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제목 : 나를 믿는 자는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
설교본문 : 요한복음 7:25~39, 8:1~30
설 교 자 : 송호영 목사
설 교 일 : 2022년 2월 2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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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론 :
예수님을 구주로 믿으면 우리의 무엇이 어떻게 달라지나요?
사도요한은 이것을 요한복음 4장과 오늘 본문 8장에 나오는 타락한 두 여자를 통해서 설명합니다.
남자가 다섯이나 되고, 그것도 모자라 여섯 번째 남자를 새로 만나고 있던 수가성 우물가의 그 사마리아 여자(4장),
그리고 현장에서 간음하다 잡힌 여자(8장)은
구약의 율법에 따르면 당장 돌에 맞아 죽어야 할 중대한 범죄였습니다.
그러나 두 여자 다 예수님과 몇마디 대화를 나누고는 그 모든 죄를 용서받고 거듭난 자가 됩니다.
오늘 말씀은 이들이 변화된 후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그들에게 주어진 복과 은혜가 무엇인지를 살펴보고,
이 은혜를 거절한 사람의 문제는 무엇인지를 살펴보겠습니다.
제 1 부 : 잘못된 신앙
8장의 현장에서 간음하다 잡힌 여자에 대한 말씀을 보기 전에
먼저 유대인들의 잘못된 신앙에 대하여 살펴보겠습니다.
요한복음 7:25~39절의 이 말씀은 초막절에 예수께서 예루살렘에서 말씀을 증거하실 때
그 말씀을 들은 사람들의 반응을 정리한 것입니다.
말씀에 대한 그들의 반응은 곧 그들이 누구인지를 증거하는 것이 되었습니다.
1. 잘못된 믿음
예수께서 오병이어의 기적을 일으키신 후에 6개월 동안 유대 지방으로 올라가지 않으시고
갈릴리 지방에서만 머물러 계셨습니다.
그렇게 갈릴리에서 6개월을 지내신 후 초막절이 왔습니다.
초막절은 출애굽 때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초막에서 지냈던 것을 기념하여
한 주간 동안 지붕이나 마당에 나무로 초막을 짓고 그곳에서 지내는 절기를 말하는데,
추수감사절과 겸한 절기였으므로 1년 중 가장 풍성하고 즐거운 절기입니다.
1) 잘못된 질문 : 이제 당국자들도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알았는가?(7:25~26)
25. 예루살렘 사람 중에서 혹이 말하되
이는 저희가 죽이고자 하는 그 사람이 아니냐
26. 보라 드러나게 말하되 저희가 아무 말도 아니하는도다.
당국자들은 이 사람을 참으로 그리스도인줄 알았는가?
초막절에 참여하기 위해 모인 무리가 예수께서 성전에서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을 향하여 담대하게 말씀을 전하시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들 중 예루살렘의 당국자가 예수님을 죽이려 하고 있음을 알고 있던 자들이
예수님의 말씀 전하시는데도 당국자들이 예수님을 붙잡지 않는 것을 보고
“이제 당국자들도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알았는가?”하고 외칩니다.
① 예수님을 조롱하는 무리들
“이제 당국자들도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알았는가?”
무리들의 이 소리는 첫째로 ‘그럴 리가 없는데 당국자들이 왜 이렇게 조용하지?’
하는 예수님을 향한 조롱의 소리입니다.
예수님이 당시 유대 사회의 중심부인 예루살렘도 아니고
갈릴리 지방 나사렛 출신이라는 단지 그 이유 하나 때문에
예루살렘에 사는 유대인들은
예수님이 아무리 많은 기적을 행하셔도 예수님을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마치 오늘날 임대아파트에 산다는 이유로 차별하는 것처럼
예수님을 갈릴리 사람이라는 이유로 조롱하는 것입니다.
② 당국자들의 생각에만 주목하는 무리들
또한 이 소리는 예수님이 누구신지에 대하여
당국자들은 어떤 판단을 하고 있는지를 주목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이들이 당국자들의 판단에 관심을 갖는 것은 권세를 가진 자들의 생각을 잘 읽어야
자기들도 세상에서 한몫을 차지할 수 있을 것이라고 여기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당국자들이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판단하고 있다면
자기들도 얼른 그렇게 생각해야 하고,
당국자들이 예수님을 죽이려 한다면
자기들도 그편에 서서 예수님을 죽이라고 외치는 자들이 되려 하는 것입니다.
2) 성경보다 유대인의 전통을 더 믿은 자들
물고기 두 마리와 보리떡 다섯 개로
남자 어른들만 해도 5,000명이나 되는 사람들을 먹이시고도 열두 바구니를 남기시고,
눈먼 자가 눈을 뜨고, 귀먹은 자들이 듣게 되며, 중풍 병자와 문둥병자를 고치시고,
심지어 죽은 자도 살리시는 기적들을 보고도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지 못하는 이유는
그들의 이러한 잘못된 믿음 때문입니다.
그들은 유대인들의 교회 전통에서 내려오는 전설을 믿었습니다.
그 전설 속에는 메시야가 오시면 모세의 만나를 내리실 것이라고 믿었고,
또 전혀 모르는 곳에서 갑자기 등장하리라고 믿어왔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만나도 내리시지 않았고,
갈릴리 나사렛의 목수 요셉의 아들이라는 것도 그들이 알고 있으니
예수님은 메시야 일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의 이런 교회 전통의 전설들은 성경에 근거한 것이 아닙니다.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 내려오는 풍문에 불과합니다.
유대인들은 아직도
그들 생각에 맞는 메시야가 오실 것을 기대하고 기다리고 있다고 합니다.
3) 권력에 욕심이 사로잡힌 자들(7:32)
32. 예수께 대하여 무리의 수군거리는 것이 바리새인들에게 들린지라.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이 그를 잡으려고 하속들을 보내니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은
무리들 중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 점차 많아지고 있다는 소리를 듣게 되자
예수님을 잡기 위해 하속(성전 경비병)들을 풀었습니다.
그들 생각 속에는 오직 예루살렘 성전을 통한 막대한 이익에 대한 것뿐입니다.
그들의 이익에 방해가 된다고 생각하면 누구든 처리해야 할 대상일 뿐입니다.
➠ 잘못된 믿음, 잘못된 판단, 잘못된 권력의 속성에 사로잡히지 않게 하십시오.
이런 것들이 내 안에 자리를 잡고 있으면
진리의 말씀이 바르게 선포되어도 거부하게 됩니다.
그러면 자칫 내가 하나님과 적이 되어 싸우는 자가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행하려는 소원을 갖고 있는 자들은
주께서 인도하시는 참 진리의 길을 발견하게 하시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을 행하려는 간절한 열망을 잃지 않게 하십시오.
● 묵상 :
이들처럼 일단 잘못된 믿음에 사로잡히면 바른 믿음을 갖기가 대단히 힘들어집니다.
요즘 잘못된 믿음을 전파하는 사이비 집단들이 교회 안팎에 많이 있습니다.
우리는 주께서 주시는 진리의 말씀에 서 있는 바른 믿음의 사람들이 되어야 합니다.
2. 신앙의 이름으로 저질러지는 악행들
요한복음 8장은 이런 잘못된 믿음을 가진 자들이 어떻게 치명적인 멸망을 선택하는지,
또 그 멸망의 자리에서 구원받는 자는 누구인지를 증거합니다.
먼저 멸망을 선택한 자들의 말씀부터 보겠습니다.
예수께서 감람산에 가셨다가 이튿날 아침에 다시 성전에서 가르치시자
많은 사람이 예수께 나아왔습니다.
그때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함정에 빠뜨리기 위해
현장에서 간음하다 잡힌 여인을 잡아 와서는 모세의 율법에는 이 여인을 돌로 치라 했는데
어찌했으면 좋을지 예수님의 의견을 물었습니다.
그들이 이렇게 말한 것은 예수님을 고발할 구실을 찾기 위해서였습니다.
1) 여인을 덫으로 사용하는 서기관과 바리새인들(8:2~3)
2. 아침에 다시 성전으로 들어오시니 백성이 다 나아오는지라.
앉으사 저희를 가르치시더니
3.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간음 중에 잡힌 여자를 끌고 와서 가운데 세우고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은 오로지 예수님을 함정에 빠뜨리기 위해
밤새 이 여인을 지켜보았다가 현장을 급습하여 여자만 데리고
이른 아침에 예수님을 찾아왔습니다.
이들에게 이 여인의 가련함은 보이지 않습니다.
이들이 보기에는 그저 자기들의 목적을 이룰 물건에 지나지 않습니다.
더욱 심각한 것은 이들이 이런 행위를 하나님의 이름으로 행하고 있었다는 점입니다.
모세의 율법에는 남자가 유부녀나 약혼한 여자와 통간을 하면
둘 다 죽이라고 되어 있습니다(신명기 22:22~24).
그러므로 법의 수호가 목적이었다면 남자까지 붙잡아 와서 정식 재판을 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남자는 살려 두고 여자만 데리고 왔습니다.
그들은 법의 수호가 목적이 아니었습니다.
오직 그들이 미워하는 예수님을 처단할 구실을 만드는 것이 목적이었습니다.
그 목적을 이루기 위해 이 가련한 여인을 덫의 미끼로 이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2) 관음증과 정치적 욕망에 빠진 사회(8:3~5)
3.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간음 중에 잡힌 여자를 끌고 와서 가운데 세우고
4. 예수께 말하되 선생이여 이 여자가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잡혔나이다
5. 모세는 율법에 이러한 여자를 돌로 치라 명하였거니와
선생은 어떻게 말하겠나이까?
예수님을 고발할 조건을 찾던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이 여자를 미끼로 사용할 계획을 세웁니다.
이것은 평소에 이들이 이 여인의 습관을 알고 있었다는 것을 뜻합니다.
그들 말대로 율법을 지키는 것이 그렇게도 소중한 것이었다면
예수님과 상관없이 그 전에 이 일을 알았을 때 곧바로 이 일을 처리했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이 여인의 죄를 그대로 방관하다가
예수님을 고발할 조건으로 이용하기 위해 여인을 도구로 사용합니다.
이 일이 가장 극적으로 이루어지려면 이 여인의 음행하는 현장을 급습해야 합니다.
그러자면 이 여자 몰래 미행하였다가 음행하는 장면을 지켜보아야만 합니다.
율법을 가장 소중히 여긴다는 이 사람들이
여인의 음행의 장면을 실컷 감상하다가 한바탕 관음증의 욕망을 충족하고 난 후에
그 현장을 급습하여 이 여인을 붙잡아서
자기들의 정치적 욕망을 해소할 희생양으로 삼습니다.
여기에 인권도 자비심도 불쌍히 여기는 마음도 없습니다.
3) 신앙의 이름으로 저질러지는 악
가장 경악스러운 일은 이러한 비인간적인 죄가
하나님의 이름으로 저질러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이 가련한 여인을 예수께 붙잡아 와서는
자기들이 마치 모세의 율법을 수호하는 자들인 양 의기양양하게 와서 예수께
“당신은 이 일을 어떻게 판결하겠느냐?”고 으름장을 놓았습니다.
기독교는 아닙니다만, 요즈음 이슬람의 일부 과격단체가 사람을 무차별로 죽이고 있습니다.
그들이 그렇게 잔인하고 과격해질 수 있는 것은 자기들이 하는 일이
바로 신(神)이 하는 일이라고 믿고 있기 때문입니다.
과거 역사를 보면 기독교도 하나님의 이름을 잘못 사용하여 많은 죄를 범하였습니다.
● 묵상 : 관음증의 범죄에 빠지지 마십시오.
다른 사람의 부끄러운 사생활을 인터넷에 올려 공개적으로 망신을 당하게 하는 일 역시
본문의 사두개인과 바리새인들의 흉악한 범죄와 다를 바가 없습니다.
그렇게 실컷 관음증의 욕망을 채운 후에
인터넷의 누리꾼들에 의해 공개처형 당하게 하는 끔찍한 범죄에
그리스도인들은 절대로, 절대로 참여하지 마십시오.
이 일은 당신이 하는 모든 신앙생활을 무효로 만드는 무서운 죄입니다.
3. 여인을 고발하는 자들을 오히려 심판하시는 예수님
1)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8:6~9)
6. 저희가 이렇게 말함은 고소할 조건을 얻고자하여 예수를 시험함이러라.
예수께서 몸을 굽히사 손가락으로 땅에 쓰시니
7. 저희가 묻기를 마지 아니하는지라 이에 일어나 가라사대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하시고
8. 다시 몸을 굽히사 손가락으로 땅에 쓰시니
9. 저희가 이 말씀을 듣고 양심의 가책을 받아 어른으로 시작하여 젊은이까지
하나씩 하나씩 나가고 오직 예수와 그 가운데 섰는 여자만 남았더라.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현장에서 간음하던 여자를 붙잡아 와서 예수께 고발하자,
예수님은 몸을 굽혀서 땅에 무엇인가를 쓰셨습니다.
그들이 예수께 재촉하여 말하자 예수께서 몸을 일으켜 그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자
양심의 가책을 느낀 사람들이 어른으로부터 차례로 빠져나가서
그곳에는 예수님과 여자만 남았습니다.
2) 예수님은 이 여인을 고발하는 사두개인과 바리새인들을 심판하셨습니다.
여기에서 우리가 주목할 것은 예수께서 땅에 쓰신 내용입니다.
비록 일부 사본에만 기록된 말씀입니다만,
예수께서 땅에 쓰신 것은 이 여자를 고발한 자들의 죄의 목록이었습니다.
이 여자는 예수께로부터 마지막 심판대에서의 죄의 판결까지 모두 용서를 받았으나,
오히려 이 여자를 고발하러 왔던 자들의 죄는 전혀 용서받지 못했습니다.
마지막 심판대의 심판자이신 예수께서 그들 죄의 목록을 기록하고 계신 것입니다.
● 묵상 : 권세의 힘으로 연약한 자를 괴롭게 하지 마십시오.
이렇게 하나님의 이름을 자기 욕망을 이루는 수단으로 사용해서는 안 됩니다.
권세의 힘으로 연약하고 가련한 자들을 더욱 힘들고 어렵게 하는 자들은
자신보다 더 큰 권세를 가지신 이가 있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그 권세로 이들처럼 연약한 자를 괴롭게 하면
더 큰 권세를 가지신 주께서 더 무서운 심판을 하신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이것은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 것으로,
우상숭배만큼이나 무서운 죄라는 것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제 2 부 : 나를 믿는 자는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
이 부분은 오늘 말씀의 핵심입니다.
‘나를 믿는 자는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
이 말씀은 마음의 갈증과 번민에 사로잡혀 타락했던 두 여인이
어떻게 새로운 삶을 살게 되었는지를 증거합니다.
그 배에서, 그들의 몸 안에서 생수의 강(생명과 구원과 기쁨과 행복의 모든 것)이 흘러나리라는 것입니다.
1.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는 예수님
1) 주님의 보호 아래 있는 여인(8:6~9)
(성경구절 위에)
예수께서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하고 말씀하시자
양심의 가책을 느낀 자들이 어른으로부터 하나씩 모두 나갔습니다.
저 승냥이 같은 흉악한 자들에게 붙잡힌 이 여인은
꼼짝없이 돌로 맞아 죽을 운명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여인이 주님의 보호 아래 들어왔습니다.
그들 모두 당장이라도 이 여자를 죽일 듯한 기세로 왔으나
모두 이 여자의 머리털 하나 상하게 하지 못하고 돌아갔습니다.
주께서 그의 보호 아래 있는 자를 이렇게 돌보십니다.
누구든 그의 은혜 가운데 있으면 주님의 보호하심을 받습니다.
누구든 주님의 허락 없이 그를 상하게 할 수 없습니다.
2) 여인의 죄를 용서하시는 예수님(8:10~11)
10. 예수께서 일어나사 여자 외에 아무도 없는 것을 보시고 이르시되
“여자여 너를 고소하던 그들이 어디 있느냐 너를 정죄한 자가 없느냐?”
11. 대답하되 “주여 없나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 하시니라.
사실 간음하다 현장에서 잡혀 와서
금방이라도 죽을 운명에 있는 사람들은 바로 우리들입니다.
이 여인은 허물과 죄로 지옥의 판결을 피할 수 없는 가련한 이 세상 사람들을 상징합니다.
우리들의 처지가 바로 돌로 맞아 죽을 운명 앞에 두려워 떨고 있는 이 여인과 같습니다.
예수님이 아니시라면 우리는 모두 영원히 저주받을 운명에 처한 사람들입니다.
이 여인을 용서하신 것처럼 우리를 용서하시기 위해 주께서 이 땅에 오셨습니다.
주께서 우리의 죄를 대신 짊어지시고 십자가에 달리셨기에
이 여인처럼 죄를 용서받고 구원받는 자들이 되었습니다.
3)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8:11)
(성경구절 위에)
예수님은 그 여인을 용서하시면서 가서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께서 하신 이 말씀은 물론 이 여자가 지금 저지른 음행의 죄를
다시는 반복하여 저지르지 말라는 말씀도 포함되어 있습니다만,
그보다 훨씬 더 넓은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바리새인들처럼 단순히 음행의 죄를 저지르지 않는다고 해도
주님을 믿지 않으면 멸망을 받는 자이기는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을 떠난 삶 자체가 바로 죄입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은 앞으로는 하나님을 떠난 삶을 살지 말라고 명하시는 것입니다.
이제 죄를 모두 용서받았으니
앞으로는 주님의 은혜 속에서 살아가라고 명하시는 것입니다.
● 묵상 :
우리도 이 여인처럼 한 편으로는 죄를 용서받고,
또 한 편으로는 우리의 심령에 하나님의 거룩한 것을 채우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주께 기도함으로 우리의 영을 씻고 말씀을 묵상함으로 하나님의 거룩한 것을 채웁니다.
이 일을 날마다 반복하여 행하십시오.
2. 나를 믿는 자는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7:37~38)
37. 명절 끝날 곧 큰 날에 예수께서 서서 외쳐 가라사대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38.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 하시니
예수님은 무리들을 향하여 “목마른 자는 내게로 와서 마시라”하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은 위에서 설명한 바와 같은 초막절의 물 긷는 의식을 두고 하신 말씀입니다.
이제 더 이상 초막절에 실로암 연못에서 물 긷는 일을 하지 말고,
예수님 앞으로 오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영혼의 모든 갈급함을 채워주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1) 목마른 자는 예수께로 나오십시오.
그러므로 목마른 자는 예수께로 오라고 말씀하십니다.
수가성 우물가의 그 사마리아 여인처럼 갈등과 방황과 허무와 절망과 답답함 속에서
고통을 겪고 있는 자들은 주께로 나오십시오.
그러면 주께서 그에게 임하셔서
그의 심령 속에서부터 하나님 나라의 생명수가 강처럼 흘러나게 하십니다.
그때그때의 미봉책이 아니라 근본적인 치유를 하시는 것입니다.
2) 생수의 강이 흘러나게 하실 분은 오직 예수님뿐입니다.
생수의 강이 흘러나게 하기 위해 필요한 조건은 오직 하나뿐입니다.
우리의 주님이신 예수님께로 와서 마시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마신다는 것은 예수님을 받아들이고, 영접하고, 모시는 것을 말합니다.
예수님과 직접 관계를 맺으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주님과 우리 사이에 생명줄이 연결되어
성령의 위로와 평강이 우리 안에 채워지게 됩니다.
3. 오직 예수님만이 참 생명의 빛이십니다.
1) 오직 예수님만이 참 빛이십니다.
➀ 나는 세상의 빛이니(8:12)
12. 예수께서 또 일러 가라사대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두움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잘 받아들이지 못하는 이유는
다른 길은 없고 오직 예수님만이 이 세상의 유일한 참 빛이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만일 두 가지 이상의 신을 함께 섬기도록 허용하셨다면
주님을 믿는 사람들이 그토록 핍박을 많이 받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오직 예수님만이 참 빛이고, 다른 빛은 없다고 말씀하시니
주님을 믿는 자들이 세상 사람들에게
자기만 아는 독선적인 고집쟁이로 여김 받아 공격을 당하는 것입니다.
➁ 혼합주의를 허용하지 않으신 하나님
이 세상 사람들이 예수님의 사람이 되느냐 마느냐의 갈림길이 여기에 있습니다.
예수님은 다른 신도 섬기고 예수님도 섬기는
혼합주의의 신앙을 허용하시지 않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순간 그동안 믿고 섬겼던 일체의 다른 신들을 다 내려놓아야 합니다.
제사를 지내는 것이나, 사주 관상과 같은 점치는 행위들,
고사를 지내는 일 등 일체의 우상숭배를 중단해야 합니다.
➂ 그러므로 주님을 믿기로 작정했다면
주님을 믿기로 작정하셨다면
이 일로 인하여 괴로움을 당한다고 하더라도 오직 주님만을 섬겨야만 합니다.
핍박이 두려워 주님도 섬기고 다른 신도 섬기면
혼합주의가 되어 그 믿음 자체가 무효가 됩니다.
오직 주님만을 섬기는 일로 어려움을 당한다면
주를 위해 핍박을 받는 것이니 기뻐하고 즐거워하십시오.
장차 주께서 주실 상이 큽니다.
2) 오직 예수님만이 생명의 빛이십니다.
➀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히브리서 9:27)
27.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사람이 죽으면 육체는 이 땅에 남아 썩어 없어지지만
그 사람의 본질, 그 사람의 실체는 여전히 죽지 않고 그대로 남아서
주님 앞에 나아가 심판을 받아 멸망을 받든지 영생의 나라로 들어가든지 하게 됩니다.
➁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요한복음 5:24)
그때 주님 앞에서 심판을 받을 때에는
이 지구에서 육신으로 살고 있는 지금 우리의 몸 안에
영의 생명이 있는지의 여부에 따라 심판을 받게 됩니다.
이 세상에서 육신으로 살아갈 때 주님 안에서 살아간 자는 영의 생명이 있고,
주님 밖에서 자기 생각대로 살아간 자는 영의 생명이 없습니다.
영의 생명은 주께서 주시는 또 하나의 생명입니다.
우리가 보고 느끼는 이 육신 이외에 주님의 나라에서 영생을 누리게 하는
거듭난 생명, 새로운 피조물로 표현되는 새로운 생명이
예수님을 믿는 자들에게 생겨납니다.
➂ 주께서 새롭게 주신 거듭난 영의 생명이 이어지게 하십시오.
이 새로운 영의 생명은 생명의 근원이신 예수님과 동행하며,
예수님의 은혜 속에서 살아갈 때 계속 유지되고 이어집니다.
그러다 육신의 생명이 다하여 죽어서 주님 앞에 가면
그 영의 생명이 있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않고
그대로 영생의 나라에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는 생명의 빛이십니다.
● 묵상 :
사람이나 짐승이나 식물이나 그 어떤 생명체도 빛이 있어야 그 생명을 이어가는 것처럼
영의 생명을 가진 주님의 백성들 역시 예수님의 은혜 속에 있어야
그 생명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바쁘다는 핑계로 주님을 멀리하지 마십시오.
그것은 마치 밥을 먹지 않거나 햇빛을 전혀 보지 않고도
살아갈 수 있다고 장담하는 것만큼이나 어리석은 일입니다.
제 3 부 : 전혀 다른 두 세계, 나는 어디에 속해 있나
1. 죄 가운데서 죽는 사람들
1) 죄 가운데서 죽는다는 것은(8:21)
21. 다시 이르시되 “내가 가리니 너희가 나를 찾다가 너희 죄 가운데서 죽겠고
나의 가는 곳에는 너희가 오지 못하리라.”
죄로 번역된 ‘하마르티아’는 다음 두 가지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① 과녁을 잘 못 맞혔다.
죄의 첫 번째 의미는 전혀 엉뚱한 것을 찾고 있다는 뜻입니다.
생명을 주시는 하나님을 찾지 않고,
생명을 줄 힘도 능력도 없는 것만 찾고 있는 것이 바로 죄입니다.
② 하나님과 분리되었다.
하나님을 찾지 않고 세상만 찾고 있으니 그와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져 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져 있는 상태가 바로 죄입니다.
그러므로 죄 가운데에서 죽는다는 것은
하나님과 관계가 끊어진 상태에서, 영의 생명이 없이
육신의 생명만 있는 상태에서 죽는다는 말입니다.
2) 전혀 다른 것만 찾다가 죽는 인생의 비참한 결말
이렇게 죄 가운에서 죽는다는 것은 생명을 주시는 예수님은 찾지 않고,
생명을 줄 힘도 능력도 없는 다른 것만 찾기만 하는 것을 뜻합니다.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는 분도 예수님이고,
우리의 죄를 용서해주시는 분도 예수님이십니다.
그런데 이 세상 것만 찾느라 예수님을 섬기지 못한 자들은
주께서 주시는 영원한 생명도 받지 못했고, 그 죄도 용서받지 못했습니다.
이런 자는 그가 이 세상을 살다가 지은 죄를 그대로 가지고 죽었으므로
심판을 받고 멸망에 이르게 됩니다.
3) 그들은 주께서 가시는 곳에 갈 수 없습니다(8:21)
(성경구절 위에)
죄 가운데서 죽는 사람들은 주께서 가시는 곳에 갈 수 없습니다.
주께서 가시는 곳, 하나님께서 계신 그 영생의 나라에 갈 수 없다는 말은
영원한 멸망의 자리로 들어간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들은 둘째 사망(요한계시록 20:14), 곧 영원한 불 못에 던져지게 됩니다.
그러므로 죄 가운데서 죽는다는 것은 인간이 듣는 말 중 가장 무서운 말입니다.
2. 전혀 다른 두 세계
1) 나는 위에서 났으며, 나는 이 세상에 속하지 아니하였느니라(8:23)
23.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는 아래서 났고 나는 위에서 났으며
너희는 이 세상에 속하였고 나는 이 세상에 속하지 아니하였느니라.
예수님은 이 세상에 있으나 이 세상에 속하지 않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을 믿는 그리스도인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세상에서 육신을 입고 살고 있지만,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영원한 생명을 이미 소유한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렇게 주님의 백성으로 사는 자들은
육신의 생명이 끝날 때 주님과 더불어 영원한 주님의 나라에 들어가게 됩니다.
2) 너희는 아래에서 났고, 너희는 이 세상에 속하였고(8:23)
(성경구절 위에)
그러나 주님을 믿지 않고 자기 생각대로 살아가는 자들은 이 땅에 속한 자들입니다.
그들에게는 영의 생명이 없고 육신의 생명만 있을 뿐입니다.
그렇게 땅에 속한 자로 살아가는 자들은 그가 지은 죄를 전혀 용서받지 못했으니
죄 가운데서 살다가 죄 가운데서 죽는 자가 됩니다.
● 묵상 : 그러므로 날마다 죄를 씻어 영을 정결하게 하는 자가 되십시오.
그러므로 날마다 주님의 피로 죄를 씻고,
깨끗해진 마음에 하나님의 거룩한 말씀을 채우는 일을 계속 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주님과 동행하는 삶입니다.
이런 삶을 사는 자는 주님과 생명줄이 연결되어 있으므로
이 땅에서부터 하늘에 속한 자로 살아갑니다.
그러다 죽으면 죄 가운데서 죽는 것이 아니라
생명 가운데서 죽어서 영원한 나라로 들어가게 됩니다.
이런 은혜의 삶을 살아가는 자가 되십시오.
결 론 : 하나님의 뜻을 선택하는 자가 되기 위하여
➠ 바리새인들을 전혀 설득하려 하지 않으시는 예수님
1) 예수님의 말씀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8:22, 27)
22. 유대인들이 가로되
“저가 나의 가는 곳에는 너희가 오지 못하리라 하니 저가 자결하려는가?”
27. 저희는 아버지를 가리켜 말씀하신 줄을 깨닫지 못하더라.
사두개인과 바리새인들은 계속해서
예수님이 하나님께로부터 온 메시야(그리스도)라는 것을 증거할 만한 표적을 원합니다.
많은 기적을 보았으나 아직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신지 확신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께서 “내가 가는 곳에는 너희가 오지 못하리라”하고 말씀하실 때에도 “
자결하려는가?”하고 말하는 것이 고작입니다.
자기들의 경험 한도 내에서만 판단하려니
이 지구는 물론 저 우주의 모든 별들까지 모두 창조하신 주님의 놀라운 세계를
이해할 수 없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2) 그들을 전혀 설득하려 하지 않으시는 예수님
그래서 그들은 계속해서 예수님을 향하여 “너는 누구냐”라고 묻기도 하고,
“네 아버지는 누구냐”하고 묻기도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에게 친절한 말씀을 하시지 않습니다.
그저 자신을 믿어야만 구원을 받는다는 말씀을 하실 뿐입니다.
예수님이 “내가 가는 곳에 너희가 오지 못하리라”하고 말씀하실 때에도
그들은 “자결하려는가?”하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때에도 “그것이 아니라 내가 하나님 보좌 우편으로
다시 올라가는 것을 가리켜 하는 말이라”하고 친절하게 말씀하지 않으시고
마치 선문답처럼 자신이 해야 할 말만 하십니다.
➠ 하지만 수가성 우물가의 사마리아 여인에게는
그 여인의 말에 일일이 대답하시며 친절하게 응하셨습니다.
현장에서 간음하다 잡힌 여인에게는 ‘구나이’라는 극존칭을 쓰시며
아주 존귀하게 대하셨습니다.
비록 죄를 범하였지만 예수께 간절한 마음으로 대하는 자들에게는
예수님은 속이라도 빼주실 것 같은 심정으로 따뜻하고 친절하게 대하셨습니다.
3) 그들에게 말씀을 깨닫고자 하는 간절함이 없었으므로
예수께서 그들에게 전혀 친절하게 대하시지 않은 것은
그들의 마음속에 예수님을 향한 간절함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사두개인이나 바리새인같이 자기들의 고집을 꺾지 않고,
“어디 나를 한번 설득해봐라”하는 식으로 오만하게 대하는 자들에게는
그 어떤 설득도 하지 않고 그저 복음의 말씀을 선포하기만 하십니다.
● 묵상 : 그러므로 간절함으로 주를 찾으십시오.
그러므로 말씀을 듣거나 읽을 때에는
그 말씀에 담긴 하나님의 뜻을 깨달으려는 간절함으로 듣고 읽어야 합니다.
바리새인 같은 오만함으로 말씀을 대하지 마십시오.
그렇게 하면 죽을 때까지 말씀을 깨닫지 못하게 됩니다.
주님
잘못된 믿음에 사로잡히지 않게 하옵소서.
주님의 말씀을 왜곡하는 거짓된 집단으로부터
우리를 보호하여 주옵소서.
참 진리의 말씀을 분별할 수 있는
지혜와 분별력을 주옵소서.
먼저 영적인 감각이 살아나게 하셔서
내 영의 목마름과 갈급함을 느끼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