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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 설교문

선을 이루고 덕을 세우라(5월 8일; 롬 14:1~23)

작성자송호영|작성시간22.05.09|조회수343 목록 댓글 0

설교제목 : 선을 이루고 덕을 세우라

설교본문 : 로마서 14:1~23(참고 15장)

설 교 자 : 송호영 목사

설 교 일 : 2022년 5월 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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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론 :

 

    전에도 말씀드렸습니다만, 로마서를 쓸 때 바울은
    예수님이 그가 살아있을 때 곧 다시 오실 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아주 다급한 마음에
    그가 알고 있는 복음의 말씀을 총정리하여 쓴 편지가 로마서입니다.

    그동안 바울은 거듭난 새 생명으로 사는 것이 무엇인지,

    성령의 도우심을 받아 사는 것은 무엇인지를 증거했습니다.

 

    오늘 본문 14~15장에서는 로마서를 마감하면서
    주의 오심을 기다리는 성도들이 반드시 기억해야 할 마지막 당부의 말을 합니다.

 

    오늘 말씀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성도들끼리 서로 사랑하라, 하나가 되라는 것입니다.

 

    ‘서로 사랑하라, 하나가 되라’는 말은 교회 밖의 어느 조직에서도 있는 말입니다만,

    바울이 전하는 오늘 말씀은 세상에서 말하는 ‘서로 사랑하라’와는 조금 다른 성격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 많은 조직이 있지만
    그중에서 이 땅에 있는 사람을

    하나님의 백성이 되게 하는 조직은
    오직 예수님을 구주로 믿는 교회뿐입니다.

 

    세상에 새 생명을 전하는 유일한 기관, 유일한 조직으로서의 교회가 해야 할 성도들끼리의 사랑이기에

    세상의 다른 조직의 사랑과는 다른 사랑을 증거합니다.

 

    오늘 이 말씀은
    주께서 우리 각자에게 주시는 복과도 관련이 있으므로
    오늘 말씀을 주의해서 들어서
    각자 나는 어떤 사람인지를 살펴보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1 : 서로 비판하지 말고

 

1. 서로 다른 신앙의 견해에 대하여 비판하지 마십시오.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야만 구원을 받는다든지,

    우상숭배를 하면 멸망을 받게 된다는 것은

    구원의 핵심에 관한 일이므로 이런 점에서는 서로 다른 견해 차이가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교회 안에는 구원의 핵심과 관계가 없는

    성도들 간의 단순한 견해 차이로 다투는 경우가 많습니다.

    바울은 신앙의 문제로 성도들 간에 견해 차이가 생겼을 때

    어떻게 할 것인지를 설명합니다.

 

 1) 먹고 마시는 문제, 어떤 날을 더 중요하게 여기느냐의 문제(3, 5절)

 

            3. 먹는 자는 먹지 않는 자를 업신여기지 말고

               먹지 못하는 자는 먹는 자를 판단하지 말라.

               이는 하나님이 저를 받으셨음이니라.

            5. 혹은 이날을 저 날보다 낫게 여기고 혹은 모든 날을 같게 여기나니.

               각각 자기 마음에 확정할찌니라(자기 마음에 정한 대로 할지니라).

 

    구약에서는 돼지고기와 같이 하나님이 먹을 수 없는 음식이 있었습니다만,

    예수께서 음식에 관한 규정을 폐지하셨으므로

    이제는 무엇을 먹든 무엇을 마시든 구원과는 상관이 없이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신약시대에 사는 우리는 어떤 음식이든 감사한 마음으로 먹으면 됩니다.

 

    그런데 로마 시대에는 시장에 나온 고기들이

    우상숭배에 바쳐졌던 고기인지 알 수 없어서 고기를 먹기를 꺼렸던 자들이 있었습니다.

    이에 대하여 어떤 자들은

    우상숭배에 바쳐진 것인지 알지도 못하면서 함부로 먹는다고 먹는 자들을 비난했고,

    또 먹는 자들은 예수께서 이미 상관없다고 하셨는데

    믿음이 없는 자들이라고 비난했습니다.

 

    또 유대인이 안식일을 지키듯 주일을 지켜야 한다고 생각하는 자들과,

    주일 뿐 아니라 모든 날을 주님을 섬기는 날로 여겨야 한다고 생각하는 자들이

    서로를 비난하고 다투었습니다.

 

 2) 남의 하인을 판단하는 너는 누구냐(4, 10절)

 

            4. 남의 하인을 판단하는 너는 누구뇨(네가 누구이기에 남의 하인을 판단하느뇨)?

               그 섰는 것이나 넘어지는 것이 제 주인에게 있으매 저가 세움을 받으리니,

               이는 저를 세우시는 권능이 주께 있음이니라.

           10. (그런데) 네가 어찌하여 네 형제를 판단하느뇨?

               어찌하여 네 형제를 업신여기느뇨? 우리가 다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리라.

 

    바울은 이런 단순한 견해 차이를 가지고

    서로를 비난하는 양쪽 모두가 잘못이라고 경고합니다.

 

    그 문제에 관하여 예수께서 이미 죄가 되지 않는다고 말씀해 주셨으므로

    구원의 핵심에 해당하는 문제가 아닙니다.

    그런데 그런 문제로 누군가를 비난하면

    주께서 허락하셨더라도 나는 안 된다고 하는 것이니

    주님의 심판권을 가로채는 일이 됩니다.

 

 3) 이런 일은 각자 자기 마음에 정한 대로 하십시오(5절)

 

            5. 혹은 이날을 저 날보다 낫게 여기고 혹은 모든 날을 같게 여기나니.

               각각 자기 마음에 확정할찌니라(자기 마음에 정한 대로 할지니라).

 

    주께서 음식에 관한 규정을 폐지하셨으니

    어떤 음식을 먹든지 먹지 않든지 자기 마음에 정한 대로 하면 됩니다.

 

    또 안식일과 같은 특정한 날에 관한 규정을 말씀하시지 않으셨으니

    어떤 날을 특별히 중요하게 여겨 주님의 날로 지키거나,

    혹은 모든 날을 다 중요하게 여겨 날마다 주님을 섬기는 날로 여기거나

    각자 자기 마음에 정한 대로 하라고 바울은 증거합니다.

 

묵상 :

 

    바울이 로마서를 쓸 때는 음식 문제가 다툼의 원인이었으나,
    오늘날에는 다른 문제가 다툼의 원인일 수 있습니다.

    그것이 구원과 직결되는 중요한 문제라면 싸워서라도 우리의 믿음의 자리를 지켜야 하겠지만,
    본문의 경우와 같이 구원과는 상관없는 곁가지 문제라면
    서로 다른 견해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자세를 가져야 하겠습니다.

 

 

2. 한국교회의 주초(술과 담배)문제

 

    서양의 경우 술을 마셔도 아주 조금씩 마시며 대화를 합니다.

    대화하기 위해 술을 마시는 것이므로 그리 문제로 삼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 초창기에 들어온 선교사들이 한국 사람들을 보니

    술을 세숫대야처럼 큰 잔에 부어 아예 들이마시는 장면을 보고 매우 놀랐습니다.

 

    많은 사람이 토요일에 술을 마시고는

    주일 아침에 일어나지도 못하는 상황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나자

    이것을 이대로 두어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한 선교사들이

    1901년 장로교 공의회에서 ‘7대 신앙생활 지침’을 발표합니다.

 

    그 내용이 다음과 같습니다.

 

    ➀ 예배 출석 잘할 것

    ➁ 성수 주일

    ➂ 부모에게 효도할 것

    ➃ 일부일처할 것

    ➄ 인가귀도할 것 : 나와 내 집안 식구 모두를 하나님의 신앙으로 이끄는 것

    ➅ 근면성실할 것

    ➆ 금주 금연할 것.

 

    이렇게 공표해도 금주 문제가 시정되지 않자,

    1914년에는 술 마시고 담배 피우는 사람은

    절대 장로로 세우지 않겠다는 원칙을 공포했습니다.

    이것이 100년 가까이 내려온 한국 기독교의 전통이 되었습니다.

 

묵상 :

 

    위에서 언급한 대로 음주와 흡연은 구원의 핵심에 해당하는 문제는 아닙니다.

    그러므로 이것 때문에 다른 사람을 마치 구원받지 못한 범죄인 취급을 해서는 안 됩니다.

 

    그러나 이미 100년이 넘기까지 한국교회의 문화가 되었다면,

    우리는 다른 사람의 신앙에 상처를 주지 않기 위해

    금주와 금연을 하는 것이 합당한 일입니다.

 

    이런 경우 원칙은 이것입니다.

    나는 조심하되 그 일로 남은 비판하지 않는 것입니다.

 

 

3. 각자 자신이 직고하리라(11~12절)

 

           11. 기록되었으되 “주께서 가라사대 내가 살았노니 모든 무릎이 내게 꿇을 것이요

                모든 혀가 하나님께 자백하리라”하였느니라

           12. 이러므로 우리 각인이 자기 일을 하나님께 직고하리라

                (자기 입으로 하나님께 직접 아뢰게 될 것이라).

 

    마지막 심판대에 서면 다른 사람의 죄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각자 자기가 자기의 죄를 자기 입으로 고백합니다.

    내가 내 입으로 나의 죄를 고백한 그것으로 주께서 나를 심판하시는 것입니다.

 

    그날은 내가 입을 다물고 숨기려 해도 소용없습니다.

    극도의 공포에 싸여 두려워 떨면서도 내 입으로 모든 죄를 다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신의 죄를 따져야지, 왜 남의 죄를 따지냐고 바울은 경고합니다.

 

    내 안에 하나님께서 받으실만한 참된 믿음이 있는지를 따져서

    그 믿음이 바른 것이 되도록 내가 조심해야지,

    자기의 내면은 들여다볼 생각을 하지 않으면서

    남의 허물만 찾으려 하는 것은 대단히 위험한 일이라는 것입니다.

 

    오히려 이런 일은 그 심판대에서 고백하게 될 죄만 더 짓는 꼴이 됩니다.

    그러므로 다른 사람의 허물을 찾기보다 날마다 자기의 영을 씻는 일을 하려 하십시오.

 

 

 4. 그런즉 서로 판단(비판)하지 말고 : 사람을 함부로 정죄(심판)하지 말고(13절)

 

           13. 그런즉 우리가 다시는 서로 판단(비판)하지 말고

                도리어 부딪힐 것이나 거칠 것(걸림돌)을 형제 앞에 두지 아니할 것을 주의하라.

                (형제를 죄에 빠지게 할만한 일을 하지 않을 것을 결심하라).

 

    13절의 첫 단어인‘그런즉’은 앞의 12절과 연결됩니다.

    바울은 12절에서 ‘이러므로 우리 각인이 자기 일을 하나님께 직고하리라’라고 했습니다.

 

    주께서 다시 오시는 그날 최후 심판을 받을 때

    각자가 자기 죄를 자기 입으로 스스로 말하여 고백하게 되리라는 것입니다.

    숨기고 싶은 은밀한 죄까지 하나도 남김없이

    모두 하나님 앞에 자기 입으로 고백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13절은

    ‘그날에 우리 각자가 자기 일을 하나님께 직고하게 될 것이므로

    우리가 다시는 다른 사람을 함부로 판단하지 말라’입니다.

 

    여기에서 ‘판단하지 말라’는 것은

    ‘판사가 재판정에서 최종 선언을 하는 것과 같은 최종 심판이나 정죄하는 일,

    그 사람에 대하여 최종 결정을 내리는 일을 뜻합니다.

 

    만일 어떤 사람이 마치 자기가 하나님이라도 된 것처럼 남을 함부로 심판한 후에

    자기도 그 사람과 같은 죄를 범한다면 그는 훨씬 무거운 죄를 받게 됩니다.

    그 죄를 범한 것에다 하나님의 심판의 자리까지 넘보았기 때문입니다.

 

    사람을 함부로 멸시하고 경멸하는 것이 다 여기에 해당합니다.

    이런 사람은 하나님의 심판의 자리를 넘본 죄를 범한 것임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묵상 :

 

    남을 함부로 멸시하지 마십시오.

   “너는 본래 이런 사람이다”하고 사람을 함부로 결정하거나 심판하지 마십시오.

    예수께서 그 사람을 위해서도 십자가에 달리셨습니다.

    이 일을 멈추지 않는다면 하나님께서 이런 사람을 적으로 여기실 것입니다.

 

 

2 : 도리어 서로 시험 거리를 만들지 않기로 결심하라

 

           13. 그런즉 우리가 다시는 서로 판단(비판)하지 말고

                도리어 부딪힐 것이나 거칠 것(걸림돌)을 형제 앞에 두지 아니할 것을 주의하라.

                (형제를 죄에 빠지게 할만한 일을 하지 않을 것을 결심하라).

 

    서로 판단이나 정죄를 하지 말고

    도리어 그 사람이 죄를 범할만한 일을 하지 않기로 결심하라는 것입니다.

 

    서로 죄를 범할만한 일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 무엇인지 살펴 보겠습니다.

    이것은 교회를 건강한 신앙 공동체가 되게 하는데 아주 중요한 것들입니다.

 

 

1. 사랑 : 서로 상대의 연약함을 헤아려주는 것

 

    건강한 교회가 되기 위해 우리가 해야 할 그 첫째는

    신앙이 연약하다는 이유로 상대방을 비난하지 말고

    도리어 그가 부담스러워하는 일을 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 첫째는 음식에 관한 일입니다.

 

 1) 음식 문제에 대한 예수님의 말씀(마태복음 15:11)

 

           11. 입에 들어가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 아니라

                입에서 나오는 그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니라

 

    예수께서 “입에 들어가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 아니라

    입에서 나오는 그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니라”(마 15:11)라고 말씀하셨으므로

    신약 시대를 사는 우리는 무엇을 먹고 무엇을 마시든

    먹고 마시는 행위 그 자체로 죄가 되지는 않습니다.

 

    그러므로 어떤 사람이 이 말씀의 의미를 바로 알고 난 후에

    어떤 음식이든 먹고 마신다면 그에게는 죄가 되지 않습니다.

    무엇을 먹든 상관없으므로 음식에 관한 한 신앙의 자유가 됩니다.

 

 2) 그리스도인의 자유의 한계(마태복음 18:6~7)

 

            6. 누구든지 나를 믿는 이 소자 중 하나를 실족케 하면

               차라리 연자 맷돌을 그 목에 달리우고 깊은 바다에 빠뜨리우는 것이 나으니라

            7. 실족케 하는 일들이 있음을 인하여 세상에 화가 있도다 실족케 하는 일이

               없을 수는 없으나 실족케 하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도다.

 

    그러나 어떤 자유에도 그 자유에 한계가 있기 마련합니다.

    나는 어떤 음식을 먹어도 상관없다는 믿음이 있으므로 무엇이든 먹을 자유가 있지만,

    만일 누군가 어떤 음식을 먹어서는 안 된다는 믿음을 가진 사람이 있다면,

    그가 보는 앞에서는 먹고 마시는 것을 조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비록 그가 잘못된 믿음을 가졌다고 하더라도,

    누군가 그를 보고 시험에 들어 믿음을 잃게 된다면,

    이 역시 사람을 실족하게 하는 일이니

    차라리 연자 맷돌을 메고 바다에 빠지는 편이 나을 것입니다.

 

묵상 :

 

    음식을 먹는 문제를 각자 자신의 뜻대로 정하라 하였지만,

    나의 자유로운 어떤 행위로 다른 사람이 믿음을 잃어버리게 된다면

    그는 그 형제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합니다.

    그러므로 요즈음 사람들이 흔히 하는 말로

   “내 맘이야~”하고 말하는 것을 조심해야 합니다.

    내 자유로 행한 것이 형제를 망하게 하는 일이 되지 않도록 조심하십시오.

 

 

2. 형제를 격분하게 하거나 죄에 빠지게 하는 일을 하지 마십시오(13절)

 

           13. 그런즉 우리가 다시는 서로 판단(비판)하지 말고

                도리어 부딪힐 것이나 거칠 것(걸림돌)을 형제 앞에 두지 아니할 것을 주의하라.

                (형제를 죄에 빠지게 할만한 일을 하지 않을 것을 결심하라).

 

    건강한 교회가 되기 위해 우리가 해야 할 그 첫째는

    신앙이 연약하다는 이유로 상대방을 비난하지 말고

    도리어 그가 부담스러워하는 일을 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 둘째는 습관에 관한 일입니다.

    말과 행위의 습관 중에 다른 사람을 격분하게 하는 일이 있는지 살펴보라는 것입니다.

 

 1) 부딪힐 것 : 형제를 격분하게 하는 일을 조심하십시오(13절)

 

            (성경구절 위에)

 

    음식을 먹는 일뿐 아니라, 어떤 말이나 행위의 습관이 남을 격분하게 하는 일이 있다면

    우리는 그것도 조심해야 합니다.

 

    내가 습관적으로 행하는 말이나 행동이 누군가를 불편하게 한다면 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 불편함이 쌓이면 미움이나 격분에까지 이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내가 생각 없이 한 말이나 행동으로 다른 사람을 죄에 빠지게 하는 일이 됩니다.

 

    나는 옛날부터 이런 습관을 가졌다고 말하지 말고,

    남이 싫어할 만한 말이나 행동의 습관들을 고치십시오.

 

 2) 거칠 것(걸림돌) : 형제를 미혹하는 자가 되지 마십시오(13절)

 

            (성경구절 위에)

 

    또 내가 가진 견해를 함부로 말하여 다른 사람을 죄에 빠지게 하는 일을 조심하십시오.

 

    가령 “나는 예수를 믿는 사람이라도 술을 마시는 것 정도는 괜찮다고 생각한다”든지

   “예수 믿는 사람들이라고 꼭 그렇게 살 필요가 있나, 그런다고 누가 알아주나?”라고 말하면서

    믿는 자도 세상 속에서 살아가려면 적당히 세상과 타협하며 살아야 한다고 말한다면,

    그는 다른 사람을 죄에 빠지도록 미혹한 것이 되는 것입니다.

 

묵상 :

 

  ① 자신의 견해를 말할 때 조심하십시오.

 

     그러므로 우리는 서로에게 자신의 견해를 말할 것이 아니라

     그 일을 예수께서는 무엇이라 말씀하셨는지를 살펴본 후에 말을 해야 합니다.

 

     단순한 신앙의 견해 차이를 말할 때에는 자기의 의견을 말해도 상관없으나,

     주께서 분명하게 말씀하신 신앙의 핵심 부분까지

     자신의 견해를 말해서는 안 됩니다.

 

  ② 적당히 타협하는 자보다 회개하는 자가 되십시오.

 

    “사람들도 다 그러는데 뭐~”하면서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하려 하지 마십시오.

     노아 시대에 단 8명만 구원받았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말씀대로 살지 못했으면 회개하여 용서를 받을 일이지,

     그저 지금 자기의 마음이 편안해지도록 하기 위해

     적당히 자기 자신과 타협하며 사는 자가 되지 마십시오.

 

 

3. 연약한 자의 약점을 담당하고 그를 받아들이십시오.

 

    예수님을 믿는 자들도 넘어지고 갈등하고 좌절합니다.

    하지만 어떤 자들은 넘어지고 좌절할지라도 주님의 은혜를 붙잡고 다시 일어나고,

    어떤 사람은 넘어지고 좌절한 그 자리에서 좀처럼 일어나지 못합니다.

 

    여기에서 믿음이 강한 자란 넘어지고 좌절할지라도

    주의 은혜로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정도의 영적은 능력을 가진 자를 말하고,

    약한 자는 영적인 힘이 연약하여 주변 환경에 영향을 잘 받고,

    한 번 넘어지면 잘 일어서지 못하는 자들을 가리킵니다.

 

 1) 믿음이 강한 자는 약한 자의 약점을 담당하고(15:1)

 

            1. 우리 (믿음이) 강한 자가 마땅히 연약한 자의 약점을 담당하고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아니할 것이라(자기에게 좋을 대로만 하지 아니할 것이라).

 

    예수님을 믿는 자들은 각자 믿음을 잘 지켜

    본인 자신이 먼저 천국 백성이 되어야 합니다만,

    동시에 함께 주님을 믿는 성도들이

    건강한 신앙생활을 할 수 있도록 돕는 책임도 갖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믿음이 강한 자는

    마땅히 믿음이 약한 자의 약점을 담당하고 도와주어야 합니다.

    그가 어떤 환경에 영향을 받는지를 살펴서 영향받을만한 환경을 만들지 않도록 조심하고,

    또 자기 혼자의 힘으로는 잘 일어서지 못하니

    옆에서 그를 도와 주님의 도우심을 받도록 도와야 합니다.

 

    그러나 그 어떤 사람도 평생 강한 믿음을 가지고 살지는 못합니다.

    바울조차도 갈등과 번민의 고통 속에서

    스스로 자신을 가리켜 사망의 몸이라고 말했는데,

    우리같이 연약한 사람들이야 말해 무엇하겠습니까?

 

    그러므로 믿음이 강한 자가 약한 자를 도우라는 것은

    피차 연약해졌을 때 서로의 약점을 도와주는 자들이 되라는 것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2) 자기 좋을 대로만 하지 마십시오(15:1)

 

           1. 우리 (믿음이) 강한 자가 마땅히 연약한 자의 약점을 담당하고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아니할 것이라(자기에게 좋을 대로만 하지 아니할 것이라).

 

    또한 믿음이 강한 자는 자기 좋을 대로만 해서는 안 됩니다.

    가령 나는 소리를 내서 기도해야만 기도한 것 같은 느낌을 받는데,

    옆에 조용히 기도하지 않으면 기도하기가 매우 어려운 사람이 있다면

    나는 그의 연약함을 돕기 위해 그날은 조용히 기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저 내가 은혜 받는 방식대로, 나 좋은 대로만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3) 주께서 우리를 받아주신 것처럼 서로 받아들이십시오(15:7)

 

            7.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받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심과 같이

               너희도 서로 받으라

              (설명 :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시려고 우리를 받아 주신 것처럼

                        너희도 서로 받아들이라.)

 

    그러나 한국의 교회들은 이런 점에서 매우 어려운 상황입니다.

    뜨겁게 기도하는 파와 조용히 기도하는 파로 나뉘어 싸우고,

    집에서 개인적으로 말씀을 묵상하는 파와 새벽기도파가 싸우며,

    개인 경건파와 사회(공동체) 경건파가 서로 나뉘어 싸웁니다.

 

    이런 것들은 신앙의 견해 차이일 뿐입니다.

    모두가 다 주님을 섬기는 방법임에는 분명합니다만,

    내가 좋은 것만 고집하여 다른 사람들을 시험에 들게 한다면,

    주님을 섬기는 일이 아니라 도리어 주님을 훼방하는 일이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주께서 우리를 받아 주신 것처럼 서로 받아들이라고 말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이 되도록 하기 위해

    주께서 유대인으로 오셔서 유대인들에게 학대를 받으셨습니다.

 

 

결 론 : 선을 이루고 덕을 세우십시오(15:2)

 

            2. 우리 각 사람이 이웃을 기쁘게 하되 선을 이루고 덕을 세우도록 할지니라.

 

    믿음이 연약한 자를 도와서 혼자서도 능히 믿음 생활을 할 수 있는

    건강한 성도가 되게 하는 일이 곧 선을 이루고 덕을 세우는 일입니다.

 

    세상일에 자꾸만 넘어져 믿음 생활을 잘하지 못하는 성도들을 돕는 것,

    그들이 믿음 생활을 어렵게 하는 불편한 일들을 만들지 않으려 애쓰는 것,

    이것이 곧 선을 이루고 덕을 세우는 일입니다.

 

묵상 :

 

    교회에서 서로가 나만 좋으면 된다는 식으로 말하고 행동한다면

    서로 찌르다가 함께 망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서로 상대의 연약함을 돕는다면

    내가 힘들 때 여럿이 나를 돕는 것을 경험하는 동안 힘을 얻어 교회가 건강해집니다.

    이런 성도와 이런 교회를 하나님께서 기뻐하십니다.

 

    내가 속한 교회가 이런 건강한 교회가 되도록 기도합시다.

 

    이렇게 하는 것이 곧 주님을 섬기는 일이고,

    이렇게 교회를 건강하게 하는 것이 곧 하나님 나라를 위한 일입니다.

 

 

 

주님

 

나와 다른 견해를 가진 자들을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게 하옵소서.

 

온유하고 친절한 사람이 되게 하옵소서.

 

무엇보다도 이 사람도 저 사람도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게 하여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을 누리는 자가 되도록

힘쓰는 자가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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