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제목 :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설교본문 : 이사야 6:1~13(참조 4~6장)
설 교 자 : 송호영 목사
설 교 일 : 2022년 7월 2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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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론 :
하나님께서 인간의 역사에 개입하여 들어오시는 날을 ‘여호와의 날’이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인간 역사에 개입하시는 여호와의 날은
준비된 자에게는 하나님의 복을 받는 날이 되지만,
준비되지 않은 자에게는 그날이 저주와 재앙과 심판의 날이 됩니다.
그날의 심판이 너무나도 무섭고 두려워서
하나님께서는 그날이 오기 전에 미리 징조를 보이시는데
이렇게 그 날이 오기 전에 미리 징조를 보이시는 날을 ‘권고하는 날’이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보내어 경고의 말씀을 통해서 권고하시고,
그대로 말을 듣지 않으면 이런저런 재난과 재앙들을 통해서 권고하십니다.
이사야 1~39장은 이스라엘이 바벨론에 망하기 전
선지자 이사야를 통해 말씀으로 권고하신 경고의 말씀입니다.
1) 예루살렘의 지도자들을 제거하심(3:2~3)
우리가 지난주에 보았던 말씀 중에 이런 말씀이 있었습니다(3:2~3).
2. 그들이 의뢰하는 모든 용사와 군인과 재판관과 선지자와 복술자(점쟁이)와 장로와
3. 오십부장과 귀인(귀족)과 모사(謀士, 군 고문관, 정치가)와 정교한 장인과
능란한 요술쟁이를 그리하실 것이며(제하여 버리실 것이며),
3:2~3에는 유다와 예루살렘 백성들이 의지하는 11개의 지도자의 목록이 나옵니다.
이 목록에 복술자(점쟁이)와 요술쟁이가 포함되어 있는 것이 특이합니다.
이방인의 신을 섬기는 복술자와 요술쟁이가
유다와 예루살렘의 지도자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는 것은
당시 예루살렘이 얼마나 영적으로 타락했는지를 보여줍니다.
이것을 오늘날로 표현한다면 무당과 점쟁이가 교회의 장로가 된 것과 같습니다.
물론 무당과 점쟁이도
회개하고 예수님을 바르게 믿는다면 얼마든지 교회의 장로가 될 수도 있겠지만,
그들이 지금도 여전히 우상을 숭배하며 점을 치고
귀신의 힘을 빌어 요술을 하는 일을 하고 있음에도 그를 교회의 장로로 세웠다면
그 교회는 더 이상 주님을 섬기는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라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유다와 예루살렘이 이런 상황이 된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유다와 예루살렘의 지도자들을 모두 제거하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 그대로 바벨론에 멸망하기 전 여호야긴 왕 때에
유다의 지도자들이 바벨론에 포로가 되어 끌려갑니다.
2) 일곱 여자가 한 남자를 붙잡고(4:1)
1. 그날이 오면 일곱 여자가 한 남자를 붙잡고 말하기를
“우리가 우리의 떡을 먹으며 옷도 우리가 알아서 입으리니,
오직 당신의 이름으로 우리를 칭하게 하여
(당신을 우리의 남편이라고 부르게만 해 주어서)
우리의 수치를 면하게 해 주시오”하고 말하게 되리라.
남자들은 모두 전쟁에서 죽어서 눈을 씻고 찾아도 남자들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혹시 남자를 보게 되면 주변의 여자들이 모두 그 남자에게 찾아와서
생활은 자기들이 알아서 할 터이니
그저 누구의 아내라는 말만 하게 해 달라고 요청하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 당시는 남편 없는 여자나 아이가 없는 여자는
아주 큰 저주를 받은 수치스러운 여자로 알려져 있으니
그저 누구의 아내라고 불리면서
아이라도 키우며 살게 해 달라고 요청하게 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나라도 잃고 의지할 만한 모든 것이 다 무너진 상황을
이사야는 이렇게 표현하였습니다.
제 1 부 : 이사야를 통해 주시는 하나님의 경고의 말씀
1. 포도원의 노래
1) 기름진 땅에 극상품의 포도를 심으신 하나님(5:1~2)
1. 내가 나의 사랑하는 자를 위하여 노래하되, 나의 사랑하는 자의 포도원을 노래하리라.
나의 사랑하는 자에게 포도원이 있음이여, 심히 기름진 산에로다.
2. 땅을 파서 돌을 제하고 극상품 포도나무를 심었었도다.
그 안 가운데 망대를 세웠고, 또 그 안에 포도주 짜는 술틀을 팠었도다.
좋은 포도 맺기를 바랐더니 들포도가 맺혔도다.
하나님께서 죄에 빠진 이스라엘을 포도원에 비유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심히 기름진 산에 포도원을 만드셨습니다.
본래 그 땅은 기름진 땅이 아니라 돌이 아주 많은 척박한 땅이었으나
하나님께서 돌을 모두 골라내고 아주 기름진 땅으로 만드셨습니다.
그리고 그 포도원에 극상품의 포도나무를 심고,
그 안에 망대를 세우고, 포도주 틀도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악취가 나서 도저히 먹을 수 없는 들포도가 맺어졌습니다.
‘만군의 여호와의 포도원은 이스라엘 족속이요, 그의 기뻐하시는 포도나무는 유다 사람이라’(7절).
하나님께서 이 땅에 있는 모든 사람 중에서 이스라엘을 하나님의 백성으로 택하시고,
그들에게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을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주신 그 언약의 말씀을 통해
사람들이 죄의 사함을 받고 하나님의 백성이 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은 극상품의 포도나무에 비유됩니다.
2) 내가 내 포도원을 위해 무엇을 더 해야 한다는 말이냐(5:3~4)
3. 예루살렘 백성들아, 유다 사람들아,
구하노니 이제 나와 내 포도원 사이에 판단하라.
4. 내가 내 포도원을 위하여 행한 것 외에 무엇을 더할 것이 있었으랴?
내가 좋은 포도 맺기를 기다렸거늘 들포도를 맺힘은 어찜인고?
애굽에 노예로 있던 자들을
10가지의 재앙과 홍해가 갈라지는 기적을 일으키시면서 구해내셨습니다.
광야 40년을 지내는 동안 날마다 그들에게 먹을 것과 마실 것을 주시면서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으로 훈련을 시키셨습니다.
그리고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을 그들의 땅으로 주시고,
다윗과 솔로몬 시대에 이르러 본래 하나님께서 주시려 하셨던
그 거룩한 땅을 온전히 갖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하나님을 버리고 이방신을 섬기며
포학과 거짓과 우상숭배와 향락의 죄에 빠졌습니다.
하나님께서 죄와 향락에 빠진 예루살렘과 유다 주민들에게 말씀하십니다.
“이제 나와 내 포도원 사이를 한번 판단하여 보아라.
내가 내 포도원을 위하여 내가 한 일 이외에 무엇을 더 해야 한다는 말이냐?”
3) 내가 이제 포도원의 울타리와 담을 헐어버릴 것이라(5:5~6)
5. 이제 내가 내 포도원에 어떻게 행할 것을 너희에게 이르리라.
내가 그 울타리를 걷어 먹힘을 당하게 하며,
그 담을 헐어 짓밟히게 할 것이요,
6. “내가 그곳을 황폐하게 하리니(황무지가 되도록 내버려 둘 것이니),
다시는 가지치기도 못하게 하고 북을 돋우지도(김을 매지도) 못하게 하여
찔레와 형극(가시나무)만 자라나게 할 것이며,
내가 또 구름에게 명하여 그 위에 비를 내리지 못하게 하리라”하셨으니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이제 그 포도원의 울타리와 담을 헐어버릴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짐승들이 와서 그 포도원을 마구 짓밟고
마음대로 먹어버리도록 내버려 두실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은 예루살렘과 유다가 바벨론에 침략을 받아 포로가 될 것임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 묵상 :
➀ 극상품의 포도나무는 하나님께서 주신 생명의 말씀
극상품의 포도나무는 하나님께서 주신 생명의 말씀입니다.
이 말씀으로 죄에 빠진 사람도 그 죄의 사함을 받고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이 될 수 있으므로 극상품의 포도나무에 비유됩니다.
➁ 하나님께서 바라신 좋은 열매는 공평과 의
극상품의 포도나무를 심으신 후
하나님께서 기대하시는 좋은 열매는 ‘공평과 의’입니다.
공평은 세상에서 하나님의 말씀대로 바르고 공정하게 사는 것을 말하고,
의는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하나님을 바르게 섬기며 사는 것을 말합니다.
➂ 그러나 포학과 거짓과 우상숭배와 타락의 열매를 맺었다
그런데 하나님의 이런 복을 받고서도
그들이 말씀을 버리고 포학과 거짓과 우상숭배와 타락의 열매를 맺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아예 들으려고도 하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바로 본문에서 말하는 들포도입니다.
2. 일곱 개의 화(禍)
하나님께서는 들포도가 되어버린 예루살렘과 유다를 향하여
그들이 범한 죄를 고발하십니다.
본문 이사야 5:8~24에서 그들의 죄를 여섯 가지의 화(禍)로 정리하여 고발하십니다.
여기에서 말하는 화(禍)는 하나님의 저주의 심판을 뜻합니다.
악인이 죽은 후에 하나님 앞에서 받게 되는 저주의 심판을
이미 이 땅에서부터 그 육신에 갖고 사는 자들을 뜻합니다.
그래서 “화 있을진저”라 했습니다.
“이런 자는 이미 심판의 저주를 가진 자라”하는 말입니다.
➠ 화 있을진저 : 이 말을 주의해서 보십시오.
성경에 ‘화 있을진저’라고 쓰인 구절을 주의해서 보아야 합니다.
그 말씀에 속한 사람은 이미 심판을 받은 자라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이 경고의 말씀을 통해 회개하여 심판을 받는 자가 되지 말라는
하나님의 간절한 호소가 담긴 말씀이기도 합니다.
1) 첫째 화(禍) : 죄를 부끄러워할 줄도 모르는 자들(이사야 3:9)
9. 그들의 안색이 스스로 증거하며(얼굴 표정이 자신들의 죄를 스스로 고발하며),
그 죄를 발표하고 숨기지 아니함이 소돔과 같으니(소돔처럼 자기들의 죄를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스스로 드러내놓고 말하며 숨기려 하지도 않으니),
그들의 영혼에 화 있을진저, 그들이 재앙을 자취하였도다.
본문에는 여섯 개의 화가 나옵니다만,
이미 살펴본 이사야 3:9에서 화가 하나 더 나옵니다.
그것을 여기에 다시 정리합니다.
첫째 화는
하나님의 심판의 경고를 듣고도 두려워할 줄 모르는 자들,
말씀을 무시하고 아예 말씀을 들으려고도 하지 않는 자들입니다.
죄를 죄로 여기지 않는 자들,
소돔 사람들과 같은 타락한 삶을 살면서 부끄러운 줄 모르고
도리어 자기들의 죄를 자랑하며 떠드는 자들은
이미 이 땅에서 지옥의 저주의 심판을 받은 자들입니다.
2) 둘째 화(禍) : 끝없이 집과 밭을 사들이는 탐욕스러운 자들(5:8~10)
8. 너희가 집에 집을 더하고 밭에 밭을 더하여 계속 사들여서
다른 사람이 살 공간도 남기지 않고 자기 혼자만 살려고 하는 자들에게 화 있을진저
9. 만군의 여호와께서 내 귀에 말씀하시되, “정녕히 허다한 가옥이 황폐하게 될 것이니
크고 좋은 집들이라도 텅 빈 흉가가 되어 사람 하나 거기에 살지 않을 것이라.
10. 열흘 갈이 포도원에 겨우 포도주 한 바트(22ℓ)밖에 나오지 않겠고,
한 호멜(220ℓ)지기에는 (한 호멜을 거둘만한 밭에는)
겨우 한 에바(22ℓ)밖에 내지 못할 것이라.
여기서부터 본문에 나오는 화입니다.
둘째 화는
끝없이 집과 밭을 사들이는 탐욕에 빠진 자들입니다.
이들이 집과 밭을 사들이는 바람에
부동산 가격이 올라가 가난한 자들이 살 집을 마련하지 못합니다.
이에 하나님께서는 이들이 다른 사람이 살 공간은 마련하지 않고
자기 혼자만 살려 한다면서,
이들이 크고 좋은 집을 짓고 살지라도 그날이 오면
그 넓은 집이 텅 빈 흉가처럼 사람이 하나도 없는 집이 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또 열흘 갈이 포도원에 포도주가 겨우 한 바트(22ℓ)만 나올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보통 열흘 갈이 포도원이면 500바트가 나오는데 한 바트만 나오니
정상적인 수확의 1/500만 수확하는 것입니다.
또 한 호멜의 씨를 뿌려도 한 에바밖에 거두지 못합니다.
뿌려진 씨가 한 호멜(220ℓ)인데 거둔 열매가 고작 22ℓ입니다.
이것은 수확을 적게 한 탓도 있겠지만, 수확을 하여도 그 열매를 빼앗기기 때문입니다.
나라가 망하고 포로가 되었으니 자기가 거둔 열매를 먹을 수 없는 것입니다.
3) 셋째 화(禍) : 아침부터 독주를 찾는 방탕한 자들(5:11~12)
11.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독주를 마시며(아침부터 일어나서 독한 술을 찾아다니고),
밤이 깊도록 포도주에 취한 자들은 화 있을진저
12. 그들이 연회(잔치)에는 수금과 비파와 소고와 피리와 포도주를 갖추었어도
여호와께서 행하시는 일에는 관심을 두지 아니하며,
하나님께서 손으로 하신 일을 거들떠보지도 아니하는도다.
셋째 화는
아침부터 독한 술을 찾으면서 오늘은 어디에서 향락을 즐겨볼까 하는 것만 생각하는
방탕한 자들에 대한 것입니다.
자기들이 즐기는 잔치를 위해서는
수금과 비파와 소고와 피리와 포도주를 완벽하게 마련하면서도
하나님의 일에는 관심조차 두지 않는 이런 자들에게
지옥이 그 입맛을 다시면서 이들을 기다리고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자기의 삶을 위해서는 열심히 하지만
하나님을 위해서는 게으른 자들에 대한 경고입니다.
이런 자들은 하나님을 자기의 인생보다 못하게 여기고 있으므로
지옥이 그들을 기다립니다.
4) 넷째 화(禍) : 수레의 줄을 당기듯 죄를 끌어당기는 자들(5:18~19)
18. 거짓으로 끈을 만들어 악을 잡아끌며(악을 잡아당기며),
수레의 줄을 당기듯이 죄를 끌어당기는 자들에게 화 있을진저
19. 그들이 이르기를 ‘하나님은 자기 일을 속속히 이루어 우리에게 보게 할 것이며,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는 그 도모를(자기의 계획을) 속히 이루어
우리가 알게 할 것이라’하는도다.
(해설: 그들이 하나님더러 이르기를 “그가 하시는 일을 좀 더 서둘러서
빨리하시라고 해라. 그래야 우리가 보게 될 것이 아니냐?
계획을 빨리 이루시라고 해라.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가 세우신 계획을
빨리 이루어야 우리가 그것을 알아줄 터인데”하는도다.)
넷째 화는
수레의 줄을 당기듯 죄를 끌어당기는 자들에 대한 것입니다.
이들은 대담하게 죄를 짓고는 뻔뻔하게 자기들의 죄를 합리화시키는 자들을 가리킵니다.
그 죄가 발각이 되어도 부끄러운 줄 모르고
교묘한 궤변이나 늘어놓는 자들입니다.
이들은 하나님께서 심판을 내리신다고는 하는데 언제 심판을 내리신다는 것인지,
어디 한 번 하나님이 내리시는 심판이 무엇인지 보자며
선지자들을 빈정거리며 조롱합니다.
자기들이 이렇게 매일 죄를 짓고 사는데도 오히려 부자로 잘만 사는데
심판은 무슨 심판이냐며 하나님의 진노의 말씀을 전혀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5) 다섯째 화(禍) : 악을 선하다 선을 악하다 하는 자들(5:20)
20. 악을 선하다 하고 선을 악하다 하며, 어두움을 빛이라 하고 빛을 어두움이라 하며,
쓴 것을 달다고 하고 단 것을 쓰다고 하는 자들에게 화 있을진저,
다섯째 화는
선을 악하다 하고 악을 선하다 하고,
빛을 어둠이라 하고 어둠을 빛이라 하는 자들입니다.
선과 악을 바꾸어 나라의 질서를 무너뜨리는 자들입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바르게 사는 자들을 옥에 가두고,
자기들과 함께 죄를 짓는 자들에게는 오히려 상을 내리는
이런 파렴치한 통치자들에 대하여 하나님께서 진노의 심판을 내리십니다.
6) 여섯째 화(禍) : 스스로 지혜롭다고 여기는 자들(5:21)
21. 스스로 지혜롭다 하며 스스로 명철하다(스스로 똑똑한 자라, 많이 아는 자라)
하는 자들에게 화 있을진저,
여섯째 화는
스스로 자신이 지혜롭고 똑똑한 자라 자부하는 자들입니다.
자신의 지혜만 믿고 하나님의 말씀 듣기를 거부합니다.
차라리 내 주먹을 믿으라면서
자기 혼자의 힘으로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다고 자만하는 자들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이 내려질 때
이들은 두려움에 떨며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자들이 될 것입니다.
7) 일곱째 화(禍) : 포도주를 마시기에 용감하고 독주를 빚기에 용감한 자들(5:22)
22. 포도주를 마시기에 용감하며 독주를 빚기에 유능한 자들에게 화 있을진저,
일곱째 화는
셋째 화와 비슷하게 독주를 마시는 것을 자랑하는 자들입니다.
독한 술을 마시는 것이 이들의 자랑거리입니다.
남보다 더 독한 술을 만드는 것을 자랑으로 여깁니다.
하나님의 말씀보다 술을 더 좋아하는 자들에 대하여 하나님께서 진노하십니다.
3.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
1) 지푸라기와 마른 풀이 불길에 스러지듯(5:24)
24. 이로 인하여 지푸라기가 불길에 휩싸이듯
마른풀이 불 속에 떨어져 스러지듯 그들의 뿌리가 썩겠고,
꽃잎이 말라서 티끌처럼 날아가 버릴 것이니(없어지리니)
그들이 만군의 여호와의 율법을 버리며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의 말씀을 멸시하였기 때문이라.
이렇게 하나님의 진노를 받을만한 삶을 사는 자들은
장차 그날이 오면 마치 지푸라기와 마른 풀이 불 속에서 금방 타 없어지는 것처럼
주님의 심판의 불에 사라지고 말 것입니다.
여호와의 율법을 무시하고 멸시했기 때문입니다.
2) 그들의 시체가 쓰레기처럼 버려질 것이라(5:25)
25.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에게 노를 발하시고 손을 들어 그들을 치셨으므로
산들이 진동하고 사람의 시체가 거리 한가운데 버려진 분토(쓰레기)와 같이 되었으나
그럴지라도 하나님의 노가 돌아서지 아니하였고,
그 손(심판의 손)이 오히려 펴졌느니라.
이렇게 하나님의 진노를 받을만한 삶을 사는 자들은
마치 쓰레기가 길 한복판에 버려지듯 그렇게 이들이 시체가 버려지게 될 것입니다.
아무도 이런 자들의 죽음을 슬퍼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저 지나가는 개나 짐승이 죽은 것처럼 여겨지게 될 것입니다.
3) 그들을 침략하는 적들은 조는 자도 없을 것이며, 활은 당겨져 있고(5:26~29)
26. 또 그가 깃발을 올리셔서 멀리 있는 나라들을 부르시고,
휘파람을 불어 그들을 땅끝에서부터 부르시니 그들이 빨리 달려올 것이로되,
27. 그들 가운데 곤핍하여 넘어지는 자도 없을 것이며,
조는 자와 자는 자도 없을 것이며,
허리띠는 풀리지 아니하며, 신발 끈이 끊어진 자도 없을 것이라.
28. 그들의 화살은 날카롭게 날이 섰고, 모든 활은 팽팽하게 당겨져 있으며,
말발굽은 부싯돌(차돌)같이 단단하고 병거 바퀴는 회오리바람처럼 구를 것이라.
29. 그들의 부르짖음은 암사자 같을 것이요,
그들의 소리 지름은 젊은 사자가 포효하는 것과 같을 것이라.
그들이 부르짖으며 물건을 움키어 염려 없이 가져가도 건진 자가 없으리라.
이런 자들을 침략하는 적들은 조는 자도 없고 신발 끈이 풀리는 법도 없을 것입니다.
그들의 화살은 날카롭게 날이 서 있고, 활은 팽팽하게 당겨져 있습니다.
언제든지 하나님께서 명령만 하시면 곧바로 심판이 내려질 위기의 상황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정작 본인은 이런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4) 흑암과 고난만 있고 빛은 가려져 어두울 것이라(5:30)
30. 그날에 그들이 바다 물결 소리(성난 파도 소리)같이
백성을 향하여 부르짖으리니(으르렁거릴 것이니),
사람이 그 땅을 바라보면 거기에는 흑암과 고난만 있고
빛은 구름에 가리워져서 어두우리라.
4:2~6에서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을 빛으로 인도하시는 것과 반대로
이런 자들은 흑암의 고난만 있고 빛은 가려지게 될 것입니다.
아직은 하나님의 심판이 내려져 있지 않으니
그 평안이 언제까지나 계속되리라고 믿고 있겠지만,
조만간 여호와의 진노의 날이 오면
그들의 삶은 흑암과 고난만 있고, 절망만 가득한 자가 될 것입니다.
● 묵상 :
마태복음 5장의 팔복과 비교하여 보십시오.
팔복에서 “복이 있나니”는 이미 하나님의 생명의 복이 임한 상태라는 것인데,
여기에서 “화 있을진저”는 이미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이 내려진 상태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있는 자는 이미 천국의 생명을 가진 자들이요,
화에 해당하는 자는 이미 저주의 심판을 가지고 사는 자들입니다.
이 말씀을 보고 나는 어디에 속한 자인지 자신을 살펴보기 바랍니다.
제 2 부 :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하나님께서는 온 우주는 홀로 주관하시지만,
오직 하나 사람을 구원하는 일만은 꼭 사람과 함께 일하십니다.
천사에게도 맡기지 않으시고, 이미 돌아가신 분에게도 맡기지 않으십니다.
오직 이 땅에 살아있는지 중에 일부의 사람을 택하여 하나님의 일꾼으로 삼으시고,
그들을 통해, 그들과 함께 사람을 구원하는 일을 하십니다.
웃시야 왕이 죽던 해는 남왕국 유다가 바벨론에 망하기 약 150년쯤 전입니다(6:1).
하나님께서 150년 후에 유다를 멸망시키시기 전에 이사야를 하나님의 종으로 부르셔서,
그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게 하십니다.
1. 이사야의 소명
1) 웃시야 왕이 죽던 해에(6:1)
(1절 성경구절 아래)
웃시야 왕은 16세에 왕이 되어 52년간 통치한 후 주전 747년에 죽었습니다.
웃시야는 하나님의 사업에 열성적이었으나,
그 열성이 지나쳐 제사장의 일까지 하려다
하나님의 징계를 받아 문둥병 환자가 되었습니다(역대하 26:16~21).
이샤야는 그의 사촌 형이기도 한 웃시야 왕이 죽었을 때
충격과 실망감을 안고 성전에 올라갔다가
하나님의 보좌의 환상을 보고 소명까지 받게 됩니다.
왕을 사촌으로 돈 왕족의 자리에서 두려울 것도 없고 아쉬울 것도 없이 살았던 이사야가
웃시야 왕이 죽으면서 한순간에 홀로 있는 것 같은 두려움을 느꼈을 것입니다.
그 충격이 얼마나 컸는지 알 수 없으나, 여기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이사야는 그 충격과 아쉬운 마음을 하나님 앞에서 해결하려 했다는 점입니다.
2) 하나님의 보좌의 환상을 보는 이사야(6:1~4)
1. 웃시야 왕이 죽던 해에 내가 보니 주께서 높이 들린 보좌에 앉으셨는데,
그 옷자락은 성전에 가득하였고
2. 주님의 주위에는 ‘스랍’이라고 하는 천사들이 모시고 서 있었는데,
각기 여섯 날개가 있어 그 둘로는 자기의 얼굴을 가리었고,
그 둘로는 자기의 발을 가리었고, 그 둘로는 날며
3. 서로 창화하여(서로 화답하여) 노래하며 이르기를
“거룩하다 거룩하다 만군의 여호와의 그 영광이 온 땅에 충만하도다” 하였더라.
4. 이같이 창화(화답)하는 자의 소리로 인하여 문지방의 터가 요동하였고,
성전에는 연기가 가득한지라
왕의 죽음으로 받은 충격을 달래기 위해 성전에 나와 기도하던 이사야는
환상으로 하나님의 보좌를 봅니다.
하나님께서 높이 들려있는 보좌에 앉으셨는데,
그 옷자락이 성전에 가득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보좌 주변에는 하나님의 최측근에서 하나님을 섬기는
‘스랍’이라는 천사들이 있었습니다.
스랍 천사들은 날개가 여섯이 있었는데,
그 둘로는 얼굴을 가리었고 그 둘로는 다리를 가렸고 둘로는 날고 있었습니다.
스랍 천사들이 그렇게 하나님의 보좌 주변에서 날면서
서로 화답하며 “거룩하다 거룩하다 만군의 여호와의 영광이 온 땅에 충만하도다”
라는 찬양을 하고 있었습니다.
이 찬양의 소리가 얼마나 큰지 성전의 문지방의 터가 요동할 정도였습니다.
3) 이사야를 정결케 하신 하나님(6:5~7)
5. 그때 내가 말하기를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입술이 부정한 백성 중에 거하면서 만군의 여호와이신 왕을 뵈었음이로다”하였는데,
6. 그때 그 스랍 천사들 가운데 하나가 부젓가락으로
제단에서 벌겋게 타는 숯불을 집어 손에 들고 나에게 날아와서
7. 그것을 내 입에 대며 가로되
“이것이 네 입에 닿았으니 네 악이 제하여졌고, 네 죄가 사하여졌느니라.”
환상으로 하나님의 보좌를 이사야는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하며 한탄을 했습니다.
이 땅에 살아있는 사람이 하나님을 보면 그 죄로 인하여 죽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자 하나님 보좌 곁에 있던 스랍 천사들 중 하나가
제단에서 벌겋게 타고 있던 숯불을 불집게로 집어서 손에 들고 날아와서
이사야의 입에 대며 말했습니다.
“이것이 네 입에 닿았으니 네 악이 제하여졌고 네 죄가 사하여졌느니라.”
4)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6:8)
8. 그때 내가 주께서 말씀하시는 들은즉 이르시되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그때 내가 가로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그때 하나님께서 그 보좌에서 말씀하십니다.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그때 이사야가 대답했습니다.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하나님께서 “누가 세상에 나가서 우리를 위하여 일해줄까?”하고 말씀하실 때
이사야는 하나님께서 명하시는 일이 어떤 일인지도 알지 못한 채
그 앞에 엎드려 “나를 보내소서”하고 아뢴 것입니다.
● 묵상 : 이사야가 하나님께 부르심을 받았을 때 다른 사람과 다른 점
➀ 첫째 : 충격을 받은 일을 만났을 때 하나님께 더욱 간절히 기도함
존경하며 의지했던 사촌형인 웃시야 왕이 죽은 일이
이사야에게 충격적인 사건이었으나
이런 정도의 충격은 우리도 흔하게 겪습니다.
그러나 이사야는 그 충격을 한숨이나 쉬며 자기 연민에 빠져 보낸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기도하며 보냈다는 점이 다릅니다.
평소와는 다른 기쁜 일이 있든지,
또는 이사야처럼 슬픈 일이나 가슴 아픈 일이 있을 때
그 감정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십시오.
이런 특별한 감정은 하나님을 더 깊이 사귈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됩니다.
그 기쁨으로 하나님께 더 감사할 수 있고,
그 슬픔과 아픔으로 하나님께 더 간절하게 기도할 수 있습니다.
➁ 둘째 : 신비한 경험을 하였을 때 하나님께 더 적극적으로 나아감
사촌형 웃시야 왕의 죽음으로 평소보다 더 간절한 기도를 드리던 이사야는
환상 중에 여호와 하나님의 보좌를 봅니다.
이사야는 하나님의 보좌가 공중에 높이 떠 있는 모습을 보았고,
그 보좌 주변에서 스랍 천사들이
하나님을 섬기며 큰 소리로 찬양을 하는 장면을 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그 보좌에서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라고 말씀하시는 소리를 듣습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을 주목해서 보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사야를 지목하여 “네가 이것을 하라”하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므로 만일 이사야가 평소에
하나님을 섬기려는 간절한 열망을 가진 사람이 아니었다면
그 환상을 그저 자기가 경험한 신기한 경험 정도로 여기고 지나쳤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사야는 그 말씀을 듣자마자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하고 아룁니다.
하나님께서 무엇을 명령하실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이사야는 자기가 하겠노라고 즉시 고백합니다.
하나님을 향한 적극적인 고백,
하나님을 섬기려는 적극적인 자세가 바로 다른 사람과 다른 점입니다.
만일 이사야가 이렇게 적극적으로 하나님께 아뢰지 않았다면
이 환상한 그저 신기한 경험으로 스처 지나가는 것이 되었을 것입니다.
➂ 셋째 : 깨달았을 때 지체하지 않고 그 말씀에 순종함
이사야는 하나님께 그렇게 고백한 후에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대로 즉시 행하였습니다.
이것이 또한 이사야와 다른 사람과의 다른 점입니다.
기도하거나 말씀을 묵상할 때
우리도 이사야처럼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깨닫는 경우를 종종 경험합니다.
이사야처럼 극적인 환상은 아니지만,
말씀을 깨닫는 경우는 우리에게도 종종 일어납니다.
그러나 이사야처럼 그 깨달은 대로 즉시 순종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기도를 할 때에든지 말씀을 묵상을 할 때에든지 간에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게 되었다면
즉시 순종하는 자가 되십시오. 이런 자가 복 있는 자입니다.
2. 이사야에게 주신 사명
1) 이 백성의 마음을 둔하게 하며 귀가 막히고 눈이 감기게 하라(6:9~10)
9.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너는 가서 이 백성에게 이르기를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하여
10. 이 백성의 마음을 둔하게 하며, 그들의 귀가 막히고, 그들의 눈이 감기게 하라.
염려하건대 그들이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닫고
다시 돌아와서 고침을 받을까 하노라.”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라는 하나님의 탄식하시는 말씀을 듣자마자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바로 그다음 순간에 하나님께서
아주 중요한 명령을 주실 것이라고 기대할 것입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다음에 하나님께서 이사야에게 주신 말씀은
이스라엘 백성의 눈과 귀를 닫게 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왜 하나님께서 이사야에게 이런 말씀을 하셨을까요?
➀ 이 백성의 마음을 둔하게 하여(10절)
하나님께서는 이사야에게 그의 말을 듣는 자로 하여금
듣기도 싫고 보기도 싫게 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은 아주 듣기도 싫고 보기도 싫은 말을 하라는 것입니다.
혹시 알아듣고 회개할까 봐 걱정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이 듣기 싫은 말을 하라는 것입니다.
백성들이 듣기도 싫고 보기도 싫은 말을 하라고 해서
전혀 엉뚱한 말을 하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이사야가 전한 말은 분명히 듣는 자로 하여금 구원을 받게 하는 은혜의 말씀입니다.
그런데 백성이 그 은혜의 말씀을 듣기 싫어하기 때문에
듣기도 싫고 보기도 싫은 말이 된 것입니다.
② 백성들이 듣기 좋은 설교를 하지 말라는 것
이미 백성들의 마음은 하나님을 떠나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백성들을 모으겠다며 그들이 듣기 좋은 설교만 한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성도들을 많이 모으는 데에는 성공을 하겠지만
그 설교를 듣는 자들을 구원하는 데에는 실패를 할 것입니다.
이미 백성들의 마음이 하나님을 떠나 있어서
이사야가 전하는 은혜의 말씀을 들으려고도 하지 않겠지만,
그럴지라도 하나님께서 주시는 말씀을 전해야 합니다.
혹시 한 사람이라도 그 말씀을 듣는 자가 있다면
그를 구원받게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③ 염려하건대 깨닫고 돌아와서 고침을 받을까 하노라(10절)
10. 이 백성의 마음을 둔하게 하며, 그들의 귀가 막히고, 그들의 눈이 감기게 하라.
염려하건대 그들이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닫고
다시 돌아와서 고침을 받을까 하노라.”
오늘 본문의 말씀에서 우리가 가장 충격을 받는 부분이 바로 이 말씀입니다.
이사야를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로 보내시면서도
하나님께서는 혹시 한 사람이라도 그의 말을 듣고 회개하는 자가 있으면
어떻게 하느냐고 걱정하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이미 하나님께서 그들을 심판하기로 작정하셨다는 것을 뜻합니다.
혹시라도 회개하는 자가 있다면 그들을 구원하기는 하시겠지만,
그들이 회개하기를 바라지 않으실 정도로
하나님께서 그들을 마음에서 지우셨다는 것을 뜻합니다.
그럴지라도 그들이 아직 이 땅에 살아있는 한 회개의 기회는 남아 있습니다.
그러므로 한 편으로는 그들을 심판하기를 원하시는 마음이 있지만,
한 편으로는 그들이 구원받을 수 있는 마지막 기회를 주시기 위해
선지자 이사야를 그들에게 보내시는 것입니다.
2) 주여 어느 때까지니이까? 이 땅이 버려질 때까지니라(6:11~12)
11. 내가 가로되 “주여, 어느 때까지니이까?”
주께서 대답하시되 “성읍들은 황폐하여 거민이 없으며
가옥들에는 사람이 없고, 이 토지는 황무지가 되며,
12. 나 여호와가 사람들을 멀리 옮겨서
이 땅 가운데 황폐한(버려진) 곳이 많을 때까지니라.
백성들 중에 이사야 선지자가 전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려 하는 자가 없습니다.
그럼에도 이사야는 혹시 한 사람이라도 듣는 자가 있을까 싶은 마음에
이 말씀을 전해야 합니다.
이사야는 이런 일을 언제까지 해야 하느냐고 하나님께 물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백성들이 모두 포로로 사로잡혀가서
이 땅이 황폐하게 될 때까지 계속 전하라 하십니다.
3) 십 분의 일이 남아있을지라도(6:13)
13. 그중에 십 분의 일이 그 땅에 남아 있을지라도
그들도 삼키운 바 될 것이라(불에 타서 소멸될 것이라).
그러나 밤나무나 상수리나무가 베임을 당하여도 그 그루터기는 남아 있는 것같이
거룩한 씨가 이 땅의 그루터기니라.”
하나님의 심판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십 분의 일만 남게 된 상황에서도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
십 분의 일은 이스라엘의 수 개념으로 볼 때 극히 적은 수를 뜻합니다.
이스라엘이 극히 적은 수만 남게 되더라도
그들을 향한 하나님의 심판은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
마치 도망하는 자들을 끝까지 추격하는 무자비한 침략자들처럼
하나님께서 그들을 심판하실 것입니다.
● 묵상 : 거룩한 씨 그루터기
그러나 그렇게 이스라엘의 모든 백성들이 다 멸망 당한 후에도
그루터기는 남을 것입니다.
마치 밤나무나 상수리나무를 밑동까지 모두 잘라버린 후에도
그 그루터기에서 새싹이 나오듯,
그 혼란의 때에도 하나님을 향한 믿음을 끝까지 버리지 않은 자들이 있을 것입니다.
그들이 바로 하나님의 구원의 새 역사를 이룰 거룩한 씨 그루터기입니다.
결 론 : 일꾼을 부르시는 하나님
1) 세상을 구하는 일을 사람에게 맡기시는 하나님
하나님께서 하시는 모든 일 중에 가장 중요하게 여기시는 일이
바로 세상 사람들을 구원하는 일입니다.
그런데 그 중요한 일을 사람에게 맡기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단 한 번도 사람을 구원하는 복음 전하는 일을
천사에게 맡기신 적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이 멸망 당하게 될 즈음에
그들을 구원하는 복음을 전하러 갈 자가 누구냐며
하나님께서 탄식하는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2) 일꾼을 부르시는 하나님
왜 우리보다 더 능력이 많은 천사에게 맡기지 않으시고
늘 넘어지기만 하는 우리에게 이 일을 맡기실까요?
그 일을 하는 그의 일꾼들에게 복을 주시기 위해서입니다.
효율성이 익숙한 우리들로서는
하나님께서 이 중요한 일을 사람에게 맡기시는 것을 잘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어쨌든 하나님께서 그렇게 결정하셨으니,
세상 만민을 구원하는 그 마지막 중요한 일이 우리에게 맡겨져 있다는 것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 묵상 : 주여 나를 보내소서
그러므로 우리도 이사야의 고백을 해야 합니다.
우리가 멈추면 세상 사람들에게 구원의 복음이 전달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의 영혼을 구하는 일에 나를 사용해달라고 기도합시다.
어떤 사람은 다른 사람의 말을 들어주는 일로,
어떤 사람은 아름다운 음악을 통해,
어떤 사람은 병든 몸과 병든 마음을 치료해주는 일로,
어떤 사람은 법을 잘 모르는 사람을 돕는 일로 ….
각자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주신 은사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하기 위해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여
사람의 영혼을 살리는 일을 합시다.
이 일은 우리가 육신을 입고 있는 동안에만 할 수 있는 일입니다.
남은 시간을 낭비하지 맙시다.
주님
하나님의 말씀을 두려움으로
듣는 자가 되게 하옵소서.
저주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의 복
안에서
사는 자가 되게 하옵소서.
날마다 내가 어디에 속한 자인지
자신을 살피며 살게 하옵소서.
우리도 이사야처럼
늘 하나님께 기도하며 사는
신실한 성도가 되게 하옵소서.
우리도 이사야처럼 주님의 일꾼 되기를
열망하는 자들이 되게 하옵소서.
끝까지 믿음을 지키는
거룩한 씨 그루터기들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