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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 설교문

[송년주일]영의 새로운 것으로 섬길 것이요(12월 26일; 롬 7:1~25)

작성자송호영|작성시간21.12.29|조회수308 목록 댓글 0

설교제목 : 영의 새로운 것으로 섬길 것이요

설교본문 : 로마서 7:1~25

설 교 자 : 송호영 목사

설 교 일 : 2021년 12월 2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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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론 : 신앙의 갈등과 위기의 문제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리실 때 좌우편에 있던 두 강도 중의 한 사람은

    죽기 직전 마지막 순간에 주께 구하는 것만으로 천국에 들어가는 자가 되었습니다. 

 

    이처럼 예수께서 부활하신 후에는 새로운 복음의 법이 적용되어

    주님을 바라보며 주께 구하는 것만으로도 구원받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천사들이 한밤중에 양을 치던 목사들에게

    주께서 나신 소식을 ‘큰 기쁨의 좋은 소식’이라고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실상 우리의 삶을 보면 신앙생활이 참으로 어렵다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바라보면 구원받는 자가 될 줄 마귀도 알고 있으므로

    우리의 마음과 시선을 세상에 빼앗기도록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바라보며 구하는 이 기초적인 것조차 하기 힘들게 되었습니다.

 

    율법을 지킬 수 없는 신앙의 약자들을 위해서 주께서 오셔서

    누구든 구하기만 하면 구원받을 수 있도록 하셨는데,

    그 쉬운 기초적인 것마저 할 수 없다면 참으로 암담한 일입니다.

    이 일이 주께서 주신 마지막 은혜이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이 문제를 해결하는 법을
    로마서 7장과 8장에서 아주 자세하게 증거합니다.

 

    오늘은 로마서 7장의 말씀에서

    신앙의 갈등과 위기의 문제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 : 영의 새로운 것으로 섬길 것이요

 

1. 사람을 파괴시키는 죄의 세 가지 전력

 

    본래 율법은 사람을 살리기 위해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신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 육신의 내부에 있는 죄의 정욕을 그대로 둔 채 주어진 것이었으므로

    오히려 율법에서 금하고 있는 것을 더욱 행하고 싶은 충동이 일어나게 되는

    역기능이 발생하게 된 것입니다.

 

    여기에서 바울은 율법을 사망의 도구가 되게 한 죄의 세 가지 전략을 소개합니다.

 

 1) 점점 커지는 죄의 번식의 법칙

 

    사람을 사망에 이르게 하는 죄의 첫 번째 전략은 죄의 번식 법칙입니다.

    죄는 처음에는 사람에게 접근할 때 아주 작고 사소한 것을 가지고 접근합니다.

    그러나 그 작은 죄를 덥석 물면 점점 저 큰 죄를 짓도록 그를 이끌어갑니다.

 

    가령 다윗이 밧세바를 취하였을 때

    다윗은 이 사실을 은폐하기 위해 그녀의 남편 우리야를 살해합니다.

    본래 우리야를 살해할 목적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처음에 죄를 짓고 나니 그다음 살인의 죄에까지 이르게 된 것입니다.

    이것이 죄의 번식 법칙입니다.

 

    처음에는 단지 말씀을 묵상하기 싫어서 게으름을 피웠을 뿐인데 그 죄가 점차 번식하여

    하나님을 섬기는 일체의 신령한 일들이 다 싫어지게 되는 것도 같은 이치입니다.

 

    우리 속담에도 바늘 도둑이 소도둑 된다는 말이 있습니다.

    작게 시작한 죄가 점점 커져서

    결국 하나님의 진노를 받는 멸망의 사람이 되고 마는 것이 죄의 번식의 법칙입니다.

    죄는 그대로 두면 반드시 커져서 그 사람을 삼켜버립니다.

 

    묵상 : 그래서 구하라는 것이고, 그래서 도움을 청하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죄를 이기기 힘든 것은

       죄가 시작되는 바로 그때 우리를 덥석 물어서 우리 안에 죄의 독을 집어넣기 때문입니다.

 

       그 죄의 독이 들어가면 점점 죄를 좋아하고

       신앙의 신령한 일은 싫어하는 자가 됩니다.

 

       평안할 때도 죄를 이기기 힘들었는데 마귀가 죄의 독을 넣은 후에는 얼마나 더 힘들겠습니까?

 

       그러므로 죄가 처음 시작될 때, 지극히 작은 죄의 그 시작점에서 주께 도움을 청해야 합니다.

       그러면 주께서 우리 안에 죄의 독을 중화시키는 해독제를 넣어주시는 것입니다.

 

 2) 우리의 죽을 몸의 자리를 계속 자극하는 죄

 

    죄는 우리의 죽을 몸의 자리를 자꾸만 자극하여

    율법에서 금지하고 있는 것을 더욱 하고 싶게 만듭니다.

 

    특히 하나님께서 금지하신 것을 범하고 싶은 욕망을 일으킵니다.

    자꾸 그 죄의 근처에서 맴돌게 합니다.

    그 죄를 범하고 싶은 욕망의 자리를 자꾸 자극하여 죄를 범하고 싶게 만듭니다.

 

    하와가 에덴동산에서 선악과 주변을 계속 맴돌았던 것은

    하나님께서 그 열매를 따 먹지 말라고 금지하셨기 때문입니다.

 

    죄는 딱 하나 금지된 열매를 자꾸만 바라보게 했습니다.

    그래서 결국 그녀와 그녀의 남편 아담이 따먹고 나자 그다음에는 죄의 본 모습이 나타나

    그들을 서로 책임 전가하게 하여 결국 파멸로 이끌고 간 것입니다.

 

 3) 죄는 기회 포착의 달인

 

    무엇보다도 죄는 기회 포착의 달인입니다.

    죄는 우리가 아주 작은 틈만 보여도 그 틈을 타고 들어와

    우리 안에 있는 죄의 정욕을 충동질합니다.

 

    하와가 선악과를 바라볼 때 마귀는 바로 그 기회를 포착하여 뱀을 통해 유혹하게 했습니다.

 

    우리가 무엇을 바라보는지,

    내가 무슨 생각을 했는지 그 모든 것을 지켜보며 마귀는 기회를 포착합니다.

 

    그런데 율법은 단지 무엇 무엇을 금지한다는 조항만 있었기 때문에

    이 죄의 교활함과 싸워 이길 수 없었던 것입니다.

 

 4) 죄의 교활함

 

    죄는 이렇게 우리의 죽을 몸의 자리를 자극하여 죄의 욕망을 불러일으키고,

    특히 하나님께서 금지하신 것들을 범하고 싶은 충동이 일어나게 하며,

    그 죄의 주변에서 맴돌게 하다가 점점 더 깊은 죄에 빠지게 하다가

    이제 파멸에 이를 정도로 깊은 단계에 들어가면 우리를 멸망의 자리로 버립니다.

 

    죄는 우리가 완전히 파멸의 자리에 들어갈 때까지 우리를 놓아주지 않습니다.

 

묵상 :

 

    그러므로 자기 혼자의 힘으로 죄를 이기려 하면 백전백패입니다.

    보이지 않는 악의 영이 내 욕망의 자리를 계속 자극하며 충동질을 하는데

    이 싸움에서 어찌 이길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우리는 성령의 도우심을 받아야만 합니다.

    성령께서 주시는 은혜로 살지 않으면 죄의 교활함에 넘어지고 맙니다.

    우리는 로마서 8장에서 성령의 도우심으로 죄와 싸워 이기는 법을 배우게 될 것입니다.

 

 

2. 영의 새로운 것으로 섬길 것이요

 

    우리가 이렇게 지극히 작은 욕망에서 맥없이 넘어져서

    도무지 선한 일이라고는 할 수 없는 자들이 되자

    주께서 이 땅에 오셔서 우리에게 새로운 영의 법을 주신 것입니다.

 

    주께서 주신 이 새로운 이 영의 법으로 말미암아

    우리처럼 연약한 자라도 천국에 갈 수 있는 길이 열렸습니다.

    이 부분은 앞으로 로마서 8장에서 더 자세히 살펴보게 될 것입니다.

 

    주께서 우리에게 주신 새 법의 탁월함은 다음 세 가지에서 나타납니다.

 

 1) 의인(義認) : 죄의 용서와 의롭게 여김을 받음

 

    율법이 죄의 공격 앞에 그렇게도 무력하게 넘어지게 된 결정적인 이유는

    우리 안에 있는 죄 때문입니다.

 

    죄의 정욕이 그대로 살아 있기에

    율법에서 무엇을 금지한다는 금령들을 아무리 무섭게 기록했더라도

    아무런 소용이 없었습니다.

 

    오히려 죄의 정욕이 그 금지의 법령들을 어기고 싶은 충동만 더욱 부채질하게 했습니다.

    문제는 율법이 아니라 우리 안에 있는 죄의 정욕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리셔서 우리의 죄를 용서해주셔서

    죄의 정욕이 그 힘을 잃게 하셨습니다.

 

    율법에서는 모든 것을 다 지켜야만 할 수 있는 일을

    예수님의 십자가로 말미암아 우리는 처음부터 죄를 다 용서받은 상태에서

    신앙생활을 새롭게 시작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우리가 아예 처음부터 죄를 하나도 짓지 않은 것처럼

    의로운 자로 여겨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구약의 성도들보다 얼마나 큰 복을 받은 사람들입니까?

    우리의 모든 죄를 용서해주셔서

    우리 안에 있는 죄의 정욕을 무력하게 하신 주께 감사하며 찬양합시다.

 

 2) 성령으로 새 본성과 새 힘을 주셔서

 

    죄를 용서해주셨을 하나님처럼 완전한 의를 가진 자로 여겨주셨다고 할지라도

    우리의 몸에는 여전히 죄에 자극을 받는 욕망이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거룩하신 영이신 성령을 우리에게 보내주셔서,

    성령께서 주시는 힘으로 죄를 이길 능력을 갖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성령께서 우리에게 하나님을 사랑하게 하는 새로운 본성을 주셔서

    하나님을 기쁨으로 섬기게 해 주셨습니다.

 

 3) 성령께서 주신 새 본성 : 기쁨으로 섬기게 하는 자발성의 원리

 

    성령께서 우리에게 주신 새로운 본성을 한 마디로 ‘자발성의 원리’라고 말합니다.

    전에는 율법에 기록되어 있으니까 싫어도 해야 했는데,

    지금은 성령께서 주신 새로운 본성으로

    내가 기뻐서 스스로 자원하여 하는 자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을 부어주시니

    내가 사랑하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기 위해

    스스로 자원하여 주님을 섬기는 자가 된 것입니다.

 

묵상 :

 

    그러나 주께서 주신 새 법은

    주님의 은혜 안에 계속 머물러 있는 자에게만 그 효력을 나타냅니다.

 

    그러므로 항상 주님의 말씀을 묵상하며 기도하는 신실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러면 주께서 내 안에 있는 죄의 정욕을 꼼짝 못 하게 묶어주셔서
    우리로 신실한 삶을 계속 살게 하십니다.

 

 

2 : 갈등을 이기고 승리하는 자가 되려면

 

1. 바울의 자기 고백

 

 1) 나는 육신에 속하여 죄 아래 팔렸도다(14절)

 

           14. 우리가 율법은 신령한줄 알거니와 나는 육신에 속하여 죄 아래 팔렸도다.

 

    바리새파 중에서도 가장 엄한 선생인 가말리엘로부터 훈련받은 바울은

    누구보다도 율법을 잘 아는 자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여전히 육신의 욕망을 절제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율법이 금지한 죄에 대한 욕망이 자꾸만 충동적으로 일어나지만

    그것을 제어할 능력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이것을 가리켜 자신은 여전히 죄 아래 팔린 자라고 한탄합니다.

 

    그렇게 엄하게 율법을 훈련받았지만 여전히 악을 행하려는 욕망이 불같이 일어나고 있고,

    그것을 절제하지 못하고 있는 자신을 바라보면서

    바울은 자기가 아직도 죄 아래 팔린 육신에 속한 자임에 틀림없다며 한탄하고 있습니다.

 

 2) 도대체 내가 하는 일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15절)

 

           15. 나의 행하는 것을 내가 알지 못하노니

                곧 원하는 이것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미워하는 그것을 함이라.

 

    바울은 자기가 하는 일이 무엇인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고 한탄합니다.

    율법을 배웠고 그 율법대로 살아야 하나님께 복을 받는다는 것도 잘 아는데,

    자기는 하나님께서 증오하시는 일만 하고 있으니

    자기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이해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멸망을 받는다는 것을 누구보다도 잘 아는데

    어찌하여 자신을 멸망으로 이끄는 죄의 충동을 절제하지 못하는지,

    자신의 연약함을 한탄합니다.

 

 3) 바울이 자기 고백을 한 이유

 

    바울은 마치 사람들 앞에 혼자 발가벗겨진 것같이 자신의 추한 내면을 공개했습니다.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불도저같이 어려움을 극복하며 복음을 전했던 바울도

    죄를 이기지 못해 한탄했었다는 것이 당황스럽습니다.

 

    그러나 바울 역시 육신을 입은 사람입니다.

    바울도 긴장을 늦추고 게으름을 피우면 언제 망가질지 모르는

    육신의 정욕을 가지고 있는 사람입니다.

 

묵상 :

 

    바울도 날마다 주님의 은혜를 힘입지 않으면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연약한 사람입니다.

    바울은 자신의 고백을 하면서

    사람이 어떻게 해서 죄에 노예가 되는지 그 과정을 상세히 증거한 것입니다.

 

    바울은 자기의 경우를 공개하며

    누구든 언제든지 한순간에 무너질 수 있다는 사실을 경고한 것입니다.

 

    바울이 그러하다면 우리같이 평범한 사람들은 얼마나 더 쉽게 무너지겠습니까?

    그러므로 영적인 긴장감을 잃지 말아야 합니다.

 

 

2. 갈등은 살아 있다는 증거

 

    바울은 3차 전도여행까지 모두 마칠 즈음에 로마서를 썼습니다.

    세상의 모든 그리스도인이 부러워할 만한 놀라운 믿음을 가지고

    그 많은 핍박을 이겨내며 복음을 전한 바울이

    자신의 실체를 이렇게 밝혔다는데 우리는 놀라움을 갖습니다.

 

    이런 자도 죄를 이기지 못한 탄식을 하고 있다면

    우리는 도대체 어떻게 되는 것인가 당황스러움을 느낍니다.

 

    그러나 이것이 바로 우리의 모습입니다.

    아브라함도 다윗도 사무엘도 바울도

    우리와 다른 저 천사와 같은 존재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1) 선과 악이 함께 있다(21절)

 

           21. 그러므로 내가 한 법을 깨달았노니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

 

    그들도 우리와 똑같이 죄의 본능을 이기지 못해 고민하며 살던 자들입니다.

    왜 이런 고민이 우리에게서 떠나지 않습니까?

    선과 악이 우리 안에 함께 있기 때문입니다.

 

    마치 침대에 나란히 누워 있는 것처럼 선과 악이 우리 안에 항상 같이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려는 결심을 할 때

    악한 일을 하고 싶은 강렬한 충동이 동시에 일어나는 것입니다.

 

 2) 내 지체 속에서 다른 한 법이 맞서 싸워서(22~23절)

 

           22. 내 속 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23.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 아래로 나를 사로잡아 오는 것을 보는도다

 

    예수님을 믿기 전에는 죄의 본능만 있었습니다.

    그때에는 한 가지 본능만 있으니 지금보다 마음이 더 편했습니다.

    세상의 일에 대한 갈등은 있으나 죄에 대한 갈등은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죄의 본능만 있던 우리 안에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려는 거룩한 본능이 또 하나 생겼습니다.

 

    이 두 본능이 우리 안에서 서로 싸웁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렇게 선한 일을 하려 하면 악한 본능이 나를 붙잡고,

    악한 일을 하려 하면 선한 본능이 또 나를 붙잡습니다.

 

 3) 나를 내 지체 안에 있는 죄의 포로로 사로잡는다(23절)


           (23절 성경구절 위에)

 

    항상 주님의 말씀대로 살려는 거룩한 본능이 이긴다면 이런 고민은 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 바울조차도 자꾸만 죄의 본능이 이겨서

    하나님께서 증오하시는 일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바울조차도 그런 욕망을 멋지게 이기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바울은 예수님을 믿은 후로는 항상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며 살지만,

    죄의 본능을 자극하는 육체의 욕망이 항상 자기를 이겨서

    자기가 죄의 포로로 사로잡혀 있다고 한탄합니다.

    언제쯤 나는 이 죄를 이겨 항상 거룩한 자가 될까 바울은 고민하며 울부짖습니다.

 

 4) 누가 이 사망의 몸에서 나를 건져 내랴(24절)

 

           24.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 내랴.

 

    이 갈등 속에서 바울은 사망의 고통을 느낍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기는 해야겠는데, 육체의 욕망은 사라지지 않으니

    이 노릇을 어찌하면 좋은지 고민이 됩니다.

 

    온 세상을 다니며 복음을 전한 자신이

    이런 사소한 죄조차 벗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누구에게 말을 합니까?

    그래서 그는 날마다 사망의 고통을 느낍니다.

 

 

3. 이 갈등을 이기고 승리하는 자가 되려면

 

 1) 주님의 신령한 것을 간절히 원하는 것에서 승리는 시작됩니다(16, 19절)

 

           16. 만일 내가 원치 아니하는 그것을 하면 내가 이로 율법의 선한 것을 시인하노니

           19.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치 아니하는 바 악은 행하는도다

 

    그러나 이 갈등과 번민은 바울이 사망의 몸이라 느낄 정도로 그 고통이 심합니다.

    그러므로 이 갈등은 기회와 위험을 모두 가지고 있는 그야말로 위기입니다.

 

    이 싸움에서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결코 우리들 혼자의 힘으로는 이길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바울 같은 사람도 불가능한 일입니다.

    오직 주님의 은혜를 통해서만 이길 수 있습니다.

 

    주께서는 간절히 원하는 자를 도우십니다.

    그러므로 16절과 19절에서 바울이 언급한 바와 같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기를 간절히 원하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바울은 자기 에게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기를 원하는 마음이 있으나

    몸은 그 반대로 행한다고 했습니다.

    비록 내가 육체의 욕망을 이기지 못해 자꾸만 엇나가는 일을 할지라도

    내 마음에는 하나님의 은혜 속에 거하고자 하는 간절한 열망을 갖고 있어야 합니다.

 

 2) 죄를 범하고 있는 자신에 대한 처절한 고통(24절)

 

           (24절 성경구절 위에)

 

    에스겔서를 보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바벨론에 망하게 하시기 전에

    천사들을 이스라엘로 보내시면서

   “모든 가증한 일로 인하여 탄식하며 우는 자의 이마에 표를 하라”

    라고 말씀하셨습니다(겔 9:4).

 

    하나님께서 그 천사에게 예루살렘 성읍의 죄로 인하여

    탄식하며 우는 자들의 이마에 표를 하라고 명하십니다.

    그 죄를 슬퍼하며 우는 자들에게 표를 하라는 것인데,

    그냥 슬퍼하는 것이 아니라 허리가 끊어질 정도로

    극심하게 슬퍼하며 애통해하는 자들의 이마에 표를 하라는 것입니다.

 

    물론 그가 한 표시는 사람이 보이는 것이 아닙니다.

    천사가 이마에 한 표는 오직 하나님과 천사들만 볼 수 있습니다.

    이처럼 죄를 범하는 자신의 연약한 현실에 대한 처절한 고통이 있어야 합니다.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마 5:4).

    자신의 죄에 대한 애통함과 처절한 고통이 있는 자는 하나님의 위로를 받습니다.

    이스라엘이 바벨론에 망할 때에도 그들을 살리셨고,

    마지막 심판 때에도 이런 아픔을 가진 자들을 살리십니다.

 

 3) 이 고통의 현장에서 주님을 바라보십시오(25절)

 

           (25절 성경구절 아래)

 

    그 처절한 고통의 현장에서 주님을 바라보십시오.

    바울은 사망의 몸이라 여길 정도로 고통스러운 그 죄의 번민에서

    우리를 도우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았습니다.

 

    날마다 죄에게 져서 여전히 육신에 속한 자라는 탄식을 했던 바울은,

    죄에 대한 고통으로 울부짖는 모든 자를 구하시는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며 노래합니다.

 

 4) 하나님을 즐거워하는 마음을 잃지 마십시오(22, 25절)

 

           22. 내 속 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25.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그런즉 내자신이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노라.

 

    나는 비록 죄를 범한 자이지만 주께서 나를 사랑하시니,

    내가 천국의 백성이 될 소망을 가질 수 있습니다.

 

    내가 비록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따르고

    육신은 여전히 죄의 법을 벗지 못하는 이런 이중적인 삶을 살고 있지만,

    천국에 가기를 간절히 소망하는 나를 도우시는 주님이 계시기에

    우리는 죄의 현장에서도 천국의 기쁨을 노래할 수 있습니다.

 

    이 죄의 처절한 고통을 잃어버리지 않아야 하는 것과 함께,

    나를 도우시는 주님을 기뻐하는 마음을 잃지 마십시오.

    이 두 가지는 주님이 오시는 그날까지 우리가 간직하고 있어야 하는 마음입니다.

 

 

4. 내 마음이 미워하는 죄의 행위를 자꾸만 행하게 되는 이유는?

 

 1) 죄가 사람을 파괴하는 과정

 

    바울은 자신의 연약함을 공개하면서

    죄가 어떻게 사람을 파괴할 수 있는지를 경고합니다.

 

    사람이 죄를 범할 때 단순히 하나님의 금지된 법을 어긴 것에 불과한 것이 아닙니다.

    그 죄를 통해서 내 안에서 숨어서 잠자고 있던 죄의 정욕이 활성화가 일어납니다.

 

    그러면 마치 처음에는 내가 술을 먹는데

    시간이 지나면 술이 나를 먹는다고 하는 것과 같이 절제하기 힘들어지게 됩니다.

 

    처음에는 악을 행하는 행동의 주체가 나 자신이었으나,

    어느 한계를 지나면 더 이상 행동의 주체가 자신이 아닙니다.

    죄가 그 행위의 주체가 되어 나로 하여금 계속해서 악을 행하게 하는 것입니다.

 

 2) 나를 죄로 이끌어가는 내 몸의 또 다른 부분(18절)

 

           18. 내 속 곧 내 육신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하는 줄을 아노니

                원함은 내게 있으나 선을 행하는 것은 없노라.

 

    여기에서 바울은 ‘나’와 ‘육신’을 구분하여 말합니다.

    ‘나’는 영과 육을 모두 포함한 내 몸 자체이고,

    ‘육신’은 나를 죄의 방향으로 끌고 가는 죄에 오염된 내 몸의 또 다른 부분입니다.

 

    인간의 몸속에 숨어서 육체의 본능을 자극하여 타락시키는

    내 몸 가운데 죄에 오염된 부분을 ‘육신’이라고 표현했습니다.

 

 3) 내가 원하는 선은 행하지 않고 도리어 악을 행하는 자(19절)

 

           19.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치 아니하는 바 악은 행하는도다

 

    이렇게 일단 내 육신이 죄에 오염되어

    내 안에 잠자고 있던 육체의 본능이 활성화가 일어나면,

    선을 행하려는 거룩한 욕구는 힘을 잃고

    내 속에 있는 죄가 나를 악의 방향으로 이끌어가게 됩니다.

 

    그러면 속수무책으로 악이 이끄는 대로 행하는 자가 되고 맙니다.

    욕망의 자리는 살아나고, 판단력은 무뎌져서

    영적으로 신령한 일을 거의 할 수 없는 자가 됩니다.

 

    그러면 자신이 마음으로 경멸하고 미워하는 죄의 행위들을

    자꾸만 행하는 자가 되고 마는 것입니다.

 

 

결 론 : 갈등을 피하지 마십시오

 

    이렇게 죄의 무감각증으로 자신은 나름 괜찮은 사람이라고 여겼던 자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들어가면 자신이 영적으로 어떤 사람인지에 대한 자각이 생깁니다.

 

    이것은 마치 감각을 잃어버려 그 통증을 몰랐던 사람이

    약이 투여되면서 그 감각이 회복되어 통증을 느끼게 되는 것과 같습니다.

    이때에 나타나는 영적인 통증이 바로 ‘갈등’과 ‘번민’입니다.

 

    갈등은 죄의 영역 속에서만 살던 사람에게

    새롭게 신령한 영의 법이 주어지면서 생깁니다.

    그동안 죄를 짓던 습관이 아직 고쳐지지 않은 상태에서

    하나님의 선한 일을 하려는 새로운 욕구가 생겼으므로 이 과정에서 갈등이 일어납니다.

 

    그러나 많은 경우에 갈등이 괴로우니 갈등 자체를 마음에서 없애려 합니다.

    없애야 할 것은 갈등이 아니라 죄의 습관입니다.

 

    가령 폐병에 걸려 열이 나는 사람에게

    단순히 열만 떨어뜨리는 해열제만 먹인다면 그는 결국 죽고 말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없애야 할 것은 갈등이 아니라 죄의 습관인 것입니다.

 

 1) 갈등을 피하려 하지 말고 오히려 더 깊게 하십시오.

 

    바울은 자신이 왜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일들을 하고 싶은 강렬한 충동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지를 깊이 묵상했습니다.

 

    그는 갈등을 피하지 않고 오히려 더욱 깊이 갈등했습니다.

    그 결과 자신의 안에서 자꾸만 죄의 충동을 일으키는 죄의 세력이 있음을 발견합니다.

 

    그러므로 갈등을 피하지 말고 오히려 더 깊게 갈등하십시오.

    적당히 회피하려 하지 말고

    그 갈등 속에서 나의 치명적인 약점이 무엇인지를 파악하십시오.

 

 2) 자신의 영적인 현실을 바르게 진단하십시오.

 

    갈등을 더 깊이 하되 말씀과 기도를 하면서 해야 합니다.

    나 혼자서는 아무리 갈등을 깊이 해도 아무런 결과가 나오지 않기 때문입니다.

 

    혼자 하는 갈등은 절망에만 이를 뿐입니다.

    그러나 말씀과 기도를 하는 중에 하는 갈등은 깊은 영적인 묵상이 됩니다.

 

    나는 누구인지, 내가 왜 이런 일들을 반복해서 행하고 있는지를

    깊이 묵상하는 중에 자신의 영적인 현실이 어떤지를 깨닫게 됩니다.

 

 3) 하나님께서 주신 새로운 영의 법을 붙잡으십시오.

 

    내 안에 나를 치명적인 죄의 질병에 빠지게 하는 죄의 영역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면

    이 모든 것을 치료해주시기를 주께 간구하십시오.

    그리고 주께서 부어주신 성령을 통하여 죄의 질병을 치료하십시오.

    (이 부분에 대해서는 로마서 8장에서 자세하게 살펴볼 것입니다.)

 

    나의 영적 현실이 어떤지 관심을 갖는 데서부터 영의 치료는 시작됩니다.

    나 자신에 대하여 좀 더 많은 관심을 보이십시오.

 

묵상 : 가장 치명적인 죄의 무감각증

 

    그러나 많은 경우에 이렇게 죄가 잠자던 죄의 정욕을 활성화시켜서

    죄가 또 다른 죄를 부르는 죄의 번식 현상이 일어나고 있어도

    그것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를 느끼지 못하고 있습니다.

 

    마치 대단히 빠르게 증식하는 위험한 바이러스처럼

    치명적인 이 죄의 질병의 파괴력을 전혀 느끼지 못하는 동안

    죄가 그 사람을 완전히 점령하여 하나님의 선한 것을 찾지 못하게 만듭니다.

 

    그러다 나중에 자신의 상태가 심각해진 것을 깨달았을 때에는

    죄가 이미 너무 굳어져서 회복하기 힘들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우리를 치명적인 죄의 질병에 걸리게 만드는 일은

    ‘가만히 있는 것’입니다.

    단지 내가 말씀을 묵상하는 등의 하나님과 교제하는 일을 하지 않고

    가만히 있는 것만으로 이런 일이 나에게 일어나게 됩니다.

 

    내가 영적으로 게으름을 피우고 있는 동안

    마귀는 내가 아주 사소한 죄들을 지을 때마다

    계속해서 잠자던 나의 죄의 정욕을 자꾸만 깨우고 있는 것입니다.

    나는 게으름을 피워도 마귀는 결코 게으름을 피우지 않는다는 것을 기억합시다.

 

 

주님

 

우리를 파괴하려는 죄의 교활함에

넘어지지 말게 하옵소서.

 

성령의 새 법을 따라

기쁨으로 주를 섬기는 자가 되게 하옵소서.

 

치명적인 죄의 무감각증에

빠지지 않게 하옵소서.

 

나의 영적인 현실이 어떤지

분별할 수 있는 신령한 판단력을 잃지 않게 하옵소서.

 

주께서 주시는 새로운 영의 법을

붙잡고 살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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