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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 설교문

[성령강림절]생명의 능력, 생명의 힘을 잃지 마십시오(6월 5일; 눅 13:6~30, 14:15~35)

작성자송호영|작성시간22.06.06|조회수98 목록 댓글 0

설교제목 : 생명의 능력, 생명의 힘을 잃지 마십시오.

설교본문 : 누가복음 13:6~30, 참고 : 누가복음 14장14:15~35

설 교 자 : 송호영 목사

설 교 일 : 2022년 6월 5일(성령강림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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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론 :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육의 생명과 영의 생명,

    육의 시간과 영의 시간,

    육의 세계인 이 땅과 영의 세계인 하나님 나라,

    이렇게 두 개의 생명, 두 개의 시간, 두 개의 세계를 함께 사는 자들입니다.

    그러다 육신의 생명이 끝나는 날 둘 중의 하나로 완전히 들어가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은
    두 생명, 두 시간, 두 세계를 두고 벌이는 갈등과 전쟁의 시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갈등의 시간에서 끝까지 하나님의 은혜를 붙잡은 자들은

    하나님의 영광의 나라에 들어가고,

    육신의 생명, 육신의 시간, 이 땅의 나라에만 마음을 빼앗기고 산 자들은

    영원한 멸망의 나라에 들어가게 됩니다.

 

    예수님은 오늘 본문 누가복음 13~14장에서 이 갈등의 시간에 우리가 어찌해야 하는지를

    몇 개의 비유로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 나라에 대한 이 비유의 말씀을 통해

    우리가 영광을 얻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게 되기를 바랍니다.

 

 

1 : 우리는 지연된 시간을 사는 자들

 

1. 마지막 남은 1년의 기회

 

    오늘 본문의 첫 번째 비유인 열매 없는 무화과나무의 비유는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땅의 시간에 대한 말씀입니다.

 

    우리는 지금 예수께서 다시 오시는 때에 일어날 지상 최후의 날이 일어나기 직전,

    바로 그 1초 전에서 멈춘 시간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카운트 다운의 마지막 1초에서 지연된 시간’,

    이것을 예수님은 누가복음 본문에서 ‘열매 없는 무화과나무의 비유’로 말씀하십니다.

 

 1) 열매 없는 무화과나무(13:6~7)

 

            6. 이에 비유로 말씀하시되

              “어떤 사람이 자기 포도원에다 무화과나무를 심은 것이 있더니,

               와서 그 나무에서 열매를 얻을까 하여 가보았으나 열매를 하나도 얻지 못한지라.

            7. 이에 그 주인이 포도원 지기에게 이르되 ‘이 무화과나무에서 열매를 얻으려고

               내가 3년을 와서 보았으나 하나도 얻지 못하였으니 이 나무를 찍어 버리라.

               어찌 땅만 버리게 하겠느냐?’

 

    어떤 사람이 자기의 포도원에 무화과나무를 심고

    수확할 때가 되어 무화과나무에 갔으나 열매가 없었고,

    그 후로 3년을 더 기다려도 무화과에 열매가 열리지 않았습니다.

 

    무화과나무는 심은 후 7~8년째부터 수확을 하므로

    주인은 무화과나무를 수확하리라 기대했던 7~8년째 되던 해부터

    매년 무화과 열매가 맺었는지를 확인하였습니다.

    3년을 더 기다렸으니

    포도원 주인은 무화과나무를 심은 지 약 10~11년을 기다린 것입니다.

 

    이렇게 수확해야 할 때를 3년이나 더 지나고도 무화과가 전혀 열리지 않으니

    포도원 주인은 그 무화과를 베어 내버리라고 명령합니다.

    그 무화과나무가 땅의 영양분을 빼앗아서

    포도원의 포도들이 제대로 열매를 맺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2) 주인이여 금 년 한 해만 그대로 두옵소서(13:8~9)

 

            8. 그러자 그 포도원 지기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인이여 금 년 한 해만 그대로 두옵소서. 그러면 내가 두루 파고 거름을 주리니

            9. 만일 이후(내년)에 열매가 열리면 좋거니와,

               그렇지 않으면 찍어 버리소서’ 하였다”하시니라.

 

    그때 포도원 지기가 주인에게 1년의 말미를 주실 것을 청합니다.

    그러면 자신이 땅을 두루 파고 거름을 주어 정성껏 키울 테니

    1년 후에 열매를 맺으면 좋거니와, 그렇게 했음에도 불구하고 열매를 맺지 못하면

    그때 이 나무를 자르게 해 주실 것을 청합니다.

 

    말하자면 지금 우리가 사는 이 시간이

    그 포도원 지기가 부탁한 1년의 시간이라는 것입니다.

 

 3) 지연된 재림의 시간

 

    공관복음서는 주후 70년 예루살렘 성전이 무너질 때

    주께서 다시 오시는 것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어떤 원인에 의해 주님의 재림의 시간은 뒤로 지연되었습니다.

    사도 요한은 요한계시록에서 그가 밧모섬에 갇힐 무렵의 로마 황제인

    도미티안 황제가 죽는 때에 주께서 오시리라고 증거하였습니다.

 

    요한계시록 말미에 인류 최후의 때에 멸망을 당할 사탄과 도미티안 황제를

    동일시하고 있다는 것에서 그 증거를 찾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때도 예수님은 오시지 않았습니다. 계속 지연된 것입니다.

 

 4) 한 사람이라도 더 구원받게 하시려고

 

    열매 없는 무화과나무의 비유에서 포도원 주인은 하나님이시고,

    포도원 지기는 예수님입니다.

 

    예수께서 한 사람이라도 더 구원하시려고

    성부 하나님께 1년의 기한을 주실 것을 요청했고,

    그 1년이 또 1년이 되고, 또 1년이 되어 오늘 2022년까지 왔습니다.

 

    예수님이 친히 십자가에 달리시면서 얻은 1년의 회개의 기회에

    우리가 살고 있는 것입니다.

 

묵상 : 그러나 그날이 한없이 연기되지는 않습니다.

            오늘이 그 마지막 날일지 모릅니다.

 

    그렇게 1년씩 연기되기를 2,000번이나 하여 오늘에까지 이르렀습니다.

 

    주님의 인내력이 언제까지 계속될까요?

    인자함이 한이 없으신 분이니 오늘에까지 참으셨으나

    오늘이 그 마지막 날일지 모릅니다.

 

    그러니 세상일로 마음을 빼앗겨 주님 만나는 일을 모두 잃어버리는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마십시오.

    주의 날이 가까웠으니 더 늦기 전에 회개하십시오.

    그리고 주님의 성령을 내 안에 채우십시오.

 

 

2.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에 힘쓰라.

 

1) 들어가기를 구하여도 들어가지 못하는 자가 많으리라(22~24절)

 

           22. 예수께서 각 성과 각 마을을 들러서 가르치시면서 예루살렘으로 여행하시더니

           23. 어떤 사람이 예수께 “주여, 구원 받는 자가 적으니이까?”하고 물으니,

                예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여 이르시되

           24.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들어가기를 구하여도 들어가지 못하는 자가 많으리라.

 

    예수께서 이 마을 저 마을로 다니며 말씀을 전하시면서 예루살렘을 향하여 가실 때입니다.

    어떤 사람이 예수께 나아와서 “주여, 구원받을 자가 적으니이까?”하고 물었습니다.

 

    그 질문에 대한 예수님의 대답은 한마디로‘구원받을 자가 정말로 적다’는 것입니다.

    구원의 문으로 들어가기를 구하는 사람들 중에도

    많은 사람이 그 문으로 들어가지 못하리라고 말씀하셨으니,

    구원받을 자가 얼마나 적은지 짐작해보라는 것입니다.

 

 2) 이 땅의 일에 마음을 빼앗긴 자들

 

    오늘날 그리스도인들 중에도 구원받기를 바라는 마음을 가진 자들이 참으로 적습니다.

    너무나도 많은 사람들이 구원의 문제에 관심이 없는 것을 넘어서

    아예 그런 설교 듣는 자체를 싫어합니다.

    죽은 후 구원받는 것보다 지금 이 땅의 문제가 더 급하다는 것입니다.

 

    설교도, 예배도, 섬김도

    구원을 베풀어주시는 하나님을 향한 것이 아니라 자기 마음의 만족을 위한 것이라면

    그가 행하는 이 모든 신앙생활이

    하나님과는 관계없는 것이 되고 맙니다.

 

    성도와 목사와 교회가 모두 이 땅의 일에만 마음을 빼앗기고 있다면

    참으로 두려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세상을 구원할 유일한 기관인 교회마저 그 구원의 길이 막혀버렸기 때문입니다.

 

 3) 들어가기를 구하여도 들어가지 못하는 자가 많으리라.

 

    들어가기를 구하는 자들이란

    정기적으로 교회에 출석하며 신앙생활을 하는 자들을 뜻합니다.

    주일 예배에도 빠짐없이 참여하고, 헌금 생활이나 봉사활동까지

    누가 보아도 착실하게 신앙생활을 하는 것처럼 보이는 자들 중에도

    구원받지 못할 자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형식적인 신앙생활에만 열심히 했을 뿐,

    그들에게 주께서 주신 새 생명이 없기 때문입니다.

     거듭난 자에게 주시는 새로운 영의 생명이 없으므로

    믿지 않는 자들과 똑같이 심판을 받는 것입니다.

 

➠ 구원 얻기를 바라는 사람도 적은데

 

    구원 얻기를 바라는 마음을 가진 사람도 적은데,

    예수님의 말씀은 구원 얻기를 바라는 사람 중에도 구원받을 자가 많지 않다는 것입니다.

    참으로 두려운 말씀이 아닐 수 없습니다.

 

 경고의 말씀을 듣고도 두려워할 줄 모르는 사람들

 

    그러나 더욱 두려운 것은 예수님의 경고의 말씀을 듣고도 두려워할 줄 모르는 것입니다.

    바로 자신의 문제인데 남의 말을 듣듯 하는 사람들이 저는 더 두렵습니다.

    당신은 어떻습니까?

 

묵상 :

 

    힘들고 긴 시간이 걸려도

    회개하고 용서받은 후

    주님의 성령이 내 안에 들어오셔서

    내 안에 하나님의 거룩한 영의 생명을 넣어주시는

    거듭난 자가 누리는 기쁨과 평안을 구하시기 바랍니다.

 

 

2 : 하나님 나라에 대한 비유들

 

1. 겨자씨와 누룩의 비유 : 작은 씨에 담긴 놀라운 생명력

 

 1) 겨자씨의 비유(13:18~19)

 

           18. 그러므로 예수께서 이르시되

               “하나님의 나라가 무엇과 같을꼬, 내가 무엇에 비교할 수 있을꼬?

           19. 하나님의 나라는 마치 사람이 자기 채소밭에 갖다 심은 겨자씨 한 알과 같으니,

                자라서 나무가 되어 공중의 새들이 그 가지에 둥지를 틀고 깃들였느니라.”

 

    본래 겨자씨는 크기가 1~3미터 정도 자라는 1년생 풀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겨자씨가 새가 깃드는 나무가 되었다고 비유하셨습니다.

 

    예수님이 겨자씨가 풀이라는 것을 몰라서 이렇게 비유하신 것이 아닙니다.

    씨 중에서 가장 작은 씨가 겨자씨여서 겨자씨가 큰 나무가 되었다고 비유하신 것입니다.

 

    특히 겨자씨가 채소밭에 뿌려졌으므로

    다른 채소에 비하면 겨자는 큰 나무에 비교될 수 있을 것입니다.

    겨자씨는 채소의 씨들보다 더욱 작은 씨인데

    이것이 심어지면 다른 채소들하고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커지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이 땅의 하나님 나라 운동은 아주 미약하고 초라하게 보이지만

    장차 온 우주를 집어삼킬 엄청난 것이 된다는 것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2) 누룩의 비유(13:20~21)

 

           20. 또 이르시되 “내가 하나님의 나라를 무엇으로 비할꼬?

           21. 하나님의 나라는 마치 여자가 가루 서 말(약 22ℓ) 속에 가져다 넣은 누룩이

                그 가루를 전부 부풀게 한 것과 같으니라”하셨더라.

 

    누룩의 비유는 성인 100명 이상이 먹을 수 있는 빵을 만들 수 있는 가루 서 말을

    아주 조그마한 누룩이 전부 부풀게 한다는 것이 비유의 핵심입니다.

    보이지 않을 만큼의 적은 양의 누룩이 가루 서 말을 전부 부풀게 했습니다.

 

    비유의 형식은 겨자씨와 비슷한 듯 보이지만,

    누룩의 비유의 핵심은 아주 적은 누룩이 가루 전부를 부풀게 했다는 데 있습니다.

 

    12명의 제자들로부터 시작된 작은 집단이 로마 제국 전체를 변화시키고,

    나아가서 이 세상 전체를 변화시키는 힘을 가졌다는 것입니다.

 

 3) 작은 것에 담긴 생명의 힘

 

    겨자씨나 적은 누룩은 그 시작이 아주 미약하고 초라한 것을 비유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 작고 초라한 것에 생명이 있으면 큰 열매를 맺습니다.

 

    의자나 책상이나 건물 같은 것은 씨보다 훨씬 큰 것들이라도

    시간이 지나면 낡고 썩고 부패하여지지만,

    씨는 보이지 않을 만큼 적은 것이나 심어지면 새가 깃들 정도로 큰 나무가 되고,

    가루 서 말도 모두 부풀게 합니다.

 

묵상 : 크냐 작으냐의 문제가 아니라 생명이 있느냐의 문제입니다.

 

    겨자씨와 누룩의 비유는 영이 생명을 가진 자만이 참 그리스도인이고,

 

    속은 비었고 겉만 그럴듯한 그리스도인은

    가짜 그리스도인, 이름뿐인 명목상의 그리스도인이라는 것입니다.

 

    오직 영의 생명을 가진 성도만이 참 하나님의 백성이고, 참된 주님의 교회입니다.

 

    주님의 성령이 우리 안에 임하시도록 항상 구합시다.

    그래서 주께서 주시는 신령한 생명을 회복하는 성도와 교회가 됩시다.

 

 

2. 큰 잔치의 비유

 

    어떤 사람이 예수님과 함께 식사를 하던 중에

   “하나님 나라에서 떡을 먹는 자는 얼마나 행복할까요?”하고 말하자

    예수께서 하나님 나라를 어떤 사람이 베푼 큰 잔치에 비유하셨습니다.

 

 1) 두 번 초청하는 이스라엘의 잔치 문화(14:15~17)

 

           15. 예수님과 함께 식사를 하던 사람 중의 하나가 이 말씀을 듣고서

               “하나님의 나라에서 떡을 먹는 자는 복되도다”하고 말하자

           16. 예수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어떤 사람이 큰 잔치를 베풀고 많은 사람을 초대하였더니

           17. 잔치할 시간이 되자 주인이 그 초대하였던 자들에게 자기 종을 보내어 이르되

                ‘모든 것이 다 준비되었으니 오십시오’하고 말하게 하매

 

    이스라엘은 공식적인 잔치를 할 때

    먼저 종들을 보내어 언제 잔치를 할 것이라고 알리고,

    참석하겠다고 한 자들에게 잔치가 임박하여 다시 초청을 합니다.

 

    그런데 만일 처음 초청할 때는 오겠다고 한 사람이

    잔치가 임박할 때 보내는 이 두 번째 초청을 특별한 이유 없이 거절하면

    선전포고를 한 것과 같이 여긴다고 합니다.

 

 2) 왕의 혼인 잔치를 거절한 자들에게 닥칠 재앙(14:24)

 

           24.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전에 청하였던 그 사람들은

                하나도 내 잔치를 맛보지 못하리라’ 하였다” 하시니라.

 

    마태복음 22:1~10에서는 이 잔치를 왕의 혼인 잔치라 했습니다.

    일반인의 잔치에서도 참여하지 않으면 그 사람과 원수가 될 터이니 조심해야 할 것인데,

    더구나 왕의 혼인 잔치에 별것도 아닌 형편없는 이유를 대며 참석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살기를 바라지 않는 것과 같은 일입니다.

 

 3) 이 잔치는 하나님 나라를 비유한 것입니다.

 

    여기에서 이 잔치는 하나님 나라를 비유한 것입니다.

    잔치를 위한 모든 것을 주께서 이미 다 준비하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도록 주께서 모든 일을 다 해주셨습니다.

    우리는 그저 주께서 베푸신 잔치에 참여하기만 하면 됩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원하지 않아서 들어가지 못합니다.

 

 4) 준비는 주께서 다 하셨으니 그 잔치에 참여하기만 하라(14:16~17)

 

            (성경구절 위에)

 

    구약에서는 율법을 지키는 등 본인이 모든 것을 다 준비해야 하지만,

    신약 백성은 우리는 예수께서 우리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달리셨으므로

    주께 나가기만 하면 모든 일을 주께서 다 처리하여주십니다.

 

    우리를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게 만들었던 모든 죄와 허물들이 용서되고,

    하나님의 백성이 갖추어야 할 거룩하고 신실한 백성이 되게 하십니다.

    이 모든 일을 주께서 다 하시니 우리는 그저 그 잔치에 참여하기만 하면 됩니다.

 

 5) 세상 모든 만민을 하나님 나라에 초청하신 예수님(14:21~23)

 

           21. 종이 돌아와 주인에게 그대로 고하니 이에 집주인이 노하여 그 종에게 이르되

               ‘어서 시내의 거리와 골목으로 나가서 가난한 자들과, 몸이 불편한 자들과,

               눈먼 자와 저는 자들을 데려오라’ 하니라.

           22. 종이 이르되

                ‘주인이여 명하신 대로 하였으되 아직도 자리가 남아 있나이다’하니

           23. 주인이 종에게 이르되 ‘큰길과 산울타리 가로 나가서

                사람들을 강권하여(억지로라도) 데려다가 내 집을 채우라.

 

    잔치의 주인이 처음에 초청하려 했던 자들이

    하나같이 잔치에 참여하기를 거부하였습니다.

    이에 난 주인은 종들을 길가로 보내

    가난한 자, 지체 장애를 가진 자, 눈먼 자, 저는 자들을 불러오라고 말합니다.

 

    이것은 주께서 하나님 나라 잔치에 이 세상의 모든 사람을 초대하셨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세리와 창기와 같은 죄인들처럼 그동안 천대받던 사람들까지 모두 초대하셨습니다.

    이들을 초대하기 위해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리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 모두가 다 주께서 베푸신 하나님 나라 잔치에 참여하기를 원하십니다.

 

 6) 하나님 나라의 잔치가 이미 시작되었습니다(14:17)

 

           17. 잔치할 시간이 되자 주인이 그 초대하였던 자들에게 자기 종을 보내어 이르되

               ‘모든 것이 다 준비되었으니 오십시오’하고 말하게 하매

 

    예수님은 이 잔치의 준비가 이미 다 완료되었고,

    지금은 그 잔치에 참여하기만 하면 되는 시간에 와 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이름으로 모여 하나님께 예배하고 찬양하는 것,

    함께 모여 주의 이름으로 봉사하고 헌신하는 것,

    또 우리가 말씀을 묵상하고 기도하는 이 모든 일이

    이미 시작된 하나님 나라 잔치에 참여하는 일이라는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잘하면 장차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이미 이 땅에서 하나님의 나라는 시작되었다는 말씀입니다.

 

묵상 :

 

    주께 찬양과 경배로 예배드리며, 주님의 일에 함께 참여하여 봉사하고,

    주님의 백성들과 함께 교제하는 일이 바로 주님의 잔치에 참여하는 일입니다.

 

 

3. 하나님 나라 잔치 참여를 거부하는 사람들

 

 1) 잔치의 참여를 거부한 사람들(14:18~20)

 

           18. 그들이 모두 다 하나같이 핑계를 대며 거부하여 이르되 한 사람은

                ‘나는 밭을 샀으매 불가불 나가 보아야 하겠으니 부디 용서하도록 하라’하였고

           19. 또 한 사람은 이르되 ‘나는 소 다섯 겨리(5쌍, 10 마리)를 샀으매

                소를 시험하러 가야 하겠으니 청컨대 나를 용서하도록 하라’ 하였으며,

           20. 또 한 사람은 이르되 ‘나는 장가들었으니 그러므로 가지 못하겠노라’ 하는지라.

 

    이 잔치는 여느 잔치와 같이 그저 먹고 마시는 잔치가 아닙니다.

    영원한 생명과 영원한 멸망을 결정하는 잔치입니다.

    그러므로 이 잔치는 어떻게 해서든 참여해야만 하는 잔치였습니다.

 

    그런데 처음에 청하였던 자들이 모두 한결같이 참여하기를 거절했습니다.

    잔치를 거절한 이유가 가관입니다.

 

    첫째 사람은 밭을 샀으므로 그 밭의 상태를 봐야 하겠기에 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 사람은 소 다섯 겨리(10마리)를 샀으므로

    역시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 갈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세 번째 사람은 결혼한 지 얼마 되지 않았으므로

    아내를 즐겁게 해 주어야 하기 때문에 갈 수 없다고 했습니다.

 

 2) 거절한 자들의 궁색한 변명

 

    밭을 살 때 이미 확인한 밭을

    이 귀한 잔치를 앞두고 또 가보아야 할 이유가 무엇일까요?

 

    소를 산 사람 역시 소를 살 때 확인하여 이제는 외양간에 잘 있을 텐데

    왜 이 귀한 잔치를 앞두고 또 확인하려 한다는 말일까요?

 

    또 결혼하여 부부가 되었으니 이제부터 아내를 평생 즐겁게 해 주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결혼했다는 것 역시

    사망과 생명을 판가름할 잔치에 참여하지 못할 이유는 되지 못합니다.

 

    밭은 소유물이고,

    소는 생활에 관련된 일이며,

    아내는 가족을 위한 일로 각각 적용할 수 있습니다.

 

    모두 다 세상살이에 필요한 일들입니다.

    이 세상에 사는 동안 필요한 일을 하느라

    하나님 나라 잔치에 참여할 수 없다고 말한 것입니다.

 

 3) 영생을 거절한 자들

 

    주께서 1주일 168시간을 모두 하나님의 시간이 되게 하라고 말씀하신 것이 아닙니다.

    그중에 일부를 하나님의 시간이 되게 하고,

    그렇게 정기적으로 하나님의 시간에 들어가는 것이

    하나님 나라 잔치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세상의 일에 분주하여

    하나님께서 정하신 하나님의 시간을 지키지 못하겠다는 것입니다.

 

    이들은 하나님께 예수님을 통하여 마련하신 구원의 길을 거부한 자로 여김 받게 됩니다.

    그들 스스로 거부했으므로

    그들은 신실하지 못한 자들이 들어가는 영원한 멸망의 나라에 들어가게 될 것입니다.

 

묵상 :

 

    큰 잔치의 비유는 땅의 일 때문에 하나님의 은혜를 잃어버린 자들에 대한 비유입니다.

 

    정말 분주하고 바쁘기도 했을 것입니다.

    구원의 문제가 중요한 줄은 알지만

    당장 눈앞의 일이 급해 어쩔 수 없었다고 말하기도 할 것입니다.

 

    그러나 세상일도 정말 급한 일은 만사를 제처 두고 합니다.

 

    영의 생명, 영의 시간, 하나님 나라의 일들을

    다른 어떤 것보다도 중요한 일로 여기고 사는 자들이 되십시오.

    그래야 마지막 날 주님의 영광을 입는 자가 됩니다.

 

 

4. 강권하여 내 집을 채우라

 

 1) 전에 청하였던 자들은 하나도 내 잔치를 맛보지 못하리라(14:24)

 

           24.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전에 청하였던 그 사람들은

                하나도 내 잔치를 맛보지 못하리라’ 하였다” 하시니라.

 

    나의 소유물을 지키기 위해,

    내 생활에 필요한 도구를 지키기 위해,

    가족을 위해 시간을 내야 하므로 잔치에 참여할 수 없다며 거절한 사람에 대하여

    주인이 크게 진노하였습니다.

 

    이 비유에서 주인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 구원을 위해 베푸신 하나님 나라 잔치를

    고작 이런 일들 때문에 거절한 사람들에 대하여 아주 크게 진노하시면서

    이들은 결단코 하나님 나라 잔치에 참여할 수 없으리라고 선언하십니다.

 

 2) 청함 받지 못했던 자들을 불러 자리를 채우라(14:21~23)

 

           21. 종이 돌아와 주인에게 그대로 고하니 이에 집주인이 노하여 그 종에게 이르되

               ‘어서 시내의 거리와 골목으로 나가서 가난한 자들과, 몸이 불편한 자들과,

                눈먼 자와 저는 자들을 데려오라’ 하니라.

           22. 종이 이르되

               ‘주인이여 명하신 대로 하였으되 아직도 자리가 남아 있나이다’하니

           23. 주인이 종에게 이르되 ‘큰길과 산울타리 가로 나가서

                사람들을 강권하여(억지로라도) 데려다가 내 집을 채우라.

 

    그리고 그동안 하나님 나라에서 외면당했던 사람들

    – 가난한 자들, 지체 장애자들, 눈먼 자들, 다리를 저는 자들 - 을

    모두 데려오라고 명하십니다.

 

    그래도 자리가 남았다고 종들이 말하자,

    큰길이나 산울타리 가에 가서 사람들을 강권하여 데려오라고 명하십니다.

    힘과 완력으로 강제하여 끌고 오라는 말이 아니라,

    열심히 설득하고 또 설득해서 어떻게 해서든 데려오라는 말씀입니다.

 

 3) 누구든 원하는 자에게 활짝 열린 하나님 나라

 

    이들은 세리들, 창기들, 이방인들을 두고 한 말입니다.

    그동안 하나님 나라 백성이 되고 싶어도 자격이 되지 않아 참여할 수 없었던 자들입니다.

 

    이들은 예배의 자리에조차 참여할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께 예물을 드리고 싶어도 이들의 예물은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철저히 하나님 나라에서 제외되고 외면당했던 이들에게 하나님 나라가 활짝 열렸습니다.

 

    이들에게 그저 주님과 교제하는 자리에 들어오기만 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주께서 주의 성령을 보내주셔서 그들의 모든 죄를 용서하시고

    하나님의 거룩하신 의를 주셔서 그들을 하나님의 백성이 되게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묵상 :

 

  ① 나는 주님의 잔치에 참여하고 있는 자인지 살펴봅시다.

 

     교회에는 다니지만, 주님과 교제하는 자리에는 들어오지 않은 자들이 많습니다.

     교회 활동에는 열심히 참여하지만,

     그 마음에 예수님을 사랑하는 마음은 없는 자들이 많습니다.

     혹시 나는 그렇지 않은지 각자 자신을 살펴봅시다.

 

  ② 진정으로 원하는 자는 누구나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이 비유는“하나님 나라에서 떡을 먹는 자는 얼마나 행복할까?”하는

     어떤 사람의 넋두리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이 비유를 통하여

    “누구든지 원하는 자는 다 들어갈 수 있다”하고 대답하셨습니다.

 

     그러나 정말 간절히 원해야 합니다.

     세상의 모든 것을 다 잃어버리는 한이 있더라도

     천국에는 반드시 들어가야 하겠다고 간절히 원해야 합니다.

     이렇게 간절히 원하는 자는 자격이 없더라도 들어갑니다.

 

     그러나 적당히 원하는 척만 하는 자는 결코 들어갈 수 없습니다.

     우리가 드리는 예배가 적당히 모양만 내는 것이 되지 않게 합시다.

     마음으로부터 하나님께 올려지는 진정한 것이 되게 합시다.

     그래야 우리도 천국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5. 두드리지만 거절받는 사람들(너희가 밖에 서서 문을 두드리며 …)

 

 1) 당당하게 문을 두드리지만 거절 받을 자들(13:25~27)

 

           25. 집 주인이 일어나 문을 한 번 닫은 후에는

                너희가 밖에 서서 문을 두드리며 ‘주여 열어 주소서’하고 아무리 졸라도

                그 주인은 ‘나는 너희가 어디에서 온 자인지 알지 못하노라’하리니

           26. 그때에 너희가 ‘우리가 주 앞에서 먹고 마셨으며

                또한 주께서 동네의 거리에서 우리를 가르치셨나이다’하고 말할 것이라.

           27. 그러나 주인이 너희에게 말하여 이르되

               ‘나는 너희가 어디에서 왔는지 알지 못하노라.

                행악하는(불의를 일삼는) 모든 자들아 모두 나를 떠나가라’하리라.

 

    구원의 문이 최종적으로 닫힐 때까지도 이 유대인들은

    자기들이 구원받을 믿음을 가진 자라고 확신했습니다.

    그래서 마치 주인이 문 앞에서 자기 종들에게 “이리 오너라”하고 부르는 것처럼

    당당하게 천국 문을 두드립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이 유대인들이

    구원의 문이 최종적으로 완전히 닫힌 후에야 비로소

    자기들이 구원받지 못한 자들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는 것입니다.

    참으로 두려운 말씀입니다.

 

    그들은 그때까지도 자기 앞에 다가온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고

    당당하게 문을 열어달라고 요구하며 문을 두드렸습니다.

    그러나 주인이 나와 “나는 너희를 알지 못하니,

    이 행악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하는 차가운 말씀만 듣습니다.

    여기에서 말하는 주인은 우리의 심판주이신 예수님이십니다.

 

 2) 심판대 앞에 갈 때까지 구원받을 자라고 확신했던 자들

 

    이 사람들은 자기는 신령한 사람이므로

    당연하게 천국에 들어가리라고 생각한 사람들입니다.

    자기가 그리스도의 참된 종임을 과시하듯 계속 주여 주여 하고 부릅니다.

 

    그들은 주님과 함께 먹고 마셨습니다.

    주님 앞에서 성도들과 함께 먹고 마셨다는 뜻입니다.

    성도들과 함께 신앙생활을 규칙적으로 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함께 주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이 정도면 충분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들을 외면하십니다.

    무엇이 문제였습니까?

 

 3) 나는 너희가 어디에서 온 자인지 알지 못하노라(13:25)

 

           25. 집 주인이 일어나 문을 한 번 닫은 후에는

                너희가 밖에 서서 문을 두드리며 ‘주여 열어 주소서’하고 아무리 졸라도

                그 주인은 ‘나는 너희가 어디에서 온 자인지 알지 못하노라’하리니

 

    여기에서 ‘ 모른다’는 말은

    과거로부터 지금까지 단 한 번도 그들의 이름을 들어본 적도 없다는 뜻입니다.

    전혀 모르는 자요, 지금 처음 보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그들이 과거에 주께로부터 말씀도 들었고, 주님과 함께 먹고 마시기까지 했으나

    주님은 그들을 전혀 알지 못하십니다.

 

    분명히 그들은 성도들과 함께 신앙생활을 했고 예배에도 참여했으며 말씀도 들었으나,

    예수님은 그들이 예수님의 공동체에 속하지 않았다고 말씀하십니다.

    다만 교회에 속했을 뿐입니다.

    그들은 “악을 행하는 모든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는 말씀만 들을 뿐입니다.

 

    예수님은 그들이 신앙 공동체 안에서 행한 모든 일들이

    다 주님 보시이게 행악하는 일들이었다고 말씀하십니다.

 

묵상 : 이것이 바로 본문이 주는 두려움입니다.

 

    심판의 자리에서까지 천국에 들어가리라고 확신했던 자들이

    실상은 예수님의 미워하는 자였다는 사실에 얼마나 놀랄까요?

    나는 혹시 그런 사람이 아닌지 우리는 말씀으로 자신을 살피고 또 살펴야 합니다.

 

 

결 론 : 이름뿐인 거짓 그리스도인들에 대한 경고

         (생명의 능력, 생명의 힘을 잃지 마십시오.)

 

 1) 맛을 잃은 소금(14:34~35)

 

           34. 소금이 좋은 것이나, 소금도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35. 그것은 땅에도, 거름에도 쓸데없어 밖에 내어 버리느니라.

                들을 귀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 하시니라.

 

    교회에 다니는 사람은 많아도 구원받는 사람이 그렇게도 적은 이유는

    그들이 영적인 생명을 잃어버린 껍질뿐인 그리스도인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이런 거짓 그리스도인을 맛을 잃은 소금으로 비유하셨습니다.

 

    우리나라에는 맛을 잃은 소금이 없지만,

    암염(巖鹽)을 사용하는 이스라엘의 경우 땅에서 캐낸 소금 덩어리에 흙이 섞여 있으니,

    그것을 물로 정제를 하면 찌꺼기인 흙이 남습니다.

 

    사람들은 그 흙덩어리와 오물들도 본래 소금에 포함되어 있었던 것이므로

    그것을 맛을 잃은 소금이라 부릅니다.

 

    그러나 그 흙에는 여전히 소금기가 남아 있으므로

    거름으로도 쓸 수 없어 쓰레기로 버려집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이 맛을 잃은 소금을 이름뿐인 그리스도인에 비유하신 것입니다.

 

 2) 영의 생명이 없는, 이름뿐인 거짓 그리스도인

 

    참된 제자의 길을 걷기를 거부하고,

    그저 교회 황동에 참여하여 겉보기에는 그리스도인인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 그리스도의 제자에는 합당치 않은 자들이 바로 맛을 잃은 소금들입니다.

 

묵상 : 명목상의 그리스도인에 대한 경고

 

    신앙생활을 하다가 중도에 포기하는 사람들,

    성경 말씀이 자기 생각과 다르다며 자기 생각을 고집하는 사람들,

    주께서 주시리라는 복보다 세상의 복을 더 구하는 자들,

    교회에는 형식적으로만 나올 뿐 실제로는 세상일에 더 분주한 사람들….

 

    이들이 모두 맛을 잃은 소금들입니다.

    이름뿐인 명목상의 그리스도인, 이들은 모두 마지막 심판대에서 멸망 당할 자들입니다.

    혹시 나는 맛을 잃은 소금은 아닌지 우리들 자신을 살펴봅시다.

 

 

주님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았다는

악한 영의 거짓말에 속지 말게 하옵소서.

 

더 늦기 전에 회개하라고 하신

주님의 절박하신 말씀을

우리도 세상에 전하게 하옵소서.

 

사람의 영혼을 살리고 구하는

건강한 믿음의 교회와 성도가 되게 하옵소서.

 

맛을 잃은 소금처럼 열매 없는 껍질뿐인

명목상의 그리스도인이 되지 않게 하옵소서.

 

이 세상을 변화시킬 힘과 능력이 회복된

신령한 교회와 성도들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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