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제목 : 은혜의 보좌 앞으로 더욱 담대히 나아가자
설교본문 : 히브리서 4:1~16
설 교 자 : 송호영 목사
설 교 일 : 2020년 6월 7일
서론 : 가장 불안한 때 가장 멋진 하나님의 안식을 소개하는 히브리서
1) 불안과 두려움 속에서 신앙생활을 하는 히브리서의 성도들
히브리서는 저 흉악한 로마의 네로 황제 때 기록된 책입니다.
베드로와 사도 바울 등 거의 대부분의 사도들이 많은 성도들과 함께 순교를 당했습니다.
아직 살아있는 자들도 언제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는 불안감 속에서 살아갑니다.
2) 두려움에도 불구하고 신앙을 끝까지 간직해야 하는 이유 ➠ 하나님의 안식
히브리서는 바로 그 두려움 속에서 신앙생활을 하는 성도들에게
우리가 죽음을 무릎 쓰고 신앙을 지켜야 하는 이유를 증거랍니다.
그것을 오늘 본문에서는 ‘하나님의 안식’이라고 증거합니다.
그 안식을 얻기 위해 우리는 두려움과 불안한 가운데에서도 신앙을 끝까지 지켜야 합니다.
3) 신앙의 목표 : 거듭남, 하나님나라, 새로운 피조물, 그리고 ‘하나님의 안식’
성경의 각 책마다 신앙의 목표를 조금씩 다르게 표현합니다.
바울은 ‘거듭남’이나 ‘새로운 피조물’이라 했고,
요한복음은 ‘영’이나 ‘영원한 생명’이라 표현했습니다.
그리고 여기 히브리서의 본문에서는 ‘하나님의 안식’으로 표현합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리면서까지 우리를 인도하려 하셨던
그 영광의 나라에서 누리는 ‘하나님의 안식’이 무엇인지 오늘 말씀을 통해 살펴보면서,
우리는 인생의 목표를 바로 보면서 살아가는 자인지 자신을 살펴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제 1 부 : 하나님의 안식에 들어가기에 힘쓰라(히 4:1~11)
1. 하나님의 안식
1) 하나님의 안식 ➠ 모든 것이 완성된 완전한 나라(4:3절)
히브리서는 네로 황제의 핍박을 받는 성도들에게
“저 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쓰는 자들이 되자”(11절)하고 외칩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안식에 들어가자는 것입니다.
히브리서가 말하는 안식은 아무 것도 하지 않는 무위(無爲)의 안식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신 후 제 칠일 째 되는 날 안식하셨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안식은 모든 것이 완성되었다는 것을 뜻합니다.
사람을 위해 필요한 모든 것이 다 완성된 곳에서 누리는 참된 평화
➜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안식입니다.
2) 하나님께서 주시는 안식 : 구원의 총괄적인 개념(4:1,8)
하나님께서 주시는 안식은 하나님의 창조 세계의 완성이라는 의미에서의 안식입니다.
하나님의 즐거움과 하나님의 평화와 하나님의 생명이 가득한 나라
그 영광의 나라에 들어가서 누리는 영원한 기쁨의 안식입니다.
사도 요한은 이것을 ‘영원한 생명’이라고 표현하였습니다.
장차 주께서 이 땅에 오셔서 그의 백성을 영원한 나라로 인도하시리라는 것을
히브리서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안식’이라는 말로 표현하였습니다.
2. 하나님의 안식에 들어가지 못하는 사람들
1) 하나님의 안식을 소유했다고 생각했던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들(4:8)
이스라엘 사람들은 그 옛날 여호수아가 그의 백성들을 가나안으로 인도한 것을 두고
하나님의 안식에 들어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혈통으로는 아브라함의 후손이고,
영토로는 하나님께서 인도하신 약속의 땅 가나안에서 살고 있으니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분명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바로 이런 잘못된 믿음으로
그들은 그 땅에서 우상을 숭배하는 등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면서 살았습니다.
그들이 아무리 죄를 범한다고 할지라도,
그들이 아브라함의 후손이라는 것과, 그들이 살고 있는 땅이 가나안 땅이라는 것은
변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아무리 죄를 범했더라도 아브라함의 후손이라는 것은 변함이 없고,
솔로몬이 아무리 아상숭배를 하고 1,000명의 여자와 헛된 짓을 할지라도
그가 지은 성전은 그대로 있으니 그들은 여전히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생각했고,
그들이 거한 땅이 바로 하나님의 안식의 땅이라 생각했습니다.
2) 그 안식에 들어가지 못하는 사람들(4:2)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고 매사에 불만 불평하던 자들이
모두 광야에서 죽어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했던 것처럼
하나님께서 주신 약속의 땅이라고 자부했던 그 가나안 땅에서
오직 자기들만 하나님의 백성이라며 교만을 떨던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안식에 들어가지 못하고 멸망의 사람들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들이 주께서 주신 복음의 말씀을 믿음으로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 묵상 : 우리도 저 안식에서 버림받을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다가 저 안식에 들어가지 못한 것처럼 우리도 하나님께서 주시고 인도하시는 영광의 안식에 들어가지 못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영원한 안식에 들어가지 못할 것을 두려워하며
오늘을 신실하게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3) 구약의 가나안 땅은 장차 우리가 누릴 영원한 안식의 예고편에 불과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나안 땅이 하나님의 약속하신 땅이므로
그 땅은 영원히 외적의 침략을 받지 않을 것이라 여겼습니다.
가나안 땅 자체를 하나님의 안식으로 여긴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바벨론에 포로가 되면서
가나안 땅이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영원한 안식이 아니라는 것이 밝혀졌습니다.
여호수아 때에 가나안 땅에 들어가 하나님의 안식에 들어갔던 것은
장차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주어질 영원한 하나님의 안식을 상징하는
그림자요 예고편에 불과했던 것입니다.
4) 잠깐 있는 일시적인 안식이 아니라 영원한 안식으로 우리를 초대한 예수님
여호수아 역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이스라엘 백성을 가나안까지 인도하였으므로 하나님의 충성된 종임에는 분명합니다만,
그가 인도한 가나안 땅은 일시적인 안식에 불과한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통하여 주시는 안식은 영원한 안식입니다.
이로써 예수님은 여호수아보다 더 뛰어난 분이시라는 것이 밝혀졌습니다.
● 묵상 : 선지자, 천사, 모세, 여호수아보다 뛰어나신 그리스도
히브리서는 계속해서 구약 시대에 뛰어났던 사람들과 예수님을 하나하나 비교하여,
아무리 훌륭한 사람이라 하더라도 그들을 존경의 범위를 넘어서
숭배하는 데까지 이르러서는 안 된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선지자, 천사, 모세, 여호수아, 아브라함, 다윗, 마리아, 베드로, 바울,
그 누구라도 예수님이 만드신 피조물에 불과합니다.
그러므로 사람을 예수님과 같은 위치에 두는 어리석음을 절대로 범해서는 안 됩니다.
3. 저 안식에 들어가기에 힘쓰라(4: 1, 11)
1)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좇아가노라(빌립보서 3:12)
가나안 땅이 영원한 하나님 나라를 상징하는 것처럼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에 이르는 과정 역시 성도들의 한 평생의 삶을 상징합니다.
여호수아 때에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았던 자들이
그 안식에 들어가지 못했던 것처럼
주님이 다시 오실 때에도 주님의 말씀에 믿음으로 화합하지 않은 자는
하나님의 영원한 안식에 들어가지 못하게 됩니다.
2) 힘쓰라 : 오늘이 마지막 기회인 것처럼 간절한 마음으로 힘을 다하라는 뜻
우리는 오직 그 나라에 들어가기에 합당한 자가 되도록
예수께 잡힌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힘써 좇아가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언젠가 그날이 정말 마지막이 되는 그날을 우리도 만나게 될 것입니다.
그날이 오늘이라 여기고 날마다 주님의 백성으로 살아가기에 힘쓰는 자가 되십시오.
● 묵상 : 우리는 순례자입니다.
가나안 땅은 잠정적인 안식에 불과했습니다. 우리가 사는 이 땅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집에 누워 평안함을 누리지만 이 평안함은 언젠가 끝이 날 평안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영원한 참 안식의 자리를 향하여 가는 순례객입니다.
이 땅은 결코 영원한 곳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영원한 참 안식을 구하고 찾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4. 하루가 늦었다
••• ‘이르지 못할까 두려워하라’(1절)의 원어의 뜻은 ‘하루가 늦다’입니다.
출애굽 때에 가나안을 정탐했던 12명의 정탐꾼 중에서
여호수아와 갈렙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진격하자고 보고했고,
나머지 10명은 그들이 보기에 우리가 메뚜기 같았을 것이라고 보고하였습니다.
이때 이스라엘 백성들은 10명의 정탐꾼의 말을 듣고
밤새도록 하나님을 불평하고 원망했습니다.
이 일로 가나안 땅에 들어가려던 일이 40년 뒤로 미뤄지자,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 원망했던 일을 후회하고 가나안 땅을 진격하려 합니다.
그러나 그 날에는 하나님께서 그들과 함께 하시지 않아 패하여 호르마까지 도망을 합니다.
하루가 늦었던 것입니다.
● 묵상 : 하루가 아니라 단 1초만 늦어도 영원을 잃어버립니다.
주께서 다시 오시는 날 주께서 천사장에게 나팔을 불라고 명하시는 바로 그 순간
모든 것이 다 끝이 납니다.
그러므로 하루가 아니라 단 1초만 늦어도 영원한 안식을 잃어버립니다.
그리고 다시는 회복될 기회를 얻지 못하게 됩니다.
제 2 부 : 은혜의 보좌 앞으로 더욱 나아가자(히 4:12~16)
5. 살았고 운동력이 있는 말씀(4:12~13)
••• 운동력과 능력과 권세가 있는 하나님의 말씀(4:12)
하나님께서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있었고, 하늘에 해와 달과 별이 있으라 하시니
우리가 보는 저 광활한 우주의 별들이 생겼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말씀은 마치 살아있는 생명체처럼
그 말씀 자체에 힘과 권세와 운동력이 있습니다.
우리가 말씀을 묵상할 때 그 말씀의 능력이 나를 변화시킵니다.
그래서 그 말씀을 묵상할 때 말씀이 우리 안에 들어와서
우리의 잘못된 부분을 제거하고, 연약한 부분은 세워주며, 병든 부분을 치료합니다.
1) 하나님의 말씀은 좌우에 날이 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4:12)
여기에서 양쪽에 날이 선 검은 로마의 병사들이 사용하는
‘글라디우스(Gladius)’라는 검입니다. 폼페이에서 발견된 글라디우스 검은
길이 60~65cm, 폭 5cm, 무게 700그람 정도로, 그 끝이 짧은 삼각형입니다.
➠ 로마제국을 세운 로마의 양날 검 글라디우스
로마의 군병들은 방패의 뒤에서 상대의 가슴이나 복부를 이 검으로 찔렀습니다.
당시 일반적인 병법은 사람의 몸을 베는 것인데,
상대의 갑옷과 뼈를 끊으려면 상당한 힘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이 검은 자리만 제대로 잡으면 불과 5cm만 찔러도 치명상을 입기 때문에
힘 들이지 않고 적을 물리칠 수 있었습니다.
로마는 이 병법으로 당시 세계를 제패하여 대 제국을 이룹니다.
그러므로 당시 로마의 이 검은 로마제국의 힘을 상징하는 것이었습니다.
➠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로마의 글라디우스 검보다도 더 능력과 운동력이 있습니다.
말씀이 우리 안에 들어와 우리 마음과 생각을 찔러 쪼개며 수술합니다.
우리를 수술하여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으로 변화시킵니다.
2)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 말씀은 우리의 병든 부분을 치료하고 수술합니다(4:12)
말씀은 외과의사가 예리한 칼을 들고 우리 몸을 수술하는 것과 같이
우리의 마음을 찔러 쪼갭니다.
단순히 마음을 아프게 하고 회개하는 마음을 일으키는 것이 아닙니다.
심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합니다.
우리의 세포 하나하나에까지 말씀의 능력이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마음에 있는 부정적인 생각을 바로 잡습니다.
닫힌 마음을 엽니다. 헌신을 포기하고 싶은 생각을 바꾸어 더욱 헌신하게 합니다.
탐욕과 이기심과 정욕과 미움과 증오심을 치유합니다.
그리고 세상을 사랑하는 마음을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바꿉니다.
마음과 생각과 영까지 우리의 인격 전체를 치유하는 것입니다.
3) 말씀은 우리의 마음속에 있는 것을 드러냅니다(4:12)
말씀이 우리의 마음에 있는 바램, 본능, 열정, 느낌, 동기 등
내 마음에 있는 생각의 모든 것을 조사하고 조사합니다.
그 말씀 앞에서 우리의 모든 것이 드러납니다.
4) 말씀은 나에게 활력과 에너지를 줍니다(4:12)
말씀이 나를 변화시키도록 나를 말씀에 내맡길 때
말씀은 내 안에 활력과 에너지를 줍니다.
자동차를 움직이는 엔진처럼 말씀이 내 안에 신령한 에너지를 공급합니다.
● 묵상 : 묵상은 내 마음의 생각을 드러내기 위해서 합니다.
말씀을 묵상할수록 내 마음에 숨겨진 것이 드러납니다.
마음의 숨긴 것이 드러나니 때로 마음이 아프고 괴롭지만
그렇게 말씀을 통해 내 마음이 드러나야 성령께서 나를 치유하십니다.
묵상할 때 일어나는 갈등이나 마음의 아픔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6. 말씀이 내 안에서 운동력을 발휘하게 하십시오.
그러나 소설을 읽듯이 그저 읽기만 한다고 해서 그 능력이 나타나는 것이 아닙니다.
말씀이 내 안에 들어와 나의 심혼 골수를 쪼개기까지 할 수 있도록 하려면
다음과 같은 방법으로 말씀을 묵상해야 합니다.
1) 성령이 이르시는 말씀을 들으십시오.
하나님의 말씀의 능력은 사람의 존재 자체를 바꾸는 엄청난 능력입니다.
그러나 기록된 말씀을 소설 읽듯이 그저 무덤덤하게 읽으면
그 어떠한 능력도 나타나지 않습니다.
기록된 말씀을 통해서 성령께서 나에게 이르시는 말씀을 듣고 그 말씀을 받아들일 때
말씀이 가진 모든 능력이 나에게서 나타나게 됩니다.
➠ 보이지 않는 성령께서 하시는 말씀을 어떻게 알아들을 수 있습니까?
말씀을 읽고 그 말씀이 나에게 무엇이라 말하는지를
기도하는 마음으로 읽고 묵상하고, 또 읽고 묵상하기를 반복하십시오.
그러면 그 말씀 안에서 내가 들어야 할 말씀을 성령께서 알게 하십니다.
때로 성령께서는 그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이 누구신지를 알게 하십니다.
때로는 내가 어떤 잘못을 했는지 깨닫게 하십니다.
때로 내가 하나님 앞에서 어떤 일로 헌신해야 하는지를 알게 하십니다.
때로 성령께서는 다른 사람과의 인간관계에서 내가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
하나님의 백성 공동체 안에서 내가 무슨 일을 해야 하는지도 알게 하십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회개해야 할 것과 감사해야 할 것, 찬양하고 헌신해야 할 것,
간구해야 할 것들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큐티(성서 묵상)입니다.
➠ 성령이 나에게 이르는 말씀을 받을 때 말씀은 나에게 능력이 됩니다.
성령이 주시는 말씀을 들을 때
말씀이 나의 생명을 더욱 활력 있게 하는 에너지를 줍니다.
어떤 사람이 되어야 내가 제일 행복한 사람이 되는지를 말씀이 나를 분석하여
그 방향으로 나를 인도합니다.
그러므로 성령이 나에게 이르는 말씀을 찾는 일을 게을리 하지 마십시오.
2) 오늘 말씀을 통해 나를 드러내십시오.
나는 단지 말씀을 묵상하고 있을 뿐입니다.
그 말씀 속에 담긴 하나님의 뜻을 찾기에 힘썼을 뿐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성령께서 나에게 주시는 말씀을 찾는 일을 하는 동안
그 말씀이 내 안에 들어와 나의 잘못된 부분을 수술하고 고칩니다.
3) 우리의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체휼하지 아니하는 자가 아니요(4:15)
하지만 우리가 말씀으로 변화되고 있는 중이라 할지라도 또 넘어지고 넘어질 것입니다.
말씀으로 은혜 받고 나오자마자 곧 싸우고 다투기를 반복할 것입니다.
주께서 우리를 부르시기까지 우리가 얼마나 유혹에 넘어지고 죄를 범할까요?
➠ 우리가 이렇게 연약한 자일지라도
감히 주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고 자부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우리의 대제사장이신 예수님은
우리의 연약함을 체휼하지(동정하지) 않는 분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리와 같이 한결같이 시험을 받으셨던 분이시기에
우리의 아픔과 고통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넘어지고 또 넘어질지라도
주께 나아가면 주께서 우리를 또 받아주시고 또 받아주십니다.
주께서 부르시는 그날까지 주님의 은혜의 자리를 포기하지만 않는다면
주께서는 결코 우리를 버리지 않으십니다.
● 묵상 : 말씀으로 묵상할 때 마음에 찔리는 일이 일어납니다.
때로 그 말씀대로 살지 못하는 자신을 발견할 때면 가슴이 답답해오기도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못한 자신을 발견할 때면 두렵기까지 합니다.
그러나 이렇게 말씀을 볼 때마다 두렵고 답답할지라도 말씀을 멀리하지 마십시오.
지금 말씀을 통해 나를 드러내면 구원을 받게 되지만, 이 일을 뒤로 미루다가
심판대 앞에서 드러나는 일을 맞게 되면 영원한 저주를 받게 됩니다.
그러므로 부담스럽더라도 지금 말씀을 통해 나를 드러내려 하십시오.
넘어지고 또 넘어질지라도 말씀과 기도로 주님 앞에 나아가기를 주저하지 마십시오.
7. 은혜의 보좌 앞으로 나아가자(4:16)
1) 히브리서는 사람을 세 가지로 구분합니다(4:12).
육신의 영역에 머무는 자, 혼의 영역에 머무는 자, 영의 영역에 머무는 자입니다.
육은 육신의 본능의 영역이고, 혼은 생각과 정서와 자아의 영역입니다.
그리고 영은 인간의 가장 깊은 곳으로 하나님과 만나는 자리,
하나님을 인식하는 자리로서 신앙의 영역입니다.
2) 혼에 속한 사람 : 거듭나지 못한 사람
바울은 중생하지 못한 사람을 혼적인 사람(고린도전서 2:14)이라고 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신앙생활을 하는 목적이 자기 마음의 평안에 있습니다.
불안과 우울증과 좌절감에 빠진 자들이
마음의 평안을 얻을 때 은혜를 받았다고 생각하고,
바로 이런 마음과 정서의 안정감을 얻기 위해 신앙생활을 한다고 합니다.
3) 그러나 우리는 더 깊은 은혜의 보좌 앞으로 나아갑시다(4:16)
히브리서는 우리에게 신앙의 더 깊은 중심점인
하나님의 은혜의 보좌로 나아갈 것을 촉구합니다.
하나님의 은혜의 보좌 앞으로 더욱 깊이 나아가는 것은
마음의 평안보다는 갈등과 불안감이 더 증폭될 수 있습니다.
말씀대로 살지 못한 자신을 발견할 때 마음이 불안해지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 이것은 수술을 받을 때 불안하고 아픈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영적인 일에 있어서도 말씀이 나를 치료하는 과정에 있을 때에는
불안하고 두려운 것입니다. 몸과 마음이 힘들고 아픈 것입니다.
이런 경우 마음의 불안감은 치료의 과정이므로 기뻐하고 즐거워해야 할 일입니다.
그러나 말씀으로 수술을 받을 때 나타나는 이런 불안과 두려움의 감정이 싫어
말씀에 자신일 비추어 보는 일을 게을리 하고
단지 마음의 평안만을 위해 신앙생활을 한다면
병증은 그대로 두고 진통제만 맞는 것과 같은 일이 됩니다.
● 묵상 : 그러므로 더 깊은 은혜의 세계, 더 깊은 신앙의 중심점으로 들어가십시오.
머지않은 장래에 우리를 향하신 예수님의 긍휼이 끝나는 날이 옵니다.
그 때에는 때를 따라 돕는 은혜도 중단이 되고, 오직 심판만 있습니다.
그 날이 오기 전에 그 긍휼함과 은혜를 힘입어 신앙의 더 깊은 곳에 들어가십시오.
3부 : 믿음은 선택하게 하는 에너지, 선택을 통해 그 믿음이 증명 된다.
8. 악심을 품어 하나님에게서 떨어진 사람들이 되지 않도록 조심하십시오.
1) 과거 출애굽 때의 가데스 바네아에서 일어난 사건(3:7~8,15)
히브리서는 과거 이스라엘이 광야에서 하나님을 시험하다 멸망한 예를 듭니다.
8~11, 15절은 시편 95:7~11을 인용한 말씀으로, 민수기 13~14장이 그 배경입니다.
출애굽을 한 이스라엘 백성이 바란 광야 가데스에서
가나안 땅을 정탐하고 돌아온 정탐꾼들의 보고를 들었을 때의 일입니다.
12명의 정탐꾼들 중 여호수아와 갈렙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가나안 땅으로 진격하여 들어가자고 보고했으나,
나머지 10명의 사람들은 그들이 보기에 우리는 영락없이 메뚜기 같았을 것이라며
지금 진격하면 그들에게 모두 잡혀 죽을 것이라는 부정적인 보고를 했습니다.
이에 백성들은 믿음의 보고인 여호수아와 갈렙의 말을 따르지 않고
믿음 없는 나머지 10명의 부정적인 보고에 반응하여
하나님께서 자기들을 죽이기 위해 이곳으로 데리고 왔다면서,
모세를 죽이고 새로운 지도자를 세워 그와 함께 애굽으로 돌아가자고 외쳤습니다.
2) 그때 하나님의 진노하심으로 가나안의 안식에 들어가지 못한 사람들(3:9~11)
그들이 여호수아와 갈렙의 믿음의 말을 듣지 않고
나머지 10명의 믿음 없는 말만 듣고는 하나님께 불평하여 원망하였으므로
이에 하나님께 크게 진노하셔서 그들을 그 자리에서 모두 진멸하려 하셨습니다.
그러나 모세가 중재의 기도를 하여, 진멸하는 것은 면하고,
그 대신 40년간 광야에서 지내되, 그 날에 하나님께 불평하고 원망했던 자들은
모두 하나님의 안식의 자리인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광야에서 죽게 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 묵상 :
이스라엘의 광야 40년은 오늘날 주님을 믿는 성도들의 평생의 삶을 상징합니다.
그리고 그들이 들어간 가나안 땅은
우리가 장차 들어가게 될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를 상징합니다.
이에 히브리서는 그들이 광야 40년 동안
하나님을 온전히 믿지 못해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한 것처럼,
우리도 주님을 바르게 믿지 못하면
주님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하리라고 경고하는 것입니다.
9. 죄의 유혹으로 강퍅케 됨을 면하자(3:13)
1) 우리의 마음을 강퍅하고 완고하게 하는 평범한 일들이 더 위험합니다.
우리는 흔히 죄의 유혹이라고 하면 흉악하고 부도덕한 일들을 생각합니다.
그런데 나는 그런 못된 일을 하지 않았으니 유혹에 빠지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흉악한 죄들 보다 우리의 마음을 완고하게 만드는 평범한 유혹들이
더 우리를 무너지게 하는 것이라는 점을 기억해야 합니다.
2) 원망, 짜증, 질투, 남을 함부로 평가하는 일, 게으름과 나태함 등
세상일에 분주하여 말씀과 기도로 주님과 동행하는 일을 뒤로 미루는 유혹,
감사하기보다는 원망과 짜증을 하는 유혹, 남을 함부로 평가하며 뒤에서 험담하는 유혹,
본문이 우리에게 주는 경고가 바로 이 평범한 유혹들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일보다 세상일에 분주할 때
마귀가 우리 마음에 죄의 독을 넣어 완고하고 고집스러운 자가 되게 합니다.
● 묵상 : 영적인 질병에 빠지지 않도록 조심하십시오.
시험에 들기 전에 먼저 하나님의 일을 싫어하는 일이 일어납니다.
먹는 것을 조심하지 않고 운동도 열심히 하지 않으면 결국 병에 들게 되는 것처럼,
하나님의 일을 싫어하고 귀찮아하면 시험에 들게 됩니다.
세상일이 분주하고 바빠서 말씀 묵상과 기도를 차일피일 미루다가
영적인 게으름과 나태함에 빠지면 결국 영적인 질병에 빠지고 맙니다.
말씀 묵상하는 일이 싫어질 때, 예배드리는 일이 귀찮은 일로 여겨질 때
나의 영이 심각한 질병에 빠진 것을 알고 기도해야 합니다.
그때 서둘러 주께 도움을 청하지 않으면
아주 사소한 일에도 시험에 들어 주님을 떠나는 사람들이 되고 맙니다.
이런 무서운 영적인 질병에 빠지지 않도록 조심하십시오.
결 론 : 오직 오늘이라고 일컫는 동안에 죄의 강퍅케 됨을 면하라
➠ 성령의 음성을 듣거든 그 음성을 붙잡으십시오(3: 7절)
1) 성령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음성을 귀 기울여 들으십시오.
히브리서는 시편 95편의 말씀과 같이 오늘날 우리의 삶을 돌아보게 하는 말씀을 통해
성령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음성을 듣거든 그 성령의 음성에 순종하고,
그 말씀을 붙잡으라고 강력하게 권면합니다.
그래야만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떨어지지 않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말씀을 읽거나 설교를 들을 때, 큐티를 할 때 말씀이 나의 마음을 찌르는 것이 있다면
성령께서 그 말씀을 통해서 나에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2)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말씀이 나를 찌르는 경험을 하고서도
그것을 하나의 감정의 정화작용 정도로 여기고 지나갑니다.
이렇게 성령께서 나에게 주시는 경고의 말씀을 외면하고
그저 지나가는 감정의 작용정도로 넘어가는 것은
성령께서 나의 신앙을 업그레이드 할 기회를 주신 것을 스스로 거절하는 일입니다.
성령께서 내 마음에 음성을 들려주실 때 그 말씀에 반응하십시오.
그리고 순종하십시오. 이렇게 하여 우리의 신앙은 날마다 자라게 됩니다.
● 묵상 : 오직 오늘이라고 일컫는 동안에(3:13)
내가 주께로 돌아갈 수 있는 기회가 항상 있는 것이 아닙니다.
주께서 내가 회개하기를 마냥 기다려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오늘이라고 일컫는 동안에
아직 내가 주께로 돌아갈 수 있는 기회가 열려 있을 때 주님을 찾고 불러야 합니다.
3) 처음 믿을 때 확신한 것을 끝까지 붙잡으면(3: 14절)
우리가 주님을 처음 믿었을 때 주님을 향하여 가졌던 그 첫 사랑,
그때 주님께 대하여 확신했던 그 뜨거운 사랑을 끝까지 붙잡으면
우리가 하나님의 집 사람이 됩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처음에는 이렇게 하나님을 뜨겁게 사랑하며 섬기다가
나보다 먼저 믿은 사람들이 대충 살아가는 것을 보고
그들이 믿음 없는 게으르고 나태한 삶을 따라합니다.
그들처럼 불평하고 그들처럼 게으름을 피우다가 마음이 완고해져서 하나님을 떠납니다.
● 묵상 :
그러므로 무엇보다도 우리의 마음이 완고해지지 않도록 조심하십시오.
이것이 우리가 가장 경계해야 할 일입니다.
주님
불평과 원망과 짜증과 질투와 게으름과 나태함 등
나를 강퍅하고 완고하게 만드는
일상에서의 평범한 유혹을 더욱 경계하게 하옵소서.
마음이 완고해지지 않도록
늘 주님과 동행하며 살게 하옵소서.
믿음의 변두리에 있지 말고
믿음의 중심의 자리에 들어가게 하옵소서.
성령이 나에게 이르시는 말씀을
듣는 귀가 열리게 하옵소서.
성령을 통하여 말씀이 나를 치료할 수 있도록
신앙의 더 깊은 영역으로 들어가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