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제목 :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
설교본문 : 베드로전서 3:12~22, 4:7~8
설 교 자 : 송호영 목사
설 교 일 : 2023년 1월 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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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론 :
1월이 다 지나가고 있습니다만,
아직도 사람을 만나면 종종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하는 인사를 듣습니다.
교회 복사기 점검하러 오시는 신도리코 기사님이 저에게 묻습니다.
“목사님, 교회에서도 새해 복 많이 받으라는 인사를 합니까?”
“물론이죠. 교회에서도 새해 복 많이 받으라는 인사를 합니다.
다만, 복의 개념이 세상과는 조금 다릅니다.”
시간을 다투시는 분이라 길게 말할 수 없어서
짧게 하늘의 복과 땅의 복의 차이를 설명해주었습니다.
그리고 그 하늘의 복 안에 땅의 함께 있으며
하늘의 복의 끝에 영원한 생명이 있음을 말해주었습니다.
1) 서로 반대되고 대척 관계에 있는 하늘의 복과 땅의 복
시간이 없어 아주 간단하게 말하였습니다만,
그러나 이 문제가 이렇게 간단하게 언급할 문제가 아닙니다.
땅의 복과 하늘의 복, 육신의 생명과 영의 생명이
자석의 N극과 S극처럼
서로 상충되고, 서로 반대되는 성격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땅과 육신의 일은 몸으로 느끼고 감각이 되는데,
하늘과 영의 일은 영의 감각이 있어야만 경험되고 알 수 있 때문에
믿음 없는 자들에게 이 일을 설명하기가 참으로 어렵습니다.
2) 영의 감각은 오직 하나님께서 주시는 새 생명으로만 얻을 수 있습니다.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리하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마태복음 7:7)
영의 감각이 있어야만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이 얼마나 크고 놀라운 것인지를 알게 됩니다.
또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이 얼마나 크고 놀라운 것인지를 알아야
이 땅에서 일어나는 온갖 유혹과 시련에서 이기고
마지막까지 승리하는 믿음의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 베드로가 시련과 고난을 오히려 즐거워하라고 말할 수 있는 이유
베드로가 큰 핍박과 고난 중에 있는 그의 성도들에게
그들이 겪고 있는 극심한 시련을 도리어 즐거워하라고 말할 수 있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오늘 본문 베드로전서 3장의 말씀을 통해
베드로가 우리에게 전하는 복과 기쁨과 즐거움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제 1 부 : 오직 믿음이 있는 사람만 할 수 있는 일
오직 믿음이 있는 자만이 할 수 있는 일이 있습니다.
그것은 의를 위하여 당하는 고난입니다.
주님을 섬기는 일을 위해서 내가 마땅히 받을 이익을 포기하고,
도리어 손해 보는 일을 택하는 일,
주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기 위해서 힘들고 어려운 일인 줄 알면서도
굳이 그 일을 하겠다고 나서는 일은
믿음이 없이는 결단코 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이사야서를 통해 살펴본 ‘고난받는 여호와의 종’이 바로 이것입니다.
1. 의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면 복 있는 자입니다.
1) 의를 의하여 고난을 받으면 복 있는 자입니다(3:13~14)
13. 또 너희가 열심으로 선을 행하면 누가 너희를 해하리요?
14. 그러나 의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면 너희는 복 있는 자이니,
그러므로 그들의 두려워함을 두려워하지 말며, 소동하지(근심하지, 불안해하지) 말고
(혹은, 그들의 두려운 모습이나 그들의 협박에 두려워하지 말고 근심하지 말고)
선한 사람이 세상을 다스린다면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열심히 선을 행하며 사는 사람들은
사람들의 칭찬과 존경을 받을 것입니다.
그러나 세상이 악할 때에는
선을 행하는 자들이 도리어 고난과 핍박을 더욱 심하게 받습니다.
베드로는 이렇게 의를 위해 힘써 일하다가 고난을 받는 자들에게
그들이 복 있는 자들이라고 말합니다.
고난과 핍박 중에서도 주님을 향한 믿음을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2) 그들의 위협을 두려워하지 말고 불안해하지 마십시오(3:14)
(14절 성경구절 위에)
주께서 이렇게 고난 중에도 주님의 말씀을 지키는 자들을 더 기뻐하시니
모든 믿는 사람들은 핍박자들이
무서운 얼굴을 하고 공갈과 협박을 한다고 할지라도
두려워하거나 불안해하지 말고 소동하지 말라고 말합니다.
그들의 협박에 두려워하지 말고
오히려 더욱 담대하게 선한 양심을 가지고 의의 일에 힘쓰는 자가 되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이미 승리한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묵상 :
➀ 의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면 이미 천국을 소유한 자입니다.
우리가 선한 양심을 가지고 착한 일을 하면서 살면 누가 우리를 해치겠습니까?
그러나 우리가 주님의 말씀대로 선하고 아름답게 살았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우리를 거짓으로 조롱하며 핍박한다면 우리는 복 있는 자입니다.
이미 천국의 복을 소유하며 사는 자라는 말씀입니다.
➁ 의를 위하여 고난을 받는 것은 이미 영생을 가진 자라는 증거가 됩니다.
우리가 주님의 뜻대로 살았음에도 조롱과 핍박을 받았다면,
핍박하는 자는 멸망의 증거요,
핍박을 받는 자는 영생의 증거가 됩니다.
그러므로 의를 위하여 받는 고난을 오히려 기뻐하고 즐거워하십시오.
주께로부터 받을 상이 큽니다.
2. 주께서 옥에 있는 영들에 복음을 전파하셨다는 것에 대하여(3:19~20)
19. 그가 또한 영으로 옥에 있는 영들에게 가서 기쁜 소식을 전파하시니라.
20. 그들은 전에 노아가 방주를 준비하는 동안에,
곧 하나님께서 아직 오래 참고 기다리실 때에 복종하지 않던 자들이라.
물로 심판하실 때 그 방주에 들어가 구원받은 사람은 적으니 겨우 8명이라.
베드로전서 3:19~20의 이 말씀은 참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난구절 중의 하나입니다.
예수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셨다는 말씀을 하다가
갑자기 생뚱맞게 예수께서 부활하시기 전에 영으로 옥에 있는 영들을 찾아가셔서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셨다는 말씀을 전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말씀 이외의 다른 구절에서는 일단 사람이 한 번 죽으면
다시는 구원 받을 수 있는 기회가 없다고 말씀하고 있는데,
여기에서는 이미 죽어서 그 영이 옥(음부, 하데스, 스올)에 갇혀 있는 자들을
주께서 찾아가셔서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여
그들이 구원 받을 수 있는 기회를 한 번 더 주셨다는 말씀을 하고 있으니
혼란을 느낍니다.
1) 주께서 영으로 계실 때에 단 한 번 찾아가셨습니다.
이 말씀에서 우리 모두가 명심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후 부활하시기까지 영으로 계실 때에
영으로 음부(지옥)에 갇혀 있는 자들을 한 번 찾아가셨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그 영들은 전에 노아 때에 죽었던 자들이라고
분명히 증거하고 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합니다.
2) 그 후에 예수님은 부활하셔서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아 계십니다.
그 후에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고 부활하신 후에는
하늘에 오르셔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십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지옥에 찾아가셨던 일은
영으로 계실 때 단 한 번 있었던 일이므로,
이 말씀을 소위 말하는 ‘연옥설’을 증명하는 말씀으로 이해해서는 안 됩니다.
3) 노아의 홍수 때에 멸망을 당했던 자들을 위해
예수께서는 그 때 노아의 가족 8명 외에
이 땅에 있던 모든 자들이 다 구원받지 못하고 죽은 것을
못내 가슴 아파하셨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십자가에 달리신 후 부활하시기까지 만 3일이 못 되는 그 시간에
그들이 갇혀 있는 음부로 찾아가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구원 받을 수 있는 기회를 한 번 더 주시기 위해 복음을 전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이 일은 사도신경에도 나옵니다.
사도신경의 원어에는 “본디오 빌라도에게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고
장사하여 (지옥에 내려 가셨다가)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사”로 되어 있습니다.
4) ‘지옥에 내려가셨다가’ : 사도신경에 빠져 있는 이유
‘지옥에 내려가셨다가’ 이 말씀이 베드로전서 3:19에도 있고,
사도신경의 원어에도 있는 말씀입니다만, 종교개혁자들이 성경을 번역할 때
이 말씀이 천주교의 연옥설을 연상하게 한다고 해서 빼버렸습니다.
그러나 최근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 마음대로 임의로 넣거나 뺄 수 없으므로
사도신경에 이 말씀을 다시 회복하여 고백하고 있습니다.
5) 그러나 이 말씀은 주의 죽으심과 부활을 더욱 확실하게 언급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러나 베드로가 이 말을 이 부분에서 언급한 것은
예수께서 영으로 노아 때에 죽었던 자들을
찾아가셨다는 것을 말하려 한 것도 있었겠지만,
그보다는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확실히 죽으셨다는 점을 말하려 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잠시 기절하셨다가 깨어나신 것이 아니라 확실히 죽으셨고,
예수님의 영이 죽은 자들이 갇혀 있는
그 영의 옥(음부)에까지 내려가셨다고 증거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확실하게 죽으셨던 예수께서 다시 몸으로 부활하셨으니
우리도 그의 부활하심을 따라 부활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본문 말씀을 베드로가 증거한 것 이상으로 확대해석하여
‘연옥설’을 주장하는 것으로 나아가서는 안 됩니다.
● 묵상 :
사람이 구원을 받을 수 있는 기회는 오직 육신이 생명을 갖고 있을 때뿐입니다.
내 생명이 육신에서 떠나는 순간,
그의 회개도, 그의 믿음의 고백도 아무런 소용이 없고,
오직 육신에 생명이 있을 때의 회개와 고백만이
우리를 구원받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게 한다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제 2 부 : 주님의 눈과 귀는 항상 의인을 향하여 열여 있으니
1. 온유와 두려움으로 하고 선한 양심을 가지십시오
1) 더 강한 고난이 닥쳐올지라도 두려워하지 말며(3:14)
14. 그러나 의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면 너희는 복 있는 자이니,
그러므로 그들의 두려워함을 두려워하지 말며, 소동하지(근심하지, 불안해하지) 말고
(혹은, 그들의 두려운 모습이나 그들의 협박에 두려워하지 말고 근심하지 말고)
그리스도인들은 그 어떤 핍박이나 협박에도 두려워하지 말고
오히려 더욱 담대히 선한 양심을 가지고 의에 일에 힘써야 합니다.
하지만 핍박이 왔는데도 그 일을 계속한다는 것이
그 핍박자들의 입장에서 보면 그들에게 더욱 도전적으로 보일 수도 있습니다.
이것은 때때로 더욱 강한 고난을 예고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이렇게 앞으로 더 강한 고난이 예고되고 있을지라도
우리는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일을 멈추어서는 안 됩니다.
2) 온유와 두려움으로 하고(3:15)
15. 너희 마음에 오직 그리스도만 거룩한 주님으로 모시고,
너희 속에 있는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 자에게는 대답할 것을 항상 예비하되
온유와 두려움으로(부드럽고 공손하게)하고
그러나 때때로 우리에게 비난과 조롱을 하던 자들이
우리 마음속에 담긴 소망이 무엇인지를 물을 때가 있습니다.
물론 그들의 질문은 많은 경우 우리를 더욱 비난하기 위한 것입니다만,
그렇더라도 그들처럼 같이 흥분하여 싸울 듯이 말하지 말고
더욱 신사적으로 정중하게
그들에게 내가 가진 믿음의 소망이 무엇인지를 설명해야 합니다.
우리는 이런 일이 있을 것을 예상하여
항상 이런 질문에 대답할 것을 준비하고 있어야 합니다.
그들이 먼저 질문했으니 이보다 더 좋은 전도의 기회가 어디 있습니까?
그런데 내가 미리 준비하지 못하여 대답하지 못했다면
하나님께서 마련해주신 좋은 기회를 놓치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3) 선한 양심을 가지라(3:16)
16. 선한 양심을 가지라.
그러면 그리스도 안에서 행하는 너희의 선한 행실을 욕하는 자들로
그 비방하는 일에 부끄러움을 당하게 하려 함이라.
선한 양심은 ‘하나님과 함께 바라본다, 하나님과 함께 안다’라는 뜻으로,
하나님과 생명이 연결된 자가
하나님께서 주신 마음과 생각으로 살아가는 것이 선한 양심을 가진 것입니다.
이 세상을 살아갈 때 하나님께서 주시는 마음과 생각으로 살아가라는 것입니다.
특히 베드로가 이 편지를 쓸 때처럼 극한 고난이 다가올지라도
주님의 백성다운 신실함을 잃지 말라는 것입니다.
➠ 항상 대답할 것을 준비하고(15절)
(15절 성경구절 위에)
이렇게 우리가 선한 양심을 가지고 착하고 아름답게 살아가면,
세상 사람들이 우리에게
“당신은 어떻게 당신에게 악하게 하는 사람에게까지
그렇게 선하게 대할 수 있느냐?”하고 물을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영원한 하나님 나라의 소망을 가졌기 때문이라고
대답할 수 있어야 합니다.
누군가 우리에게 우리의 소망에 대하여 묻는다면
항상 대답할 수 있도록 말씀의 훈련이 되어 있어야 합니다.
내가 먼저 전도를 하면 상대의 마음이 닫힐 수 있지만,
그가 먼저 질문하였다면 우리가 전하는 말에 귀를 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항상 선한 삶을 살되, 소망에 대하여 물을 때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주어진 영생의 소망을 온유하고 겸손하게 대답하여야 합니다.
● 묵상 :
누가 언제 어떤 질문을 하다라도 대답할 것을 항상 준비하십시오.
또 예수님을 믿는 나의 신앙이 온전한 것인지를
늘 자신의 믿음을 분별하고 확인하십시오.
이 일을 위하여 우리는 항상 예수께서 주신 복음의 말씀이 무엇인지,
주님의 백성들이 가져야 할 소망이 무엇인지를 확실히 알고 있어야 합니다.
믿음의 소망이 무엇인지 확실히 알고 깨닫고 믿기 위해
당신은 지금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2. 주님의 눈은 의인을 향하시고,
주님의 귀는 의인의 간구에 기울이십니다(3:12)
12. 주님의 눈은 의인을 향하시고 그의 귀는 의인의 간구에 기울이시나,
주의 얼굴은 악행하는 자들을 향하시느니라” 하였느니라.
주님은 이렇게 주님의 말씀대로 살아가기에 힘쓰는 자들을 주목하십니다.
주께서 그들의 형편을 살피십니다.
그리고 그들의 간구하는 기도에 귀를 기울이십니다.
목소리만 높인다고 능력 있는 기도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기에 힘쓰는 자들은
조용히 속삭이는 기도를 해도 주께서 그 기도를 들으시는 것입니다.
● 묵상 :
능력 있는 기도는 기도의 방법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능력 있는 기도는 기도하는 자의 마음과 자세에서 나옵니다.
하나님을 향한 간절함을 가진 기도,
말씀에 순종하고자 하는 열망을 가진 기도가 능력 있는 기도입니다.
새해에는 이런 기도를 드리는 성도가 됩시다.
3. 새 마음과 새 영을 주어 그의 백성 삼으시는 하나님
1) 새 영과 새 마음을 주어 돌같이 굳은 마음을 부드럽게 할 것이라(겔 36:26)
26.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돌같이 굳은 마음을 제거하고 살처럼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
하지만 포로지에서조차 죄짓는 일을 멈추지 않고 있는 이 상태로는
결코 하나님의 백성의 지위를 회복할 수 없습니다.
그렇다고 지금 당장 죄를 멈추라고 명령한다고 할지라도
그 죄짓는 습관이 당장 고쳐질 수도 없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새 영과 새 마음을 주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돌같이 굳은 그들의 마음이 살처럼 부드럽게 되게 하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새 영은 하나님의 성령을 가리킵니다.
하나님의 성령을 받은 자들은 그 마음이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말씀을 기쁨으로 순종할 수 있는 자가 됩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일을 자기도 함께 즐거워하는 자들이 되기 때문입니다.
이 약속의 말씀은 예수께서 승천하신 지 10일 후에
마가의 다락방에 있던 120명의 성도들에게서 이루어집니다.
그들에게 성령이 충만하게 임하시는 순간
그들은 하나님을 섬기는 기쁨으로 충만했습니다(행 2장).
2) 내 규례를 지키고 행하도록 할 것이라(겔 36:27)
27. 내 신(내 영)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로 하여금 내 율례를 행하게 하리니,
너희가 내 규례를 지키고 행하도록(지키고 실천할 수 있는 자가 되도록) 할 것이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새 영(성령)은
우리를 돕기 위해 오신 하나님의 영이십니다.
성령은 마치 어린아이 옆에서 엄마가 일일이 챙겨주듯
성령께서 우리 안에 들어오셔서 우리의 마음을 청소해주시고,
우리가 하나님의 신령한 백성이 되도록 도우시는 것입니다.
성령이 우리 안에 들어오셔서 제일 먼저 하시는 일은
우리의 영을 깨끗하게 청소하여주시는 일이고,
그 다음에는 하나님의 말씀을 기쁨으로 듣도록
우리의 마음을 바꾸시는 일입니다.
구약 시대에는 하나님께 매를 맞을 것이 두려워 억지로 일하는 자였다면,
성령이 오시고 난 후에는 사랑하는 자를 위해 일하는 것이 기쁨이듯
하나님을 사랑하며 섬기는 일이 기쁨이고 즐거운 일이 됩니다.
3) 너희는 내 백성이 되고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리라(겔 36:28)
28) 그때에는 내가 너희 조상들에게 준 땅에 너희가 거하여
(너희는) 내 백성이 되고,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리라.
그런데 더욱 놀라운 일은
성령께서 우리 안에 들어오셔서 이제 막 청소를 시작하셨는데
그 순간부터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우리의 하나님이 되신다는 점입니다.
4.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벧전 4:8)
1) 주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것같이 사랑하는 자에게 주시는 복
8. 무엇보다도 열심으로(뜨겁게) 서로 사랑할지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
만물이 가까웠으니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삼가 조심하면서) 깨어 기도하십시오.
무엇보다도 뜨겁게 서로 사랑하십시오.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습니다.
베드로가 말하는 허다한 죄를 덮는 사랑은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그런 육체적인 사랑이 아닙니다.
예수께서 우리에게 보여주신 그런 사랑입니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요 15:12)라고 하셨습니다.
주께서는 이것이 주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새 계명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주께서 우리에게 보이신 사랑은
우리를 구원받는 자가 되게 하려고 스스로 고난받으신 사랑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다른 사람들이 믿음을 갖도록 하기 위해
내가 마땅히 누릴 나의 권리를 포기하고,
나를 희생하는 사랑을 하라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이 구원받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도록 하기 위해
고난받기까지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주님을 확실히 믿는 자가 아니면
다른 사람이 믿음의 사람이 되도록 하기 위해
내가 누릴 권리까지 포기할 정도로 다른 사람을 사랑할 수 없습니다.
믿지도 않는 일을 위해 내 권리를 포기할 사람은 없기 때문입니다.
2) 그러나 너무나도 많은 사람들이 혼자만의 신앙생활을 하려 합니다.
내가 주께 예배드릴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도 예배의 자리로 초청하고,
그들이 주님을 믿는 사람이 되도록 복음을 전하고 가르치는 일을 하는 것,
이것이 믿음이고
이것이 바로 우리가 보여야 할 사랑입니다.
● 묵상 :
그러나 오늘날 너무나도 많은 사람이 다른 사람이야 어떻든 상관하지 않고
그저 조용히 혼자 예배만 드리고 서둘러 교회를 빠져나가는 신앙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내가 다른 사람에게 관심을 갖지 않으면
주께서도 나에게 관심을 갖지 않으실 것입니다.
내가 다른 사람의 아픔에 관심이 없으면
주께서도 내 아픔에 관심을 갖지 않으십니다.
내가 다른 사람의 믿음의 문제에 관심이 없으면
주께서도 내가 실족했을 때 나를 외면하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신실한 믿음을 가진 사람이 되도록
주께서 우리에게 힘과 능력이 되어주신 것처럼,
우리도 건강한 믿음의 사람이 되도록
서로 힘과 능력이 되어주어야 할 것입니다.
결 론 :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고 깨어 기도하십시오.
베드로는 그들이 고난을 받는 동안
이전에 하던 극한 방탕의 모든 죄의 습관에서 벗어날 수 있었으니,
이제 육체의 남은 시간을 육체의 정욕을 따라 살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뜻대로 살자고 권면합니다.
왜냐하면 그 고생을 하고
겨우 그 저주받은 죄의 습관에서 벗어날 수 있었는데
죄의 욕망에 다시 빠지면 그 고생을 또 해야만 하기 때문입니다.
1) 정신을 차리고(벧전 4:7)
7.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이 왔으니,
그러므로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
그러나 이 사회는 여전히 현란한 유혹거리들로 가득합니다.
그러므로 베드로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깨어 기도하라고 경고합니다.
정신을 차리라는 것은
내가 지금 생각하는 것, 내가 지금 꿈꾸고 있는 것이
하나님 보시기에 합당한 것인지를 항상 살펴서
죽은 낙엽같이 세상 죄악에 휩쓸리는 자가 되지 말라는 것입니다.
2) 근신하여 기도하라
근신한다는 것은 마치 초병이 경계의 일을 계속하는 것처럼,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의 자리를 계속 지키는 것을 뜻합니다.
세상 유혹이나 역경에 흔들리지 말고,
항상 영적으로 맑은 상태를 유지하려면 근신하여 기도하는 것,
즉 날마다 말씀을 묵상하고 기도하기를 멈추지 말아야 합니다.
● 묵상 :
영을 건강하게 하려는 이런 노력을 게을리하면
나도 모르게 내 마음에 죄의 때가 끼어서
세상 욕망을 기웃거리는 사람이 되고 맙니다.
그러므로 주님 오시는 날까지 말씀을 묵상하고 기도하는 일을
결코 멈추지 마십시오.
주님
날마다 말씀을 묵상하여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는
건강한 믿음의 삶을 항상 살게 하옵소서.
하나님의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같이
항상 맡은 일에 충성되게 하옵소서.
주님의 손을 끝까지 놓지 않게 하셔서 주와 함께 영생의 나라에
들어가는 자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