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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 설교문

[종려주일]오직 그리스도 안에서 발견되기 위하여(4월 2일; 빌 3:1~11)

작성자송호영|작성시간23.04.04|조회수95 목록 댓글 0

설교제목 : 오직 그리스도 안에서 발견되기 위하여

설교본문 : 빌립보서 3:1~11 

               스바냐 1:1~2:3

설 교 자 : 송호영 목사

설 교 일 : 2023년 4월 2일(종려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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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론 :

 

    오늘은 예수께서 고난 받으시기 위하여 예루살렘 성전에 들어가신 날을 기념하는 ‘종려주일’이고,

    이번 주 금요일은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리신 ‘성금요일’입니다.

 

    주께서 이번 주 주간에 행하신 그 고난의 일을 통해

    허물과 죄가 많은 우리도 하나님의 백성,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리셨음에도 더 많은 사람들이 구원을 받지 못합니다.

    성경을 보면 심지어 예배를 빠짐없이 드리고 신앙생활 잘하는 사람 중에도

    많은 사람들이 구원을 받지 못한다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무엇이 문제일까요?

    오늘 스바냐와 빌립보서의 두 본문 말씀을 통해 무엇이 문제인지,

    우리가 어떤 마음의 자세로 임해야 하는지를 살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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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먼저 스바냐서의 말씀을 통해

    신앙생활을 아주 열심히 했음에도 거절 받은 사람들에 대한 것부터 살펴보고,

 

    이어서 빌립보서의 말씀을 통해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예배와 신앙은 어떤 것인지를 살펴보겠습니다.

 

 

1 : 하나님께 거절받은 사람들(스바냐 1:1~2:3)

 

1. 스바냐서 소개

 

 1) 이사야 선지자 이후 침묵의 시간

 

    스바냐는 나훔과 예레미야와 같은 시기에 예언했던 선지자로,

    유다가 망하기 직전에 유다와 예루살렘이 멸망할 것임을 예언했던 자입니다.

 

    그전에는 이사야와 미가 선지자가 활동했는데,

    이사야와 미가 이후에 주전 628년경에 스바냐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할 때까지

    약 70년간은 하나님의 말씀이 전혀 전해지지 않는 침묵의 시간이었습니다.

    히스기야의 아들 므낫세가 하나님의 선지자들을 학살했기 때문입니다.

 

 2) 므낫세와 아몬의 죄악의 시대

 

    므낫세와 아몬의 시대는 선지자들을 색출하여 발견되는 즉시 학살을 당했던 때였으므로

    유다 역사상 가장 참혹한 죄악의 시대입니다.

    그래서 그 어떤 말씀도 전해지지 않고 있는 동안에

    유다와 예루살렘의 백성들은 이방인과 다름없는 죄 속에 살았습니다.

 

    예루살렘 성전에는 하나님을 섬기는 제사장이 아니라

    바알을 섬기는 제사장이 자리를 잡았고,

    심지어 예루살렘 성전 안에 이방의 우상을 위한 신전 창기까지 있을 정도였습니다.

 

 3) 요시야 왕 때에 스바냐에게 임한 하나님의 말씀(1절)

 

            1.이것은 아몬의 아들 유다 왕 요시야의 시대에 스바냐에게 임한 여호와의 말씀이라.

              스바냐는 히스기야의 현손이요, 아마랴의 증손이요,

              그다랴의 손자요, 구시의 아들이었더라.

 

    이렇게 유다와 예루살렘이 죄로 가득한 때에

    므낫세와 아몬에 이어 요시야가 왕이 되었습니다.

 

    요시야는 이스라엘을 구할 마지막 왕으로, 우리나라의 정조대왕을 닮은 사람입니다.

    우리나라도 정조가 죽은 후 급격히 몰락해 100년도 안 가서 나라가 망한 것과 같이,

    요시야 임금이 죽은 후 불과 30년만에 유다도 바벨론에 망합니다.

 

    유다의 신실한 왕 중에 마지막 왕인 요시야가 왕이 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하나님의 말씀이 선지자 스바냐에게 임합니다.

 

    선지자 스바냐 역시 히스기야의 현손으로 요시야 왕과 가까운 친척이므로,

    같은 왕족인 스바냐가 자신이 받은 하나님의 말씀을 요시야 왕에게 전하여

    요시야 왕이 종교개혁을 일으키는 원인이 됩니다.

 

 4) 무서운 심판의 말씀과 회복의 말씀(2~7절)

 

            2.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내가 땅 위에 있는 모든 것을 진멸하리라(완전히 쓸어버릴 것이라).

            3. 내가 사람과 짐승을 진멸하고, 공중의 새와 바다의 고기를 쓸어버리겠고,

              거치게 하는 것(남을 넘어뜨리는 자들)과 악인들을 아울러 진멸할 것이라.

              내가 사람을 땅에서 멸절하리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

            4. 내가 손을 들어 유다와 예루살렘의 모든 주민 위에 손을 펴서

              바알의 남아 있는 것(바알의 신상들)을 그곳에서 멸절하며,

              ‘그마림’이라는 이방 제사장들의 이름과, 그 이방 제사장들을 아울러 멸절하며,

            5. 또 지붕에서 하늘의 일월성신(하늘의 별들)에게 경배하는 자들과,

              여호와께 경배하고 맹세하면서도 동시에 말감에게도 맹세하는 자들과,

            6. 여호와를 배반하고

              여호와를 찾지도 아니하며 구하지도 아니한 자들을 내가 멸절하리라.

            7) 주 여호와 앞에서 잠잠할지어다. 이는 여호와의 날이 가까이 왔으므로

              여호와께서 (그의 백성을) 희생제물로 준비하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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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마림(4절) : 그마림은 ‘검은 옷을 입다’라는 뜻.

             왕실이나 국가의 지원을 받으며 바알과 같은 이방신을 섬기는 제사장을 가리킴.

           

            - 말감(5절) :

             암몬과 모압 족속이 섬기던 우상의 이름. ‘밀곰’, ‘몰록’이라고도 하며,

             어린아이를 제물로 바치는 인신제사를 행했습니다(렘 32:35).

 

    스바냐서는 요시야 왕이 종교개혁을 일으키기 전에 나온 책이므로

    죄에 가득한 유다와 예루살렘에 대한 무서운 심판의 말씀으로 시작합니다.

    그 심판은 유다와 예루살렘의 모든 사람을 진멸할 만큼 무서운 심판입니다.

 

    그러나 그 무서운 심판 속에서 작은 희망이 발견됩니다.

    끝까지 믿음을 잃지 않은 소수의 남은 자들입니다.

    아주 작은 수의 사람들이 살아남아서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을 힘입어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를 이루어갈 하나님의 신실한 백성들이 될 것입니다.

 

 

2. 여호와의 날, 여호와의 심판의 날이 다가왔다

 

 1) 여호와의 날이 다가왔다(7, 14절)

 

            7. 주 여호와 앞에서 잠잠할지어다. 이는 여호와의 날이 가까이 왔으므로

              여호와께서 (그의 백성을) 희생제물로 준비하시고,

          14. “여호와의 큰 날이 가깝도다. 가깝고도 심히 빠르게 다가오고 있도다.

              들어라, 여호와의 날의 소리로다!

              들어라, 용사가 거기서 심히 애곡하는 소리로다!

 

    여호와의 날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 세상의 역사 속에

    자신을 나타내시는 날을 뜻합니다.

 

    여호와께서 이 세상에 자신을 나타내실 때에는

    하나님을 바라는 신실한 자들에게는 승리와 구원의 역사가 일어나지만,

    하나님을 떠나 세상에 빠져 살던 자들에게는 심판의 날이 됩니다.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 그 자신을 드러내실 때

    애굽에 노예였던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구원의 역사가 일어났고,

    그들을 노예로 사로잡고 있던 애굽에게는 심판의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기들이 아브라함의 후손으로 하나님의 선택된 백성이니

    당연히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자신을 드러내시는 여호와의 날이 오면

    그들이 다윗의 시대를 회복하는 은총을 입게 될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러나 스바냐는 하나님을 떠나 죄를 범한 유다와 이스라엘 백성에게

    여호와의 날은 전쟁과 살육의 심판의 날이 될 것이라고 선언합니다.

 

 2) 이방신을 섬긴 모든 자들을 멸하리라(3~5절)

 

            3. 내가 사람과 짐승을 진멸하고, 공중의 새와 바다의 고기를 쓸어버리겠고,

               거치게 하는 것(남을 넘어뜨리는 자들)과 악인들을 아울러 진멸할 것이라.

               내가 사람을 땅에서 멸절하리라. 나 주 여호와의 말이니라.

            4. 내가 손을 들어 유다와 예루살렘의 모든 주민 위에 손을 펴서

               바알의 남아 있는 것(바알의 신상들)을 그곳에서 멸절하며,

               ‘그마림’이라는 이방 제사장들의 이름과, 그 이방 제사장들을 아울러 멸절하며,

            5. 또 지붕에서 하늘의 일월성신(하늘의 별들)에게 경배하는 자들과,

               여호와께 경배하고 맹세하면서도 동시에 말감에게도 맹세하는 자들과,

 

    유다와 예루살렘 주민들은 그들 앞에 다가오는 여호와의 날이

    당연히 복된 날이 될 것이라 기대했습니다.

    그들이 하나님의 택한 이스라엘 백성이고,

    또 그들은 모두 하나님의 백성의 상징인 할례를 받은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스바냐는 그들에게 오는 여호와의 날은 복된 날이 아니라

    그들을 멸망시킬 두려운 날이 될 것이라고 경고합니다.

 

    그들 중에 하나님을 버리고 바알신을 섬긴 자들은 모두 멸망을 당할 것입니다.

    그들이 섬겼던 바알의 신상들과, 바알의 제사장들을 모두 멸절할 것입니다.

 

    그리하여 왕실의 지원을 받으며 바알신을 섬겼던

    바알의 제사장들을 가리키는 ‘그마림’이라는 이름 자체가

    그 땅에서 완전히 사라지게 하겠다고 말씀하십니다.

 

 3) 문지방을 껑충 뛰어넘은 자들을 벌하리라(9절)

 

            9. 그날에 문지방을 껑충 뛰어넘는 모든 자들을 벌하겠고,

               폭력과 속임수를 써서 주인의 집(이방 신전의 집)을 가득 채운 자들을 내가 벌하리라.

 

    이방인들에게 문지방을 밟지 않는 미신적인 풍습이 있었는데(삼상 5:5),

    유다와 예루살렘 주민들이 이방인의 그 미신을 따라서

    문지방을 밟지 않으려고 껑충 뛰어가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이런저런 일을 하면 복을 받지 못한다는 미신적인 말을

    마치 하나님의 계명처럼 두려워하며 지키는 것을 말합니다.

    이런 자들 역시 그날에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무슨 ‘손’이 있는 날이라든지 하는 따위를 믿거나,

    고사나 제사를 지내는 일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런 일을 하나님께서 미워하십니다.

 

 4) 여호와를 배반하고 찾지도 아니하고 구하지도 아니한 자들을 멸하리라(6절)

 

            6. 여호와를 배반하고

               여호와를 찾지도 아니하며 구하지도 아니한 자들을 내가 멸절하리라.

 

    이런 모든 죄보다도 더 무서운 죄는

    그들이 하나님을 배반하고

    하나님을 찾지도 않고 하나님께 구하지도 않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배반했다는 것은

    하나님께 예배하고 경배하는 일을 중단했다는 것을 뜻하고,

    하나님을 찾지도 구하지도 않는다는 것은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고 기도하는 일을 중단했다는 것을 말하고,

    심지어 고난과 시련에 처해있을 때도 하나님께 도움을 청하지 않는다는 것을 뜻합니다.

 

    이것은 그들 스스로 하나님과 관계를 단절한 것이니

    스스로 멸망을 자초한 것입니다.

 

 5) 예루살렘에서 찌꺼기같이 가라앉아서 하나님은 화를 내리지 않는다고 하는 자들(12절)

 

           12. 그때 내가 등불로(등불을 켜 들고) 예루살렘을 두루 찾아다니며

               무릇 찌꺼기같이 가라앉아서(술에 찌들어 희희낙락하며) 심중에 스스로 이르기를

              ‘여호와는 복도 내리지 않고 화도 내리지 아니하시리라’

               하고 말하는 자들을 벌할 것이다.

 

    찌꺼기같이 가라앉았다는 것은

    포도주 통에 가라앉은 찌꺼기처럼 아예 술 속에 빠져 사는 것을 말합니다.

 

    그렇게 매일 술만 퍼마시면서,

    하나님께서는 복도 주시지 않고 화도 내리시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열심히 하나님을 잘 섬겨봐야 헛일이고,

    죄를 짓는다고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벌을 내리실 힘도 능력도 없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을 무시하면서 마음 놓고 죄를 범하는 자들에게

    하나님께서 무서운 진노를 내리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3. 그러므로 모여서 성회를 열라

 

 1) 수치를 모르는 백성아 모여서 함께 성회를 열라(습 2:1~2)

 

            1. “수치를 모르는 백성아

               모일지어다. 모일지어다(함께 모여서 성회(聖會)를 열지어다).

            2. 명령이 시행되기 전에, 광음이 겨같이 날이 지나가기 전에,

              여호와의 진노가 너희에게 내리기 전에,

              여호와의 분노의 날이 너희에게 이르기 전에 그리할지어다(함께 모일지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수치를 모르는 예루살렘과 유다의 백성들에게 명합니다.

 

    그날이 오기 전에, 그 두려운 명령이 시행되기 전에,

    하나님의 진노가 그들에게 내려지기 전에

    함께 모여서 성회를 열라고 명하십니다.

 

    죄를 짓고도 수치를 모르는 자들,

    하나님을 섬기지 않고도 두려워할 줄 모르는 자들에게

    지금이라도 와서 하나님 앞에 부르짖으라고 명하십니다.

 

 2) 겸손한 자들아 너희는 겸손을 구하라(2:3)

 

            3. 여호와의 규례를 지키는 세상의 모든 겸손한 자들아,

             (하나님의 공의를 행하는 자들아)

             너희는 여호와를 찾으며 의와 겸손을 구하라.

             그러면 너희가 혹시 여호와의 분노의 날에 숨김을 얻으리라.”

 

    두 단어가 다 ‘겸손’이지만, 앞의 ‘겸손한 자들아’에서의 ‘겸손’은

    시련과 고통 속에서도 하나님의 신앙을 잃지 않고

    세상 악을 슬퍼하는 자들을 가리킵니다.

 

    이들 역시 2장 1절에서 말한 바와 같이

    죄를 짓고도 수치를 모르고 사는 자들입니다.

    이들 역시 그 시대의 사람들이라

    그 시대의 허물과 죄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자들입니다.

 

    그러나 이들은 최소한 신앙을 잃지 않으려 애쓰는 마음은 있었고,

    세상 악을 슬퍼하는 마음이 비록 조금이지만 있기는 합니다만

    그저 마음속으로만 조금 슬퍼하는 마음이 있을 뿐

    이들 역시 다른 사람들처럼 죄 속에서 사는 자들입니다.

 

➠ 하지만 하나님께서 이들의 그 작은 신앙의 씨앗을 주목하십니다.

 

    그래도 하나님 앞에 겸손하기를 원하는 마음이 아주 조금이라도 있는 사람들에게

    뒤의 ‘겸손을 구하라’에서의 겸손인‘아나바’의 겸손을 구하라고 하십니다.

 

    ‘아나바’는 단순히 남을 존중하고 자신을 낮추는 태도를 뜻하는 단어가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에서의 겸손을 뜻합니다.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는 사람,

    자신의 나약함을 인정하고 하나님의 도움을 바라는 간절함을 가진 자를 말합니다.

 

    이렇게 내가 죄와 허물이 많은 연약한 자이니 나를 도와달라고 구하는 것,

    바로 여기에서부터 구원은 시작되는 것입니다.

 

 3) 공의를 행하는 자들아 너희는 의를 구하라(2:3)

 

            (3절 성경구절 위에)

 

    두 번째로 공의를 행하는 자들에게 의를 구하라고 하십니다.

 

    앞의 공의는 ‘미쉬파트’이고 뒤의 의는 ‘체데크’입니다.

    미쉬파트와 체데크는 비슷한 말로

    모두 성경에서는 ‘의’나 ‘공의’로 번역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본문에서는 조금 뜻을 구분하여

    공의(미쉬파트)는 하나님의 말씀을 두려워하는 자로

    재판에서의 공정한 판결과 정직한 상거래를 하는 것을 뜻하고,

    의(체데크)는 매일매일 하나님과 교제하면서

    하나님께 대한 신뢰와 복종으로 살아가는 것을 뜻합니다.

 

    똑같이 죄를 짓고 살지만 그래도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이 조금은 있어서

    세상을 살아갈 때 남에게 해를 끼치지는 않겠다는 마음을 가지고 살아가는 자,

    상거래를 할 때 부정한 방법을 사용하지 않고,

    가난한 자들에게 구제할 줄 아는 정도의 마음을 가진 자들에게

    하나님께서 주시는 거룩한 의를 구하라고 하십니다.

 

    그들이 가진 정도의 의를 가지고는 구원을 받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주시는 하늘의 신령한 의를 갖는 자가 되라는 것입니다.

    이를 위하여 날마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라는 것입니다.

 

    ● 묵상 : 단순히 선하고 착한 사람으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의 의를 가진 자가 되십시오.

 

       단순히 선하고 착한 사람만으로는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의를 가진 자라야 합니다.

 

       사람은 결코 하나님처럼 완벽한 의를 가질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자신의 의를 우리에게 선물로 주시는

       그 하나님의 의를 받은 자만이 구원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거룩하신 의를 구하고 또 구하십시오.

 

 4) 여호와의 규례를 지키는 자들아 여호와를 찾으라(2:3)

 

            (3절 성경구절 위에)

 

    이렇게 죄가 만연한 시대에 여호와의 규례를 지키는 자체만으로도

    결코 쉽지 않은 일일 것입니다.

    코로나 19 이후 많은 사람이 교회를 떠나는 때에

    예배에 빠지지 않고 열심히 참여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규례를 지키는 것만으로는 안 됩니다.

    우리의 주님이신 여호와, 바로 그분을 찾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며

    그의 거룩하신 성령이 내 안에 임하여 오시기를 구하고 또 구해야 합니다.

 

묵상 : 애통하는 자를 복이 있나니 저희가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마 5:3)

 

    이것은 결국 예수께서 말씀하신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에 연결됩니다.

    하나님 앞에 합당하지 않게 살고 있는 자신의 허물과 죄에 대하여 애통하며

    하나님의 거룩하신 의를 채워 주시기를 간절히 구하는 자들,

    이들이 바로 하나님의 위로를 받아 구원받는 하나님의 백성이 됩니다.

 

    그러므로 자기의 죄에 대하여는 애통할 줄 아는 자,

    하나님에 대하여는 하나님 바로 그분을 찾고 구하는 자가 되십시오.

 

 

2 :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건강한 믿음의 사람들(빌립보서 3)

 

    똑같이 예배드리고 똑같이 신앙생활을 했음에도

    가인처럼 하나님께서 그 예배를 받지 않는 사람이 나오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 이유 중 첫 번째는 ‘하나님을 향한 기쁨’입니다.

    하나님을 기뻐하며 예배를 드렸느냐 입니다.

 

 

1. 주 안에서 기뻐하라.

 

 1) 종말로 내 형제들아, 주 안에서 기뻐하라 :

    ➠ 주 안에서 누리는 기쁨을 회복하십시오(1절)

 

            1. 종말로(끝으로) 내 형제들이여, 주 안에서 기뻐하라.

              내가 너희에게 같은 말을 여러 번 반복하여 하는 것이 내게는 수고로움이 없고,

              너희에게는 안전하니라.

 

    ‘내 형제들아, 주 안에서 기뻐하라’

    내가 주님 안에 있다는 것을 기뻐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위해 행하신 일들을 기억하며 기뻐합니다.

    주님이 지금도 나를 사랑하고 계신다는 것을 기뻐합니다.

    주께서 나를 용서해주셨다는 것을 기뻐합니다.

 

    이 기쁨으로 예배드리고, 이 기쁨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

    이것이 주 안에서 기뻐하는 것입니다.

 

    주 안에서 경험하는 신비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이 사랑과 기쁨입니다.

    주님과 사랑의 교제를 나누는 자들에게 주시는

    주님의 기쁨을 누리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

 

    주님과 사랑의 교제를 나누고,

    주께서 주시는 기쁨을 경험하는 자들은 그 어떤 어려움이 와도 이길 수 있습니다.

 

 2) 개들을 삼가고 행악자들을 삼가고(2절)

 

            2. 개들을 삼가고, 행악하는 자들을 삼가고,

               손할례당(몸을 상해하는 일, 살을 잘라내는 할례를 주장하는 일)을 삼가라.

 

    개들이 끝없이 짖어대는 것처럼

    교회 안에서 끝없이 불평하고 분쟁을 일으키는 자들을 개들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이런 자들은 주 안에서 누리는 기쁨이 사라지게 하는 자들이니 조심해야 합니다.

 

    우리에게 기쁨을 주시는 이는 예수님이신데,

    많은 사람이 이들로 인하여 마음이 상하여 주님 곁을 떠납니다.

 

    또한 행악자들은 우리로 죄를 범하게 하여

    주님과 우리 사이를 갈라지게 하는 자들입니다.

    죄로 인하여 주님과의 교제가 끊어지면

    주님과의 사랑도 끊어지고 주께서 주시는 기쁨도 사라집니다.

 

    주께서 주시는 기쁨이 사라지면 세상의 다른 기쁨을 찾게 되고,

    그러면 영원히 멸망 받는 자가 되고 맙니다.

    그래서 다윗은 죄를 범한 후에 시편 51편에서 죄를 용서해주실 것을 구하면서

    동시에 주님을 섬기는 기쁨을 회복시켜달라고 간구했던 것입니다.

 

 3) 손할례당, 몸을 상해하는 일을 삼가고(2절)

 

            (2절 성경구절 위에)

 

    몸을 상해한다는 것은 몸의 일부를 잘라내는 할례를 뜻합니다.

    할례가 구약에서는 구원받는 백성이 되는 아주 중요한 것이었는데,

    주께서 십자가에 달리신 후 폐지되었습니다.

    이제는 할례를 통해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믿음으로 구원을 받습니다.

 

    그런데 유대인에 속한 그리스도인들은

    주께서 부활하신 후에도 계속 할례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이에 대하여 바울은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의 능력을 믿지 않는 것이 되니

    그들의 믿음의 고백은 헛된 것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구약의 율법으로 다시 돌아가야 한다고 주장하는 자들을 조심하라고 경고합니다.

 

➠ 손 할례당 : 종교적인 귀족들

 

    손할례당은 자기의 몸에 있는 할례의 흔적을 자랑하는 자들을 말합니다.

    이것을 오늘날의 상황에 적용하면

    ‘종교적인 인텔리 층’, 혹은 ‘종교적인 귀족들’을 의미합니다.

 

    당시 사회에서 할례받은 자들이 더 나은 영성을 가진 자처럼 행동했던 것처럼

    오늘날에도 말씀을 몇 번 읽었다든지

    방언과 같은 신비적인 은사를 가졌다든지 하는 것들로

    자신들은 이미 구원의 길의 모든 일을 다 이룬 것처럼 행동하고

    신앙의 특권층을 이룬 듯 그렇게 오만하게 행동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것들은 아무리 신기하게 보일지라도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신비한 은사를 가졌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곧 구원에 이른 증거가 되지는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내가 무엇을 할 수 있느냐가 아니라

    내 마음에 주님을 향한 진정한 사랑의 마음이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2. 참 할례당 : 참되게 예배하는 자(3)

 

            3. 하나님의 성령으로 봉사하고 예배드리며, 그리스도 예수를 자랑하며,

 

    오직 예수님을 마음에 품고 감사하며 찬양하는 진정한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또한 기쁨으로 주께 봉사하며 섬기는 삶을 가진 자들이

    참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바울이 말한 참 할례당이 누구를 말하는 것인지,

    하나님께서 받으실 참된 예배를 드리는 자는 어떤 자를 말하는지

    3절의 말씀을 하나하나 살펴보겠습니다.

 

 1) 성령으로 예배하는 자

 

    첫째로 참 할례당은 성령으로 예배드리는 자이고,

    성령으로 예배하는 자란

    영과 진리로 예배드리는 자를 뜻합니다(요 4:23~24).

 

    진리로 예배드리는 것은 주께서 나를 위해 무엇을 하셨는지

    분명히 아는 자가 그 은혜에 감사하며 드리는 예배이고,

    영으로 드리는 예배는 그렇게 믿음의 고백을 바로 하여

    주님과 나와의 관계가 회복된 상태에서 드리는 예배입니다.

 

    주께서 내 안에 계시고 내가 주 안에 계신 신비로운 연합을 이룬 상태에서

    나를 구원하신 주님께 온 마음과 정성을 다해 예배드리는 것입니다.

    이런 자가 참된 그리스도인입니다.

 

 2) 그리스도 예수님을 자랑하는 자

 

    둘째로 참 할례당은

    자기를 자랑하지 않고 그리스도 예수님을 자랑하는 자입니다.

 

    그리스도 예수님을 자랑한다는 것은

    예수께서 나를 위해 무엇을 하셨는지 그 은혜에 감사하는 자를 뜻합니다.

 

    마치 첫사랑에 빠진 자가 사람들에게 자기의 사랑을 기쁨에 겨워 말하는 것처럼

    주께서 나를 사랑하심을 기뻐하며 주께 예배드리고,

    그 기쁨을 사람들에게 전하며 주님을 자랑하는 자가

    참 할례당이요 참된 그리스도인입니다.

 

 3) 육체를 신뢰하지 않는 자

 

    셋째로 참 할례당은 자기의 육체를 신뢰하지 않는 자입니다.

 

    주께서 주신 기쁨이 얼마나 큰지도 알고

    그 은혜와 그 영광이 얼마나 놀라운지를 알고 있으므로

    세상 것에 마음 쓰지 않습니다.

 

    학교나 직장이나 가정의 일과 같은 것을 전혀 하지 않는다는 뜻이 아닙니다.

    그런 일들로 인하여 주님을 섬기는 일을 포기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자기의 마음에 진짜 의지하는 것은 그런 세상이 아니라 주님이기 때문입니다.

 

 

3. 내가 남보다 낫다고 여기도록 만드는 것이 발견된다면

 

 1) 내가 자랑하는 것들이 나를 마귀의 종이 되게 합니다.

 

    만일 나의 어떤 종교적인 삶이

    나 스스로 내가 다른 사람보다 낫다고 여기도록 만드는 것을 발견할 때마다

    내가 하나님을 따라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마귀를 따라 행동하고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C. S. Lewis).

 

    그것이 기도가 되었든,

    전도나 예배나 봉사나 섬김이나 말씀을 읽는 것이나 그 어떤 것일지라도

    내가 하나님을 섬기는 도구들일 뿐입니다.

 

    그런데 그것으로 내가 다른 사람보다 더 낫다고 여기게 된다면,

    그것들이 하나님을 섬기는 도구가 아니라 나를 자랑하는 도구로 변해버리는 것입니다.

    한순간에 하나님을 섬기는 도구에서 마귀를 섬기는 도구로 변하는 것입니다.

 

 2) 그러므로 나 스스로 나를 신뢰하게 만드는 것들을 조심하십시오.

 

    나의 봉사나 선행으로 자신을 스스로 만족해하는 일을 조심하십시오.

    나를 자랑하게 할 만한 가문이나 학벌,

    그 밖에 어떤 것이라도 나를 드러내게 할 만한 것들을 조심하십시오.

 

➠ 바울이 자신을 자랑할 만한 것을 해로 여기고

    오히려 더러운 배설물로 여긴다고 한 말을 기억하십시오(7~8절)

 

            7.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들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해로운 것으로 여기고

            8.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존귀함)을 인함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기는 것은

               내가 그리스도를 얻고

 

    이런 것들로 자기를 자랑할수록 주님과의 관계가 더욱 멀어지게 되므로

    이런 것들이 바울 자신을 돕는 것이 아니라 자기를 해치는 것들이고

    오히려 자신을 망치는 배설물과 같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것이 세상 것이 되었든, 신앙적인 것이 되었든 간에

    무엇이든 나 자신을 과시하고 자랑하려는 마음이 일어나지 않게 하십시오.

    마귀가 천국 문 앞에서도 나를 실족하게 하는 것이 바로 교만이라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4. 오직 그리스도 안에서 발견되기 위하여(8~9)

 

            8.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존귀함)을 인함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기는 것은

               내가 그리스도를 얻고

            9. 그 안에서 발견되기 위한 것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의가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인하여 하나님께로서 난 의라.

 

    주께서 주시는 말씀이 세상의 그 어떤 것보다도 가장 존귀한 것이라 믿는다면,

    당신이 그렇게 믿고 있음을 말과 행동으로 나타내 보이십시오.

 

    세상 사람들도 더 좋은 것을 얻기 위해 중요하지 않은 것을 버릴 줄 압니다.

    뷔페식당의 많은 음식들 중에서 더 좋은 음식을 고를 줄 알고,

    TV를 시청할 때도 더 좋아하는 프로그램을 선택할 줄 압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말씀이 가장 존귀하다고 믿는다면

    그 믿음을 당신의 선택을 통해 보이십시오.

 

묵상 : 가장 좋은 것 이외의 것은 배설물에 불과합니다.

 

    바울은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다고 믿고 있기에,

    자신이 자랑할 만한 모든 것을 배설물로 여긴다고 고백했습니다.

 

    그는 주 안에서 발견되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이라 믿고 있기에

    주님과의 사귐에 방해물이 되는 이런 것들을 버리기로 했다고 고백했고

    실제로 그렇게 행동했습니다.

    그의 이런 행동이 그의 믿음이 참된 것임을 증거합니다.

 

    당신은 주님을 누구라고 고백하고 있습니까?

    그 믿음을 당신의 행동으로 보여드리십시오.

    그렇게 믿고 있음을 행함으로 보여드릴 때 비로소 참 믿음으로 인정됩니다.

 

 

결 론 : 오직 고난을 통해서 알게 되는 부활의 권능(10~11)

 

           10. 내가 그리스도와 그의 부활의 권능(능력)과

                그 고난에 참여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자 하여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11. 어찌하든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려 하노라.

 

    오늘날 많은 경우에 교회와 성도들이 편안하고 안락한 삶에 있기만을 원합니다.

    심지어 그런 삶을 ‘복’이라 여기고 그것을 추구합니다.

 

    교회는 대형화되어가고 있고,

    감성을 자극하는 여러 종교적인 프로그램들이 사람들에게

    종교적인 감동과 엑스터시를 경험하게 합니다.

 

    그러나 부활의 권능은 오직 고난의 삶을 통해서만 알게 되는 하나님의 신비입니다.

    고난은 믿음의 자리, 사역의 자리를 끝까지 지키려는 자들이

    그것을 반대하는 세상의 세력과 만날 때 경험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사역은 특별한 몇 사람에게 맡기고,

    자기들은 편안하게 종교적 감동만 받겠다고 하는 사람들은

    결코 주님의 부활의 권능이 무엇인지 알 수 없습니다.

 

➠ 이렇게 고난 없이 쉽게 얻는 기성품의 영광과 기쁨을 얻으려는 풍조가

    이단과 사교 집단에 쉽게 넘어지게 합니다.

 

    회개도 하지 않았고,

    주님을 섬기는 자가 겪는 그 어떤 수고도 고난도 없었어도

    예배에 참여하기만 해도 은혜를 받고 설교만 들어도 감동이 되는

    그런 교회를 찾아다니는 이런 이상한 풍조 때문에

    이단과 사교 집단에 그렇게도 많은 사람들이 넘어갑니다.

    회개 없는 기쁨, 헌신과 고난 없는 영광은 교회보다 그들이 더 잘하기 때문입니다.

 

묵상 : 관람객이 아니라 주를 위해 힘써 일하는 자가 되십시오.

 

    그러므로 그 일이 주께서 원하시는 일이라 여기신다면

    그 일로 인하여 답답함과 어려움을 겪게 되더라도 그 믿음의 자리를 지키고,

    주께서 맡기신 사역을 끝까지 포기하지 마십시오.

 

    더 편안한 길로 이리저리 헤매지 말고 끝까지 지키십시오.

    주께서 당신에게 부활의 권능이 어떤 것인지 알게 하십니다.

 

    주님은 우리를 관람객으로 부르시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주님을 위해 힘써 일해야 할 주님의 종들입니다.

 

 

주님

 

사람들 앞에서의 겸손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겸손한 자가 되게 하옵소서.

 

단순히 선하고 착한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의 의를 구하여 얻는 자가 되게 하옵소서.

 

죽은 낙엽처럼 세상에 휩쓸리는

거짓 믿음의 사람들이 되지 말게 하옵소서.

 

주 안에서의 사랑과 기쁨을

항상 누리며 경험하게 하옵소서.

 

주 안에서 발견되는

참된 주님의 백성이 되게 하옵소서.

 

주님이 오시는 그날까지

주님과 동행하기를 멈추지 말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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