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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 설교문

내 안에 의의 열매가 가득하게 되어서(3월 5일; 빌 1:1~21)

작성자송호영|작성시간23.03.06|조회수114 목록 댓글 0

설교제목 : 내 안에 의의 열매가 가득하게 되어서

                  하나님의 영광과 찬송이 되도록

설교본문 : 빌립보서 1:1~21, 시편 94편

설 교 자 : 송호영 목사

설 교 일 : 2023년 3월 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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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론 :

 

    하나님께서 처음 세상을 만드셨을 때는 즐거움과 행복만 있었습니다.

    그러나 아담과 하와가 범죄한 이후부터 이 땅에 고통이 생겼습니다.

    그때부터 질병과 죽음이 생겼습니다.

 

    그 후부터 이 세상에는 즐거움뿐 아니라 고통도 함께 공존하는 세상이 되었고,

    이것으로 세상에 권력과 권세가 생겼습니다.

    즐거움과 쾌락, 고통과 시련의 능력을 가진 자들이 세상의 통치자가 된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신앙 역시 즐거움과 쾌락, 시련과 고통의 자리에 있습니다.

    더 좋은 것을 위해 즐거움을 포기하고,

    더 나은 것을 위해 고통의 자리도 감당하는 것 이것이 신앙입니다.

 

    오늘 우리가 볼 빌립보서는

    큰 고통의 자리에서 기쁨을 노래한 바울과 빌립보 교인들의 이야기입니다.

 

    빌립보 교인들이 겪고 있었던 고통이 무엇인지를 알면

    그들이 그 고통 속에서 어떻게 그런 기쁨을 노래했고,

    어떻게 그런 놀라운 열매를 맺었는지 궁금해질 것입니다.

 

    오늘 빌립보서 1장의 말씀을 통해 그 궁금함을 해결하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우리도 그들처럼 어떠한 환경에서든지 행복할 수 있는 비결을

    배울 수 있기를 바랍니다.

 

 

1 : 큰 고통의 자리에서 기쁨을 노래하는 바울과 빌립보 교회

 

1. 빌립보서 소개

 

 1) 빌립보 도시의 소개

 

    그리스 북부에 위치한 빌립보는

    알렉산더 대왕의 아버지 필립 2세가 자신의 이름을 따서 건설한

    마케도니아의 도시였습니다.

 

    로마에서 동부로 뻗어나간 제국의 에그나티아 대로(大路)에 놓여

    일찍부터 상업과 교역의 중심지로 번영을 누렸습니다.

    BC 42년경에 로마의 속주로 재건된 이래 이곳에서 태어난 사람은

    모두 로마 시민의 특혜를 누렸기에 이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했습니다.

 

 2) 힘들고 어려운 삶을 살던 빌립보 교회의 성도들

 

    그러나 주후 60년에 바울에게서 이 편지를 받은 빌립보 교회의 성도들의 대부분은

    행복하기 매우 어려운 몹시 고달픈 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 도시의 작은 언덕들에 상당량의 금과 은이 매장되어 있었고,

    평지는 매우 비옥한 토지를 이루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빌립보시에 사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하루에 12시간씩 금과 은을 캐거나 땅을 갈아야만 했습니다.

    빌립보의 일부의 귀족들을 제외한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의 삶은

    고달프고 지긋지긋한 것이었습니다.

 

 3) 주께서 바울을 이 고달픔의 도시 빌립보로 인도하셨습니다.

 

    그런데 주께서 바울을 이 고달픔의 도시로 인도하셨습니다.

    바울이 제2차 선교여행을 떠나려 할 때 아시아로 가고자 했었는데,

    주께서 바울의 계획을 막으시고 유럽의 마케도니아 쪽으로 갈 것을 명하셨습니다.

    이렇게 해서 바울은 마케도니아 지경의 첫 도시인 빌립보에 가게 되었습니다.

 

    때로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전혀 이해가 되지 않는 방향으로 인도하실 때가 있습니다.

    바울 역시 이때 자신을 빌립보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아시아로 가려던 계획을 막고 성령께서 친히 그를 인도하신 도시 빌립보가

    고통에 찌든 사람으로 가득한 도시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빌립보는 로마 다음으로 교통이 발달 된 사통팔달한 도시였으므로

    그가 세운 빌립보 교회를 통해 많은 열매를 맺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때부터 바울의 선교를 가장 많이 후원해준 교회가 바로 빌립보 교회입니다.

 

 4) 바울이 빌립보에서 처음 만난 루디아(사도행전 16:12~14)

 

            12. 거기서 빌립보에 이르니 이는 마게도냐 지방의 첫 성이요

                 또 로마의 식민지라 이 성에서 수일을 유하다가

            13. 안식일에 우리가 기도할 곳이 있을까 하여 문밖 강가에 나가

                 거기 앉아서 모인 여자들에게 말하는데

            14. 두아디라 시에 있는 자색 옷감 장사로서 하나님을 섬기는 루디아라 하는 한 여자가

                 말을 듣고 있을 때 주께서 그 마음을 열어 바울의 말을 따르게 하신지라

 

    바울이 빌립보에서 처음 만난 사람이 자주 옷감 장사 루디아였습니다.

    그녀와 그녀의 집이 다 세례를 받은 후 그녀의 집에서 빌립보 교회는 시작되었습니다.

 

    그런데 두 번째 회심자인 귀신 들려 점치던 여종을 만난 후

    바울은 감옥에 갇히고 말았습니다.

    바울이 그녀를 고쳐주었다는 이유로 심문도 받지 않은 채

    심하게 매를 맞은 후 쇠사슬과 착고에 채워진 채 감옥에 갇힌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이 전화위복이 되었습니다.

    바울과 실라는 그 감옥에서 그 상태로 밤새도록 하나님께 찬양을 했습니다.

    이로써 바울은 빌립보 교인들과 처음 만나던 때부터

    ‘어떠한 형편에서든지 항상 행복할 수 있는 것’을 몸소 보여주게 된 것입니다.

 

 5) 빌립보서의 주제 : 어떠한 형편에서든지 행복할 수 있는 비결

 

    그 후 바울이 로마에서 갇혀 있을 때 에바브로디도로부터

    빌립보 교인들의 소식을 들은 후

    ‘어떠한 형편에서든지 항상 행복할 수 있는 비결’이란 주제의 편지를 보냅니다.

    이것이 빌립보서입니다.

 

➠ 바울의 사역의 적극적인 후원자가 된 빌립보 교회

 

    빌립보 교인들은 바울에 의해 전도를 받아 예수님을 믿은 이후로

    계속해서 바울의 전교 사역을 돕습니다.

 

    바울이 고린도교회에서 생활비를 전혀 받지 않고 사역을 계속할 수 있었던 것은

    빌립보 교회의 성도들이 계속해서 바울의 생활비를 보내주었기 때문입니다.

    빌립보 교회의 성도들은 자기들도 힘들고 어려운 삶을 살면서도

    바울을 후원함으로써 바울과 함께 복음 전하는 일에 참여하였습니다.

 

 

2. 기뻐할 수 없는 환경에 있었던 바울

 

    고된 노역의 고달픔에 시달리고 있는 빌립보 교인들에게

    ‘어떠한 환경에서든지 기뻐하라’는 주제의 편지를 쓰는 바울은,

    사실 자신의 지금의 처지야말로 결코 기뻐할 수 없는 처지라고 말합니다.

 

    바울이 빌립보서를 쓸 때 다음과 같은 고통에 시달리고 있었습니다.

 

 1) 비겁한 예루살렘 교회

 

    바울이 기뻐할 수 없는 첫째 이유는

    바울의 옥살이가 예루살렘 교회의 비겁한 행동으로 인하여 일어났기 때문입니다.

 

    당시 예루살렘 교회의 지도자는 예수님의 육신의 동생 야고보였습니다.

    야고보는 바울이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하는 자이고,

    이방인에게 할례를 받지 않아도 된다고 말했다는 이유로

    유대인들 사이에 큰 분노가 있다면서 그 분노를 잠재우기 위해

    예루살렘 성전에서 7일간의 정결예식을 행하라고 말합니다.

 

    그 과정에서 바울이 유대인들에게 붙잡혀 그 길고 긴 옥살이를 하지만,

    예루살렘 교회는 바울을 위해 그 어떠한 도움도 주지 않습니다.

    모든 일을 바울 혼자 다 감당했습니다.

    여기에서 바울은 예루살렘 교회로부터 버림받았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2) 억울한 옥살이

 

    바울의 억울한 옥살이는 야고보의 조언에 따라 행한 정결예식이 다 끝나갈 무렵

    이방 지역에서 온 유대인들이 바울을 알아보고는

    바울이 이방인을 예루살렘 성전 안에까지 데리고 들어왔다고 거짓으로 고발하여

    이를 지켜보던 유대인들을 잔뜩 흥분시켜서 시작된 일입니다.

 

    바울은 이방인을 예루살렘 성안에까지만 데리고 들어왔지,

    성전 안으로는 데리고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확인도 해 보지 않고

    단지 바울이 밉다는 이유로 바울을 고발하여 감옥에 가둔 것입니다.

 

 3) 이유 없이 계속되는 옥살이

 

    거짓된 고발로 옥에 갇혔고 그 심문 과정조차도 정상적이지 않습니다.

    나중에는 바울에게 죄가 없는 줄 모두가 다 알게 되었지만

    각자의 정치적 입장을 생각하느라 바울을 풀어주지 않습니다.

 

    가이사랴의 총독 벨릭스 역시 바울에게 돈을 받을까 싶은 생각에

    별 이유 없이 바울을 감금하여둡니다.

    그렇게 해서 죄 없는 바울이 예루살렘과 가이사랴에서 2년 동안 옥살이를 합니다.

 

 4) 로마에서도 지루한 옥살이는 계속되고(17절)

 

           17. 시기와 다툼으로 전하는 자들은 나의 매임에 괴로움을 더하게 할 줄고 생각하여

                순전치 못하게(순수한 동기로 하지 않고, 불순한 동기에서)

               다툼으로(경쟁심으로) 그리스도를 전파하느니라.

               그래서 갇혀 있는 자를 더욱 괴롭게 하려는 생각을 품고 있습니다.

 

    로마로 압송된 후에는 빌립보 교인들이 보내준 돈으로

    로마 황제의 궁궐 근처에 있는 소위 셋방에서 감금된 채 지냈습니다.

    그러나 이때에도 아무런 이유 없이 재판도 받지 않은 채

    18개월 동안 감금되었습니다.

 

    로마에서 미결수가 재판도 하지 않고

    18개월이나 지나는 일은 아주 드문 일이라고 합니다.

    길어야 6개월 안에 재판이 끝나 기결수가 되어

    감옥에 가든지 무죄 방면이 되든지 합니다.

    그러나 바울은 이유 없이 18개월이나 미결수 상태로 있습니다.

 

    17절은 이때 바울이 이유 없이 오래 감금된 것이

    바울을 경쟁상대로 여긴 시기와 다툼으로 하는 자들이 바울을 괴롭게 했다고 하여,

    이 일이 바울의 경쟁자들이 고의로 한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3.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바울이 기뻐할 수 있었나

 

 1) 삶의 목표와 관심이 다르다

 

    바울의 관심은 오직 복음을 증거하는 데 있습니다.

    비록 자신이 억울한 옥살이를 하고 있고,

    자신을 경쟁상대로 여기고 있는 시기와 질투에 사로잡힌 자들로 인하여

    더욱 고통스럽게 되었다고 하더라도,

    자신으로 인하여 복음이 전해지니 오직 그것으로 인하여 기뻐하고 또 기뻐합니다.

 

 2) 기쁨의 주제가 다르다

 

    세상 사람들은 자기의 손에 무엇인가 주어져야만 기뻐합니다.

    그러나 그들의 손에 이 세상 모든 것이 다 있다고 할지라도 죽으면 아무 소용없습니다.

 

    또 내가 갖지 못한 새로운 것을 가졌다고 할지라도

    그 새로운 물건이 나에게 주는 기쁨은 고작 한 달 정도에 불과합니다.

    그 물건으로 인한 기쁨이 사라지면 사람들은 또 새로운 것을 찾습니다.

    이렇게 끝없이 새로운 것만 찾다가 멸망하는 것이 인생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우리를 영원토록 기쁨의 세계로 인도하는

    복음의 말씀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말씀을 전하는 사역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자신이 비록 지금 고통을 당하고 있지만

    그 일로 영원한 기쁨을 전하는 복음이 전해지고 있으니 기뻐할 수 있는 것입니다.

 

묵상 : 내가 바울처럼 주를 위해 살아갈 수만 있다면

 

    만일 우리가 주를 위해 살아가려는 간절한 마음을 품고 살아간다면

    우리가 얼마나 더 놀라운 일을 할 수 있을까요?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놀라운 은사들이

    내가 이 세상 것을 더 얻으려고 마음을 쓰는 동안에 내 안에 그저 쌓여만 있습니다.

 

    바울처럼 주를 위해 일하는 것을 기뻐하는 자가 된다면

    우리도 엄청난 일을 할 수 있는 자가 됩니다.

    능력이 없는 것이 아닙니다.

    주를 위해 일하려는 간절함이 없는 것입니다.

 

 

2 : 바울의 소망 자신을 통하여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되는 것

 

1. 자신을 철저히 복음의 도구로만 여기는 바울

 

    바울이 이런 고통스러운 환경 속에서도 그가 기뻐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갇히지 않았으면 할 수 없었던 일을 그가 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1) 예루살렘의 귀족들에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두 명의 총독들과 아그립바 왕, 산헤드린 공의회 회원들과

    그들을 지키는 군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방법은

    바울이 죄인이 되어 그들 앞에 심문을 받는 방법밖에 없었습니다.

 

    그들은 심문을 하는 과정에서 바울에게 자신을 위한 변론의 기회를 주었고,

    바울은 변론의 기회가 주어질 때마다 복음을 전하였던 것입니다.

 

 2) 로마 황실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예루살렘과 가이사랴에서의 2년의 투옥 기간이 지나고

    로마에 압송되어서도 거의 2년 가까운 감금 생활은 계속되었습니다.

 

    로마에서는 소위 ‘셋방’이라 불리는 곳에 감금되었는데,

    감금된 죄인은 밖으로 나갈 수 없지만

    다른 사람은 자유롭게 들어올 수 있었기에 셋방이라 불리웠습니다.

 

    그가 그곳에서 감금되어 있는 동안 로마의 궁에 있던 약 6000여 명의 상주인구 중

    1/3이나 되는 사람들이 바울에게 복음을 들었습니다.

    이것은 바울이 갇혀 있었기에 할 수 있는 일들이었습니다.

 

 3) 오직 복음이 전파되는 것을 기뻐하는 바울(17~18절)

 

           17. 시기와 다툼으로 전하는 자들은 나의 매임에 괴로움을 더하게 할 줄고 생각하여

               순전치 못하게(순수한 동기로 하지 않고, 불순한 동기에서)

              다툼으로(경쟁심으로) 그리스도를 전파하느니라.

              그래서 갇혀 있는 자를 더욱 괴롭게 하려는 생각을 품고 있습니다.

           18. 그러면 무엇이뇨(그러나 그것이 무슨 상관이 있느뇨)?

               외모로 하나 참으로 하나(겉치레로 가식으로 하든 진실로 하든)

               전파되는 것은 그리스도니 이로 인하여 내가 기뻐하고 또 기뻐하리라.

 

    바울은 자신을 미워하는 자들이 바울의 갇힌 일을 이용하여

    분쟁과 투기의 방법으로 자기의 세력을 확장 시키려는 세력들을 향하여도,

    그 일을 인하여도 증거되는 것은 복음이니

    그를 인하여 기뻐하고 또 기뻐하리라고 말합니다.

 

언제 어떤 상황에서도 오직 복음을 전하는 일에만 집중하는 바울

 

    자신을 오직 복음의 도구로만 여기는 바울,

    자유할 때나 옥에 갇혀 있을 때가 그의 오직 한 가지 소원은

    그의 입을 열어 복음을 전하는 일이었습니다.

 

    바울은 언제 어떤 상황이 닥쳐오든 항상 이런 정신으로 살아갔습니다.

    루스드라에서 돌로 맞아 거반 죽게 된 상황에서도

    그는 일어나자마자 곧바로 자신이 돌을 맞았던 그 현장으로 나갔습니다.

 

 

2. 바울의 소망 :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되는 것

 

 1) 바울의 믿음 : 성령께서 자신을 자유하게 하실 것이다(19절)

 

           19. 이것이 너희의 간구와 예수 그리스도의 성령의 도우심으로

                나를 구원에 이르게(내가 감옥에서 풀려나게) 할 줄 아는고로

 

    바울은 비록 자신을 경쟁관계로 알고 시기와 질투로 행하는 자들이

    그를 더욱 괴롭게 한다고 할지라도,

    빌립보 교인들이 기도하고 있고 성령께서도 자신을 돕고 있으니

    조만간 감옥에서 풀려날 것이라고 말합니다.

 

 2) 그러나 바울이 바라는 것은 그리스도가 존귀하게 되는 것(20절)

 

           20. 나의 간절히 기대하고 소망하는 것은 내가 어떤 일에도 부끄럽지 아니하고,

                오직 전과 같이(항상 그랬듯이) 지금도 온전히 담대하여

                살든지 죽든지 내 몸을 통하여 그리스도가 존귀히 되게 하려 하나니

 

    그러나 바울이 이제 곧 감옥에서 나가 자유를 얻게 될 것이라고 말하기는 했지만,

    그가 진짜 바라는 것은 감옥에서 나가는 것이 아닙니다.

    바울은 그가 옥에 갇혀 있단 자유를 얻어 밖으로 나가든 상관없이

    오직 자신으로 인하여 그리스도께서 존귀하게 되는 것만을 바랄 뿐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존귀하게 된다는 것은

    그리스도께서 기뻐하시는 영역이 넓혀지는 것과,

    이 땅에 주를 찬송하는 자들이 더욱 많아지는 것을 뜻합니다.

 

    주의 이름을 높이는 자가 많아지는 것이 곧 주께서 존귀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 땅에서 주님의 이름이 존귀하게 되는 일이라면

    자기가 옥에 갇히는 일이라도 감사한 일이라는 것입니다.

 

묵상 : 이런 사람들을 통해 복음은 증거됩니다.

 

    바울같이 자신의 몸이 복음 증거의 도구로 활용되는 것을 소원으로 삼고,

    실제로 그것이 이루어졌을 때 그것을 가장 기뻐할 일로 여기는 자들로 인하여

    지금도 복음은 증거 되고 있습니다.

 

    어떤 이들은 말로 전도하고,

    어떤 이들은 주변 사람들을 오래 섬김으로 복음을 증거합니다.

 

    또 어떤 이들은 상대의 말을 잘 들어주는 일로,

    또 어떤 이들은 직장과 같이 자신이 속한 곳에서

    변함없이 성실하게 일함으로 복음을 전합니다.

 

    이 중에서 당신이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어떤 일이든 당신이 할 수 있는 일을 지금 시작하십시오.

    당신도 그 일로 인하여 많은 생명을 구할 수 있습니다.

 

 

3 : 교회 안의 무신론자를 조심하십시오(시편 94)

 

1. 교회 안에서의 무신론자에 대한 경고

 

 1) 악인들에 대한 심판을 호소(시 94:1~7절)

 

            1. 여호와여, 복수하시는 하나님이여 복수하시는 하나님이여 빛을 비추소서.

            2. 세상을 판단(심판)하시는 주여,

               일어나셔서 교만한 자에게 마땅한 형벌을 내려 주소서.

            3. 여호와여, 악인이 언제까지, 악한 자들이 언제까지 개가를 부르리이까?

            4. 그들이 마구 지껄이며 오만히(거만하게) 말을 하오며,

                죄악을 행하는 자가 다 자긍하니이다(자기 자랑하기에 바쁘나이다).

            5. 여호와여, 그들이 주의 백성을 파쇄하며(짓밟으며),

               주의 기업(주께서 택하신 민족)을 곤고케 하며,

            6. 과부와 나그네를 죽이며, 고아를 살해하며,

            7. 말하기를 “여호와가 보지 못하며,

               야곱의 하나님은 생각하지 못하리라(이런 일에 관심조차 없으리라)”하나이다.

 

        설명 - 지껄이며(4절) : 야비우

               ‘지껄이며’에 해당하는 ‘야비우’는

               ‘샘이 분출하는 것처럼 솟아나다, 쏟아지다’라는 뜻으로,

               ‘그치지 않고 연속으로 이어지는 것, 통제할 수 없는 흐름,

               조금도 입을 닫지 않고 말을 넘치게 토해내는 것’을 가리킵니다.

               여기에서는 자신보다 못한 자들을 업신여기며 악한 말을 마구 뱉어내는 것을 가리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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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편 94편의 시인은 자기를 대신하여

    하나님께서 복수해주실 것을 거듭 부르짖습니다.

    개인적인 원한을 갚아달라는 것이 아니라

    부패한 이 사회에 하나님의 공의를 세워달라는 요청입니다.

 

    악인들은 온갖 악한 일을 저지르면서도 하나님의 심판을 두려워하기는커녕,

    악한 일을 자랑삼아 마구 지껄이며 다닙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에 하나님의 빛을 비추어

    이러한 악인들의 행동을 밝히 드러내 달라고 요청합니다.

    그래서 악인이 더 이상 승리의 개가를 부르지 못하게 해 달라고 간구합니다.

    절대주권을 가지신 하나님께서 교만한 마음을 갖고 있는 무리들을

    속히 징벌해달라고 기도합니다.

 

 2) 시편 94편의 악인 : 하나님을 안다고 하나 실상은 모르는 자(7~10절)

 

            7. 말하기를 “여호와가 보지 못하며,

               야곱의 하나님은 생각하지 못하리라(이런 일에 관심조차 없으리라)”하나이다.

            8. 백성 중의 우준한(어리석은, 미련한) 자들아 너희는 생각하라.

               무지한 자들아 너희는 언제나(얼마나 더 있어야) 지혜로워지겠느냐?

            9. 귀를 지으신 자가 듣지 못하시겠느냐?

               눈을 만드신 자가 보지 못하시겠느냐?

           10. 열방(뭇 민족들)을 징벌하시는 자,

               곧 지식으로 사람을 교훈하시는 자가 징치(징벌)하지 않으시겠느냐?

 

    시편 94편이 말하는 악인은 하나님을 모르는 세상에서의 악인이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 중에 거하면서

    하나님의 통치 아래 들어오기를 거부하는 자들을 가리킵니다.

 

    그들은 정기적으로 하나님 앞에 예배를 드리면서

    율례(율법, 하나님의 말씀)도 존중하는 자들이라고 말하는 자들입니다.

 

    본문에서 이들이 막강한 힘을 가진 자로 묘사된 것으로 보아

    이들은 교회에서도 꽤 높은 중직에 있는 자들로 보입니다.

    적어도 겉모습으로는 이들은 하나님을 잘 섬기는 아주 신실한 자로 보입니다.

 

 3) 하나님의 율법을 자신의 이익의 도구로 사용하는 자(5~6절)

 

            5. 여호와여, 그들이 주의 백성을 파쇄하며(짓밟으며),

               주의 기업(주께서 택하신 민족)을 곤고케 하며,

            6. 과부와 나그네를 죽이며, 고아를 살해하며,

 

    그러나 이들은 하나님께서 주신 율법을 사람을 핍박하는 데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리고는 하나님께 드리는 정기적인 예배에만 잘 참석하면

    하나님께서는 내가 세상에서 하는 일은 잘 알지 못하실 것이라고 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과부나 나그네나 고아와 같이 사회적 약자들에 대하여

    불쌍히 여기고 도와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연약한 자들을 자기들의 이익의 대상으로만 여길 뿐입니다.

 

    요즈음 우리나라에서도 힘 있는 자들의 ‘갑질’이 문제가 되고 있는 것처럼,

    이들 역시 자기보다 힘이 약한 자들을 함부로 대합니다.

 

    심지어 이익을 위해서라면 사람을 죽이는 일까지 하면서

    말로는 하나님의 율법을 존중히 여긴다고 합니다.

    그러면서도 자기보다 못한 사람들을 업신여기는 말들을

    절제하지 않고 토해내듯 말하면서 다닙니다.

 

 4) 교회 안의 무신론자(7~10절)

 

            (7~10절 성경구절 위에)

 

    소위 말해서 교회 안에서의 무신론자입니다.

    하나님은 나의 예배에만 관심이 있을 뿐

    나의 개인적인 삶에는 관심이 없다고 생각하는 자들입니다.

 

    교회에서의 신앙생활은 열심히 하지만,

    일단 세상 속에 나가면 하나님의 말씀과는 영 다른 삶을 사는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자신은 누구보다도 하나님을 잘 섬기는 자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을 나의 왕이며, 나의 통치자로 생각하지 않는 이런 사람은

    교회 안에서의 무신론자들입니다.

 

    베드로후서 2장의 말씀으로 보면

    이들이야말로 사교집단보다 더 무서운 이단들입니다.

    사교집단이야 누구든지 이단인 줄 알고 있으나

    이들은 교회 안에 있으면서 교회를 오염시키고 있기 때문입니다.

 

묵상 :

 

    당신이 참 하나님의 백성이 되려면

    하나님께서도 당신을 하나님의 백성으로 여기셔야만 합니다.

    그것이 당신 혼자만의 주장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2. 하나님을 두려워할 줄 아는 자가 되십시오.

 

 1) 하나님을 사랑하면서 두려워하는 것 : 경외(敬畏)

 

    하나님은 크게 상반된 두 가지의 성품을 가지셨습니다.

    사랑과 공의입니다.

    그런데 너무나도 많은 사람이 사랑의 하나님만을 바라보려 합니다.

 

    하나님은 분명 사랑이 많으신 하나님이십니다.

    나를 용서하시고,

    나를 위해 십자가에까지 달리실 만큼 나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나 또한 내가 범죄 하였을 때는

    하나님의 공의로 나를 심판하시는 하나님이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며 경배와 찬양을 드리면서

    다른 한 편으로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주신 말씀에 충성하는 것입니다.

 

 2) 얼마나 더 있어야 너희가 지혜로워지겠느냐(8절)

 

            8. 백성 중의 우준한(어리석은, 미련한) 자들아 너희는 생각하라.

                무지한 자들아 너희는 언제나(얼마나 더 있어야) 지혜로워지겠느냐?

 

    시대가 변하여 점점 하나님을 두려워할 줄 모르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오직 내가 좋아하는 일이면 무엇이든 하는 것이

    인생을 멋있게 사는 것이라고 말하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두려워할 줄 모르면 94편에서 말하는 악인들처럼

    어느 사이에 내 안에 하나님께서 제일 싫어하시는 교만이 자라게 됩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할 줄 아는 사람이 되십시오.

 

묵상 :

 

   “나는 선한 목자라 내가 내 양을 알고 양도 나를 아는 것이”(요한복음 10:14)

 

    나 혼자 주장하는 신앙인이 아니라,

    주님도 나를 아시는 그런 신앙인이 되어야 합니다.

 

 

결 론 : 내 안에 의의 열매가 가득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찬송이 되도록

 

➠ 빌립보 교회를 위한 바울의 기도(빌립보서 1장)

 

1) 사랑이 지식과 총명으로 점점 더 풍성해지도록(9절)

 

            9. 내가 기도하노라.

               너희 사랑이 지식과 모든 총명으로 점점 더 풍성하게 되어서

 

    바울은 언제 어디를 가든 빌립보 교회의 성도들을 자랑했습니다.

    그들을 생각할 때마다 바울의 마음이 기쁘고 행복했습니다.

    빌립보 교회의 성도들의 신실한 믿음과 하나님을 향한 그들의 뜨거운 사랑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아무리 하나님을 사랑해도

    그 사랑에 하나님을 아는 지식과 총명이 함께하지 않으면

    언제 이상한 사교집단에 넘어질지 알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그들의 그 사랑이 지식과 총명으로 점점 더 풍성해지기를 간구합니다.

 

    지식은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가리키는 것으로 잠언의 지혜와 같은 것이고,

    총명은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사리를 분별하는 것으로 잠언의 명철과 같은 것입니다.

    사랑이 하나님의 지혜의 말씀을 알고,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사리를 분별하는 명철과 함께해야만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거룩한 신앙으로 자라게 합니다.

 

 2) 지극히 선한 것이 무엇인지 분별할 줄 알게 되며(10절)

 

           10. 너희가 지극히 선한 것이 무엇인지 분별할 줄 알게 되며,

                또 그리스도의 날까지 순결하고 흠이 없이 지내며

 

    이렇게 사랑과 지식과 총명(지혜와 명철)이 함께 할 때

    그들은 지극히 선한 것이 무엇인지 분별할 줄 아는 자가 됩니다.

 

    지극히 선한 것이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을 뜻합니다.

    주님을 향한 사랑의 마음을 가진 자가

    무엇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인지 분별할 줄 알게 되면

    바울처럼 기쁨으로 주님의 일을 하는 자가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바울처럼 주님을 향한 사랑과 분별력을 함께 구하는 자가 됩시다.

 

 3) 그리스도의 날까지 순결하고 흠이 없이 지내며(10절)

 

            (10절 성경구절 위에)

 

    내 안에 그리스도의 사랑과 지식과 총명을 채우고,

    이와 동시에 날마다 주님 앞에 행한 크고 작은 죄들을 회개하여

    우리의 영을 깨끗이 씻는 일을 계속한다면

    우리는 그리스도의 날까지 순결하고 흠이 없이 지내는 자가 됩니다.

 

 4) 의의 열매가 가득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찬송이 되도록(11절)

 

           11.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의의 열매가 가득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찬송이 되게 하시기를

               (하나님께 영광과 찬송을 올려드리는 자가 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우리는 그저 날마다 주님의 말씀을 묵상하며 기도하는 일을 했을 뿐입니다.

    그런데 그 말씀이 내 안에 지식과 총명(지혜와 명철)으로 바뀌어

    하나님의 아는 것이 자라게 합니다.

 

    그러다 어느 날 우리는

    하나님의 지극히 선한 것을 분별하는 분별력을 가진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주님의 성령이 우리 안에서 신령한 역사를 하신 것입니다.

 

    이렇게 한 편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채우고,

    다른 한 편으로 주님 앞에 거룩하고 순결한 자가 되도록

    허물과 죄를 주께 회개하며 사는 동안 우리 안에 하나님의 의가 채워집니다.

    이 일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니 하나님의 영광과 찬송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그에게 가득하게 되니 그의 마음속에 하나님을 향한 찬송이 가득합니다.

    그러므로 아예 그가 하나님의 영광과 찬송이 된다고 표현했습니다.

 

    아들이나 딸이 잘되면 그 부모의 영광이 되듯,

    우리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자가 되면 이것을 하나님께서 더 기뻐하시니

    우리 안에 채워지는 의의 열매가 곧 하나님의 영광과 찬송이 되는 것입니다.

 

묵상 :

 

    이렇게 큰 은혜로운 일이 단지 날마다 주님의 말씀을 묵상하며

    주님과 사귀며 사는 일로 일어난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주님과 사귀는 일을 멈추지만 않는다면

    주께서 내 안에 들어오셔서 이보다 더한 것도 이루어주십니다.

 

➠ 기도제목

 

    바울이 빌립보 교인들을 위해 기도한 기도제목을 기억하고

    이번 주 한주간만이라도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➀ 사랑이 지식과 총명으로 점점 더 풍성해지도록

 

    ➁ 지극히 선한 것이 무엇인지 분별할 줄 알게 되도록

 

    ➂ 그리스도의 날까지 순결하고 흠이 없이 지내는 성도가 되도록

 

    ➃ 의의 열매가 가득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찬송이 되도록

 

 

주님

 

주님을 향한 사랑이 지식과 총명으로

점점 더 풍성해지는 성도가 되게 하옵소서.

 

그래서 지극히 선한 일이 무엇인지

분별하는 자들이 되게 하옵소서.

 

우리도 바울처럼 우리 자신을 복음의 도구로 여기고,

또 그렇게 살아가게 하옵소서.

 

악한 시대에 생명을 구하는 능력을 가진

참되고 신령한 교회가 되게 하옵소서.

 

이 땅의 힘과 권력을 가진 자들이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가진 사명에 충성된 자들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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