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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 설교문

거듭난 사마리아 여인(1월 30일; 요 4:1~34)

작성자송호영|작성시간22.01.31|조회수812 목록 댓글 0

설교제목 : 거듭난 사마리아 여인

설교본문 : 요한복음 4:1~34

설 교 자 : 송호영 목사

설 교 일 : 2022년 1월 30일

 

 

서 론 : 거듭남의 예화, 사마리아 여인

 

    요한복음 3장에서 예수께서 니고데모와의 대화 중에 거듭남에 대하여 말씀하신 후

    바로 그 다음 장인 요한복음 4장에는 사마리아 여인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사마리아 여인의 변화된 모습은 거듭난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설명하는

    아주 좋은 예화이고 모델입니다.

 

    그러므로 오늘은 사마리아 여인의 변화의 과정을 통해

    거듭남이 무엇인지를 살펴보겠습니다.

 

 1) 우회도로를 이용하지 않고 사마리아를 통과하는 길을 택하신 예수님(3~4절)

 

            3. 유대를 떠나사 다시 갈릴리로 가실쌔

            4. 사마리아로 통행하여야 하겠는지라

 

    전체 길이가 약 200km쯤 되는 팔레스틴은 세 지역으로 분할되어 있습니다.

    북쪽은 갈릴리 남쪽은 유대지방이고, 그 가운데에 사마리아가 있습니다.

 

    유대인과 사마리아 사람들이 서로 증오하고 있으므로

    요단강을 건너서 멀리 돌아서 가는데,

    요단강을 건너서 가는 길은 보통 6일이 걸려서

    사마리아를 통과하여 가는 길(3일 길)보다 거의 두 배나 더 걸립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요단강을 건너서 가는 우회 도로를 택하지 않고

    곧바로 사마리아를 통하여 가는 길을 택하셨습니다.

 

 2) 사마리아 여인을 만나려고 일부러 그 길을 택하신 예수님

 

    예수께서 사마리아를 통과하는 길을 택하신 것은

    갈릴리로 가는 시간을 절약하시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예수께서 사마리아 땅으로 가신 것은 그곳에서 한 여인을 만나시기 위해서입니다.

 

    그 여인은 사마리아 사람들로부터도 버림받은 그 시대의 가장 비참한 여인이었습니다.

    주께서 그 여인에게 주님의 은총을 내리시기 위하여

    그 여인을 만나러 일부러 유대인이 가지 않는 길을 걸으시는 것입니다.

 

➠ 요한복음 4장은 예수께서 사마리아 길로 가셨다는 것에서부터 시작합니다.

 

 

1 : 여인의 마음에 담긴 답답함과 갈증을 살피시는 예수님

 

1. 가련한 한 여인을 찾아가시는 예수님

 

 1) 사마리아 사람들에게 버림받은 여자(5~7절)

 

            5. 사마리아에 있는 수가라 하는 동네에 이르시니

               야곱이 그 아들 요셉에게 준 땅이 가깝고

            6. 거기 또 야곱의 우물이 있더라 예수께서 행로에 곤하여

               우물 곁에 그대로 앉으시니 때가 제 육시쯤 되었더라

            7. 사마리아 여자 하나가 물을 길러 왔으매 예수께서 물을 좀 달라 하시니

 

    그때가 6시쯤이라 했으니 우리 시간으로 낮 12시로

    태양이 가장 뜨거운 한낮이었고 예수께서도 행로에 피곤하셨는데,

    사마리아의 수가성에서 가까운 곳에 야곱의 우물이 있었습니다.

 

    예수께서 그곳에서 잠시 쉬고 계실 때에 한 사마리아 여인이 물을 길으러 왔습니다.

    이 여인은 자기가 사는 수가성 안에 있는 우물을 놔두고 굳이 햇볕이 가장 뜨거울 때

    수가성에서 15분 이상이나 걸어야 하는 이 우물로 물을 길으러 온 것입니다.

 

    이 여인은 자기가 사는 성읍 안에 있는 우물을 놔두고 이 더운 날

    뜨거운 태양 빛을 받으며 이곳까지 홀로 와서 물을 길어야 할 만한 사정이 있었습니다.

    그 성읍 안에서 이 여인을 환영하는 자가 아무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아무도 가까이하려 하지 않는 철저히 따돌림을 당하는 여자였으므로

    사람을 피하여 홀로 이곳까지 와서 물을 긷게 되었습니다.

 

2) 사마리아 여인보다 예수께서 먼저 그곳에 와 계셨습니다(5~6절)

 

            (성경구절 위에)

 

    이 여인은 사마리아에서도 유명한 불륜 여인입니다.

    한 여자가 남자를 다섯이나 만나고 있고,

    그것도 부족해 또 다른 남자를 만나고 있는 상황이니

    타락한 사마리아 사람들에게서도 버림받은 여자가 된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타락한 여인을 만나시기 위해

    주께서 그 여인보다 먼저 그곳에 도착하셔서 그 여인을 기다리셨습니다.

    사마리아 사람들에게까지 버림받는 이 가련한 여인을 만나시기 위해

    일부러 이곳에 오셨습니다.

 

 

2. 대화의 시작 : 물을 좀 달라

 

 1) 여인과 단둘이 있기 위해 제자들에게 심부름을 보내신 예수님(7~8절)

 

            7. 사마리아 여자 하나가 물을 길러 왔으매 예수께서 물을 좀 달라 하시니

            8. 이는 제자들이 먹을것을 사러 동네에 들어갔음이러라

 

    그곳에 오시자마자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먹을 것을 구해오라고 심부름을 보내셨습니다.

 

    이 여인이 편안한 마음으로 예수님과 대화할 수 있도록

    분위기를 만드신 것입니다.

 

 2) 대화의 시작 : 예수께서 물을 좀 달라 하시니(7절)

 

            (성경구절 위에)

 

    제자들이 모두 예수님의 심부름으로 먹을 것을 구하러 떠나서 예수님과 여인 둘만 남게 되자

    예수께서 여인에게 “물을 좀 달라”하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목이 말라 물 좀 달라 하신 것이 아닙니다.

    여인과 대화를 하기 위해 여인에게 물을 좀 달라 하신 것입니다.

 

 2) 예수께 퉁명스럽게 대답하는 사마리아 여인(9절)

 

            9. 사마리아 여자가 가로되 당신은 유대인으로서 어찌하여 사마리아 여자 나에게

               물을 달라 하나이까 하니 이는 유대인이 사마리아인과 상종치 아니함이러라

 

    예수께서 물을 좀 달라고 하시자 여인은

    유대인이 어찌하여 사마리아 여자인 자신에게 물을 달라고 하느냐고 퉁명스럽게 말합니다.

 

    유대인과 사마리아 사람들은 서로 원수처럼 여기고 있어서

    길에서 지나치다 만나도 사마리아 사람과는 눈길조차 주지 않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대낮에 사마리아 여자와 단둘이 대화를 나누고 계십니다.

    이것은 그 당시 상황에서는 정말이지 있을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사마리아 여자인 자신에게 물을 좀 달라 하시니 이상했던 것입니다.

 

 

3. 목마르지 않는 영원한 생수를 주시는 예수님

 

 1) 내가 누구인지 알았더라면 생수를 구하였을 것이라(10절)

 

           10.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네가 만일 하나님의 선물과

                또 네게 물 좀 달라하는 이가 누구인 줄 알았더면

                네가 그에게 구하였을 것이요 그가 생수를 네게 주었으리라

 

    여인이 퉁명스럽게 대답하자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선물이 무엇인지,

    또 그 여인과 대화하고 있는 바로 앞에 있는 주님이 누구신지 알고 있었더라면

    주께 생수를 구했을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자연스럽게 우물 속에 있는 물에서

    주께서 주시는 영원한 생수인 성령으로 대화의 주제를 바꾸십니다.

 

    주께서 주시는 생수는 성령을 가리켜서 하신 말씀입니다.

    마치 솟아오르는 생물처럼 성령께서 우리 안에 들어오셔서

    기쁨과 평강을 솟아나게 하시기 때문에 성령을 생수라 표현했습니다.

 

 2) 내가 주는 물은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14절)

 

            14. 내가 주는 물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나의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예수께서는 주께서 부활하신 후 사람에게 부어주실 성령을 가리켜 하신 말씀이었으나

    그 사실을 알 길이 없는 여인은

   “당신이 이 우물을 판 야곱보다 크신 분이니이까?”하고 묻습니다.

 

    야곱도 우물을 하고 나서야 물을 얻을 수 있었는데

    우물도 파지 않고 물을 어떻게 얻어서 자기에게 줄 수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 우물을 판 야곱보다 더 크신 분이냐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이 물을 마시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나의 주는 물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나의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14절)하고 말씀하십니다.

 

    예수께서 주시는 생수는 이 우물에서 두레박으로 떠서 마시는

    이 세상의 물하고는 전혀 다른 신령한 생명수라는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3) 마셔도 다시 목마른 야곱의 우물 : 세상 기쁨의 한계성을 상징(13절)

 

           13.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이 물을 먹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여인이 말한 야곱의 우물은 마셔도 다시 목이 마릅니다.

    세상 기쁨의 한계성을 말합니다.

 

    이 여인은 자신의 마음속 깊은 곳에 있었던 갈증을 남자를 만남으로 해결하려 했습니다.

    그러나 다섯 남자를 이미 만났고, 지금 다시 여섯 번째 남자를 만나고 있으나

    그 여인의 갈증이 해결되지 않았습니다.

 

    그동안 사람들의 비난까지 받으면서 그녀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해 보았으나

    마음의 갈증은 해결되지 않고 사람들의 조롱과 비난만 받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2 : 영원한 생수를 얻기 위해 먼저 해결해야 할 것

 

1. 근본적인 문제에 도전하시는 예수님

 

 1) 예수님의 불편한 질문 : 가서 네 남편을 불러오라(16절)

 

           16. 가라사대 가서 네 남편을 불러 오라

 

    예수께서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생수를 주겠다고 하시자

    여인은 더 이상 물을 길으러 오지 않아도 되도록 그 물을 달라고 합니다.

    여인은 예수님의 생수를 마술적인 것으로 이해하였습니다.

 

    예수님의 생수가 여인이 생각하듯 한 번 얻으면

    가만히 있어도 저절로 속에서부터 기쁨이 솟아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생수는 예수님과의 관계 맺음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습니다.

 

➠ 성령의 생수를 얻기 위해 반드시 해결해야 할 질문을 던지시는 예수님

 

    주께서 주시는 생명의 생수인 성령을 받으려면 죄의 문제가 해결되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영원한 생명수를 얻기 위해

    반드시 해결해야만 하는 근본적인 문제의 질문을 던지십니다.

   “가서 네 남편을 불러오라”

 

    그저 마음 가는 대로 이 남자 저 남자를 만났던 여자였으니 남편이 있을 리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이 질문은 이 여인에게는 대단히 불편한 질문입니다.

 

    가뜩이나 사람들이 자기를 보고 흉을 보니

    그것도 싫어서 제일 더운 한낮에 아무도 모르게 조용히 물을 뜨러 온 것인데

    이 여자가 가장 감추고 싶은 아킬레스건을 건드리신 것입니다.

 

 2) 그러나 그 불편한 문제가 해결되어야만 합니다.

 

    그러나 그 죄의 문제가 해결되기 전에는 결단코 주께서 주시는 생수를 받을 수 없습니다.

    그 죄가 해결되기 전에는 결단코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그 여인이 불편해하는 질문을 던지신 것입니다.

 

    많은 사람이 바로 이 자리에서 멈춥니다.

    말씀이 나의 아픈 부분을 건드리는 것을 싫어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지금 말씀을 통해 나를 변화시키지 않으면

    결국 심판대 앞에서 지적을 받게 되어 멸망에 이르는 자가 됩니다.

 

묵상 :

 

  ① 죄의 문제를 주님 앞에서 해결하십시오.

 

     예수님을 진정으로 만나려면

     우리 내면의 깊은 곳에 있는 죄의 문제가 해결되어야만 합니다.

     주 앞에 죄의 문제를 드러내고 용서를 구하십시오.

 

     주께서 우리의 죄를 용서해주실 때

     우리에게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생수가 주어집니다.

 

  ② 예수님이 주려 하시는 것이 무엇인지를 배우십시오.

 

     예수님은 여인과 대화하면서 하나님의 선물이 무엇인지, 생수가 무엇인지,

     예수님이 누구인지 알게 하는 방향으로 진행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이 세 가지에 대한 것을 우리도 알게 되기를 원 하십니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선물이 무엇인지,

     우리에게 주려 하시는 생수가 무엇인지,

     그리고 예수님이 누구이신지 배우십시오.

     그리고 주께 알게 해 주시도록 간구하십시오.

 

 

3 : 관심의 변화 두레박에서 예배로

 

1. 예배의 공간에 대한 관심

 

 1) 예배의 장소를 묻는 사마리아 여인 : 그리심산인가, 예루살렘인가(19~20절)

 

           19. 여자가 가로되 주여 내가 보니 선지자로소이다

           20. 우리 조상들은 이 산에서 예배하였는데

                당신들의 말은 예배할 곳이 예루살렘에 있다 하더이다

 

    예수께서 자신에 대한 모든 것을 아시는 모습을 보이자

    예수님을 선지자로 알게 된 사마리아 여인은

    곧바로 예수님께 예배에 관한 질문을 던집니다.

 

    여인은 예루살렘 성전과 그리심산 중 어디에서 드리는 예배가 옳은지를 묻습니다.

    오랫동안 유대인들은 예루살렘 성전에서,

    사마리아 족속은 그리심산에서 예배드려야 한다고

    서로 주장하며 대결하였기 때문입니다.

 

 2) 예배의 공간을 두고 벌인 유대인과 사마리아인 싸움

 

    예배를 둔 두 족속의 이러한 대결은

    남왕국 유다 백성들이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온 후 예루살렘 성전과 성벽을 재건할 때

    북왕국 이스라엘 사람들(사마리아 족속)을 참여시키지 않은 때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사마리아 족속은 그리심산에 성전을 짓고 나서

    그곳에서 예배드리는 것만 바른 예배라고 주장하기 시작했고,

    그 후로 유대인과 사마리아 족속은 예배의 공간을 두고 길고 긴 싸움을 했습니다.

 

 

2. 공간이 아니라 시간 : 아버지께 예배드릴 때가 오나니, 지금이 바로 그때라.

 

 1) 예배는 사람과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 주신 은혜의 통로

 

    아담과 하와가 범죄하여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진 후

    하나님과의 관계가 다시 회복될 수 있는 길을 열어 주셨는데 그것이 바로 예배입니다.

 

    예배는 아담의 아들인 가인과 아벨 때부터 있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아담이 죄를 지은 바로 그 순간부터

    하나님과 관계를 회복시킬 기회를 주셨다는 것을 뜻합니다.

 

 2) 그러나 구약 시대에 이방인들은 예배의 기회조차 없었습니다.

 

    그러나 유대인과 사마리아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예배가 무엇인지에는 관심이 없고

    서로 자기들의 지역에서 예배드려야 한다며 예배의 공간에만 관심을 두었습니다.

 

    끊어진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시킬 참된 예배가 무엇인지를 알지 못했고, 관심도 없었습니다.

 

 3) 아버지께 예배드릴 때가 오나니, 지금이 바로 그때라(23절).

 

           23. 아버지께 참으로 예배하는 자들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때라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자기에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그러나 예수님은 예배는 공간의 문제가 아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어디서 드리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어떤 예배를 드리느냐가 중요하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이제 그런 참된 예배를 드려야 할 때가 왔다고 말씀하십니다.

 

    그가 유대인이든 사마리아인든 이방인이든 상관없이 하나님께 예배드릴 때가 왔습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리심으로 이 세상 모든 사람이

    하나님께 직접 예배드릴 수 있는 길이 열렸습니다.

    누구든 예배를 통하여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 있는 기회가 열린 것입니다.

 

 

4 : 거듭남의 조건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예배

 

1. 그리스도가 오시면 우리에게 알게 하시리이다 : 메시야 갈망

 

 1) 메시야(그리스도)가 오시기를 갈망하고 있는 사마리아 여인(25절)

 

           25. 여자가 가로되 메시야 곧 그리스도라 하는 이가 오실 줄을 내가 아노니

                그가 오시면 모든 것을 우리에게 고하시리이다

 

    예수께서 이제는 어디든 상관없이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시대가 열렸다고 말씀하시자

    사마리아 여자는 메시야, 곧 그리스도라 하는 이가 오시면

    이 모든 것을 알게 하실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 말은 이 사마리아 여자가 그동안 그리스도가 오시기를 갈망하고 있었다는 것을 뜻합니다.

 

    누가복음 2장을 보면 그리스도가 오시기를 갈망하던 두 노인이 나옵니다.

    시므온과 안나, 이 두 노인은 예루살렘 성전에서 묵상하고 기도하며

    오랫동안 그리스도가 오시기를 갈망하였습니다.

    그러다 정결예식에 참여하기 위해 마리아와 요셉이 예루살렘 성전을 찾았을 때
    부모의 품에 안긴 아기 예수님을 한눈에 알아보고 엎드려 절하며 경배했습니다.

 

 2) 타락한 사마리아 여인의 마음속에 담긴 그리스도를 향한 갈망

 

    예수님은 사마리아 여인과 같이 예수님을 향한 갈망을 가진 자를 찾으셨습니다.

 

    예수님을 향한 갈망을 가진 자이면 노인이라도 만나고,

    사마리아 여인처럼 타락한 사람이라도 만나십니다.

 

 3) 바로 여기에 복음의 탁월함이 있습니다.

 

    만일 이 여자가 구약의 시대에 있었다면

    죽을 때까지 구원받을 기회를 얻지 못했을 것입니다.

 

    구약은 율법을 지킨 자에게만 구원의 기회가 있는데

    이 여자는 이미 남자가 다섯이 있었고,

    지금 있는 남자도 자기 남편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런 여자도 주님을 간절히 원하고 사모할 수는 있습니다.

    이렇게 연약하여 율법을 지킬 힘이 없으나

    하나님을 간절히 원하고 사모하는 자, 바로 이런 자들을 위해서 예수께서 오셨습니다.

 

 

2. 아버지께서 찾으시는 영과 진리로 드리는 예배(23절)

 

           23. 아버지께 참으로 예배하는 자들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때라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자기에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이제는 더 이상 예배의 장소나 형식이나 절차는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이제는 마음과 영혼의 중심을 주께 드리는 예배를 드리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예배는 ‘영과 진리 안에서 드리는 예배’라는 뜻입니다.

    그중에서 먼저 영으로, 영 안에서 드리는 예배는

    영적인 감각으로, 하나님과 영이 서로 연결된 상태에서 드리는 예배를 뜻합니다.

    하나님과 영이 서로 교통하고

    하나님과 서로 영적인 교류를 하는 자가 드리는 예배입니다.

 

 1) 하나님과의 신비로운 연합 속에서 드리는 예배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요 15:5)

 

    영으로 드리는 예배는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신비로운 연합 속에서 드려지는 예배입니다.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요 15:7).

 

    우리가 주님의 은혜 속에 거하고 주님의 말씀이 우리 안에 거하면

    하나님과의 신비로운 연합이 이루어집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내 마음에 품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행하신 일을 기억하고,

    그 행하신 일을 기뻐하며 감사하며 찬양하는 것,

    이것이 바로 영으로 드리는 참된 예배입니다.

 

 2) 천국의 기쁨으로 드리는 예배 : 메시야 잔치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히 11:1)

 

    마태복음 22:1~14과 누가복음 14:16~24을 보면

    주께서 재림하여 오실 때에 주님과 그의 백성들이 함께 나누는 영광의 기쁨을

    마지막 왕의 혼인 잔치로 비유하고 있습니다.

 

    그때 신랑인 왕은 예수님이시고, 그 왕의 신부는 구원받은 주님의 백성들입니다.

    그 영광의 기쁨은 장차 주께서 다시 오신 후에 경험하게 될 일이지만,

    우리는 믿음으로 그 영광의 기쁨을 오늘 이 예배 속에서 경험하며 노래합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기 때문입니다.

 

    그 영광의 기쁨을 마치 오늘 이 자리에서 눈으로 보는 것처럼 확실하게 믿는 이들이

    지금 그 기쁨에 싸여 있는 것처럼 주께 영광 돌리며 예배드리는 것,

    이것이 바로 영으로 드리는 예배입니다.

 

 3) 회개하여 순결한 영이 된 자가 드리는 예배

 

    회개하여 그 영이 깨끗하고 순전하게 된 자만이 이런 예배를 드릴 수 있습니다.

    주께 회개하여 그 영이 순결하게 된 자만이

    하나님과의 신비로운 연합 속에 들어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자만이 하나님과 그 영이 서로 교통하는 자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과 영이 서로 교통하는 영 안에서 드리는 예배를 드리려면

    먼저 자신의 죄를 회개하여 그 영이 깨끗하고 순전한 영이 되게 해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과 영이 서로 통하여

    영으로, 영 안에서 예배를 드릴 수 있는 자가 됩니다.

 

 4) 마음을 다하고 정성을 다하고 힘을 다하는 예배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하나인 여호와시니

    너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신명기 6:4~5)

 

    우리의 왕이시고,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는 분이시며,

    우리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달리셔서 우리를 거듭나게 하신 이,

    우리를 새롭게 창조하셔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게 하신

    우리의 위대하신 왕께 온몸과 마음과 정성을 다하여 찬양합니다.

    이것이 바로 영으로 드리는 예배입니다.

 

 5) 진리로 : 진리이신 예수님을 통해 오직 하나님께만 드리는 예배

 

    오직 보이지 않으시는 가운데 계시는 하나님께만 드리는 예배,

    오직 우리의 예배를 받으시는 하나님께만 드리는 예배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예배를 돕는다는 이유로

    그 어떤 우상이나 그 어떤 이미지 형상도 만들거나 그 앞에 두지 않고,

    오직 보이지 않는 가운데 계시는 하나님께 예수님의 이름으로만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5 : 거듭난 여인

 

1. 거듭난 사마리아 여인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요한복음 3:3)

 

    요한복음 3장에서 예수님은 사람이 거듭나지 않으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다는 것은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는 뜻입니다.

    오직 거듭난 자들만이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 사마리아 여인을 통해 거듭남이 무엇인지 설명하시는 예수님

 

    그러면 거듭났다는 것을 무엇을 뜻하는 것입니까?

    어떤 사람이 거듭난 사람입니까?

 

    예수님은 요한복음 4장의 수가성 우물가의 여인과의 대화를 통해

    사람이 거듭난다는 것을 무엇을 뜻하는 것인지를 설명하십니다.

 

 1) 버림받은 타락한 여인이 예수님과 잠시 대화를 나누는 중에 거듭난 여인이 되었습니다.

 

    사마리아 사람들로부터도 버림받은 불륜의 여인인 이 사마리아 여인이

    예수님과 잠시 대화를 나누는 동안 거듭난 여인이 되었습니다.

 

    요한복음 3장에서 오직 거듭난 자만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고 말씀하신 예수님은,

    이 사마리아 여자를 통해서 우리가 어떻게 하면 거듭날 수 있는지를 설명하십니다.

 

    주님이 누구신지를 아는 자,

    주님이 우리의 구세주이심을 고백하며 그를 기뻐하고 찬양하는 자는 거듭난 자입니다.

 

 2) 물동이를 버려두고 기뻐하며 그가 만난 주님을 전하는 사미리아 여인(28~30절)

 

           28. 여자가 물동이를 버려두고 동네에 들어가서 사람들에게 이르되

           29. 나의 행한 모든 일을 내게 말한 사람을 와 보라 이는 그리스도가 아니냐 하니

           30. 저희가 동네에서 나와 예수께로 오더라

 

    여자는 예수께서 자신이 바로 그리스도시라고 말씀하시자,

    물동이를 그 자리에 버려둔 채 곧바로 마을로 뛰어가서

    내가 그리스도를 만났다고 외칩니다.

 

    그 여인이 이렇게 예수님이 그리스도시라는 것을 믿는 순간,

    그리고 그 믿음대로 자기의 입술을 열어 고백했고,

    다른 사람들에게 예수님이 그리스도시라는 것을 증거하는 순간

    그는 거듭난 자가 되었습니다.

 

묵상 : 그러나 이제부터 시작입니다.

 

    그러나 이 여인이 비록 거듭났다고는 하지만

    그녀가 평생 행하여야 할 길고 긴 신앙생활에서 이제 첫 출발을 했을 뿐입니다.

    그동안은 육체적인 생명만 있던 여자가 이제 거듭나서 영의 삶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아직은 영적인 갓난아이에 불과합니다.

    앞으로도 한동안은 타락한 삶을 살았던 그녀의 본능이 불쑥 튀어나올 것입니다.

    그런 과정에서 많은 갈등과 좌절을 경험하기도 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 여인이 끝까지 주님을 붙잡는 그 믿음을 중단하거나 포기하지만 않는다면

    결국은 그 여인의 심령 속에 들어가신 성령께서

    그 여인의 잘못된 부분을 치료하시고 하나님의 거룩한 성품을 채우실 것입니다.

 

    그동안은 혼자 살았으나 이제부터는 주님의 성령과 함께 살아가니

    아직 이전 버릇을 완전히 고치지 못했을지라도

    그 여인은 이미 천국 백성이 된 것입니다.

 

 

2. 예수님의 양식 : 거듭난 여인을 보고 기뻐하시는 예수님

 

 1) 예수님의 양식(31~34절)

 

           31. 그 사이에 제자들이 청하여 가로되 랍비여 잡수소서

           32. 가라사대 내게는 너희가 알지 못하는 먹을 양식이 있느니라

           33. 제자들이 서로 말하되 누가 잡수실 것을 갖다 드렸는가 한대

           34.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의 양식은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며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이것이니라

 

    예수께서 사마리아 여인과 대화를 하시는 동안

    인근의 동네에서 먹을 것을 사 온 제자들이 예수께 식사하실 것을 청하자

    예수님은 “내게는 너희가 알지 못하는 양식이 있다”하고 말씀하십니다.

 

    제자들끼리 누가 따로 양식을 주셨나 서로 말하자

    예수님은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행하는 것과 하나님의 일이 이루어지는 것이

    예수님의 양식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은 여인이 거듭나서 하나님의 백성이 된 것을 보시고

    양식을 드신 것처럼 만족감을 느끼신다는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2) 여인의 변화된 모습을 기뻐하시는 예수님

 

    또한 여기에서의 예수님의 양식은

    변화된 여인을 보시고 기뻐하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나타내는 것이기도 합니다.

 

    사마리아 사람들로부터도 버림받은 이 타락한 여인이

    예수님을 향하여 구세주라는 말 한마디를 고백했다고

    예수님이 이토록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그 고백이 이 여인의 마음 깊은 곳에서 나온 진정한 고백이었으므로 주께서 기뻐하십니다.

    이제 이 여인이 주님을 붙잡고 사는 거룩한 여자가 되었으므로 주께서 기뻐하십니다.

    이 여인도 새로운 피조물, 새로운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으므로 주께서 기뻐하십니다.

 

묵상 :

 

    세상의 즐거움만 찾을 때는 옆에 남자가 있어도 외로움과 답답함을 떨칠 수 없었는데

    예수님이 자기가 기다리고 찾던 바로 그리스도시라는 것을 알아보고 난 후
    여인의 마음에 기쁨이 넘쳐서

    물동이를 버려둔 채 사마리아로 뛰어가 사람들에게 외쳤습니다.

 

    관심이 달라지고, 바라는 것이 달라졌으며, 기뻐하는 것이 달라졌습니다.

    거듭남이란 바로 이것입니다.

 

    주님이 누구신지를 발견하고, 그를 내 마음에 모시는 것,

    그래서 주께서 주신 새생명으로 내면의 근본적인 것이 바뀐 것,

    이것이 거듭남입니다.

 

    주님을 찾고 구하고 주님을 마음에 모시십시오.

    그러면 이 여인처럼 영원한 생명수를 가진 기쁨이 넘치게 될 것입니다.

 

 

결 론 : 예수께서 사마리아 여인을 찾아가신 이유 그리스도를 향한 간절한 갈망

 

    타락한 사마리아 사람들로부터도 따돌림을 당할 정도로 여러 남자를 만났던 문란한 사마리아 여인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그런 사마리아 여인을 만나기 위해 예수께서 친히 찾아가서 만나셨을가요?

    이런 여자가 어떻게 해서 예수님과 잠깐 만나는 사이에 거듭난 여인이 되었을까요?

 

    그동안 유대인들은 예수님의 기적을 많이 보았으나,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알아본 사람은 얼마 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 여인 앞에서 한 하나의 기적도 보이지 않으시고 그저 말씀만 하셨습니다.

 

    여인은 말씀만 듣고도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알아보았습니다.

    그것도 “내가 바로 그 사람이라”하는 이 한 마디를 결정적인 말씀으로 듣고

    물동이를 버리고 기뻐하며 사마리아로 뛰어갔습니다.

 

    이 모든 것의 출발점에 무엇이 있습니까?

    그리스도를 향한 여인의 갈망입니다.

   “그리스도라 하는 이가 오실 줄을 내가 아노니, 그가 오시면 모든 것을 고하시리이다”(25절)

 

    비록 마음의 갈증을 남자를 통해 해결하려 하는 바람에 불륜녀가 되기는 했지만
   “그리스도 오시면 나도 달라질 수 있다”는 간절함을 항상 품고 있었습니다.

 

    예수께서 바로 이 여인에게 있는 그 갈망을 보시고 이 여인을 칮히 찾아오셨고,

    이 여인을 거듭난 자가 되도록 도우셨습니다.

 

    오늘 말씀을 요약해봅시다.

 

 

1) 마음의 답답한 갈증을 풀지 못한 가련한 사마리아 여인

 

2) 이 답답함을 풀기 위해 많은 남자를 만났으나 해결하지 못한 사마리아 여인

 

3) 주께로부터 영원한 생수에 관한 말씀을 듣고

 

4) 관심이 예배에 대한 것으로 바뀌고

 

5)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신 줄 알고 기뻐하며 물동이를 던지고 주를 찬양함

 

6) 사마리아 사람에게 주님을 증거하여 그들도 주를 믿게 함

 

➠ 이 모든 일이 예수님을 향한 여인의 갈망으로 인하여 일어났음을 기억하십시오.

 

 

 

주님

 

내 마음 깊은 곳에 여전히 남아서

나를 괴롭히는 갈증의 문제를 해결하여 주옵소서.

 

마음의 갈증을 해결하느라

세상에서 헤매지 않게 하시고

주 안에서 참 생수와 참 기쁨을

발견하게 하옵소서.

 

거듭난다는 것이 무엇을 뜻하는 것인지

주님의 백성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무엇인지

바르게 깨닫게 하시고

그 믿음으로 살아가게 하옵소서.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참된 예배를 드리게 하옵소서.

 

참되게 예배드리기 위해 하나님을 배우게 하시고,

성령의 인도를 받으며 사는 성도가 되게 하옵소서.

 

하나님을 섬기고 하나님께 예배하는 기쁨이

무엇인지 알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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