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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야설속담 ♣

[조주청의 사랑방 이야기] (493·끝) 소만(小滿)

작성자옆지기|작성시간26.06.17|조회수37 목록 댓글 3
[조주청의 사랑방 이야기] (493·끝) 소만(小滿)


   저녁나절, 정 참판이 뒷짐을 지고 서당에 찾아와 훈장의 소매를 당겨 요릿집으로 향했다.
너비아니를 굽고 청주를 시켰다. 참판으로 스무여해를 궁궐에서 보내고 사직 낙향하여
이제 천석꾼 유림으로 여유롭게 살아가는데 요즘 뜻대로 안 풀리는 일이 하나 생겼다.
늦게 본 막내딸이 혼기가 찼는데 아직 신랑감을 확실하게 잡지 못했다. 정 참판이 훈장을
찾는 것은 서당에 꼭 점찍은 신랑감이 있기 때문이다.
조 생원의 장손, 열여섯살 진수는 초시에 합격 후 과거를 보려고 공부하고 있는데 훈장님은
“장담하건대 삼년 안에 급제하는 것은 따 놓은 당상이요”라고 말하곤 했다.
이렇게 사윗감을 점찍고 혼약을 맺자 하는데 신랑감 쪽에서 선뜻 응하지 않는 것이다.


고을 최고 부자인 황 대인도 진수를 간절하게 탐냈다.
그는 주위 여덟 고을의 물산이 모이는 고을 최대의 객주(客主)를 운영했다.
물주들은 서른여개의 객방에 머무르며 돈을 뿌려댔다. 황 대인의 막내딸도 혼기가 찼다.
재력을 잡고 나니 권력이 아쉬운 것이다.


서로 당겨 사지가 찢어질 지경인 조진수는 팔척장신에 이목구비가 뚜렷한 데다 글도
출중하지만 거만하지 않고 언제나 자신을 낮추고 말이 없고 진중했다. 가끔 진수의 아버지도
서당에 와서 장기 친구인 훈장과 대폿잔을 나눈다.
술에 얼큰하게 취하자 훈장이 칼자루를 쥐고 있는 진수 아버지의 의중을 떠봤다.


“황 대인은 혼사가 이뤄지면 문전옥답 서른마지기를 드리겠답니다.”
진수 아버지는 먼 산을 바라본다. 훈장이 말을 이어갔다.
“참판의 사위가 되어 급제하게 되면 출셋길은 훤하게 열리지!”
진수 아버지는 꼿꼿하게 앉아
“세월 참 빠르네. 벌써 여름이 코앞에 닥쳤네 그려”라며 엉뚱하게 말을 돌려 속내를 드러내지 않았다.


정 참판도 황 대인도 풀 방구리에 쥐 드나들듯 서당에 와서 훈장을 만나 조 생원의 의중을
알아보려 하지만 깜깜이다.
훈장에게 맡겨놓으니 일이 되는지 안되는지 속일 터져 못살겠다는 듯 정 참판이 직접 나섰다.


다짜고짜 조 생원을 찾아갔다.
열두칸 아담한 초가집 마당을 쓸던 조 생원이
“아니, 참판께서 어인 일로 소인의 우거(寓居)에 찾아오셨습니까?” 물었다.
정 참판은
“허허, 드릴 말씀이 있소이다”라고 답했다.
사랑방에서 조 생원과 정 참판이 마주 앉았다.
“단도직입, 말씀드리겠습니다. 훌륭한 아드님이 과거에 급제하면 누가 손을 잡아 임금님 옆에 앉혀 줍니까?
출세하려면 인맥이 중요해요.”


조 생원은 한숨을 길게 내뿜으며
“참판 어른, 아직 과거를 보지도 않았는데…”라며 말을 돌렸다.
어색한 분위기로 침묵이 흐르다가 정 참판이
“어험어험, 잘 생각해보시오.” 한마디를 던지고 나갔다.


이튿날엔 황 대인이 뒤룩뒤룩 육중한 몸을 뒤뚱거리며 조 생원을 찾아와 품속에서 땅문서 한묶음을
조 생원의 조끼 주머니에 찔러 옥신각신 싸우듯이 받아라 못 받겠다 실랑이를 벌였다.
며칠 뒤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조진수가 서당을 자퇴한 것이다.
가을에 있을 알성시를 보려면 서당에 살아야 할 판에 스스로 서당에 발을 끊다니?


오늘은 소만(小滿·5월20일)이다.
조 생원과 열여섯살 아들 진수가 모심기를 하고 조 생원 마누라는 함지박에 점심을 이고
한손에는 막걸리 호리병을 들고 왔다. 모심던 두 부자는 활짝 웃으며 첨벙첨벙 논에서 나와
봇도랑에 손발을 씻고 논둑에 앉았다.


“너도 한잔해라. 이건 술이 아니고 힘쓰는 약이여.”
진수는 아버지가 따라 주는 막걸리 한잔을 단숨에 마신 뒤 어머니가 손가락으로 집어 주는
북어포 한점을 받아먹고 입을 닦았다. 그때 두루마기 자락을 펄럭이며 훈장이 와서
“이게 뭣 하는 짓이여?” 일갈했다.
조 생원은 막걸리 한사발을 따라주며
“글공부는 초시로 충분하고 조상 대대로 내려온 가업(家業) 농사에 매달리기로 했네”라고 말했다.


빈 술잔을 내려놓은 훈장은 속이 터지겠다는 듯이 가슴을 치며
“이 아까운 인재를 이렇게 썩히다니!”라고 하자
조 생원이 “말 조심하게! 농자천하지대본(農者天下之大本)이여!” 역정을 냈다.
조 생원이 막걸리 한잔을 들이켜고 목청을 높여
“정 참판이 급제하여 한양으로 올라갈 땐 중농(中農) 집안이었네.
지금은 천석꾼이야.
나라에서 주는 녹으로 천석꾼이 되었겠나!” 소리쳤다.


훈장이 말문이 막혔다가
“그럼 황 대인네는?” 하고 묻자
조 생원이 버럭 화를 내며
“드넓은 객주 안에 유곽(遊廓)이 성업 중이라는 걸 아는 사람은 다 알고 있네!”라고 받아쳤다.


이듬해 봄에 진수는 산 너머 이웃 동네 중농(中農) 집안의 얌전한 아가씨와 혼례를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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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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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해바라3 | 작성시간 26.06.17 감사드려요~~~
  • 작성자방 긋 | 작성시간 26.06.18 감사합니다
  • 작성자감바우 | 작성시간 26.06.18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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