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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 설교문

그날이 은혜의 날이 되게 하십시오(10월 23일; 겔 9:27~37)

작성자송호영|작성시간22.10.24|조회수114 목록 댓글 0

설교제목 : 그날이 은혜의 날이 되게 하십시오.

설교본문 : 열왕기하 9:27~37

      참고 : 열왕기하 9, 10장, 에스겔 7, 9장

설 교 자 : 송호영 목사

설 교 일 : 2022년 10월 2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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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론 :

 

    요한계시록은 장차 망할 이 세상을 두 단어로 표현합니다.

    하나는 ‘바벨론’이고, 다른 하나는 ‘이세벨’입니다.

 

    오늘은 그중에 이세벨에 대한 말씀을 살펴보려 합니다.

    이세벨이 타락한 세상을 나타내는 상징언어로 표현된 것은

    그의 삶이 타락한 세상을 잘 나타내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의 죽음이 장차 이 세상이 어떻게 심판을 받을 것인지를 잘 표현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북왕국 이스라엘의 왕 아합을 조종하여 나라 전체를 타락시킨 이세벨,

    그가 어떻게 하나님의 심판을 받았는지를 살펴보면서

    장차 이 세상이 어떻게 심판을 받게 될 것인지를 살펴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1 : 하나님의 임박한 심판을 전하는 에스겔

 

    이세벨에 대한 말씀을 살펴보기 전에

    먼저 에스겔 7장에서 전하는 하나님의 긴급한 심판의 말씀을 살펴보겠습니다.

 

    에스겔 7장은 에스겔이 바벨론에 포로가 된 지 6년쯤 된 때로,

    바벨론이 유다와 예루살렘을 멸망시키던 바로 그 해(年)입니다.

    예루살렘의 멸망을 코앞에 두고 하나님께서 바벨론에 포로된 에스겔에게 이 말씀을 주십니다.

 

 

1. 임박한 큰 진노의 날 : 여호와의 날

 

 1) 여호와의 날 : 하나님께서 인간의 역사에 자신을 드러내시는 날

 

    구약에서 여호와의 날은 하나님께서 인간의 역사 속에 자신을 드러내시는 날입니다.

    그날에는 어떤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복이 내려지고,

    어떤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진노가 내려집니다.

 

    그동안 하나님의 말씀대로 신실하게 살아온 자들은 여호와의 날이 기쁨의 날이 되고,

    하나님의 말씀을 떠나 세상과 짝하고 산 자들에게는 그날이 슬픔의 날이 됩니다.

 

 2) 여호와의 날이 복 있는 날이었던 때 : 요셉, 다윗, 모세, 아브라함

 

    요셉은 노예와 억울한 옥살이를 할 때에도 믿음을 잃지 않았기에

    하나님께서 그의 삶에 찾아오신 여호와의 날에 그는 애굽의 총리가 됩니다.

 

    다윗도 사울에게 쫓기던 10년 동안

    아둘람 굴에서 하나님을 섬기는 일을 멈추지 않았으므로,

    하나님께서 그의 삶에 찾아오신 여호와의 날에 그는 이스라엘의 위대한 왕이 됩니다.

 

    모세는 이스라엘을 구한 위대한 지도자가 되었고,

    아브라함은 믿음의 조상이라는 칭호를 받았습니다.

 

 3) 끝이 왔도다. 끝이 났도다. 이제는 너희에게 끝이 이르렀나니(겔 7:1~3)

 

            1. 여호와의 말씀이 또 내게 임하여 가라사대

            2. “너 인자야(너 사람아), 나 주 여호와가 내가 이스라엘 땅에 대하여 말하노라.

               끝이 왔도다. 이 땅 사방 구석구석의 일이 끝났도다.

            3. 예루살렘아, 이제는 너희에게 끝이 이르렀나니,

               내가 내 진노를 네게 나타내어 네 행위를 국문하고(심판하고),

               네 모든 가증한 일을 보응하리라(너의 모든 행위대로 갚아 줄 것이라).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았습니다.

    선지자들이 아무리 무서운 말로 경고해도 하나님의 심판을 두려워하지도 않았고,

    그 말씀을 귓전으로 들으려고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그들의 역사에 찾아오시는 여호와의 날에

    그들은 하나님의 진노를 받아 멸망하는 자들이 됩니다.

 

    이제 그들이 기다리는 여호와의 날은 복 있는 날이 아니라 진노의 날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이제 그 끝이 이르렀다, 그들을 칠 종말의 때가 이르렀다고 말씀하십니다.

 

 4) 예루살렘의 구석구석에 종말이 왔다(2절)

 

            (2절 성경구절 위에)

 

    그동안 선지자들이 예언했던 심판의 날이 다가왔습니다.

    이제 끝입니다.

    이스라엘의 모든 구석구석에 종말이 왔습니다.

 

    땅속으로도, 하늘로도, 바다속으로도 숨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모두 추격하여 결국 멸망의 자식들이 되게 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이 시작될 때는 그들이 아무리 참혹한 일을 당해도

    하나님께서 그들을 불쌍히 여기지도 아니하고, 긍휼히 여기지도 않으실 것입니다.

    오직 그들이 행한 대로 벌이 내려질 뿐입니다.

 

 

2. 환난에 환난을, 소문에 소문을 더하여

 

1) 극히 악한 이방인들을 데려와서(24절)

 

           24. 내가 극히 악한 이방인들을 데려와서 그들이 그 집들을 점령하게 하고,

                악한 자들의 교만을 멈추게 할 것이니, 그들의 성소가 더럽힘을 당하리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심판하시는 도구로 극히 악한 이방인들을 사용하십니다.

    긍휼이란 먼지만큼도 찾아볼 수 없는 악독한 자들입니다.

    아무리 비명을 지르고 애원을 해도

    눈썹 하나 흐트러뜨리지 않고 처참한 형벌을 내리는 악독한 자들입니다.

 

 2) 환난에 환난을, 소문에 소문을 더하여(25~26절)

 

           25. 패망(파멸, 재앙)이 이르리니, 그들이 평강을 구하여도 없을 것이라.

           26. 환난 위에 환난이 더하고, 소문에 소문이 더할 때에 (불길한 소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끝없이 나돌 때에) 그들이 선지자에게 묵시를 구하나 헛될 것이요,

                제사장에게는 율법이 사라질 것이요, 장로들에게는 책략(모략)이 사라질 것이며,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재앙이 겹쳐서 일어나고,

    흉한 소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끝없이 나돌 것입니다.

    그러므로 집 안에서도 불안하고 밖에 나가면 더욱 두려움에 사로잡혀서
    예루살렘 성읍의 그 어디에서도 평안한 곳을 찾을 수 없게 될 것입니다.

 

 3) 묵시를 구하나 헛될 것이고, 제사장들은 율법이 없고(26절)

 

            (26절 성경구절 위에)

 

    불안해서 도무지 살 수가 없으니 선지자들을 찾아가서
    혹시 살 수 있는 방법이 있는지를 묻겠지만
하나님의 응답은 들을 수 없습니다.

    제사장들조차 하나님께서 주시는 말씀을 듣지 못하는데

    무슨 수로 사람들에게 말씀을 전할 수 있겠습니까?

    전에 은혜로운 때에 그들이 말씀을 듣기를 거부했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만일 하나님의 심판이 시작되기 전에 하나님의 말씀과 묵시를 구하였다면

    하나님께서 춤이라도 추시면서 그들에게 알려주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일단 심판이 시작되면 아무리 회개를 하고, 아무리 말씀을 구하여도 소용없습니다.

    그러므로 심판이 시작되기 전에 회개하고, 말씀을 구하여야 합니다.

 

 4) 희망이 없는 절망의 상태 : 왕은 통곡하고 고관들은 절망에 빠지고(27절)

 

           27. 왕은 통곡하고, 고관(지도자)들은 절망에 빠지며,

                그 땅 백성의 손은 두려움에 떨릴 것이라.

                내가 그들의 행위대로 갚아주고, 그들의 그 죄악대로 그들을 심판하리니,

                그때에야 그들이 비로소 내가 여호와인 줄 알게 되리라.”

 

    왕이 통곡하고 고관들이 절망에 빠졌다면 나라 전체가 절망에 빠진 상황이라는 것입니다.

    이제 희망이 전혀 없는 상태라는 것입니다.

 

    일단 하나님의 심판이 시작되면

    그들이 세상에서 어떤 부와 권세를 가졌더라도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을 막을 권세가 없고,

    세상의 모든 것을 다 동원한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의 진노를 막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묵상 : 그러므로 은혜의 때를 잃지 마십시오.

 

    아직은 마지막 때에 임하리라는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이 이 땅에 임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이 세상에 있던 모든 참혹한 것을 다 합한다고 할지라도

    주께서 이 땅에 다시 오실 때의 그 참상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유다 백성들이 하나님의 경고를 무시했다가 이 비극을 겪고 있는 것처럼,

    이 평안의 때에 말씀을 무시하는 자들은 그 무서운 심판을 당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은혜의 때를 놓치지 마십시오.

    서둘러 주님 앞으로 돌아오십시오.

    더 늦기 전에, 회개의 기회가 끝나기 전에 주님 앞으로 나오십시오.

 

 

2 : 하나님의 심판의 예, 이세벨의 죽음

 

    이제 이세벨이 하나님께로부터 어떻게 심판을 받았는지를 증거하려 합니다.

 

    이세벨은 요한계시록에서 마지막에 심판받을 이 세상을 상징하고 있으므로

    이세벨이 어떻게 심판을 받는지를 살피는 것은

    2022년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이세벨을 향한 하나님의 심판은 아주 은밀한 곳에서 아무도 모르게 진행되었습니다.

 

 1. 이세벨을 향한 심판의 시작 : 기름부음을 받는 예후(왕하 9: 1~10)

 

            1. 선지자 엘리사가 선지자의 생도(수련생) 가운데 한 사람을 불러 말했습니다.

              “너는 허리를 동이고 이 기름병을 손에 들고 길르앗 라못으로 가라.

            2. 그곳에 이르거든 님시의 손자 여호사밧의 아들 예후를 찾아 들어가서

               그 형제 중에서 일어나게 하고 골방으로(밀실로) 데리고 들어가서

            3. 이 기름병을 가져다가 예후의 머리에 부으며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네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의 왕을 삼노라 하셨느니라’하고 말하여라.

               그리고는 곧 문을 열고 도망하되 지체하지 말고 도망하라.”

            4. 그리하여 그 청년, 곧 청년 선지자가 길르앗 라못으로 갔습니다.

            5. 그가 도착하였을 때 그곳에는 군대 장관들이 둘러앉아 있었습니다.

               그 소년 선지자가 말했습니다. “장관이여 내가 당신에게 드릴 말씀이 있나이다.”

               예후가 물었습니다. “우리 가운데 누구에게 하는 말이냐?”

               그가 대답했습니다. “장관이여, 바로 당신에게니이다.”

            6. 예후가 일어나서 집 안으로 들어가자 그 청년 선지자가 예후의 머리에 기름을

               부으며 말했습니다.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네게 기름을 부어 여호와의 백성 곧 이스라엘의 왕으로 삼노니,

            8. 내가 아합 가문에 속한 사람을 모두 다 멸망하리니, 매인 자나 놓인 자나(종이나

               자유인이나) 가릴 것 없이 아합 가문에 속한 남자를 다 멸절하되

             9. 아합의 집을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집과 같게 하며

                아히야의 아들 바아사의 집과 같게 할 것이라.

           10. 이스르엘 지방에서 개들이 이세벨을 먹으리니

                그를 장사할 사람이(그를 묻어 줄 사람이) 없으리라.’”

                이 말을 하고 나서 그 청년 선지자는 곧바로 문을 열고 도망하였습니다.

 

    엘리사가 선지자의 생도 중 한 사람을 길르앗 라못으로 보내

    예후에게 기름을 붓게 합니다.

 

    예후는 아합의 집을 완전히 멸족을 시킬 자입니다.

    하나님께서 예후를 이스라엘의 왕으로 세우심으로써

    아합의 집을 향한 심판을 시작하십니다.

 

    에스겔이 예후에게 직접 가면

    하나님께서 새 왕을 택하시리라는 것을 모두가 알게 되므로

    아무도 모르게 하기 위해 선지자의 생도(오늘날의 신학생) 중 한 명을 보냅니다.

 

    이것은 이세벨을 향한 하나님의 심판이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시작되었다는 것을 뜻합니다.

 

    그동안 하나님께서는 엘리야와 엘리사, 두 위대한 선지자를 통하여

    아합의 가문에 속한 사람들에게 무수히도 많은 경고를 하셨습니다.

 

    그러나 아합이 잠시 굵은 베옷을 입고 회개하는 척하기만 했을 뿐

    회개하지도 않았고 하나님께 돌아가려고 하지도 않았으며,

    죄를 이길 힘이 없으니 자기를 도와달라고 간청하는 기도도 하지 않았습니다.

 

➠ 그러므로 이제 하나님께서 그들을 향한 심판을 시작하십니다.

 

    이제 예후는 아합의 집에 속한 사람들을 모두 죽일 것입니다.

    예후는 아합과 조금이라도 연관이 있는 자라면

    주저하지 않고 단칼에 죽이는 아주 무섭고 차가운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를 통하여 악한 자 아합의 집에 속한 사람들을 심판하십니다.

 

묵상 :

 

    하나님께서는 참고 또 참으시지만

    일단 그 심판이 시작되면 아무도 그 심판을 막을 수 없습니다.

 

    예수께서 이 땅에 다시 오실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일단 그 심판이 시작되면 아무도 막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아직 주께서 오시지 않았을 때, 기회가 있을 때 주께 돌아오십시오.

 

 

2. 이스라엘의 장관들의 영적 상태 : 저 미친 녀석(11절)

 

           11. 예후가 왕의 신하들이 있는 곳으로 나오자 한 사람이 그에게 물었습니다.

               “무슨 일이오? 저 미친 녀석이 장군께 무슨 일로 온 것이오?”

                예후가 말했습니다.

               “이 사람이 누구이며 이 사람이 무슨 말을 하는지 너희도 잘 알고 있지 않느냐?”

 

    청년 선지자가 밀실에서 예후에게 기름을 붓고

    하나님의 명령을 전한 뒤 곧바로 도망하자

    밖에 있던 장관들이 예후에게 “저 미친 녀석이 무엇이라고 합니까?”하고 묻습니다.

 

    죄와 향락에 빠진 그들의 눈에는

    경건하게 살아가는 청년 선지자가 미친 사람처럼 보이는 것입니다.

    세상의 흐름을 탈 줄 모르는 바보라는 것입니다.

 

묵상 :

 

    이처럼 세상이 악하면 하나님 앞에 신실하게 살아가는 자들이 바보처럼 보입니다.

    모두들 자기 이익을 얻기에 혈안이 되어 있을 때

    말씀대로 살기에 힘쓰는 자들이 좋게 보일 리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땅의 것을 바라고 사는 자들이 아닙니다.

    누가 무엇이라 하든 우리는 영생을 주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며 살아가는 자들이 됩시다.

 

 

3. 아합 가문을 향한 심판이 달려간다

 

 1) 미친 듯이 급하게 병거를 몰고 가는 예수(14~20절)

 

           14. 그리하여 님시의 손자이며 여호사밧의 아들 예후가 요람을 배반(반역)하였습니다.

                그때 요람은 아람 왕 하사엘을 인하여 길르앗 라못을 지키려고

           15. 아람 왕 하사엘과 싸우다가

                부상당한 것을 치료하기 위해 이스르엘로 돌아온 상태였습니다.

                예후가 말했습니다. “(내가 왕이 되는 것이) 너희 뜻에 합당하다면,

                한 사람이라도 이 성에서 도망하여 이스르엘에 이 소식을 전하지 못하게 하라.”

          16. 그리고 나서 예후는 병거를 타고 이스르엘로 갔습니다.

               요람은 그곳에 병으로 누워 있었고,

               유다의 아하시야 왕은 요람을 문병하려고 그곳에 내려와 있었습니다.

           17. 이스라엘의 망대 위에 서 있는 파수꾼이

                예후의 군대가 오는 것을 보고 “웬 부대가 오고 있습니다”하고 외쳤습니다.

                그러자 요람이 말했습니다.

               “한 사람을 말을 태워 보내 그들을 만나 평화의 일로 오는 것인지를 묻게 하라.

           18. 그리하여 한 사람이 말을 타고 가서 예후를 만나 물었습니다.

               “왕께서 친구로 오는 것인지(평화의 일로 오는 것인지)를 물으라고 하시나이다.”

                그러자 예후가 말했습니다.

               “평화의 인인지 아닌지 네가 무슨 상관이 있느냐? 너는 내 뒤를 따르라.”

                파수병이 왕에게 보고했습니다. “알아보러 간 사람이 돌아오지 아니하나이다. ”

           19. 그리하여 왕이 다시 한 사람을 말을 태워 보내었더니 그가 가서 말했습니다.

               “왕께서 평화의 일로 오는 것인지를 물으라고 하시나이다.”

                예후가 대답했습니다.

               “평화의 일인지 아닌지 너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 너는 내 뒤를 따르라.”

           20. 파수병이 보고했습니다. “알아보러 간 자가 이번에도 돌아오지 아니하나이다.

                그런데 미친 듯이 말을 모는 모습이 님시의 손자 예후 같습니다.”

 

    무리가 “예후가 이스라엘의 왕이다”하고 외치자

    예후는 곧바로 병거를 몰고 이스라엘 왕 요람이 있는 이스르엘로 향하여 갑니다.

 

    그때 요람은 길르앗 라못을 지키기 위해 아람 왕 하사엘과 싸우다가

    부상을 입어 치료를 받기 위해 이스르엘에 머무르고 있었습니다.

 

    예후는 혹시 누구라도 자기보다 먼저 이스르엘로 가서

    요람에게 반역이 일어났으니 빨리 도망하라고 알려주면 그를 죽일 수 없으므로

    미친 듯이 급하게 병거를 몰고 갑니다.

 

 2) 아합 가문에 심판의 시작됨

 

    예후가 이렇게 미친 듯이 병거를 몰고 이스르엘로 향하여 가는 것은,

    아합의 가문에 하나님의 심판이 이제 시작되었다는 것을 뜻합니다.

    아합의 아들 요람을 시작으로 이제 아합의 자손들은 물론

    아합과 조금이라도 친분이 있는 자들은 모조리 죽임을 당하게 됩니다.

 

묵상 :

 

    이것은 하나님의 심판의 무서움을 우리에게 경고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무던히도 참고 또 참으시지만

    일단 하나님의 심판이 시작되면 아무도 그 심판을 막을 수 없습니다.

 

    주께서 이 땅에 다시 오실 때의 마지막 심판은 더욱 무서울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날이 오기 전에 서둘러 주님 앞으로 나오십시오.

 

 

4. 요람의 죽음

 

1) 파수꾼의 보고(17, 20절)

 

            (17, 20절 성경구절 위에)

 

    이스르엘의 파수꾼들이 멀리서 한 무리의 군인들이

    말과 병거를 타고 오는 모습을 봅니다.

 

    파수꾼은 멀리서 보고도 그 사람이 예후라는 것을 알아봅니다.

    이것은 예후가 평소에도 병거를 아주 험하게 몰았다는 것을 뜻합니다.

    그런데 그날은 평소보다 더욱 험하게 모니

    파수꾼은 병거를 미친 듯이 몰고 있다고 보고합니다.

 

➠ 이것은 아무도 요람에게 이 사실을 미리 알려줄 수 없었다는 것을 뜻합니다.

 

    요람에게 이 위급한 사실을 알려 줄 기회가 전혀 없었습니다.

    예후보다 더 병거를 잘 모는 자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평소에도 누구보다도 말을 잘 몰던 예후였는데

    그날은 더욱 미친 듯이 몰고 오는 예후의 병거와 함께 하나님의 심판이 다가옵니다.

 

    그가 그렇게 미친 듯이 심판을 몰고 오지만

    요람은 아무 것도 모른 채 그저 병을 치료한다며 맘 편하게 누워만 있습니다.

 

 2) 도망할 사이도 없이 활에 맞아 죽는 요람 왕(22~26절)

 

           22. 요람이 예후를 보고 물었습니다. “예후야! 평화의 일로 오는 것이냐?”

                예후가 대답했습니다. “네 어머니 이세벨의 음행과 술수가 이렇게도 많은데

                어찌 평화로울 수 있겠느냐?”

           23. 요람이 뒤돌아서 급히 도망치며 아하시야에게 소리 질렀습니다.

               “아하시야여, 반역이로다.”

           24. 그러자 예후가 힘껏 활을 당겨 요람의 등을 겨누어 쏘자,

                화살이 그의 가슴을 꿰뚫어 서 나왔고, 요람은 병거 안에서 나뒹굴었습니다.

           25. 예후가 자기의 장관(부관) 빗갈에게 말했습니다.

               “요람의 시체를 들어 이스르엘 사람 나봇의 밭에 던지라.

                이전에 너와 내가 함께 병거를 타고 요람의 아버지 아합의 뒤를 따라다닐 때

                여호와께서 그에 대하여 예언하신 것을 기억하여라.

           26. 여호와께서말씀하시기를

               ‘어제 내가 나봇의 피와 그의 아들들의 피를 분명히 보았노라

               (어제 내가 나봇과 그의 아들들이 억울한 피를 흘리는 것을 분명히 보았노라).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이 땅에서 네게 그대로 갚으리라’ 하셨으니,

                이제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요람의 시체를 들어 그 땅에 던질지니라.”

 

    예후가 미친 듯이 달려오는 것을 보고

    요람이 두 명이 사람을 보냈음에도 아무런 소식이 없자

    답답해진 요람은 마침 병문안을 온 유다 왕 아하시야와 함께 직접 예후를 맞으러 갑니다.

 

    요람이 예후에게 평안한 일로 오느냐고 묻자 예후는

    요람의 어머니 이세벨의 악행이 이렇게도 많은데

    어찌 평화로울 수 있느냐고 묻습니다.

 

    이 말을 듣자마자 요람은 함께 있던 아하시야에게 “왕이여 반역입니다”하고 소리 지르고는

    막 도망하려던 순간 예후가 쏜 화살이 그의 등에서 가슴을 뚫고 나와

    요람이 그 병거 안에서 죽습니다.

 

묵상 :

 

    주님과 동행하는 자리를 잃어버리고

    세상과 짝하여 사는 자들의 마지막 모습이 바로 이러합니다.

 

    노아의 홍수 때에도 그랬고,

    소돔과 고모라의 심판 때에도 그랬습니다.

    심판을 받기 직전까지도 그들은 이제 곧 닥칠 심판이 무엇인지 알지 못한 채

    그렇게 마음 편안하게 살았습니다.

 

    이처럼 마지막 때의 심판도 갑자기 들이닥칠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날이 오기 전에 서둘러 주께로 돌아오십시오.

 

 

5. 아하시야의 죽음 : 악과 연합한 자가 되지 마십시오.

 

 1) 요람에게 병문안 왔다가 함께 죽은 남왕국 유다 왕 아하시야(27~28절)

 

           27. 유다 왕 아하시야는 이 광경을 보고 (벳하간이라 부르는) 동산의 정자 길

                도망하자 예후가 추격하며 “저 자도 병거 가운데서 죽이라”하고 외쳤습니다.

                병거를 타고 도망하던 아하시야는

                이블르암 가까운 구르 비탈길에서 예후의 부하들의 칼에 찔려 부상을 당했고,

                므깃도까지 도망하였다가 거기에서 죽었습니다.

           28) 이하시야의 신하들은 아하시야의 시체를 그의 병거에 싣고 예루살렘에 와서

                다윗 성에 있는 그의 조상들의 무덤에 묻어 주었습니다


    아합의 아들 요람 왕이 죽는 광경을 본 아하시야는

    자기의 병거를 타고 곧바로 도망합니다.

    그러나 예후가 저 사람도 병거 가운데서 죽이라고 호령하는 소리에

    그를 추격하는 예후의 군사들의 칼에 맞아 부상을 입습니다.

 

    그렇게 부상을 입은 채 계속 도망하던 아하시야는

    예후의 군사들을 따돌리고 겨우 므깃도에서 숨을 돌리기는 했으나

    끝내 그곳 므깃도에서 죽고 맙니다.

 

 2) 아하시야가 요람과 함께 심판받은 이유

 

    ➀ : 아합과 사돈 관계를 맺었으므로

 

       아합이 요람의 병문안을 온 남왕국 유다 왕 아하시야까지 죽이라 명한 것은,

       아하시야 역시 아합의 딸 아달랴와 결혼한 자이므로

       아합의 친척이라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예후에게 아합의 모든 친척들을 다 죽이라 명하셨으므로,

       아하시야도 죽게 된 것입니다.

 

    ➁ : 악인 요람과 함께 죄의 자리에 있었으므로

 

       그러나 아하시야가 아합의 사위라고 하더라도 그가 만일 이때 예루살렘에 있었다면

       예후가 거기까지 와서 그를 죽이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더 정확히 말하면 악인 요람이 심판을 받는 자리에 함께 하였으므로

       그도 같이 악인 취급을 받아 죽게 된 것입니다.

 

묵상 : 마지막 심판 때에 나의 자리는 어디일까 늘 생각하며 살아갑시다.

 

    예수께서 이 땅에 다시 오실 때,

    그 마지막 심판의 때에 나는 어느 자리에 있을까 늘 생각하며 살아갑시다.

    아하시야처럼 그날 하필 죄 가운데 빠져 있을 때 예수님을 맞이한다면

    회개할 기회도 갖지 못한 채 영원한 멸망의 길로 들어갈 것이기 때문입니다.

 

 

6. 이세벨의 마지막 발악 : 죽음 앞에 화장하는 이세벨

 

    예후는 곧바로 이스르엘로 향합니다. 아합의 아내 이세벨을 죽이기 위해서입니다.

    이세벨은 예후가 자기 아들 요람을 죽이고

    자기까지 죽이려고 지금 그곳으로 오는 중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제 곧 자기를 죽이려는 자가 들이닥칠 것을 알면서도

    태연하게 눈 화장을 하고 머리를 꾸미고 있습니다.

 

 1) 예후에게 기선 제압을 하기 위해 : 태연하게 눈 화장을 하는 이세벨(30절)

 

           30. 그 후 예후는 이스르엘로 갔습니다. 이세벨은 그가 왔다는 말을 듣고

                눈화장을 하고 머리를 꾸민 뒤 창문으로 바라보다가

 

    이세벨이 이렇게 눈 화장을 하고 머리를 꾸미면서

    자기를 죽이려는 예후를 맞이하는 것은 예후에 대하여 기선 제압을 하기 위해서입니다.

 

    죽음 앞에서 벌벌 떠는 것이 인지상정인데,

    죽음 앞에서조차 태연하게 눈 화장을 하고 머리를 꾸미는 모습을 보면

    기가 질릴 것으로 생각한 것입니다.

 

    구약 역사상 가장 강력한 선지자였던 엘리야도

    이세벨의 이런 모습에 기가 질려 하루 만에 브엘세바까지 도망하고,

    거기서 광야로 더 도망하여 로뎀나무 아래서 차라리 죽여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했던 것을 기억하고 예후에게도 같은 방법을 사용한 것입니다.

 

    그러나 이 방법은 무장(武將)인 예후에게는 통하지 않는 방법이었습니다.

    예후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이세벨의 처벌을 명합니다.

 

 2) 멋지게 죽는다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나?

 

    그러나 이세벨도 자기의 그런 기선 제압의 방법이

    예후에게는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죽음 앞에서 눈 화장을 하고 머리를 꾸미는 이세벨의 이런 행동을

    무엇이라 설명할 수 있을까요?

 

    그것은 자기는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것,

    적어도 한 시대를 풍미했던 이세벨이라면 죽음 앞에서도 당당하고

    이렇게 멋지게 죽음을 맞이하는 것이어야 한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눈 화장을 하고 머리를 꾸미며

    멋지게 몸단장을 하고 죽는다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그래봐야 그가 하나님 앞에 가서

    평생 살아온 그 악을 심판받는 것에는 변하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묵상 : 죽음을 바르게 준비하는 것

 

    죽음을 준비한다는 것은 그렇게 죽음을 앞두고 자기 몸단장을 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평생 지은 죄를 용서해달라고 주께 회개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기의 영을 받아주실 것을 주께 간구하는 것,

    이것이 바로 죽음을 준비하는 것입니다.

 

 

7. 자기들을 보호하는 자들에게 죽은 아합의 자손들(열왕기하 10장)

 

1. 아합의 자손들의 죽음

 

 1) 사마리아 성에 남아 있던 아합의 자손 70명(1절)

 

            1. 사마리아에 성에는 아직도 아합의 아들(자손)이 70명이 있었습니다.

               예후는 편지를 써서 사마리아에 있는 이스르엘의 귀족들,

               곧 장로들과 아합의 아들(자손)들을 교육하던 자들에게 보냈습니다.

 

    사마리아 성에는 아직도 아합의 아들(자손)이 70명이 있었습니다.

    예후는 편지를 써서 사마리아에 있는 이스르엘의 귀족들,

    곧 장로들과 아합의 아들(자손)들을 교육하던 자들에게 보냈습니다.

 

    아합은 그 편지를 통해서 그들에게 말도 있고 병거도 있고 아주 튼튼한 요새도 있으며,

    무기도 아주 많이 있으니 아합의 아들들 중에서 적합한 사람을 왕으로 세워

    그들의 주인인 아합의 집을 위하여 싸우라고 말했습니다.

 

 2) 자기들을 보호하는 자들에게 죽은 아합의 자손들(1~7절)

 

            (열왕기하 10:1~7은 성경을 참조하십시오.)

 

    그러나 그들은 예후가 북왕국 이스라엘과 남왕국 유다의 두 왕도 이겼는데

    자기들이 무슨 수로 예후와 맞서겠느냐며,

    예후에게 자기들은 예후의 명령대로 하겠다는 편지를 보냅니다.

 

    그러자 예후는 만일 자기를 따르겠다면 아합의 70명의 자손들을 이라는 편지를 보내고,

    아합의 자손들을 교육하던 자들은 예후의 편지를 받자마자 아합의 자손 70명을 죽입니다.

 

 3) 측근을 통해 죽은 아합의 자손들 : 세상 권세의 허망함

 

    그런데 여기에서 우리가 더 주목해야 할 점은,

    아합의 자손들이 자기들의 측근에 의해서 죽었다는 점입니다.

    그들을 양육하고 돌볼 책임이 있는 자들이 도리어 그들을 죽였습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세상 권세의 허망함을 봅니다.

    그들이 권세가 있을 때는 천하가 다 그들의 말에 주목하며 그 명령에 복종했지만,

    세상이 바뀌어 권세가 다른 자에게 넘어가자 자기들을 돌볼 책임이 있는

    가장 가까운 측근들조차 마음을 바꾸어 그들을 죽이는 자들이 된 것입니다.

 

 4) 아합과 관계된 자들을 모두 죽이는 예후

 

    이어서 예후는 아합 집안에 속한 사람 중에

    이스르엘에 아직 살아남은 사람들을 모두 죽였습니다.

    또 아합의 집안과 관계된 귀족들과 친지들과 친구들과 제사장들을 죽이되,

    그에게 속한 자는 하나도 남기지 않고 다 죽였습니다. 그야말로 진멸한 것입니다.

 

    이것은 예후의 잔인함을 나타내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심판의 두려움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예후는 하나님의 명령에 따랐을 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참고 또 참으시지만

    일단 심판이 시작되면 그 누구도 하나님의 심판을 막을 수 없고,

    그 심판은 아주 두렵고 무서운 것임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묵상 : 그러나 오늘날 너무나도 많은 사람이 하나님의 심판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기간이 2년도 채 안 되는 군대도 가기 싫어서

    심지어 손가락도 자르는 사람들이 있는데,

 

    영원히 멸망 당하고, 한번 결정된 심판은 다시는 변하지 않는다는 말을

    아무리 무섭게 해도 두려워하지도 않고 들으려고 하지도 않습니다.

    그 심판을 받지 않으려면 어찌 해야 하는지 묻는 사람도 없습니다.

 

    경외(敬畏)는 공경하는 것뿐 아니라 두려워하는 것도 포함됩니다.

    하나님의 심판을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그 말씀을 존귀히 여기고,

    말씀대로 살기에 힘쓰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결 론 : 그날이 은혜의 날이 되게 하십시오.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로마서 1:17)

 

➠ 탄식하며 우는 자들의 이마에 표를 하라

    (자세한 것은 에스겔 9:1~11의 큐티를 참조하십시오.)

 

    하나님께서 예루살렘을 관할하는 자들을 향하여

    각자 사람을 죽이는 무기를 들고나오라고 명하십니다(1절).

    이때 사람을 여섯 사람이 살상하는 무기를 들고 등장합니다.

 

    이 사람들은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예루살렘을 지키고 돌보는 천사(수호천사)들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하나님을 떠나 악을 행하였으므로

    이제는 하나님의 새로운 명령에 따라 예루살렘을 심판하는 천사들이 되었습니다.

 

    일곱 천사 중에 하나는 허리에 서기관의 먹통을 차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천사에게 예루살렘 성읍의 죄로 인하여

    탄식하며 우는 자들의 이마에 표를 하라고 명하십니다.

 

    그리고는 나머지 여섯 천사에게 노인이나 어린이나 가릴 것 없이 처단하되

    이마에 표가 있는 자에게는 손을 대지 말라고 명하십니다(11절)

 

    허리에 먹통을 찬 천사가 예루살렘을 두루 다니면서

    그 성읍의 죄에 대하여 탄식하며 우는 자들을 찾았으나

    시간이 얼마 되지 않아서 곧 돌아왔습니다(11절).

    숫자가 너무 적어 이마에 표시할 일이 별로 없었던 것입니다.


    말씀을 잘 지키는 자가 아니라

    그저 자신의 죄와 이스라엘의 죄의 현실을 보고 탄식하며 우는 정도의 사람을 찾았는데

    그 숫자가 너무나도 적었다는 것입니다.

    참으로 슬프고도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1) 마지막 심판의 그림자로서의 예루살렘 심판

 

    예루살렘의 이 심판의 장면은

    요한계시록에 나온 마지막 심판 때의 모습을 닮았습니다.

 

    마지막 때에도 성령께서 그리스도인들의 이마에 표를 한 후에,

    이 땅에 시련과 핍박의 시간이 지나 끝까지 그 이마의 표를 지킨 자들은

    최후의 심판이 일어나기 전에 주께서 계신 곳으로 갑니다.

 

    그것이 예수께서 말씀하신 마지막 혼인 잔치입니다.

    그 후에 이 땅에 남겨진 자들,

    즉 머리에 성령의 인을 받지 않은 자들이 멸망을 당하게 됩니다.

 

    예루살렘 사람들이 천사로부터 표를 받지 못한 모든 자들이 다 죽은 것처럼

    마지막 때에도 성령의 인을 받지 못한 자들은 모두 멸망을 당하게 될 것입니다.

 

 2) 끝까지 믿음을 지켜 승리하는 자가 되십시오.

 

    주님께서 오시는 날을 미리 아는 방법은 없습니다.

    이 땅의 모든 사람이 단 1초 전까지도 그날이 언제 올지 알지 못한 채

    세상일에 빠져 살다가 그날을 준비하지 못하고 멸망의 사람들이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그날을 준비하며

    경건하고 신실하게 사는 자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3) 그러므로 날마다 옛사람을 벗고 새 사람을 입는 일을 계속하십시오.

 

    날마다 말씀을 묵상하고 기도하면서 아직 남아 있는 옛사람의 모습을 청소합니다.

    그리고 날마다 하나님의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습니다.

    이 일이 얼마나 존귀한 일인지 기억하고 그 일에 힘쓰는 자가 되십시오.

 

 

주님

 

주께서 다시 오시기 전의 혼란을 이길

바른 믿음을 갖게 하옵소서.

 

항상 주님을 사랑하고 섬기면서

그날을 준비하며 사는 자가 되게 하옵소서.

 

아하시야처럼 악과 연합하여

함께 망하는 자가 되지 말게 하옵소서.

 

이세벨처럼 세상의 헛된 것만 좇다가

멸망 당하는 자가 되지 말게 하옵소서.

 

우리는 오직 주님을 참되게 섬기다가

주께 잘했다 칭찬받는 자들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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