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제목 : 살아야 할 이유가 분명한 사람, 너 그리스도인이여!
설교본문 : 빌립보서 1:21~30, 아모스 6:1~14
설 교 자 : 송호영 목사
설 교 일 : 2023년 3월 19일
---------------------------------------------
서 론 :
우리는 지난주에 예배에서 가장 중요한 세 가지를 살펴보았습니다.
기억과 기념과 예(禮, 왕께 드리는 예배, 예식)입니다.
하나님께서 하신 일을 기억하고,
그 일을 기념하는 것이 예배입니다.
그런데 기념은 기념인데 누구한테 하는 기념이고, 어떤 방식으로 기념합니까?
왕께 드리는 기념, 왕께 영광을 올려드리는 예입니다.
이 세 가지 중 하나라도 잘못되면 하나님께서 그 예배를 받지 않으시는데
이단과 사교 집단은 이 세 가지가 다 잘못되었습니다.
그런데 이단보다 더 두려움으로 보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우리가 보기에 거룩해 보이는 것들입니다.
영화 타워링과 포세이돈 어드벤쳐를 기억하실 것입니다.
타워링은 135층의 세계 최고층 빌딩 맨 꼭대기 연회장에서 개장 기념 파티를 하던 중
81층 배전반에서부터 화재가 발생합니다.
뒤늦게 불이 난 것을 알게 된 연회장에 큰 혼란이 일어나는데
일부의 사람들이 초고속 엘리베이터를 타려 하고, 또 일부는 계단으로 내려가려 합니다.
모두 잘못된 판단이었으나 고집을 부리던 몇 사람이 불에 타 죽고 맙니다.
포세이돈 어드벤쳐는 완전히 뒤집힌 배에서 살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영화입니다.
이 영화에서 목사 역으로 나온 진 해크만은 배가 뒤집혔으니 배의 스크루 쪽으로 가야 한다고 했으나
많은 사람이 거꾸로 뒤집힌 배의 갑판쪽으로 가야한다고 했다가 죽임을 당합니다.
두 영화 다 꽤 그럴듯해 보이지만
치명적으로 위험한 일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꽤 거룩해 보이고, 꽤 건전한 것처럼 보이는 것 중에도
이단과 사교 집단 만큼이나 잘못된 것이 있다는 것을 꼭 기억하십시오.
---------------------
제가 지난 14년간 큐티를 하고 다음 까페에 올리면서 알게 된 것이 몇 가지 있는데,
그 중에 하나가 마치 퍼즐을 맞추듯이 서로 짝이 맞는 말씀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제가 발견한 몇 가지 퍼즐 중에
주께서 다시 오시는 재림에 때에 관련된 말씀들을 먼저 살펴보겠습니다.
1) 마지막 때의 대혼란은 믿는 자들에게 주는 경고의 메시지(눅 19:44)
44. 또 너와 및 그 가운데 있는 네 자식들을 땅에 메어치며 돌 하나도 돌 위에
남기지 아니하리니 이는 권고받는 날을 네가 알지 못함을 인함이니라 하시니라
여기에서 ‘권고받는 날’은 하나님께서 심판하시기 전에
여러 재앙의 징조를 통해 회개하라고 메시지를 보내시는 날을 뜻합니다.
믿음이 없는 자는 하나님께서
이런저런 징조로 경고하시는 그 권고받는 날, 권고하는 날을 알지 못합니다.
마지막 환난이 아무리 전 지구적인 엄청난 재앙일지라도
믿지 않는 자들에게는 그 모든 일이 자연 재난일 뿐입니다.
마지막 때의 환난은 믿는 자들에게 때가 얼마 남지 않았으니
어그러지고 거스르는 뒤틀린 세상에서
믿음을 잃지 말고 끝까지 신앙을 지키라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경고의 메시지입니다.
2) 마지막 때의 혼란은 믿는 자들을 시험하는 마지막 관문(계 20:7~9)
7. 천 년이 차매(쳔 년이 다 끝나니) 사단이 그 옥에서 놓여
8. 나와서 땅의 사방 백성 곧 곡과 마곡을 미혹하고 모아 싸움을 붙이리니
그 수가 바다 모래 같으리라
9. 저희가 지면에 널리 퍼져 성도들의 진과 사랑하시는 성을 두르매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 저희를 소멸하고
환난과 재난은 분명 믿는 자들에게 믿음을 끝까지 잃지 말라는 경고로 주시는 메시지인데,
그 환난과 동시에 믿는 자들을 무너뜨리는 악한 영들의 공격이 진행됩니다.
(이 부분의 자세한 것은 요한계시록 20:7~15의 큐티 묵상포인트를 참조하십시오.)
악한 영들의 이 공격은 그리스도인의 믿음을 빼앗기 위한 것입니다.
이 일을 위해 때로는 믿는 자들을 유혹하여 넘어지게 하고,
때로는 견딜 수 없는 답답함과 우울함, 미움과 질투에 빠지게 하기도 합니다.
3) 성도의 권세가 다 무너지기까지(다니엘 12:4~7)
4. 다니엘아 마지막 때까지 이 말을 간수하고 이 글을 봉함하라
많은 사람이 빨리 왕래하며 지식이 더하리라
5. 나 다니엘이 본즉 다른 두 사람이 있어
하나는 강 이편 언덕에 섰고 하나는 강 저편 언덕에 섰더니
6. 그중에 하나가 세마포 옷을 입은 자 곧 강물 위에 있는 자에게 이르되
이 기사의 끝이 어느 때까지냐 하기로
7. 내가 들은즉 그 세마포 옷을 입고 강물 위에 있는 자가 그 좌우 손을 들어
하늘을 향하여 영생하시는 자를 가리켜 맹세하여 가로되
반드시 한때 두때 반때를 지나서 성도의 권세가 다 깨어지기까지니
그렇게 되면 이 모든 일이 다 끝나리라 하더라
다니엘 12:4~7은 마지막 때에 있을 최후의 환난의 성격을 말하는 것입니다.
천사는 마지막 때의 혼란이 성도의 권세가 다 무너질 때까지 계속될 것이라고 말해주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마지막 때에 구원받을만한 참된 믿음을 가진 사람들을 걸러내기 위해
믿는 자들이 힘들어하는 것을 알면서도 그 답답한 시간을 그대로 두실 계획을 세우셨다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우리가 늘 듣는 말씀이 있습니다.
4) 끝까지 이기는 자에게는 상이 있으리니
끝까지 믿음을 잃지 않는 자는 영원한 영광의 상을 받게 될 것이라는 말씀이
성경 곳곳에 후렴구처럼 있습니다.
제 1 부 : 욥의 고난은 마지막 때의 환난의 상징
아까 다니엘서에서 마지막 날의 환난은
이 세상이 아니라 믿는 자들을 시험하는 환난이라는 것을 살펴보았습니다.
그러면 마지막 날에 믿는 자들이 당할 엄청난 환난이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요?
그것을 설명하는 책이 욥기입니다.
욥기는 욥이 엄청난 고통에 시달렸다가 그 모든 고통을 믿음으로 이기고 모든 면에서
이전보다 갑절로 복을 받았다는 것으로 끝이 납니다.
그러나 욥기는 과거에 어떤 사람이
이러저러한 고난을 이기고 승리했다는 위인전과 같은 에피소드가 아닙니다.
욥기는 마지막 날에 있으리라는 큰 환난이 어떤 환난인지를 말씀하는 것입니다.
이제부터 우리가 당할 일이 무엇인지를 말씀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욥이 당했던 재앙이 무엇인지
간단하게 요약하여 살펴보겠습니다.
1) 욥이 당했던 재앙
하나님께로부터 욥에게 재앙을 내릴 것을 허락받은 사탄은
하루아침에 욥의 모든 재산을 도적과 벼락과 폭풍 등으로 모두 빼앗고,
욥의 자녀들도 한꺼번에 죽게 합니다.
그래도 욥이 하나님을 향한 믿음을 잃지 않고 여전히 하나님께 경배하자,
사탄은 최후로 욥의 온몸에 악성종기가 나게 합니다.
이 악성종기는 히스기야가 이 병으로 보름 만에 죽으리라고 했던 그 무서운 종기입니다.
➀ 하나님께로부터 욥에게 재앙을 내릴 것을 허락받은 사탄은
하루아침에 욥의 모든 재산을 도적과 벼락과 폭풍 등으로 모두 빼앗고,
➁ 이어서 욥의 자녀들도 한꺼번에 죽게 합니다.
➂ 그래도 욥이 하나님을 향한 믿음을 잃지 않고 여전히 하나님께 경배하자
사탄은 최후로 욥의 온 몸에 악성종기가 나게 합니다.
이 악성종기는 히스기야가 이 병으로 보름 만에 죽으리라고 했던 그 무서운 종기입니다.
➃ 가려움을 이기지 못해 기와로 온몸을 긁습니다.
➄ 몸에는 구더기가 가득하며,
➅ 뼈를 깎는 듯한 엄청난 통증이 단 1초도 쉬지 않고 계속됩니다.
➆ 귀에서는 하나님도 너를 버렸으니
차라리 죽어버리라는 이상한 소리, 환청이 계속 들려옵니다.
➇ 눈을 감으면 아주 흉악한 환상이 계속 보입니다.
⑨ 잠이라도 자면 좀 나으려나 싶은 생각에 잠을 자려 하지만
통증과 이상한 소리와 흉한 환상 때문에 도무지 잠을 이룰 수가 없습니다.
➉ 그러다 어쩌다 잠이 들면 어김없이 아주 흉악한 악몽을 꿉니다.
2) 절대고독 : 가족과 친구들과 마을 공동체로부터 철저히 외면당한 욥
욥이 당한 사회적 고난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➀ 욥의 모습을 보고 욥의 아내가 차라리 하나님을 저주하고 죽으라고 욕하고 떠납니다.
➁ 욥이 병이 들자 성 바깥에 있는 쓰레기 더미에 던져져 그 티끌 속에서 지냅니다.
➂ 욥의 친구들이 그를 찾아와서 욥에게 죄를 밝히라며 괴롭게 합니다.
➃ 온 마을 사람들이 욥을 벌레취급하며 그에게 욕설을 퍼붓고 때리며 돌을 던집니다.
욥이 당한 재앙은 그 자체만으로도 하루도 견디기 힘들 정도의 엄청난 고통입니다.
그런데 친구들은 고통당하는 욥을 바라보면서 그를 불쌍히 여기기는커녕
욥이 재앙을 당한 것을 보면 그가 엄청난 죄를 지었음에 틀림없다며
욥에게 회개할 것을 촉구하며 공격합니다.
그러다 욥 같은 자는 아무리 회개해도 하나님께서 듣지 않으실 것이라며
차라리 죽으라고 악담을 합니다.
욥은 가족과 친지들, 그로부터 도움을 받았던 자들,
심지어는 종들에게까지 철저히 외면을 당합니다.
때로 사람들로부터 죽음의 위협을 느낄 정도로 위협을 당합니다.
3) 욥을 가장 힘들게 한 것 : 속에서 불같이 터져 나오는 강한 욕망
죽고 싶은 욕망과 같은 추한 욕망들
위에 언급된 각종 재앙들뿐 아니라 욥을 더욱 힘들게 했던 것은
욥의 내면에 있었습니다.
마귀는 욥의 마음과 정신까지 건드려서 욥을 더욱 힘들게 했습니다.
끝없이 들려오는 환청과 눈만 감으면 보이는 끔찍한 환상들,
어쩌다 잠이 들면 어김없이 꾸는 흉한 악몽들과 함께
그의 마음속에서 죽고 싶은 욕망과, 저주의 증오의 감정들이
마치 화산처럼 터져 나오고 있었습니다.
➠ 이런 일들은 욥 자신이 보기에도 영락없이 저주받은 것처럼 보였습니다.
3) 그럼에도 끝까지 승리한 욥
그러나 욥은 이렇게 전방위적으로 그를 타격하는 고난과 고통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믿음을 지켰습니다.
물론 욥이 그 과정에서 때로 하나님께 절규하기도 하고,
자신을 외면하는 하나님께 불평하고 원망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다 차라리 자기를 죽여 달라고 호소하기까지 했습니다.
욥의 이런 모습이 때로 불경스럽게 여겨지기도 하지만,
그럴지라도 욥은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하기를 끝까지 멈추지 않았습니다.
더욱 감동스러운 것은, 귀에서는 하나님께서도 너를 버리셨으니
차라리 죽으라는 사탄의 그 끔찍한 속삭임이 끝없이 계속되고 있고,
눈만 감으면 흉악한 환상이 보이며, 꿈까지 악몽을 계속 꾸고 있는 상황에서도
하나님을 끝까지 의심하지 않고 믿었다는 점입니다.
4) 욥의 회개 :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삽더니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
끝까지 믿음을 잃지 않은 욥에게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세계가 어떠함을 말씀하십니다.
기후와 하늘의 별들까지도 모두 하나님께서 주관하십니다.
심지어 사람들이 너무나도 두려워하는 베헤못(하마)과 리워야단(악어)까지도
하나님 앞에서는 조그마한 노리개에 불과합니다.
그 모든 것 중에서 하나님께서 주관하지 않으시는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말씀을 하시는 이유는
그것이 비록 재앙일지라도 그 안에 하나님의 뜻이 담겨있다는 것을
믿을 수는 없냐는 것입니다.
조금 고통스럽더라도 하나님의 선하심을 믿고 기다려줄 수는 없느냐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은 욥은 하나님 앞에 엎드려 회개합니다.
전에는 하나님께 대하여 소문으로만 들었으나 이제는 눈으로 뵈옵는다고 말합니다.
이제야 비로소 하나님과 참된 교제를 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욥이 친구들을 위해 중보의 기도를 하자
하나님께서 그가 전에 가졌던 모든 것의 갑절로 복을 내리십니다.
● 묵상 : 욥이 당한 재앙은 마지막 때에 그리스도인이 당할 고난의 예고편입니다.
성경말씀 전체가 주께서 다시 오실 마지막 때를 경고하고 있습니다만.,
그 중에서도 특히 마지막 때의 일을 경고한 책이 몇 권 있습니다.
요한계시록과 다니엘서와 욥기가 그렇습니다.
요한계시록은 마지막 때에 일어날 혼란의 일들을 구체적으로 예언한 책이고,
다니엘서는 그 때의 혼란은 특히 주님을 믿는 사람들에게 집중될 것임을 경고하였으며,
욥기는 그때 주님을 믿는 백성들이 어떤 고난과 혼란을 느낄 것인지를 설명합니다.
욥기를 단순히 오래 전에 있었던 한 의인이 당한 옛 이야기로만 보아서는 안 됩니다.
욥이 당한 재앙은 마지막 때의 그리스도인들이 당하게 될 혼란의 그림자입니다.
욥이 당한 것과 똑같은 독한 종기를 앓게 되는 것은 아니겠지만,
그가 사회적으로 고립된 일이라든지,
우울감, 환상, 환청, 악몽 등 그의 내면에 큰 혼란이 일어난 일이라든지,
하나님을 향한 절규의 외침 등이 마지막 때의 성도들이 당할 재앙을 예고합니다.
위 1)번에서 말한 욥이 당한 10가지 재앙 중에
어떤 사람은 이런 재앙을, 어떤 사람은 저런 재앙을 당하며
그가 가진 믿음을 시험받게 될 것입니다.
그 재앙 중에도 욥이 끝까지 그 믿음을 지켰던 것처럼
우리도 주님 오시는 그날까지 끝까지 믿음을 지키는 자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제 2 부 :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거짓 예배(아모스 6장)
하나님께서 극히 미워하시는 거짓 예배를 가장 신랄하게 공격하는 책이 아모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오래전에 큐티한 말씀인 아모스 6장에서
먼저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예배가 어떤 것인지를 살펴보겠습니다.
1. 상류층의 안일함과 방탕함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
사람은 누구나 안전하고 든든한 마음에서 오는 평안한 삶을 원합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아모스는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거짓 예배의 첫 번째로
안전하고 든든하여 평안하고 안일한 마음으로 드리는 예배를 지적합니다.
평안하고 안전한 것이 왜 문제인지 살펴봅시다.
1) 거짓된 안전 : 시온에서 안일한 자와 사마리아에서 마음이 든든한 자(1절)
1. 화 있을진저 시온에서 안일한 자와
사마리아 산에서(사마리아의 요새만 믿고) 마음이 든든한 자,
곧 열국 중에서 우승하므로(여러 민족 가운데서 뛰어나고 유명하므로)
이스라엘 족속이 따르는 자들이여.
① 안전하고 든든한 마음이 죄가 되는 이유
‘안일한 자’로 번역된 ‘하샤아난님’은 ‘아무런 근심이나 걱정도 없이 평안하게 사는 자’를 가리키고,
‘마음이 든든한 자’에 해당하는 ‘하보트힘’은 ‘안전에 대한 확신’을 뜻합니다.
태풍과 같은 위기가 닥쳐온다 할지라도 아무 걱정도 염려도 없이 사는 것이야말로
믿음을 가진 자가 가져야 할 가장 좋은 모습으로 신구약 성경 모두가 다 증거합니다.
그런데 어찌 된 영문인지 여기에서는
아무런 염려 없이 태평하게 사는 자들에게 하나님의 진노가 임할 것이라고 경고합니다.
여기에서 문제가 된 것은 그들이 하나님 때문에 태평한 것이 아니라
그들이 가진 돈과 권세 때문에 태평한 자가 되었다는 점입니다.
② 하나님이 아니라 돈과 권세를 믿고 평안한 것이므로
예루살렘과 사마리아는 모두 산 위에 세워졌습니다.
이 성읍들이 세워진 지형 자체가 산악으로 천혜의 요새가 되었는데,
거기에다 아주 튼튼한 성벽까지 세우니 예루살렘과 사마리아는 아주 튼튼한 성읍이 되었습니다.
앗수르와 바벨론이 사마리아와 예루살렘을 각각 정복할 때 둘 다 3년씩이나 걸렸다는 것만 보아도
이들 성읍이 얼마나 튼튼한 요새였는지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튼튼하고 안전한 요새에서 산다는 것이 문제였습니다.
그들은 웬만해서는 자기들의 성읍이 무너지지 않을 것이라 여기고,
그 안정감 속에서 마음 놓고 사치와 향락의 죄에 빠진 것입니다.
설령 하나님께서 징계를 내리신다고 할지라도
예루살렘과 사마리아가 무너지는 법은 없을 것이라 여겼으므로
선지자들의 경고에도 두려워할 줄 몰랐습니다.
2) 어리석고 허망한 믿음 : 너희가 이 나라들보다 나으냐(2절)
2. 너희는 갈레로 건너가고 거기에서 대하맛(큰 성읍 하맛)으로 가고,
또 블레셋 사람의 가드로 내려가 보라.
너희가 이 나라들보다 나으냐? 그 영토가 너희 영토보다 넓으냐?
그들의 나라가 침략을 받아 모든 성읍이 다 무너질지라도
수도 성읍인 예루살렘과 사마리아만큼은 아무런 염려가 없다는 생각에서 이들은
아무런 염려 없이 죄에 빠집니다.
어린 양과 송아지를 잡아먹었다는 것은(4절)
그들이 고기 중에서 맛 좋은 부분만 골라 먹었다는 것을 뜻합니다.
이렇게 매일 먹고 마시는 주지육림(酒池肉林)의 타락에 빠졌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아람과 블레셋의 도시인 갈레와 하맛과 가드로 가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들은 모두 사마리아보다 훨씬 강한 도시들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이 도시들은 망하였거나 아주 쇠약해진 도시들이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이 나라들보다 나으냐?”
그들보다 강한 나라도 망했는데, 이 작은 성읍 하나 가지고 있다고
그렇게 교만을 떨며 죄에 빠져 있느냐는 것입니다.
3) 잘못된 종말론 : 흉한 날이 멀다 하여(3절)
3. 너희는 흉한 날(재앙의 날)이 멀다 하여 강포한 자리로 가까워지게 하고
그들의 성읍이 튼튼하다는 것 외에 그들을 죄에 빠지게 하는 것이 또 하나 있었습니다.
그것은 잘못된 종말론입니다.
오늘날의 경우 당장 종말이 일어날 것 같이 공포를 갖게 하는
시한부 종말론 같은 잘못된 종말론이 있습니다만,
그 당시에는 그 반대로 하나님의 심판은 절대로 오지 않을 것이라고 여기는 잘못된 종말론입니다.
4) 사치와 향락에 빠진 권력층과 엘리트들(4절)
4. 상아 상에 누우며, 침상에서 기지개 켜며,
양 떼에서 어린 양과 우리에서 송아지를 잡아서 먹고,
당장 종말이 올 것이라는 시한부 종말론은 가정과 사회도 버리는 자가 되게 하지만,
그 반대로 종말이 오지 않을 것이라 여기는 자들은
심판을 두려워하지 않으니 마음껏 죄에 빠지는 자들이 됩니다.
고루거각(高樓巨閣)을 지어놓고 그 안에서 마음껏 죄를 범하는 자들의 안일함에 대하여
하나님께서 심판을 경고하십니다.
2. 기득권층의 천박함에 진노하시는 하나님
1) 오직 육체의 아름다움을 관리하는 데에만 마음을 빼앗긴 자들(6절)
홍수나 기근이나 적군의 침략과 같은 그 어떤 재앙에도 염려 없다고 여기는 권력층과 엘리트들은
어떻게 하면 육체의 즐거움을 더 누릴까만 생각을 합니다.
그러므로 자기들이 즐거움을 누리는데 필요한 악기들과 포도주를
어떻게 마련할까에만 관심이 있습니다.
2) 헛된 노래를 지절거리며(5~6절)
5. 비파 소리에 맞추어 헛된 노래를 지절거리며,
마치 자기가 다윗이나 된 것처럼 악기를 제조하며,
6. 대접으로 포도주를 마시며 귀한 기름을 몸에 바르면서
요셉의 환난(이스라엘이 당할 파멸)에 대하여는 근심하지 아니하는 자로다.
여기에서 말하는 헛된 노래는 술에 취해 부르는 노래들을 말합니다만,
이 말씀 안에는 이들이 예배 중에 부르는 찬송 역시 헛된 노래라는 것입니다.
그들 마음에 하나님 아닌 다른 것을 기억하며 부르는 찬송은 헛된 노래에 불과합니다
3) 요셉의 환난에 대하여는 근심하지 아니하는 자로다(6절)
(6절 성경구절 위에)
이렇게 포도주를 대접으로 마시고
몸에 좋은 기름을 바르며 몸을 아름답게 가꾸는 데는 시간과 물질 사용하기를 아까워하지 않는 사람이
요셉의 환난에 대하여는 근심하지 않는 자들에 대하여 하나님께서 진노하십니다.
주변 사람이야 어떤 고통을 당하든 말든
나만 편하면 된다는 생각에 대하여 하나님께서 진노하십니다.
● 묵상 1 : 찬양의 노래까지도 하나님께서 듣기 싫어하는 헛된 노래가 될 수 있습니다,
5절에서 말하는 “헛된 노래를 지절거린다”라는 것은 세상의 노래만을 두고 한 것이 아닙니다.
교회에서 성도들이 부르는 찬양까지도 얼마든지 헛된 노래가 될 수 있습니다.
찬양이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기 위해 하는 것인데,
자기들을 즐겁게 하기 위해 부르는 것이라면
노래방에서 즐기며 부르는 세상의 노래들과 다를 바가 없게 됩니다.
● 묵상 2 : 무엇 때문에 안일하고 든든한가
① 이 땅의 것으로 안일하고 든든한 자의 위험
안일하고 평안한 것은 믿음을 가진 자가 가져야 할 두 가지 중요한 덕목이지만,
그 평안함이 이 땅의 것 때문에 온 것이라면 도리어 죄가 됩니다.
내가 돈이 많기 때문에 든든한 것이라면
그는 하나님을 믿는 것이 아니라 돈을 믿고 있는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② 하나님으로 안일하고 든든한 자의 복
그러나 돈이 없어도 하나님이 계시니 내가 평안하고 든든하다면 그는 복 있는 자입니다.
그러므로 아모스가 1절에서 경고하는 것은
내가 무엇 때문에 두렵고, 무엇 때문에 마음이 든든하냐 하는 것입니다.
제 3 부 : 살아야 할 이유가 분명한 바울 (빌립보서 1장)
1. 삶과 죽음, 생(生)과 사(死)의 사이에 끼어 있는 존재
1) 생과 사, 사느냐 죽느냐의 기로에 서 있는 바울(21~22절)
21. 이는 내가 사는 것이 오직 그리스도를 위한 것이니
(내가 사는 목적과 이유는 오직 그리스도를 위한 것이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니라
22. 그러나 내가 만일 육신으로 살아가는 이것이 내 일의 열매를 맺는 일이 된다면
(육신으로 살아서 주를 위해 일하고 사람들을 주께로 인도할 수 있다면),
무엇을 가릴는지(나는 과연 어느 쪽을 선택해야 할지) 알지 못하노라.
바울은 자신이 서 있는 위치가 ‘삶과 죽음의 중간지대’라고 말했습니다.
본래 ‘중간지대’는 ‘하나님과 이 세상의 중간에 있는 자’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말씀을 세상에 전하고,
사람들을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는 중간자적인 위치에 있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자신을 가리켜
‘삶과 죽음의 중간지대에 사는 존재’라고 말했습니다.
복음을 위하여 사는 자신은 그 복음 때문에
언제는 죽을 위기 속에서 산다는 말입니다.
2) 바울에게 더 중요한 문제 : 어떤 것이 주님을 더 존귀하게 해 드리는 것인가(21절)
(21절 성경구절 위에)
➠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로마서 14:8)
바울에게 문제는 사느냐 죽느냐 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해야 자신을 통해서 주께서 존귀하게 되느냐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은 어떻게 해야 자신이 좀 더 풍요롭고 평안하게 살고,
어떻게 해야 남들보다 더 멋지게 사느냐를 두고 고민합니다.
그만큼 마귀에게 공격받을 여지를 많이 만들면서 살고 있는 것입니다.
● 묵상 :
만일 우리가 바울처럼 삶과 죽음의 모든 것을 주께 맡길 수만 있다면,
주께서 우리에게 주신 은사들이 지금보다 훨씬 더 놀라운 열매를 맺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 땅의 것을 찾느라 몸부림치는 동안
주께서 우리에게 주신 놀라운 은사들이 창고에 처박혀 사용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당신은 세상에서의 풍요를 위해 주께 부르짖습니까?
아니면 바울처럼 주를 위해 필요한 자가 되기를 기도하고 있습니까?
2. 살아야 할 이유가 분명한 사람 바울
➠ 나로서는 떠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욕망을 가진 이것이 더욱 좋으나(23절)
23. 나는 이 둘 사이에 끼어 있으니 나로서는 떠나서(이 세상을 떠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욕망을 가진 이것이 더욱 좋으나
바울은 할 수만 있다면 지금이라도 죽어서
그리스도와 함께 거하는 것을 원한다고 했습니다.
바울은 예수를 믿은 후 아라비아 광야에서 주님과 깊은 교제를 할 때에
소위 ‘셋째 하늘(삼층천)’이라 부르는 천국에 다녀온 일이 있습니다(참고, 고후 12:2).
그만큼 바울은 천국에 대한 분명한 확신과 열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빌립보 교인들의 입장에서 본다면 바울이 살아서
그들의 믿음의 진보를 위하여 바울이 할 수 있는 일을 하여
함께 기쁨을 누리는 것이 더욱 좋은 일이라고 말합니다.
살아서 빌립보 교인들의 믿음의 진보를 이룰 일을 하기로 결정한 것입니다.
● 묵상 : 살아야 할 이유가 분명한 사람 바울
바울은 주를 위해 일하기 위해 사는 사람입니다.
바울은 어디에 있든, 어떤 상황이든 간에
주를 존귀하게 할 만한 일을 찾아서 하는 사람입니다.
나는 지금 무엇을 위해 살고 있는지,
내가 살고 있는 이유는 무엇인지 각자 자신을 살펴봅시다.
3. 복음에 한마음으로 협력하십시오(27절).
27. 오직 너희는 그리스도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라.
이는 내가 너희를 가보나 떠나있으나 너희가 일심으로 서서
한뜻으로 복음의 신앙을 위하여 협력하는 것을 듣기를 원하고
바울처럼 살든지 죽든지 오직 주를 존귀하게 하는 일을 위해
살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충만하게 되지는 못할지라도,
최소한 복음에 한마음으로 협력하는 자는 되어야 합니다.
이것은 그리스도인으로서 가져야 할 최소한의 자리입니다.
● 묵상 :
주께서 복음을 위해 협력할 수 있도록 당신에게 이미 많은 은사들을 주셨습니다.
어떤 이에게는 지식을, 어떤 이에게는 말을 잘하는 능력을,
혹은 말을 잘 듣는 능력을, 혹은 음식을 잘 만드는 능력을.
혹은 잘 섬기는 능력, 인내하는 능력들을 주셨습니다.
각자 자신이 할 수 있는 일로 당신이 속한 교회가
복음에 진보를 이루도록 협력하십시오.
당신이 할 수 있는 일을 하면 됩니다.
지극히 작은 일이라도 당장 시작하십시오.
4. 멸망의 증거와 구원의 증거
1) 이것이 저희에게는 멸망의 증거요 너희에게는 구원의 증거니(28절)
28. 또한 무슨 일에든지 대적하는 자를 인하여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이 소식이
나에게 들려지기를 원함이라. 이것이 저희에게는 멸망의 증거요
너희에게는 구원의 증거니 이는 하나님께로부터 나온 것이니라.
바울은 자기가 당한 고난이
장차 빌립보 교인들에게도 다가오게 될 것이라고 말합니다(30절).
만일 정말로 바울이 염려하는 핍박이 빌립보 교회의 성도들에게 임할 때에는,
그들을 핍박하는 자들에게는 그것이 멸망의 증거이고,
핍박을 받는 자들에게는 구원의 증거가 된다는 것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고
바울은 강력하게 권면합니다.
핍박하는 자들은 그 핍박으로
자신이 그리스도를 대적하는 자라고 말하는 것과 같으니 멸망의 증거가 되고,
핍박을 받는 자들은 시련과 핍박에도 믿음을 포기하지 않았으니
그 핍박받는 일이 곧 구원의 증거가 되는 것입니다.
2) 끝까지 견디는 것, 이것이 가장 확실한 구원의 증거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이제 자신이 그 고난 속에서도
믿음을 잃지 않기 위해 절망과 좌절감과 싸웠던 것처럼
빌립보 교회의 성도들도 고난과 싸워서 이기는 성도들이 되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장차 빌립보 교회에 이런 시련이 올 때
그들을 핍박하는 대적자들로 인하여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소식이 들려오기를
간절히 바란다고 말합니다.
어떠한 어려움에도, 어떠한 고난이나 시련에도
끝까지 견디면서 변하지 않는 믿음을 갖는 것,
이것이 가장 분명하고 확실한 구원의 증거입니다.
● 묵상 :
힘들고 어려울 때에도 믿음의 자리를 포기하지 않는 자,
답답하고 힘든 중에도 사명의 자리를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그 은혜의 자리를 지킨 자들은 장차 주께로부터 큰 상을 받게 될 것입니다.
이 글을 읽는 당신도 바울과 함께 그 은혜의 자리에 참여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결 론 : 그를 믿을 뿐 아니라 고난도 받게 하려 함이라(29절)
29.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위하여 너희에게 은혜를 주신 것은
다만 그를 믿을 뿐 아니라 또한 그를 위하여 고난도 받게 하려는 것이라.
예수께서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달리신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서 천국 백성이 되도록 하는 은혜를 주신 것뿐만 아니라,
그를 위하여 고난도 받게 하려고 십자가에 달리신 것입니다.
주를 위해 고난받는 것이 천국에서 가장 큰 상급이 되기 때문입니다.
세상에서도 그렇습니다.
국가대표 선수가 되려면 훈련이라는 고난의 시간을 지나가야 합니다.
나중에 매달을 땄을 때의 영광을 알기에 그들은 그 고난을 참고 견딥니다.
마찬가지로 주께서 주시는 상이 얼마나 크고 놀라운지 그 영광을 아는 자들은
이 땅에서 주를 위하여 고난받는 것을 기쁨으로 여깁니다.
● 묵상 :
얼마 전까지만 때만 해도 사람들은 봉사할 수 있는 교회를 찾았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많은 사람이 수고하고 헌신하기를 싫어합니다.
가능하면 편안하게 예수님을 믿으려 합니다.
그래서 자기를 편안하게 해줄 만한 교회를 찾습니다.
주께서는 나를 위해 목숨을 버리셨는데 나는 주를 위해 아무것도 하지 않고
지금도 여전히 오직 주께서만 나를 위해 희생해달라고 하는 것이
참된 믿음인지 생각해보아야 할 것입니다.
살아 있는 신령한 교회가 어떤 것인지
구별할 수 있는 분별력을 주시도록 기도하십시오.
➠ 살아야 할 이유가 분명한 사람, 너 그리스도인이여!
우리는 살아야 할 이유가 분명한 사람들입니다.
나 자신의 영원한 호적을 영광의 호적으로 바꾸어야 하고
저 사람의 호적도 바꾸어야 합니다.
이 일을 위해 우리는 지금도 살아있습니다.
염려와 걱정, 원망과 불평, 미움, 질투를 버리고
사람의 영을 살리는 일에 힘쓰는 자가 됩시다.
주님
우리가 왜 살아야 하는지 그 이유를
분명히 아는 자들이 되게 하옵소서.
복음을 가진 자로서
강하고 담대하게 당당하게 살게 하옵소서.
주를 믿을 뿐만 아니라 주를 위하여
고난도 달게 받는 자들이 되게 하옵소서.
세상 것을 채워놓고
안일하고 게으르게 사는 자가
되지 말게 하옵소서.
우리는 오직 주신 것에 감사하고
하나님을 사랑하며 사는 자가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