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제목 : 하나님께 대하여 산 자로 여길지어다
설교본문 : 로마서 5:12~6:23
설 교 자 : 송호영 목사
설 교 일 : 2021년 12월 12일
서 론 :편
오늘은 성탄절 13일 전, 대림절 셋째 주일입니다.
예수께서 이 땅에 오신 일이 어째서 우리에게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이 될까요?
율법을 지키지 못하는 영적인 실패자들에게도 구원의 길이 열렸기 때문입니다.
전에는 율법을 다 지켜야만 했지만,
예수께서 오신 이후로는
단지 하나님 나라에 대하여 간절한 마음으로 관심을 갖는 정도로도 구원받을 수 있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관심과 간절함, 이 두 단어를 기억하십시오.
오늘은 관심과 간절함이
어떻게 우리를 죄에서 벗어나서 영광의 나라로 들어가게 하는지
로마의 말씀을 통해서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제 1 부 : 생명 안에서 왕노릇하리라(아담과 예수님과의 대조)
1. 죄와 사망이 이 세상 속으로 들어오게 된 경로
1) 아담이 지은 죄의 성격
한 사람 아담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왔고, 그 죄와 함께 사망도 들어왔습니다.
이 모든 일은 아담이 단순히 금지된 실과를 따먹은 것 때문에 일어난 일이 아닙니다.
아담이 금지된 실과를 따먹는 행위를 하는 동안 다음과 같은 죄를 함께 저질렀습니다.
① 자기를 만드신 창조주 하나님께 대하여 반항심을 품었습니다.
② 하나님의 말씀보다 유혹자 뱀(사탄)의 말을 더 믿고
그의 말대로 선악과를 따먹었습니다.
③ 하나님께서 그에게 자복하고 회개할 기회를 주셨으나
아담은 그 모든 책임을 하와에게 전가하여 회개할 기회를 잃어버렸습니다.
④ 무엇보다도 아담은 하나님을 떠나서 독립적인 존재로 살아가기를 원했습니다.
2) 아담의 죄로 사람에게 들어온 사망
이렇게 해서 아담과 하나님과의 관계는 끊어졌습니다.
그 결과 온 인류에게 죽음이 찾아왔습니다.
모든 생명이 하나님께로부터 나오는데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졌으니 죽음이 찾아오게 된 것입니다.
단순히 우리의 육체만 죽는 것이 아닙니다.
죄 가운데 죽는 것이니
죽은 후에 지옥에 떨어지는 영원한 멸망의 죽음을 당하게 된 것입니다.
3) 죽음과 함께 사람에게 찾아온 고통
하나님과 사람과의 관계가 끊어지자 죽음만 찾아온 것이 아닙니다.
죽음과 함께 모든 질병과 다툼, 싸움과 시기와 질투,
유혹과 타락의 모든 죄와 그에 따른 고통이 함께 들어온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이 죄의 결과로 사람에게 내려온 사망의 고통입니다.
2. 대표성을 가진 아담과 그리스도
1) 아담과 예수님의 대표성(12, 15절)
12. 이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
15. 그러나 이 은사는 그 범죄와 같지 아니하니, 곧 한 사람의 범죄를 인하여
많은 사람이 죽었은즉 더욱 하나님의 은혜와 또는 한 사람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말미암은 선물이 많은 사람에게 넘쳤으리라
아담으로 인하여 온 인류에게 죽음이 온 것처럼
예수님으로 인하여 온 인류에 생명이 찾아왔습니다.
아담과 예수님은 대표성을 가진 사람이라는 점에서 비교가 됩니다.
대표성을 가진 사람이라는 것은,
우리나라의 대통령이 외국의 대통령과 조약을 맺으면
우리나라 전체가 그 나라와 조약을 맺은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이와 같은 이치로 아담 한 사람이 지은 죄가
온 인류가 지은 죄로 여김 받게 된 것입니다.
2) 원죄 : 아담의 죄로 온 세상이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진 것(12절)
(12절 성경구절 위에)
아담으로 인하여 주어진 사망은
이 세상이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졌기 때문에 일어난 것입니다.
대표성을 가진 아담이 죄를 짓자 이 세상 전체가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졌습니다.
그러므로 아담 이후에 태어난 자들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진 상황에서 태어났으므로
죽을 수밖에 없는 자로 태어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아담으로부터 이어지는 원죄입니다.
3) 그러므로 다시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아담으로부터 이어지는 원죄에서 해방되려면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어야만 합니다.
하나님과의 끊어진 관계만 회복되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고자 하시는 모든 생명이 우리에게로 들어옵니다.
그런데 이 관계가 회복되려면 사람이 전혀 죄를 짓지 않는 자가 되어야 하는데
이것은 사람의 힘으로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이 세상에서 죄를 짓지 않는 자는 하나도 없기 때문입니다.
4) 그래서 예수께서 이 땅에 오셨습니다(16~18절)
16. 또 이 선물은 범죄한 한 사람으로 말미암은 것과 같지 아니하니
심판은 한 사람을 인하여 정죄에 이르렀으나
은사는 많은 범죄를 인하여 의롭다 하심에 이름이니라
17. 한 사람의 범죄를 인하여 사망이 그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왕노릇 하였은즉
더욱 은혜와 의의 선물을 넘치게 받는 자들이
한 분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생명 안에서 왕노릇 하리로다
18. 그런즉 한 범죄로 많은 사람이 정죄에 이른것 같이 의의 한 행동으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아 생명에 이르렀느니라
그래서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관계를 회복시키기 위해 예수께서 이 땅에 오셨습니다.
예수께서 우리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달리셨으므로
우리가 죄 없는 자로 여김 받아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 땅의 모든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께서 주시는 새로운 생명 속으로 들어갈 수 있는 길이 열렸습니다.
3. 사망의 권세를 무너뜨리신 예수님
1) 사망이 왕 노릇 한 것처럼(17절)
(17절 성경구절 위에)
사망은 늘 죄를 따라다닙니다.
죄는 죽음을 데리고 다니는 악마의 권세입니다.
이 땅에 있는 모든 사람은 죄의 냉혹한 운명에 평생 시달리다가 죽습니다.
죄의 뒤에 항상 사망이 따라다니므로 사람들은 평생 죄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 땅에서도 허영, 시기, 다툼, 갈등,
번민, 질병, 가난, 굶주림, 범죄 등에 시달리며 고통을 받다가
죽은 후에도 지옥에 떨어져 영원한 멸망에 빠지고 맙니다.
이것이 바로 사망이 사람들에게 왕 노릇하고 있는 세상의 현실입니다.
➠ 사망이 왕 노릇한다는 것은 :
사망이 왕 노릇한다는 것은
죽음의 두려움을 도구로 사탄이 사람들을 유혹하고 협박한다는 것을 뜻합니다.
사탄은 한편으로는 사망과 함께
사람에게 따라온 허영과 시기와 질병과 범죄와 같은 고통으로 사람을 압박하고,
또 다른 한편으로는 향락의 죄로 사람을 유혹합니다.
사람들은 사망의 고통을 잊기 위해 사탄이 주는 달콤한 유혹에 빠져서
더 깊은 죄의 늪으로 빠져드는 것입니다.
결국 사망의 굴레를 벗지 못하니 사망이 왕 노릇하는 것입니다.
2) 생명 안에서 왕 노릇하리라(17절)
(17절 성경구절 위에)
이 죄와 사망의 굴레에서 벗어나는 유일한 길은 오직 예수님뿐입니다.
예수께서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는 순간
죄의 뒤를 따라다녔던 사망이 더이상 우리를 위협하지 못합니다.
단순히 죄를 용서받는 것만이 아니라
하나님처럼 완전한 의를 가진 자로 여김 받아 하나님의 자녀의 신분이 회복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생명 안에서 왕 노릇하는 것으로 표현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망을 향하여 호령하시는 것처럼
우리 또한 사망을 도구로 우리를 위협하는 사탄의 세력에 대하여
호령하는 자들이 된 것입니다.
3) 우리가 하나님의 의를 선물로 받았기에 가능한 일(18절)
(18절 성경구절 위에)
우리가 생명 안에서 왕 노릇하려면
사망의 고통으로 우리를 압박하는 사탄의 공격을 이겨내야만 합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죄가 있는 한
사망을 도구로 공격하는 사탄의 압박을 이겨낼 수 없습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죄를 모두 용서받고,
그뿐만 아니라 완전하신 하나님의 의까지 선물로 받았으니
우리는 더 이상 사탄이 사망을 무기로 공격하더라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가령 아주 무서운 질병이 세상에 퍼져 온 세상이 두려움에 빠져 있을지라도
예방주사를 맞아 면역력이 생겼다면 더 이상 그 질병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예수께서 우리가 지은 죄를 대신 짊어지시고 십자가에 달리셔서
우리의 죄를 모두 용서해주셨으니,
사탄이 죄를 무기로 우리를 공격할지라도 더 이상 두려워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제 2 부 : 신비한 연합(하나님께 대하여 산 자로 여길지어다) 6장
1. 세례의 의미
1) 세례를 통하여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연합하여 함께 장사 됨(4절)
(4절 성경구절 아래)
아담이 홀로 범한 죄였으나, 대표성을 가진 자이므로
우리 역시 아담 안에서 아담과 함께 죄를 지었습니다.
그래서 죄가 우리 가운데 들어왔고, 죄와 함께 사망도 들어왔습니다.
이와 같은 원리로 우리가 세례를 받을 때
주님 안에서 우리도 주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고, 주님과 함께 무덤에 묻혔습니다.
우리가 세례를 받을 때 과거 2,000년 전에 있었던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으심에 함께 참여하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2) 세례를 통하여 그리스도의 부활과 연합하여 영광 가운데 살리심을 받음(4~5절)
4.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니라
5. 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리라
주께서 십자가에 달리실 때 주께서 우리의 죄를 모두 짊어지고 죽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세례를 받을 때 죄에 속한 우리의 몸이 주와 함께 죽었습니다.
사망의 세력에 짓눌려 사탄에게 속했던 죄의 몸이 주와 함께 죽었습니다.
주님을 만나기 이전의 옛사람이 주와 함께 죽었습니다.
죄의 몸이 죽을 때 그동안 우리가 저질렀던 모든 죄도 함께 사라졌습니다.
주께서 그 모든 죄의 벌을 대신 받으셨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세례입니다.
3) 세례를 통하여 새 생명으로 다시 사는 자가 됨(4절)
(4절 성경구절 위에)
세례를 통하여 우리가 주의 죽으심과 연합한 자가 될 뿐만 아니라,
주의 부활하심과도 연합합니다.
주께서 영광스러운 몸으로 다시 살아나신 것처럼
우리도 새 생명으로 다시 태어납니다.
육신의 생명이 그대로 이어지니 우리는 이 변화를 잘 느끼지 못하지만,
우리는 이전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피조물, 새로운 창조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거듭남입니다.
● 묵상 :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거듭난 자가 되십시오.
그러나 단지 세례를 받는 것만으로
새로운 생명, 새로운 창조물로 사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세례는 성도들 앞에서 내가 이제부터 예수를 믿는 사람임을 고백하는 의식이고,
진정한 세례는 성령을 통해 이루어집니다.
성령이 내 안에 들어오셔서 내 안에 주님을 사랑하며 섬기려는 마음을 넣어주실 때
비로소 참된 새 생명이 이루어집니다.
그러므로 성령께 거듭남을 주시기를 기도하십시오.
2. 성화(聖化) : 매일의 삶 속에서 동참하며 살아야 할 현재의 사건으로
1) 죄 가운데 사는 자, 죄의 몸(1, 2절)
1.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은혜를 더하게 하려고 죄에 거하겠느뇨
2. 그럴 수 없느니라 죄에 대하여 죽은 우리가 어찌 그 가운데 더 살리요
죄 가운데서 산다는 것은 죄에 대한 투쟁 없이 사는 것을 가리킵니다.
죄를 죄로 여기지 않고 사는 것입니다.
삶의 목적이 죄의 욕구를 충족시키는 것입니다.
죄의 욕망을 즐거워하며 사는 것이 죄 가운데서 사는 것입니다.
이런 자가 바로 죄 가운데 사는 자입니다.
이런 자는 이 세상에서 죄의 몸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죄의 몸으로 살다 죽는 자는 영원한 멸망에 빠지게 됩니다.
2) 죄에 대하여 죽은 우리가(2절)
(2절 성경구절 위에)
주께서 십자가에 달리실 때 주께서 우리의 죄를 모두 짊어지고 죽으셨습니다.
그래서 사망의 세력에 짓눌려 사탄에게 속했던 죄의 몸이 죽었습니다.
주님을 만나기 이전의 옛사람이 죽었습니다.
죄의 몸이 죽을 때 그동안 우리가 저질렀던 모든 죄도 함께 사라졌습니다.
그러므로 더이상 마귀가 우리를 지배하지 못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신 새 생명으로 사는 것입니다.
3) 죄와의 투쟁 : 어떻게 죄 가운데 그대로 살 수 있겠습니까(2절)
(2절 성경구절 위에)
그러나 우리의 옛사람이 죽고 새로운 피조물로, 새 생명으로 다시 사는 삶을 사는 것이
아직 온전히 이루어진 것이 아닙니다.
옛사람이 죽었다는 것은 더이상 죄와 사망의 지배를 받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하지,
다시는 죄를 짓지 않는 자가 완전한 되었다는 뜻이 아닙니다.
우리는 여전히 죄의 유혹 속에 있고, 내 안에 죄를 짓고자 하는 자취가 남아 있습니다.
4) 우리가 다시는 죄에게 종 노릇하지 않게 하려고 주께서 십자가에 달리셨습니다(6절)
6.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멸하여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노릇 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그러나 죄와의 투쟁에서 우리는 결코 이길 수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께서 오셨습니다.
주께서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달리신 바로 그 순간
죄를 무기로 우리를 고발하고 압박하는 마귀의 세력을 물리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죄를 범하였을지라도 다시 주님 앞에 나아가서 죄를 고백하면
주께서 용서해주시고 다시 새로움을 입혀주십니다.
5) 성도의 삶 : 날마다 옛사람을 벗고 새 사람을 입는 것(성화,聖化)
이렇게 우리는 날마다 옛사람을 벗고 새 사람을 입는 일을 합니다.
이것을 신학자들은 조금 어려운 말로
“주님의 십자가와 부활을 매일의 삶 속에서 동참하며 살아야 할
현재의 사건이 되게 해야 한다”하고 말합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고 다시 부활하신 일을
나의 삶 속에서 매일 매일 실현하며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날마다 옛사람을 벗고 날마다 새 사람을 입는 일을 할 때
주님의 십자가와 부활은 나의 현재의 사건이 되는 것입니다.
이 일을 중단하면 그 순간부터
마귀가 내 안에 죄의 독을 넣기 시작한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 묵상 :
말씀을 묵상할 때
말씀 안에서 아직 남아 있는 옛사람의 자취를 찾아내어 주께 고백하면
주께서 그 죄의 자치를 박멸하십니다.
그리고 주께서 주시는 새 힘을 얻어 새 생명을 얻은 자의 삶을 살아가게 하십니다.
3. 하나님께 대하여 산 자로 여길지어다
1) 회개의 영성과 부활의 영성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예수님과 연합한 자가 된다는 것은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와 함께 옛사람을 벗고,
예수님의 부활과 함께 새 생명을 얻는 것입니다.
그런데 한국 사람들의 경우 앞엣것은 비교적 잘하는데, 뒤엣것은 잘 못 합니다.
그동안 한국교회는 부활과 함께 새 생명을 얻는 일은 외면하고
죄를 벗는 회개의 영성만 강조하였습니다.
(최근에는 그나마도 잘 안 되고 있습니다).
2) 새 생명을 얻은 자답게 살아가십시오(4절).
4.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니라
그러나 죄를 벗은 후에 하나님의 백성으로 새 생명을 얻은 자답게 사는 것이
더 회복되어야 합니다.
질병을 고쳐 병이 나아 건강을 회복했으면
직장을 가든 학교를 가든 자신의 삶을 살아야 하는 것처럼,
죄를 용서받고 새 삶을 얻었으면 하나님의 백성이 해야 하는 일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죄를 벗는 영성에만 머물지 말고
주 안에서 새 생명을 얻은 자, 승리한 자의 영성을 가지십시오.
당신이 죄의 용서함을 받고 사죄의 체험을 한 자라면,
이제부터는 주님을 섬기는 일을 적극적으로 하는 자가 되십시오.
생명의 일, 주께서 기뻐하시는 일을 적극적으로 찾아서 하는 자가 되십시오.
3) 하나님을 대하여 산 자로 여기십시오(11절)
11. 이와 같이 너희도 너희 자신을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을 대하여는 산 자로 여길찌어다
우리는 이 땅에서 이미 새 생명으로 살아가고 있는 자들입니다.
이것을 분명히 믿으십시오.
이미 하나님의 자녀로, 천국 백성으로 살아가고 있는 자들입니다.
이것을 마치 눈앞에 실상을 보듯 확실히 믿는 자가 되십시오.
그러면 세상일로 쉽게 좌절하거나 절망하는 자가 되지 않을 것입니다.
또 잠시 어려움을 겪더라도 무슨 죽을 일이 생긴 것처럼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우리는 이미 새 생명으로 살고 있는 자들입니다.
● 묵상 :
건강을 회복한 후 가만히 있으면 다시 병에 걸리듯,
우리의 영도 죄의 용서를 받은 후 적극적으로 주님을 섬기는 삶을 살지 않으면
다시 죄의 노예로 전락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주님을 섬기기에 더욱 힘쓰는 자가 되십시오.
제 3 부 : 양자택일(우리 몸 안에서 일어나는 전쟁)
이 세상에 사는 사람은 죄의 노예이거나 하나님의 종이거나 둘 중의 하나입니다.
만일 어떤 사람이 하나님의 종이 아니라면 그는 죄의 종입니다.
이도 저도 아닌 그 중간은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본문의 말씀을 잘 깨달아서
하나님을 섬기는 의의 종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1. 양자택일 1 : 죄의 종이냐 의의 종이냐
1) 그리스도인은 새 생명과 죽을 몸을 동시에 갖고 있는 자(12, 20절)
12. 그러므로 너희는 죄로 너희 죽을 몸에 왕노릇하지 못하게 하여
몸의 사욕을 순종치 말고
20. 너희가 죄의 종이 되었을 때에는 의에 대하여 자유하였느니라
12절에서 말하는 ‘죽을 몸’이란
죄의 지배를 받는, 육체의 욕망에 자극을 받는 타락한 육신을 가리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거듭나서 새 생명으로 살아간다고 할지라도,
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우리는 여전히 육체의 욕망에 반응하는 타락한 육신을 갖고 살아갑니다.
예수님을 믿기 전에는 우리에게 이 타락한 육신만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과거에는 죄의 몸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고 세례를 받은 후에는
우리에게 하나님을 바라보며 사는 새 생명이 생겼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세상에 사는 동안에는
하나님께서 새롭게 주신 새 생명과 육체의 욕망에 반응하는 죽을 몸,
이 두 생명을 동시에 갖고 사는 자가 되었습니다.
2) 그리스도인들도 타락하면 다시 죄의 종이 됩니다(16절)
16. 너희 자신을 종으로 드려 누구에게 순종하든지
그 순종함을 받는 자의 종이 되는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혹은 죄의 종으로 사망에 이르고 혹은 순종의 종으로 의에 이르느니라
그리스도인이 새 생명과 죽을 몸을 동시에 갖고 있다는 것은
다시 타락하여 이전에 사탄에게 지배를 받던
이전의 죄의 몸으로 되돌아갈 수도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을 바라보지 않고 세상을 바라보며 산다면,
말씀에 반응하지 않고 육체의 욕망에만 반응하는 자가 된다면,
다시 사탄의 노예인 옛사람으로 전락하고 마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를 믿은 후에라도 죄의 정욕에 다시 굴복하면
죄가 그를 다시 지배하여 사망이 그에게 왕 노릇하게 되는 것입니다.
3) 그러므로 의에 순종하여 의의 종이 되십시오(16절)
(16절 성경구절 위에)
이렇게 예수를 믿은 후에라도 죄의 정욕에 굴복하면
그가 범한 죄를 무기로 죄가 점차로 그의 몸 안에서 자신의 영역을 넓혀갑니다.
그래서 서서히 하나님의 의에서는 멀어지고
파멸과 사망에 점점 더 가까워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날마다 말씀을 묵상하고 그 말씀에 따라 살기에 힘써서
의에 순종하는 의의 종이 되어야 합니다.
● 묵상1 : 죄도 의도 아닌 중간은 없습니다.
중립은 없습니다.
의의 종이 되기 위해 힘쓰지 않는 자는 모두 죄의 종이 됩니다.
죄의 종은 계속 파멸을 향하여 가고, 의의 종은 더욱 거룩함을 향하여 갑니다.
죄의 종의 열매는 수치와 부끄러움이요 그 결말은 사망(심판)이고,
의의 종의 열매는 거룩함이고 그 결말은 영생입니다.
우리 앞에 이 두 길이 항상 있다는 것을 기억합시다.
● 묵상2 : 어떤 자극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습니까?
예수님을 믿지 않는 자들은 세상의 일에만 반응하는 죽을 몸만 가지고 있지만,
예수님을 믿는 그리스도인은 새 생명과 죽을 몸을 한 몸에 동시에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세상의 일에도 반응하고 신령한 은혜의 일에도 반응합니다.
그러나 이 둘은 서로 대적하는 관계에 있어서
세상일에 반응하는 죽을 몸이 성하면 신령한 은혜에 반응하는 새 생명은 약해지고,
반대로 새 생명이 성해지면 죽을 몸은 약해집니다.
➠ 문제는 내가 어떤 자극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냐에 달려 있습니다.
세상일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면 우리 안에 있는 새 생명은 점점 약해지고,
신령한 은혜의 일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면
세상의 죽을 몸은 약해져서 강력한 유혹에도 넉넉히 이기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성령께서 우리에게 오셔서
주께서 우리에게 주신 새 생명이 더욱 강력해지도록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2. 양자택일 2 : 불의의 병기냐 의의 병기냐
1) 여러분의 지체를 의의 병기로 하나님께 드리십시오(13절)
13. 또한 너희 지체를 불의의 병기로 죄에게 드리지 말고
오직 너희 자신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산 자 같이 하나님께 드리며
너희 지체를 의의 병기로 하나님께 드리라
여기에서 ‘병기, 무기’는 ‘도구’를 뜻합니다.
내 몸을 불의를 행하기 위한 도구가 되게 할 것이냐,
의를 행하기 위한 도구가 되게 할 것이냐 하는 것입니다.
죄를 범하면 내 몸을 죄의 도구로 사용한 것이 되고,
말씀에 순종하면 우리의 몸을 의를 이루기 위한 도구로 사용한 것이 됩니다.
우리 몸을 죄를 범하는 도구로 사용하면 내 몸을 죄에 바치는 것이 되고,
의를 이루기 위한 도구로 사용하면 내 몸을 하나님께 바치는 것이 됩니다.
내 몸이 사탄이 사용하는 악의 도구가 되지 않게 하십시오.
내 몸이 사탄의 도구라고 생각하면 참으로 끔찍한 일이 아닙니까?
우리 몸이 하나님께서 사용하시는 의의 도구가 되게 하십시오.
2) 우리 몸 안에서 일어난 전쟁
우리의 몸을 두고 ‘죄와 의’ 사이에서 무서운 전쟁이 일어났습니다.
죄와 의가 내 몸을 두고 평생 전쟁을 벌입니다.
죄와 의가 동시에 내 몸에 자극을 합니다.
죄는 내 몸에 아직 남아있는 욕망의 자리를 자극하고,
의는 주께서 내 안에 넣어주신 새 생명을 자극합니다.
죄가 자극한 욕망을 따라 죄를 범하면 죄가 우리의 죽을 몸을 지배하고,
의가 자극한 신령한 은혜를 따라가면 하나님의 성령이 우리의 새 생명을 지배하여
우리가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으로 자라가게 되는 것입니다.
3) 빛으로 어두움을 몰아내십시오.
우리 몸 안에서 벌어지는 이 치열한 전쟁에서 승리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죄와 싸워 이기는 방식은 구약의 방식입니다.
구약성경을 통해 이 방법은 이미 실패한 방법임이 증명되었습니다.
이제 우리는 주께서 마련하신 새로운 방법으로 죄와 싸웁니다.
그것은 빛으로 어두움을 이기는 방식입니다.
아무리 짙은 어두움에 싸였을지라도 양초 하나의 빛도 이기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이제부터는 빛이신 예수님을 바라보는 방식으로 죄와 싸워 이깁니다.
➠ 죄와 싸우려 하지 말고 의를 내 안에 채우려 하십시오.
욕망을 몰아내려 하지 말고 하나님의 거룩한 성령을 내 안에 채우려 하십시오.
내 몸을 의의 도구로 사용하여 주님을 사랑하며 섬기는 일에 힘쓰십시오.
그러면 빛으로 어두움이 사라지듯,
주님의 성령으로 우리 안에 있는 죄의 욕망이 사라집니다.
● 묵상 :
그동안 한국 교회는 죄를 범하지 않으려는 수동적인 영성에 머물렀습니다.
이제는 죄를 짓지 않으려는 수동적인 자세를 떠나서
자신의 몸을 의의 병기로 드리기에 힘쓰는 적극적인 영성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내 몸을 의를 위한 도구로 사용하려 힘쓰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기에 힘쓰는 삶을 살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지난 한 주간 동안 내 몸은 죄의 도구로 사용되었는지,
의의 도구로 사용되었는지 살펴봅시다.
죄의 도구로 사용된 점이 있다면
죄가 나를 더 이상 지배하지 못하도록 주께 회개하십시오.
3. 양자택일 3 : 의에 대하여 자유인가, 죄에 대하여 자유인가,
1) 의에 대하여 자유한 자와, 죄에 대하여 자유한 자(19~20절)
19. 너희 육신이 연약하므로 내가 사람의 예대로 말하노니
전에 너희가 너희 지체를 부정과 불법에 드려 불법에 이른 것 같이
이제는 너희 지체를 의에게 종으로 드려 거룩함에 이르라
20. 너희가 죄의 종이 되었을 때에는 의에 대하여 자유하였느니라
신앙의 세계를 떠나서 자기가 원하는 대로, 자기 방식의 삶을 살아가는 것이
‘의에 대하여 자유한 삶’입니다.
의에 지배를 받지 않고 산다는 의미에서 자유라고 표현했습니다.
반대로 죄에 대하여 자유한 자는 죄가 어떤 유혹을 하든 상관없이
오직 주님의 은혜 속에서만 사는 성령이 충만한 자입니다.
주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과는 상관없는 삶을 살고 있으니
의에 대하여 자유한 자이나,
예수님을 믿는 자들은 이 두 가지 자유 사이에서 사는 자들입니다.
때로는 성령에 충만하여 오직 주님의 은혜 안에서 살기도 하지만,
때로는 세상의 일에 분주하여 은혜의 자리를 잊고 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2)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입니다(23절)
23.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
의에 자유한 자는 의의 지배에서 벗어났으니
자유롭게 자기 뜻대로 사는 것으로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영의 세계에서 중립이란 없습니다.
누군가가 의에 지배를 받지 않는다면 그는 죄의 지배를 받고 사는 자입니다.
의를 떠나 독립된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겠지만,
실상 그는 죄와 사망의 지배를 받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마치 착하고 의로운 주인에게서 독립하면 혼자 떠났더니
아주 고약한 폭군이 나를 사로잡아 폭군의 지배를 받게 된 것과 같습니다.
● 묵상 :
하나님의 말씀에 지배를 받지 않고 내 뜻대로 살기를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당신은 하나님 대신 죄와 사망의 노예가 될 것입니다.
죄와 사망의 노예에서 벗어나기를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하나님의 말씀에 지배를 받는 자가 되십시오.
하나님의 말씀에 지배를 받는 자들은 하나님의 노예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하나님의 자녀로 삼으셨습니다.
그러므로 의의 종이 되면 거룩함이라는 열매를 맺고 그 결과는 거룩함과 생명입니다.
결 론 : 더 좋은 선택을 위하여
➠ 더 좋은 선택을 위하여
우리는 날마다 무엇인가를 끊임없이 선택하며 살아갑니다.
그 선택들을 통해서 우리는 죄의 종이 되든지 의의 종이 되든지 합니다.
어느 하나의 선택으로 모든 것이 결정이 될 때도 있으나
대개의 경우 많은 선택들이 모아져서 사망이나 생명이 결정됩니다.
● 묵상 : 오늘 당신은 어떤 선택을 했습니까?
당신은 오늘 어떤 선택을 했습니까?
무엇을 얻고 무엇을 기대하며 그 선택을 했습니까?
만일 하나님의 말씀에 지배를 받는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삶을 살아가길 원한다면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지를 생각하며 선택하십시오.
이 선택들이 모여서 우리가 거룩함에 이르고 영생을 얻는 자가 됩니다.
더 좋은 선택을 위하여 날마다 옛사람을 벗고 새 사람을 입는 말씀 묵상을 계속하십시오.
말씀 묵상을 할 때 아직 벗지 못한 옛사람의 모습이 무엇인지를 말씀에서 찾아보십시오.
그리고 그것을 벗게 해 주실 것을 주께 기도하십시오.
더 좋은 선택을 하려면
하나님께서 주신 더 좋은 가치관과
하나님께서 주신 신령한 판단력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이것이 성경에서 말하는 지혜와 총명입니다.
주께 지혜 주시기를 기도하십시오.
주님
죄와 사망의 굴레에서
우리를 해방시켜 주신 주님께
감사하며 찬양합니다.
오늘 내가 말씀으로 죄를 폭로하여 회개하지 않으면,
마지막 심판 날에 그 죄가 폭로되어
멸망에 처하게 된다는 것을 기억하게 하옵소서.
그러므로 말씀으로 스스로 자신의 죄를 폭로하는
말씀 묵상을 게을리하지 말게 하옵소서.
우리의 몸을 의의 병기로
하나님께 드리는 삶을 살아가게 하옵소서.
신령한 판단력과 지혜를 주셔서
더 좋은 선택을 하며 살아가게 하옵소서.
날마다 빛이신 주님과 교제하는 자가 되어
죄와 싸워 이기는 자가 되게 하옵소서.
날마다 옛사람을 벗고
새 사람을 입는 일을 하게 하옵소서.
새 생명을 얻은 자답게
건강하고 신실한 믿음의 생활을
하는 자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