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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야]이사야 선지자의 소명과 사명(사 6:1~13)

작성자송호영|작성시간24.11.05|조회수46 목록 댓글 0

* 오늘의 말씀 : 이사야 선지자의 소명과 사명(이사야 6:1~13)

 

* 본문요약

 

    웃시야 왕이 죽던 해에 이사야가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과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찬양하는 스랍 천사들을 보고

    자신은 망하게 되었다고 고백합니다.

 

    스랍 천사 중 하나가 제단의 핀 숯을 이사야의 입에 댄 후에

    정결해진 이사야에게 하나님께서 사명을 주십니다.

    이사야가 자신의 사명이 언제까지냐고 묻자 이 땅이 황폐해질 때까지라고 하시며,

    이 백성이 돌이키지 않겠으나 거룩한 씨가 남아 있어 그루터기가 된다고 하십니다.

 

찬 양 : 271장(새 495) 익은 곡식 거둘 자가

         252장(새 518) 기쁜 소리 들리니

 

 

* 본문해설

 

1. 이사야를 선지자로 부르심(1~8절)

 

1) 웃시야 왕이 죽던 해에 내가 본즉 주께서 높이 들린 보좌에 앉으셨는데,

   그 옷자락은 성전에 가득하였고

2) ‘스랍이라고 하는 천사들이 모시고 서 있었는데,

   각기 여섯 날개가 있어 그 둘로는 자기의 얼굴을 가리었고,

   그 둘로는 자기의 발을 가리었고, 그 둘로는 날며

3) 서로 불러 노래하며 이르되

  “거룩하다 거룩하다 만군의 여호와여, 그 영광이 온 땅에 충만하도다” 하더라.

4) 이같이 화답하는 자의 소리로 인하여 문지방의 터가 요동하였고,

   성전에는 연기가 충만한지라.

5) 그때 내가 말하되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입술이 부정한 백성 중에 거하면서

   만군의 여호와이신 왕을 뵈었음이로다” 하였더라.

6) 그때 그 스랍 천사들 가운데 하나가 부젓가락으로

   제단에서 벌겋게 타는 숯불을 집어 손에 들고 나에게 날아와서

7) 그것을 내 입에 대며 이르되

  “보라. 이것이 네 입에 닿았으니 네 악이 제하여졌고,

   네 죄가 사하여졌느니라” 하더라.

8) 그때 내가 주께서 말씀하시는 들은즉 이르시되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그때 내가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 웃시야 왕이 죽던 해(1절) :

    웃시야 왕이 죽던 해는 주전 747년입니다.

    웃시야는 16세에 왕이 되어 52년간 통치한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사업에도 열성적이었고, 그 열성이 지나쳐 제사장의 일까지 하려다

    하나님의 징계를 받아 문둥병 환자가 되었습니다(역대하 26:16~21).

 

- 스랍들(2절) : 세라핌

    ‘스랍들(세라핌)’은 ‘불타다’라는 뜻의 동사 ‘사라프’에서 파생된 말로,

    문자적으로는 ‘불타는 자들’이란 뜻입니다.

    이들은 사람처럼 얼굴과 발을 가졌으나 여섯 날개가 있는 천사들로,

    하나님의 보좌 곁에서 하나님을 직접 모시며 섬기는 천사들입니다.

 

 

2. 이사야의 사명(9~13절)

 

9)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너는 가서 이 백성에게 이르기를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 하여

10) 이 백성의 마음을 둔하게 하며, 그들의 귀가 막히고, 그들의 눈이 감기게 하라.

     염려하건대 그들이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닫고

     다시 돌아와서 고침을 받을까 하노라” 하시기로

11) 내가 이르되 “주여, 어느 때까지니이까?”

     주께서 대답하시되 “성읍들은 황폐하여 주민이 없으며

     가옥들에는 사람이 없고, 이 토지는 황폐하게 되며,

12) 나 여호와가 사람들을 멀리 옮겨서

     이 땅 가운데 황폐한(버려진) 곳이 많을 때까지니라.

13) 그중에 십분의 일이 그 땅에 남아 있을지라도

     그들도 삼키운 바 될 것이라(불에 타서 소멸될 것이라).

     그러나 밤나무나 상수리나무가 베임을 당하여도 그 그루터기는 남아 있는 것같이

     거룩한 씨가 이 땅의 그루터기니라.”

 

- 성읍들은 황폐하여(11절) :

    성읍이 황폐하였다는 것은 백성들이 모두 포로로 사로잡혀 간 상황을 묘사한 것으로,

    주전 586년 예루살렘과 유다 백성들이 바벨론에 멸망하여 포로 된 상황을 뜻합니다.

 

- 십분의 일(13절) :

    이스라엘의 수 개념으로 볼 때 십분의 일은 극히 적은 수를 가리킵니다.

    그마저도 나라가 멸망하는 그 소용돌이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스라엘 백성의 십 분의 일인 극히 적은 수만 남았을지라도

    하나님의 심판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는 것을 뜻합니다.

 

- 그루터기(13절) :

    완전히 베임을 당하였을지라도 그루터기에서 싹이 돋는 나무의 강인한 생명력을

    끝까지 믿음을 잃지 않고 지킨 자들에 비유하였습니다.

 

 

* 묵상 point

 

1. 이사야의 소명

 

    하나님께서는 온 우주는 홀로 주관하시지만,

    오직 하나 사람을 구원하는 일만은 꼭 사람과 함께 일하십니다.

    천사에게도 맡기지 않으시고, 이미 돌아가신 분에게도 맡기지 않으십니다.

 

    오직 이 땅에 살아있는 자 중에 일부의 사람을 택하여 하나님의 일꾼으로 삼으시고,

    그들을 통해, 그들과 함께 사람을 구원하는 일을 하십니다.

 

    웃시야 왕이 죽던 해는

    남왕국 유다가 바벨론에 망하기 약 150년쯤 전입니다(6:1).

 

    하나님께서 유다를 멸망시키시기 150년 전에

    이사야를 하나님의 종으로 부르셔서 그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게 하십니다.

 

 1) 웃시야 왕이 죽던 해에(1절)

 

    웃시야 왕은 16세에 왕이 되어

    52년간 통치한 후 주전 747년에 죽었습니다.

 

    웃시야는 하나님의 사업에 열성적이었으나,

    그 열성이 지나쳐 제사장의 일까지 하려다

    하나님의 징계를 받아 문둥병 환자가 되었습니다(역대하 26:16~21).

 

    이샤야는 그의 사촌 형이기도 한 웃시야 왕이 죽었을 때

    충격과 실망감을 안고 성전에 올라갔다가

    하나님의 보좌의 환상을 보고 소명까지 받게 됩니다.

 

    왕을 사촌으로 돈 왕족의 자리에서

    두려울 것도 없고 아쉬울 것도 없이 살았던 이사야가

    웃시야 왕이 죽으면서 한순간에 홀로 있는 것 같은 두려움을 느꼈을 것입니다.

 

    그 충격이 얼마나 컸는지 알 수 없으나, 여기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이사야는 그 충격과 아쉬운 마음을 하나님 앞에서 해결하려 했다는 점입니다.

 

 2) 하나님의 보좌의 환상을 보는 이사야(1~4절)

 

    왕의 죽음으로 받은 충격을 달래기 위해 성전에 나와 기도하던 이사야는

    환상으로 하나님의 보좌를 봅니다.

 

    하나님께서 높이 들려있는 보좌에 앉으셨는데,

    그 옷자락이 성전에 가득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보좌 주변에는 하나님의 최측근에서 하나님을 섬기는

    ‘스랍’이라는 천사들이 있었습니다.

 

    스랍 천사들은 날개가 여섯이 있었는데,

    그 둘로는 얼굴을 가리었고 그 둘로는 다리를 가렸고 둘로는 날고 있었습니다.

    스랍 천사들이 그렇게 하나님의 보좌 주변에서 날면서

    서로 화답하며 “거룩하다 거룩하다 만군의 여호와의 영광이 온 땅에 충만하도다”

    라는 찬양을 하고 있었습니다.

 

    이 찬양의 소리가 얼마나 큰지 성전의 문지방의 터가 요동할 정도였습니다.

 

 3) 이사야를 정결케 하신 하나님(5~7절)

 

    환상으로 하나님의 보좌를 이사야는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하며 한탄을 했습니다.

    이 땅에 살아있는 사람이 하나님을 보면 그 죄로 인하여 죽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자 하나님 보좌 곁에 있던 스랍 천사들 중 하나가

    제단에서 벌겋게 타고 있던 숯불을 불집게로 집어서 손에 들고 날아와서

    이사야의 입에 대며 말했습니다.

    “이것이 네 입에 닿았으니 네 악이 제하여졌고 네 죄가 사하여졌느니라.”

 

 4) 내가 여기 있나이다. 주여 나를 보내소서(8절)

 

    그때 하나님께서 그 보좌에서 말씀하십니다.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그때 이사야가 대답했습니다.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하나님께서 “누가 세상에 나가서 우리를 위하여 일해줄까?”하고 말씀하실 때

    이사야는 하나님께서 명하시는 일이 어떤 일인지도 알지 못한 채

    그 앞에 엎드려 “나를 보내소서”하고 아뢴 것입니다.

 

묵상 : 이사야가 하나님께 부르심을 받았을 때 다른 사람과 다른 점

 

  ➀ 첫째 : 충격을 받은 일을 만났을 때 하나님께 더욱 간절히 기도함

 

      존경하며 의지했던 사촌 형인 웃시야 왕이 죽은 일이

      이사야에게 충격적인 사건이었으나

      이런 정도의 충격은 우리도 흔하게 겪습니다.

 

      그러나 이사야는 그 충격을 한숨이나 쉬며 자기 연민에 빠져 보낸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기도하며 보냈다는 점이 다릅니다.

 

      평소와는 다른 기쁜 일이 있든지,

      또는 이사야처럼 슬픈 일이나 가슴 아픈 일이 있을 때

      그 감정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십시오.

 

      이런 특별한 감정은 하나님을 더 깊이 사귈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됩니다.

      그 기쁨으로 하나님께 더 감사할 수 있고,

      그 슬픔과 아픔으로 하나님께 더 간절하게 기도할 수 있습니다.

 

  ➁ 둘째 : 신비한 경험을 하였을 때 하나님께 더 적극적으로 나아감

 

      사촌 형 웃시야 왕의 죽음으로 평소보다 더 간절한 기도를 드리던 이사야는

      환상 중에 여호와 하나님의 보좌를 봅니다.

 

      이사야는 하나님의 보좌가 공중에 높이 떠 있는 모습을 보았고,

      그 보좌 주변에서 스랍 천사들이

      하나님을 섬기며 큰 소리로 찬양을 하는 장면을 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그 보좌에서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라고 말씀하시는 소리를 듣습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을 주목해서 보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사야를 지목하여 “네가 이것을 하라”하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므로 만일 이사야가 평소에

      하나님을 섬기려는 간절한 열망을 가진 사람이 아니었다면

      그 환상을 그저 자기가 경험한 신기한 경험 정도로 여기고 지나쳤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사야는 그 말씀을 듣자마자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하고 아룁니다.

      하나님께서 무엇을 명령하실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이사야는 자기가 하겠노라고 즉시 고백합니다.

 

      하나님을 향한 적극적인 고백,

      하나님을 섬기려는 적극적인 자세가 바로 다른 사람과 다른 점입니다.

 

      만일 이사야가 이렇게 적극적으로 하나님께 아뢰지 않았다면

      이 환상한 그저 신기한 경험으로 스처 지나가는 것이 되었을 것입니다.

 

  ➂ 셋째 : 깨달았을 때 지체하지 않고 그 말씀에 순종함

 

      이사야는 하나님께 그렇게 고백한 후에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대로 즉시 행하였습니다.

      이것이 또한 이사야와 다른 사람과의 다른 점입니다.

 

      기도하거나 말씀을 묵상할 때

      우리도 이사야처럼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깨닫는 경우를 종종 경험합니다.

 

      이사야처럼 극적인 환상은 아니지만,

      말씀을 깨닫는 경우는 우리에게도 종종 일어납니다.

      그러나 이사야처럼 그 깨달은 대로 즉시 순종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기도를 할 때에든지 말씀을 묵상을 할 때에든지 간에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게 되었다면

      즉시 순종하는 자가 되십시오. 이런 자가 복 있는 자입니다.

 

 

2. 이사야에게 주신 사명

 

 1) 이 백성의 마음을 둔하게 하며 귀가 막히고 눈이 감기게 하라(9~10절)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라는 하나님의 탄식하시는 말씀을 듣자마자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바로 그다음 순간에 하나님께서

    아주 중요한 명령을 주실 것이라고 기대할 것입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다음에 하나님께서 이사야에게 주신 말씀은

    이스라엘 백성의 눈과 귀를 닫게 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왜 하나님께서 이사야에게 이런 말씀을 하셨을까요?

 

    ➀ 이 백성의 마음을 둔하게 하여(10절)

 

       하나님께서는 이사야에게 그의 말을 듣는 자로 하여금

       듣기도 싫고 보기도 싫게 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은 아주 듣기도 싫고 보기도 싫은 말을 하라는 것입니다.

       혹시 알아듣고 회개할까 봐 걱정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이 듣기 싫은 말을 하라는 것입니다.

       백성들이 듣기도 싫고 보기도 싫은 말을 하라고 해서

       전혀 엉뚱한 말을 하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이사야가 전한 말은 분명히 듣는 자로 하여금

       구원을 받게 하는 은혜의 말씀입니다.

       그런데 백성이 그 은혜의 말씀을 듣기 싫어하기 때문에

       듣기도 싫고 보기도 싫은 말이 된 것입니다.

 

    ➁ 백성들이 듣기 좋은 설교를 하지 말라는 것

 

       이미 백성들의 마음은 하나님을 떠나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백성들을 모으기 위해

       그들이 듣기에 좋은 설교만 한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성도들을 많이 모으는 데에는 성공을 하겠지만

       그 설교를 듣는 자들을 구원하는 데에는 실패를 할 것입니다.

 

       이미 백성들의 마음이 하나님을 떠나 있어서

       이사야가 전하는 은혜의 말씀을 들으려고도 하지 않겠지만,

       그럴지라도 하나님께서 주시는 말씀을 전해야 합니다.

       혹시 한 사람이라도 그 말씀을 듣는 자가 있다면 그를 구원받게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➂ 염려하건대 깨닫고 돌아와서 고침을 받을까 하노라(10절)

 

       오늘 본문의 말씀에서 우리가 가장 충격을 받는 부분이 바로 이 말씀입니다.

       이사야를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로 보내시면서도

       하나님께서는 혹시 한 사람이라도 그의 말을 듣고 회개하는 자가 있으면

       어떻게 하느냐고 걱정하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이미 하나님께서 그들을 심판하기로 작정하셨다는 것을 뜻합니다.

       혹시라도 회개하는 자가 있다면 그들을 구원하기는 하시겠지만,

       그들이 회개하기를 바라지 않으실 정도로

       하나님께서 그들을 마음에서 지우셨다는 것을 뜻합니다.

 

       그럴지라도 그들이 아직 이 땅에 살아있는 한 회개의 기회는 남아 있습니다.

       그러므로 한 편으로는 그들을 심판하기를 원하시는 마음이 있지만,

       한 편으로는 그들이 구원받을 수 있는 마지막 기회를 주시기 위해

       선지자 이사야를 그들에게 보내시는 것입니다.

 

 2) 주여 어느 때까지니이까? 이 땅이 버려질 때까지니라(11~12절)

 

    백성 중에 이사야 선지자가 전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려 하는 자가 없습니다.

    그럼에도 이사야는 혹시 한 사람이라도 듣는 자가 있을까 싶은 마음에

    이 말씀을 전해야 합니다.

 

    이사야는 이런 일을 언제까지 해야 하느냐고 하나님께 물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백성들이 모두 포로로 사로잡혀가서

    이 땅이 황폐하게 될 때까지 계속 전하라 하십니다.

 

 3) 십분의 일이 남아있을지라도(13절)

 

    하나님의 심판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십분의 일만 남게 된 상황에서도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

 

    십분의 일은 이스라엘의 수 개념으로 볼 때 극히 적은 수를 뜻합니다.

    이스라엘이 극히 적은 수만 남게 되더라도

    그들을 향한 하나님의 심판은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

 

    마치 도망하는 자들을 끝까지 추격하는 무자비한 침략자들처럼

    하나님께서 그들을 심판하실 것입니다.

 

묵상 : 거룩한 씨 그루터기(13절)

 

    그러나 그렇게 이스라엘의 모든 백성들이 다 멸망 당한 후에도

    그루터기는 남을 것입니다.

 

    마치 밤나무나 상수리나무를 밑동까지 모두 잘라버린 후에도

    그 그루터기에서 새싹이 나오듯,

    그 혼란의 때에도 하나님을 향한 믿음을 끝까지 버리지 않은 자들이 있을 것입니다.

    그들이 바로 하나님의 구원의 새 역사를 이룰 거룩한 씨 그루터기입니다.

 

 

3. 일꾼을 부르시는 하나님

 

 1) 세상을 구하는 일을 사람에게 맡기시는 하나님

 

    하나님께서 하시는 모든 일 중에 가장 중요하게 여기시는 일이

    바로 세상 사람들을 구원하는 일입니다.

    그런데 그 중요한 일을 사람에게 맡기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단 한 번도 사람을 구원하는 복음 전하는 일을

    천사에게 맡기신 적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이 멸망 당하게 될 즈음에

    그들을 구원하는 복음을 전하러 갈 자가 누구냐며

    하나님께서 탄식하는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2) 일꾼을 부르시는 하나님

 

    왜 우리보다 더 능력이 많은 천사에게 맡기지 않으시고

    늘 넘어지기만 하는 우리에게 이 일을 맡기실까요?

    그 일을 하는 그의 일꾼들에게 복을 주시기 위해서입니다.

 

    효율성이 익숙한 우리들로서는

    하나님께서 이 중요한 일을 사람에게 맡기시는 것을 잘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어쨌든 하나님께서 그렇게 결정하셨으니,

    세상 만민을 구원하는 그 마지막 중요한 일이 우리에게 맡겨져 있다는 것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묵상 : 내가 여기 있나이다. 주여 나를 보내소서

 

    그러므로 우리도 이사야의 고백을 해야 합니다.

    우리가 멈추면 세상 사람들에게 구원의 복음이 전달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의 영혼을 구하는 일에 나를 사용해달라고 기도합시다.

 

    어떤 사람은 다른 사람의 말을 들어주는 일로,

    어떤 사람은 아름다운 음악을 통해,

    어떤 사람은 병든 몸과 병든 마음을 치료해 주는 일로,

    어떤 사람은 법을 잘 모르는 사람을 돕는 일로 ….

 

    각자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주신 은사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하기 위해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여
    사람의 영혼을 살리는 일을 합시다.

    이 일은 우리가 육신을 입고 있는 동안에만 할 수 있는 일입니다.

    남은 시간을 낭비하지 맙시다.

 

 

* 기도제목

 

1. 우리도 이사야처럼

   늘 하나님께 기도하며 사는

   신실한 성도가 되게 하옵소서.

 

2. 우리도 이사야처럼

   주님의 일꾼 되기를

   열망하는 자들이 되게 하옵소서.

 

3. 끝까지 믿음을 지키는

   거룩한 씨 그루터기들이 되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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