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제목 : 겟세마네 동산에서의 예수님의 기도
설교본문 : 마태복음 26:31~46, 69~75
설 교 자 : 송호영 목사
설 교 일 : 2021년 3월 28일
서 론 : 고난주간에 우리가 해야 할 일
1) 자음으로만 된 히브리 성경을 어떻게 읽을 수 있었을까?
만일 모음이 없이 자음으로만 된 책이 있다면
그 책을 제대로 읽을 수 있을까요?
1. ㅇㅎㅇㄴ ㄴㅇ ㅁㅈㅅㄴ
ㄴㄱ ㅂㅈㅎㅁ ㅇㅇㄹㄹㄷ(시편 23:1)
시편 23:1을 초성만 적었습니다.
만일 성경 전체를 이런 식으로 기록했다면 읽을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요?
구약의 히브리어 성경에 본래 자음으로만 된 책이었습니다.
그럼에도 구약의 성도들이 성경을 읽는데 어려움이 없었던 것은
그들이 늘 성경을 읽고 묵상했기 때문이고,
또 절기마다 집안의 어른이 그 절기에 해당하는 말씀을 항상 들려주어
성경을 거의 외울 정도가 되었으므로
자음으로만 된 성경을 보는데 별 어려움이 없었습니다.
2) 우리도 구약의 성도들처럼 말씀을 묵상하며 고난주간의 절기를 지킵시다.
내일(3월 29일)부터 이번 주 한 주간이
예수님의 고난을 기억하며 지내는 고난주간입니다.
고난 주간에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요?
우리가 구약 성도들에게 배울 점은
그 절기에 해당하는 말씀을 보고 묵상하며 지내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수난에 관한 마태복음의 말씀을 함께 묵상하기 위해
지난 주 한 주간 동안 내내 마태복음의 수난에 대한 말씀 수정 작업에 몰두했습니다.
이미 다음 까페에 다 올려놓았으니
컴퓨터를 다룰 줄 아시는 분은 컴퓨터로,
어려우신 분은 오늘 나눠드리는 인쇄물을 통해서
주께서 고난당하실 때의 일을 묵상하시기 바랍니다.
제 1 부 : 겟세마네 동산에서의 예수님
오늘은 예수께서 본격적인 고난을 받으시기 직전에
크게 고민하며 기도하시던 예수님의 겟세마네 동산에서의 기도와 베드로의 실패의 모습,
이 두 가지 말씀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이 두 가지 말씀을 통해 우리를 위해 고난 받으신 예수님의 사랑이
얼마나 놀라운 것인지를 살펴보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씁니다.
1. 겟세마네 동산에서의 예수님의 기도 :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1) 겟세마네 동산에서 고민하시는 예수님(36~38절)
예수께서 기름을 짜고, 피를 짜는 듯한 고민과 고뇌를 하십니다.
답답하고 두렵고 슬프고 고민이 되어 죽을 지경입니다.
이제 이 동산을 내려가시면 십자가의 고난이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십자가의 형벌이 얼마나 고통스러운 것인지를 다 아시기에 고민이 됩니다.
자기의 원대로 하지 않고 하나님의 뜻대로 하려니까 이런 고민을 합니다.
적어도 수난을 받으실 때만큼은 우리와 똑같이
연약한 인간이 되고 그 고통과 불안감과 통증을 다 느끼셔야만 하는데
그 일을 다 이루시려니까 고민이 되는 것입니다.
2) 할 수만 있다면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39절)
이 고통 속에서 예수님은 우리와 똑같은 갈등을 느끼십니다.
할 수만 있다면 그 고통의 잔을 피하고 싶습니다.
우리와 같은 연약한 육신을 가지셨다는 증거입니다.
하지만 바로 이 일을 위해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것을 누구보다도 잘 아십니다.
그러므로 자신의 솔직한 소원을 하나님께 아뢰기는 했으나,
결국 아버지의 원하시는 대로 되게 해 주실 것을 기도하십니다.
그래야만 세상 사람들이 구원을 받게 되기 때문입니다.
3) 예수께서 주기도문을 통해 우리에게 이 기도를 가르치셨습니다.
➠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예수님은 이 기름을 짜는 듯한 고통의 기도를 통해서
우리에게 참된 기도, 능력 있는 기도란 바로 이런 것임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기도란 내 뜻을 이루기 위해 때를 쓰며 부르짖는 것이 아니라
나를 통해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구하는 것이 기도입니다.
내 일을 이루기 위해 능력을 달라고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하여 능력을 달라고 구하는 것이 기도입니다.
주께서 원하시는 일을 할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구하는 것이 기도입니다.
● 묵상 : 이렇게 기도하는 것이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는 기도입니다.
우리가 이런 기도를 드리면 정말 우리가 기도하려 했던 마음의 소원을 주께서 아시고
그 일을 친히 이루어주시리라 약속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약속을 믿고 주님의 나라와 그 뜻을 이루기 위해 기도하십시오.
2. 호언장담하는 베드로 : 신앙은 장담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1) 고민하는 예수님과 호언장담하는 베드로(35, 38절)
죽을 것같이 고민하는 예수님과,
어떤 일이든 할 자신이 있다며 호언장담하는 베드로를 상상할 수 있습니까?
그러나 본문의 내용이 바로 이 장면을 그리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저쪽 돌 던질만한 곳에서 죽을 것 같은 고민을 하시면서 혼자 기도하시고 있고,
이쪽에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은 조금 전에
그것이 죽는 일일지라도 어떤 일이든 할 자신이 있다고 호언장담을 하고는
세상에 아무 근심이 없는 사람처럼 깊은 잠에 빠졌습니다.
누가 봐도 이 장면은 베드로의 한판승처럼 보입니다.
믿음 없는 예수님과 믿음 좋은 베드로의 모습을 그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2) 베드로의 장담은 빈 껍질뿐인 거짓 믿음
그러나 이 그림의 뒷모습을 보면 전혀 다른 장면이 나옵니다.
예수님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지금 자신 앞에 다가오고 있는 일이 무엇인지 다 아시기에 고민을 하시지만,
베드로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 지금 자기 앞에 무엇이 다가오고 있는지
아무것도 모르고 있기에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다고 호언장담하는 것입니다.
베드로의 이 호언장담은 불과 몇 시간도 지나지 않아서
빈 껍질에 불과한 거짓 믿음이었음이 여실히 밝혀졌습니다.
예수님의 말씀하신 대로 그는 예수께서 수난을 받으실 때
계집종 앞에서 심지어 예수님을 저주까지 하면서 부인했기 때문입니다.
3) 거짓 믿음 : 영적 상황을 알지 못하는 자의 허세
베드로는 예수님의 죽음을 아직 실제적인 것으로 인식하지 못하고
가벼운 마음으로 예수님을 떠나지 않겠노라고 장담합니다.
예수께서 그날 밤 닭 울기 전에 세 번이나 예수님을 부인하리라고 말씀하셔도
베드로는 그저 반 농담으로만 알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베드로의 장담은 이와 같이 영적으로 부실하기 짝이 없는 상태에서 나온
허세에 불과한 것이었습니다.
4) 이처럼 준비 없는 자는 시험을 이기지 못합니다.
예수님은 가장 용감했던 베드로조차 세 번 부인하리라고 말씀하시는 것은
제자들 모두가 다 영적으로 깊은 나락으로 떨어지리라는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제자들 모두 자기들의 영적 상황이 그렇게도 허약해서
조그마한 시험이 와도 이길 수 없는 형편없는 것이었다는 것을 알지 못했습니다.
이처럼 준비 없는 자는 마지막 때의 시험을 이길 수 없습니다.
준비 없는 다섯 처녀의 비참한 결과가 바로 이런 것입니다.
● 묵상 : 그러므로 그 날을 준비하며 사는 자가 되십시오.
누구라도 말로는 에베레스트 산에 백번이라도 올라갈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능력이 있는 자만이 그 산에 올라갈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말로만 하는 고백은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그 믿음의 고백에 자신이 고백한 대로 살아갈 수 있는 영적인 능력이 담겨 있어야 합니다.
지금 내가 하고 있는 고백에는 그 고백대로 살아갈 수 있는 영적 능력이 담겨있는지
자신의 영적인 상황을 살피고 점검하여 보십시오.
3. 겟세마네 동산의 기도에서 우리가 배워야 할 교훈
1) 기도는 아버지의 뜻을 변경시키기 위해 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의 뜻을 더욱 확증하고 곤고히 하기 위해 합니다.
기도란 그렇게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알게 된 사람이
그 뜻이 나를 통해 이루어지도록 하기 위해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많은 경우에 자기의 뜻과 자기의 계획이 이루어지도록 기도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바꾸려 합니다.
자기가 이런 계획을 세웠으니 하나님께서 다른 계획을 세우셨더라도
자기 계획대로 해달라고 기도합니다.
이것은 바른 기도가 아닙니다.
그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좀 더 분명하게 알게 되고,
그 뜻대로 우리가 더욱 힘써 섬기며 살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것이 바른 기도입니다.
2) 기도 응답이란 : 하나님의 뜻을 더욱 분명하게 이해하게 되었고,
하나님의 뜻대로 실천할 수 있는 힘과 용기를 얻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본래 가지셨던 뜻을 변경하여 내 뜻을 이루어주신 것이 기도응답이 아닙니다.
기도응답이란
① 그 기도의 결과로 내가 하나님의 뜻을 보다 더 분명하게 알게 되었고,
② 그 하나님의 뜻대로 내가 살아갈 수 있는 힘과 용기를 갖게 된 것이 기도응답입니다.
죽을 것처럼 고민하셨던 예수께서 십자가를 질 수 있는 힘과 용기를 얻어
그 수난의 자리로 힘차게 걸어가실 수 있게 된 것이 바로 참된 기도응답인 것입니다.
제 2 부 : 예수님을 부인한 베드로
4. 예수님을 부인한 베드로
1) 베드로의 첫 번째 부인(否認) : 잘 모르겠다며 얼버무리는 말(69~70절)
그곳에는 어린 여종 한 사람뿐이었습니다.
마태복음은 ‘하나’라는 말을 반복하여
그곳에 한 사람밖에 없었는데도 베드로가 예수님을 부인했다는 것을 강조합니다.
한 사람뿐이어서 그랬는지 베드로의 처음 부인(否認)은 가벼운 것이었습니다.
어린 여종이 베드로가 예수님과 함께 있는 것을 보았다고 했을 때
그는 단지 “네가 지금 하는 말이 무슨 말인지 나는 잘 모르겠다”고 얼버무립니다.
베드로는 지금 자기가 예수님을 부인하고 있다는 것도
잘 느끼지 못할 만큼 작게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이 일로 생명을 잃게 될까봐 매우 두려워하고 있다고 하는 것을
사탄에게 알리는 것이 되고 말았습니다.
이것은 죄의 첫 발을 내딛는 것과 같습니다.
언제나 그렇듯 죄의 첫 발은 가볍게 시작합니다.
그러나 가볍게 시작한 그 첫 시작이 사탄에게 나의 약점이 무엇인지 공개한 것이 됩니다.
그러면 그 약점과 관계된 두 번째 공격이 시작됩니다.
2) 베드로의 두 번째 부인(否認) : 경멸의 단어까지 사용하며 부인함(71~72절)
① 훨씬 대담하게 예수님을 부인하는 베드로
두 번째 단계에서 베드로는 훨씬 대담하게 예수님을 부인합니다.
예수님과 자기가 전혀 관계가 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입증하기 위해
예수님을 향하여 입에 담지 못할 경멸의 단어를 사용하기까지 합니다.
② 사탄은 베드로가 두려워할 만한 분위기만 만들어 주었을 뿐입니다.
여기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사탄이 베드로에게
일일이 이렇게 저렇게 하라고 지시를 내리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사탄은 단지 바깥뜰에서 어린 여종이 알아보자 놀란 가슴을 안고
대문 쪽으로 온 베드로에게 이번엔 좀 더 분명하게
그를 알아보는 여종을 만나게 했을 뿐입니다.
사탄은 베드로가 두려워할 만한 분위기만 만들어 주었을 뿐입니다.
그러자 베드로가 자기 스스로 예수님을 전혀 모르는 자라는 것을 밝히려고
예수님을 경멸하는 단어까지 사용하게 된 것입니다.
③ 죄의 약점이 공개되면 사탄은 정신을 차릴 수 없도록 곧바로 공격합니다.
죄의 첫 발을 디뎌서 일단 사탄에게 자기의 약점에 공개되면
사탄은 그가 정신을 차리기 전에 그 다음 단계로 들어가도록 계속 옥죄어 들어옵니다.
이 단계에서 사탄이 공격하는 것은
그가 두려워하는 것을 더욱 두렵게 느끼도록 그 강도를 높이고,
물질에 대한 탐욕이면 그 탐욕을 부릴만한 환경을 더 강화하고,
욕망에 넘어졌으면 그 욕망을 더욱 누리게 될 만한 환경을 제공할 것입니다.
그러면 그보다 약한 단계에서도 넘어진 사람이
더 높은 단계의 두려움과 탐욕과 욕망을 이길 수는 없습니다.
3) 베드로의 세 번째 부인(否認) : 저주하고 명세하며 부인함(73~74절)
① 사탄은 맹수처럼 한 번 문 먹잇감은 절대로 놓지 않습니다.
먹이를 문 맹수는 먹잇감이 죽을 때까지 입에 문 것을 놓지 않습니다.
사탄도 마찬가지입니다. 일단 사탄의 사냥감이 되면
그 사냥감이 완전히 파멸에 이를 때까지 계속 옥죄어 들어간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② 결국 사탄의 의도대로 분별력을 잃고 극도의 공포에 빠진 베드로
두 번째 단계에서 또 다른 여종에게
좀 더 분명하게 베드로를 알고 있다는 말을 들은 베드로는
곧바로 바로 곁에 있는 사람들로부터 베드로가 갈릴리의 사투리를 쓰고 있으니
예수님과 같이 활동했던 자임에 틀림없다는 말을 듣습니다.
하지만 이 경우에도 단지 베드로의 사투리를 문제 삼았을 뿐입니다.
그러므로 베드로가 분별력이 있었다면
그렇게 두려워하지 않아도 되는 일이었음을 알게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두 번이나 놀란 베드로는 그의 말투까지 알아보는 자가 나타나자
이제 완전히 분별력을 잃어버리고 극도의 공포에 빠집니다.
드디어 베드로는 만일 자기가 예수님과 조금이라도 관계가 있는 자라면
자기가 저주를 받을 것이라며 저주하고 맹세하며 예수님을 부인합니다.
다른 기록에 의하면 이 때 베드로는
자기가 갈릴리 사람이 아닌 것처럼 발음을 하려 애썼다고 합니다.
베드로는 만일 예수님과 자기가 서로 아는 사람이라면
자기가 하나님께 벌 위에 벌을 내리시기를 원한다는 말을 하기까지 합니다.
③ 사탄은 한 번 시작한 죄가 사망에까지 이르도록 몰아 부칩니다.
결국 이렇게 베드로는 저주까지 하면서 맹세를 하여
예수님과 완전히 끊어지는 자가 되고 말았습니다.
나중에 그가 다시 회개하여 주님의 제자의 위치를 회복하기는 했습니다만,
적어도 이 순간에는 베드로는 가룟 유다와 같은 처지가 된 것입니다.
사탄이 베드로를 여기까지 끌고 오는 데
불과 1시간도 걸리지 않았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 묵상 :
내 감정까지 자기 마음대로 활용하여 우리를 파괴시키려 하는
사탄의 무서운 간계를 꿰뚫어보는 분별력과 판단력을 가져야 합니다.
제일 좋은 것은 죄의 충동이 일어났을 바로 그 때 주께 도움을 청하는 일입니다.
그러나 머뭇거리다 그 시간을 놓치면 점점 더 이기기 힘든 상황에 빠지게 됩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갈등과 고통만 커질 뿐입니다.
그러므로 하루라도 빨리 주께 도움을 청하십시오. 그 길만이 우리가 사는 길입니다.
5. 택한 백성을 무너뜨리는 사탄의 무기들
1) 사탄은 두려움의 무기로 우리를 무너뜨립니다.
사탄이 베드로를 무너뜨리는데 사용한 무기는 두려움입니다.
육의 죽음을 영의 죽음보다 더 두렵게 느끼게 하는 것입니다.
육의 죽음은 보기에는 끔찍하게 보이지만 우리를 단 한 번밖에 죽이기 못합니다.
그러나 이 땅에서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진 것을 말하는 영의 죽음은
지금은 우리 눈에 보이지 않아 그 두려움을 실감하지 못하지만,
영원히 벗어날 수 없는 고통이고 파멸입니다.
그 두려움이 비교가 되지 않지만, 사탄은 육의 두려움에 사로잡혀
영의 죽음이 얼마나 가공할 두려움인지를 깨닫지 못하게 합니다.
베드로는 지금 육의 죽음에 대한 공포 때문에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지는 영의 죽음을 스스로 자초하고 있습니다.
2) 사탄은 이기심과 탐욕과 고집과 세상의 욕망으로 우리를 무너뜨립니다.
사탄이 가룟 유다를 이 무기로 무너뜨렸습니다.
그는 돈 욕심에 사로잡혔고(요 12:6),
또 열심당원으로서 무력으로 로마를 물리치려는 생각을 끝내 버리지 못했습니다.
(마태복음 26:1~16 큐티의 묵상포인트 6번 참조).
가룟 유다는 돈 욕심과 자기 고집 때문에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인류 최고의 스승이신 예수님과 3년 동안 동거동락했던 유다가
주님이 직접 하시는 말씀을 듣고도 깨닫지 못했던 것처럼,
우리도 무엇인가에 마음을 빼앗기면
말씀을 들어도 무슨 말씀인지를 깨닫지 못하는 자가 됩니다.
3) 사탄은 게으름과 나태로 우리를 무너뜨립니다.
그러나 두려움이나 탐욕이나 욕망보다도 사람들이 사탄에게 넘어지는 가장 큰 유혹은
게으름과 나태입니다.
‘조금 이따 하지’, ‘딱 오늘까지만 쉬고 내일 하지’
이렇게 미루기만 하다가 결국 인생을 끝내고 맙니다.
그러므로 내 안에 이런 못된 것들이 자리 잡지 못하도록
늘 내 마음을 점검하는 일을 게을리하지 마십시오.
● 묵상 :
회개의 기회도 우리가 이 지구에서 살 때뿐이고,
주께 믿음을 고백하는 일도, 주께 예배하고 주님을 섬기는 일도
우리가 이 지구에서 살 때뿐이라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일단 육신의 생명이 끝이 나면 그 어떠한 회개도,
그 어떠한 믿음의 고백도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믿음의 때는 바로 지금입니다. 내일은 나에게 없을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6. 무모한 호언장담의 허망함 : 끝까지 이기는 자에게는 ...
1) 베드로의 무모한 장담이 가져온 참담한 결과
베드로는 불과 몇 시간 전에 죽는 일이 있을지라도
결단코 주님을 떠나는 일이 없을 것이라고 호언장담했었습니다.
그러나 자기 앞에 다가오는 일들이 얼마나 위험한 일이고,
그에게 얼마나 공포가 되는지를 알지 못한 상태에서 했던 무모한 장담이었습니다.
자기의 영의 상태가 그 위험과 공포를 이길 수 있는지
알지 못한 상태에서 한 어리석은 장담이었습니다.
그의 장담이 참 믿음이 아니라 헛된 것이었다는 것이 밝혀지는데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그는 불과 한 시간도 못되는 아주 짧은 시간에
그 스스로 예수님과 영원히 결별하는 무서운 말을 내뱉고 말았습니다.
2) 마지막 때도 이와 같습니다.
예수께서 오시기 전 마지막 때의 대 혼란의 시기에
바로 이런 시험이 이 땅에 있는 하나님의 백성들을 흔들 것입니다.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
큰 표적과 기사를 보여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도 미혹하리라”(마태복음 24:24).
그 때 수많은 사람들이 주님을 떠나 배교하는 일이 일어날 것입니다.
혹은 두려움 때문에, 혹은 자기의 이기심과 탐욕과 자기 고집 때문에,
혹은 세상의 욕망의 유혹을 이기지 못해서 주님을 스스로 떠나는 일들이
수도 없이 일어날 것입니다.
● 묵상 : 그러므로 지금부터 우리는 그 날을 미리 준비하여야 합니다.
군인들이 강군(强軍)이 되기 위해 훈련하는 것처럼,
우리도 강한 믿음을 가진 자들이 되기 위해 경건의 훈련을 하기에 힘써야 합니다.
결 론 : 예수님의 수난을 묵상하며 지내는 고난주간이 되십시오.
오늘은 십자가에 달리시기 위하여
겟세마네 동산에서 피와 기름을 짜는 기도를 하시는 예수님의 모습과
예수님을 세 번 부인한 베드로의 모습을 살펴보았습니다.
우리는 잠시 어려움을 이기지 못하고 예수님을 배반한 베드로를 닮지 말고
자신의 사명을 감당하기 위하여 고난의 자리로 당당하게 걸어가시는
예수님을 닮는 성도들이 되어아 하겠습니다.
예수님의 수난에 대한 말씀을 묵상하며 지내는
이번 고난주간이 되시기 바랍니다.
주님
힘들고 어려운 일일지라도 주께서 원하시는 일이면
“주여 종이 하겠나이다”하고
주의 뜻대로 순종하는 자들이 되게 하옵소서.
말로만 장담하는 자들이 아니라
참된 믿음을 가진 자들이 되게 하옵소서.
육신의 연약함과 사탄의 미혹을 극복하고
넉넉히 이길 힘과 능력을 주옵소서.
마귀가 두려움과 탐욕과 고집과 욕망 등으로
나를 위협하고 미혹하려 해도
그것을 이기고 극복할 수 있는
강한 믿음의 사람들이 되게 하옵소서.
강한 믿음을 갖기 위해
경건의 훈련에 힘쓰게 하옵소서.
끝까지 이겨서 기쁨으로 주님을 맞이할 수 있는
신실한 성도들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