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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 설교문

하나님의 인자와 엄위(3월 6일; 롬 10:1~11:24)

작성자송호영|작성시간22.03.07|조회수109 목록 댓글 0

설교제목 : 하나님의 인자와 엄위(우리도 잘라질 수 있습니다.

설교본문 : 로마서 10:1~11:24

설 교 자 : 송호영 목사

설 교 일 : 2022년 3월 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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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론 :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로마서 1:17)

 

    로마서 9장까지 바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라는 말이 무슨 말인지를 증거하였습니다.

    거듭남이 무엇인지,

    주께서 주신 새로운 생명으로 산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지를 설명했습니다.

 

    그리고 성령께서 우리에게 오셔서 우리를 도우셔서

    우리가 연약함에도 그 모든 일이 이루어질 수 있게 되었다고 증거했습니다.

 

    그런데 현실을 보면 그렇지 않습니다

    주께서 우리의 죄를 용서해주시기 위해 십자가에 달리셨고,

    우리의 믿음을 돕기 위해 성령까지 보내셨음에도

    우리의 현실을 보면 바른 믿음 가진 자를 찾기가 참으로 어렵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바울은 그 이유를 유대인을 통해 증거합니다.

 

    유대인은 구약 시대에는 이 땅에서 유일한 하나님의 백성이었습니다.

    구약 시대에 그들은 하나님의 모든 복과 은총을 홀로 받으며 누렸습니다.

 

    그런데 어찌하여 지금은 하나님의 백성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사람이 되었을까?

    바울은 유대인의 실패를 통해

    바른 믿음 갖기 힘든 이유를 증거하고,

    우리도 같은 실수를 범할 수 있음을 증거합니다.

 

 

1 : 유대인의 실패, 지금도 기다리시는 하나님

 

1. 유대인의 치명적인 실수 : 경험이 아니라 말씀에 의지한 신앙이어야 합니다.

 

1) 유대인의 실패의 원인(10:1~3)

 

            1. 형제들아 내 마음에 원하는 바와 하나님께 구하는 바는 이스라엘을 위함이니

               곧 저희로 구원을 얻게 함이라

            2. 내가 증거하노니 저희가 하나님께 열심이 있으나 지식을 좇은 것이 아니라

            3.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를 복종치 아니하였느니라

 

    바울은 이런 아픔이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에게서 반복되지 않게 되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다시 한번 유대인의 실패의 원인을 제시합니다.

 

    유대인들이 실패한 것은 결코 그들이 게을렀기 때문이 아닙니다.

    유대인들이 하나님을 향하여 열심이 있었다는 것은 하나님도 알고 바울도 압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지식(하나님의 구원의 말씀)을 따른 열심이 아니라

    자기들의 경험과 유대인의 전통에 따른 열심이었습니다.

 

    말씀에는 모든 의는 하나님께로부터 얻는 것이라 했는데,

    그들은 자기들의 행위로 의를 얻게 될 줄로 알고 무조건 열심히 하려고만 했던 것입니다.

    이런 맹목적인 열심이 그들을 실패한 자가 되게 했습니다.

 

 2)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를 둔 믿음을 가지십시오.

 

    이런 잘못은 요즈음에도 쉽게 발견됩니다.

 

    많은 사람이 자기가 은혜를 받은 경험을 강조합니다.

    사람의 성격에 따라 어떤 이들은 찬송을 부르며 은혜를 경험하고,

    어떤 이들은 산에서 부르짖어 기도할 때,

    어떤 이들은 조용히 침묵하며 기도할 때 은혜를 경험합니다.

 

    그러나 그들이 경험한 은혜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의 지극히 일부분일 뿐입니다.

    그 작은 하나를 경험하고는

    마치 자신이 경험한 것이 하나님의 은혜의 모든 것인 양 강조하며

    다른 것은 거부하는 것을 대단히 잘못된 것입니다.

    이런 자들은 자칫 유대인의 실패를 반복할 수 있습니다.

 

 

2. 말씀을 믿고 주의 이름을 부르기까지의 과정(10:14~15)

 

           14. 그런즉 저희가 믿지 아니하는 이를 어찌 부르리요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

           15.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으면 어찌 전파하리요

                기록된바 아름답도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들의 발이여 함과 같으니라.

 

    바울은 사람들이 말씀을 믿고 주의 이름을 부르기까지를

    다음 네 과정으로 요약합니다.

 

    이 과정을 살펴보면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들이 얼마나 엄청난 특혜를 받아왔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1) 하나님께서 전파자를 보내심

 

    사람을 구원하는 일은 모두 하나님께로부터 비롯됩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구원하시기로 정하시지 않으면

    우리가 아무리 열심히 말씀을 지켜도 소용이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사람이 지은 죄를 그의 독생자이신 예수님에게 지우시고,

    누구든지 그를 믿는 자는 구원을 베풀어 주시기로 작정하셨습니다.

    그리고 이 복음의 말씀을 전하도록 일꾼을 세우셨습니다.

 

 2) 전파자가 복음의 말씀을 전파함

 

    그러므로 우리가 전하는 말씀에는 하나님의 권위와 능력이 담겨 있습니다.

    이 말씀이 전파되는 곳에 사람을 구원하는 하나님의 능력이 발휘됩니다.

    누구든지 주의 복음을 들고 세상에 전하는 자는

    그 말씀을 주신 하나님의 권위를 가지고 전하는 것입니다.

 

    복음의 말씀을 전하는 이는

    세상을 구하시려는 하나님의 역사하심의 한 과정에 참여하는 것이므로

    사람이 할 수 있는 일 중에 가장 아름다운 일이 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우리를 복음의 전달자로 세우셨습니다.

    이 얼마나 영광스러운 일입니까?

    우리는 복음을 전함으로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일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3) 전파한 것을 듣고 믿음

 

    우리가 전파한 복음의 말씀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그 말씀 자체에 능력과 권세가 있습니다.

 

    그래서 그 말씀을 듣는 자들에게 능력을 나타냅니다.

    우리가 전하는 말씀을 듣고 믿으면

    그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가 듣는 자들에게서 동일하게 나타납니다.

 

 4) 믿는 자가 주의 이름을 부름

 

    말씀이 듣는 자들에게 능력을 나타내면,

    듣는 자의 심령 속에 주님을 믿는 믿음이 생깁니다.

    그들이 마음으로 주님을 믿고 입으로
    그 고백하면 주님의 성령이 그 안에 들어가셔서 그의 믿음을 도우십니다.

    그 사람도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것입니다.

 

묵상 :

 

    말씀을 전하고 가르치는 일은 하나님의 구원 사역에 참여하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전도하는 일이나 말씀을 가르치는 사역에 참여하십시오.

    어린이 교회학교나 구역에서 말씀을 전하는 것도 말씀 사역에 참여하는 일입니다.

    이 일을 하나님께서 매우 아름답게 여기십니다. 이 아름다운 일에 참여하십시오.

 

 

3. 핑계할 수 없는 이스라엘

 

 1) 예수께로부터 직접 들은 이스라엘(10:18)

 

           18. 그러나 내가 말하노니 저희가 듣지 아니하였느뇨? 그렇지 아니하다.

                그 소리가 온 땅에 퍼졌고 그 말씀이 땅끝까지 이르렀도다 하였느니라.

 

    그런데 이스라엘의 경우에는 놀랍게도 위의 네 단계 중에

    처음 두 단계를 주께서 직접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이스라엘에 보내셨습니다.

    예수님이 복음의 말씀을 그들에게 직접 전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전하는 복음의 말씀이 참된 것임을 증명하기 위해

    그들 앞에서 날마다 기적을 행하셨고,

    그 기적을 보고 모인 자들에게 복음을 증거하셨습니다.

    이 일을 예수님이 3년 동안이나 날마다 계속 하셨습니다.

 

 2) 그러나 그 말씀을 거부한 이스라엘

 

    예수께서 행하신 기적의 일들과 함께

    복음의 말씀이 이스라엘 땅 구석구석에 모두 전해졌습니다.

 

    이스라엘 백성 중에서 복음의 말씀을 듣지 못한 자가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그들은 날마다 기적의 능력도 보았고 예수께로부터 직접 복음의 말씀도 들었으나,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기를 거부하고 자기들의 생각을 고집했습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백성들의 경우 말씀을 몰랐기 때문이 아니라,

    말씀을 들었음에도 그 말씀을 거부했기에 하나님의 저주받은 백성들이 된 것입니다.

 

 

4. 지금도 기다리시는 하나님(10:21)

 

           21. 이스라엘을 대하여 가라사대 순종치 아니하고

                거스려 말하는 백성에게 내가 종일 내 손을 벌렸노라 하셨느니라.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복음의 말씀을 예수께로부터 직접 듣고도

    그 말씀에 순종하지 않고 오히려 거슬러 말하고,

    심지어 예수님을 십자가에 죽게까지 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회개하고 돌아오기를

    지금도 종일토록 두 손을 벌리고 기다리고 계십니다.

 

    이스라엘이 돌아오도록 하는 한 방법으로 이방인들에게 하나님께서 임하셔서

    그 이방인들에게 하나님의 백성 된 영광이 나타나게 하리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이 이방인들에게서 나타나는 이런 일들을 보고

    한편으로는 시기심을 갖고, 또 한편으로는 분노와 부끄러움을 갖다가

    결국에는 다시 돌아오게 되리라는 것입니다.

 

묵상 :

 

    바울은 이런 일이 마지막 종말의 때에 일어나리라고 예언한 바 있습니다.

    최근 어느 보고에 의하면 정통파 유대인 중에

    예수를 믿는 자들이 수만 명이 된다고 합니다.

    조만간 주께서 이 땅에 오실 때에 본래 하나님의 백성이었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서

    큰 회개의 운동이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그날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그날을 긴장된 마음으로 준비하며 기다리십시오.

 

 

5. 마지막 때에 이스라엘이 다시 회복되리라(11:25~27)

 

           25. 형제들아 너희가 스스로 지혜 있다 함을 면키 위하여 이 비밀을 너희가

                모르기를 내가 원치 아니하노니 이 비밀은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들어오기까지 이스라엘의 더러는 완악하게 된 것이라

           26. 그리하여 온 이스라엘이 구원을 얻으리라

                기록된바 구원자가 시온에서 오사 야곱에게서 경건치 않은 것을 돌이키시겠고

           27. 내가 저희 죄를 없이 할 때에

                저희에게 이루어질 내 언약이 이것이라 함과 같으니라.

 

 

 1) 마지막 때에 이스라엘이 다시 주께로 돌아올 것입니다.

 

    바울은 이스라엘이 지금은 하나님의 백성의 대열에서 잘려있다는 말을 할 때마다

    그들이 조만간 주께로 돌아와

    그 영광의 모습을 다시 회복하리라는 것을 반복해서 말합니다.

 

    이것은 그의 동족 이스라엘에 대한 바울의 안타까운 마음이 표현된 것이기도 하지만,

    주께서 말씀하신 마지막 때의 징조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2) 이스라엘이 다시 돌아오는 것은 주의 재림의 징조 중 하나입니다.

 

    마지막 때, 주께서 오시기 전에 이스라엘이 다시 회복되는 때가 이를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한편으로는 이스라엘의 회복을 위해 기도하고,

    또 한편으로 그들의 영적인 상태가 어떤지를 잘 살펴야 합니다.

    그들의 변화가 예수께서 오시는 날이 가까이 왔다는 신호탄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묵상 :

 

    주께서 말씀하신 마지막 때의 징조들을 긴장된 마음으로 살피면서 생활하십시오.

    세상일에 지나치게 마음을 빼앗겨서

    우리 마음이 단단한 돌처럼 되는 것도 잊어버리는 자들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2 : 거짓 안전, 위장된 평화에 조심하십시오.

 

    문제는 유대인이 이렇게 하나님께로부터 잘려나간 이방인이 되었는데도

    그들은 아직도 자기들이 하나님의 백성인 줄 알고 있다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신앙생활에서 가장 치명적인 문제인

    거짓 안전, 위장된 평화의 이야기를 살펴보겠습니다.

 

    속으로는 암이 온몸에 퍼져서 곧 죽을 상태인데

    자신은 병이 다 나은 줄 아는 것과 같은 위험한 상황입니다.

 

 

1. 심령이 돌같이 굳어진 사람들

 

 1) 이 땅에서 이미 심판을 받은 사람들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고 자기 고집대로 살아간다고 하더라도

    하나님께서 그 즉시 그들을 심판하시지는 않습니다.

    로마서 10:21에서 말씀한 바와 같이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다시 돌아오기를 종일토록 두 손을 벌리고 기다리고 또 기다리십니다.

 

    그러나 어느 한계점이 지나서 그들이 마음이 돌같이 굳어지게 되면

    그들은 아무리 무서운 심판의 말씀을 들어도 두려워할 줄 모르는 자들이 됩니다.

    그러면 육신은 아직 살아있지만

    사실상 이미 심판을 받은 자와 다름없는 버림받은 자가 되고 맙니다.

 

 2) 말씀을 들어도 깨닫지 못한 유대인들(11:7~9)

 

            7. 그런즉 어떠하뇨 이스라엘이 구하는 그것을 얻지 못하고

               오직 택하심을 입은 자가 얻었고 그 남은 자들은 완악하여졌느니라.

            8. 기록된바 하나님이 오늘날까지 저희에게 혼미한 심령과 보지 못할 눈과

               듣지 못할 귀를 주셨다 함과 같으니라

            9. 또 다윗이 가로되 저희 밥상이 올무와 덫과 거치는 것과 보응이 되게 하옵시고

 

    마음이 돌같이 굳어지면 그 심령이 혼미해져서

    말씀의 바른 뜻을 이해하지 못하는 자가 되고 맙니다.

    말씀을 들려주어도 깨닫지 못하고,

    하나님 능력의 역사를 보아도 알지 못하는 자가 되고 맙니다.

 

    바로 이런 이유로 예수께서 3년의 공생애의 활동을 하실 때에

    날마다 기적을 행하시며 하나님 나라의 말씀을 전하셨음에도

    유대인들은 깨닫지 못한 것입니다.

 

 3) 이미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넌 자들

 

    말씀을 깨달아도 그 말씀대로 순종하기가 어려운데,

    마음이 돌같이 되어 아무리 말씀을 들려주어도 깨닫지 못하는 자가 되면

    얼마나 더 말씀에 순종하기가 어렵겠습니까?

 

    성경은 이런 자를 가리켜 ‘화인 받은 양심’(딤전 4:2)이라고 말합니다.

    이쯤 되면 살아 있으나 사실상 심판을 받은 자와 다름없는 자가 되고 마는 것입니다.

 

묵상 : 영적 긴장감을 풀지 마십시오.

 

    그러므로 가장 치명적인 실수가 말씀을 가까이하지 않는 것입니다.

    조금 바쁘다는 이유로 말씀 묵상하는 일을 하루 이틀 미루는 동안에

    내 마음이 서서히 돌같이 굳어지고 있다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그 마음이 완전히 돌같이 굳어지기 전에 서둘러서 말씀을 가까이하는 자가 되십시오.

    영적인 긴장감을 풀지 마십시오.

    세상에 휩쓸려 살다가 나도 모르는 사이에 버림받는 자가 되고 맙니다.

 

 

2. 거짓된 안전, 위장된 평화 : 저희 밥상이 올무와 덫과 거치는 것이 되고(11:9)

 

            9. 또 다윗이 가로되 저희 밥상이 올무와 덫과 거치는 것과 보응이 되게 하옵시고

 

 1) 거룩한 공회 : 주와 함께하는 생명의 교제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과…’사도신경에도 나와 있듯

    성도의 교제는 교회가 해야 할 일들 중에 중요한 부분에 속합니다.

 

    그러나 성도의 교제는 주님의 은혜 안에서 이루어져야만 합니다.

    주님과 함께 할 때 교회는 거룩한 공회가 되고,

    그 교제는 생명의 교제(생명의 밥상)이 됩니다.

 

 2) 잘못된 성도의 교제의 위험

 

    그러나 만일 성도의 교제가 주님 없이 단지 성도들 끼리 만의 교제가 된다면,

    마치 배드민턴이나 등산의 동호회와 같은 사람들끼리의 모임에 불과하게 됩니다.

 

    그러면 오히려 그 성도의 교제가 주님과 교제하는 데 도움을 주지 못하고,

    도리어 그 잘못된 성도의 교제로 말미암아

    하나님과의 교제가 끊어지는 불상사가 일어나게 됩니다.

 

 3) 올무와 덫이 된 유대인의 잘못된 교제

 

    바울이 본문에서 경고하는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저희의 밥상’은 유대인들의 성도의 교제입니다.

    유대인들의 밥상, 즉 유대인들의 성도의 교제가

    올무와 덫과 거치는 것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의 교제가 율법주의 위에 세워진 교제였기 때문입니다.

    마치 오늘날 사람들이 자기들의 명품 가방과 옷을 자랑하듯,

    그들은 만날 때마다 자기들의 행위의 의를 자랑하였습니다.

 

    그들은 화려하게 차려진 연회석에서

    자기들의 행위의 의를 자랑하며 한껏 우아하고 세련된 웃음을 웃고 있었으나,

    그들은 이미 버림받고 저주받은 자들이 되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율법의 행위로는 더 이상 구원받지 못하게 되었다는 것을

    그들이 받아들이지 않았고 자기 생각을 고집했기 때문입니다.

 

 4) 종교적인 감정놀음에 빠지지 마십시오.

 

    오늘날 많은 교회가 오직 부흥하는 교회가 되기 위해

    여러 가지 다양한 성도의 교제를 기획하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 있는 각종 동호회들, 각종 취미활동 별로 조직된 모임들…,

    각 기관별로 진행되고 있는 다양한 프로그램들이 마치 백화점식으로 나열되어

    구미에 맞는 것을 골라 체험할 수 있게 하였습니다.

    이런 다양한 프로그램들로 인하여 신앙생활을 재미있고 신나게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신나고 재미있게 신앙생활을 하는 동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명령들, 사명들을 잃어버리게 될 수 있습니다.

    특히 이런 일들로 인하여 하나님과 우리와의 신실한 교제의 자리를 잃어버리게 된다면

    유대인이 저지른 치명적인 실수를 반복하는 것이 됩니다.

    이렇게 되면 겉만 그럴듯하게 보이는 종교적인 감정놀음에 빠질 수 있습니다.

 

묵상 :

 

    오늘 내가 즐기는 일들이 나를 파괴하는 것이 될 수 있습니다.

    내가 느끼는 안정감과 평안함이 주님의 은혜로 인한 것이 아니라면,

    그 안정감은 위장된 평화입니다.

    조만간 주께서 오시면 모든 것이 파괴되고 말 거짓된 안정감입니다.

    이런 종교적 감정놀음에 빠지지 않도록 주의하십시오.

 

 

3 :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1. 그 말씀이 이미 우리의 입과 마음에 있습니다(10:6~8)

 

            6.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는 이같이 말하되

               네 마음에 누가 하늘에 올라가겠느냐 하지 말라 하니

               올라가겠느냐 함은 그리스도를 모셔 내리려는 것이요

            7. 혹 누가 음부에 내려가겠느냐 하지 말라 하니

               내려가겠느냐 함은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모셔 올리려는 것이라

            8. 그러면 무엇을 말하느뇨 말씀이 네게 가까와 네 입에 있으며

               네 마음에 있다 하였으니 곧 우리가 전파하는 믿음의 말씀이라.

 

    바울은 신명기에 있는 말씀을 인용하며

    의를 얻기 위해 하늘로 올라갈 필요도 없고,

    땅 아래로 내려갈 필요도 없다고 증거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의를 받게 하는 길을 제시하는 복음의 말씀이

    이미 우리의 손에, 우리의 입과 마음에 있기 때문입니다.

 

    중세 시대에는 극히 일부의 사람들만이 말씀을 볼 수 있었지만

    지금 우리의 시대에는 누구나 말씀을 볼 수 있습니다.

    그 해설집들도 많고, 조금만 열심히 한다면 성경공부에 참여할 수도 있습니다.

    지금은 말씀이 없이 믿지 못했다는 핑계를 댈 수 없습니다.

 

묵상 :

 

    그러므로 무엇보다도 말씀을 배우기에 힘쓰십시오.

    말씀 안에 하나님이 누구신지, 하나님께서 주시는 의가 무엇인지,

    그 의를 가진 자와 가지지 못한 자의 결말이 어떠한지에 대한

    모든 것이 상세하게 담겨 있습니다.

 

 

2.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1) 마음으로 믿어 입으로 시인하면(10:9~10)

 

            9.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니

           10.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심을 마음으로 믿고,

    주님이 그리스도이심을 내 입술로 공개적으로 고백하면 구원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입으로 시인한다는 것은

    삶의 모든 국면에서 그리스도가 나의 주님이시라는 것을 나타내라는 것입니다.

    무엇을 결정할 때, 시간 사용에서, 사람과의 관계에서, 돈을 사용하는데,

    인생을 계획하고 설계할 때 주님이 그리스도이신 것을 시인하라는 것입니다.

 

 2)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10:13절)

 

           13.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바울은 이 말씀을 전하기 위해 지금까지 로마서의 긴 여정을 해 왔습니다.

 

    행위가 아니라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 것이고,

    믿음이란 예수님을 믿는 것을 말하는데,

    예수님을 마음으로 믿고 입으로 시인하고 공개적으로 사람들 앞에서

   “나는 예수님을 믿습니다”하고 고백할 때 그를 구원하시리라는 것입니다.

 

 3) 이 말씀에 대한 오해

 

    그런데 13절의 이 말씀이 오늘날 또 다른 면에서 너무나도 오해를 받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율법을 지키는 열심으로 구원을 얻으리라 생각하고 헛된 열심을 품었는데,

    오늘날에는 누구든지 입으로 예수님을 부르기만 하면 구원을 얻는다고 하니,

    그저 삶이야 어떻든 자기도 예수님을 입으로 부르고 있으니

    구원이 될 줄로 알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이 이 말을 할 때가 로마 치하였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때 성도들이 사람들 앞에서 예수님을 주(퀴리오스)라고 고백한다면

    그것은 곧 죽은 목숨이 되었습니다.

    주(퀴리오스)라는 말은 로마 황제에게만 사용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리스도인들이 그 용어를 황제에게 사용하기를 거부하고

    예수님께만 그 용어를 사용했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들이 황제를 모욕하는 죄,

    혹은 모반죄로 인정되어 끔찍한 형벌을 받았는데,

    이를 다 알면서도 사람들 앞에서 공개적으로

   “나는 예수님을 나의 주님으로 믿고 고백합니다”하고 말하라는 것입니다.

 

묵상 :

 

  ➀ 이것은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는데 내 생명을 걸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는데 생명까지 건다는 사람이

     예수님을 위해 시간 바치기를 아까워하고, 말씀 보기를 귀찮아하며,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사는 것을 싫어한다면

     그의 고백은 모두 거짓이 되고 맙니다.

 

     이런 자는 마음에는 다른 것을 담고 있으면서

     입으로만 예수님을 고백하는 사람들이므로

     이들의 고백은 받아들여지지 않는 것입니다.

 

  ➁ 예수님을 구주로 믿고 있다는 것을 행동으로 나타내 보이십시오.

 

     자신이 그리스도인이라고 스스로 믿고 있습니까?

     그렇다면 예수님을 부르는 데 나의 생명을 걸고 있다는 것을

     당신의 삶을 통해 보여드리십시오.

     주님을 위해 물질과 시간을 사용하는 것을 주저하지 마십시오.

     그리고 주님의 말씀을 무엇보다도 존귀히 여기십시오.

 

 

결 론 : 하나님의 인자와 엄위

 

➠ 우리도 잘라질 수 있습니다.

 

 1) 참 감람나무에서 잘려 나간 유대인들(11:17)

 

           17. 또한 가지 얼마가 꺾여졌는데 돌감람나무인 네가 그들 중에 접붙임이 되어

                참 감람나무 뿌리의 진액을 함께 받는 자 되었은즉

 

    예수님의 생각이 내 생각과 다른 점이 발견되면

    내 생각을 바꾸고 주님의 뜻을 따라야 한다는 것을

    처음 예수를 믿을 때부터 지금까지 들어왔습니다.

 

    그런데 신앙의 기초라 할 만한 이 일을 유대인들을 지키기를 거부했습니다.

    예수님의 생각과 그들의 생각이 다른 면이 발견되자

    자기들 뜻을 바꾸려 하지 않고 예수님을 거부한 것입니다.

 

    바울은 이러한 유대인의 태도를 가리켜

    ‘참 감람나무에서 잘려 나갔다’라고 표현했습니다.

    그들이 예수님을 거부한 것이 아니라 예수께로부터 잘려 나갔다는 것입니다.

 

    오직 예수님으로만 생명을 얻을 수 있는데

    그들이 예수님을 거부하여 생명을 잃어버렸으니,

    마치 가지가 뿌리에서 잘려 나간 것과 같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2) 유대인처럼 우리도 잘려 나갈 수 있습니다(11:17~21)

 

           17. 또한 가지 얼마가 꺾여졌는데 돌감람나무인 네가 그들 중에 접붙임이 되어

                참 감람나무 뿌리의 진액을 함께 받는 자 되었은즉

           18. 그 가지들을 향하여 자긍하지 말라 자긍할찌라도

                네가 뿌리를 보전하는 것이 아니요 뿌리가 너를 보전하는 것이니라

           19. 그러면 네 말이 가지들이 꺾이운 것은 나로 접붙임을 받게 하려 함이라 하리니

           20. 옳도다 저희는 믿지 아니하므로 꺾이우고 너는 믿으므로 섰느니라.

                높은 마음을 품지 말고 도리어 두려워하라

           21. 하나님이 원 가지들도 아끼지 아니하셨은즉 너도 아끼지 아니하시리라.

 

    여기에서 바울은 본래 참 감람나무였던 이스라엘도 잘라졌는데,

    본래 돌감람나무였던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은 얼마나 더 쉽게 잘라지겠느냐고 경고합니다.

 

    하나님은 유대인이든 이방인이든

    믿음을 잃어버린 자들, 말씀에 순종하기를 거부하고 자기 고집대로 사는 자들을

    그 백성의 대열에서 잘라내십니다.

 

 3) 하나님의 인자와 엄위(11:22)

 

           22. 그러므로 하나님의 인자와 엄위를 보라.

                넘어지는 자들에게는 엄위가 있으니 너희가 만일 하나님의 인자에 거하면

                그 인자가 너희에게 있으리라. 그렇지 않으면 너도 찍히는바 되리라.

 

    유대인들은 예수님이라는 반석에 걸려 넘어졌습니다.

    이렇게 끝까지 자기 고집을 부리고

    예수님의 뜻을 거부한 자들은 하나님의 엄위로 대하시고,

    겸손하게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들에게는 인자로 대하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엄위와 만날지 하나님의 인자와 만날지는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태도에 달려 있습니다.

    그러므로 교만을 품지 말고, 하나님 앞에 겸손한 자들이 되십시오.

 

 

주님

 

유대인들처럼 경험에 의지하는 자들이 되지 말고

말씀에 순종하는 자들이 되게 하옵소서.

 

게으름을 피우다 우리도 유대인들처럼

심령이 돌같이 굳어질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하게 하옵소서.

 

거짓되고 위장된 평화에 속지 말고,

언제나 신실한 신앙의 삶을 살게 하옵소서.

 

마지막 때에 일어나리라고 말씀하신 징조들을 보면서

늘 영적인 긴장감을 잃지 않고 살아가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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