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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비시디아 안디옥의 온 성에 복음이 전파됨(행 13:42~52)

작성자송호영|작성시간24.11.08|조회수29 목록 댓글 0

* 오늘의 말씀 : 비시디아 안디옥의 온 성에 복음이 전파됨(사도행전 13:42~52)

 

* 본문요약

 

    회당의 모임이 끝나고 모두 흩어졌으나,

    많은 유대인과 경건한 이방인들이 계속해서 바울과 바나바를 따릅니다.

 

    그들은 다음 안식일에도 말씀을 전해달라고 요청합니다.

    다음 안식일이 되자 그 성의 시민들이 거의 다 모입니다.

    그러자 유대인들이 그들을 시기하여 경건한 귀부인들과 유지들을 선동하여

    바울과 바나바를 박해하고 쫓아냅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기쁨과 성령으로 충만해집니다.

 

찬 양 : 257장(새 520) 듣는 사람마다 복음 전하여

         204장(새 288) 예수로 나의 구주 삼고

 

 

* 본문해설

 

1. 비시디아 안디옥의 온 성에 복음이 전파됨(42~44절)

 

42) 바울과 바나바가 회당에서 나가자

     사람들이 청하되 ‘다음 안식일에도 이 말씀을 하라’ 하더라.

43) 회당의 모임이 끝나고 회중에 흩어진 뒤에도

     유대인과 유대교에 입교한 경건한 이방인들이 바울과 바나바를 많이 따르니

     바울과 바나바는 그들과 더불어 말하고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항상 머물러 있으라 권하니라.

44) 그다음 안식일에는 그 성에 사는 시민들이

     거의 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자 하여 모이니

 

 

2. 복음을 배척하는 유대인들(45~52절)

 

45) 유대인들이 그 무리를 보고 시기심으로 가득 차서

     바울과 바나바가 한 말을 반박하고 비방하거늘

46) 그때 바울과 바나바가 그들에게 담대히 말하여 가로되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마땅히 먼저 너희에게 전할 것이로되

     너희가 거절하고 영생을 얻기에 합당하지 못한 사람으로 스스로 자처하므로,

     이제부터 우리가 이방인에게로 향하노라.

47) 주님께서 이같이 우리에게 명하시되 ‘내가 너를 이방인들의 빛으로 삼아,

     너로 말미암아 땅끝까지 구원하게 하리라’(시 96:6) 하셨느니라.” 하니

48) 이방인들이 이 말을 듣고 기뻐하여 주의 말씀을 찬양하며,

     영생을 주시기로(영원한 생명을 얻도록) 작정된 자는 다 믿더라.

49) 이렇게 해서 주님의 말씀이 그 온 지방에 퍼지니라.

50) 이에 유대인들이 경건한 귀부인들과 그 성의 유력자들(지도자들)을 선동하여

     바울과 바나바를 박해하게 하여 그 지방에서 강제로 쫓아내니

51) 바울과 바나바가 그들에게 발의 먼지를 떨어버리고 이고니온으로 가거늘

52) 제자들은 기쁨과 성령이 충만하니라.

 

- 자처하므로(46절) : 크리네테

    ‘자처한다’에 해당하는 ‘크리네테’는

    ‘스스로 판단한다, 스스로 결정한다’는 뜻으로,

    그들이 복음을 거절하고 반대함으로써

    스스로 영생을 거부하기로 결정하였다는 것을 뜻합니다.

 

- 이제부터는 우리가 이방인에게로 향하노라(46절) :

    유대인들이 하나님의 백성들이니

    마땅히 그들에게 먼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야 할 터이나 그들이 거부하니,

    이제부터는 이방인들에게 복음의 말씀을 전하러 갈 것이라고 바울이 선언합니다.

 

-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된 자는 다 믿더라(48절) : 테타그메노이

    ‘작정된 자’로 번역된 ‘테타그메노이’는 군사적인 용어로

    ‘지명하다, 배치하다’라는 뜻입니다.

    시제는 ‘완료 분사 수동태’로 과거에 이미 영생을 주시기로 지명하여 배치하셨고

    그 일이 이미 완료되었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처음부터 어떤 사람에게는 영원한 생명을 주시기로 작정하셨고,

    어떤 사람에게는 멸망을 받기로 작정하셨다는 뜻이 아닙니다.

    믿음을 가질만한 사람은 모두 다 믿었다는 뜻으로,

    그 도성에 있는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복음을 받아들였다는 것을

    이런 방식으로 표현한 것입니다(묵상 포인트 1번을 꼭 읽어 주십시오).

 

- 발의 먼지를 떨어버리고(51절) : 그들을 이방인으로 여긴다는 뜻입니다.

- 이고니온(51절) : 비시디아 안디옥에서 동쪽으로 120km 떨어진 도시

 

 

* 묵상 point

 

1. 예정론에 대하여 :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된 사람은 다 믿더라(48절)

 

    바울과 바나바가 회당에서 복음을 전하자

    유대인과 이방인 중에 유대교로 개종한 경건한 자들 중에

    많은 사람이 바울과 바나바를 따랐습니다.

 

    그들은 바울과 바나바에게 다음 안식일에도 이 말씀을 더 전해달라고 요청했고,

    다음 안식일이 되자 그 도성의 시민들이 거의 다 참석할 정도로 성황을 이루었습니다.

 

    이를 보고 유대인들이 시기하여 그들을 핍박하였으나,

    사도행전의 저자 누가는 본문을 기록할 때

    ‘그날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된 사람은 다 믿었다’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 본문에 대한 묵상을 하기 앞서서 먼저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된 자’라는 말이 무슨 말인지부터 살펴보겠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말을 하나님께서 처음부터(태어나던 바로 그 순간부터)

    구원을 받을 자와 받지 않을 자로 예정하셨다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다음과 같은 이유로 대단히 잘못된 해석입니다.

 

 1) 이것은 유대인들이 주장했던 논리입니다.

 

    하나님께서 처음부터 구원받을 자와 멸망 받을 자로 나누셨다는 것은

    유대인들이 주장했던 논리입니다.

    유대인들은 이방인을 개나 돼지로 여겼고,

    하나님께서 지옥의 불쏘시개를 위해 이방인을 만들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을 통하여 세상 만민을 구원하시리라 하셨던 하나님의 뜻을 계속 어겼고,

    지금도 예수님을 믿지 않는 것입니다.

 

 2) 일부 백인들이 흑인들에 대하여 주장하는 논리입니다.

 

    유대인들이 오직 유대인들만 하나님의 백성이 될 자격이 있다고 믿는 것처럼,

    백인들 중에는 오직 백인들만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 있다고 믿는 자들이 있습니다.

    그래서 흑인들을 노예로 부리고 심지어 죽이기까지 하면서도

    전혀 죄책감 없이 하나님 앞에 예배를 드렸던 것입니다.

 

 3) 이런 논리가 자칫 바리새적인 교리주의에 빠지게 합니다.

 

    이런 논리에 빠진 사람들은 자칫 교리주의에 빠지기 쉽습니다.

    바리새인들이 율법을 가졌으므로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다고 스스로 생각했던 것처럼,

    나는 교회를 세운 자요, 혹은 교회의 중직을 맡은 자이므로

    구원받기로 작정 된 자라고 스스로 여기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런 생각에 빠진 바리새인들을 너무나도 싫어하셨습니다.

 

 4) 예수님은 멸망 받기로 작정된 자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멸망 받기로 작정 된 이방인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이 땅에 오셨습니다.

 

    자기 힘으로는 도저히 구원받을 길이 없는 허물과 죄에 빠진 자들,

    멸망 받기로 이미 작정 된 자들을 주님의 피로 구원받게 하려고 십자가에 달리셨습니다.

 

    그럼에도 여전히 멸망 받기로 작정 된 자들이 있다고 스스로 규정하고

    그들에게 복음 전하기를 거부한다면

    이것은 주님의 뜻을 엄청나게 훼손하는 일이 되는 것입니다.

 

이 땅에 있는 자들 중 처음부터 멸망 받기로 작정 된 자는 아무도 없습니다.

 

    물론 하나님께서 어떤 특정한 사람을 주님의 일꾼으로 선택하시는 경우도 있습니다.

 

    바울은 하나님께서 그의 일꾼으로 쓰시기로 처음부터 작정하셨고,

    야곱과 에서 역시 어머니의 배 속에 있을 때부터

    하나님의 백성이 될 자가 누구인지를 정하셨습니다.

 

    이렇게 특별히 하나님께로부터 택함을 받는 경우가 있지만

    이것을 모든 사람에게 다 적용할 수는 없습니다.

    이 세상에 있는 사람 중 멸망 받기로 작정 된 자는 아무도 없습니다.

    그 어떤 사람도 복음을 듣고 회개하여 구원받아야 할 귀중한 생명들입니다.

 

    내가 백인이라고 해서 흑인을 함부로 규정한다든지,

    내가 유대인이라고 해서 이방인을 함부로 규정하는 일들을 해서는 안 됩니다.

    주께서 이런 편견을 깨뜨리기 위해 이 땅에 오셨는데

    아직도 여전히 이런 바리새적인 해석에 젖어 있는 사람들이 참으로 많습니다.

 

    하나님께서 예정하신 것은,

    누구든 예수님을 구주로 믿으면 구원을 주시리라는 것을 예정하신 것입니다.

    한 사람 한 사람 모두 다 이미 예정되어 있다면

    예수께서 이 땅에 오실 이유가 없었습니다.

 

묵상 :

 

  ➀ 말씀을 각자 자기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해석하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 처음부터 구원받을 자와 멸망 받을 자를 구분하여 놓으셨다면,

      구원받을 자로 규정된 자는 누구이겠습니까?

      이것을 아는 자가 없으니 각자 자기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해석하여

      상대를 비난하는 도구로 사용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특히 힘과 권세를 가진 자가 힘없고 나약한 자를 핍박하려 할 때

      종종 예정론이 사용됩니다.

      이렇게 말씀을 자기 입맛에 맞게 함부로 사용하면

      하나님의 진노를 받게 된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➁ 본문의 뜻을 바르게 이해하는 자가 되십시오.

 

      누가는 믿어야 할 사람은 다 믿었다는 뜻으로 이 말을 사용했습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을 근거로 저 사람은 멸망 받기로 작정 된 사람이라고

      함부로 규정하는 일을 하지 마십시오.

 

 

2. 영생을 얻기에 합당치 못한 자로 스스로 자처하므로

 

    유대인들도 처음에는 바울과 바나바의 설교를 잘 받아들였습니다.

    그러나 다음 안식일에 그 도시의 대부분의 시민들이

    바울과 바나바의 설교를 듣고 믿음을 갖는 일이 일어나자

    시기심이 발동한 유대인들이 바울과 바나바를 박해하기 시작합니다.

 

 1) 박해의 시작 : 반박과 비방(45절)

 

    그들의 박해는 첫째로, 반박과 비방으로부터 시작합니다.

    바울과 바나바가 무슨 말을 하려 하면

    그 말을 트집 잡아 그들의 감정을 상하게 하고, 말을 하지 못하도록 방해를 합니다.

 

    우리도 때때로 내가 싫어하는 사람이 어떤 말을 하려 할 때

    그 말을 방해하고 싶은 충동을 느낍니다.

    정당에서 상대 정당에 무조건 반대 의견을 내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러나 상대가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말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내가 상대의 말을 방해한다면

    이것은 하나님을 방해하는 것이 된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2) 더욱 심한 박해 : 귀부인과 유력자들을 동원하여(50절)

 

    그들의 박해 두 번째는 본격적인 박해로, 권력자들을 이용한 박해입니다.

 

    자기들 힘만으로 부족하다고 여겨지니

    유대교에 입교한 자들 중에 그 도시의 유력자를 남편으로 둔 여자들을 동원합니다.

    그들을 꼬드겨서 남편의 힘으로 바울과 바나바를 그 도시에서 내쫓게 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뜻에 반대되는 생각을 품는 것에서 발전하여

    본격적으로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가 된 것을 의미합니다.

 

    누군가의 뜻을 방해하기 위해 다른 사람을 동원하는 일을 조심하십시오.

    이것이 파당이고, 이런 일은 자칫 하나님의 진노를 살 수 있습니다.

 

    고라와 다단과 아비람이 모세를 대적하기 위해 파당을 지었다가

    그들은 물론 그들을 추종한 세력들까지 모두 죽었고,

    다단과 아비람은 그 집 갓난아이들까지 모두 죽었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3) 바울의 선언 : 영생을 얻기에 합당치 못한 자로 스스로 자처하는 일(46절)

 

    이렇게 말씀을 반박하고 비방하여 방해하다가

    유력자들을 동원하여 박해하기에 이르자

    바울은 그들이 영생을 얻기에 합당치 못한 자로 스스로 자처하였다고 선언합니다.

 

    그리고 바울과 바나바는 그 성을 떠날 때 발에 묻은 먼지를 떨어버렸습니다.

    그들을 이방인처럼 여기리라는 의미입니다.

 

    그러므로 누군가를 반대하고나 어떤 일을 하지 못하도록 하려 할 때 조심하십시오.

    자칫 성령을 훼방하는 자가 될 수 있습니다.

 

묵상 : 심판의 모든 일들은 이 땅에 모두 이루어집니다.

 

    심판의 최종 판결은 우리가 죽고 난 후에 주께서 내리시기만

    심판의 실질적인 모든 일들은 죽기 전 이 땅에서 다 일어납니다.

    살아있을 때 했던 모든 말과 행동을 죽은 후에 판결만 내리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언제 죽을지 아는 자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신앙의 때는 언제나 지금입니다.

    지금 나는 주님의 편에 있는 자인지, 주님을 반대하는 편에 있는지

    늘 자신의 영적 상황을 살피는 자가 되기를 바랍니다.

 

 

3. 유대인들이 거부하니 생명의 복음이 이방인에게로 향한다(46절)

 

    유대인들이 말씀을 거부하니 생명의 복음이 이방인에게로 향합니다.

 

    이것은 마태복음 22장의 왕의 잔치의 비유를 생각나게 합니다.

    왕의 잔치에 초대된 자들이 혹은 밭에 갔다, 혹은 장사하러 갔다며 참여를 거절하고,

    나머지는 왕의 종들을 붙잡아 모욕하고 죽였습니다.

 

    이에 왕이 크게 진노하여 그 도시를 불사르고,

    초대받지 않은 다른 자들을 대신 참여시켰습니다.

 

    이처럼 유대인들이 복음 듣기를 거부하니 그 복음의 말씀이 이방인들에게로 향했습니다.

    유대인들이 복음을 거부한다고 하나님의 구원의 잔치가 중단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방인들을 통하여 새로운 구원의 역사를 이루셨습니다.

 

묵상 :

 

    우리도 유대인들처럼 생명의 말씀을 거부하고 다른 것에 마음을 빼앗기면

    하나님께서 다른 사람을 통하여 생명의 역사를 이루십니다.

 

 

* 기도제목

 

1. 편견을 가지고 사람을

   함부로 평가하지 말게 하옵소서.

 

2. 복음의 말씀으로

   구원에 이르지 못할 자가 없음을 알고

   복음 전하기에 힘쓰게 하옵소서.

 

3. 우리도 주님께 거절될 수 있음을 기억하고

   신실한 믿음의 사람이 되기에

   항상 힘쓰는 자가 되게 하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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