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애교회 2022년 표어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로마서 1:17)
- 내가 새벽을 깨우리로다 : 새벽을 창조하시는 하나님(시편 57:8)
- 나의 오늘로 내일을 창조하시는 하나님(마태복음 6:34)
- 땅의 생명이 아니라 하늘의 생명을
땅의 시간이 아니라 하늘의 시간을 사는 자.
(올해 표어에 대한 설명은
2022년 1월 첫째주 설교 결론부분을 참조해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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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제목 :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
설교본문 : 로마서 8:1`17
설 교 자 : 송호영 목사
설 교 일 : 2022년 1월 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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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서 큐티가 드디어 로마서에서 가장 중요한 8장에 왔습니다.
로마서 7장까지에서 바울은 사람을 멸망에 빠뜨리는 각종 죄를 열거하고,
그런 흉악한 죄에 억압된 세상 속에서
믿음을 가지려는 자들이 필연적으로 겪을 수밖에 없는 갈등과 번민을 설명했습니다.
그리고 8장에서 우리의 믿음을 돕기 위해 우리에게 오신 성령에 대하여 증거합니다.
제 1 부 : 생명의 성령의 법과 죄와 사망의 법
1. 새 생명과 죽을 몸 사이에서 갈등하는 그리스도인
로마서 6장에서 우리는 새 생명과 죽을 몸이
우리 안에서 어떤 갈등과 번민을 만들어내는지를 살펴보았습니다만,
8장에 들어가기 전에 여기에서 다시 한번 좀 요약하여 살펴복보겠습니다.
1) 죄와 사망의 법(1~2절)
1.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2.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➀ 죄와 사망의 법 :
➠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야고보서 1:15)
죄는 마귀가 사람을 무너뜨리는 가장 강력한 무기입니다.
마귀는 끊임없이 우리의 육신의 본능을 자극하여
하나님께서 좋아하시는 것은 싫어하고,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것은 좋아하게 만듭니다.
그래서 결국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멸망을 받는 자가 되게 합니다.
또 사람의 마음에 근심과 불안을 심거나, 삶을 바쁘고 분주하게 하여
하나님을 섬길 마음의 여유를 갖지 못 하게 합니다.
그 결과 사람과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지게 하여 멸망에 이르게 합니다.
이렇게 마귀의 미혹을 받아 하나님과의 관계를 잃어버리게 되거나,
자기가 스스로 세상을 택하여 하나님과의 관계를 잃게 되거나.
어찌 되었든 하나님 없이 자기의 생각과 욕심을 따라 사는 것,
이것이 곧 죄와 사망의 법입니다.
② 본래는 복음이었던 구약의 율법도 죄와 사망의 법이 되었습니다.
율법 역시 구원을 위한 복음의 말씀입니다만
사람이 연약하여 그 율법을 지키는 자가 하나도 없으므로
사람의 구원하기 위해 주신 율법이 죄와 사망의 법이 되었습니다.
율법은 죄가 무엇인지 알리기만 하고, 그 죄를 전혀 해결해주지 못하니
사람들로 하여금 죄책감과 두려움에서 벗어나게 할 힘과 능력이 없는
죄와 사망의 법이 된 것입니다.
➂ 죄와 사망의 법은 : 죄를 따라가면 멸망하게 된다는 것을 뜻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어 새로운 생명의 성령의 법이 우리 안에 들어왔다 하더라도
우리 안에는 여전히 죄의 유혹에 반응하는 죽을 몸이 남아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기 전에는 죄와 사망의 법만 있었으나
예수님을 믿은 후에는 우리 안에 생명의 성령의 법이 새로 들어온 것입니다.
우리가 육신을 입고 이 세상을 사는 동안에는 이 두 법이 우리를 동시에 자극합니다.
죄와 사망의 법은 우리의 육체의 욕심과 욕망을 자극하고,
생명의 성령의 법은 우리 안에 있는 하나님을 향한 신령한 열망을 자극합니다.
그런데 육체의 욕망이나 세상의 일에만 반응하고
하나님의 신령한 일에는 도무지 관심이 없다면
결국 죄가 그를 지배하여 죄의 몸, 멸망의 몸이 되고 맙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죄를 따라가면 멸망에 이르고 만다는 것,
이것이 죄와 사망의 법입니다.
2) 생명의 성령의 법(2절)
2.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우리가 연약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지 못하니
예수께서 우리에게 하나님의 거룩한 영이신 성령을 보내주셨습니다.
성령은 마치 엄마가 아이를 돌보듯 우리를 돌보십니다.
우리의 마음에 있는 죄의 찌꺼기들을 청소하시고 하나님의 거룩한 성품을 넣어주십니다.
그런데 참으로 놀라운 것은
우리가 성령의 도우심을 이제 막 받기 시작한 그 순간부터
우리가 하나님 나라의 영광스러운 생명을 가진 자가 된다는 것입니다.
성령께서 이제 막 나의 영을 막 치료하기 시작한 바로 그 순간부터
하나님께서 주신 새로운 생명이 우리 안에 거하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생명의 성령의 법’입니다.
3)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에서 우리를 해방시켜 줌
성령은 바라고 구하는 자에게 들어오십니다.
내가 연약하여 죄를 이길 수 없으니 도와달라고 하나님께 구하는 자에게
성령께서 오셔서 그의 몸속에 있는 죄의 독을 제거하고,
우리에게 하나님의 의를 심으십니다.
구약은 이 모든 일을 나 혼자의 힘으로 해야만 했으나,
이제는 성령께서 이 모든 일을 다 하십니다.
우리는 다만 성령께 도우심을 구하기만 하면 됩니다.
아무리 연약한 자도 도우심을 구할 수는 있습니다. 그래서 복음(福音)입니다.
4) 영을 따라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가 이루어지게 하심(3~4절)
3.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곧 죄를 인하여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하사
4. 육신을 좇지 않고 그 영을 좇아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를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
예수님을 믿는 순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새 생명을 넣어주십니다.
이때 우리에게 생긴 새 생명(새로운 피조물, 고후 5:17)이
바로 여기에서 말하는 ‘영’입니다.
성령께서 우리 안에 들어오셔서
하나님의 신령한 은혜에 자극을 받는 새 생명인 영을 우리 안에 새로 넣어 주셨습니다.
이것은 흔히 말하는 영혼과는 다른 개념입니다.
우리 몸 안에서 하나님의 신령한 말씀에 자극을 받고 반응하는 신령한 부분을 말합니다.
우리 안에 새롭게 생긴 이 새 생명(영)은
성령께서 신령한 자극을 주실 때마다 반응합니다.
그 자극에 따라 움직입니다.
이렇게 성령께서 인도하시는 대로 반응하고 움직이는 자는
율법의 요구를 모두 이룬 자로 여기십니다. 이것이 바로 생명의 성령의 법입니다.
2. 육신을 좇는 자와 영을 좇는 자
1) 좇아 행한다 : 육신을 좇는 자와 영을 좇는 자(5~6절)
5. 육신을 좇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좇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6.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➀ 육신대로만 있는 자
육신에 속한 자는 그 안에 생명의 성령의 법은 없고
오직 죄와 사망의 법만 있는 자를 가리킵니다.
오직 육신을 위해서만 살아가는, 육신대로만 있는 자입니다.
➁ 육신을 위해 필요한 것에만 집착하는 자,
하나님의 일은 생각하지 않고 땅의 일에만 몰두하는 자
그러나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 중에도 육신에 속한 자가 있습니다.
예배드리는 일이나 각종 봉사활동 등 신앙생활에 참여하고는 있지만,
형식적으로 참여하기만 할 뿐,
그의 마음은 육신을 위해 필요한 것에만 집착하고 몰두하는 자입니다.
이런 사람은 아무리 많은 신앙생활에 참여하고 있을지라도 육신에 속한 자입니다.
그의 마음의 가장 중요한 중심점에 세상이 있기 때문입니다.
➂ 추구하는 목표와 그 목표를 이루어가는 모든 과정이 육신에 속한 것뿐인 자
이런 사람은 그 추구하는 목표가 세상입니다.
또한 그 목표를 이루어가는 과정 역시 육신의 방법입니다.
기도를 하더라도 육신의 것을 얻기 위해 기도할 뿐이고,
찬양을 하더라도 하나님을 위한 것이 아니라 자기 만족을 위해 할 뿐입니다.
➠ 육신을 좇는 자는 삶의 목적이 이 세상에 있는 자입니다.
세상에서 누리는 평안과 안락이 삶의 목표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자 중에도 주님을 믿는 목적이
이 세상에서의 평안과 안락에 있다면 육신을 좇는 자입니다.
그가 바라고 추구하는 것이 무엇인지 그것이 그가 누구인지를 말해줍니다.
➠ 영을 좇는 자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평안과 안락을 찾는 자입니다.
영을 좇는 자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영원한 평화를 찾는 자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영원한 평화를 찾는 자는
때때로 이 세상에서는 불편함과 고통을 겪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주시는 평화가 더 크다는 것을 믿기에
그 불편함을 기꺼이 감수합니다.
이런 자가 영을 좇는 자입니다.
2) 생각한다 : 육신의 생각과 영의 생각(5~6절)
(5~6절 성경구절 위에)
육신을 좇는 자는 육신의 일을 생각하고
영을 좇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죄와 사망의 법’과 ‘생명의 성령의 법’은
결국 생각의 자리에서 결정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면 주께서 인정하시는 ‘생각’은 어떤 것을 말하는지 그 뜻을 살펴보겠습니다.
➀ 생각한다(프로네오) : 생각과 관심, 애정과 목적을 집중하게 하는 대상으로 삼는다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아니라’(6절)
여기에서 ‘생각’에 해당하는 ‘프로네오’는
생각과 관심과 애정과 목적을 집중하게 하는 대상으로 삼는 것을 뜻합니다.
어느 날 내가 어떤 것에 마음이 꽂혔습니다.
그날 이후 내 생각과 관심과 애정과 목적이 그것을 향해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여기에서 말하는 ‘생각’입니다.
➁ 애정을 품고 지극한 관심을 갖고 바라보는 것 : 그것이 내가 누구인지를 말한다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6절)
이것은 ‘예정을 품고 지극한 관심을 갖고 바라보는 것이 무엇이냐’
하는 것을 질문하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에 아무리 열심히 참여하고 있더라도
그가 애정을 품고 지극한 관심을 갖고 바라보는 것이 세상이면
그는 육신에 속한 사람입니다.
육신의 일을 하나님의 일보다 더 큰 가치로 여기고 있기 때문입니다.
➠ 우리 안에 있는 죽을 몸과 새 생명은 우리의 생각에 따라 반응하고 자랍니다.
늘 어떻게 하면 이 세상에서 좀 더 편안하게 잘 살 것인지만 생각하는 자는
그 생각에 따라 육신을 좇는 자가 되고,
어떻게 하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을지만을 생각하는 자는
그 생각에 따라 영을 좇는 자가 됩니다.
3)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7~8절)
7.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치 아니할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8.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
주님을 믿는 사람 중에 많은 사람이 자기는 살인이나 간음과 같은 죄를 범하지 않았으니
최소한 중간은 되겠지 하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가 예배에도 빠지지 않고 참여하고 봉사도 열심히 하고 있을지라도
그가 이 땅의 일만 생각하고 있다면 그는 하나님과 원수라고 바울은 경고합니다.
● 묵상 : 순전한 예배와 찬양과 기도
그러므로 예배를 드릴 때
주께서 우리를 위해 행하신 일을 생각하며 예배를 드리라는 것입니다.
이런 것을 ‘순전한 예배’라고 합니다.
마음과 생각까지 주님을 생각하며 드리는 예배와 찬양과 기도가
바로 순전한 예배, 순전한 찬양, 순전한 기도입니다.
생각의 자리를 지키십시오.
그것이 잘 안 되면 주께 내 생각의 자리를 지켜주시도록 도움을 청하십시오.
도움을 청하는 그 순간부터 영의 일이 시작됩니다.
제 2 부 :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1.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
1) 육신대로 사는 자는 이미 죽은 몸(13절)
13.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
육신대로 산다는 것은 육신의 일에만 몰두하며 사는 것을 말합니다.
죄의 정욕과 세상의 일에만 반응하고
하나님의 일에는 도무지 관심도 두지 않고 살아가는 자,
불쑥 미움이 생기면 어김없이 미워하고
불쑥 원망이나 불평의 마음이 생기면 어김없이 그 입에서 불평과 원망을 하지만
신령한 일에는 관심조차 두지 않는 자는 육신대로 사는 것입니다.
육신대로 살면 그는 장차 죽는 것이 아니라 이미 사망한 상태입니다.
이미 지옥의 백성으로 사는 것입니다.
이런 자는 하나님께 분리된 상태에 있으므로 이미 심판을 받은 상태입니다.
이미 지옥의 생명으로 살아가는 자입니다.
2)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13절) : 멜레테 아포쓰네스케인
‘죽을 것이로되(아포쓰네스케인)’에는 다음 두 가지 뜻이 있습니다.
➀ 사람을 멸망할 것에 단단히 묶어두는 것
‘죽을 것이로되’의 첫 번째 뜻은
부패하고 멸망할 것에 빠진 사람을 아주 단단하게 더욱 매여 살게 하고
또 그런 사람들끼리 한 데로 묶어둔다는 뜻입니다.
➁ 이미 사망한 상태로 더 이상 생명은 없다
‘죽을 것이로되’의 두 번째 뜻은
이미 사망한 상태로 더 이상은 생명이 없다, 이미 파멸된 상태라는 뜻입니다.
그렇지 않아도 유혹을 받아 부패하고 멸망할 것으로 갔는데
그런 파멸할 것에 더욱 단단하게 매여 살게 하고
또 그런 사람들끼리 한 데로 묶어둔다면
이런 사람이 그 파멸에서 벗어날 방법은 없습니다.
그러므로 과거형으로 이미 사망한 상태, 이미 파멸한 상태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➂ 반드시 : 멜레테
‘반드시’에 해당하는 ‘멜레테’는
‘그가 그 부패의 과정을 서두르고 있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를 향하여
이미 사망한 상태요, 이미 파멸한 상태라고 선언하신 상황임에도
그가 그 부패의 과정을 서두르고 있으니 참으로 답답한 노릇입니다.
➠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 결단코 파멸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뜻
아직 육신이 살아있으니 회개하면 주께서 돌아올 수 있지만
이런 상태로 그럴 가망성은 전혀 없습니다.
그러므로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는 이미 파멸과 멸망의 상태에 있으며
‘예외 없이 이런 일이 일어난다, 절대로 파멸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뜻입니다.
3) 이것은 마귀가 사람을 어떻게 파멸로 몰고 가는지를 보여주는 것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이것은 마귀가 사람을 어떻게 미혹하여 파멸로 몰고 가는지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하와가 선악과를 바라보는 것처럼
사람이 부패하고 파멸할 것에 마음을 빼앗기면
마귀가 곧바로 그 신호를 파악하여
그를 그 부패하고 파멸할 것에 단단히 매여 살게 합니다.
그리고는 그 사람처럼 부패하고 파멸할 것에 매여 사는 자들을 한데 모아서
더욱 그 파멸 속으로 빠져들게 합니다.
4) 우리의 능력으로는 이 고민을 해결할 수 없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그의 속에 있는 본능을 자극하여 그 파멸을 향하여 더욱 서두르는 자가 되게 한다면
그가 이 죄의 악순환에서 빠져나올 방법이 있겠습니까?
오죽하면 죽어야만 죄의 습관을 벗을 수 있다는 말까지 나왔겠습니까?
그러나 그렇게 육신대로 살면 이미 죽은 상태라고 하니 이를 어쩌면 좋습니까?
➠ 이런 고민은 몸의 행실을 죽이는 것을 금욕주의적인 고행으로는 결코 이길 수 없습니다.
보고 싶은 것 보지 않고, 먹고 싶은 것 먹지 않고,
그렇게 참고 참으면서 몸의 행실을 벗으려 하니까 어렵습니다.
이런 방식으로는 아브라함이나 바울이라도 이기기 어렵습니다.
얼마 동안은 수행이나 수련의 방식으로 가능할 수 있겠지만,
이것은 압력밥솥처럼 욕망을 누르기만 하는 것입니다.
그러다 한꺼번에 터져 나오면 세상이 깜짝 놀랄만한 사건을 터뜨리게 되는 것입니다.
5)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13절)
13.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
그러면 어떻게 합니까?
바울은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라고 말합니다.
성령을 좇아 행하면 그 성령의 능력으로
내 안에 습관처럼 굳어진 죄의 정욕이 서서히 사라진다는 것입니다.
죄가 여전히 나에게 즐거움이 되니까 이기기 힘듭니다.
그러나 성령께서 내 안에서 역사하셔서 죄가 즐거운 것이 되지 않는다면
죄에 치명적으로 연약한 자라 할지라도 이길 수 있습니다.
재미있는 것을 참기는 어렵지만,
해봐야 하등에 재미가 없는 것을 참는 것은 너무나도 쉽기 때문입니다.
➠ 몸의 행실을 죽이는 일은 오직 성령을 통해서만 해결될 수 있습니다.
죄를 멀리하려는 노력과 함께
반드시 하나님의 은혜의 세계로 더욱 깊이 들어가는 열심도 보여야 합니다.
무엇보다도 성령께 자신의 연약함을 보고하고,
그 연약함에서 자신을 구해줄 것을 구하고 또 구해야 합니다.
● 묵상 :
날마다 주님과 교제하는 동안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 마음의 기쁨과 즐거움을 차지하고 있던 것이 변하고 달라집니다.
며칠 말씀을 묵상했는데도 내가 변하지 않는다며 실망하지 말고,
주님의 약속을 믿고 계속 하십시오.
당신도 놀랍게 변화됩니다.
2.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1)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그는 이미 영에 있는 자(9절)
9.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우리가 하나님께 도움을 청하는 그 순간부터
성령께서 내 안에 들어오셔서 내 안에 새 생명을 넣어주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이 내 안에 거하시면 그는 이미 영에 있는 자입니다.
성령께서 그 안에 이미 새 생명을 넣어주셨으므로
그는 이미 하늘의 생명으로 살아가는 자입니다.
2)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 계시면 그는 이미 살아 있는 자(10절)
10. 또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시면
몸은 죄로 인하여 죽은 것이나 영은 의를 인하여 산 것이니라
성령은 그리스도의 영이시니
성령이 우리 안에 거하실 때 성령과 함께 그리스도께서도 계십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 계시면 그는 이미 살아 있는 자입니다.
그는 이미 이 땅에서부터 천국 백성으로 살고 있는 자입니다.
이런 자는 어떤 재앙이 와도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이미 하늘을 사는 자이기 때문입니다.
3) 그의 영으로 인하여 너희의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11절)
11.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가
너희 안에 거하시는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
성령께서 우리 안에 거하시면
우리 안에 있는 새 생명이 더욱 건강하게 자라도록 도우십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죽을 몸도 살리십니다.
우리의 죽을 몸도 영생의 몸이 되게 하십니다.
성령께서 우리의 죄를 치료하시고 우리에게 하나님의 의를 넣어주셔서
새 생명을 가진 자로 살아가게 하십니다.
이 모든 일은 우리가 성령의 도우심을 받기 시작하는 그 순간부터 시작됩니다.
내 의지, 내 노력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께서 내 안에 들어오셔서 내 모든 것을 인도하시고 도우십니다.
4) 성령이 친히 우리의 영과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언하심(16절)
16. 성령이 친히 우리 영으로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하시나니
우리가 성령의 도우심을 받기 시작하는 그 순간부터
성령께서 친히 우리의 영과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하나님께 증언하십니다.
“이 사람은 내가 돕기 시작했으니 내 사람입니다”하고
성령께서 하나님께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이 모든 일이 성령의 도우심을 받기 시작한 그 순간부터 이루어진다는 것이
참으로 놀랍고 감사한 일입니다.
5) 그리스도와 함께 상속받을 자이니,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라(17절)
17. 자녀이면 또한 후사 곧 하나님의 후사요 그리스도와 함께한 후사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될 것이니라
우리가 장차 그리스도와 함께 상속받을 것이니
마땅히 주와 함께 고난도 받아야 할 것입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상속받는다는 것은,
우리가 주께서 보여주셨던 부활하신 그 몸이 된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주님과 함께 우리가 천국의 주인으로 들어가게 된다는 것입니다.
주인이신 하나님의 아들로 들어가니
우리도 천국의 상속자, 천국의 주인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영광을 얻기 위하여
이 땅에서 그리스도인이 당해야 할 고난을 마땅히 받아야 할 것입니다.
● 묵상 : 그리스도인이 받아야 할 고난이란?
그리스도인이 받아야 할 고난이란,
하늘의 영광을 얻기 위해 우리가 포기한 이 땅의 일들을 말합니다.
물론 예수님을 믿는다는 이유로 받는 핍박도 우리가 받아야 할 고난이지만,
내가 천국의 소망을 얻기 위해 세상의 일을 포기한 것 역시 우리가 받아야 할 고난입니다.
당장은 땅의 일을 포기한 것이 마음 아플지 모르나
장차 우리가 받을 영광은 그것과 비교조차 되지 않는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결 론 : 성령의 인도를 받으며 사는 자
성령의 인도를 받는 자는 이미 살아있는 자라고 했습니다.
이 말은 주께 나의 영을 살려주실 것을 구하는 자는
이미 그 영이 살아있는 자라는 것입니다.
내가 죄와 사망의 법에서 벗어나
성령의 생명의 법 안으로 들어가게 해 주실 것을 간구하는 자,
이 일을 정말로 마음으로 원하며 간구하는 자는
이미 이 땅에서부터 심판을 면한 자로 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올 한 해 동안
성령께서 주시는 자극에 민감하고 신속하게 반응하는 자가 되게 해 주실 것을
구하고 또 구하는 자가 됩시다.
그러면 우리도 사람의 영을 살리는 생명의 일꾼들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주님
성령이여 나에게도 주님의 말씀을 주시고,
그 뜻을 깨닫도록 도와주옵소서.
주께서 원하시는 말씀을 주시고,
그 뜻을 깨닫는 자가 되도록
성령이여 도와주옵소서.
성령께서 주시는 자극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신속하게 행동하는
건강한 믿음의 성도가 되게 하옵소서.
시련이 올지라도 변하지 않는
신실한 믿음을 갖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