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제목 :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 계시니
설교본문 : 스바냐 3:1~20(참조, 스바냐 1~3장)
설 교 자 : 송호영 목사
설 교 일 : 2015년 12월 6일
스바냐는 나훔과 예레미야와 같은 시기에 예언했던 선지자로, 유다가 망하기 직전에 유다와 예루살렘이 멸망할 것임을 예언했던 자입니다. 그 전에는 이사야와 미가 선지자가 활동했는데, 이사야와 미가 이후에 주전 628년 경에 스바냐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할 때까지 약 70년간은 하나님의 말씀이 전혀 전해지지 않는 침묵의 시간이었습니다. 히스기야의 아들 므낫세가 하나님의 선지자들을 학살했기 때문입니다.
선지자들이 발견되는 즉시 학살을 당했던 시대, 그래서 그 어떤 말씀도 전해지지 않고 있는 동안에 유다와 예루살렘의 백성들은 이방인과 다름없는 죄 속에 살았습니다. 예루살렘 성전에는 하나님을 섬기는 제사장이 아니라 바알을 섬기는 제사장이 자리를 잡았고, 심지어 예루살렘 성전 안에 이방의 우상을 위한 신전창기까지 있을 정도였습니다.
이렇게 유다와 예루살렘이 죄로 가득한 때에 므낫세와 아몬에 이어 요시야가 왕이 되었습니다. 요시야가 왕이 된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하나님의 말씀이 선지자 스바냐에게 임합니다. 선지자 스바냐 역시 히스기야의 현손으로 요시야 왕과 가까운 친척이므로, 같은 왕족인 스바냐가 자신이 받은 하나님의 말씀을 요시야 왕에게 전하여 요시야 왕이 종교개혁을 일으키는 원인이 됩니다.
스바냐서는 요시야 왕이 종교개혁을 일으키기 전에 나온 책이므로 죄에 가득한 유다와 예루살렘에 대한 무서운 심판의 말씀으로 시작합니다. 그 심판은 유다와 예루살렘의 모든 사람들을 진멸할 만큼 무서운 심판입니다. 그러나 그 무서운 심판 속에서 작은 희망이 발견됩니다. 그것이 바로 남은 자들입니다. 소수의 사람들이 살아남아서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을 힘입어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를 이루어갈 하나님의 신실한 백성들이 될 것입니다.
1. 여호와의 심판의 날이 다가왔다
1) 여호와의 날이 다가왔다(1:7)
여호와의 날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 세상의 역사 속에 자신을 나타내시는 날을 뜻합니다. 여호와께서 이 세상에 자신을 나타내실 때에는 하나님을 바라는 신실한 자들에게는 승리와 구원의 역사가 일어나지만, 하나님을 떠나 세상에 빠져 살던 자들에게는 심판의 날이 됩니다.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 그 자신을 드러내실 때 애굽에 노예였던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구원의 역사가 일어났고, 그들을 노예로 사로잡고 있던 애굽에게는 심판의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이 땅에 자신을 드러내실 때 신실한 자에게는 구원과 은총의 역사가, 하나님을 떠난 자에게는 저주와 심판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이 땅에서 일어날 가장 큰 여호와의 날은 예수께서 재림하여 오시는 날입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기들이 아브라함의 후손으로 하나님의 선택된 백성이니 당연히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자신을 드러내시는 여호와의 날이 오면 그들이 다윗의 시대를 회복하는 은총을 입게 될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러나 스바냐는 하나님을 떠나 죄를 범한 유다와 이스라엘 백성에게 여호와의 날은 전쟁과 살육의 심판의 날이 될 것이라고 선언합니다.
2) 희생제물과 그가 청한 자들을 구별해 놓으셨다(1:7)
여호와의 날에 하나님께 바칠 희생제물은 유다와 예루살렘 백성들입니다. 보통 때에는 그들을 대신하여 짐승들이 희생제물이 되지만, 그날에는 죄를 범한 유다와 예루살렘 백성들 바로 그들이 희생제물이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학살할 자들을 이미 구별해놓으셨습니다. 그들은 바벨론 군대입니다.
3) 문지방을 껑충 뛰어넘은 자들을 벌하리라(1:9)
이방인들에게 문지방을 밟지 않는 미신적인 풍습이 있었는데(삼상 5:5), 유다와 예루살렘 주민들이 이방인의 그 미신을 따라서 문지방을 밟지 않으려고 껑충 뛰어가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이런저런 일을 하면 복을 받지 못한다는 미신적인 말을 마치 하나님의 계명처럼 두려워하며 지키는 것을 말합니다. 이런 자들 역시 그날에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무슨 ‘손’이 있는 날이라든지 하는 따위를 믿거나, 고사나 제사를 지내는 일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런 일을 하나님께서 미워하십니다.
4) 여호와를 배반하고 찾지도 아니하고 구하지도 아니한 자들을 멸하리라(1:6)
이런 모든 죄보다도 더 무서운 죄는 그들이 하나님을 배반하고 하나님을 찾지도 않고 하나님께 구하지도 않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배반했다는 것은 하나님께 예배하고 경배하는 일을 중단했다는 것을 뜻하고, 하나님을 찾지도 구하지도 않는다는 것은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고 기도하는 일을 중단했다는 것을 말하고, 심지어 고난과 시련에 처해있을 때에도 하나님께 도움을 청하지 않는다는 것을 뜻합니다. 이것은 그들 스스로 하나님과 관계를 단절한 것이니 스스로 멸망을 자초한 것입니다.
5) 예루살렘에서 찌꺼기같이 가라앉아서 하나님은 화를 내리지 않는다고 하는 자들(1:12)
찌꺼기같이 가라앉았다는 것은 포도주 통에 가라앉은 찌꺼기처럼 아예 술 속에 빠져 사는 것을 말합니다. 그렇게 매일 술만 퍼 마시면서, 하나님께서는 복도 주시지 않고 화도 내리시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열심히 하나님을 잘 섬겨봐야 헛일이고, 죄를 짓는다고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벌을 내리실 힘도 능력도 없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을 무시하면서 마음 놓고 죄를 범하는 자들에게 하나님께서 무서운 진노를 내리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2. 예루살렘의 지도자의 죄
1) 방백들은 부르짖는 사자요(3:3)
방백들은 예루살렘의 고위 관료들을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이들에게 백성들을 잘 보살피도록 하기 위해 높은 직책을 주셨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마치 사자가 으르렁거리며 먹잇감을 찾듯 백성들의 것을 빼앗기에만 몰두했습니다. 그들은 오직 자기들의 사리사욕을 채우기에만 급급했습니다.
2) 재판관들은 아침까지 뼈도 남기지 않는 저녁 이리 떼들이요(3:3)
하루 종일 아무것도 먹지 못한 이리 떼들이 저녁에 짐승을 잡으면 그 뼈까지 모두 먹어치워서 아침이 되면 아무것도 남은 것이 없는 것처럼 재판관들은 연약한 백성들의 재산을 빼앗아 자기들의 부를 축적하기에만 바빴습니다. 이들에게 재판은 그저 자기들의 재산을 늘리는 도구에 불과했습니다. 이들은 백성들의 아픔 따위에는 관심이 없었습니다.
3) 선지자들은 경솔하고 간사한 사람들이요(3:4)
경솔하다는 것은 악하고 방탕하다는 뜻이요, 간사하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주시지 않은 말을 거짓으로 예언한다는 뜻입니다. 선지자들 역시 하나님의 말씀을 바르게 전할 생각이 아예 없습니다. 그들은 말씀 전하는 것을 돈벌이의 수단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돈 많은 권세가들이 좋아하는 말을 전하면서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거짓말을 했습니다.
4) 제사장들은 성소를 더럽히고 율법을 어겼다(3:4)
이 모든 자들이 죄를 범하였더라도 예배가 온전하였더라면 그 예배를 통해서 그들의 영이 회복될 기회를 가질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배를 집례하는 제사장들조차 우상숭배에 빠져 예루살렘 성전을 더럽히고 율법을 어겼습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을 수 있는 마지막 마지노선까지 무너진 것입니다.
아침마다 해가 떠올라 온 땅에 햇빛을 비추는 것처럼 하나님께서 아침마다 이 세상에 공의를 비추셔서 누가 죄를 범한 자인지 누가 복 있는 자인지를 살피십니다. 그럼에도 이 사람들은 자기들이 죄를 범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더러운 죄를 아침부터 밤까지 범하고 있으면서도 부끄러운 줄 몰랐습니다.
5) 회개의 기회를 날려버린 유다 백성들(3:7~8)
그러나 하나님께서 이들을 곧바로 벌하지 않으시고 선지자들을 보내어 하나님을 섬기는 믿음의 자리로 돌아오라는 말씀을 전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돌아오기를 기다리셨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끝내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도리어 말씀을 전하는 선지자들을 핍박하거나 죽이고, 새벽부터 일어나서 부지런히 못된 짓을 하여 그들의 몸을 더럽혔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모든 진노를 그들 위에 쏟아 붓겠다고 말씀하십니다.
3. 그날이 오기 전에 모여서 성회를 열라
1) 수치를 모르는 백성아 모여서 함께 성회를 열라(2:1~2)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수치를 모르는 예루살렘과 유다의 백성들에게 명합니다. 그날이 오기 전에, 그 두려운 명령이 시행되기 전에, 하나님의 진노가 그들에게 내려지기 전에 함께 모여서 성회를 열라고 명하십니다. 죄를 짓고도 수치를 모르는 자들, 하나님을 섬기지 않고도 두려워할 줄 모르는 자들에게 지금이라도 와서 하나님 앞에 부르짖으라고 명하십니다.
2) 겸손한 자들아 너희는 겸손을 구하라(2:3)
두 단어가 다 ‘겸손’이지만, 앞의 ‘겸손’은 하나님의 신앙을 잃지 않고 세상 악을 슬퍼하는 자들을 가리킵니다. 이들 역시 2장 1절에서 말한 바와 같이 죄를 짓고도 수치를 모르고 사는 자들입니다. 이들 역시 그 시대의 사람들이라 그 시대의 허물과 죄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자들입니다. 그러나 이들은 최소한 신앙을 잃지 않으려 애쓰는 마음은 있었고, 세상 악을 슬퍼하는 마음이 비록 조금이지만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저 마음속으로만 조금 슬퍼하는 마음이 있을 뿐 이들 역시 다른 사람들처럼 죄 속에서 사는 자들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이들의 그 작은 신앙의 씨앗을 주목하십니다. 그래도 하나님 앞에 겸손하기를 원하는 마음이 아주 조금이라도 있는 사람들에게 ‘아나바’의 겸손을 구하라고 하십니다.‘아나바’는 단순히 남을 존중하고 자신을 낮추는 태도를 뜻하는 단어가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에서의 겸손을 뜻합니다.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는 사람, 자신의 나약함을 인정하고 하나님의 도움을 바라는 간절함을 가진 자를 말합니다. 이렇게 내가 죄와 허물이 많은 연약한 자이니 나를 도와달라고 구하는 것, 바로 여기에서부터 구원은 시작되는 것입니다.
3) 공의를 행하는 자들아 너희는 의를 구하라(2:3)
두 번째로 공의를 행하는 자들에게 의를 구하라고 하십니다. 앞의 공의는 ‘미쉬파트’이고 뒤의 의는 ‘체데크’입니다. 미쉬파트와 체데크는 비슷한 말로 모두 성경에서는 ‘의’나 ‘공의’로 번역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본문에서는 조금 뜻을 구분하여 공의(미쉬파트)는 하나님의 말씀을 두려워하는 자로 재판에서의 공정한 판결과 정직한 상거래를 하는 것을 뜻하고, 의(체데크)는 매일매일 하나님과 교제하면서 하나님께 대한 신뢰와 복종으로 살아가는 것을 뜻합니다.
똑같이 죄를 짓고 살지만 그래도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이 조금은 있어서 세상을 살아갈 때 남에게 해를 끼치지는 않겠다는 마음을 가지고 살아가는 자, 상거래를 할 때 부정한 방법을 사용하지 않고, 가난한 자들에게 구제할 줄 아는 정도의 마음을 가진 자들에게 하나님께서 주시는 거룩한 의를 구하라고 하십니다. 그들이 가진 정도의 의를 가지고는 구원을 받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주시는 하늘의 신령한 의를 갖는 자가 되라는 것입니다. 이를 위하여 날마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라는 것입니다.
● 묵상 : 단순히 선하고 착한 사람으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의 의를 가진 자가 되십시오.
단순히 선하고 착한 사람만으로는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의를 가진 자라야 합니다. 사람은 결코 하나님처럼 완벽한 의를 가질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자신의 의를 우리에게 선물로 주시는 그 하나님의 의를 받은 자만이 구원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거룩하신 의를 구하고 또 구하십시오.
4) 여호와의 규례를 지키는 자들아 여호와를 찾으라(2:3)
이렇게 죄가 만연한 시대에 여호와의 규례를 지키는 자체만으로도 결코 쉽지 않은 일일 것입니다. 모두들 교회를 떠나는 때에 주일 예배는 물론 수요일과 금요일의 집회, 새벽집회까지 열심히 참여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규례를 지키는 것만으로는 안 됩니다. 우리의 주님이신 여호와, 바로 그분을 찾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며 그의 거룩하신 성령이 내 안에 임하여 오시기를 구하고 또 구해야 합니다.
● 묵상 : 애통하는 자를 복이 있나니 저희가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마 5:3)
이것은 결국 예수께서 말씀하신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에 연결됩니다. 하나님 앞에 합당하지 않게 살고 있는 자신의 허물과 죄에 대하여 애통하며, 자기에게 하나님의 거룩하신 의를 채워 주시기를 간절히 구하는 자들, 이들이 바로 하나님의 위로를 받아 구원받는 하나님의 백성이 됩니다. 그러므로 자기의 죄에 대하여는 애통할 줄 아는 자, 하나님에 대하여는 하나님 바로 그분을 찾고 구하는 자가 되십시오.
4. 하나님의 구원의 약속
1) 내가 절기로 말미암아 근심하는 자들을 모으리니 그들이 네게 속한 자라(18절)
(18절의 ‘그들이 네게 속한지라’는 문맥상‘그들이 내게 속한지라’로 읽어야 합니다. 이에 대하여는 큐티방의 본문해설을 참조하십시오.)
‘절기로 말미암아 근심하는 자들’은 바벨론에 포로 된 자들이 예루살렘 성전에 갈 수 없으니, 하나님의 절기를 지킬 수 없게 된 것에 대하여 근심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것을 좀 더 우리 삶에 적용하여보면, 하나님의 말씀대로 바르게 살지 못하는 것에 대한 근심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삶이 무엇인지 내가 알기는 하지만, 말씀대로 살지 못하고 도리어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것을 좋아하는 나의 연약함을 근심하는 것입니다.
나는 단지 주님 뜻대로 살지 못하는 것에 대하여 근심했을 뿐입니다. 그리고 주님 앞에 나와서 자기의 연약함을 도와달라는 간구를 했을 뿐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런 자들을 가리켜 “그들이 내게 속한 자라”하고 말씀하십니다. 자기의 연약함을 도와달라고 간구하는 이들이 바로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것입니다.
● 이 말씀을 스바냐 2:3의 말씀과 연결 지어서 살펴보십시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이 그렇게 무섭고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겸손을 구하고 하나님의 의를 구하고 여호와 하나님을 구하는 것, 그리고 자기의 연약함을 도와달라고 간구하는 것, 바로 이것을 원하십니다. 이 은혜를 주시기 위해 예수께서 우리에게 오셨습니다.
2) 내가 너에게서 두려움과 슬픔을 없애고, 짐과 치욕을 없앨 것이다(18절)
이렇게 주께 하늘의 거룩한 것을 구하고 찾는 자에게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거룩한 성령을 부어주십니다. 우리 안에 들어오신 성령께서 우리 마음속에 있는 모든 두려움과 슬픔을 없애십니다. 그동안 내가 죄를 범한 것으로 인하여 내 안에 들어온 모든 죄의 짐과 수치를 다 없애주십니다.
3) 너를 괴롭게 하는 자를 다 벌하고 (19절)
그리고 나를 괴롭게 하는 모든 자를 다 멸하십니다. 나를 괴롭게 하는 자는 악한 영인 사탄입니다. 그들이 나의 죄의 본능을 자극하여 자꾸만 하나님께서 진노하실만한 일을 하게 만듭니다. 그동안에는 내가 연약하여 마귀들이 내 죄의 본능을 자극할 때마다 넘어졌지만, 내가 하나님께 나의 연약함을 도와달라고 간구할 때부터는 하나님께서 주신 성령을 통하여 그 마귀의 공격을 이기게 하십니다. 그래서 내가 주님의 나라에서 칭찬과 명성을 얻는 자가 되게 하십니다.
4) 내가 너희를 이끌고 너희를 다시 모으리라(20절)
우리가 하나님께로 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를 모으시고 이끄시는 것입니다. 내가 모든 것을 다 이룬 후에 하나님께로 가는 것이 아니라, 나의 연약함을 도와달라고 하나님께 간구하면 하나님께서 죄와 허물의 현장에서 나를 주님의 나라로 이끄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신의 연약함을 인정하고 주께 도움을 청하는 기도를 하십시오.
3. 시온의 딸아 기뻐하며 노래하라
1) 시온의 딸아 노래하라 여호와께서 네 형벌을 없애버리셨다(14~15절)
이렇게 자신의 연약함을 인정하고 주께 도움을 청하는 자들, 주님의 겸손과 주님의 의와 여호와 하나님 바로 그분을 구하는 모든 자들을 하나님께서 친히 자신의 백성, 자신의 자녀로 삼으십니다. 그러므로 주님을 기뻐하며 노래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의 모든 형벌을 없애버리셨습니다. 이제 내가 범한 죄를 두려워하지 않아도 됩니다. 심판하시는 분이 그 죄를 모두 없애버리셨다고 선언하셨기 때문입니다.
2) 시온아 두려워하지 말라 네 손을 늘어뜨리지 말라(16절)
주께서 우리에게 이렇게 큰 은혜를 베풀어 주셨으니 이제는 더 이상 손을 늘어뜨리며 살지 말라고 명하십니다. 힘을 잃은 사람처럼 의기소침하여 살지 말라는 것입니다. 내가 비록 지하 단칸방에 산다고 할지라도 나는 이 땅과 하늘의 주인이신 하나님의 자녀라는 당당함을 가지고 살라는 것입니다.
● 묵상 : 왕세자가 잠시 겪는 어려움이라 여기십시오.
당신이 차기 왕이 될 왕세자인데, 부왕이 당신을 훈련시키기 위해 잠시 가난하고 어려운 삶을 살게 한다면 그것 때문에 당신이 의기소침하여 살겠습니까? 비록 가난하고 어려운 삶을 산다고 할지라도 왕세자라는 의연함을 잃지 않을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우리의 왕이신 하나님의 아들들입니다. 그러므로 이 땅의 일로 인하여 힘을 잃지 마십시오. 마귀의 공격을 이 믿음으로 물리치십시오.
3)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시라(17절)
당신이 하나님께 자신의 연약함을 인정하셨습니까? 내가 힘이 없고 연약하니 나를 도와달라고 간절히 간구했습니까? 하나님께 겸손함과 하나님의 의와 하나님 그분을 찾고 구하는 기도를 했습니까? 그렇다면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미 여러분 안에 계십니다.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시라” 나를 구원하는데 필요한 일이 무엇이든 그 모든 일을 다 하실 수 있는 전능하신 이가 내 안에 계십니다. 그러므로 기뻐하고 즐거워하십시오. 내가 단지 주께 주님을 찾고 구하는 기도를 시작했다는 그 이유만으로도 주께서 하늘에서 천사들 앞에서 우리의 이름을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십니다.
● 묵상 : 이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기뻐하시는 모습을 상상해보십시오. 내가 무엇을 했다고 나를 기뻐하신답니까? 나는 단지 하나님을 구했을 뿐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기를 원한다고 했을 뿐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런 나를 이렇게도 기뻐하십니다. 주님의 사랑과 은혜가 참으로 크십니다. 그 크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고 찬양합시다.
주님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으로
말씀을 경청하여 듣는 자가
되게 하옵소서.
말씀 묵상하고 기도하는 일을 통해
항상 하나님과 교제하는 일을
쉬지 말게 하옵소서.
겸손과 하나님의 의를 구하고
하나님을 찾게 하옵소서.
무엇보다도 하나님을 사랑하며
기쁨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자가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