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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 설교문

여러 가지 시련 중에도 오히려 크게 기뻐할 수 있는 이유(1월 15일; 벧전 1:1~25)

작성자송호영|작성시간23.01.17|조회수84 목록 댓글 0

설교제목 : 여러 가지 시련 중에도 오히려 크게 기뻐할 수 있는 이유

설교본문 : 베드로전서 1:1~25(참고, 이사야 65~66장)

설 교 자 : 송호영 목사

설 교 일 : 2023년 1월 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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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론 :

 

    2023년도 벌써 세 번째 주일을 맞이합니다.

    아직은 새해의 시작점에 있으니

    올 한 해를 어떻게 보낼지 설계도 하고 다짐도 하는 시간일 것입니다.

 

    오늘은 이사야서의 마지막 장인 65~66장의 말씀과,

    새로 큐티 시작된 베드로전서 1장의 말씀을 통해

    2023년이 복된 한 해가 되기 위해 무엇을 어찌해야 하는지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 여기저기 흩어져서 나그네가 된 베드로의 성도들에게 보낸 편지

 

    베드로전서와 후서는 그 시대의 사람들로부터 아주 심한 적대와 멸시를 받아

    여기저기에 흩어져 살고 있던 그의 성도들에게 베드로가 보낸 편지입니다.

    그들은 대부분 심한 학대를 견디지 못해 고향을 이곳저곳을 떠돌아다녔습니다.

 

    그런데 베드로는 이들을 향하여 기뻐하라고 외칩니다.

    그들이 겪고 있는 시련과 고통보다 그들이 가진 복이 훨씬 더 크다는 것입니다.

 

    2023년을 시작한 지 두 주가 지난 오늘

    베드로가 그의 성도들에게 이렇게 말한 이유가 무엇인지를 살펴서

    올 한해를 바른 믿음의 자세로 배우게 되기를 바랍니다.

 

 

1 : 장차 주께서 우리에게 주실 새 하늘과 새 땅

 

    베드로가 그의 성도들이 여러 가지 시련을 당하고 있음에도 크게 기뻐하라고 말한 이유는
    주께서 장차 우리에게 주실 새 하늘과 새 땅이 있기 때문입니다.

 

    ‘새 하늘과 새 땅’은 베드로가 구체적으로 이 단어를 사용하지는 않았으나,

    그의 편지 전체를 통해 증거한 것이

    바로 주께서 우리에게 선물로 주실 ‘새 하늘과 새 땅’이고,

    또 사도 요한도 요한계시록 21장에서 말했으며,

    베드로와 사도 요한보다 500여 년 전에 이사야가 먼저 이 말을 했습니다.

 

    그동안 우리는 이사야서를 통해

    다른 사람이 구원받는 자가 되게 하기 위해 고난받는

    ‘여호와의 종’에 대해서 살펴보았습니다.

 

    이사야가 말했고, 사도 요한도 말하고 있는 ‘새 하늘과 새 땅’이

    바로 주께서 그의 일꾼인 ‘여호와의 종’에게 주시는 은혜의 선물입니다.

 

    그러므로 베드로전서 1장의 말씀을 보기 전에

    먼저 이사야 65장의 말씀에 있는 ‘새 하늘과 새 땅’에 대한 말씀부터 살펴보겠습니다.

 

 

1. 하나님께서 새롭게 창조하실 새 하늘과 새 땅(이사야 65)

 

1) 보라 내가 새 땅을 창조하나니(17절)

 

           17. 보라, 내가 새 땅을 창조하나니

                이전 것은 기억되거나 마음에 생각나지 아니할 것이라.

 

    이사야는 이사야 40장 이후에서 계속 반복하며 나온

    ‘여호와의 종’들이 받을 영원한 상급을‘새 땅’이라고 말합니다.

    이사야가 말하는 ‘새 땅’은 ‘새 예루살렘’입니다.

 

    이사야는 다윗 시대의 그 영광을 회복한 이스라엘을 생각했겠지만,

    신약시대를 사는 우리는 이사야가 말한 그 ‘새 땅, 새 예루살렘’이

    유대인들만을 위한 이스라엘이 아니라 저 영광의 나라 천국을 의미한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 은혜의 땅으로 우리를 부르시기 위해 예수께서 오셨습니다.

 

 2) 새 하늘과 새 땅 : 영원한 기쁨과 평강의 나라(18~22, 25절)

 

           18. 너희는 나의 창조하는 것을 인하여 영원히 기뻐하며 즐거워할지니라.

               보라, 내가 예루살렘으로 즐거움을 창조하며 그 백성으로 기쁨을 삼고

           19. 내가 예루살렘을 즐거워하며 나의 백성을 기뻐하리니

               우는 소리와 부르짖는 소리가 그 가운데서 다시는 들리지 아니할 것이며

           20. 거기는 날 수가 많지 못하여 죽는 유아와 수한이 차지 못한 노인이

               다시는 없을 것이라. 곧 백 세에 죽는 자가 아이겠고,

               백 세 못 되어 죽는 자는 저주를 받은 것이리라.

           21. 그들이 가옥을 건축하고 그것에 거하겠고, 포도원을 재배하고 열매를 먹을 것이며,

           22. 그들이 건축한 집에 타인이 살지 아니할 것이며,

                그들이 재배한 것을 타인이 먹지 아니하리니,

                이는 내 백성의 수한이 나무의 수한과 같겠고,

                나의 택한 자가 그 손으로 일한 것을 길이 누릴 것임이며,

 

           25. 이리와 어린 양이 함께 먹을 것이며,

                사자가 소처럼 짚을 먹을 것이며, 뱀은 흙으로 식물을 삼을 것이니,

                나의 성산에서는 해함도 없겠고 상함도 없으리라.” 여호와께서 하신 말씀이니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새 하늘과 새 땅은 영원한 기쁨의 나라입니다.

    그곳에는 해함도 없고 우는 소리나 슬픔에 부르짖는 소리가

    다시는 들리지 않는 나라입니다.

 

    백 세에 죽는 아이가 아이라, 사람이 나무의 수한과 같다고 한 것은

    예수께서 말씀하신 영생의 나라를 이사야의 방식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3) 새 하늘과 새 땅을 위해 일하는 자들 : 여호와의 복된 자손(23절)

 

           23. 그들의 수고가 헛되지 않겠고, 그들의 낳은 자식이 재난에 걸리지 아니하리니

                그들은 여호와의 복된 자손이요, 그 소생도 그들과 함께 될 것임이라.

 

    하나님께서 이 땅의 모든 사람을 새 하늘과 새 땅으로 초청하십니다.

    누구든 하나님께 복을 구하는 자는 그의 백성으로 삼으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16, 18절).

 

    그리고 하나님께서 세상 만민을 구하려 하신다는 이 소식을

    그의 일꾼들을 통해 전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이 기쁜 소식을 전하는 자들이 이사야가 말하는 ‘여호와의 종’입니다.

 

    세상 만민을 구원하기 위해 고난받는 여호와의 종,

    그들은 하나님께 복된 자손이라 불리게 될 것입니다.

    그들뿐 아니라 그들의 자손들도 하나님께 복된 자가 되어

    재앙이 그들에게 임하지 않을 것입니다.

 

 4) 그들이 부르기 전에 응답하겠고,

     말을 마치기 전에 내가 들을 것이며(24절)

 

           24. 그들이 부르기 전에 내가 응답하겠고,

               그들이 말을 마치기 전에 내가 들을 것이며,

 

    ‘새 하늘과 새 땅’은 예수께서 다시 재림하여 오시거나

    우리가 죽은 후의 일을 말씀하신 것이라면,

 

    그들이 부르기 전에 하나님께서 이미 응답을 시작하시고,

    그들이 말을 마치기도 전에 하나님께서 이미 그들이 하는 말을 다 들으시리라는 이 말씀은

    이 땅에 살아있는 동안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을 설명한 것입니다.

 

    24절의 이 말씀은 한국 그리스도인이 가장 좋아하는 구절입니다만,

    단순히 이 말씀을 암송한다고 해서 주께서 그 복을 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이 복은 이사야에 나오는 여호와의 종들에게 주시는 복입니다.

 

    이 말씀을 벽에 붙여놓고 날마다 바라본다고 해서 이 복이 오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이 말씀과 연결된 말씀을 기억하십시오.

    주변에 믿지 않는 자들을 불쌍히 여기십시오.

    돈이 없어 불쌍한 것이 아니라 믿음이 없어 불쌍합니다.

    그들이 믿음을 갖게 되도록 기도하십시오.

 

    이렇게 주님의 말씀을 전하기에 힘쓰는 자들,

    구원의 소식을 전하기 위해 힘쓰며 기도하는 자들이 주께 부르짖으면

    그들이 부르짖기 전에 하나님께서 응답하시고,

    그들이 말을 마치기 전에 그를 위하여 천국을 움직이시겠다는 것입니다.

 

 

2. 주께서 주실 새 하늘과 새 땅(요한계시록 21)

 

    이사야가 말한 새 하늘과 새 땅을

    사도 요한은 요한계시록에서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합니다.

 

    사도 요한은 장차 주께서 다시 오실 때

    우리가 지금 보고 있는 이 땅과 하늘은 모두 사라지고

    없게 된다는 점을 분명하게 증거합니다.

 

    그렇게 주께서 세상 사람을 모두 심판하시고, 주께서 만드신 이 세상도 모두 끝내신 후

    새로 창조하신 새로운 하늘과 땅이 등장합니다.

 

 1) 새 하늘과 새 땅 : 완전히 새로운 세상을 다시 창조하시는 하나님(1절)

 

           1. 그 후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전에 있던 하늘과 땅)은 없어졌고(사라지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더 이상 존재하지 않았다).

 

    아담과 하와로부터 마지막 때의 사람들까지 모든 사람들에 대한 심판이 끝난 후

    요한은 하나님께서 새로 창조하신 새 하늘과 새 땅을 봅니다.

 

    그때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은 이미 모두 사라지고 없습니다.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란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이 땅과 이 하늘을 뜻합니다.

 

    이 지구와 저 우주에 있는 모든 별들까지 모두 다 사라지고

    하나님께서 완전히 새로운 세상을 다시 창조하십니다.

 

 2) 하늘에서 내려오는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2절)

 

            2. 또 내가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을 보았는데

               그 예비한 것이 마치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것 같더라.

 

    하나님께서 새 하늘과 새 땅을 만드신 후에 요한이 다시 보니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늘에서 하나님께로부터 내려옵니다.

 

    지상의 예루살렘도 하나님의 백성들의 도성이었으나,

    그들이 하나님을 배반하여 이미 이방인의 땅이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새롭게 창조하신 새 하늘과 새 땅에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을 새로 만드십니다.

 

 2)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2절)

 

            (2절 성경구절 위에)

 

    요한은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의 모습이

    마치 신랑을 위하여 단장한 신부의 모습 같았다고 했습니다.

    더 이상 그 아름다움을 표현할 길이 없어

    여인의 한평생에 가장 아름다운 때인 신부의 모습과 같다고 표현한 것입니다.

 

    그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에 하나님께서 사람들과 함께 계십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의 눈물을 닦아 주시니

    다시는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도 울부짖음도 아픈 것도 다시는 없습니다.

    이제는 그들을 괴롭게 하는 모든 것들이 다 사라졌기 때문입니다.

 

 

3. 악인에 대한 심판(이사야 66)

 

 1) 불로 심판하시는 하나님(15~16절)

 

           15. 보라, 여호와께서 불에 옹위되어(불에 둘러싸여) 강림하시리니,

                그 수레들은 회오리바람 같으리로다. 그가 혁혁한 위세로 노여움을 나타내시며,

                맹렬한 화염으로 책망(심판)하실 것이라.

           16. 여호와께서 불과 칼로 모든 혈육(온 세상)에게 심판을 내리신즉

                여호와께 죽임을 당할 자가 많으리니

 

    이사야는 먼 미래에 있을 이 세상의 마지막 때의 일을 아주 희미한 그림으로 보여줍니다.

    이사야가 전하는 이 최후의 심판의 그림은 복음서와 요한계시록을 요약한 것 같습니다.

 

    이 세상에서 자기 고집대로 살아간 자들,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것을 그 마음에 기뻐하며 그런 것만 찾아다닌 자들에게

    하나님께서 불로 강림하시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세상 끝에는 하나님께서 불로 세상을 심판하시리라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자기 고집대로 살아간 자들,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것을 그 마음에 기뻐하며 그런 것만 찾아다닌 자들에게

    하나님께서 불로 강림하시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세상 끝에는 하나님께서 불로 세상을 심판하시리라는 것입니다.

 

 2) 죽지 않는 구더기, 꺼지지 않는 불(17, 24절, 마가복음 9:43~49)

 

           17. “스스로 거룩하게 구별하며 스스로 정결케 하고, 동산에 들어가서

                   그 가운데 있는(우상 숭배하는) 자들을 따라 돼지고기와 가증한(부정한) 짐승과

                   쥐 고기를 먹는 자가 다 함께 망하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24. 그들이 나가서 내게 패역한 자들의 시체들을 볼 것이라

               그 벌레(구더기)가 죽지 아니하며 그 불이 꺼지지 아니하여

               모든 혈육(모든 사람)에게 가증함이 되리라

               -----------

 

           43. 만일 네 손이 너를 죄짓게(넘어지게) 하거든 그것을 찍어 버리라.

                불구자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손을 가지고 지옥 곧 꺼지지 않는 불에 들어가는 것보다 나으니라.

           44. (없음) (어떤 사본에는 48절과 같은 말씀이 이곳에도 반복하여 기록되어 있습니다.)

               [거기(지옥)에는 구더기(벌레)도 죽지 않고 불도 꺼지지 아니하느니라.]

           45. 또 네 발이 너를 범죄하게(넘어지게) 하거든 그것을 잘라 버리라.

              저는 다리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발을 가지고 지옥에 던져지는 것보다 나으니라.

           46. (없음) (어떤 사본에는 48절과 같은 말씀이 이곳에도 반복하여 기록되어 있습니다.)

              [거기(지옥)에는 구더기(벌레)도 죽지 않고 불도 꺼지지 아니하느니라.]

           47. 만일 네 눈이 너를 범죄하게(넘어지게) 하거든 그 눈을 빼어버려라. 한눈을 가지고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두 눈을 가지고 지옥에 던져지는 것보다 나으니라.

           48. 거기(지옥)에는 구더기(벌레)도 죽지 않고 불도 꺼지지 아니하느니라.

           49. 사람마다(모든 사람이) 불로써 소금 치듯 함을 받으리라

               (소금에 절여지듯 불에 절여질 것이다).

 

    이런 상태로 영원히 있어야만 합니다.

    일단 그 멸망의 자리에 들어가면 다시는 나아질 수 있다는

    그 어떤 소망도 가질 수 없습니다. 이것이 절망입니다.

 

 

2 : 시련 중에도 기뻐할 수 있는 이유(베드로전서 1)

 

1. 베드로 전서의 첫 수신자

 

 1) 흩어진 나그네(1절)

 

           2. 곧 하나님 아버지께서 미리 아심(미리 세우신 계획)을 따라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으로 순종함과 예수 그리스도 피 뿌림을 얻기 위하여

              택하심을 입은 자들에게 편지하노니,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더욱 많을지어다.

 

    베드로는 본서의 첫 수신자를 ‘본도, 갈라디아, 갑바도기아,

    아시아와 비두니아에 흩어진 나그네’(1:1)라고 했습니다.

 

    여기에서 흩어진 나그네는 외지에서

    로마 점령지역의 땅으로 이주해 온 낯선 이방인을 가리킵니다.

 

    이들은 원주민과 달리 지역적으로 뿌리가 없고 민족과 언어와 문화가 달랐으므로

    항상 기존 질서 및 안녕에 대한 위협적인 존재로 간주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 나그네들은 언제나 지역 주민들로부터 비방, 차별, 착취 등을 당했습니다.

 

 2) 그리스도를 인하여 세상에서 불이익을 당하는 자들(나그네)

 

    그런데 본문에서 나오는 ‘나그네’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 때문에 본국에서 더 이상 살지 못하고

    다른 나라로 이주해온 예수님을 믿는 나그네들입니다.

 

    믿음 때문에 박해와 비방과 착취를 받으며

    이리저리 흩어져 고난을 받는 그리스도인 나그네들에게
    베드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힘과 용기를 전하려 합니다.

 

 3) 택하심을 입은 자들(2절)

 

            (2절 성경구절 위에)

 

    ‘택하심을 입은’에 해당하는 ‘에클렉토이스’는

    하나님께 택함을 받아 하나님 앞에서 특권을 소유한 자들을 가리킵니다.

 

    이들이 세상에서는 예수님을 믿는다는 이유로 여러 어려움과 불이익을 당하고 있으나

    하나님 앞에서는 특별한 사랑과 특권을 소유한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베드로는 이들 나그네들에게 지금 현실은 비록 힘들고 어렵지만,

    이들은 하늘의 집을 찾아가는 나그네이므로

    이들이야말로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은 자들이요,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들이라고 격려합니다.

 

    이들이 힘들고 어려운 시련 속에서도 끝까지 그 믿음을 잃지 않고 지키면

    장차 주께서 다시 오시는 날 큰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될 것이라고 격려합니다.

 

 

2. 여러 가지 시련 중에도 오히려 크게 기뻐할 수 있는 이유

 

 1) 우리를 거듭나게 하셔서 산 소망을 갖게 하셨으므로(3절)

 

            2. 곧 하나님 아버지께서 미리 아심(미리 세우신 계획)을 따라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으로 순종함과 예수 그리스도 피 뿌림을 얻기 위하여

               택하심을 입은 자들에게 편지하노니,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더욱 많을지어다.

 

    이렇게 온갖 박해와 냉대 속에 있는 흩어져 사는 그리스도인들에게

    베드로는 그 시련을 오히려 기뻐하라고 말합니다.

 

    우리가 시련 속에서도 기뻐할 수 있는 첫 번째는

    이 시련을 통해 우리가 가진 소망이 더욱 확실한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베드로는 여기에서 우리가 가진 소망을

    ‘거듭남’, ‘산 소망’ ‘썩지 아니하고 쇠하지 아니하는 기업’이라고 표현했습니다.

 

    ➀ 거듭남

 

       거듭남이란 육신의 생명만 가진 사람이

       하나님께서 새로 창조하신 새로운 생명을 더 얻게 된 것을 말합니다.

 

       이 새로운 생명은 이 땅에서부터 저 영원한 나라까지 이어집니다.

       이 새로운 생명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찬양하는 자들에게만 있는 생명입니다.

 

       마치 태아가 엄마와 탯줄로 연결되어 그 생명을 이어가듯,

       이 새로운 생명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통해 그 생명을 이어갑니다.

       이것을 요한은 ‘영’이라고 했고, 베드로는 여기에서 ‘영혼’이라 했습니다.

 

       육신의 생명만 있는 자는 영의 생명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이런 자들을 가리켜 ‘육은 살았으나 영은 죽었다’고 말합니다.

 

       육체의 생명도 먹고 마시고 입고 자는 생활을 통해 그 생명이 이어져가듯,

       영의 생명도 말씀을 먹고 기도를 통해 호흡하고,

       예배를 통해 하나님의 빛을 공급받는 영적인 활동을 통해 그 생명이 이어져갑니다.

       이렇게 하나님을 사랑하게 하는 새로운 생명이 생긴 것을 거듭났다고 합니다.

 

    ➁ 산 소망

 

       이렇게 거듭나서 새로운 영의 생명이 생긴 자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귀하게 여기고 그 말씀을 따라 살려 하는 신령한 갈망이 생깁니다.

       사랑하는 자를 만나고 싶은 갈망이 있듯

       우리에게 생명 주시는 하나님을 향한 갈망이 생깁니다.

 

       이런 은혜 속에 살아가는 자들은

       장차 주께서 이 땅에 다시 오실 때에 주님과 함께 영원한 나라에 들어가게 됩니다.

       이 소망은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 소망이므로

       베드로는 ‘산 소망’이라고 한 것입니다.

 

    ➂ 썩지 아니하고 쇠하지 아니하는 기업(4절)

 

            4. 썩지 않고, 더러워지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낡아 없어지지 아니하는) 기업을

               물려받게 하시나니, 곧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간직하신 것이라.

 

       세상의 소망은 아무리 크고 강하고 멋있게 보일지라도

       결국 썩고 더러워지고 낡아집니다.

       우리가 지금 눈으로 볼 수 있는 것 중에 영원한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러나 주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것은 영원히 변하지 않는 것입니다.

       변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영원히 새로워집니다.

       우리는 그 안에서 항상 새로운 기쁨을 얻게 됩니다.

 

 2) 마지막 때에 예비하신 구원을 얻기 위해 하나님의 보호를 받고 있으므로(5절)

 

            5. 너희가 말세(마지막 때)에 나타내기로 예비하신 구원을 얻기 위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하심을 입었나니

 

    우리가 시련 속에서도 기뻐할 수 있는 두 번째는

    주께서 이 땅에 오셔서 세상을 심판하실 그 때에

    구원받는 자가 되기 위해 우리가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를 받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고통 중에서 겨우겨우 견디며 그 믿음을 붙잡고 있을 때

    하나님께서 능력으로 우리를 지키시고 보호하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그 시련 속에서 망하는 자가 되지 않게 하십니다.

 

 3) 그 시련이 우리의 믿음을 더욱 확실한 것이 되게 하므로(6~7절)

 

            6. 그러므로 너희가 이제 여러 가지 시험으로 인하여(온갖 시험을 당하여)

               잠시 동안 근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었으나 오히려 크게 기뻐하도다.

            7. 너희 믿음의 시련이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하려 함이라.

 

    어떤 사람은 하나님께서 당장 그 시련을 중단시키지 않고

    계속 시련 가운데 있게 하시는 이유가 무엇이냐고 묻습니다.

    그 시련이 더욱 큰 복을 주게 하기 때문입니다.

 

    마치 고3 학생들이 대학 입학시험을 위해 공부하는 것이 힘들게 보여도

    부모들이 안타까워하면서도 그냥 두고 볼 수밖에 없는 것처럼,

    하나님께서도 우리가 더 큰 복을 받기 위해 그 시련을 지나가야만 한다는 것을 아시므로

    안타까우면서도 우리를 지켜보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결과 우리의 믿음이 더욱 분명하고 확실한 것이 됩니다.

 

 4) 그 믿음의 결과로 우리의 영혼이 구원을 받게 되므로(8~9절)

 

            8. 예수님을 너희가 보지 못하였으나 사랑하는도다. 지금도 보지 못하나 믿고,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하니

            9. 믿음의 결국(믿음의 결과로) 곧 영혼의 구원을 받음이라.

 

    그 시련의 결과로 우리의 믿음이 더욱 분명하고 확실한 것이 되므로

    결국 그 시련을 통해 우리는 구원을 받는 자가 됩니다.

    그 시련 속에서도 믿음을 잃지 않고 견딘 결과 우리는 하나님 나라를 얻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시련을 두려워하지 말고

    도리어 큰 즐거움으로 기뻐하라는 것입니다.

 

묵상 : 산 소망과 죽은 소망과의 대비

 

    ➀ 산 소망 : 장차 올 구원에 대한 소망

    ➁ 죽은 소망 : 이 땅의 일에 대한 소망

 

    산 소망은 영원한 하나님 나라에 대한 소망이고

    죽은 소망은 돈과 권세와 같은 이 땅에서의 성공에 대한 소망입니다.

    우리는 이 둘 중의 하나의 소망을 붙잡아야 합니다.

 

    산 소망을 붙잡는 자가 되십시오.

    그러면 주께서 이 땅의 일까지 함께해주십니다.

 

 

3 : 신실한 성도들이 반드시 지켜야 것

 

1. 마음의 허리를 동이고 근신하여 거룩한 자가 되라

 

    시련 속에서도 큰 즐거움의 기쁨을 주는 구원의 은혜를 누리며 살기 위해

    우리가 반드시 기억하고 해야만 하는 일이 있습니다.

    그것은 세상 사람들의 사욕(정욕)을 본받지 말고

    신실한 믿음의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일을 위해 베드로는 우리가 반드시 지켜야 할 것을

    다음 두 가지로 요약했습니다.

 

 1) 허리를 동이고(13절)

 

           13. 그러므로 너희 마음의 허리를 동이고 근신하여(마음을 단단히 먹고 정신을 차려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너희에게 가져올 은혜를 온전히(끝까지) 바랄지어다.

 

    당시의 사람들은 긴 천을 둘둘 말아 입는 ‘투니카’라는 옷을 입고 다녔습니다.

    긴 천을 말아 입는 것이므로 일할 때는 반드시 띠로 허리를 단단히 동여매야 합니다.

    그러므로 ‘허리를 동인다’는 말을 일할 준비를 한다는 뜻입니다.

 

    베드로는 구원의 은혜를 항상 누리며 살기를 원하는 자들은

    언제나 마음의 허리를 동이고 살라고 말합니다.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언제든지 주를 위해 일할 마음의 준비를 하고 살라는 말입니다.

    언제든지 주께서 원하시면 주를 위해 일하겠다는 마음의 상태를 유지하며 살라는 것입니다.

 

 2) 근신하여(13절)

 

            (13절 성경구절 위에)

 

    근신한다는 것은 세상의 혼란과 유혹에 마음을 빼앗기지 말고,

    항상 주님의 백성답게 거룩한 몸과 마음을 유지하며 살라는 것입니다.

    주의 오심을 기다리는 긴장감을 잃지 않고 항상 맑은 마음을 갖고 살아가라는 것입니다.

 

 3) 허리를 동이고 + 근신하여

 

    그러므로 마음의 허리를 동이고 근신하라는 이 두 말을 합하면,

    세상에 마음을 빼앗기지 말고,

    항상 주를 위해 일할 마음의 준비를 하며 살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렇게 언제 어디에 있든지 주를 위해 일할 준비를 하며 사는 자에게

    주께서 구원받은 자가 누리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을 그 마음에 채우십니다.

 

➠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이 더 힘들어하는 이유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이 시험에 들었다고 말합니다.

    물론 시험에 들게 할 만한 힘든 일들이 있었겠지만,

    베드로전서의 독자들은 우리들보다 훨씬 더 힘든 삶을 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늘 기뻐하며 사는 것을 잃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이 시험에 자주 빠지는 것은,

    특별히 남들보다 더 어려운 삶을 살기 때문이 아니라

    그에게 베드로가 지적한 이 두 가지의 삶이 흐려졌기 때문입니다.

 

    세상에 마음을 빼앗겼으므로 작은 어려움에도 크게 영향을 받는 것이고,

    세상의 분주한 삶으로 인하여 주님과의 교제를 잃어버려서

    주께서 주시는 기쁨도 없어졌으니

    그 마음에 우울함과 좌절감으로 가득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작은 유혹에도 이기지 못하고,

    작은 고난에도 큰 고통을 느끼는 것입니다.

 

묵상 : 주께서 주시는 은혜를 끝까지 바라보십시오.

 

    그러므로 주를 위해 힘써 일하려 하는 마음을 잃지 않고 살아가십시오.

    그러면 주께서 당신의 마음에 하늘의 기쁨을 채우십니다.

    그 기쁨이 마음에 있는 모든 우울감과 좌절감을 몰아냅니다.

 

    주께서 주시는 은혜를 끝까지 바라보십시오.

    그 은혜의 길을 놓치지 마십시오.

 

 

2. 나그네로 있을 때를 두려움으로 지내고(17)

 

           17. 또한 사람을 외모로 판단하지 않으시고 각 사람의 행위대로 판단하시는 이를

                너희가 아버지라 부르고 있으니, 나그네로 사는 때를 두려움으로 지내라.

 

    우리는 잠시 이 세상에 들렀다 가는 나그네에 불과합니다.

    영원한 삶에 비하여 이 땅에서의 삶은

    그저 2~3일 여행을 다녀오는 정도밖에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 세상에서 나그네로 살았던 그 삶이 어떤 것이었느냐에 따라

    앞으로 우리가 영원히 살게 될 미래의 삶이 결정됩니다.

    그러므로 베드로는 장차 우리가 받게 될 심판을 생각하며

    오늘 내가 나그네로 사는 삶을 어떻게 살고 있는지 두려움으로 살펴보라고 경고합니다.

 

묵상 :

 

    날마다 그날그날의 삶이 어떠했는지 자신을 돌아봅시다.

    그래서 잘못된 죄의 때를 회개함으로 벗겨냅시다.

    이 일을 게을리하면

    우리의 모든 행위를 심판하시는 주님 앞에서 결국 그 죄의 심판을 받게 됩니다.

 

 

3. 죄의 악순환을 끊으라.

 

 1) 죄의 악순환(18절)

 

           18.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조상들로부터 물려받은 망령된 행실에서 대속함을 받은 것은

                은이나 금같이 없어질(썩어질) 것으로 된 것이 아니요

 

    아담과 하와가 죄를 지은 이후로 우리는 죄를 더 좋아하는 본능을 가지고 태어났습니다.

    태어날 때부터 우리는 구원과 아무런 상관도 없는 헛된 것들을 더 좋아하는

    타락한 본성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 타락한 본능으로 죄를 짓고,

    죄를 지으면 마귀가 우리에게 죄를 더 좋아하는 독을 집어넣고,

    그러면 우리는 그 죄로 인하여 더욱더 죄의 본능이 강렬해집니다.

 

    더 강렬해진 죄의 본능으로 더 흉악한 죄를 지으면

    악한 영이 죄를 더 좋아하는 강렬한 죄의 독소를 또 집어넣습니다.

    이런 죄의 악순환이 계속되는 동안

    우리의 심령은 말할 수 없이 피폐해졌습니다.

 

 2) 주께서 이 죄의 악순환을 끊으셨습니다.

 

    그러나 예수께서 이 저주받은 죄의 악순환을 끊으셨습니다.

    우리 안에 있는 죄의 본능을 파괴하셨고,

    또 우리가 이전에 지은 모든 죄의 흔적까지 모두 지우셨습니다.

 

    이것은 금이나 은 같은 돈으로 된 것이 아니라,

    흠도 점도 없는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된 것입니다.

 

    예수께서 우리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달리심으로

    이 저주받은 죄의 본능과 죄의 습관과 죄의 자취들을 모두 무너뜨리셨습니다.

    우리의 이전 모습은 죽었고,

    예수 안에서 우리는 완전히 거룩한 자로 새롭게 태어난 것입니다.

 

 3) 새 생명의 면역체계인 죄의 정화작용이 고장 나지 않게 하십시오.

 

    이 세상 어디에도 병균이 없는 곳은 없습니다.

    우리가 아침에 샤워를 하여 몸을 깨끗이 씻었더라도

    밖에 나가는 순간 온몸에 병균으로 가득 차게 되는데,

    그럼에도 우리가 병에 들지 않는 것은

    우리 몸에 있는 면역체계와 자정 정화작용이 작동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피부가 썩지 않고, 병균이 들어와도 병에 걸리지 않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이 세상에 어디에도 죄가 전혀 없는 곳은 없습니다.

    아침에일어나는순간부터우리는

    마음으로 입으로 행동으로 수많은 죄를 짓고 살아갑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주신 새로운 생명에는 죄의 면역체계, 죄의 정화작용이 있어서

    그 죄를 씻고 정결한 자가 되어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으로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날마다 말씀을 읽고 묵상하고 기도하는 일을 통해

    죄의 병균과 허물의 곰팡이가 우리 안에 들어와도

    새 생명의 면역체계와 죄의 정화작용으로 우리는 죄 없는 거룩한 자로 인정받게 됩니다.

 

    그러나 만일 바쁘다는 이유로 말씀 묵상과 기도를 게을리하고, 예배까지 빠지게 되면

    새 생명의 면역체계도, 죄의 정화작용도 고장 나게 됩니다.

    그러면 우리는 다시 치명적인 죄의 악순환에 빠져

    불과 며칠이 가지 않아 흉악한 죄에 빠지는 자가 되고 마는 것입니다.

 

묵상 : 주께서 죄를 이기게 하시는 것임을 기억하십시오.

 

   죄를 이기고 난 후에 주님을 찾는 것이 아닙니다.

    죄를 이길 수 없으니 주님을 찾는 것입니다.

 

    죄를 극복하고 난 후에 주의 도우심을 청하는 것이 아닙니다.

    내 힘으로는 도저히 죄를 극복할 수 없으니

    나를 그 죄에서 빼내 달라고 주께 도움을 청하는 것입니다.

 

    내가 죄를 이기는 것이 아니라

    주께서 내가 죄를 이기도록 나를 도우시는 것임을 기억하십시오.

 

 

결 론 : 이사야서의 결론(여호와의 종에게 주시는 복)

 

    드디어 이사야가 끝이 났습니다.

 

    이사야는 66장이나 되는 아주 긴 말씀입니다만, 간단하게 한 마디로 요약됩니다.

   “세상 만민을 구원하기 위해서 고난받는 여호와의 종을 위한 말씀”

    이것이 이사야입니다.

 

    여호와의 종은 하나님을 참되게 섬기는 개인 경건을 가진 자가

    거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주님을 믿지 않는 자들을 구원하는 일에 참여하는 자들을 가리킵니다.

    이런 자들에게 이사야서에 기록된 모든 복이 주어집니다.

 

    그리고 그 복이 바로 이사야와 요한계시록에서 말한 ‘새 하늘과 새 땅’입니다.

 

    사람을 구원하는 일을 위해 무슨 일이든 하십시오.

    사람이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 장애가 되는 걸림돌을 치우는 일을 하십시오.

    불평하지 말고 기도하는 자가 되십시오.

    이 모든 일을 잘 감당하도록 성령 충만한 자가 되기를 간구하십시오.

 

 

 

주님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영광스러운 즐거움이

가득한 삶을 살게 하옵소서.

 

주께서 주실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며

신실하고 건강한 믿음의 삶을

살아가게 하옵소서.

 

초대교회 성도들처럼 어떤 어려움이 있더라도

끝까지 믿음을 잃지 않게 하옵소서.

 

하늘의 집을 얻기 위해

이 땅에서 나그네처럼 사는 자들이 되게 하옵소서.

 

산 소망을 가진 자처럼 참된 믿음을 가지고

강하고 담대하게 살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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