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주일예배 설교문

[종려주일]가룟 유다를 향한 예수님의 사랑의 호소(3월 20일; 마 25:31~46, 14~56)

작성자송호영|작성시간16.03.21|조회수1,041 목록 댓글 0

설교제목 : 가룟 유다를 향한 예수님의 사랑의 호소

설교본문 : 마태복음 25:31~46, 14~56

설 교 자 : 송호영 목사

설 교 일 : 2016년 3월 20일

    


 오늘은 고난주간이 시작되는 종려주일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설교는 대개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에 대한 말씀이라든지, 십자가상에서의 일곱 말씀이나, 십자가 위해서 주께서 당하신 고통에도 끝까지 참고 이기신 주님의 은혜와 사랑에 대한 말씀을 전합니다.

 

 하지만 저는 비극적으로 삶을 마감한 가룟 유다에 대한 것을 설교의 주제로 전하려 합니다. 왜냐하면 인류 역사상 가장 큰 죄를 지은 자가 바로 가룟 유다이기 때문입니다. 다른 사람들은 죄를 지어도 사람들끼리의 죄이지만, 가룟 유다는 하나님이신 예수께 직접적으로 범한 죄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만일 가룟 유다가 회개하였더라면 그 역시 그 죄를 용서받고 천국 백성이 될 수 있었습니다.

 

 만일 가룟 유다가 용서받을 수 있었다면 지금 이 세상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 중에 용서 받지 못할 자는 아무도 없습니다. 예수님은 가룟 유다와 같은 죄인들을 위해 십자가에 달리셨기 때문입니다.


제 1 부 : 최후의 심판(25장)


1. 최후의 심판과 그 결과


 가룟 유다의 배반과, 그를 상대하시는 예수님의 은혜로운 모습을 전하기에 앞서서 먼저 마태복음 25장에 나오는 최후의 심판의 대한 말씀을 전하겠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은총이 우리에게 현실로 나타나는 때가 바로 마지막 심판의 자리이기 때문입니다.

 

 언젠가 주께서 다시 오시면 아담과 하와 이래로 이 세상에 살았던 모든 사람들이 예수님 앞에 모이게 될 것입니다. 마태복음 25:31이하의 말씀은 그때 모인 사람들에게 예수께서 최종 판결을 내리시는 말씀입니다. 그때 예수님 앞에 모인 사람들은 크게 두 그룹으로 나뉘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때의 모습을 목자들이 밤에 양과 염소 떼들을 우리에 넣는 것에 비유하셨습니다. 목자들이 낮에는 양과 염소들을 함께 데리고 가서 꼴을 먹이지만, 저녁에 우리에 넣을 때는 양과 염소를 따로따로 넣습니다. 양은 추위에 강하고 염소는 추위에 약하므로 양은 서늘한 데로 모이고 염소는 따뜻한 곳으로 모이기 때문입니다. 이때 하얀 양과 검은 염소 떼가 확연하게 구분이 되므로 예수께서 마지막 때 예수님 양 옆에 두 그룹으로 모인 사람들을 양과 염소 떼로 비유하신 것입니다.

 

 결국에는 우리들 모두가 언젠가 이렇게 주께서 영광의 보좌에 앉으셔서 세상 만민을 심판하시는 그 날을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 그때에는 주께서 이 성경말씀을 통해 우리에게 제시하신 복음의 말씀을 경청하여 듣고 그 말씀대로 살아간 자들과, 자기의 일에만 분주하게 산 자들로 구분하여 최종적인 심판을 받게 됩니다. 그리고 그 후에는 피차에 다시는 만나지 못할 영원한 이별이 있게 될 것입니다. 한쪽은 영원한 생명의 나라로, 한쪽은 영원한 형벌의 나라로 그렇게 영원히 나누어지게 될 것입니다. 그 날이 오늘이나 내일일 수도 있다는 것을 한시도 잊지 말고, 항상 주와 교제하며 살아가는 신실하고 충성된 성도들이 되십시오.

 


2. 거룩한 공회를 세우는 자


 예수님은 오른편에 있는 자들에게 그들이 주께서 주리셨을 때에 먹이셨고, 주께서 병들었을 때에 돌아보았고, 주께서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주께서 벗으셨을 때에 옷을 입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들이 언제 주께 그렇게 하였느냐고 묻자 주님은 주의 형제들 중에서 지극히 작은 자들에게 한 것이 곧 주께 한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1) 예수님의 형제들 중에 연약한 자를 도운 자들

 

① 주님의 백성들 중에 연약한 자를 도우라는 것


 이 말씀은 얼핏 보면 세상의 가난하고 곤궁한 자를 돕는 것이 곧 주님을 위해 일한 것이라고 말씀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40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께서 ‘내 형제’라고 말씀하신 것은 주님의 백성, 주님의 공동체 중에서 지극히 작은 자, 주님의 공동체 중에서 지극히 가난하고 연약한 자를 도운 것이 곧 주님을 도운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② 구원의 조건을 말씀하시는 것임을 기억하십시오.


 물론 세상의 가난하고 곤궁한 자를 돕는 것도 주께로부터 칭찬받을 일이지만, 세상의 가난한 자들을 돕는 것이 구원의 조건은 아닙니다. 예수님은 이 말씀을 마지막 심판 때에 구원 받는 자들이 의인으로 판결 받게 되는 원인을 밝히는 자리에서 하신 말씀이라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③ 예수님의 교회인 거룩한 공회를 세우는 것이 바로 구원의 조건입니다.


예수님은 주의 형제를 도운 자, 이 땅에 있는 예수님의 교회인 거룩한 공회를 도운 자들에게 구원받는 백성이라는 선언을 하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특히 주님의 백성들 중에서도 가난하고 곤궁하여 시험에 들기 쉬운 연약한 자를 도운 자들을 주님을 직접 도운 자로 여기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2) 거룩한 공회를 세우기에 힘쓴 자들

 

 이 땅에 있는 교회를 예수님의 참된 교회인 거룩한 공회가 되도록 힘쓴 자들에게 천국이라는 상을 내리십니다. 거룩한 공회는 눈에 보이는 지역 교회가 아니라, 그 믿음을 인정받은 구원 받은 하나님의 참된 백성들을 가리킵니다. 내가 다니고 있는 교회가 하나님께 그 믿음을 인정받는 참되고 건강한 교회가 되도록 하기 위해 힘쓰는 자들입니다.

 

 성도들은 교회의 몸 되신 예수님의 지체들입니다. 벽돌이 모여 건물을 이루듯 성도들이 모여 주님의 거룩한 교회를 이룹니다. 성도들 하나하나가 건강한 믿음을 가질 때 그 성도들이 모여 주님의 거룩한 교회를 이룹니다. 그러므로 그 교회에서 가장 연약한 자들이 건강한 믿음을 갖도록 돕는 것은 그 교회를 하나님의 거룩한 공회로 세우는 일이 됩니다. 예수께서는 이런 일을 주님 자신을 도운 것으로 여기시겠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3) 건강하고 참된 교회가 되도록 하기 위해 당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하십시오.

 

 당신이 속한 교회가 예수님의 교회, 하나님 나라의 거룩한 교회가 되기 위해 당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하십시오. 어떤 역할이든 맡아서 주님의 거룩한 공회를 세우는 일에 참여하십시오. 그렇게 주님의 일을 맡아 하는 과정에서 시험에 든 자나, 곤궁에 처한 자들, 외롭고 어려움에 처한 자들을 도우십시오. 주께서 그 일을 주님을 직접 도운 것으로 여기십니다.

 

● 묵상 :

 

 말씀을 가르치는 일이든, 혹은 말씀을 가르치는 자들을 돕는 일이든, 그것도 힘들다면 교회를 깨끗이 청소하는 일이라도 무엇이든 내가 속한 교회가 주님의 몸 되신 참된 교회가 되도록 하기 위한 일을 하십시오. 남이 하는 일을 구경만 하는 관람객 신자들은 그 날에 영원한 형벌을 받게 된다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제 2 부 : 가룟 유다의 배반(26장)

 

  그러면 이제 인류 역사상 가장 큰 죄를 범한 가룟 유다의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그가 어떤 죄를 범하였는지, 그리고 그러 흉악한 가룟 유다를 예수님은 어떻게 마지막까지 사랑의 끈을 놓지 않으려 하셨는지를 살펴보겠습니다.

 

 

1. 가룟 유다의 배반

 

 예수께서 붙잡히시던 날 저녁, 마지막 최후의 만찬을 하시기 직전의 일입니다. 그때 베다니 문둥이 시몬의 집에서 계실 때에 나사로의 누이 마리아가 예수께 귀한 나드 향유 한 옥합을 부어드렸습니다. 14절의 ‘그때에’는 마리아가 예수께 향유를 부어드리던 일이 있은 바로 직후를 뜻합니다. 가룟 유다는 마리아가 귀한 향유를 예수께 부어드리는 장면을 보고 난 직후에 곧바로 대제사장들에게 가서 예수님을 넘겨 줄 방안을 협상했습니다.

 

 가룟 유다는 이 일을 도저히 용합하지 못할 일로 여겼습니다. 가치관의 충돌에서 유다는 끝까지 자기 생각이 옳다고 여기고, 저런 자는 결코 메시야가 될 수 없다고 혼자 판단하여 대제사장들에게 예수님을 넘기겠다고 말하여 예수님을 배반한 자가 되었습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가룟 유다가 예수님을 배반하게 된 세 가지 동기를 살펴보겠습니다.

 

1) 첫째 원인 : 가룟 유다의 탐욕 때문에


 요한은 이 말을 한 사람이 가룟 유다였다고 기록합니다(요한복음 12:6). 요한은 가룟 유다가 본래 돈 궤에서 돈을 훔쳐간 일도 자주 있을 만큼 돈에 탐욕을 가진 자였다고 지적합니다. 그래서 그는 정말 가난한 자를 생각하여 이 말을 한 것이 아니었고, 그 돈이 욕심이 나서 가난한 자를 핑계 댄 것이라고 말합니다.

 

2) 둘째 원인 : 실망감과 미움


 그렇게 돈에 욕심을 가지고 있는데다가, 그 비싼 향유를 자신의 머리에 붓는 것을 보고도 좋은 일을 했다고 하니 거기에 실망감까지 더하여 가룟 유다는 예수님을 미워하는 마음을 품었습니다.

 

3) 셋째 원인 : 강요


 가룟 유다는 일반 유대인처럼 이스라엘이 로마의 식민지로부터 독립하기를 바라는 마음을 갖고 있습니다. 가룟 유다는 예수께서 놀라운 능력을 가지셨으므로 그 능력을 사용하면 로마를 물리치고 다윗 왕국을 다시 세울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기다려도 예수님이 그 능력을 이스라엘의 독립을 위해 사용하지 않으시는 것입니다.

 

 가룟 유다는 이 일을 아주 못마땅하게 여겼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으로 하여금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도록 몰아간다면, 자기 자신을 위해서라도 그 능력을 사용할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자기 생각이 끝까지 옳다고 여긴 유다는 이렇게 해서라도 예수님을 민족의 부활을 위한 독립투사의 자리에 함께 참여하도록 몰아갈 생각이었습니다.

 

4) 마귀의 부채질


 가룟 유다가 이런 생각을 계속 품고 있으니 마귀가 그에게 예수님을 팔 생각을 넣었습니다(요한복음 13:2). 마귀는 결코 우리의 의지와 상관없이 강제로 죄를 범하게 하지 않습니다. 그저 죄에 빠지게 할 만한 생각을 우리 안에 넣고는, 우리가 그것을 붙잡도록 부채질하는 것뿐입니다. 가룟 유다 역시 예수께 대한 실망감과, 돈에 대한 욕심과, 강제로라도 독립투사의 자리에 끌어들여야 한다는 생각을 버리지 않고 있으니 그 생각에 불을 붙여 스스로 예수님을 팔도록 했습니다.

 

● 묵상 :

 

 가룟 유다가 가진 이런 생각들은 우리들도 평소에 자주 갖는 생각들입니다. 그러나 많은 경우에 우리는 이런 생각들이 예수님을 배반하는 데까지 우리를 끌고 갈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이런 생각들에 마귀가 부채질을 하면 우리도 예수님을 배반하는 일을 덥석 물게 될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합시다. 그러므로 날마다 말씀을 묵상하며 내 마음 속에 죄를 즐거워하는 것이 있는지를 살펴 주께 그 헛된 생각을 청소해주시기를 간구해야 합니다.

 

 

2. 가룟 유다를 향한 예수님의 사랑의 호소


 가룟 유다가 예수님을 말리라는 것을 알았을 때 예수님은 어떻게 하셨을까요? 24절에서 예수님은 그가 차라리 나지 않았으면 좋을 뻔하였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흔히들 생각하기를 예수께서 가룟 유다를 예수님을 팔리라는 것을 아셨을 때부터 미워하거나 배척하셨으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마지막 순간까지 가룟 유다에게 사랑으로 호소하시면서 그가 마음을 돌이키게 하려 하셨습니다.

 

1) 예수님의 첫 번째 호소 : 넌지시 말씀하심

 

 우선 예수님을 팔 자가 가룟 유다였다는 것을 처음부터 밝히지 않으셨습니다. 그저 이 제자들 중의 한 사람이 예수님을 팔리라고 넌지시 던지셨습니다. 가룟 유다가 그 사실을 제자들 중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예수께서 이미 모든 것을 다 알고 계신다는 사실을 밝히신 것입니다. 이것은 가룟 유다가 회개하기를 바라시는 예수님의 첫 번째 사랑의 호소였습니다. 그러나 가룟 유다는 제자들이 서로 “주여 내니이까?”하고 묻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말을 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첫 번째 사랑의 호소를 거부한 것입니다.

 

2) 예수님의 두 번째 호소 : 그의 손을 잡고

 

 그러자 예수님은 “나와 함께 이 대접에 손을 넣는 자가 그이다”하고 말씀하시면서 가룟 유다가 음식을 ‘하로셋’소스가 담긴 대접에 찍어 먹기 위해 소스가 담긴 대접에 손을 넣을 때 예수께서 가룟유다의 손을 잡으셨습니다. 예수께서 가룟 유다의 손을 잡으실 때에 예수님의 사랑의 온기가 그의 얼어붙은 마음을 녹여서 그가 주께로 돌아오기를 다시 한 번 바라셨습니다. 예수님의 두 번째로 사랑의 호소를 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그 때에도 가룟 유다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의 두 번째 호소도 이렇게 거절되었습니다.

 

3) 예수님의 세 번째 호소 : 그에게 떡을 떼어 주시며

 

 마태복음 본문에는 두 번째 호소까지만 나오나, 요한복음 13:26을 보면 예수님의 세 번째 호소가 나옵니다. 이 때 예수님은 가룟 유다의 품에 비스듬히 기대어 누우신 채로 있었습니다(위의 23절 단어해설 참조). 그 상태로 예수님은 떡을 한 조각 떼어서 가룟 유다에게 주셨습니다. 당시 풍습으로 볼 때 이렇게 그의 품에 누워서 떡을 떼어주는 것은 대단한 호의의 표시였습니다. 예수님은 그에게 온 몸을 의지하면서 마지막으로 사랑의 호소를 하셨습니다. 그러나 그것마저 거절하자, 사탄이 그의 속에 들어갔습니다(요 13:27). 그의 속에 사탄이 들어간 것을 보시고서야 예수님은 그에게 “네 하는 일을 속히 하라”하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가룟 유다를 버리신 것이 아닙니다. 가룟 유다가 예수님을 팔도록 방조한 것도 아닙니다. 최근에 외경인 도마복음서를 인용하면서 예수께서 가룟 유다에게 자신을 팔도록 지시하셨다는 말들이 인터넷상에서 돌고 있습니다만, 결코 아닙니다. 예수님은 끝까지 가룟 유다가 사랑하는 제자의 자리로 돌아오기를 바라셔서 사랑의 호소를 하셨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가룟 유다가 저주의 화신이 된 것은 전적으로 그의 선택의 결과입니다.

 

● 묵상 :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선택의 결과로 천국이나 지옥이 결정됩니다. 매 순간 선택할 때마다 이 사실을 기억하여 하나님의 뜻대로 바르게 선택할 수 있도록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3. 유다의 비열함과 예수님의 온유함


 예수님의 열 두 제자 중의 하나였던 가룟 유다는 적어도 500명이 넘는 군사와 강패들을 이끌고 보무도 당당하게 예수께로 왔습니다. 그리고는 그 무리들과 서로 정한 신호대로 예수께로 와서 입을 맞추었습니다. 그런데 위의 단어해설에서 보듯 48절과 49절의 입맞춤의 단어 뜻이 다릅니다. 유다가 군인들과 암호를 정할 때의 입맞춤(48절)의 뜻은 보통 인사로 하는 입맞춤은 뺨이나 목, 혹은 손에 가볍게 한 번 입맞춤을 뜻하는 말이고, 가룟 유다 예수께 한 입맞춤(49절)은 애인처럼 사랑하는 이에게 하듯 여러 번 반복해서 아주 격렬하게 하는 입맞춤입니다.

 

※ 유다가 예수께 이렇게 격렬하게 입맞춤을 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1) 군인들이 못 알아볼까 싶은 마음에 반복해서 한 것

 

 가룟 유다가 예수께 이렇게 반복해서 입맞춤을 한 이유는 혹시 평소처럼 한 번만 했다가 뒤에 있는 군인들이 못 알아볼까 싶은 마음에 반복해서 한 것입니다. 가룟 유다가 이렇게 반복해서 예수님과 입맞춤을 했다는 것은, 예수님을 그들에게 팔아넘기려는 마음이 그만큼 강렬했었다는 것을 뜻합니다.

 

2) 사탄의 숨은 전략 : 십자가를 헛된 것이 되게 하려는 것

 

 그러나 그렇게 반복해서 입맞춤을 하더라도 애인에게 하듯 그렇게 격렬하고 강렬한 입맞춤을 반복해서 할 필요가 있었을까요? 이것은 유다의 의로가 아니라 사탄의 의도였습니다. 이때 유다는 완전한 사탄의 도구였기 때문입니다. 사탄은 가룟 유다로 하여금 아주 비열한 입맞춤을 하게 하여 예수님의 감정을 아주 상하게 하려 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감정이 흐트러져 혹시 죄라도 범하면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더라도 우리를 위한 대속의 십자가가 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3) 예수님의 침착한 대응 : “친구여~”

 

 그러나 가룟 유다의 이런 비열한 입맞춤에 대하여 예수님은 “친구여~”하고 따뜻한 말로 응답하셨습니다. 화를 내지도 않으시고, 이게 무슨 짓이냐며 가룟 유다를 밀치지도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가룟 유다를 불쌍히 여기시고 “친구여, 지금 네가 무슨 일을 하러 왔느냐?”하고 물으셨습니다. 한글 개역성경에는 “지금 네가 하려는 일을 속히 하라”는 뜻으로 번역되어 있으나, 그보다는 “친구여 네가 이 일을 꼭 했어야 했느냐?”하는 안타까움이 담겨 있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가룟 유다를 끝까지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끝까지 그가 회개하고 돌아오기를 바라셨습니다.

 

 무엇이 그로 하여금 이토록 철저하게 예수님을 배반하게 하려 한 것일까요? 돈 때문이었을까요? 아니면 마태복음 26:1~16 큐티의 묵상포인트 6번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예수님으로 하여금 로마에 저항하도록 하기 위한 그의 고육지책이었을까요? 무엇 때문에 그렇게 했든 간에 그는 이 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일을 가장 앞장서서 방해한 사탄의 도구가 되어버렸습니다. 예수님 말씀대로 그는 차라리 나지 않은 것만 못한 사람이 된 것입니다.

 

 

4. 절정의 시간이 지난 후의 허무함

 

 예수님을 배반하려는 가룟 유다의 악행은 아주 비열하게 예수님과 입맞춤을 할 때 그 절정을 이루었습니다. 그때만 해도 가룟 유다는 자기가 하는 일이 아주 잘하는 일이라 여겼습니다. 그는 아주 당당했습니다.

 

1) 가룟 유다에게 일어난 반전

 

 그러나 바로 그 다음 순간 예수님이 군인들에게 붙잡혀 끌려가셔서 가룟 유다의 일이 끝났을 때 반전이 일어납니다. 가룟 유다의 악행이 예수님과의 입맞춤으로 최고의 절정에 이르렀을 때입니다. 뒤에 있던 군인들과 깡패들이 예수님을 붙잡자 가룟 유다의 역할은 끝이 났습니다. 그렇게 예수님이 붙잡혀 가기의 역할이 끝난 바로 그 순간 가룟 유다의 마음은 후회와 허무함과 두려움의 마음으로 바뀝니다.

 

2) 악의 절정에서 몰락으로

 

 우리는 이런 일을 다윗의 아들 암논과 그의 이복 여동생 다말과의 사건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암논이 다말을 범하려 할 때 암논은 다말과 사랑을 나누지 않으면 죽을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그가 여동생 다말을 강간하는 그 악의 절정이 끝난 바로 그 때에 갑자기 그 다말이 미워지기 시작합니다. 그는 울부짖는 여동생을 내쫓았고, 그 일로 2년 후 다말의 오빠 압살롬의 칼에 죽임을 당합니다.

 

3) 사탄은 악의 절정의 순간 사람을 파멸로 몰아갑니다.

 

 사탄은 악의 절정에 이르기까지는 사람에게 그 악을 향한 간절함을 갖게 합니다. 하와가 선악과를 따먹기 전까지는 그 선악과를 따먹고 싶은 간절한 열망이 점점 증폭되었습니다. 마귀가 그의 마음에 악을 향한 간절함을 심은 것입니다. 그러나 일단 따먹고 난 후에는 그 악의 절정에 있던 그 즐거움과 쾌락의 자리에는 후회와 번뇌와 두려움만 남습니다.

 

4) 그러나 이 죄악의 순간에도 마지막 회개의 기회는 남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예수님을 이미 배반했고, 그것도 아주 비열한 방법으로 예수님을 고통스럽게 하였을지라도 아직 기회는 하나 남아 있습니다. 예수님 앞에 나와 “주여, 내가 도대체 무슨 짓을 한 것입니까? 내가 용서받지 못할 짓을 했습니다. 이 일을 어찌하면 좋습니까?”하고 눈물로 회개하였더라면 그가 사도의 위치는 회복하지 못했을지 모르나 최소한 지옥에 빠지는 자는 되지 않았을 것입니다.

 

● 묵상 :

 

① 가룟 유다의 최대의 실수 : 회개를 하지 않은 것

 

 가룟유다의 최대의 실수는 예수님을 배반한 것이 아니라, 자살을 한 것입니다. 가룟유다보다 더 악한 일을 행한 자들일지라도 진심으로 회개하면 주께서 이를 받아주십니다. 어떤 일을 한 자이든, 어떤 고통에 처한 자들이든 간에 자살을 해서는 안 됩니다. 자살은 더욱 큰 고통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②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그러므로 주께서 우리에게 시험에 들게 하지 말고, 다만 악에서 구하게 해 달라는 기도를 하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시험에 들지 않도록 영적인 능력을 주시기를 기도하십시오. 늘 주님의 신령한 은혜 가운데 거하여 악에 오염되지 않는 자가 되도록 기도하십시오. 그러다 혹시 가룟 유다처럼 죄를 범하였을지라도 다시 회개할 수 있는 자는 되게 해 주시기를 기도하십시오.

 

 

5. 스스로 붙잡히신 예수님


 예수님은 스스로 그 곳으로 오셨고, 스스로 붙잡히셨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처럼 지금이라도 아버지께 구하여 하늘에 있는 천사들을 모두 동원하실 수 있는 권세를 가지신 분이지만, 그 권세를 사용하지 않고, 연약한 보통의 사람들처럼 순순히 그렇게 포박을 당하고 끌려가셨습니다. 그래야 성경에서 말씀하신 대로 세상 만민이 구원을 받는 일이 일어나게 때문입니다. 우리를 향한 그 사랑으로 가룟 유다의 그 비열한 입맞춤도 이기셨습니다.

 

 주께서 이 모든 것을 이기시고 십자가의 고난의 모든 일을 다 마치셨기에 가룟 유다와 다름없는 우리도 감히 천국을 소망할 수 있는 자들이 되었습니다. 우리도 죄 없는 자로 여김받고 하나님의 의를 선물로 받아 주님과 더불어 영생을 누릴 수 있는 자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가 아직 남아 있습니다. 주께서 그 모든 고난을 통해 이루신 천국의 복음을 전할 책임이 우리에게 남아 있습니다. 천국을 향한 길은 이미 열렸습니다. 누구든 예수님이 이름으로 불리기만 하면 그 영광의 나라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우리는 그저 그 길이 있음을 알리고 함께 주님의 나라에 가자고 호소하면 됩니다. 이 일에 참여하는 자들이 됩시다. 먼저 우리들 자신이 주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가 되고, 주변에 있는 사람들에게도 그 기쁨의 예배의 자리에 초청합시다. 그래서 함께 영광의 나라에 들어가자고 호소합시다.



주님


가룟유다처럼

거짓된 일에 빠진 자들이

되지 말게 하옵소서.


항상 변함없이

주님을 사랑하며 섬기는 자

되게 하옵소서.


주께서 십자가의 고난으로

그 영광의 나라에 들어갈 길을
열어 주셨으니
우리도 그 나라에 들어가는 자가 되고

주변의 사람들에게도

그 나라에 함께 들어가는 자가 되자고

전하고 가르치는 자가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