나인 것이고


  흔들리는 시계가 밤인 줄도 모르고


  내가 벗어 놓은 작업복을 조금 전 일어난 내가 다시 입고 나갑니다
  세탁할 때가 됐는데


  그러고 보니 우린
  이런 생활이 불편하지 않습니다






사과의 모서리 (신인상 당선작)


- 서서하




사과의 뿌리는 피처럼 붉다 했어요
내 뿌리도 그 색이었지요


엄마가 건넨 빨갛고 윤이 나던 사과
한입 베어 물면 피가 배어 나오는 모서리였어요
처음 맡아본 비릿한 냄새
숨이 멎을 듯 손끝이 파래져요


엄마의 귀엔 바퀴가 없어 소리가 굴러가지 못해요
말소리가 썩어가는 응달에는 이끼만 자라고
엄마의 콧구멍은 내 소리를 다 받아먹고도
늘 배고픈 새의 붉은 입


새장 안 새를 봐
짖지도 않고 얼마나 고요하니
빈 새장 안에서
새는 아무것도 되지 못한 채 익어갔어요


잠든 숲을 뒤져 가장 차가운 빛을 주웠어요
날 선 감각 위로 내 눈동자가 반으로 쪼개 비칠 때
손바닥을 파고드는 은빛 무게


길 끝에서 불타던 새는
타다 남은 날개로 다시 걸어 나왔어요


얼어붙은 손으론 아무것도 쥘 수 없어요
엄마, 숨겨둔 칼은 어디 있나요


칼은 난로 옆에 있단다
이미 서늘한 금속의 냄새가 끓고 있지
발끝이 터질 때까지 붉어지면 그게 사과란다


그것을 만나면 날 선 것을 휘두르고 싶었지만
불길 속으로 더 깊이, 아주 조용히 걸어 들어갔어요
여전히 칼은 쥘 수 없어요


더는 손이 시리지 않아요
이제는 길을 되짚을 필요가 없어요


심장까지 스며들어
사과보다 더 빨갛게 익은
나의 유일한 뿌리


빨강부터,


엄마는
새장 속 잘 익은 나를
조용히 베어 물고
입가에 묻은 비명을 닦아내듯 고개를 돌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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