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혼> 김소월
산산이 부서진 이름이여!
허공중에 헤어진 이름이여!
불러도 주인 없는 이름이여!
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이여!
심중에 남아있는 말 한마디는
끝끝내 마저 하지 못하였구나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붉은 해는 서산 마루에 걸리었다
사슴의 무리도 슬피 운다
떨어져 나가 앉은 산 위에서
나는 그대의 이름을 부르노라
설움에 겹도록 부르노라
설움에 겹도록 부르노라
부르는 소리는 비껴가지만
하늘과 땅 사이가 너무 넓구나
선 채로 이 자리에 돌이 되어도
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이여!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
김소월(1902~34)은 평안북도 정주 출신으로 본명은 김정식. 호는 소월(素月, ‘하얀 달’).
1922년 1월 잡지 《개벽》에 <금잔디> 등의 시를 발표하면서 문단에 처음 이름을 알렸다.
김소월은 당시 조혼 풍습에 따라 14세의 어린 나이에 할아버지의 뜻에 따라 결혼을 했으나, 오산학교에서 만난 세 살 연상의 '오순'이를 잊지 못한다.
‘오순’은 다른 곳으로 시집을 갔다가 남편의 폭력을 견디지 못하고 22세의 나이로 죽게 된다. ‘오순’을 그리워하며 지은 시가 <진달래꽃> <초혼> 등이 있다.
소월의 시는 ‘7·5조 3음보’라는 민요적 율조로 유명하다.
우리 민족에게 가장 익숙한 3음보(세 번 끊어 읽기)의 리듬과 7자-5자의 구성으로 민요처럼 부르기 쉽다.
소월의 시 내용은 '한(恨)'의 정서와 애이불비(哀而不悲)가 담겨 있다. 이별, 상실, 그리움이라는 슬픈 주제를 절제하고 삭이는 '슬프지만 겉으로 슬퍼하지 않음'의 미학을 보여준다.
그리고 짙은 향토성을 노래한다. 당시 서양 문물이 불어닥칠 때 영변 약산, 왕십리 등 친숙한 지명과 진달래꽃, 접동새, 버들잎 등 한국적인 자연물을 시어로 선택하여 ‘우리다운’ 시를 지켜나갔다
「초혼」은 1925년 매문사(賣文社)에서 발간한 김소월의 시집 『진달래꽃』에 처음 실린 작품이다. 김소월은 1925년 1월 『영대』 5호에 시 「옛님을 따라가다가 꿈 깨어 탄식함이라」를 발표했는데, 이 작품은 시의 제재와 일부 표현에서 「초혼」과 유사하다. 그래서 「초혼」을 「옛님을 따라가다가 꿈 깨어 탄식함이라」의 개작으로 보기도 한다.
「초혼」은 5연 20행의 자유시이며, 3음보의 전통적 민요조 형식이다.
「초혼」은 반복법과 영탄법을 사용하여 이별의 정서를 고조시킨다. 1연은 사랑하는 대상을 향하여
“산산이 부서진 이름이여!
/ 허공중에 헤어진 이름이여!
/ 불러도 주인 없는 이름이여!
/ 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이여!”를 반복하여 부른다.
2연은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를, 4연은 “설움에 겹도록 부르노라”를, 5연은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를 두 번씩 반복하고 있다. 반복되는 리듬은 이별의 정서를 극적으로 표현하며, 감정의 도약과 절정을 이끈다. 2연과 5연에서 반복되는 “사랑하던 그 사람이여!”는 3음보의 기본 리듬에 변형을 준 구절로, 운율의 정지에 따른 의미의 강조 효과가 나타난다. 또한, 전체 시에서 느낌표를 아홉 번 사용하고 ‘-구나, -노라’ 같은 영탄의 서술어를 반복하여 감정의 분출을 돕는다.
「초혼」의 핵심은 ‘사랑하는 사람의 이름을 반복해서 부르는 행위’이다. 시의 제목 ‘초혼’은 전통적인 장례 의식의 한 절차인 고복(皐復) 또는 초혼(招魂) 의식과 관련되어 있다. 고복은 상(喪)을 당했을 때 사자(死者)가 생전에 입던 옷을 들고 마당이나 지붕 위에 올라가서 죽은 이의 이름을 세 번 부르는 의식이다. ‘초혼’은 죽은 이의 이름을 부르면서 혼이 돌아오기를 기원한다는 뜻이다. 시 「초혼」에서 사랑하는 사람과 시의 화자는 “떨어져 나간 앉은 산 위”, “하늘과 땅 사이”만큼 떨어져 있다. 시의 화자는 사랑하는 사람의 이름을 반복해서 부르는 행위를 통해, 둘 사이에 놓인 이승과 저승의 거리를 극복하고자 한다. 시의 화자가 보여주는 간절한 호명 행위와 극복 의지는, 전통적인 초혼 의식을 배경으로 개인적인 이별의 슬픔에서 민족 정서의 차원으로 확장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