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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 설교문

예배드리러 성전에 올라가며 부르는 노래(2월 23일; 시 120~122편)

작성자송호영|작성시간20.02.25|조회수279 목록 댓글 0

설교제목 : 예배드리러 성전에 올라가며 부르는 노래

설교본문 : 시편 120~122

설 교 자 : 송호영 목사

설 교 일 : 2020223

 

      

서론 : 지난주 설교 요약

 

1) 칭찬 받은 두 교회와 책망 받은 다섯 교회(요한계시록 2~3)

 

  지난주에 우리는 요한계시록 2~3장에서 사도 요한이 아시아의 일곱 교회에 보내는 메시지를 요약하여 살펴보았습니다. 이 일곱 교회 중에서 주께 칭찬 받은 교회는 서머나 교회와 빌라델비아 교회이고, 이 두 교회를 제외한 나머지 다섯 교회는 책망을 받았습니다.

 

2) 그러면 주께 칭찬받기 위해 가난해져야 한다는 말인가?

 

그런데 공교롭게도 주께 칭찬을 받은 두 교회는 가난한 교회였고,

주께 책망을 받은 다섯 교회는 모두 부흥하고 힘 있는 교회들이었습니다.

 

그러면 주께 칭찬을 받으려면 가난해져야만 한다는 말인가, 부자는 절대로 주께 칭찬을

받을 수 없는 것인가?” 혹 어떤 분은 요한계시록 2~3장을 보고 이런 질문을 할 것입니다.


3)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오히려 부자이기에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습니다.

 

 아프리카에 물 없는 마을에 우물을 파려해도 돈이 있어야 합니다. 물이 없는 곳이니 언제든지 물이 나오도록 해야 하는데, 그렇게 하려면 돈이 훨씬 많이 들어갑니다. 누구를 돕는 데에도, 선교를 할 때에도 돈이 있어야 합니다. 교회도 부흥하고 힘이 있어야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습니다.

 

4) 문제는 돈이 생기면 하나님보다 돈을 더 의지한다는데 있습니다.

 

문제는 돈이 생기면 하나님을 잘 찾지 않게 된다는데 있습니다.

돈이 있으니 절박한 마음이 생기지 않는 것입니다. 또 돈이 생기면 교만해지기 쉽습니다.

다윗왕처럼 부자가 되어도 변함없이 주님을 섬기는 자는 참으로 적습니다.

 

또 가난하다고 해서 무조건 주께 칭찬을 받는 것이 아닙니다.

가난한 자가 부자보다 더 절박하게 주님을 찾게 되니까 그렇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만일 가난한 자가 그 마음에 부자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가득 차 있다면,

그래서 그 마음에 주님이 들어갈 자리가 없다면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부자든 가난한 자이든 주님을 간절히 사모하며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주님을 간절히 찾고 부르는 것, 주께 온전한 마음으로 경배하며 영광 돌리는 것,

오직 이것만이 중요합니다.

 

 

1 : 성전에 올라가며 부르는 노래(120)

 

1. 성전에 올라가며 부르는 노래


1) 성전에 올라가며 부르는 노래

 

 시편 120~134편은 성전에 올라가며 부르는 노래입니다. 여기에 보면 주께 예배드리는 자의 간절한 마음이 가슴 절절히 담겨 있습니다. 유대인의 미쉬나 책에 보면 구약의 성도들은 성전으로 나아갈 때 열다섯 발자국을 옮길 때마다 한 편의 시를 부르며 성전으로 나아갔다고 합니다.

 

마침 지난주에 120편부터 큐티를 시작했으니 오늘 그 일부인 120~122편의 말씀을 통해

예배드리기 위해 성전에 올라가는 자의 간절한 심정을 살펴보도록하겠습니다.

 

2) 예배를 드리는 자의 간절함과 감격이 담긴 기도와 노래들

 

이 시들 속에는 고통 중에 부르짖는 기도, 하나님의 도우심을 찬양하는 노래,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찬양하는 노래들이 있습니다.

 

이렇게 예배를 드리기 전부터 하나님의 행하신 일을 기억하고

그 행하신 일을 노래하면서 나아가는 자가 드리는 예배를 하나님께서 받으십니다.

 

묵상 : 당신은 예배드리러 성전에 갈 때에 어떤 마음과 자세로 갑니까?

 

성전에 들어가기 전부터 우리를 도우시는 하나님을 기억하며 기도하고 노래하면서

나아가는 구약의 성도들의 태도를 본받읍시다.

 

 

2. 불의한 세상에서 경건한 자가 당하는 환난

 

1) 시인의 삶의 환경 : 메섹과 게달의 장막(5)

 

그 첫 출발인 120편은 성전을 향하여 나가기 전, 아직 집에 있을 때의 상황을 표현한 시입니다.

 

시인은 자신의 환경이 마치 메섹과 게달의 장막 속에 사는 것과 같다고 말합니다.

메섹과 게달은 아라비아 사막에서 활을 잘 쏘는 부족으로 낙타를 타고 다니면서

약탈과 살인을 일삼는 부족들입니다.

 

시인은 그 흉악한 족속들이 거주하는 장막에서 사는 것과 같다는 것입니다.

늘 분쟁과 싸움을 일으키는 사람들 속에서 고통 받고 있는 현실을 이렇게 표현합니다.

 

2) 싸움을 좋아하는 자들 속에서 홀로 말씀대로 살아가려는 자의 고통(5~7)

 

평화를 싫어하고 말할 때마다 싸우려고만 하는 메섹과 게달의 사람들 속에서

시인은 큰 고통을 당하고 있습니다.

 

분쟁과 싸움을 좋아하는 사람들 속에서 그들과 똑같은 방식으로 살아간다면

별로 어려움을 당할 것이 없습니다. 같이 싸우면 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런 사람들 틈 속에서 말씀대로 경건하게 살아가려니까 고통을 받는 것입니다.

거짓을 말하는 사람들 틈 속에서 진실을 말하니까 어려움이 생깁니다.

술수를 부리고 아첨을 하며 세력을 얻으려는 사악한 사람들 틈 속에서

말씀대로 진실하게 살아가려니까 따돌림과 미움을 받습니다.

 

 

3. 환난을 이기는 믿음

 

1) 여호와여, 거짓된 입술과 궤사한 혀에서 내 생명을 건지소서(2)

 

죄 없이 모함을 당하고, 죄 없이 분쟁에 휘말리고, 약탈을 당하여 가진 것을 잃고,

죄 없이 사악한 자의 모함으로 직책을 잃고 명예까지 실추되는 고통과 고난 속에서

시인은 하나님께 도움을 청합니다.

 

만일 시인이 그를 고통에 빠뜨리는 자들처럼 살았다면

이 고통은 처음부터 일어나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시인의 고통은 타락해가는 세상의 흐름을 거슬러서

오직 하나님만을 바라보며 살려하기에 일어나는 고통입니다.

 

2) 세상이 악할수록 경건한 자들이 더 고통을 받습니다.

세상이 하나님의 말씀에서 멀어져 있을수록 신실한 자들이 더 고독합니다.

 

요즈음 우리 시대의 모습을 보는 것 같지 않습니까?

신실한 사람들을 보기가 어려운 시대,

예배조차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라기보다는

예배에 참여하고 있는 청중들에게 감동을 주는 것이 목적인 예배,

 

이렇게 사람들만 즐겁게 하려는 인본주의의 세속적인 환경 속에서

오직 하나님만을 기쁘시게 해 드리려는 거룩한 열망을 가진 사람들은

고독한 어려움에 빠질 수 있습니다.

 

3) 그러나 이제 그 죄의 현장에서 떠나 은혜의 주님께 나아가게 되었다는 것.

내가 환난 중에 부르짖었더니 여호와께서 내게 응답하셨도다”(1)

 

이스라엘 사람들은 예배드리러 성전에 나아갈 때 이 시를 통해서

자기들이 살고 있는 세상이 이처럼 죄와 악에 가득한 곳임을 고백합니다.

 

세상에는 온통 평화를 싫어하고 싸우기를 좋아하는 사람들뿐입니다.

 

4)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 첫 번째 : 내가 환난 중에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니 내게 응답하셨도다(120)

 

그런데 지금 나는 은혜로 나를 품어주시는 하나님께 예배드리기 위해 성전으로 나아갑니다.

 

내 기도에 응답하신 하나님께 그 감사와 감격과 기쁨을 노래하며

성전을 향하여 첫 발자국을 뗍니다.

 

묵상 : 이 감격으로 예배의 자리에 나아가고 있습니까?

 

예배의 자리에 대한 감격은 예배당과 교회 분위에 대한 감격이 아닙니다.

나를 지키시고 도우시는 하나님을 향한 감사와 감격이어야 합니다.

이 감사와 기쁨이 생기도록 주께 간구하십시오.

 

 

 

2 :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121)

 

4.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꼬

 

1) 시인이 처한 현실 :

 

시련과 역경을 만난 자들은

혹시 나를 이 역경에서 건져내 줄 산처럼 힘을 가진 자가 없을까 주변을 살펴봅니다.

저 사람에게 부탁해볼까, 저런 능력을 가진 자라면 나를 능히 도울 수 있을 텐데

하는 간절한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봅니다.

 

그러나 세상은 내가 겪고 있는 시련이나 역경에 아무런 관심도 없습니다.

내가 힘들다고 아무리 외쳐보아도 들어주는 이도 없고, 가슴 아파하는 이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시인은 더욱 더 깊은 외로움 속에 빠집니다.

더욱 더 깊은 좌절감을 맛볼 뿐입니다.

 

절망 속에서 사람들이 찾는 산 :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1)

 

1절의 ()’은 산 같은 큰 힘을 가진 존재를 의미합니다.

고통에 빠진 사람이 산을 향하여 눈을 든다는 것은

간절한 마음으로 나에게 도움을 줄만한 대상을 바라본다는 뜻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바라보는 산은 당장 나를 도와줄 것처럼 보이는 세상의 능력들입니다.

내가 보기에는 저 힘을 가진 사람이라면 능히 나를 도울 수 있을 것 같지만,

그 힘을 가진 자들은 나에게 관심이 없으니 도움을 줄 리 없습니다.

그러므로 마치 복권에 의지하는 자가 절망하듯

세상을 의지하는 자들이 더욱 깊은 좌절과 절망에 빠집니다.

 

묵상 :

 

때로 예수를 믿는 사람들도 때때로 절망 속에서 극단적인 선택을 합니다.

눈에 보이는 세상의 산, 능력, 세상의 능력을 찾기 때문입니다.

 

2)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 두 번째 :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121)

 

그러나 121편이 노래하는 산()은 하나님께서 계신 곳인 예루살렘 성전을 가리킵니다.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 첫 번째인 120편은 그가 살고 있는 삶의 현장이

메섹과 게달의 장막에 거하는 것처럼 고통스러운 곳이었다고 노래했습니다.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 두 번째인 121편은

그 고통의 현장에서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곳인 성전을 바라봅니다.

 

 

5. 나의 도움이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

 

1) 세상에서 도움의 손길을 찾을수록 더욱 좌절에 빠지기만 하고

 

시인은 삶의 순례에서 고통과 시련을 당할 때마다 혹시 도움을 얻을까 싶은 마음에

세상에서 산같이 힘을 가진 존재를 바라보았으나,

그럴수록 더욱 좌절에 빠지기만 합니다.

도움 받기를 바라는 마음이 간절할수록 좌절 또한 더욱 깊어집니다.

 

2) 그 좌절의 현장에서 만난 은혜의 하나님(1~8)

 

그러나 그 깊은 좌절의 현장에서 자신이 도움을 받으려 했던

그 어떤 산보다도 더 더 크신 이를 만납니다. 바로 그 산을 만드신 하나님이십니다.

그 산뿐만 아니라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이

자신을 지금도 계속해서 돕고 계셨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3) 세상의 모든 능력의 산들을 만드신 하나님

 

나를 도우시는 하나님은 세상 사람들이 부러움의 눈으로 바라보는

저 산 같이 힘 있는 자도, 그보다 더한 것들도 다 만드신 분입니다.

 

낮의 해를 만드시고 밤의 달을 만드신 분이십니다.

그 능력의 하나님께서 친히 내 우편이 되어주셔서 나를 지키시고 돌봐주고 계셨습니다.

내가 알지 못하는 중에도 졸지도 주무시지도 않으시면서

나를 지금도 계속해서 돌봐주고 계십니다.

 

묵상 : 내 눈을 세상의 힘인 눈에 보이는 산만 바라보지 말고

나를 도우시는 하나님을 바라보십시오.

 

하나님은 내가 그동안 의지하려 했던 세상의 그 어떤 자보다도

더 힘 있고 능력이 있으신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내 인생을 완전히 새롭게 바꾸실 능력도 있으신 분이십니다.

 

나와 당신을 돕기 위해 지금도 우리와 함께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십시오.

그리고 그의 능력을 믿고 모든 의심과 불안감을 떨쳐 버리십시오.

그것이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입니다.

 

 

6. 모든 환난을 면케 하시며 네 영혼을 지키시리로다

 

하나님이 우리를 도우실 수 있는 한계는 어디까지일까요?

하나님은 이 천지를 지으신 분이십니다.

천지를 지으신 그 때의 그 능력으로 나의 모든 것을 다 도우실 수 있습니다.

 

1) 낮의 해와 밤의 달의 위험에서 우리를 도우십니다(6)

 

낮의 해와 밤의 달은 중동 지방에서 흔히 겪는 일상적인 위험입니다.

낮에는 견디기 힘들만큼 태양빛이 뜨겁고, 밤에는 반대로 추위에 잠을 잘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뜨거운 태양빛에서도 도우시고, 밤의 추위에서도 도우십니다.

너무 뜨거워도 안 되고 너무 추워도 안 됩니다.

비가 너무 많이 와도 안 되고, 너무 적게 와도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가 살기에 가장 적절하게 따뜻한 볕을 주시고 적절한 비를 주십니다.

 

2) 모든 환난을 면케 하시고 우리의 영혼을 지켜주십니다(7)

 

자연에서 오는 환난 뿐 아니라,

악한 사람들로부터의 모든 위험에서 우리를 지키시고 돌보십니다.

길 가는 중에 당하는 위험, 밤에 은밀하게 들어오는 도적으로부터의 위험,

학교나 직장에서 당하는 위험, 질병으로부터의 위험 등

세상에서 우리가 당할 수 있는 모든 환난과 위험으로부터 우리를 지키시고 돌보십니다.

 

또 여기에서 영혼이란 육신과 영혼에 필요한 모든 것을 포괄하는 단어입니다.

육신의 삶에서 필요한 모든 것과 신앙생활에서 필요한 것까지,

이 땅에서의 생명은 물론 죽음 후의 영원한 생명까지

하나님께서 우리의 모든 필요를 채우시고 돌보십니다.

 

3) 여호와께서 우리의 그늘이 되어 주십니다(5)

 

여기에서 그늘이란 보호막을 말합니다.

우리가 위험에 빠지지 않도록 우리를 지키십니다.

우리가 미혹되어 잘못된 길에 들어서지 않도록 도우십니다.

교활하고 악한 무리들로부터 우리를 보호하십니다.

우리를 핍박하고 우리의 마음에 상처를 주는 악한 무리들로부터 우리를 보호하십니다.

 

4) 여호와께서 우리의 출입을 지금부터 영원토록 돌보십니다(8)

 

여기에서 말하는 출입이란 인생을 살아갈 때

우리가 당하게 되는 모든 일들을 의미합니다.

태어나서 자라고, 학교에 가고, 직장에 가고, 결혼하고, 아이 낳고, 늙고,

이런 인생의 모든 과정을 주께서 도우십니다.

 

묵상 :

 

하나님께서 우리를 도우시지 못할 만한 상황이란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바라보며 살아가십시오.

 

 

7. 그러나 하나님을 바라보고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에게 이런 도움을 주십니다.

 

무작정 하나님의 도우심을 기다린다고 해서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바라보고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들에게 하나님께서 이런 도움을 주십니다.

 

1) 하나님을 바라보는 자가 되십시오.

 

하나님을 바라본다는 말은 하나님을 예배하며 섬긴다는 말입니다.

온 마음과 정성을 다해 하나님께서 받으실만한 예배를 드리기에 힘쓰는 것이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늘 묵상하며 그 말씀대로 살기에 힘쓰는 것이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2)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가 되십시오.

 

하나님이 나를 도우심을 믿기에 염려하지 않고 걱정하지 않는 것이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을 믿기에 나를 도우시는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것이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입니다.

 

만일 내가 어떤 사람을 의지한다면

그 사람의 도움을 받기 위해 그의 뜻대로 내가 해야 할 것입니다.

그가 원하는 대로 서류를 준비한다든지,

그가 바라는 대로 무엇을 한다든지 할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가 하나님을 의지하므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대로 사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도우심을 믿고 일체의 염려와 걱정을 하지 않는 것입니다.

 

묵상 :

 

하나님은 그를 믿는 자를 결코 실망시키지 않으십니다.

믿고 의지하십시오. 그리고 염려와 걱정을 떨쳐버리십시오.

믿고 기도했으면 안심하고 평안한 마음을 가지십시오.

 


3 : 예배드리러 올라가는 자의 기쁨(122)

 

8. 예배드리러 성전을 향하여 올라가는 자의 기쁨

 

•• 122: 예루살렘 성에 도착한 기쁨을 노래함

 

 시인이 어디에 사는 누구인지 우리는 알 수 없습니다. 5절에서 다윗이 하나님의 공의대로 통치하고 있는 것을 감격하며 노래하는 것으로 보아 다윗 시대(혹은, 남왕국 유다가 아직 망하기 전)에 외국에서 살던 어떤 사람이 여호와의 절기 때가 되어 예루살렘 성전으로 순례를 하러 가는 순례객이라는 정도만 알 수 있을 뿐입니다.

 

그러나 이 시에 흐르는 시인의 신앙은 참으로 놀랍고 아름답습니다.

시인은 여호와의 절기 때가 되자 그의 주변에서 하나님께 감사하기 위해

예루살렘에 가자는 소리만 듣고도 기뻐합니다.

 

•••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 첫째 ~ 둘째

 

첫째 : 120

 

지금 자기가 살고 있는 삶의 현장이 메섹과 게달의 장막과 같다며

삶의 고달픔을 노래했습니다.

 

둘째 : 121

 

그 고통스러운 삶의 현장에서 하나님이 계신 성전을 향하여 눈을 돌립니다.

졸지도 주무시지도 않으면서 나를 지키시고 도우시는 주께 예배드리는 곳,

그곳을 바라보며 주님을 만날 기대감에 벌써부터 마음은 설렙니다.

 

1) 122: 드디어 순례객들과 함께 성전이 있는 예루살렘에 도착했습니다.

 

시인은 예루살렘에 첫 발을 들여 놓는 순간의 감격을 잊지 못합니다.

역시 하나님의 복을 받는 도성은 다르다 싶습니다.

그가 이전에 어느 나라에서 본 크고 잘 짜여진 도시보다

더 조밀하게 건설된 예루살렘 성읍을 보고 그는 감탄합니다(3).

 

2) 시인이 예루살렘에 온 목적 : 하나님께 감사하려고(4)

 

 하지만 시인은 곧 다음절인 4절에서 그가 예루살렘에 온 것은 이 도시의 발전된 모습이나 보자고 온 것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그는 하나님께 감사드리기 위해 왔습니다. 그는 예루살렘의 화려한 건물을 보기 위해 온 것이 아닙니다. 그는 하나님께 감사하며 예배드리기 위해 하나님의 성전이 있는 예루살렘으로 올라간 것입니다.

 

성전에 가까워질수록 더욱 감격에 넘치는 시인의 기뻐하는 모습에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시인의 마음을 엿볼 수 있습니다.

 

묵상 :

 

성전에 가기 전부터

이렇게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것이 기쁘고 즐거운 것이 되도록 기도합시다.

예배의 반 이상이 예배드리기 전에 이미 결정됩니다.

이런 예배를 하나님께서 받으십니다.

      

 

9. 하나님의 도성 예루살렘에 대한 기쁨

 

1) 예루살렘은 세상을 공의로 심판하시는 위대한 왕 하나님이 계신 곳임을 노래(5)

 

3절에서 아름답게 세워진 도성 예루살렘의 발전된 모습을 보고 감탄했던 시인은

예루살렘에 그의 조국 이스라엘을 통치하는 통치자 다윗을 생각합니다.

그리고 다윗처럼 하나님의 뜻과 정의와 공의대로 통치하는

선한 통치자를 주신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립니다.

 

그러다 시인은 다윗보다 더 선하시고 더 능력이 많으신 하나님을 생각합니다.

하나님이야말로 세상을 공의로 다스리시는 위대한 왕이십니다.

예루살렘은 그 위대한 왕이신 하나님의 보좌, 예루살렘 성전이 있는 곳입니다.

 

2) 내가 내 형제와 붕우(친구)를 위하여 이제 말하리니(8)

 

무엇보다도 이 시인을 기쁘게 하는 것은 그 도성에 하나님의 백성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통치자인 다윗도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이고,

그의 백성들도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이고,

그 도시의 한복판에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예루살렘 성전이 있습니다.

 

그 성읍 전체가 하나님을 향한 사랑으로 가득합니다.

그래서 후일 사람들은 예루살렘을 가리켜 시온이라고 부르기도 했습니다.

 

묵상 :

 

우리나라도 이렇게 하나님을 사랑하는 통치자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백성들로 가득한 나라가 되도록 기도합시다.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뜻대로, 하나님의 정의와 공의대로 통치하는

통치자가 있는 나라가 되도록 기도합시다.

 

 

10. 하나님의 백성의 평강을 기원하는 자의 복

 

1) 형제와 친구와 그의 백성을 위하여 복을 구하는 시인(7~9)

 

그러나 시인은 결코 하나님을 향한 사랑의 열정을 자기 혼자서 독점하려 하지 않습니다.

나는 신앙이 좋은 사람인데 너는 그렇지 않다면서

남을 비하하거나 경멸하는 사람도 결코 아닙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시인들은 그 성읍에 있는 하나님의 백성들도 사랑스럽게 보입니다.

단지 같은 하나님을 섬긴다는 이유만으로

그는 그 성읍의 사람들을 향하여 자기의 형제여 친구들이라고 말합니다(8).

그리고 자기처럼 하나님을 사랑하는 모든 이들에게

하나님의 평강이 임하시기를 기도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성읍 예루살렘을 위해,

하나님을 사랑하는 나라 이스라엘을 위해 기도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자기처럼 예루살렘과 이스라엘을 위해 기도하는 자에게

하나님께서 형통함을 주시리라고 노래합니다.

 

2) 시인이 기도한 예루살렘의 백성들은 오늘날로 말하면 예수님의 교회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들은 시인처럼 교회를 사랑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공동체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독생자 예수님의 피로 사신 교회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니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교회를 이루기 위해 열심을 내는 자가 됩니다.

 

묵상 : 그러나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오직 자기와 자기 가족만을 생각합니다.

 

 또는 교회를 생각하더라도 자기 교회만을 생각하는 집단 이기주의자들이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사랑하니 하나님께서 세우신 교회를 사랑합니다.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교회는 내가 다니는 이 교회만이 아니라 이 땅에 하나님께서 세우신 모든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들이 다 하나님의 백성들입니다. 우리의 사랑의 범위만큼 우리는 그들도 하나님의 백성으로 여기고 함께 사랑하게 될 것입니다.

 

당신이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하나님의 백성 공동체인 교회를 사랑하십시오.

그리고 내가 다니는 교회만이 아니라

이 땅에 있는 모든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들과 그 성도들을 사랑하십시오.

 

 

 

주님

 

예배드리러 성전에 나아갈 때에

하나님의 행하신 일을 기억하고

기쁨으로 노래하며 나아가게 하옵소서.

 

오직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순전하고 참된 예배를 드리게 하옵소서.

 

시인처럼 예배를 드리러 갈 때부터

기쁨과 감격으로 충만한 성도가 되게 하옵소서.

 

하나님을 사랑하니

하나님께서 세우신 교회와 옆의 성도들도

사랑하는 자가 되게 하옵소서.

 

이 나라가 하나님의 정의와 공의로 통치되는

건강하고 아름다운 나라가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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