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제목 : 저의 눈을 열어 보게 하옵소서
설교본문 : 열왕기하 7:1~20
설 교 자 : 송호영 목사
설 교 일 : 2022년 10월 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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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론 :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뛰어난 예언자 두 사람이 있습니다.
이 두 사람은 이스라엘이 가장 사악한 때
하나님께서 그들을 하나님 품으로 돌아오도록 하기 위해 보내신 보내신 능력의 예언자입니다.
오늘은 구약의 선지자들 중에서 가장 뛰어난 예언자였던 엘리야에 이어서
두 번째로 놀라운 능력을 가졌던 그의 제자 엘리사에 대한 말씀을 전하려 합니다.
엘리사에 대한 것 중에 특별한 것 두 기적에 대한 말씀만 전하고,
나머지는 간단하게 그 내용을 요약합니다.
(자세한 내용은 해당 구절 큐티를 참조해주시고, 이 부분의 성경구절은 성경을 참조해주십시오.)
1) 엘리야의 뒤를 이은 수석제자가 된 엘리사(2:9~14)
엘리야가 하늘로 승천하여 올라갈 때
엘리사가 엘리야에게 갑절의 영감(엘리야의 수석제자)을 달라고 하자
엘리야는 자기의 마지막을 보면 그렇게 될 것이라고 하고는
회오리바람을 타고 하늘로 올라갑니다.
엘리사는 엘리야의 겉옷으로 요단강을 가르고 마른 땅으로 건넙니다.
2) 소금으로 물의 근원을 치유한 엘리사(2:18~22)
벧엘에서 토지 소산을 익지 못하게 하는 독이 있는 수질이 나쁜 샘이 있었는데
엘리사가 고쳐 깨끗한 물이 되게 합니다.
3) 마른 골짜기에 물이 가득 채워지고, 그 물이 피처럼 보임(3:15~24)
북왕국 이스라엘과 남왕국 유다와 에돔, 세 나라의 연합군과 모압이 전쟁할 때입니다.
에스겔의 명에 따라 세 왕에게 바싹 마른 개천을 깊이 팠더니
이튿날 아침에 에돔 쪽에서 물이 흘러와 골짜기에 가득 찼습니다.
모압 사람들이 햇빛에 비친 모습을 붉은 피로 착각하여
이스라엘을 노략질하러 가자며 가벼운 마음으로 왔다가 크게 패합니다.
4) 이웃에게 그릇을 빌려 있는 대로 가져오라(4:1~7)
선지자 생도의 아내들 중에 한 여인이 엘리사에게 와서
자기 남편은 죽었는데 빚을 준 사람이 두 아들을 자기의 종으로 삼으려 한다고 호소합니다.
엘리사는 집에 무엇이 있느냐고 묻습니다.
기름이 있다고 하자 이웃에게 할 수 있는 대로 그릇을 많이 빌리라고 하고는,
그 그릇에 기름을 부으라고 말합니다.
모든 그릇에 기름이 채워지자 기름이 그칩니다.
엘리사는 그 기름을 팔아 빚을 갚고 남은 것으로 생활하라고 말합니다.
5) 수넴 여자의 아들을 살린 엘리사(4:32~37)
엘리사를 극진히 섬기는 수넴 여인의 아들이 죽자
엘리사가 그 아이가 있는 자기 방으로 들어가 여호와께 기도하고
두 번 그 아이 위에 엎드리니 아이가 일곱 번 재채기를 하며 살아납니다.
6) 나아만의 문둥병을 고친 엘리사(5:1~14)
문둥병에 걸린 아람 왕국의 군대장관 나아만이 엘리사를 찾아오자
엘리사는 사람을 보내 가서 요단강에 몸을 일곱 번 씻으라고 말합니다.
분노한 나아만은 그냥 가려다가 부하들의 간곡한 권유로
요단강에 일곱 번 몸을 잠그자 어린아이처럼 살이 깨끗하여졌습니다.
(이 부분의 자세한 내용은 해당 큐티를 참조해주십시오.)
제 1 부 : 엘리사를 위해 하늘의 군대를 보내신 하나님
1. 엘리사의 첫 번째 기도 : 저의 눈을 열어 보게 하옵소서.
1) 아람 왕의 작전회의를 모두 이스라엘 왕에게 전하는 엘리사 (6:8~14)
8. 때에 아람 왕이 이스라엘로 더불어 싸우며 그 신복들과 의논하여 이르기를
“우리가 이러이러한 곳에 진을 치리라” 하였더니
9. 하나님의 사람이 이스라엘 왕에게 기별하여 가로되
“왕은 삼가 아무 곳으로 지나가지 마소서 아람 사람이 그곳으로 나오나이다.”
10. 이스라엘 왕이 하나님의 사람의 자기에게 고하여
경계한 곳으로 사람을 보내어 방비하기가 한두 번이 아닌지라.
11. 이러므로 아람 왕의 마음이 번뇌하여 그 신복들을 불러 이르되
“우리 중에 누가 이스라엘 왕의 내응이 된 것을 내게 고하지 아니하느냐?”
12. 그 신복 중에 하나가 가로되 “우리 주 왕이여, 아니로소이다. 오직 이스라엘
선지자 엘리사가 왕이 침실에서 하신 말씀이라도 이스라엘 왕에게 고하나이다.”
13. 왕이 가로되 “너희는 가서 엘리사가 어디 있나 보라. 내가 보내어 잡으리라.”
혹이 왕에게 고하여 가로되 “엘리사가 도단에 있나이다.”
14. 왕이 이에 말과 병거와 많은 군사를 보내매 저희가 밤에 가서 그 성을 에워쌌더라.
아람 왕이 이스라엘 왕과 전쟁을 할 때의 일입니다.
아람 왕이 참모들과 작전회의를 하는 모든 것을
엘리사가 다 알아서 이스라엘 왕에게 알려주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왕이 미리 대비를 하여 아람 왕은 번번이 작전에 실패하였습니다.
아람 왕은 이스라엘 왕과 내통한 자를 색출하라고 불호령을 내립니다.
그러자 아람 왕의 신하들이 이스라엘의 선지자 엘리사가
아람 왕이 침실에서 한 말까지 모두 이스라엘 왕에게 알려주었기 때문이라고 하였습니다.
그 말을 듣고 아람 왕은 엘리사가 사는 도단 성읍을 밤에 몰래 포위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많은 군대를 보내 도단 성읍을 포위한다고 할지라도
결단코 엘리사를 잡을 수 없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2) 엘리사의 첫 번째 기도 : 저의 눈을 열어 하나님의 일을 보게 하옵소서(6:15~17)
15. 하나님의 사람의 수종드는 자가 일찌기 일어나서 나가보니
군사와 말과 병거가 성을 에워쌌는지라.
그 사환이 엘리사에게 고하되 “아아, 내 주여 우리가 어찌하리이까?”
16. 대답하되 “두려워하지 말라.
우리와 함께한 자가 저와 함께한 자보다 많으니라” 하고
17. 기도하여 가로되 “여호와여 원컨대 저의 눈을 열어서 보게 하옵소서” 하니
여호와께서 그 사환의 눈을 여시매
저가 보니 불말과 불병거가 산에 가득하여 엘리사를 둘렀더라.
엘리사의 시종이 아침 일찍 일어나 밖에 나왔다가 큰 군대가 말과 병거들을 이끌고
엘리사와 그가 살고 있는 도단 성읍을 포위하고 있는 것을 발견합니다.
시종은 엘리사에게 가서 우리는 이제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고 말합니다.
엘리사는 우리와 함께 한 자들이 저들과 함께 한 자들보다 훨씬 더 많다고 하면서
여호와께 “저의 눈을 열어서 보게 하옵소서”하고 기도합니다.
그러자 아람의 군대보다 훨씬 더 많은 하늘의 군사들이
불 말과 불 병거를 타고 엘리사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것을 봅니다.
그 시종의 눈이 멀어서 눈이 떠지게 해 달라고 기도한 것이 아닙니다.
영의 눈이 떠지게 해 달라고 기도한 것입니다.
영의 눈이 떠져야만 하나님께서 하신 일이 보이게 되기 때문입니다.
3) 아람의 군대보다 훨씬 더 많은 하나님의 군대(6:17)
(성경구절 위에)
하나님께서 엘리사의 시종의 영의 눈이 떠지게 하신 후에 주변을 보니
아람 군대보다 훨씬 더 많은 하나님의 군대가
불 말과 불 병거를 타고 와서 엘리사의 주변을 지키고 있는 것이 보였습니다.
● 묵상 : 날마다 우리를 지키시는 하나님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는 주님을 믿고 섬기는 당신을 위해서도
매일 이렇게 하나님의 군대를 보내셔서 지키십니다.
우리 육신의 눈에 보이지 않을 뿐입니다.
눈에 보이지 않아도 우리는 믿음으로 주께서
하나님의 군대를 보내셔서 우리를 지키고 계신 것을 믿습니다.
그 믿음으로 강하고 담대하게 살아가는 자가 되십시오.
2. 엘리사의 두 번째 기도 : 저들의 눈을 어둡게 해 주옵소서(6:18)
18. 아람 사람이 엘리사에게 내려오매 엘리사가 여호와께 기도하여 가로되
“원컨대 저 무리의 눈을 어둡게 하옵소서” 하매
엘리사의 말대로 그 눈을 어둡게 하신지라.
아람 군대가 엘리사가 있는 곳을 향하여 진격하여 내려오니 엘리사가 기도합니다.
“여호와여 저들의 눈을 어둡게 하여 주옵소서.”
그랬더니 그들의 눈이 어두워졌습니다.
어두워졌다는 것의 원어의 뜻은 눈이 멀었다는 뜻이 아닙니다.
시력은 정상으로 모든 것이 다 잘 보이는데
지금 내가 어디에 있는지 방향감각을 완전히 잃어버렸다는 뜻입니다.
내가 왜 여기에 있는지, 여기가 어딘지 전혀 알지 못하는 자가 된 것입니다.
● 묵상 : 이 세상의 그 어떤 군대도 하나님의 군대를 이길 수 없습니다.
이 세상의 그 어떤 권세도 하나님을 이길 수 없습니다.
아무리 완벽하게 작전을 짜고 완벽한 무기로 준비했다고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그들의 정신을 잃게 하시면 그 완벽한 작전이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그보다 더한 것도 우리를 위해 하실 수 있다는 것을 믿고
강하고 담대한 성도들이 됩시다.
3. 엘리사의 세 번째 기도 : 저들의 눈을 열어 보게 하옵소서(6:19~20)
19. 엘리사가 저희에게 이르되 “이는 그 길이 아니요, 이는 그 성도 아니니
나를 따라 오라. 내가 너희를 인도하여 너희의 찾는 사람에게로 나아가리라”
하고 저희를 인도하여 사마리아에 이르니라.
20. 사마리아에 들어갈 때에 엘리사가 가로되
“여호와여, 이 무리의 눈을 열어서 보게 하옵소서” 하니
여호와께서 저희의 눈을 여시매 저희가 보니 자기가 사마리아 한 가운데 있더라.
엘리사가 그들에게 가서 여기는 당신들이 찾는 자가 사는 성읍이 아니라며
자기가 그곳으로 안내하겠다고 말합니다.
도단에서 사마리아까지는 약 19~20km로 걸어서 5시간 거리입니다.
엘리사가 그들을 북왕국 이스라엘의 도성 사마리아까지 인도하는 동안
그들은 전혀 알지 못하고 바보처럼 엘리사를 따라갑니다.
그들이 사마리아 성읍 안으로 들어갔을 때 엘리사가 다시 기도했습니다.
“여호와여 저들의 눈을 열어 보게 하옵소서.”
그랬더니 그들이 방향감각을 다시 회복하여
그들이 지금 사마리아 성읍 한복판에 와 있는 것을 알게 됩니다.
하나님의 선지자 엘리사를 붙잡으러 왔던 자들이
지금 화살 하나 쏴보지도 못한 채 포로가 된 것입니다.
4. 큰 잔치를 베풀어 먹이고 보내게 한 엘리사(6:21~23)
21. 이스라엘 왕이 저희를 보고 엘리사에게 이르되
“내 아버지여 내가 치리이까, 내가 치리이까?”
22. 대답하되 “치지 마소서. 칼과 활로 사로잡은 자인들 어찌 치리이까?
떡과 물을 그 앞에 두어 먹고 마시게 하고 그 주인에게로 돌려보내소서.”
23. 왕이 위하여 식물을 많이 베풀고 저희가 먹고 마시매 놓아 보내니
저희가 그 주인에게로 돌아가니라.
이로부터 아람 군사의 부대가 다시는 이스라엘 땅에 들어오지 못하니라
이스라엘 왕이 엘리사에게 “저들을 다 죽여 버릴까요?”하고 묻습니다.
그러나 고대 근동지방에서 포로들을 이렇게 무참히 학살하는 법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엘리사는 칼이나 화살로 사로잡은 자라고 할지라도 죽일 수는 없는 법인데,
하물며 하나님의 능력으로 붙잡은 자들을 죽여서야 되겠느냐고 말하고는,
그러지 말고 떡과 물을 주어 잘 먹인 후에 돌려보내라고 말합니다.
이에 이스라엘 왕이 그들을 위하여 큰 잔치를 베풀어서
그들을 잘 먹인 후에 아람으로 돌려보내니
한동안 그들이 이스라엘을 치려는 마음조차 먹지 못합니다.
● 묵상 :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였더니 이스라엘은 큰 나라로 인정받고,
적군은 감히 쳐들어올 엄두도 내지 못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길은 이처럼 복되고 아름다운 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믿고 그 말씀대로 순종하는 자들이 되십시오.
제 2 부 : 단 하루 만에 사마리아의 굶주림에서 벗어나게 하신 하나님
1. 사마리아의 절망적인 상황
1) 극심한 굶주림에 시달리는 사마리아(6:24~25)
24. 이 후에 아람 왕 벤하닷이 그 온 군대를 모아 올라와서 사마리아를 에워싸니
25. 아람 사람이 사마리아를 에워싸므로 성중이 크게 주려서
나귀 머리 하나에 은 팔십 세겔이요
합분태(비둘기 똥) 사분 일 갑에 은 다섯 세겔이라.
아람(시리아) 왕 벤하닷이 자기의 모든 군대를 소집하고 올라와서
사마리아 성을 포위하였습니다.
그들이 사마리아 성을 포위하였으므로 사마리아 성안에 굶주림이 심하여
나귀 머리 하나에 은 80 세겔에 거래되고,
비둘기 똥 사 분의 일 갑(0.3리터)에 은 다섯 세겔에 거래되었습니다.
나귀 머리는 부정한 동물이므로 식용으로 사용하지 않을뿐더러,
나귀를 식용으로 하는 이방인들조차 먹기가 까다롭고 맛도 없어서
가장 값이 싼 고기였습니다.
그런데 그런 나귀 머리 하나가 은 80 세겔이나 했습니다.
은 80 세겔이면 노동자 320일 치 임금에 해당하는 것으로
평소에는 곡식 576리터(다섯 가마 반)를 살 수 있는 가격입니다.
더구나 평소에는 땔감으로나 사용하던 사람이 먹을 수 없는 합분태(비둘기 똥)조차
사 분의 일 갑에 은 다섯 세겔에 거래되었습니다.
사 분의 일 갑은 0.3리터로 한 줌 정도입니다.
비둘기 똥 한 줌이 노동자 20일 치 임금에 거래된 것입니다.
다섯 세겔이면 평소에 곡식 36리터(약 2말)을 살 수 있는 가격입니다.
2) 극심한 굶주림에 자녀까지 삶아 먹는 참극(6:26~29)
26. 이스라엘 왕이 성 위로 통과할 때에 한 여인이 외쳐 가로되
“나의 주 왕이여 도우소서.”
27. 왕이 가로되 “여호와께서 너를 돕지 아니하시면 내가 무엇으로 너를 도우랴,
타작마당으로 말미암아 하겠느냐, 포도주 틀로 말미암아 하겠느냐?”
28. 또 가로되 “무슨 일이냐?” 여인이 대답하되 “이 여인이 내게 이르기를
‘네 아들을 내라 우리가 오늘날 먹고 내일은 내 아들을 먹자’ 하매
29. 우리가 드디어 내 아들을 삶아 먹었더니, 이튿날에 내가 이르되
‘네 아들을 내라. 우리가 먹으리라’ 하나 저가 그 아들을 숨겼나이다.”
이스라엘의 왕이 사마리아 성의 성벽 위를 걷고 있었습니다.
그때 한 여인이 왕에게 자기를 좀 도와달라고 하소연합니다.
왕은 하나님께서도 돕지 못하시는 것을 자기가 무슨 수로 돕겠느냐고 하면서
무슨 일이냐고 물었습니다.
그 여인은 “이 여자가 내게 말하기를
‘오늘은 네 아들을 잡아서 같이 먹고, 내일은 내 아들을 잡아서 같이 먹자’하였습니다.
그래서 먼저 내 아들을 삶아 먹었는데
다음 날 내가 저 여자의 아들을 잡아서 같이 먹자고 하였더니
저 여자가 자기 아들을 숨기고 내놓지 않고 있습니다.”
2. 회개 대신 엘리사를 죽이겠다고 말하는 이스라엘 왕
1) 회개 대신 남의 탓하는 이스라엘 왕(6:31)
31. 왕이 가로되 “사밧의 아들 엘리사의 머리가 오늘날 그 몸에 붙어 있으면
하나님이 내게 벌 위에 벌을 내리실찌로다” 하니라.
믿음의 사람이라고 해서 항상 바르게살기만 하는 것은 아닙니다.
아브라함도 죄를 범했고 다윗도 치명적인 죄를 범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의 경고가 주어졌을 때
곧바로 회개하고 자기들이 있어야 할 신앙의 자리로 돌아왔습니다.
하지만 이스라엘 왕은 이런 엄청난 경고가
그가 다스리는 나라 전체에 내려지고 있음에도 깨닫지 못하고,
그 모든 재앙의 원인을 하나님의 사람 엘리사 탓으로 돌립니다.
➠ 이런 사람들은 항상 불평과 원망을 입에서 달고 살아갑니다.
시련과 아픔의 원인을 항상 주변의 다른 사람에게 찾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이 출애굽 할 때에도 그랬습니다.
광야 40년을 지내면서 이렇게 불평하고 원망하는 자들은
단 사람도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했다는 것을 기억하고,
우리는 불평하고 원망하는 자들이 되지 맙시다.
2) 재앙을 내리신 하나님께 대한 도전 : 하나님의 사람을 죽이려 함(6:33)
33. 무리와 말씀할 때에 그 사자가 이르니라
“왕이 가로되
‘이 재앙이 여호와께로부터 나왔으니 어찌 더 여호와를 기다리리요’”
(이 재앙을 내리신 이가 하나님이신데 우리가 하나님께 무엇을 더 기대하겠느냐?)
이스라엘 왕이 엘리사를 죽이려는 두 번째 이유는,
이 모든 재앙이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므로
그 재앙을 내리신 하나님을 대적하려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직접 상대하여 대적할 수 없으니
그 대신 하나님의 사람 엘리사를 죽이려하는 것입니다.
3) 하나님을 대적할 힘이 있다고 생각하는 오만
여기에서 우리가 꼭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이스라엘 왕이 감히 하나님을 대적하여 싸울 생각을 했다는 점입니다.
자기가 왕이니 하나님을 대적할 힘이 자기에게 있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가 설령 엘리사를 죽일 수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으로 하나님을 힘들게 하거나 하나님께 손해를 입힌 것은 결코 아닙니다.
엘리사를 죽였다면
그가 그동안 저지른 죄에 하나님의 사람을 죽이는 죄를 더한 것뿐입니다.
그래봐야 예수께서 바울에게 했던
“말이 가시채를 뒷발질하기가 네게 고생이라”(행 26:14)라고 한 말씀과 같이
자기만 멸망을 당하는 자가 될 뿐입니다.
➠ 내가 하나님을 떠나면 나만 홀로 고생하는 것입니다.
내가 주일예배를 드리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손해 보시는 것입니까?
내가 주님을 배반하여 세상으로 나가면 하나님께서 손해 보시는 것입니까?
내가 교회를 분란을 일으키서 주님의 교회가 무너졌다면
그 일로 하나님께서 손해 보시는 것입니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전혀 손해를 보지 않으시고
나만 홀로 멸망을 당하여 영원히 고통을 당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울컥하는 마음에 믿음을 버리는 자도 되지 말고,
다른 사람이 죄를 범하는 것을 보았다고 하여 덩달아 죄를 범하는 자도 되지 마십시오.
또 권세를 잡았다고 하나님도 몰라보는 교만한 자가 되지 마십시오.
그래봐야 고생하는 것은 바로 죄를 범하는 나뿐이라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4) 속에 입은 굵은 베옷 : 정치적인 제스처(6:30)
30. 왕이 그 여인의 말을 듣고 자기 옷을 찢으니라.
저가 성 위로 지나갈 때에 백성이 본즉 그 속살에 굵은 베를 입었더라.
이 정도 상황이 되었다면 옷을 찢고 굵은 베옷을 입고 하나님 앞에 회개해야 합니다.
그런데 그는 겉에는 왕복을 입고 굵은 베옷을 속으로 입은 채 성벽 위를 걷고 있습니다.
왜 굵은 베옷을 겉옷으로 입지 않았을까요?
이 엄청난 참극의 상황에서도 왕으로서의 체통을 지키고 싶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형식적으로라도 회개하는 모습을 보이기는 해야겠으니
겉옷으로는 왕복을 그대로 입고 속으로 베옷을 입어
왕의 체통도 살리고 회개하는 모습도 보이도록 한 것입니다.
그러나 백성들이 자기가 속옷으로 입은 베옷을 보아야 하므로
높은 성벽 위를 걸어 백성들이 그 모습을 볼 수 있게 한 것입니다.
● 묵상 : 외식하는 바리새적인 신앙
이것이 바로 외식(外飾)하는 신앙입니다.
겉으로만 거룩한 척하고 속으로는 다른 생각을 하는 것,
마음에는 딴생각을 품고 있으면서 겉으로만 하나님을 섬기는 척하는 이중적인 신앙입니다.
이런 사람들일수록 사람들이 보기에는 거룩하게 보이지만
하나님께서는 그 사람의 심중을 꿰뚫어 보십니다.
예수께서 이런 사람들을 가장 싫어하셨다는 것을 기억하고,
하나님 앞에 순전하고 신실한 성도가 되기에 힘써야 할 것입니다.
3. 엘리사의 예언
1) 내일 이맘때가 되면 곡식 가격이 평소보다 훨씬 좋은 상황이(7:1)
1. 엘리사가 가로되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찌어다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내일 이맘때에 사마리아 성문에서 고운 가루 한 스아에 한 세겔을 하고
보리 두 스아에 한 세겔을 하리라’ 하셨느니라.”
엘리사를 죽이기 위해 이스라엘 왕이
신임하는 장관(왕의 보좌관)과 함께 엘리사의 처소에 들이닥치자
엘리사는 내일 이맘때가 되면 고운 밀가루 한 스아에 한 세겔하고,
보리 두 스아에 한 세겔 할 것이고 말합니다.
한 스아면 7.6리터로 넉 되쯤 되니
고운 밀가루 넉 되면 온 식구가 하루 먹고도 남을 양입니다.
그러므로 그 집에서 일하는 사람이 한 사람만 있어도
온 식구가 먹을 걱정 없을 정도의 양식을 살 수 있는 상황이 되니
평소보다 훨씬 좋은 상황이 되는 것입니다.
2) 믿지 않은 장관의 비극(7:2, 16~17)
2. 그때 한 장관 곧 왕이 그 손에 의지하는 자가 하나님의 사람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여호와께서 하늘에 창을 내신들 어찌 이런 일이 있으리요?”
엘리사가 가로되 “네가 네 눈으로 보리라. 그러나 그것을 먹지는 못하리라” 하니라
그러자 장관(왕의 보좌관)이 하나님께서 하늘의 창을 내신다고 할지라도
결코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며 엘리사의 예언을 비웃고 조롱합니다.
16. 백성들이 나가서 아람 사람의 진을 노략한지라.
이에 고운 가루 한 스아에 한 세겔이 되고 보리 두 스아에 한 세겔이 되니
여호와의 말씀과 같이 되었고,
17. 왕이 그 손에 의지하였던 그 장관을 세워 성문을 지키게 하였더니
백성이 성문에서 저를 밟으매 하나님의 사람의 말대로 죽었으니
곧 왕이 내려왔을 때에 하나님의 사람이 말한 대로 되었더라.
이에 엘리사는 그 왕의 보좌관이 그 일을 보기는 하겠지만
그것을 먹지는 못할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다음 날 왕의 보좌관은 왕의 명령에 따라 성문을 지키다가
아람 군대가 버리고 간 양식을 얻으려 성 밖으로 나가는 백성들의 발에 밟혀 죽습니다.
● 묵상 : 농담을 하더라도 하나님과 관계된 말은 하지 마십시오.
만일 군대 장관이 그냥 “어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느냐?”라고만 말했다면
죽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하늘의 창고를 여신다고 하더라도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없다고 말하니
하나님의 능력을 부인하는 것이 되어 버렸습니다.
이처럼 울컥하는 마음에 어떤 말이라도 막 내뱉게 되는 일이 일어나더라도
하나님에 관하여 함부로 말하지 마십시오.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 것은 결코 가벼운 죄가 아닙니다.
4. 환청을 듣고 도망한 아람 군대(7:3~7)
3. 성문 어귀에 문둥이 네 사람이 있더니 서로 말하되
“우리가 어찌하여 여기 앉아서 죽기를 기다리랴,
4. 우리가 성에 들어가자고 할찌라도
성안에 굶주림이 심하니 우리가 거기서 죽을 것이요 여기 앉아 있어도 죽을찌라.
그런즉 우리가 가서 아람 군대에게 항복하자.
저희가 우리를 살려두면 살려니와 우리를 죽이면 죽을 따름이라” 하고
5. 아람 진으로 가려 하여 황혼에 일어나서 아람 진 가에 이르러 본즉
그곳에 한 사람도 없으니
6. 이는 주께서 아람 군대로 병거 소리와 말소리와 큰 군대의 소리를 듣게 하셨으므로
아람 사람이 서로 말하기를 “이스라엘 왕이 우리를 공격하기 위해
헷 사람의 왕들과 애굽 왕들에게 값을 주고 저희로 우리에게 오게 하였다” 하고
7. 황혼에 일어나서 도망하되 그 장막과 말과 나귀를 버리고 진을 그대로 두고
목숨을 위하여 도망하였음이라
북왕국 이스라엘의 수도 사마리아 성읍의 성문 밖에는 나병 환자 네 명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서로 이대로 가만히 앉아 굶어 죽을 것이냐고 서로 말하고는,
어차피 죽을 것이니 차라리 아람 군대에 항복이나 하자고 말하며 그곳으로 갔습니다.
혹시 그들이 먹을 것을 줄지 누가 압니까?
그런데 아람 진영에 가 보니 양식과 무기와 말과 노새는 물론
장막까지 모두 그대로 있는데 사람은 한 사람도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병거와 말발굽 소리를 듣게 하셔서
놀라서 급히 도망하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너무 놀라서 말을 타고 도망할 생각도 하지 못하고 그냥 허둥지둥 도망한 것입니다.
● 묵상 : 사람의 능력과 지혜보다 더 뛰어나신 하나님
하나님께서는 아침에 떠오르는 햇빛에 물이 비쳐지는 것이
핏빛으로 보이게 하여 모압을 물리치게 하시기도 했고(왕하 3:20~25),
엘리사를 죽이려고 오는 아람 군대를 모두 눈이 어둡게 하여
엘리사의 인도로 사마리아 성읍 한복판으로
제 발로 스스로 들어가게 하시고 하셨습니다(왕하 6:15~23).
그리고 여기에서는 환청을 듣고 놀라서 버선발로 도망하게 하셨습니다.
사람이 아무리 완벽하게 준비를 할지라도 하나님께서는 그보다 더 뛰어나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떠나 자기 힘으로 세상을 얻으리라 생각하지 마십시오.
하나님 없이 얻은 세상은 그림자와 같이 헛된 것입니다.
5. 나병 환자들이 소식을 전함(7:8~10)
8. 그 문둥이들이 진 가에 이르자 한장막에 들어가서 먹고 마시고
거기서 은과 금과 의복을 가지고 가서 감추고 다시 와서
다른 장막에 들어가서 거기서도 가지고 가서 감추니라.
9. 문둥이가 서로 말하되 “우리의 소위가 선치 못하도다.
오늘날은 아름다운 소식이 있는 날이어늘 우리가 잠잠하고 있도다.
만일 밝은 아침까지 기다리면 벌이 우리에게 미칠찌니
이제 떠나 왕궁에 가서 고하자” 하고
10. 드디어 가서 성 문지기를 불러 고하여 가로되
“우리가 아람 진에 이르러 보니 거기 한 사람도 없고 사람의 소리도 없고
오직 말과 나귀만 매여 있고 장막들이 그대로 있더이다.”
나병 환자들은 아람 진영의 끝까지 가 보았으나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는 것을 확인하고는
한 장막에 들어가서 실컷 먹고는 금과 은과 의복을 어디엔가 감추고,
다시 다른 장막에 들어가서 또다시 약탈하여 감추었습니다.
그러다 나병 환자들은
지금 자기들이 하고 있는 일이 잘하는 일이 아니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성안에 굶주려 죽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렇게 자기들만 먹고 가만히 있는 것은
하나님 앞에 벌 받을 일이라는 생각이 들어 곧 성문지기에게 이 사실을 알렸습니다.
● 묵상 :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는 자
이 나병 환자들이 한 일이 바로 우리가 해야 할 일입니다.
나병 환자들이 아람 군대를 물리친 것이 아닙니다.
그 모든 일을 이루신 이는 하나님이십니다.
나병 환자들은 단지 하나님께서 하신 일을 성읍 문지기들에게 알렸을 뿐입니다.
그러나 나병 환자들은 성읍의 사람들을 살리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합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십자가에 달리신 이도 예수님이시고,
누구든 예수님을 믿으면 죄 용서함을 받고 영생을 얻도록 하신 이도 예수님이십니다.
그러나 누군가 이 소식을 전해야 예수께서 하신 일이 능력을 나타내게 됩니다.
그러므로 당신도 이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는 자가 되십시오.
그러면 주님의 영광에 함께 참여하게 됩니다.
6. 엘리사가 예언한 모든 일이 이루어짐(7:11~17)
11. 저가 문지기들을 부르매 저희가 왕궁에 있는 자에게 고하니
12. 왕이 밤에 일어나 그 신복들에게 이르되 “아람 사람이 우리에게 행한 것을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저희가 우리의 주린 것을 아는고로
그 진을 떠나서 들에 매복하고 스스로 이르기를
‘저희들이 성에서 나오거든 우리가 사로잡고 성에 들어가겠다’ 한 것이니라.”
13. 그 신복중 하나가 대답하여 가로되 “청컨대 아직 성중에 남아 있는 말 다섯 필을
취하고 사람을 보내어 정탐하게 하소서. 이 말들이 성중에 남아 있는
이스라엘 온 무리 곧 멸망한 이스라엘 온 무리와 같으니이다” 하고
14. 저희가 병거 둘과 그 말을 취한지라 왕이 아람 군대 뒤로 보내며
가서 정탐하라 하였더니
15. 저희가 그 뒤를 따라 요단에 이른즉 아람 사람이 급히 도망하느라고
버린 의복과 군물이 길에 가득하였더라 사자가 돌아와서 왕에게 고하매
16. 백성들이 나가서 아람 사람의 진을 노략한지라 이에 고운 가루 한 스아에
한 세겔이 되고 보리 두 스아에 한 세겔이 되니 여호와의 말씀과 같이 되었고
17. 왕이 그 손에 의지하였던 그 장관을 세워 성문을 지키게 하였더니
백성이 성문에서 저를 밟으매
하나님의 사람의 말대로 죽었으니 곧 왕이 내려왔을 때에 그의 한 말대로라.
이 소식은 곧바로 왕에게까지 전달되었으나,
왕은 모든 것을 놔두고 아람 군인들만 감쪽같이 사라졌다는 말을 도무지 믿지 못합니다.
어딘가 숨어 있다가 자기들이 나가면 사로잡아 죽일 것이라 생각하고 머뭇거리자,
신하들이 어차피 가만히 있어도 굶어 죽을 판이니
아직 남아 있는 말 다섯 필로 정탐병을 보내어 정탐이나 한번 해보자고 말합니다.
정탐병이 나가서 요단강까지 가 보았으나
군사들이 서둘러 도망하느라 버리고 간 물품들만 널려 있을 뿐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습니다.
이 사실이 백성들에게 알려지자
성안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곧바로 성 밖으로 나가 아람 진영의 물품을 약탈합니다.
그때 왕은 장관(왕의 보좌관)에게 성문을 지키도록 했는데,
그만 백성들에게 밟혀 죽고 맙니다.
이로써 엘리사가 그가 보기는 하되 먹지는 못하리라고 말한
그 모든 예언이 다 이루어졌습니다.
결 론 : 말씀을 듣고 깨닫는 자가 되십시오.
➠ 그러나 깨닫지 못하는 이스라엘
사마리아 성읍에 군마(軍馬)가 단 다섯 필밖에 없었다는 것은 참으로 놀라운 일입니다.
아람 군대가 그대로 쳐들어왔다면 하루도 못 가서 멸망을 당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모두 혼이 빠져서 도망간 것입니다.
더구나 왕의 장관(왕의 보좌관)이 그 장면을 보기는 하되 먹지는 못하리라고 말한 것까지
엘리사가 한 예언대로 완벽하게 이루어진 것을 다 보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사소한 것까지 모두 다 이루어지게 하신 것은
이스라엘 왕과 그 백성들을 하나님께로 돌아오도록 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께서 하신 이 놀라운 일을 보고도
끝내 하나님께로 돌아오지 않습니다.
● 묵상 :
➀ 하나님의 사람과 멸망 당할 자의 차이
하나님의 사람들도 때로 죄를 짓습니다.
다윗도 죄를 지었고, 아브라함도 죄를 지었습니다.
하지만 이들은 하나님께서 이런 저린 일들을 통해 그들에게 경고하실 때
그 경고를 듣고 곧바로 하나님께로 돌아왔습니다.
그러나 멸망의 사람들은 하나님의 경고를 깨닫지 못하고,
또 깨달았더라도 죄에 너무 깊이 빠져 있어서 하나님께로 돌아오지 못합니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나의 영의 자리는 지금 어디인지 살펴봅시다.
주님을 잘 섬기고 있습니까,
아니면 잠시 한눈을 파느라 하나님과 동행하는 일을 소홀히 하고 있습니까?
최소한 아브라함이나 다윗처럼
하나님의 경고를 듣고 다시 돌아올 수 있는 사람은 되십시오.
경고를 듣고도 돌아오지 않으면 멸망의 자녀가 되고 맙니다.
➁ 남의 탓하지 말고 주께로 돌아오십시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무슨 말씀을 하실 때 꿈속에서 나타나
“네 이놈 왜 이렇게 하느냐?”하고 직접적으로 말씀하시지 않습니다.
본문의 이스라엘 왕의 경우처럼
우리가 깨달을만한 이런저런 사건들을 일으키시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이나 다윗은 그런 일이 일어날 때 깨닫고 곧 돌아왔고,
본문의 이스라엘 왕은 끝내 깨닫지 못했습니다.
이스라엘 왕은 이 모든 재앙이 하나님께로부터 왔다고 했고,
그러므로 하나님의 사람인 엘리사 탓으로 돌렸습니다.
가인은 하나님께서 자기 예배를 받지 않으시는 것을 아벨 탓으로 돌렸고,
사울 왕 역시 하나님께서 자기를 버리신 것을 다윗 탓으로 돌렸습니다.
남의 탓하는 자는 절대로 하나님의 뜻을 깨닫지 못합니다.
주께서 왜 나에게 이런 일을 주시는지 깨닫는 지혜를 주시기를 기도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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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 록 : 왜 엘리사가 아니라 엘리야인가?
1) 우리가 보기에는 엘리사가 일으킨 기적이 훨씬 많은데
왜 하나님께서는 엘리사가 아니라 엘리야를 더 중요하게 여기시나?
엘리야와 엘리사 두 사람을 놓고 볼 때
엘리야보다 엘리사가 일으킨 기적이 훨씬 많습니다.
단순히 횟수만 많은 것이 아니라 엘리사가 일으킨 기적 자체만 보아도
엘리야보다 더 능력이 크면 컸지 결코 작지 않습니다.
엘리야 한 사람에 의해 국가 간 전쟁에서 이긴 적도 몇 차례나 되고,
왕들 조차 엘리사보고 아버지라 부를 정도로 그가 보여준 위엄 역시 엘리야보다 더 컸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엘리사가 죽은 이후
엘리사에 대한 언급이 별로 없고 대부분 엘리야만 언급합니다.
예수께서 공생애를 하시기 전에 먼저 활동했던 세례요한을 엘리야의 사명을 가진 자라 하셨고,
변화산 위에서 예수님을 포함해 세 사람이 있을 때 나타난 자도 모세와 엘리야였습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엘리사는 나중에 늙어서 죽었으나,
엘리야는 죽지 않고 산채로 하늘로 승천하여 올라갔습니다.
2) 더 큰 능력이 아니라 더 큰 믿음과 더 큰 헌신을 보시는 하나님
우리가 보기에는 분명히 엘리야보다 엘리사가
그 능력이나 세상에서의 권세나 사람들 앞에 나타난 그 위엄의 면에서나
훨씬 화려한 사람입니다.
엘리사는 왕을 향하여 명령까지 했던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엘리사는 처음부터 능력자로 활동했던 자이고,
엘리야는 아무 능력도 힘도 없는 자로 하나님을 섬겼던 자입니다.
엘리야는 능력자로 활동했으니 목숨일 잃을 위험을 느낀 적이 없었으나,
엘리야는 차라리 죽여달라고 호소하다가 혼절하기까지 했던 자입니다.
➠ 어려운 중에 나타난 믿음이 하나님을 더 기쁘시게 한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사람의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 힘들고 어려운 중에도
끝까지 그 믿음을 잃지 않고 하나님을 섬긴 자들을
하나님은 더 기뻐하십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엘리사가 아니라 엘리야를 택하신 이유입니다.
힘들고 어려운 중에 나타난 믿음,
시련과 고난 중에도 끝까지 섬김의 자리를 포기하지 않은 자를
더 귀하게 여기신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주님
우리를 회복시키시는 모든 능력이
하나님께 있음을 믿고
힘들고 어려울 때마다
주께 기도하는 자가 되게 하옵소서.
하나님의 선하심을 믿고
시련과 아픔도 감사할 수 있게 하옵소서.
주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그 풍성한 기쁨을 받아 누릴 수 있는
거룩하고 신실한 백성이 되게 하옵소서.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는 한 사람의 능력이
하나님과 함께하지 않는 한 나라의 능력보다
더 큰 것을 믿습니다.
우리도 주께서 주신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는 자들이 되게 하옵소서.
하나님의 경고의 메시지를 알아들을 수 있는
영적 분별력을 잃지 않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