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제목 : 깨어 있으라. 믿음에 굳게 서라
설교본문 : 고린도전서 16:13~24, 시편 73:1~28
설 교 자 : 송호영 목사
설 교 일 : 2018년 2월 18일
성경을 보면 “깨어 있으라”하는 말을 참 많이 봅니다. 예수님도 겟세마네 동산에서 잠에 빠진 제자들에게 졸지 말고 깨어 있으라고 하셨고, 바울도 깨어 있으라는 말을 자주 합니다. 어떻게 하는 것이 깨어 있는 것입니까? 잠을 자지 말라는 말은 분명 아닙니다. 오늘은 우리가 지난주에 큐티한 말씀 중에서 깨어 있으라는 바울의 말을 중심으로 말씀을 전하도록 하겠습니다.
제 1 부 : 깨어 있으라. 믿음에 굳게 서라
1. 깨어있으라. 믿음에 굳게 서라(고전 6:13)
바울은 고린도전서를 마감하면서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신앙을 잃지 말라는 당부를 하며 다음과 같은 주님의 명령을 전합니다.
1) 깨어있으라
깨어있으라는 말은 종말론적인 명령으로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는 삶을 살라는 뜻입니다.
주님의 재림을 기다린다는 것은 항상 다음과 같은 일들을 기억하며 사는 것을 말합니다.
① 종말론적인 긴장을 늦추지 말라
만일 주께서 오늘 밤에 오신다면 나는 오늘 하루가 가기 전에 회개하여 나의 영을 정결케 하고, 주님의 거룩한 것을 내 안에 채워주실 것을 간구하는 기도를 해야 할 것입니다. 또 세상 욕망이나 유혹에 대해서도 긴장감을 가지고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이렇게 사는 것을 ‘종말론적인 삶’이라고 말합니다. 이렇게 종말론적인 긴장을 늦추지 말고 살아가십시오. 이것이 깨어 있는 것입니다.
② 영을 분별하며 살라
마지막 때에 거짓 선지자, 거짓 복음, 거짓 교리들이 판을 칠 것입니다. 가짜가 진짜 행세를 하며 교회와 성도들을 혼란케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무엇보다도 영을 분별하며 살아야 합니다. 이것이 성령으로 말미암은 것인지, 악마가 거짓을 꾸며낸 것인지를 구별해야 합니다.
③ 자신의 신앙의 상태가 형편을 분별하며 살라 : 영적인 각성
나에게 다가오는 자의 영을 살펴야 할 뿐만 아니라, 나 자신의 영적인 상태를 살피면서 살아야 합니다. 주님 보시기에 지금 나의 형편이 어떤지, 나는 참되게 살아가고 있는지, 무엇보다도 내 안에 깊숙한 곳에 도사리고 있는 마음의 열망이 무엇인지, 내가 집착하고 있는 것은 무엇인지를 살펴야 합니다.
④ 다가오는 영적인 전쟁을 위한 준비태세를 갖추라
오늘날도 매우 혼란스러운 시대입니다만, 주께서 오시는 날이 가까이 올수록 더욱 더 혼란스러운 세상이 될 것입니다. 다가오는 영적인 전쟁을 위한 준비태세를 갖추십시오. 말씀과 기도의 훈련에 참여하십시오. 매일 말씀을 묵상하십시오. 그리고 정기적인 집회에 참여하십시오.
● 묵상 : 이것이 깨어 있는 것입니다.
새벽부터 밤까지 쉬지 않고 공부하고 일하고 있을지라도, 세상일에 분주하여 영적인 긴장을 잃어버리고 사는 자는 게으른 자요 잠에 빠진 자입니다. 영적 긴장감을 잃지 않은 자, 나에게 들려오는 저 소리가 참된 진리인지 아닌지 그 영의 상태를 분별하고 자신의 영적인 상태를 항상 분별하며 사는 영적 각성의 상태를 유지하며 사는 것이 깨어 있는 것입니다.
2) 믿음에 굳게 서라
마치 전쟁에 참여하는 군인이 적의 공격으로부터 진지를 사수하며 지키는 것처럼, 믿음의 자리를 포기하지 말라고 지키라는 것입니다. 앞으로 다가오는 혼란의 때를 대비하여 미리 영적인 훈련을 받으십시오. 그리고 어떤 시련이나 고난이나 시험에 드는 일이 있을지라도 결코 믿음의 자리를 포기하지 마십시오.
3) 남자답게 강건하라
바울이 남자답게 강하고 담대하게 살라고 말한 것은, 고린도교회의 남자들이 여성스럽다는 뜻이 아닙니다. 그 시대가 그리스도인들을 핍박하는 시대였으므로 남자나 여자나 간에 강하고 담대하게 살라는 뜻입니다. 자신이 용기 있는 자임을 스스로 나타내 보이라는 것입니다. 나는 이 땅에서 이미 천국 백성이 된 자임을 믿고, 강하고 담대하게 살라는 것입니다. 돈 없고 사회적인 지위가 낮아도 나는 천국백성임을 잊지 말라는 것입니다.
● 묵상 :
초대교회 성도들은 핍박의 시대였으므로 바울의 이 권면이 실질적으로 피부에 와 닿는 말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도 점차로 힘들고 어려운 시대를 만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다가오는 혼란의 때를 대비하여 영적으로 미리 준비하며 사는 성도가 됩시다.
2. 조용히 헌신하며 섬기는 자들을 인정하고, 그들에게 순종하라(고전 6:16)
바울은 스데바나의 가정과 브드나도, 아가이고와 같은 사람들을 언급합니다. 우리는 이 사람들에게 대하여 잘 알지 못하지만, 바울은 이들이 항상 말없이 헌신하며 섬기는 자들이라고 소개하며, 이들의 노고를 인정하고 그들의 말에 순종하라고 권면합니다.
● 수고하는 모든 사람들 : 지칠 정도로 헌신한 자들
여기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단어가 있습니다. ‘수고하는(코피온티)’은 입에서 단내가 날 정도로 일을 해서 한 발자국도 더 나갈 수 없을 만큼 일한 것을 가리킵니다. 로뎀나무 아래서 차라리 죽기를 구했던 엘리야나, 광야에서 끝없이 불평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보고 지쳐서 차라리 죽게 해 달라고 간구했던 모세가 바로 이런 경우에 해당합니다. 번아웃이 될 정도로 처절하게 일한 이들이야말로 하나님 앞에 가장 헌신된 사람입니다.
● 묵상 : 수고하는 자에게 순종하십시오.
흔히 직책이 높은 자의 말은 나보다 높은 직책에 있으니 순종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여기지만, 조용히 헌신하는 자들은 조금 하대하며 대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오히려 말없이 헌신하는 자들의 말을 더 두렵게 여겨야 합니다. 주께서 그들을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런 자들이 무슨 부탁을 하거나, 그들이 일하는 과정에서 무슨 협조를 요청하면 그것을 주님의 명령으로 듣고 순종하는 자가 되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주께서 이들을 더 귀하게 여긴다는 뜻입니다. 사람들은 무슨 큰 공로를 세운 자를 귀하게 여기지만, 하나님께서는 주를 위해 지칠 만큼 일한 자를 귀하게 여기십니다. 지쳐서 더 이상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러도 결코 주님을 섬기는 일을 떠나지도 않고 포기하지도 않는 자, 이런 자를 주께서 기뻐하십니다. 차라리 죽여달라고 기도하다 지쳐서 잠에 빠진 엘리야를 천사가 와서 시중들었던 것을 기억하십시오.
3. 축도와 함께 선포되는 저주의 선포와 마라나타(고전 6:22)
바울은 마지막 축도를 하기에 앞서 “주님을 사랑하지 않는 자들은 저주를 받을지어다”하는 말과, “마라타나(주 예수여 어서 오시옵소서)”하는 말을 합니다. (개역성경에는 22절이 “주께서 임하시느니라”로 되어 있지만, 헬라어 원어에는 이 말이 ‘마라나타(주여 어서 오시옵소서)’로 되어 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복을 선언하는 축도와 함께 선포되었다는 것은 대단히 의미 있는 말입니다.
주님을 사랑하지 않는 자들에게 저주를 선언한 것은, 주님을 사랑하라는 경고이고, 마타나타(주 예수여 어서 오시옵소서)는 주의 다시 오심을 기억하며 살라는 경고입니다. 하나님의 복은 바로 이런 경고를 기억하며 주님을 사랑하고 주의 오심을 기다리는 자에게 내려지기 때문입니다.
● 묵상 :
초대교회 성도들이 ‘마라타나’를 인사말로 사용했다는 것은 그들이 그만큼 영적인 긴장감을 유지하며 살았다는 것을 뜻합니다. 이렇게 영적인 긴장감을 잃지 않고 살았으니 그 참혹한 시련에도 능히 이기는 능력의 성도가 될 수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그들처럼 영적인 긴장을 잃지 않는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제 2 부 : 시련을 이긴 믿음의 예 : 아삽의 시(시련 73편)
4. 의인의 고난과 악인의 형통함을 보고 실족할 뻔한 아삽
1) 믿음의 고백 : 하나님은 이스라엘 중에서도 정결한 자에게 선을 행하시는 분(시편 73:1)
다윗 시대의 성가대장이었던 아삽은 “하나님은 이스라엘 중에서도 마음이 정결한 자에게 선을 행하시는 분”이시라고 고백합니다. 여기에서 ‘이스라엘’은 ‘하나님께서 택하신 그의 백성’이라는 뜻합니다. 그 믿음을 인정받은 하나님의 백성들 중에서도 특별히 마음이 정결한 자라면 얼마나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받겠느냐는 것입니다.
2) 그러나 악인의 형통함을 보고 거의 실족하고 미끄러질 뻔하였다(시편 73:2~3)
그러나 세상의 형편을 보면 이와는 정반대의 모습입니다. 하나님을 바르게 섬기는 의인들을 날마다 재앙을 당하며 징벌을 받는 것처럼 고통 속에서 살아가는데, 악인들은 언제나 평안하고 형통하며 살고 있습니다. 마치 하나님의 모든 복을 악인들이 다 받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이런 세상의 현실을 보고 아삽은 거의 신앙을 잃어버릴 뻔했다고 고백합니다.
3) 그들은 이 땅에 사는 동안 재앙도 질병도 갈등도 없다(시편 73:4~5)
악인들은 이 땅에 사는 동안 사람들이 으레 당하는 재앙도 없고 질병도 없습니다. 그들은 흉년이니 홍수가 와도 염려 없고, 전염병이 돌아도 당하지 않습니다. 심지어 악인들은 마음에 갈등도 없습니다. 가족끼리도 더 평안한 것처럼 보입니다. 재물이 풍족하여 염려할 것이 없으니 짜증낼 일도 서로 다툴 일도 적습니다. 더구나 혹시 악을 행하였을지라도 죄책감이 없으니 마음에 갈등조차 없습니다.
4)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으니 마음 놓고 교만과 능욕과 폭언과 폭력을 일삼는다(시편 73:6~9)
여기에서 말하는 악인은 살인자 같은 흉악범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자가 시편에서 말하는 악인입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으니 마음 놓고 교만한 마음을 품습니다. 자기보다 못한 자를 멸시하는 말을 두려움 없이 내뱉습니다. 폭언과 폭력을 일삼습니다. 아무리 악한 일을 해도 그저 자기에게 이익이 되기만 하면 그만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을 두려워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5) 그러면서도 악인은 항상 평안하고 재물은 더욱 늘어나기만 한다(시편 73:12)
자기에게 이익이 되기만 한다면 폭력을 행사하기까지 하고, 연약한 자를 능욕하기를 일삼는 자들이지만, 그들은 항상 평안하고 그들의 재물은 더욱 늘어나기만 합니다.
6) 하나님의 백성마저 그들에게 미혹되어 넘어지고 있다(시편 73:10~11)
이렇게 악인이 형통하고 잘 되기만 하니 하나님의 백성들마저 그들에게 미혹되어 “하나님이라도 땅의 일들을 다 알 수 있지는 않겠는가?”하며 그들의 악한 행동에 빠져들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도 그들처럼 뇌물을 받고, 부정직한 상행위를 하고, 연약한 자들에게 폭언과 폭력을 행하는 일을 하는 일이 점차 늘어납니다.
7) 아삽의 한탄 : 내 마음을 깨끗하게 하며 사는 일이 다 헛된 일이 아닌가(시편 73:13~14)
세상의 이런 모순된 모습을 보고 아삽은 “내가 내 마음을 깨끗하게 하며 내 손으로 죄를 짓지 않고 깨끗하게 살아온 이 모든 것이 다 헛된 일이라는 말인가?”하며 한탄을 합니다.
● 묵상 :
① 아삽의 위기 : 나는 종일 재난을 당하며 아침마다 징벌을 받는도다(시편 73:14)
아삽이 지금 당하고 있는 아픔이 무엇인지 밝히고 있지 않으니 알 수 없습니다만, 아삽은 지금 종일 재난을 당하며 아침마다 징벌을 받고 있다고 고백합니다. 아삽이 평안하다면 악인들의 형통함에 실족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자기는 하나님을 열심히 섬기고 있음에도 고통 중에 있는데, 저 악한 사람들은 악을 밥 먹듯 행하면서도 늘 평안하기만 하니 시험에 들고 있는 것입니다.
② 여기에 믿음이 필요합니다.
바로 여기에 믿음이 필요합니다. 가인이 하나님께 저주를 받아 쫓겨난 후 세운 것이 바로 ‘성(城, 도시)’였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가인은 도시를 세웠는데 하나님의 백성인 셋의 후손은 시골에서 지극히 평범한 삶을 살았습니다. 사람이 보기에 더 평안하게 보이는 풍성한 삶이 사실은 복이 아니라 저주일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그 풍성함이 더욱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게 하기 때문입니다.
5. 성전에서 악인의 종말을 깨달음
1) “나도 그들처럼 살아볼까”하는 고민으로 고통 받는 아삽(시편 73:15~16)
아삽은 “나도 그들처럼 살아볼까?”하는 생각을 했었다고 솔직하게 고백합니다. 나도 눈 찔끔 감고 한 번 저 악한 사람처럼 멋있게 살아볼까? 나도 그들처럼 악으로 재물을 모아 풍성하게 한 번 살아볼까? 그러나 그렇게 하면 하나님께 배반하는 일이 됩니다. 고통 중에도 지금까지 잘 견뎌왔는데 이제 와서 하나님께 배반할 수는 없습니다.
2) 하나님의 성소에 들어갈 때에야 악인의 종말을 깨달았다(시편 73:17~18)
아삽은 눈이 쑥 들어갈 정도로 마음에 심한 고민을 하다 하나님께 하소연을 하기 위해 성전에 들어갑니다. 아삽은 성전에 들어갈 때에야 악인의 종말이 어떠하리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이 땅에서는 악인이 더 평안하게 살지 모르나, 그들의 마지막은 파멸에 급히 빨려 들어가는 곳이 될 것입니다. 악인의 마지막은 멸망으로 빠져 들어가는 아주 미끄러운 곳이 될 것입니다.
3) 악인은 꿈처럼 사라져 버릴 것이라(시편 73:19~20)
마지 잠에서 깨면 꿈이 다 사라져버리듯 악인들 역시 그렇게 사라져버릴 것입니다. 그들이 이 땅에서 얼마나 재물을 모으며 떵떵거리며 살았는지 기억하는 사람조차 없을 것입니다. 오직 끝이 없는 파멸과 멸망이 있을 뿐입니다.
6. 아삽의 회개와 믿음의 회복
1) 내 마음이 산란하며 내 심장이 찔렸나이다(시편 73:21~22)
하나님 앞에서 악인의 처참한 종말을 깨달은 아삽은, 잠시라도 자기가 악인의 형통함을 질투하며 실족할 뻔한 죄를 고백합니다. 자신이 잠시 마음이 산란하며 그의 심장(양심)이 크게 흔들렸었다고 고백합니다. 마치 심장에 칼이 찔리듯 그렇게 큰 아픔이 자신을 감쌌었노라고 고백합니다. 자신의 죄데 대한 이러한 깊은 아픔과 슬픔이 회개입니다.
2) 내가 주와 함께 하니 주께서 내 오른손을 붙드셨나이다(시편 73:23)
그러나 아삽이 주님 앞에 와서 주님의 이름을 부르니 하나님의 오른손이 그를 붙드십니다. 주님의 사랑과 은혜가 그를 둘러싸고 있음을 느낍니다. “아들아 내가 너를 사랑한다”하는 하나님의 음성이 들리는 듯합니다.
3) 주께서 주의 교훈으로 나를 영광으로 인도하시리니(시편 73:24)
아삽은 자신이 따라야 할 것은 세상의 재물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의 말씀임을 깨닫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의 교훈으로 자신을 인도하실 것입니다. 주께서 주시는 그 교훈은 자신을 영원한 영광으로 인도할 것입니다. 악인은 그 있던 자취마저 사라질 것이지만, 주님의 은혜 안에 있는 자신은 영원한 영광의 자리에 들어갈 것입니다.
4) 주 밖에 나의 사모할 자 없나이다(시편 73:25)
그러므로 아삽은 주 밖에 사모할 자 없다고 고백합니다. 주님만 계신다면 더 바랄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돈이야 있다가도 없고 없다가도 있는 것, 그러나 주님이 함께 계신다면 영원한 영광을 얻게 됩니다. 그러니 주님만 계신다면 자기는 더 바랄 것이 없습니다. 주님을 사랑할 수만 있다면 이보다 더 행복한 삶을 없습니다.
이것이 주께서 바라시는 믿음입니다. 다윗이 이런 믿음을 가졌으므로 그에게 큰 죄가 있음에도 예수께서 그를 완전하다고 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가야 하는 신앙의 목표점이 바로 이것입니다. “하나님, 당신의 사랑만으로도 충만합니다. 주께서 나와 함께하신다는 것만으로도 나는 충분히 행복합니다.”
5) 내 육체는 시들어갈지라도 하나님은 영원한 나의 반석이시요(26절)
그렇습니다. 내 육체가 시들어갈지라도 하나님은 여전히 나의 도움이십니다. 내가 가난하고 고통 중에 있을지라도 하나님은 여전히 나를 지키시고 도우시는 분이십니다. 고통은 잠시요 영광은 영원합니다.
● 묵상 : 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시편 73:27~28)
“사람이 먹을 수 있고 마실 수 있으며, 자기가 수고하는 것에서 즐거움을 누리고 있다면,
이것이야말로 하나님께서 주시는 선물이다”(전도서 3:13).
솔로몬은 인생의 마지막에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날마다 먹고 마시는 것만큼 복된 것이 없다고 고백합니다. 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복입니다. 돈이 복이 아닙니다. 세상 권세가 복이 아닙니다. 내가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 내가 날마다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며 기도하며 산다는 것, 하나님을 섬기며 사는 것보다 더 좋은 것은 없습니다.
주님
주의 다시 오심을 기다리며
항상 깨어있는 삶을 살게 하옵소서.
어떤 시련이나 어려움이 와도
결코 믿음의 자리를
포기하지 말게 하옵소서.
주님 오시는 날이 가까이 올수록
더욱 사랑하며 섬기며
헌신된 자가 되게 하옵소서.
이 땅의 일로
마음을 빼앗기지 말게 하옵소서.
이 땅의 일로
하나님 섬기는 일을
멈추지 말게 하옵소서.
우리는 오직
주님을 사랑하며 섬기는 즐거움으로
살아가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