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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 설교문

우리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1월 23일; 롬 8:17~39)

작성자송호영|작성시간22.01.24|조회수176 목록 댓글 0

가애교회 2022년 표어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로마서 1:17)

 

    - 내가 새벽을 깨우리로다 : 새벽을 창조하시는 하나님(시편 57:8)

    - 나의 오늘로 내일을 창조하시는 하나님(마태복음 6:34)

    - 땅의 생명이 아니라 하늘의 생명을

      땅의 시간이 아니라 하늘의 시간을 사는 자.

 

      (올해 표어에 대한 설명은

       2022년 1월 첫째 주 설교 결론 부분을 참조해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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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제목 : 우리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설교본문 : 로마서 8:17~39
설 교 자 : 송호영 목사

설 교 일 : 2022년 1월 2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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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론 : 성령의 인도를 받으며 사는 것조차 힘들고 어려운 이유

 

    우리의 인생은 무엇을 얼마나 잘 지키느냐에 달려 있지 않습니다.

    신앙생활은 물론, 우리 인생의 모든 것이

    우리가 성령의 도우심의 자리에 머물러 있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로마서 8:1~17에서 바울은 성령의 인도를 받으며 사는 자는 이미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했습니다.

 

    오늘은 단지 성령의 인도를 받기만 하면 되는데 왜 이것이 그렇게 힘들고 어려운지,

    왜 인도를 받는 것조차 잘 안되는지를

    그 다음 구절인 18절 이하의 말씀을 통해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1 : 우리의 구원을 애타게 기다리는 자들

 

1. 피조물의 탄식과 영광의 소망

 

    성령의 인도를 받으며 사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증거한 바울은,

    성령에 대한 말씀을 잠시 중단하고

    이 세상에 환난과 고통이 끊이지 않고 일어나는 일에 대하여 증거합니다.

 

 1) 사람과 함께 저주를 받은 피조물들

 

    ➀ 피조물들의 탄식과 신음(22절)

 

           22. 피조물이 다 이제까지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하는 것을 우리가 아나니

 

       왜 농작물은 조금만 신경을 쓰지 않으면

       벌레가 먹든지 잡초가 무성해지든지 하는 것일까요?

       왜 짐승들은 서로 잡아먹고 먹히는 약육강식의 살벌한 구조가 되었나요?

       왜 사람에게 이렇게도 병이 많은 것일까요?

 

    ➁ 사람의 범죄로 피조물에까지 내린 저주

 

       본래 하나님께서 처음 만드셨던 이 세상은 우리가 지금 보는 세상과는 달랐습니다.

       하나님께서 온 세상을 다 만드신 후 하나님 보시기에 좋았더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세상이 지금과 같이 된 것은 첫 사람 아담의 범죄로

       이 땅의 피조물들이 사람과 함께 저주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 후로 사람이 먹을 만한 곡식은 사람이 땀 흘려 일을 해야만 열매를 맺게 되었습니다.

       동물들이 서로 잡아먹는 약육강식의 살벌한 구조가 된 것도 그 때문입니다.

 

       또 사람들뿐만 아니라 모든 생물이

       다 늙고 병들어 죽고 썩어서 사라지고 마는 허망한 것들이 된 것도

       모두 사람으로 인하여 받은 저주 때문입니다.

 

 2) 피조물들의 탄식(20~22절)

 

           20. 피조물이 허무한데 굴복하는 것은 자기 뜻이 아니요

                오직 굴복케 하시는 이로 말미암음이라

           21. 그 바라는 것은 피조물도 썩어짐의 종노릇 한데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것이니라

           22. 피조물이 다 이제까지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하는 것을 우리가 아나니

 

    바울은 맹수에 쫓기는 연약한 짐승들의 고통스러운 울부짖음을

    피조물들의 탄식하는 소리로 듣습니다.

 

    비바람과 홍수, 지진과 해일, 이 모든 자연의 신음소리들이

    자신들이 받은 저주를 풀 수 있는 자들은 오직 사람들뿐이라고

    사람들에게 외치는 고함과 절규로 들립니다.

 

    사람들이 저주를 받을 때 그들도 함께 저주를 받아 이렇게 되었으니,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하나님의 백성이 되면,

    그들이 장차 영광을 받을 때 피조물들에게 부어진 저주도

    함께 풀어질 것이라는 외침을 사람들에게 외치고 있다는 것입니다.

 

 

2. 우리의 구원을 애타게 기다리는 자들

 

    바울이 믿음을 가진 후로

    이 세상에 사람들이 영광 받기를 간절히 바라는 소리들이 들리기 시작합니다.

 

 1) 피조물들이 우리의 영광 받기를 고대하고 있습니다(20~22절)

 

            (성경구절 위에)

 

    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피조물들이 우리가 영광 받기를 탄식하며 고대하고 있습니다.

    바울처럼 피조물들의 신음하는 소리를 한 번 들어보십시오.

 

    사람들의 죄 때문에 자기들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당하는

    피조물들의 억울한 탄식 소리가 들린다면

    영적인 삶에 대한 긴장감을 결코 늦출 수 없을 것입니다.

 

 2) 우리들의 속사람이 우리의 양자 됨을 기다리고 있습니다(23절)

 

           23. 이뿐 아니라 또한 우리 곧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우리까지도

                속으로 탄식하여 양자 될 것 곧 우리 몸의 구속을 기다리느니라

 

    뿐만 아니라 우리의 속사람도

    우리가 하나님의 양자가 되기를 탄식하며 기다리고 있습니다.

    믿음이 있는 자들은 내가 하나님의 말씀에서 멀어져 갈 때마다

    나의 속사람의 탄식하는 소리를 들을 수 있을 것입니다.

 

   “내가 왜 이러나”, “이러면 안 되는데”하는 소리들이

    바로 내 속사람이 나에게 외치는 탄식소리인 것입니다.

 

 3) 성령께서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의 구원을 바라십니다(26절)

 

           26.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그리고 우리 안에 임하여 오신 성령께서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의 구원을 바라시며 우리를 도우십니다.

 

    때로 우리가 말씀에서 멀어질 때 우리에게 징계를 내리기도 하고,

    우리가 연약할 때는 우리에게 힘을 주시며,

    우리가 주께 충성할 때는 기뻐하며 우리에게 더욱 큰 은혜를 주시면서

    우리를 그 영광의 나라로 인도하십니다.

 

묵상 :

 

    그러나 세상일에 지나치게 분주하거나 마음이 복잡하면

    우리를 향한 이러한 탄식하는 소리들이 들리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말씀을 묵상할 때에 나를 향한 이러한 탄식소리들을 듣기를 사모하십시오.

    무엇보다도 성령께서 나에게 주시는 말씀을 들기에 힘쓰십시오.

 

    나를 향한 이 소리들이 전혀 들리지 않는다면 너무 바쁘게 사는 것입니다.

    잠시 짬을 내어 나를 향하여 외치는 이러한 소리들을 들어보십시오.

 

 

2 : 우리를 영화롭게 하시는 하나님

 

1.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

 

 1)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우리(23절)

 

            (성경구절 위에)

 

    바울은 지금 우리가 이 땅에서 받아 누리는 모든 은혜를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라고 표현했습니다.

    구약 시대에 추수한 곡식 중에 처음 익은 열매를 하나님께 바쳤던 것에 비유한 것입니다.

 

    처음 익은 열매를 하나님께 드리면

    하나님께서는 그해의 마지막 곡식이 추수될 때까지 그들을 도우셔서

    풍성한 열매를 거두게 하시리라 약속하셨습니다.

 

    지금 우리가 성령의 도우심을 받는 것이 바로 처음 익은 열매입니다.

    처음 익은 열매를 받으신 하나님께서 그 해(年)의 모든 곡식이 아름답게 되게 하신 것처럼,

    성령을 통해 처음 익은 열매를 경험하고 있는 우리에게도

    성령의 마지막 익은 열매인 하나님 나라의 영광을 누리게 하십니다.

 

    소망 가운데 믿음을 잘 지키면 반드시 성령의 마지막 익은 열매인

    하나님 나라에서의 영광도 반드시 받아 누리게 될 것입니다.

 

 2) 보이지 않는 것을 소망하니(24~25절)

 

           24. 우리가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으매 보이는 소망이 소망이 아니니

                보는 것을 누가 바라리요

           25. 만일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바라면 참음으로 기다릴찌니라

 

➀ 우리는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와 마지막 열매의 중간 시간을 살아가는 자들

 

       우리는 지금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는 경험하였으나

       아직 성령의 마지막 익은 열매는 경험하지 못한 중간의 시간에 사는 자들입니다.

 

       처음 익은 열매를 경험했으니 마지막 영광의 열매도 반드시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그날의 영광을 믿음으로 바라보며 그 소망을 품고 살아갑니다.

 

    ➁ 그러나 그날의 영광이 아직 우리의 눈에는 보이지 않습니다.

 

       그 소망이 눈에 보이지 않으니 어떤 사람들은 불안해합니다.

       그래서 눈에 보이는 소망을 따로 만들려고 합니다.

 

       가령 그날의 영광스러운 모습을 상상하며 그린 그림을 붙여 논다든지,

       예수님의 형상을 조각한 것이라든지,

       이런 것들이라도 지니고 다니면 조금 그 소망이 확실해질 것 같은 마음을 갖습니다.

 

    ➂ 보이지 않는 소망을 보이는 소망으로 바꾸려 하지 마십시오.

 

       그러나 그런 것들이 아무리 거룩하게 보일지라도

       역시 결국 썩어서 사라지고 마는 허망한 것들입니다.

       그러므로 눈에 보이는 어떤 것들을 임의로 만들어서(이미지화하여서)

       그것을 의지하려는 마음을 가져서는 안 됩니다.

 

       우리의 소망은 오직 보이지 않는 가운데 장차 우리에게 임하여 오실 주님,

       바로 그분뿐입니다.

 

 3) 참음으로 기다려야 할지니라(25절)

 

            (성경구절 위에)

 

    그러므로 우리의 소망이 보이지 않는 것이라면,

    눈에 보이는 것들로 인하여 시련이나 환난이 온다고 할지라도

    실망하지 말고 참으며 기다려야 할 것입니다.

 

    지금 나에게 시련이나 환난을 주는 것들조차 모두 썩어 없어질 허망한 것이니,

    그 허망한 것들의 위협이나 협박에 기죽지 말고,

    믿음으로 힘 있고 당당하게 살아가야 합니다.

 

 4)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조차 되지 않습니다(17~18절)

 

           17. 자녀이면 또한 후사 곧 하나님의 후사요 그리스도와 함께한 후사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될 것이니라

           18. 생각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

 

    지금 우리가 이 땅에서 당하는 고난, 번민, 갈등, 압박 등의 고난은

    장차 우리가 하나님 나라에서 누리게 될 영광과는 비교도 되지 않습니다.

 

    엄마의 배 속에 있는 아이가 그곳이 좋다면서 밖으로 나오려 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그 아이에게 “얘야, 밖의 세상은

    그 좁은 엄마의 배 속보다 훨씬 좋고 아름답단다”하고 말해줄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주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영생의 나라는 이 땅과 비교도 되지 않습니다.

    그러니 지금은 우리 눈에 보이지 않으니 보이는 세상에 자꾸 마음을 빼앗기게 되지만,

    장차 우리가 들어가게 될 하나님 나라는

    이 온 우주를 다 합한 것보다 더 경이롭고 아름다운 곳입니다.

 

 

2. 우리를 영화롭게 하시는 하나님

 

 1) 성령께서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십니다(26절)

 

           26.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단 하나도 제대로 지킬 수 없을 만큼 연약한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성령께서 작은 유혹에도 쉽게 넘어지는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고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해 간구하시며 우리를 도우십니다.

 

    그 죄로 말미암아 영원한 멸망 당할 것임을 알면서도

    여전히 미움과 증오와 갈등과 죄의 즐거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우리의 연약함을 불쌍히 여기십니다.

    그래서 엄마가 아이의 손을 잡고 길을 가듯 성령께서 우리를 천국까지 인도하십니다.

 

 2)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이 되게 하십니다(28절)

 

           28.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들을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으로 택하십니다.

    이렇게 하나님을 사랑하여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하나님께서 모든 일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십니다.

 

    지금 고난과 시련을 당하고 있을 지라도

    이 고난과 시련이 더 큰 복을 가져오는 밑거름이 되게 하십니다.

    나의 오늘로 내일을 만드시는 하나님께서

    오늘 내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으로 나의 내일을 선하고 아름답게 만드십니다.

 

    하나님의 역사를 바꾸실 능력을 가지신 분이십니다.

    한 나라의 운명도 바꾸시는 하나님께서

    하물며 한 사람, 한 가정, 한 교회의 운명을 바꾸실 수 없겠습니까?

 

 3) 자기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되도록 미리 정하셨습니다(29절)

 

           29.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로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여기에서 미리 정하셨다는 것은

    구원 받을 자와 멸망 받을 자를 처음부터 정하셨다는 뜻이 아닙니다.

    본문은 이렇게 소위 숙명론적인 예정론을 의미한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알다(yada, 야다)’라는 말이 무엇인지를 잘 알지 못해서 생긴 오해입니다.

 

    ‘야다’는 결혼 관계처럼

    지속적으로 관계를 맺은 사람들이 서로를 아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이 말은 하나님과 지속적인 관계를 맺어서

    그가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께서도 그를 아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로

    태초부터 미리 정하셨다는 뜻입니다.

 

 4) 주 안에 있는 자를 구원하시기로 미리 정하신 것

 

    그렇게 하나님과 관계를 맺어

   “내 양이 나를 알고 나도 내 양을 아는”신비로운 관계를 맺은 자들에게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의 형상을 입혀주실 것을 작정하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많은 형제들의 맏아들이 되게 하실 것을 작정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우리의 맏형이라면, 우리는 예수님의 동생들이 되는 것입니다.

    장차 우리가 천국에 들어갈 때의 영광이 얼마나 크고 놀라운 것인지를

    ‘예수님이 우리의 맏형’이라는 이 말씀을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천국의 일꾼으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가지신 영광을 입고 들어가는 것입니다.

 

 5) 그 아들을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시려고(29절)

 

            (성경구절 위에)

 

    예수께서 많은 형제들 중에서 맏아들이 되었다는 것은

    그를 믿는 주의 백성들은 다 예수님이 동생들이 된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장차 영광의 나라에 들어갈 때

    우리는 주께서 부활하신 후 보여주셨던 그 영광스러운 몸을 입고 들어갑니다.

    우리는 하나님보다는 못하지만 천사들보다 더 뛰어난 영광스러운 존재가 됩니다.

 

묵상 :

 

    그러므로 시련이 있다 해서 코를 석자나 빼놓고 탄식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절망하는 자들에게는 아무런 일도 일으키지 않으십니다.

    시련과 고통 중에도 하나님을 믿으며

    그 신실한 신앙을 굳건히 지켜가는 자를 도우십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믿음을 갖는 것,

    어떤 상황에서도 주님의 사랑과 도우심을 의심하지 않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합니다.

    이런 믿음을 가지십시오.

 

 

3 : 우리의 믿음을 위협하는 것들 : 두려움과 공포와 불안

 

1. 우리의 믿음을 위협하는 것들(35절)

 

           35.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은 이미 그 죄의 용서함을 받았고,

    하나님의 의를 선물로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장차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때에 받게 될 영화를

    이 땅에서 이미 받은 것과 같다는 의미에서 과거형을 사용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아직 영화로움을 온전히 이룬 상태가 아닙니다.

    우리는 아직 죄의 세력들이 함께하는 소위 ‘중첩 기간’을 살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필연적으로 우리의 신앙을 위협하는 다음과 같은 것들을 만나게 됩니다.

 

 1) 환난

 

    생애 위협을 가져오는 모든 형태의 시련과 고통과 핍박을 말합니다.

    믿음을 가진 사람들도 뜻하지 않은 자연재해를 당할 수 있습니다.

    또는 부도를 당하든지, 사업에 어려움을 당하는 등의 어려움을 당할 수 있습니다.

 

 2) 곤고(곤경)

 

    좁은 골목에 몰아넣는 것, 궁색한 경지로 옮겨 놓는 것을 말합니다.

 

    나는 말씀대로 바르게살기에 힘썼는데 내가 자기들처럼 살지 않는다는 이유로

    나를 따돌리거나, 나를 궁지에 몰아넣을 수 있습니다.

    집안 식구 중에 나를 곤경에 빠뜨리는 자가 있기도 하고,

    학교나 직장 동료 중에 이런 자가 있기도 합니다.

 

    직장에서 사표를 내는 것처럼

    그 어려움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경우라면 별문제가 되지 않을 수 있겠지만,

    가족처럼 운명공동체로 묶여 있어서 그 곤경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경우라면

    참으로 고통스러운 삶이 될 것입니다.

 

 3) 칼

 

    전쟁이나 세상 권력이 직접 생명에 위협을 가하는 것을 말합니다.

    믿음을 가졌다는 이유로

    내 생명에 위협을 가하거나 핍박을 가하는 일들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이 칼의 위험은 생명에 직접적으로 위협을 가한다는 점에서

    가장 이기기 힘든 환난이 될 것입니다.

 

➠ 바울은 예수님을 믿은 이후로 날마다 이런 일을 당했다고 증거합니다.

 

    바울이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님을 만난 이후

    단 하루도 편안한 날이 없을 정도로 계속해서 핍박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앞으로도 자신의 생애 전체를 통하여 매일 이런 일을 당한다고 할지라도

    그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을 것이라고 고백합니다.

 

    하나님이 우리 편이 되어주시는 것을 믿고 있기 때문입니다.

    주께서 나를 사랑하고 계심을 믿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런 시련과 환난이 있을지라도 넉넉히 이길 수 있습니다.

 

    사실 이 엄청난 세상의 풍파에 맞서 대적하는 자는 내가 아니라 그리스도이십니다.

    우리는 주님을 의지하기만 하면 됩니다.

    그러면 주께서 나에게 이길 힘을 주십니다.

 

 

2. 우리를 위협하는 알 수 없는 공포들(38절)

 

           38.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이 외에도 우리를 두렵게 하는 또 다른 것들이 있습니다.

    어디서 오는지 알 수 없는 공포, 피할 수 없이 만나게 되는 공포들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그것이 어떤 것일지라도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에서 결단코 끊을 수 없다고 노래합니다.

 

 1) 사망이나 생명이나

 

    굶주림이나 화산폭발이나 태풍이나 지진과 같은 엄청난 재앙이나,

    로마 시대의 핍박과 같이 생명에 위협을 당했을 때 느끼는 공포를 말합니다.

 

    사람들은 때때로 그 이름만 들어도 공포를 주는 것들에 두려움을 느낍니다.

    그러나 이런 것들도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에서 결코 끊을 수 없습니다.

    주님의 능력이 이런 것들보다 더 크시기 때문입니다.

 

 2)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사람들은 이 땅에 있는 권세들보다는

    마귀나 사탄과 같은 영적인 세력들에 더 큰 두려움을 갖습니다.

 

    이런 영적인 세력들은 눈에는 보이지 않으면서

    사람보다 훨씬 큰 능력을 가지고 사람들을 위협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공포영화에는 이런 영적인 세력들이 단골 메뉴로 등장합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상상하는 그 엄청난 영적 세력들이 실제로 존재한다고 할지라도

    그것들이 주님 안에 있는 우리를 결단코 해할 수 없습니다.

 

 3) 현재의 일이나 장래의 일이나

 

    갑자기 당하는 사고들을 보면서 사람들은 막연한 두려움을 갖습니다.

    또 미래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르니 더욱 두려워합니다.

 

    그러나 바울은 미래에 어떤 재앙이 일어나든,

    또는 전쟁과 같은 어떤 역사적인 변혁의 사건이 일어나든,

    또는 어떤 우주적인 사건이 일어나든 간에

    그것들이 주님 안에 있는 우리를 결단코 해할 수 없다고 증거합니다.

 

 4) 높음이나 깊음이나 그 어느 피조물이라도

 

    저 하늘에 있는 영의 세계의 위험이나,

    혹 땅속에 숨어 있는 어떤 위험한 세력이나

    그 어떤 상상 속의 괴물이 실제로 나타나 위협한다고 할지라도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에서 우리를 결단코 끊을 수 없습니다.

 

묵상 :

 

    이보다 더한 어떤 시련이나 위협이 있을지라도

    하나님은 그보다 더 능력이 많으신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믿으며 강하고 담대하게 살아가십시오.

 

 

결 론 : 우리를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 이 모든 일을 당하여도 우리가 넉넉히 이깁니다.

 

    이 모든 것들이 우리의 생애 전체에 걸쳐서 

    날마다 우리에게 닥쳐온다고 할지라도 우리는 넉넉히 이깁니다.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이 있기 때문입니다.

 

 1)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31~32절)

 

           31. 그런즉 이 일에 대하여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32.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사로 주지 아니하시겠느뇨

 

    우리가 허물과 죄로 하나님과 원수 되었을 때에도

    우리를 위하여 독생자 예수님을 내어주신 분이십니다.

 

    그런데 하물며 지금 우리가 주님을 믿으며 하나님을 찬양하고 있는 이때에

    더욱 우리의 편이 되어주시지 않겠습니까?

    이렇게 하나님이 우리의 편이 되어 주셨는데 누가 우리를 대적하겠습니까?

 

    지금 잠시 그들이 우리보다 힘이 센 것처럼 보이지만,

    하나님께서 정하신 때가 되면 그들의 권세는 모두 허망한 것이 됩니다.

 

 2) 누가 우리를 송사(고발)하리요(33절)

 

           33. 누가 능히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을 송사하리요

                의롭다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마귀는 ‘대적자, 고발자’입니다.

    마지막 심판 때에 예수께 우리의 죄를 고발합니다.

    그때 단 한 가지라도 마귀에게 고발당할 죄를 가지고 있다면

    그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합니다.

 

    하지만 우리를 심판하실 바로 그 심판자께서

    우리를 위해 그의 독생자 예수님을 보내셨습니다.

    그에게 우리의 죄를 다 짊어지게 하셔서

    우리를 죄를 아예 하나도 짓지 않은 것으로 여기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의를 우리에게 선물로 주셨습니다.

    그런데 감히 누가 우리를 고발하겠습니까?

 

 3) 누가 우리를 정죄하리요(34절)

 

           34.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

 

    성령께서 우리를 위해 중보의 기도를 해주실 뿐만 아니라,

    예수님도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셔서

    우리를 위하여 끊임없이 중보의 기도를 해주고 계신데,

    누가 우리를 향하여 형편없는 자라 조롱할 수 있겠습니까?

 

    세상이 믿음에 세계를 알지 못해 우리를 조롱한다고 할지라도

    우리는 그런 것에 영향받아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주님의 큰 사랑을 받고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4) 우리를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38~39절)

 

           38.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39.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외부적인 재앙이나, 내 마음에서 일어나는 내면의 갈등이나,

    사람들의 압박으로 인한 곤경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우리가 알 수 없는 어떤 이상하고 무서운 영적 존재가 있을지라도

    우리가 넉넉히 이기리라고 장담하며 말할 수 있는 이유는

    주께서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주님을 떠나기 전에 주께서 먼저 우리를 떠나시는 법은 없습니다.

    내가 세상에 미혹되어 주님을 떠난다면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내가 죄를 범하여 주님 앞에 나오기 민망한 상태가 되었을지라도

    주의 이름을 부르면 주께서 눈물로 나를 부르며 감싸 안으십니다.

 

    나를 향한 주님의 사랑이 있으므로

    우리는 세상의 그 모든 위협과 고통과 시련에도 넉넉히 이기리라고 당당하게 외칩니다.

 

묵상 :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37절)

 

           37.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이 모든 것으로 우리가 날마다 도살하는 양같이

    시련과 고통을 당할지라도 넉넉히 이깁니다.

 

    우리가 넉넉히 이기는 것은 우리의 믿음이 훌륭해서도 아니고,

    용기나 인내력이 좋아서도 아닙니다.

    주께서 사랑으로 우리를 붙들어주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를 붙들어주시고 우리에게 힘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며 찬양합시다.

    그리고 우리를 사랑하시는 그 사랑 위에서 살아가십시오.

 

 

주님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을 받는

신실한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바라는 피조물들의 탄식의 소리,

우리 속 사람의 탄식의 소리들을

들을 수 있는 자들이 되게 하옵소서.

 

이 소리들이 들릴 때마다 더욱 긴장하여

주께 충성하는 자들이 되게 하옵소서.

 

성령이여 우리에게 들어오셔서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옵소서.

 

우리를 위협하는 그 어떤 환난에 처해 있더라도

우리를 향하신 주님의 사랑을

항상 의지하며 사는 자가 되게 하옵소서.

 

상상 속에 있는 그 어떤 악한 영이

실제로 위협한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은 그보다 더 큰 능력을 가지셨음을 믿고

강하고 담대하게 살아가게 하옵소서.

 

이처럼 우리를 사랑하시는 주님의 사랑 안에서

넉넉히 이기는 자가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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