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제목 : 어찌하든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려 하노니
설교본문 : 빌립보서 3:10~4:13
설 교 자 : 송호영 목사
설 교 일 : 2023년 4월 9일(부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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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론 :
10. 내가 그리스도와 그의 부활의 권능(능력)과
그 고난에 참여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자 하여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11. 어찌하든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려 하노니
우리가 지난주에 살펴본 본문 말씀의 마지막 부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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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찌하든지 (내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려 하노니
어찌 하든지 부활에 이르기 위해서 바울이 그 마음에 간절히 품고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나는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좇아가노라.
(혹은, 나는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갈 뿐이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나를 붙드신 목적이 바로 이것이라. )
(빌립보서 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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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나는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좇아가노라.
(혹은, 나는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갈 뿐이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나를 붙드신 목적이 바로 이것이라. )
저는 오래전 2층이던 가리봉교회를 부수고 현재의 모습으로 새 건축을 할 때
거의 30도가 넘는 언덕을 거슬러 올라가면서 앞에 있는 장애물들을
거침없이 밀고 올라가던 불도저의 모습을 기억합니다.
저는 바울을 볼 때마다 그때 보았던 그 불도저가 연상이 됩니다.
어떤 어려움에도 무너지지 않았던 바울,
그런데 그런 바울조차 부활의 이르기 위해 날마다 부지런히 달려가는 삶을 산다는 것입니다.
불도저로 연상되는 바울 같은 사람도 부활에 이르지 못할까 봐
조바심을 내게 하는 것이 무엇일까요?
부활절인 오늘
바울이 어찌하든지 부활에 이르기 위하여
그가 주님을 믿은 이후 계속해서 간절한 마음으로 힘썼던 것이 무엇인지를 살펴보겠습니다.
제 1 부 : 부활에 이르기 위해 빠지지 말아야 할 오류
(빌립보서 3장)
우리가 부활에 이르기 위해 기억해야 할 첫 번째는,
우리 능력으로는 결단코 부활에 이를 수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오직 예수님의 능력으로만 부활에 이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스스로 신실한 믿음을 가졌다고 생각하는 사람 중에 자기 능력으로
부활에 이를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간혹 있습니다.
1. 신실한 자들이 빠지기 쉬운 오류
1) 신앙의 일을 이미 다 이루었다고 생각하는 자들에 대한 바울의 경고(15절)
15. 그러므로 누구든지 온전히 이룬 자들은(믿음이 성숙한 자들은) 이렇게 생각할지니
만일 무슨 일에 너희가 달리 생각하면(어떤 일에 나와 다른 생각을 갖고 있다면)
하나님께서 그것도 너희에게 나타내시리라
(하나님께서 그것도 분명히 너희에게 가르쳐주실 것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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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렇게 생각할지니(15절) :
믿음의 길을 온전히 이루었다고 생각하는 자들이 혹 있다면
그들 역시 바울처럼 푯대를 향하여 달라가는 자로 생각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자신의 몸에 할례의 흔적 하나 남겨놓고는
율법의 모든 것을 다 이룬 것처럼 자랑하였습니다.
또 어떤 이들은 주일 예배에 열심히 출석하고 있으니,
혹은 남보다 기도를 열심히 하고 있으니
나는 부활에 이를 만한 믿음에 완전히 이르렀다고 생각합니다.
바울은 이런 생각이 우리를 파멸에 이르게 할 수 있는
대단히 위험한 생각이라고 경고합니다.
2) 자기의 잘하는 것만 보고 단점은 보지 않는 오류
이런 것들은 자신에게 믿음의 어떤 열매가 있다고 생각하는 자들이
흔히 빠지게 되는 오류입니다.
가령 기도를 남보다 더 열심히 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든지,
혹은 성경을 몇 번 읽었거나 남보다 전도를 더 많이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자들,
어떤 신비한 은사를 가졌다고 생각하는 자들이 흔하게 빠지는 오류입니다.
그래서 자신은 이제 더 이상 보탤 필요가 없는
완전한 신앙의 자리에 도달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주님의 부르심의 상(賞)’인
부활에 이를만한 충분한 믿음을 가졌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 그러나 이것은 대단히 심각한 오류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순간 이미 우리의 신분이
하나님의 자녀로 바뀐 것은 맞습니다만,
그러나 아직 우리가 육신을 입고 있으므로
언제든지 다시 어두움의 자리로 전락할 가능성을 항상 갖고 있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3) 내 앞에 어떤 일이 있을지 아무도 모르니
더욱 굳건한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장차 우리의 믿음을 흔들만한 어떤 환난이
우리 앞에 기다리고 있는지 아무도 모릅니다.
그런데 부족한 믿음을 가지고
이제 다 이루었다 스스로 생각하여 더 정진하기를 멈춘다면,
그 앞에 어떤 일을 만나 믿음을 잃게 될는지 아무도 모릅니다.
무엇보다도 이미 이루었다고 생각하며 머물러 있는 순간
마귀의 표적이 된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 묵상 :
신앙 생활한 지 꽤 오래되었고, 교회에서 봉사도 많이 했으니
이만하면 되었다고 생각될 때를 조심하십시오.
당신 마음속에 자부심을 느끼게 하는 것들을 조심하십시오.
혹시 이런 자만심이 영적인 게으름을 불러와
치명적인 멸망에 이를 수 있다는 것을 꼭 기억하십시오.
2.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 신앙은 생명입니다.
1)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푯대를 향하여(13~14절)
13. 형제들아, 나는 아직 그것을 붙잡았다고 생각하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오직 한 가지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14.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가노라.
그러므로 우리는 뒤에 있었던 일은 모두 다 잊어버리고
우리 앞에 있는 표적을 향하여 달려 나가야 합니다.
부르심의 상인 부활에 이르기 위해 계속 힘써 나가야 한다는 뜻입니다.
내가 전에 하나님 앞에 아름다운 열매를 맺었더라도
과거에 있던 그 업적에 마음을 두고 게으름을 피우는 자가 되어서도 안 됩니다.
또 과거에 매우 어두운 삶을 살았더라도
그 죄책감으로 인하여 주님을 만나지 못하게 되어도 안 됩니다.
과거의 삶이 어떠하든 그것은 주께 맡기고
우리는 오직 앞에 있는 푯대를 바라보며 힘차게 달려가는 삶을 살아갑시다.
우리는 주님이 부르시는 그날까지 성장하기 위해 계속해서 달려갈 따름입니다.
2) 신앙은 생명이다 : 부르심의 상, 그 푯대를 향하여 좇아가노라(14절)
(14절 성경구절 위에)
바울은 이 땅의 그리스도인들을 가리켜
하나님께서 부르신 그 부르심의 상(賞),
그 푯대를 향하여 달려 나가는 존재라고 했는데,
그것을 사도 요한은 요한복음에서 ‘영적인 생명’으로 표현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어 주님이 우리 안에, 우리가 주님 안에 거할 때
우리 안에 새로운 생명이 생겨납니다.
하나님 나라의 백성들에게만 있는 신령한 생명이 생겨납니다.
요한이 말한 바와 같이 신앙은 생명이므로,
그 신앙의 일들이 계속 반복적으로 이루어져야 합니다.
육신의 생명이 먹고 마시고 배설하는 일을 반복함으로 이어지는 것처럼
영의 생명도 영의 일을 반복음으로 그 생명이 이어집니다.
그런데 만일 어떤 일에 자부심을 느껴
나는 이미 천국 백성이 되었다고 생각하고
영적인 삶인 이 모든 경건의 일들을 중단한다면
마치 먹고 마시는 일을 중단한 자가 죽게 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신앙의 일들이 중단되면 그의 영도 죽고 맙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자신을 가리켜 끝없이 달려 나가는 존재라고 말한 것입니다.
3) 자신의 영광스러운 몸과 같은 형상으로 변화시켜 주실 것입니다(20~21절)
20. 그러나 오직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우리는 그곳에서 오실 구원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
21. 그는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시킬 수 있는 자의 역사로(능력으로)
우리의 낮은(천한) 몸을 변화시키셔서
자신의 영광스러운 몸과 같은 형체와 같이 변하게 하시리라.
주님을 참되게 믿는 모든 성도는
이 땅에서부터 이미 하나님 나라의 시민권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하지만 아직 육신을 입고 있으므로 가끔 육신의 문제로 시험을 당합니다.
성도들도 때로 불안하고, 때로 누군가를 미워하며,
때로 세상일에 분주하여 하나님 섬기는 일을 중단하기도 하고,
때로 욕망을 이기지 못하고 죄에 빠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믿음을 가진 자들은 그 일이 자기를 멸망에 이르게 할 줄 알고
서둘러 그 자리에서 빠져나와 참믿음을 회복할 것입니다.
세상의 이 욕망과 싸워서 끝까지 그 믿음을 지킨 자들에게는
장차 주께서 다시 오셔서 주께서 부활하신 후
제자들에게 보이셨던 그 영광의 몸으로 변화시켜 주십니다.
바울은 주님의 영광스러운 몸을 실제로 보았으므로
그 엄청난 시련을 이길 수 있었습니다.
자기의 생명 아니라 그보다 더한 것을 주고서라도
반드시 가져야만 하는 영광임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제 2 부 : 부활의 능력을 잃지 않기 위하여
(빌립보서 4장)
그러면 우리를 부활에 이르지 못하게 하는 신앙의 방해물들은
어떤 것들이 있는지 살펴봅시다.
1. 성도들 간의 갈등 해소를 위하여 힘쓰십시오.
1) 교회 안에서 성도들끼리도 갈등과 불화가 생길 수 있습니다.
신실한 믿음의 사람들도
때로 불화가 생기고 갈등관계에 빠질 수 있습니다.
초대교회의 위대한 선교사들인 바울과 바나바도
2차 전도여행을 시작할 때 마가요한을 데리고 갈 것인가를 두고 큰 싸움이 벌어져
결국 2차 전도여행은 서로 갈라져서 각자 따로 선교활동을 하게 되기도 했습니다.
그리스도인도 육신을 입고 있는 사람이기에 이런 일이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습니다.
2) 그러나 갈등이 깊어지면 교회 전체가 위험에 빠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불화와 싸움이 깊어져서 치유할 수 없는 정도가 되도록 방치해 두면
갈등 관계에 있는 사람들은 물론,
그들로 인하여 그들이 속한 교회 전체가 위험에 빠질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믿음의 사람들은 갈등이 생길 때마다
지혜롭게 행동하여 상처가 깊어지기 전에 서둘러 화해를 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불편한 마음을 가지고 침실에 가지 말라고 하심으로
그날이 가기 전에 해결하라고 명하셨습니다.
3) 빌립보 교회의 갈등 : 유오니아와 순두게(2절)
2. 내가 유오디아를 권하고 순두게를 권하노니. 주 안에서 같은 마음을 품으라.
유오니아와 순두게는 빌립보 교회의 두 여집사들이었습니다.
이 두 사람은 빌립보 교회의 첫 신자인 루디아와 더불어
빌립보 교회에서 없어서는 안 되는 아주 헌신적인 자들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빌립보 교회를 훌륭하게 세우는데 결정적인 역을 했던 두 여집사가
어쩌다가 라이벌 관계가 되어 서로 다투고 갈등하는 자들이 되었습니다.
빌립보 교회에서 중요한 두 사람을 이런 상태로 내버려 두면
두 사람은 물론 교회 전체에 큰 영향을 끼칠 것을 염려하여
바울은 유오니아와 순두게 두 사람의 불화를 해결하기 위해
빌립보 교회 전체가 나서라고 분부합니다.
2.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십시오(4절)
➠ 신앙은 기쁨과 평안을 두고 마귀와 벌이는 평생의 전쟁입니다.
4.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예수님을 믿는 성도들의 한평생은
기쁨을 두고 벌이는 마귀와의 전쟁이라 할 수 있습니다.
주께서 주시는 기쁨을 잃어버리는 순간 우리는 마귀의 밥이 되기 때문입니다.
기쁨은 전쟁터에서 최후까지 지켜야 할 가장 중요한 진지(陣地)입니다.
우리가 목숨을 걸고 지켜야만 하는 마지막 보루, 최후의 진지가 바로 기쁨과 평강입니다.
바울은 다시 한번 주 안에서 기뻐하라고 말하면서
이번에는 좀 더 ‘항상’이란 말을 첨가하였습니다.
여기에서 ‘기뻐하라’라는 말은 ‘기쁨’과 ‘평안’이 합쳐진 개념이고,
‘언제나’라는 말은 ‘어떤 상황에서든지’라는 말입니다.
언제든지 기뻐하라는 것이고,
어떤 상황에서든지 마음의 평강을 잃지 말라는 것입니다.
또 언제나 어떤 상황에서도 주변 사람들이 다 알 수 있을 정도로
관용을 나타내 보이라고 말합니다.
잠시 동안은 모르겠으나 언제나 어떤 상황에서든지
항상 기뻐하고 항상 관용하며 항상 마음에 평강을 유지하는 일은
세상에서는 불가능합니다.
시련과 고난이 끊이지 않았던 바울은
그 고난 속에서도 항상 기뻐할 수 있는 비결을 이렇게 말합니다.
1)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기쁨을 주시기에 항상 기뻐할 수 있습니다.
➀ 기쁨을 주시는 하나님을 바라보십시오.
그리스도인들이 항상 기뻐할 수 있는 이유는
언제나 변함없으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기쁨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기쁨은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계실 때 나타나는 현상이고,
평강은 하나님께서 내 안에 계실 때 내 마음의 자리에서 일어나는 현상입니다.
악한 영이 우리 안에서 기쁨을 빼앗아 가지 못하도록
주께서 내 안에 들어가셔서 하나님의 평강으로 지키십니다.
그러므로 기쁨을 얻기 위해 세상의 어떤 것을 구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내 안에 모셔야 합니다.
그 어떤 것보다도 주님 바로 그분을 우리 안에 모시기를 사모하십시오.
➁ 하나님 아닌 다른 것을 바라보니 기쁨에 실패합니다.
그러나 많은 그리스도인이
오랫동안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기쁨이 없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의 가정에 폭력이 있고, 그리스도인들의 가정에도 이혼이 많습니다.
이 모두가 기쁨과 평강을 잃어버린 데서 오는 현상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 기쁨을 잃어버리는 이유는
기쁨을 주시는 하나님을 바라보지 않고 다른 것을 바라보기 때문입니다.
집이나 좋은 차나 옷이나 돈과 같은 것들이 있어야만
기쁨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것들은 언제 없어질지 알 수 없는 것들이고,
또 내 손에 있더라도 그런 것들이 기쁨을 주는 시간은 고작 한 달에 불과합니다.
그 시간이 지나면 더 강한 자극을 원하게 되고,
그래서 세상 것을 찾는 자들은 끝없는 욕망에 사로잡히게 됩니다.
➂ 그러므로 다시 한번 말하지만, 기쁨을 주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주께서 내 안에 들어오시면 방 한 칸에서 살더라도 내 안에 기쁨이 있습니다.
빵 한 조각만으로도 감사할 수 있습니다.
내 안에 계신 주님으로 말미암아 아무것도 없어도 이미 기쁜 상태인데
거기에 빵 한 조각이 있으니 더 감사하고,
방 한 칸이라도 있으니 더 감사한 것입니다.
이런 믿음이 있어야 마지막 때에 믿음을 지킬 수 있습니다.
2) 모든 사람에게 내게 있는 관용을 알게 하십시오(5절)
5. 너희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하라. 주께서 오실 날이 가까우니라.
관용을 잃으면 하나님께서 주신 기쁨과 평강도 사라집니다.
그러므로 관용을 잃지 않게 힘쓰십시오.
➀ 주께서 주시는 기쁨으로 관용할 수 있습니다.
수십억 원을 가진 재산가가 만원 이만 원 때문에 싸우지는 않을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마음속에 하나님께서 주신 더 큰 기쁨이 있으니
나를 적대하는 자들을 향하여도 관용할 수 있습니다.
이미 주께서 주신 충만한 기쁨이 있으니
세상 것에 대하여 여유가 생기는 것입니다.
집착을 하지 않으니 관용하는 마음이 생깁니다.
➁ 주께서 오실 날이 가깝다는 것을 알면 관용할 수 있습니다.
또한 주께서 이제 곧 오셔서 세상 만민을 심판하시리라는 것을 생각하면
도저히 용서할 수 없는 일도 관용할 수 있습니다.
주께서 잠시 후에 오셔서 지금 내가 하려는 이 일을 심판하신다고 생각하면
참을 수 있는 여유가 생깁니다.
참으면 복이 되지만
참지 않고 분쟁을 일으키면 심판이 된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➂ 모든 사람에게 관용을 알게 하십시오.
바울은 내 마음을 건드려 분쟁을 일으키려는 자들에게
내게 있는 관용을 나타내 보이라고 말합니다.
상대의 적대 행위를 온유함으로 대하는 자를 하나님께서 기뻐하십니다.
● 묵상 :
그러나 그리스도인들도 사람이니 상대가 자꾸만 적대적으로 대하는 데
그것을 항상 온유함으로 대하기는 어렵습니다.
이런 때 우리를 돕기 위해 우리 안에 성령께서 오셨습니다.
성령께 도움을 청하십시오.
정말 참기 힘들 때, 오늘만은 절대로 못 참겠다고 여겨질 때
주님께 도움을 청하십시오.
주께서 하늘의 천사들을 동원하여 그 문제를 해결하여 주실 것입니다.
3초만 참고 기도해보십시오.
주께서 얼마나 빨리 확실하게 도우시는지를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3. 기쁨을 잃으면 응급 상황 : 기쁨을 잃으면 마귀의 밥이 됩니다(4절)
4.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바울이 빌립보 교회에 보내는 편지에서
유오니아와 순두게의 이름을 거명하기까지 하면서 교회 전체가 합심하며
두 사람의 불화를 서둘러 화해시키라고 명한 것은
불화와 갈등이 교회에 미치는 영향이 그만큼 크기 때문입니다.
또한 4장까지밖에 안 되는 짧은 편지에서 기뻐하라는 말을 여러 번 반복하는 이유는
기쁨을 잃는 것이 우리의 영적인 삶에서 그만큼 위험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1) 기쁨을 잃으면 다른 기쁨을 찾게 되므로
사람은 무엇인가 한 가지는 기쁜 것이 있어야 살아갈 수 있습니다.
돈 버는 기쁨이든, 사람들과 사귀는 기쁨이든,
하다못해 먹고 마시는 것에서라도 기쁨을 느껴야 사는 것입니다.
세상 어디에서도 기쁨을 느낄만한 것이 없다면 살아갈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만일 예수님을 믿는 성도가 주께로부터 오는 기쁨을 잃어버린다면
그는 다른 것에서 기쁨을 찾아야만 합니다.
주께서 주시는 기쁨이 아닌 다른 기쁨이 어떤 기쁨이겠습니까?
세상 기쁨입니다.
이런 자들은 이미 세상의 일에 마음을 빼앗기고 있으므로
예배를 드리는 중에도 자신을 기쁘게 하는 다른 것을 생각하게 됩니다.
몸만 와있고 마음은 딴 곳에 있으니 거짓된 예배, 가인의 예배인 것입니다.
2) 기쁨을 잃어버리면 하나님을 섬기는 일을 거부하게 되므로
주께서 주시는 기쁨을 잃어버리면 하나님을 섬기는 일이 귀찮은 일로 여겨집니다.
찬송 부르는 일도, 기도하는 일도, 말씀을 묵상하는 일도 다 힘든 일로 여겨집니다.
이런 자들은 주일 예배를 드리러 올 때에도 마지못해 억지로 참여하는 자가 됩니다.
3) 기쁨을 잃어버리면 마귀에게 공격받기 쉬운 상태가 되므로
기쁨과 관용을 잃어버리는 바로 그 순간부터
우리는 마귀에게 공격을 받기 아주 취약한 상태가 되고 맙니다.
기쁨을 잃어버리면
마귀는 곧바로 우리 마음에 미움과 원망과 허망함을 심습니다.
그러면 아주 작은 충격에도 쉽게 화를 내는 사람이 되고 맙니다.
또한 별것 아닌 유혹에도 쉽게 넘어지는 사람이 되고 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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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우리는 마치 전쟁에서 중요한 공격 진지를 사수하듯
내 마음에 있는 기쁨과 평강을 사수해야 합니다.
주께서도 우리가 기도하면 하나님의 평강으로 우리 마음을 포위하여
기쁨을 잃지 않게 하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 묵상 :
그러나 우리는 연약한 육신을 입고 있기에 기쁨과 관용을 잃을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공동체 안에 함께 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이 기쁨과 관용을 잃어버렸을 때
그가 기쁨과 관용을 다시 찾을 수 있도록 도우십시오.
그리고 내 마음이 왠지 모르게 허망해지고 우울해지고 기쁨과 관용이 사라지려 할 때
아주 큰일을 당한 것으로 여기고
주변의 신실한 동료 그리스도인들에게 기도를 부탁하십시오.
제 3 부 : 어떻게 기쁨과 평강을 잃지 않을 수 있나
➠ 주께서 우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므로
기쁨과 평강을 잃어버리는 또 하나의 위험은 답답한 현실입니다.
답답한 현실에서도 기쁨과 평강을 잃지 않을 수 있는 비결은 무입니까?
1. 응답받는 기도의 두 가지 원칙(6절)
6.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기쁨과 관용이 사라지는 것이 이처럼 위험한 것이기에
바울은 이런 일이 생길 때마다 주께 기도하라고 분부합니다.
기도하되 반드시 두 가지 원칙을 가지고 기도해야 합니다.
1)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기도하십시오.
우리가 기도하는 바로 그 순간부터 주께서 우리를 위해 일하기 시작합니다.
다니엘이 이스라엘 민족을 위하여 세 이레 동안 간절히 기도할 때
천사 가브리엘이 다니엘에게 나타나서
하나님께서 그의 기도를 응답하셨다는 말을 전할 때입니다.
그때 가브리엘은 다니엘이 기도하던 바로 그 순간부터
하나님께서 그를 위하여 움직이셨다고 전하였습니다(단 10:12).
주님의 때와 나의 때가 달라 기도 응답이 늦어지는 것처럼 보일 뿐입니다.
주님은 내가 기도하는 바로 그 순간부터 나를 위해 움직이십니다.
그러므로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기도하십시오.
2) 감사함으로 기도하십시오.
내 기도를 들으시고 주께서 나를 위해 이미 움직이기 시작하셨음을 믿는다면
우리는 그 기도하는 그 순간부터 감사함으로 기도할 수 있습니다.
기도하면서 불안해하는 것은 주님의 능력을 믿지 못하는 것입니다.
주께서 나를 위해 일하기 시작하셨음을 믿는다면서 불안해한다면
그를 어찌 믿는 자의 바른 태도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무슨 기도를 했던 그 기도를 주께서 들으셨음을 믿고,
불안감을 떨쳐버리십시오. 그리고 감사함으로 기도하십시오.
● 묵상 :
지금 기도하는 순간부터
주께서 나의 기도에 합당한 일을 시작하셨음을 믿으십시오.
이 천지만물을 지으신 주께서 나를 위해 움직이기 시작하셨습니다.
이 믿음이 그 위기를 이기게 할 것입니다.
이 믿음이 나에게 기쁨을 주고,
이 믿음이 나의 마음을 관용이 있는 너그러운 마음이 되게 할 것입니다.
2. 그러면 주께서 우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십니다.
1) 가장 큰 기도 응답 : 주께서 내 마음과 생각을 지켜주시는 것(7절)
6.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7.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사람으로서는 감히 상상할 수도 없는)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가장 큰 기도 응답은 내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미움과 원망과 허망함이 자리 잡는 곳도 마음과 생각이요,
기쁨과 관용이 자리 잡는 곳도 마음과 생각이기 때문입니다.
마귀가 우리를 미혹할 때에 가장 심혈을 기울이며 공격하는 자리도
바로 마음과 생각입니다.
일단 마귀가 우리의 마음과 생각에 어떤 악한 생각을 집어넣는 데 성공하면
그 다음부터 우리는 마귀가 시키는 대로 행하는 자들이 되기 때문입니다.
마귀가 우리 마음과 생각을 사로잡으려 할 때
가장 많이 사용하는 무기가 바로 염려와 걱정입니다.
염려와 걱정과 불안에 사로잡히면 주께서 주시는 기쁨을 잃어버리기 때문입니다.
기쁨을 잃어버리면 우리는 곧 마귀의 밥이 되므로
염려와 걱정은 마귀가 우리를 향하여 쏘는 독화살입니다.
2) 그러므로 염려하지 말고 감사함으로 기도하십시오(6절)
(6절 성경구절 위에)
우리가 염려하지 않고 감사함으로 기도할 때
주께서 주님의 평강을 우리 마음 주위에 감싸주십니다.
마치 전쟁할 때 군인들이 경계를 서며 지키듯,
주께서 우리 마음에 하나님의 평강으로 포위하게 하셔서
마귀가 어떤 악한 생각도 집어넣지 못하게 막아주시는 것입니다.
주님의 권세로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는 것입니다.
● 묵상 :
그러므로 말씀과 기도도 늘 주님과 교제하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이 일은 주께서 우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는 통로를 늘 열어두는 일입니다.
3. 자족(自足)의 신앙
• 어떠한 상황에서도 만족하며 기뻐할 수 있는 비결을 배운 바울(11절)
11.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내가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바울은 주께서 주시는 평강으로
어떤 상황에서도 기뻐하며 만족할 수 있는 자족의 능력을 갖게 되었다고 말합니다.
자족의 신앙은
지금에 만족하여 아무 것도 하지 않으려 하는 게으름을 말하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자족하는 신앙은 어떤 환경에 처하든지 자기 연민에 빠지지 않고
주께 최선을 다할 수 있는 준비를 갖추고 있는 신앙의 태도를 말합니다.
1) 풍부에 처할 줄도 알고(12절)
12. 내가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에 배부르며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많은 사람이 고난과 시련의 시간을 지날 때에는
간절히 기도하며 경건한 삶을 살기에 힘쓰다가
삶이 회복되고 부(富)를 이루게 되면
기도도 중단하고 경건한 삶도 버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행복하고 좋은 시절을 만나더라도
기도를 중단하거나 경건한 삶을 포기하거나
그가 행하고 있던 사명을 잊어버리는 일이 없다는 뜻입니다.
이에 해당하는 대표적인 사람이 다윗입니다.
그는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왕이었으나
하나님을 사랑하며 섬기는 일을 중단하지 않았습니다.
2)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12절)
(12절 성경구절 위에)
그러나 힘들고 어려운 일을 당해도
자신이 멸망의 자식이라도 된 것처럼 좌절에 빠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시련을 지날 때에는 그냥 전보다 더 어려워졌을 뿐입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시는 것이 변하지 않았는데
좀 힘들어졌다고 좌절할 이유가 없다는 것입니다.
● 묵상 :
자족의 신앙을 가진 사람은 어떤 상황에 있든지 이를 극복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권능에 자신을 맡기며 살기 때문입니다.
풍부할 때는 풍부한 대로, 비천할 때는 비천한 대로
하나님께 감사하며 살 수 있는 이런 전천후 신앙은
마지막 때를 사는 우리가 반드시 가져야 할 신앙의 태도입니다.
당신은 어느 때에 가장 힘을 잃습니까?
그때 당신은 어떻게 하십니까?
결 론 :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12~13절)
12. 내가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에 배부르며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13. 내가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비천에 처해도 자기 연민에 빠지지 않고,
풍부에 처해도 교만하거나 게으르지 않을 수 있는 비결은
그에게 능력을 주시는 주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주께서 우리에게 언제 어디에서든 기쁨과 평강을 제공해 주시고, 능력을 주시므로
우리는 좌절하지도 교만하지도 않고
언제든지 신실한 마음으로 주께 충성할 수 있습니다.
언제 어떤 상황에서도 주님을 섬길 수 있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습니다.
➠ 기쁨과 평강과 관용,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무기이고 능력입니다.
그리스도인의 가장 강력한 무기는 기쁨과 평강과 관용입니다.
이것이 있으면 마지막 때의 큰 환난도 능히 이길 수 있습니다.
그러나 바울조차도 기쁨과 평강과 관용을 잃어버릴 때가 있었습니다.
그런 바울도 때로는 힘에 겨워할 때가 있었습니다.
이렇게 자신만만하게 모든 일에 도전했던 바울도
때로는 죽음을 생각할 만큼 처절함을 경험할 때가 있었습니다.
그런 때 브리스길라와 아굴라 부부, 디모데와 의사 누가와 실라,
에바브로디도와 같은 자들이 바울을 도우며 격려하였습니다.
또 이들이 힘들어할 때는 바울이 그들에게 힘과 용기를 주었습니다.
옆의 성도가 힘들어할 때, 기쁨과 평강과 관용을 잃어버린 사람이 발견될 때
그를 비난하지 말고 함께 그를 위해 기도하여
우리를 불안의 늪에 빠뜨리는 마귀의 함정에 빠지지 맙시다.
그래서 우리는 끝내 부활에 이르는 자가 되기 바랍니다.
주님
주님의 부활의 권능과 고난에 참여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게 하옵소서.
우리도 바울처럼 부르심의 상, 그 푯대를 향하여
더욱 힘써 달려 나가게 하옵소서.
아무 것도 염려하지 않고
감사함으로 주께 기도하게 하옵소서.
우리도 세상 사람들에게
주님의 빛을 나타내는 자들이 되게 하옵소서.
기쁨과 평강과 관용으로 무장하는
능력의 성도들이 되게 하옵소서.
서로 기쁨과 평강과 관용을 갖도록
서로 격려하고 돕는
건강하고 신실한 교회가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