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제목 : 에스라의 절망으로 시작된 대 부흥운동
설교본문 : 느헤미야 8:1~9:3
설 교 자 : 송호영 목사
설 교 일 : 2016년 6월 19일
최근 우리는 좌절에 빠진 사람들의 이야기를 매주 뉴스를 통해 듣고 있습니다. 많은 경우에 좌절은 의욕을 잃게 만들어서 더 깊은 절망의 늪에 빠지게 합니다.
오늘 우리가 볼 말씀 역시 좌절에 빠진 사람의 이야기입니다. 이 사람 역시 좌절에서 극복하지 못하고 더 깊은 절망의 늪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의 좌절과 절망으로 인해 한 민족이 신앙의 대 부흥운동이 일어납니다. 그 사람이 바로 바벨론에 포로 되었던 자를 두 번째로 예루살렘으로 인도했던 에스라입니다.
우리는 오늘 에스라의 좌절이 다른 사람의 좌절과 어떻게 다른지, 그가 좌절하고 절망한 것이 어떻게 해서 포로에서 돌아온 이스라엘 백성의 신앙의 부흥의 계기를 만들었는지를 살펴볼 것입니다.
1. 때로 선지자도 좌절합니다
1) 13년 동안 에스라에 대한 기록이 없는 이유
에스라가 에스라서 9장에서 백성들 앞에서 여호와의 율법을 낭독하여 준 후에 백성들의 삶을 개혁하는 여러 일들을 행하였었는데, 그 후로 느헤미야가 와서 성벽을 건설하기까지 13년 동안 에스라에 대한 기록이 전혀 없습니다. 느헤미야가 와서 성벽을 건설하는 동안 산발랏과 도비야 일당의 공격을 막아내면서 다른 한편으로 농사까지 지어가면서 52일 만에 성벽을 건설하는 동안에도 에스라에 대한 기록이 없습니다.
그동안 에스라가 어디에서 무엇을 했는지는 확인이 되지 않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페르시아에 갔다 왔다고 하고, 어떤 사람은 예루살렘에 그냥 머물러 있었다고도 하는데,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그가 어디에 있었든지 간에 에스라는 실망과 좌절에 빠져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는 점입니다.
2) 에스라의 절망과 좌절
에스라가 좌절한 이유는 그가 말씀을 전하였으나 백성들이 전혀 변화되지 않는 모습 때문입니다. 느헤미야 1:3의 말씀은 그동안 에스라가 겪은 고통을 한 구절로 짤막하게 설명합니다. 성벽이 무너져 있으니 주변 나라들의 방해로 예배조차 제대로 드려지지 못했고, 백성들은 다시 이리저리 흩어지기 시작했습니다. 또다시 집이 불타서 예루살렘은 사람이 살지 못할 곳이 되어버리고 말았습니다.
학사이며 대제사장인 에스라도 좌절할 수 있습니다. 에스라가 예루살렘에 올 때 과거 솔로몬 성전에 있던 성물들을 가지고 왔습니다. 스룹바벨에 의해 지어진 성전에 그가 가져온 성물이 들어가니 이제 예배드릴 수 있는 모든 조건이 다 갖추어진 것입니다. 그러나 주변 나라가 방해를 놓자 곧 무너지는 백성들을 보고 그는 절망에 빠집니다.
● 선지자도 좌절할 수 있습니다.
① 에스라가 좌절한 이유
에스라는 이스라엘이 바벨론에 포로 된 이유를 잘 알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배반하고 말씀을 멀리했기 때문임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이 다시 회복되려면 하나님께로 돌아와야 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오려면 말씀을 배우고 읽고 묵상해야 합니다. 그래야 자기들이 무엇을 잘못했는지를 알고 회개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에스라가 처음 말씀을 전할 때는 말씀을 듣는 듯 하더니 이런 저런 방해를 받자 말씀 듣기를 거부하고 백성들이 다시 흩어져가고 있습니다. 말씀을 떠나서 포로가 되었는데, 포로가 된 상황에서도 말씀을 떠나면 이젠 죽는 길뿐입니다. 그러니 에스라가 좌절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전하고 외쳐도 듣지 않으니 좌절합니다. 이러면 안 되는데 점점 멸망할 짓들만 하니 절망이 되는 것입니다.
② 열심히 섬기는 자가 겪는 좌절
아예 신앙에 열심이 없는 자들은 백성들이 신앙이 자라지 않는 모습을 보아도 절망하지 않습니다. 자기도 신앙이 없으니 그저 그렇게 바라보는 것입니다. 에스라처럼 백성들을 변화시키려는 열정을 가진 자들이 이런 좌절을 겪습니다.
이런 좌절은 겪는 본인에게 큰 고통이 되지만, 하나님 보시기에는 이 좌절이야말로 하나님의 택한 백성임을 가장 분명하게 보이는 것입니다. 혹시 에스라처럼 주님을 바로 섬기지 못해 아파하고 고통스러워하고 있다면 하나님께서는 이런 것을 크게 기뻐하신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2. 하나님의 말씀을 향한 백성들의 간절함
그런데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에스라를 좌절과 절망에 빠지게 할 만큼 포로에서 돌아온 유다 백성들이 말씀을 멀리했는데, 에스라가 말씀을 보자고 해도 도망하기에 바빴는데 그들이 먼저 에스라에게 와서 말씀을 읽어달라고 요청한 것입니다.
1) 말씀을 읽어 줄 것을 에스라에게 요청함(8:1)
성벽 공사가 완료된 후 일곱째 달이 되었습니다. 유대인은 일곱째 달에 새해가 시작됩니다. 백성들은 새해가 시작되는 일곱째 달이 가까이 오자 일제히 수문 앞 광장에 모여 학사 에스라에게 여호와의 말씀을 가져와서 읽어 줄 것을 요청합니다. 선지자가 겪는 좌절과 번아웃에 빠져 있는 에스겔에게 말씀을 읽어 줄 것을 요청한 것입니다.
2) 모든 백성들이 일제히 모여서 : 말씀을 받을 준비가 되어 있음(8:1~2)
백성들이 먼저 모여서 에스라에게 말씀을 읽어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러므로 이 모임은 에스라나 느헤미야가 주관한 것이 아닙니다. 백성들이 스스로 모여서 에스라에게 말씀을 읽어달라고 요청했습니다. 그들이 이렇게 자발적으로 모인 것은 말씀을 듣고자 하는 열망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말씀을 받을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3) 그 율법책에 귀를 기울임 : 말씀에 대한 자세(8:3)
에스라가 말씀을 읽을 수 있도록 급하게 나무로 임시 단상을 만들었습니다. 에스라가 그 위에 올라가서 율법책을 낭독하자 모든 백성이 그 율법책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한 말씀이라도 놓칠 새라 숨죽여 낭독하는 소리에 집중하며 들었습니다.
● 묵상 : 성벽 공사로 받은 은혜를 표현하는 백성들
① 받은 은혜를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간절함으로 표현
에스라가 좌절할 정도로 말씀과 멀리 있던 백성들이 어떻게 이렇게 스스로 모여 말씀을 낭독해달라고 요청했을까요? 느헤미야의 주도로 성벽을 건설하는 동안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했기 때문입니다.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었으나 하나님께서 대적들의 공격을 막아주시고, 비도 내리지 않게 하셔서 그 엄청난 일을 52일 만에 완성하게 하셨습니다.
그들은 그 받은 은혜를 말씀에 대한 간절함으로 표현합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은혜를 주셨으니 이제 그들이 하나님께 응답을 해야겠는데, 무엇으로 응답해야할지 모르니 하나님의 뜻을 알도록 말씀을 읽어달라는 것입니다.
② 우리는 받은 은혜를 무엇으로 표현할 것인가?
이처럼 하나님께 은혜를 받은 자는 은혜를 주신 하나님께 어떤 방식으로든 그 감사를 표현해야 합니다. 그들은 말씀에 대한 간절함으로 표현했습니다. 우리는 받은 은혜를 무엇으로 표현해야 할까? 이번 주 주일 예배를 드리기에 앞서서 주신 은혜를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묵상해봅시다.
3. 말씀에 대한 백성들의 반응
1) 에스라가 책을 펼치자 모두 일제히 일어남(8:5)
아마도 에스라는 마지못해 나왔을 것입니다. 그 모임 자체를 그가 주도하지도 않았을 뿐만 아니라, 그는 전에도 말씀을 읽었지만 아무런 열매가 없었으므로 이번에도 그럴 것이라 여기고 그저 책을 가져와 큰 소리로 낭독하고 있을 뿐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에스라가 책을 펼치자 온 백성이 일제히 일어났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경외감을 표현한 것입니다. 포로 이후 이제까지 이스라엘 백성이 말씀을 낭독할 때 이렇게 일제히 일어난 적이 없었습니다.
2) 아멘으로 응답하고 엎드려 여호와께 경배함(8:6)
그가 책을 펼친 것을 보고 온 백성이 일제히 일어나자 학사 에스라는 여호와 하나님께 찬양했습니다. 에스라가 하나님의 은총을 찬양하자 온 백성이 “아멘 아멘”하고 응답하며 몸을 굽혀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려 여호와께 경배했습니다.
3) 에스라는 낭독하고 레위인은 말씀을 설명해주고(7절)
에스라가 단 위에서 성경을 낭독할 때 에스라의 오른쪽에는 여섯 명이, 왼쪽에는 일곱 명이 서 있었습니다. 그리고 단 아래에는 레위인들이 백성들 사이를 돌아다니며 에스라가 낭독하는 말씀이 무엇인지 백성들에게 설명하여 주었고, 혹시 이방 지역에 살다가 히브리어를 잊은 자들이 있다면 그들이 아는 이방의 언어로 통역을 해주기도 했습니다.
4) 말씀을 깨닫고 크게 기뻐함(8:8, 12)
이렇게 에스라는 낭독하고 레위인들이 설명해주니 백성들이 그 말씀을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말씀을 깨닫고 그들이 저지른 죄가 얼마나 큰지 알게 되자 그들은 통곡을 하며 울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느헤미야와 제사장 에스라가 그날은 여호와의 성일이니 그들이 죄를 지었음을 인하여 근심하지 말고 여호와로 인하여 기뻐하라고 외치자 백성들은 곧 그 말씀에 순종하고 크게 기뻐합니다.
4. 이날은 여호와의 성일이니 근심하지 말고 기뻐하라
1) 이날은 성일이니 여호와를 인하여 기뻐하라(8:10)
“이 날은 여호와의 성일이니 기뻐하라” 그들이 죄를 고통스러워하며 슬퍼할 때 주께서 이미 그들의 죄를 용서하셨습니다. 그들이 말씀을 듣기를 사모했고, 말씀이 낭독될 때 일제히 일어났으며, 에스라가 찬양할 때 엎드려 경배했고, 말씀을 통해서 죄를 깨달을 때 통곡하며 회개하였으니 죄가 용서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의 죄를 용서해주신 하나님께 큰 기쁨과 즐거움으로 영광을 올리라는 것입니다.
2) 이것이 너희의 힘이니라(8:10)
여호와를 즐거워하는 것이 우리의 힘입니다. 여기에서 ‘힘’이라는 것은 ‘방파제’를 뜻합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은 여호와를 즐거워하는 자를 하나님께서 지키시고 보호하신다는 뜻합니다. 나의 업적을 자랑하며 즐거워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자랑하며 기뻐합니다. 솔로몬처럼 자기가 만든 성전을 보고 자랑하며 기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나의 죄를 용서하시니 기쁘고, 나를 사랑하시니 기쁘고, 나에게 새 생명을 주셨으니 기쁜 것입니다. 이런 자를 하나님께서 보호하시니, 하나님을 기뻐하는 것이 곧 우리의 힘인 것입니다.
3) 함께 먹고 마시며 크게 즐거워함(8:12)
느헤미야와 에스라가 살진 것을 먹고 단 것을 마시며 기뻐하라고 하자 온 백성이 살진 것을 단 음료를 함께 나누며 크게 즐거워했습니다.
● 묵상 : 예배는 메시야잔치 :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라
많은 사람들이 예배드릴 때 회개의 기도를 합니다. 그래서 예배드리는 자의 얼굴이 장례식에 참여한 자들처럼 엄숙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풀어주신 은혜를 기뻐하며 감사하는 자리에 웬 장례식 분위기입니까?
예배를 다른 말로 메시야잔치라고 합니다. 마지막 때에 주와 함께 마지막 어린양의 혼인잔치에 참여하는 그 기쁨을 오늘 이 예배를 통해 표현하는 것입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입니다. 아직 내 눈에는 그날의 그 영광스러운 모습이 보이지 않지만, 믿음으로 우리는 마치 사진을 보는 것처럼 그 광경을 바라봅니다. 그 기쁨을 표현하는 자리가 바로 예배입니다.
5. 말씀에 따라 초막절을 지킴
1) 율법 책에서 초막절의 절기에 관한 것을 발견함(8:14~15)
그들은 말씀을 계속 듣다가 바로 그 때인 일곱째 달에 있는 절기에 대한 말씀을 듣습니다. 모든 이스라엘 백성은 한 해가 시작되는 일곱째 달에 한 주간 동안 초막에서 지내라는 말씀을 듣습니다.
2) 초막절을 지킴 : 말씀에 대한 즉각적인 순종(8:16)
그들은 그 말씀을 들은 즉시 나뭇가지를 가져다가 혹은 지붕 위에, 혹은 뜰 안에, 혹은 하나님의 성전 뜰에, 혹은 수문 광장에, 혹은 에브라임 문 앞 광장에 초막을 지었습니다. 그들은 온 백성이 율법에 기록된 대로 초막절이 지켜지는 것을 보고 모두 함께 크게 기뻐했습니다.
3) 순종의 결과로 온 큰 기쁨(8:17)
말씀대로 순종하니 그들 마음에 큰 기쁨이 솟아오릅니다. 이 기쁨은 세상 것을 얻었을 때 느끼는 기쁨과 그 차원이 다릅니다. 하나님께 용서받은 자의 기쁨,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자의 기쁨, 나뿐 아니라 저 사람도, 이 백성 모든 자들이 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것을 바라보는 자의 기쁨입니다.
● 묵상 :
① 이 일을 위하여 에스라는 13년 동안 절망 가운데 있었습니다.
이 일은 에스라가 13년 동안 좌절과 절망을 겪으면서도 그 믿음을 포기하지 않고 하나님께 간구하여 기도한 열매입니다. 그가 그 절망 속에서도 하나님께 기도하니 예루살렘에 대한 소식이 느헤미야에게 전달되었고, 하나님께서 느헤미야와 페르시아 황제 아닥사스다 왕의 마음을 감동시키셔서 이 일이 이루어지게 된 것입니다.
② 나의 오늘의 아픔이 어떤 열매로 다가올지를 생각해보십시오.
모세가 미디안 광야에서 40년 동안 지내며 고통을 받았기에 애굽에 노예로 있던 이스라엘 백성을 출애굽시키는 일에 사용될 수 있었고, 다윗이 사울에게 쫓기는 10년의 고통이 있었기에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왕이 될 수 있었습니다. 오늘 당신의 아픔이 장차 어떤 열매를 맺기 위한 것인지 모릅니다. 그러나 선하신 하나님께서 오늘의 아픔을 통해 아름다운 열매를 맺게 하시리라는 것을 믿으십시오. 그 믿음으로 참고 견디십시오. 아플 때에는 에스라처럼 기도하며 견디는 것입니다. 견디는 것도 믿음입니다.
6. 이스라엘 백성들의 자발적인 회개의 모임
1) 그달 24일에 이스라엘 자손이 다 모여 금식하면서(9:1)
7월 15일부터 22일까지의 초막절 절기를 마친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다음날 하루만 쉬고 이틀째인 24일에 또다시 모여 아침부터 저녁까지(해가 떠 있는 동안) 하루를 금식하며 굵은 베옷을 입고 머리에 흙먼지를 뒤집어쓴 채 하나님 앞에 회개하며 기도합니다. 제사장 에스라나 총독 느헤미야가 그 누구도 이 일을 하라고 지시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그들 스스로 하나 둘 모인 것이 이렇게 온 백성이 모여 자발적으로 회개하는 엄청난 일이 일어난 것입니다.
2) 이방인과의 관계를 끊고(9:2)
이방인과의 관계를 끊는 일은 이미 13년 전에 있었던 일입니다. 에스라 9~10을 보면 에스라의 주도에 의해 이방인과 결혼한 자들이 그들을 내보내고 하나님의 백성 된 순결함을 회복하자고 했습니다. 그때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하기로 다짐했으나 그 일에 반기를 든 사람도 많았습니다. 에스라의 실망과 좌절은 백성들의 이런 모습에도 영향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때로부터 13년이 지난 지금 누가 뭐라고 하지도 않았는데도 이제는 스스로 자발적으로 하나님 앞에 이방인과의 모든 관계를 다 끊겠노라는 다짐을 합니다.
3) 고난의 유익 : 이것이 바로 70년의 바벨론 포로의 결과입니다.
예레미야서와 에스겔서를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에 망하기 전에 얼마나 큰 죄를 범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은 참으로 말하기 민망한 죄들을 백주 대낮에 공공연하게 지었습니다. 그리고 누구든 자기들의 죄를 지적하는 자가 있으면 듣기 아예 그 말 하는 자를 죽이기까지 했습니다.
그러나 지금 그들 스스로 금식하며 회개하고, 그들 스스로 이방인과의 모든 관계를 끊겠다고 다짐하고 있습니다. 이 일은 참으로 놀라운 일입니다. 70년의 포로 생활 이후, 성전 건설과 성벽 건설의 과정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한 이들이 하나님 앞에 모여 스스로 회개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고난의 유익입니다. 그래서 이런 것을 가리켜 ‘광야학교’라고 합니다.
● 묵상 : 금식하며 회개하고, 금식하며 말씀을 듣고
하나님 앞에 하는 금식의 초점은 음식을 먹지 않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내 마음의 간절함을 표현하는데 그 초점이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많은 경우에 그저 음식을 먹지 않는 것에만 마음을 쏟습니다. 음식을 먹지 않기만 하고 다른 경건의 일들을 하지 않는다면 다이어트를 위한 금식과 차이가 없습니다.
또 금식하다가 보리차만 마셔도 그날 금식은 소용없는 일이라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온전한 금식을 하면 더 좋겠지만, 중요한 것은 내가 육신의 즐거움을 참고 하나님께 더 가까이 나아가려는 마음을 보이는 것이니, 깜빡 잊고 무엇을 먹거나 마셨더라도 그냥 그대로 그날의 금식을 진행하면 됩니다.
7. 이스라엘 백성들의 회개의 집회의 과정
1) 율법을 듣고 찬양하고(9:3)
낮 사분지 일은 율법책을 낭독하는 것을 듣고, 낮 사분지 일은 하나님 앞에 경배하였습니다. 낮 사분지 일은 3시간을 뜻하는 것이니, 이들은 오전 6시~9시까지 3시간 동안은 서서 율법책을 낭독하는 것을 듣고, 오전 9시부터 12시까지 3시간 동안은 하나님께 경배한 것입니다. 금식한 상태에서 꼬박 3시간 동안 서서 낭독하는 말씀을 듣고, 또 다시 꼬박 3시간 동안 서서 하나님께 경배하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이들 모두 자발적으로 이 일을 행합니다.
2) 레위 사람들이 나와서 하나님께 고백문을 읽음
이렇게 자발적으로 금식하며 회개하는 사람들이 하나 둘 모이다 온 이스라엘 백성이 다 모여 회개하기에 이르자 레위 사람들이 단 위로 올라와 지난날의 일들을 회고하는 고백문을 하나님께 올려드립니다. 이 고백문은 문서로 작성되어 하나님께 자신의 이름을 서명하여 맹세하는 증거자료로 사용될 것입니다.
8. 정리 : 좌절과 절망을 하려면 제대로 하십시오.
1) 절망 중에도 결단코 말씀을 놓아서는 안 됩니다.
적당히 좌절하다 중단하지 말고 기왕에 좌절과 절망을 하려면 제대로 하십시오. 내가 이 아픔과 고통을 겪는 이유를 알 때까지 깊이 고민하고 갈등하십시오. 그러나 어떤 좌절이든 어떤 절망이나 고통이든 간에 우리가 한 가지 기억해야 할 것은 그 절망의 자리에서도 말씀은 결단코 놓치지 말아야 한다는 점입니다.
2) 고난의 현장에서도 말씀을 붙잡은 자들의 열매
사무엘은 죽는 날까지 이 일을 계속했습니다. 그러나 사무엘은 그가 힘써 말씀을 전한 열매를 보지 못하고 죽었으니, 사무엘은 혹시 자기는 실패했다고 생각했을지 모르나, 그가 평생 말씀을 전한 열매가 바로 다윗입니다.
다윗은 사울에게 10년 동안 쫓겨 아둘람 굴에서 살 때에도 말씀을 놓지 않았습니다. 사무엘 역시 말씀이 희귀한 시대에 한 사람이든 두 사람이든 그에게 찾아오는 사람에게 계속해서 말씀을 전했습니다.
3) 에스라 역시 좌절과 절망 중에도 계속 말씀을 붙잡고 있었으므로
대 부흥운동을 일으키는 자가 될 수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에스라를 찾아가서 말씀을 읽어줄 것을 요청한 이유는, 그가 좌절하고 있던 중에도 늘 말씀을 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가 항상 말씀을 보고 있는 것을 백성들이 보고 있었습니다. 그저 보고만 있으니 에스라가 좌절했던 것이지만, 그동안에 하나님께서 백성들 마음에 말씀을 받을 만한 마음을 일으키셔서 말씀을 전할 기회를 갖게 하신 것입니다.
4) 그러므로 즐거울 때나 고통 중에나 하나님의 말씀을 놓치지 마십시오.
어떤 사람은 내가 지금 고통 중에 있으니 말씀 보기 어렵다고 하지만, 반대로 고통 중에는 말씀을 보다가 막상 고통이 떠나고 즐거움이 오자 신앙이 느슨해져서 시험에 드는 경우도 있습니다. 고통도 즐거움도 우리에게 시험거리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어떤 일이 닥쳐오든지 말씀을 붙잡고 사는 자들은 능히 이길 수 있습니다.
주님
이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그 능력과 권세를 믿게 하옵소서.
그 능력으로 오늘도
우리를 지키시고 보호하시는
분이심을 믿게 하옵소서.
주께서 주신 말씀으로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되는 것도
믿게 하옵소서.
에스처럼
좌절과 절망에 빠졌을 때에도
은혜의 자리를
떠나지 말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