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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 설교문

[성령강림절]부활 신앙으로 신앙의 허무주의를 이기는 성도가 되십시오(5월 28일; 고전 15:10~34)

작성자송호영|작성시간23.05.30|조회수50 목록 댓글 0

설교제목 : 부활 신앙으로 신앙의 허무주의를 이기는 성도가 되십시오

설교본문 : 고린도전서 15:12~34, 말라기 2:10~3:6

설 교 자 : 송호영 목사

설 교 일 : 2023년 5월 28일(성령강림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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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주 설교에서
    흘러가는 시간과 의미 있는 시간(크로노스와 카이로스)에 대한 말씀을 드렸습니다만,

 

    시간에 대한 말씀과 함께

    우리가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이 ‘거듭남’입니다.

 

    거듭남, 정확한 뜻은 ‘위로부터 난 자’

    주께서 우리에게 주신 성령을 통해 주어지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새 생명, 새로 창조된 것,

 

    그래서 개역성경에서 ‘거듭남’이라고 번역했으나

    정확한 뜻은 위로부터 낳았다는 뜻입니다.

    재창조, 새로운 피조물입니다.

 

    거듭남은 하나님과 영적으로 이어지는 교제와 교류를 통해서만 이루어집니다.

 

 

1 : 거듭남

 

1. 거듭남, 위로부터 난 자

 

 1)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또 하나의 새로운 생명

    ➠ 신앙은 또 하나의 생명을 사는 것입니다.

 

    사도 요한은 요한복음을 통해서

    신앙이란 또 하나의 생명을 사는 것이라 증거하였습니다.

    그것을 요한복음에서는 ‘영’이라고 표현했습니다.

 

    요한이 말한 ‘영’이란 우리가 흔히 말하는 ‘영혼’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택하신 백성에게 주시는 영원한 생명을 뜻합니다.

 

    우리가 회개하고 주님을 믿어 하나님의 백성이 된 순간

    우리에게 하나님께서 주시는 새로운 생명이 생깁니다.

 

    이것을 요한은 ‘거듭남’이라고 했고

    바울은 ‘새로운 피조물’이라고 표현했습니다.

 

 2) 하나님께서 주신 그 신령한 생명으로 살아가십시오.

 

    거듭남이란 육신의 생명만 가진 사람이

    하나님께서 새로 창조하신 새로운 생명을 더 얻게 된 것을 말합니다.

 

    이 새로운 생명은 이 땅에서부터 저 영원한 나라까지 이어집니다.

    이 새로운 생명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찬양하는 자들에게만 있는 생명입니다.

 

    마치 태아가 엄마와 탯줄로 연결되어 그 생명을 이어가듯,

    이 새로운 생명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통해 그 생명을 이어갑니다.

 

    육신의 생명만 있는 자는 영의 생명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이런 자들을 가리켜 ‘육은 살았으나 영은 죽었다’고 말합니다.

 

    육체의 생명도 먹고 마시고 입고 자는 생활을 통해 그 생명이 이어져가듯,

    영의 생명도 말씀을 먹고 기도를 통해 호흡하고,

 

    예배를 통해 하나님의 빛을 공급받는 영적인 활동을 통해 그 생명이 이어져갑니다.

    이렇게 하나님을 사랑하게 하는 새로운 생명이 생긴 것을 거듭났다고 합니다.

 

 3) 거듭남은 소유하는 물건이 아닙니다.

 

    거듭남은 직책이나 직분이 아닙니다.

    거듭남은 장소나 공간으로 주어지는 것도 아닙니다.

 

    거듭남을 한 번 소유하면 다시는 죄에 빠지지 않는다고 말하는 자들이

    바로 ‘구원파’라는 이단입니다.

 

 4) 거듭남은 지식도 아닙니다.

 

    구원에 관한 말씀을 배워서 아는 것 역시 거듭남이 아닙니다.

    신령한 지식을 갖는 것을 거듭남이라고 말한 것은

    바울 시대부터 있었던 ‘영지주의’라는 이단에서 하는 말입니다.

 

 5) 거듭남은 예배 때 경험하는 기쁨과 감격의 은혜받은 느낌도 아닙니다.

 

    하나님께 영광 돌리고 난 후에 주께서 다시 우리에게 영광을 부어주실 때

    기쁨이나 감격과 같은 은혜받은 느낌을 받게 됩니다만,

    예배나 찬양할 때 느끼는 기쁨이 다 주께로부터 오는 기쁨이 아닙니다.

 

    유행가나 콘서트에서 느끼는 기쁨과 같은 단순한 정서적인 기쁨이 더 많습니다.

    이런 경우에는 예배가 아니라 종교적인 감정놀음에 불과합니다.

 

 6) 거듭남은 열심히 봉사하며 섬기는 것도 아닙니다.

 

    거듭난 자들, 그래서 주께로부터 날마다 신령한 생명을 공급받는 자들은

    당연히 기쁨과 감사로 주께 봉사하며 섬깁니다.

 

    그러나 거듭나지 않은 자들도 얼마든지 봉사하며 섬길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봉사하고 섬기는 그 자체가 거듭난 증거는 결코 아닙니다.

 

 

2. 거듭남의 중요한 두 가지

 

 1) 하나님을 향한 간절함, 두려움, 감사, 애통함

 

    거듭남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을 향한 간절함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향한 간절함은 반드시 예수님을 통해서 표현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오직 예수님을 통해서만 하나님과 관계를 맺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통하여 표현되는 하나님을 향한 간절함’이 없다면

    아무리 경건하게 신앙생활 하더라도 아무 의미 없습니다.

 

    그러므로 마귀는 예수님이 빠진 경건하게 보이는 가짜 거룩을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 바리새인에게는 이 네 가지가 없습니다.

 

    바리새인은 성경도 알고, 예배와 율법도 철저히 지키는 사람이지만

    주께로부터 가장 강력한 진노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들에게 하나님을 향한 간절함도 없었고, 하나님을 두려워하지도 않았으며,

    하나님께 감사하지도 않았고, 자기의 죄에 대하여 하나님 앞에서 애통해

 

 2) 흘러가는 시간, 의미 있는 시간(크로노스, 카이로스)

 

    거듭났다는 것은 지금 내가 이 땅에서 하나님의 거룩한 시간을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뜻합니다.

 

    기억하십시오. 공간이 아니라 시간입니다.

    내가 어디에서 무엇을 하든

    그 시간이 하나님의 거룩한 시간이어야 합니다.

    그래야 이 땅에서의 우리의 삶이 마감할 때 그대로 이어저셔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2 : 주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가장 큰 선물 부활(고린도전서 15)

 

1. 복음의 핵심인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

 

 1) 우리를 구원할 복음의 핵심 ➠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1~3절)

 

            1.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을 너희로 알게 하노니,

               이는 너희가 받은 것이요 또 그 가운데 선 것이라.

            2. 너희가 만일 나의 전한 그 말을 굳게 지키고 헛되이 받지 아니하였다면

               이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으리라.

            3. 내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노니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고린도교회의 여러 가지 잘못을 상당히 강도 높게 책망한 바울은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문제인 예수님의 부활에 대하여 말합니다.

 

    예수님의 부활이 가장 중요한 문제인 이유는

    우리의 구원의 문제와 직결되는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예수께서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고,

    죽으신 지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셨다는 것을 믿는 것,

    바로 이 믿음에서부터 구원의 역사는 시작됩니다.

 

 2) 주님은 부활하셨고, 우리도 주님처럼 부활합니다(3~4절)

 

            3. 내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노니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4. 장사 지낸 바 되었다가(무덤에 묻히셨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사

 

    그러나 주님은 부활하셨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을 직접 목격한 자들이 500명이 넘었고,

    그들 중에 대부분이 바울이 고린도전서를 쓸 당시까지 살아 있었습니다.

 

    그리고 바울과 같이 변화된 사람들이

    주님이 부활하셨음을 지금도 우리에게 증거하고 있습니다.

 

    주께서 분명히 부활하셨으므로 우리도 주님처럼 부활합니다.

    주께서 십자가에 달리신 일이 바로 우리를 위한 것이었다는 것도

    주께서 부활하심으로 입증하셨습니다.

 

묵상 :

 

    그러므로 주님의 십자가와 부활로 우리의 죄도 용서받았고,

    우리는 죄 없는 자로 여김 아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됩니다.

 

    이 믿음이 없으면 아무리 경건하고 신실한 삶을 살았다 하더라도

    구원을 받지 못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구원받는 것을 싫어하는 마귀는

    어떻게 하든지 예수님의 부활을 믿지 못하게 하려 합니다.

    그러므로 세상의 유혹에 넘어지지 말고

    끝까지 주님의 십자가와 부활의 믿음을 붙잡고 사는 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2. 최후의 심판 때까지 왕 노릇하실 그리스도(고린도전서 15)

 

1) 부활의 순서(23절)

 

           23. 그러나 각각 자기 차례대로 되리니 먼저는 첫 열매인 그리스도요

                 그다음은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에 그에게 붙은(그리스도께 속한) 자요

 

    ➀ 부활의 순서는 부활의 첫 열매이신 예수님이 처음으로 부활하십니다.

       예수님은 2,000년 전에 이미 부활하셨습니다.

 

    ➁ 그다음에는 이미 죽어서 주님과 함께 영생의 나라에 들어간 자들이

       주께서 이 땅에 오실 때에 부활하게 됩니다.

       이 사람들은 주님과 함께 영생의 나라에 있기는 하지만

       아직 육신으로 부활한 상태는 아니고 영으로만 함께하고 있으나,

       주께서 오실 때 예수님이 부활하셨을 때의 그 모습으로 부활의 몸을 입게 됩니다.

 

    ➂ 그리고 그다음에는 예수께서 재림하여 오실 때까지

       이 땅에 살아있던 자들 중에 주께 속한 자들이 부활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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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몸이 화장(火葬)되어 뼛조각조차 남아있지 않다고 하더라도

    주님의 신비한 능력으로 완전한 몸으로 다시 부활하게 됩니다.

    그렇게 주님 안에 있는 모든 자들이 다 부활하여 영광의 나라에 들어가게 될 때에

    이 세상은 끝이 나게 됩니다.

 

 2) 모든 정사와 권세와 능력을 멸하시고(24절)

 

           24. 그 후에는 나중이니 저가 모든 정사와 모든 권세와 능력을 멸하시고

                나라를 아버지 하나님께 바칠(넘겨드릴) 때라.

 

    이렇게 해서 주께 속한 자들이 모두 영생의 나라에 들어간 후에

    주께서 이 땅에 있던 모든 정사와 권세와 능력을

    모두 폐기 처분하여 없애버리십니다.

 

    정사와 권세와 능력은 당시 로마 황제에게 사용하던 단어들입니다.

    직역하면 로마 황제가 가진 막강한 권세가 모두 사라진다는 것입니다만,

    본문의 뜻은 세상의 모든 나라의 권세가 다 없어진다는 뜻입니다.

 

    또한 사람을 미혹하여 멸망에 빠지게 했던

    사탄이 가진 모든 힘과 권세도 다 없어집니다.

 

    ● 묵상 :

 

       그러므로 영원히 멸망당하고 말 세상의 힘과 권세를 부러워하지 말고,

       오직 주님만 바라보며 사는 자가 되십시오.

 

 3) 맨 마지막에 멸망할 원수는 죽음(25~26절)

 

            25. 저가 모든 원수를 그리스도의 발아래 둘 때까지 불가불 왕 노릇 하시리니

            26. 맨 나중(맨 마지막)에 멸망 받을 원수는 사망(죽음)이니라.

 

    예수께서 이 땅의 모든 통치와 권세와 능력들을 주님의 발아래 굴복시키신 후에

    맨 마지막에 멸망 받을 원수는 사망(죽음)입니다.

 

    아담의 범죄 이후로 이 땅에 있는 모든 자들이 죽음을 두려워하며 살았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권세로 사망이 멸망을 받아

    다시는 주님의 백성들이 죽음으로 두려워하거나 염려하는 일이 없게 됩니다.

 

 4) 맨 마지막에 멸망할 원수가 죽음이라는 것은 :

 

    맨 마지막에 멸망할 원수가 죽음이라는 것은

    주님과 더불어 영생의 나라에 들어간 자들에게

    다시는 그 어떤 아픔도, 슬픔도, 죽음도 없을 것이라는 뜻입니다.

 

    주께서 모든 일을 다 마치신 후에

    그에게 속한 모든 자와 함께 영원한 영광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을

    맨 마지막에 멸망할 원수가 죽음이라고 표현했습니다.

 

➠ 그 후에 그 영광의 나라를 아버지께 바치실 것입니다(24절)

 

           24. 그 후에는 나중이니 저가 모든 정사와 모든 권세와 능력을 멸하시고

                나라를 아버지 하나님께 바칠(넘겨드릴) 때라.

    그렇게 세상 모든 것들과 사망까지 모두 멸망을 시키신 후에

    예수님은 주께서 새롭게 만드신 새 하늘과 새 땅을(그 영광의 나라를)

    아버지 하나님께 바치실 것입니다.

 

    그때까지는 예수님이 이 땅과 하늘의 왕 노릇 하실 것입니다만,

    예수께서 아버지 하나님께 만유를 바치신 후에는 예수님도

    아버지 하나님께 복종하게 될 것입니다.

 

    이렇게 하여 온 세상 만물이 하나님의 지배 아래 들어가게 되고,

    하나님께서 세상의 모든 만물의 왕이 되실 것입니다.

 

묵상 : 그러므로 부활에 참여하기 위하여 사는 자가 되십시오(33~34절)

 

           33. 속지 말라. 악한 동무들이 선한 행실을 더럽히나니(좋은 습관을 망치나니),

           34. 깨어 의를 행하고(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죄를 짓지 말라.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자가 있기로 내가 너희를 부끄럽게 하기 위하여 말하노라.

 

    장차 우리 앞에서 이 모든 일이 일어날 것입니다.

    이 은혜의 자리에 참여하지 않은 자들은

    악마와 사망이 멸망을 당할 때 함께 멸망을 당하고 맙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세상 사람들처럼

   “내일 죽을 터이니 먹고 마시자”하고 말하며 헛되이 살지 말고,

    오직 부활에 참여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백성답게 신실한 자가 되어야 합니다.

 

    이 세상 사람들도 앞날의 즐거움을 위해 오늘 고통을 참습니다.

    하물며 우리는 영생을 믿는 자들이니 마땅히 그 영원한 즐거움을 위해

    오늘의 유혹을 이기고 참되게 사는 자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3 : 거듭남과 부활을 무너뜨리는 신앙의 허무주의를 조심하십시오.

            (말라기2:10~3:6)

 

1. 신앙의 허무주의 : 공의의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2:17)

 

           17. 너희가 말로 여호와를 괴로우시게 하고도 이르기를

               “우리가 어떻게 여호와를 괴로우시게 하였나”하는도다.

                이는 너희가 말하기를 “모든 행악하는 자는 여호와의 눈에 선히 보이며

                그에게 기쁨이 된다” 하며,

                또 말하기를“공의의 하나님이 어디 계시냐?” 함이니라.

 

        설명 : 너희가 말로 여호와를 괴롭게 하고도

                “우리가 언제 여호와를 괴롭게 했다고 이러십니까?”하는도다.

                너희가 또 말하기를 “여호와께서는 악을 행하는 사람도 모두 좋게 보시고,

               여호와께서는 오히려 그런 못된 사람을 더 기뻐하며 사랑하신다”하며,

               또 말하기를 “하나님의 의로운(공의로 재판하시는) 하나님이라고?

               그런 하나님이 세상에 어디 있느냐?”하고 말함이니라.

 

1) 신앙의 허무주의 : 경건하게 살다가 피곤에 지친 사람들의 질문

 

    세상이 흉흉하여 악하게 사는 자가 더 풍요를 누리며 살고,

    착하고 경건한 자들이 가난하고 고달프게 살 때,

    경건하게 살다가 피곤해진 사람들이 이렇게 절규합니다.

 

   “악한 자의 길이 형통하며 핍박한 자가 다 안락함이 무슨 연고니이까?”(렘 12:1)

    하박국도 같은 질문을 했습니다(합 1:2~4).

    이런 때에 신앙의 허무주의가 일어나기 쉽습니다.

 

    신앙의 허무주의란, 신앙생활을 하기는 하지만

    그렇게 열심히 신앙생활을 해봐야 아무런 소용이 없다고 생각하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이 계신 줄은 알겠는데 그 하나님이 나를 도우실 것 같지는 않고,

    그냥 그렇게 생각 없이 신앙생활을 하는 것을

    신앙의 허무주의(유신론적 허무주의)라고 말합니다.

 

    예레미야나 엘리야 같은 선지자들은

    이런 상황에서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다가 하나님의 위대한 선지자들이 됐습니다.

 

 2) 그러나 여기에서는 세상을 괴롭게 하는 장본인들이 교만하게 하는 말

 

    그러나 본문(말 2:17)에서의 ‘공의의 하나님이 어디 계시냐?’하는 질문은,

    경건하게 살다가 피곤해진 사람들의 절규가 아닙니다.

    세상을 자기들 마음대로 좌지우지하며

    세상 사람들을 괴롭게 하는 바로 악의 장본인들이 하는 말입니다.

 

    자기들이 저지르는 악을 막을 자가 아무도 없으니

    하나님께서는 자기들이 행하는 악한 일도 선하게 보신다고 말합니다.

    심지어 하나님은 악을 행하는 자기들 편이며,

    세상의 착하고 선한 사람들보다

    악을 행하는 자기들을 하나님께서 더 좋아하시고 기뻐하신다고 큰소리칩니다.

 

    그러니 지금 자기들이 이렇게

    큰 부흥을 이루며 살고 있는 것이 아니냐 하는 것입니다.

 

 3) 역사는 물론 하나님의 뜻까지 자기들 마음대로 바꾸려는 자들

 

    그들은 세상의 역사는 물론

    하나님의 뜻마저 자기들 뜻대로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복과 저주 자기들 마음대로 선포합니다.

    자기들 마음에 합한 자들에게는 복을 선포하고,

    아무리 말씀대로 살았더라도 자기들 마음에 들지 않으면

    하나님의 이름으로 저주를 선포합니다.

 

    마치 하나님의 복과 저주를

    모두 자기들이 움켜쥔 것처럼 말하고 행동합니다.

 

 4) 공의의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

 

    이들이 이렇게 자기들이 가진 권력으로 세상을 마음대로 쥐락펴락하다가

    급기야는 성경에서 말하는 공의의 하나님이란 없다고 큰소리치기까지 합니다.

    어디 한 번 자기들에게 심판을 해 볼 테면 해 보라고 큰소리칩니다.

 

    하나님께서 심판하신다고 하더라도 오히려 죽는 것은 연약한 자들이고,

    힘과 권세를 가진 자기들은 또 살아남아서 세상을 다스릴 것이라고 말합니다.

 

묵상 :

 

    우리나라에서도 이런 현상을 발견합니다.

    일제 때에 친일파 노릇 하며 부자가 된 자들이

    그 후 정권이 바뀔 때마다 그 정권에 빌붙어 지금까지 부와 권세를 누리며 살아갑니다.

 

    그러나 일제 때 독립 운동을 했던 자들은

    지금까지 가난과 시련 속에서 사는 자들이 많습니다.

 

    이렇게 계속해서 대를 이어가며 죄악 속에서도 힘을 갖고 사는 자들은

    하나님께서도 자기들 편이라고 생각하며,

    아무런 죄책감 없이 그런 악을 저지르고 살아갑니다.

 

 

2. 신앙의 허무주의의 위험

 

    이렇게 신앙생활을 하기는 하지만

    그렇게 열심히 신앙생활을 해봐야 아무런 소용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

 

    하나님이 계신 줄은 알겠는데 그 하나님이 나를 도우실 것 같지는 않고

    그냥 그렇게 생각 없이 신앙생활을 하는 신앙의 허무주의에 빠진 사람들은,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잘못된 신앙에 빠질 위험이 있습니다.

 

 1) 신앙의 형식주의

 

    신앙의 허무주의는 신앙의 형식주의를 가져옵니다.

    하나님에 대한 사랑도, 하나님께서 나를 위해 행하신 일들에 대한 감사도 없고,

    예배에 대한 감격도 없이 신앙생활을 하는 자들은

    그냥 몸만 왔다 갔다 하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이런 자들은 우리가 말라기 1:6~14에서 이미 살펴본 바와 같이

    예배를 귀찮은 일로 여기는 자가 됩니다.

 

    ● 묵상 : 이런 자들은 언제든 시험당할 위험군에 속한 자입니다.

 

       신앙의 기쁨도 없고,

       왜 예수님을 믿어야 하는지에 대한 분명한 확신도 없으니

       아주 작은 일만 일어나도 어김없이 시험당합니다.

 

       혹시 자신이 이런 상태라면

       지금 자신이 마귀의 표적이 되고 있다는 것을 기억하고

       서둘러 하나님께 성령을 보내주시기를 간구하십시오.

 

 2) 도덕적 타락

 

    신앙의 허무주의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신실하게 살아야 할 이유를 모르는 자가 됩니다.

    그렇게 신실하게 살아도

    나를 지켜봐 줄 하나님이 계신 것을 잘 느끼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말라기 2:10~16에서 살펴본 바와 같은

    지독한 타락에 빠지게 됩니다.

    머리로는 말씀을 알지만 그렇게 말씀대로 살아야 할 이유를 느끼지 못하고 있으니

    육체의 욕망이 불쑥 솟아오를 때 그것을 이기지 못합니다.

 

    ● 묵상 :

 

       믿음의 사람인 다윗이나 야곱의 아들 유다도 타락한 적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들은 그 마음에 하나님을 향한 간절함이 있었습니다.

       이들에게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이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자신이 타락한 상태라는 것을 깨닫고

       회개하여 하나님 앞으로 나올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신앙의 허무주의에 빠진 자들은 그 자체를 타락이라 여기지 않으므로

       하나님의 말씀의 자리로 돌아오기가 아주 어렵습니다.

 

 3) 역사와 하나님의 뜻까지 바꾸려는 적극적인 악의 사람들

 

    가장 심각한 것은

    역사와 하나님의 뜻까지 자기들 마음대로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는

    적극적인 악의 사람들이 되는 것입니다.

 

    가령 아돌프 히틀러는 자기가 가진 힘과 권세로

    독일은 물론 세계를 구원시킨다고 하면서 세계를 전쟁으로 몰아갔습니다.

    그러면서도 그 스스로 하나님의 사람으로 자부했고,

    나중에는 자기가 바로 독일의 메시야라고까지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신앙의 허무주의는 이렇게 마귀와 사탄의 깊은 늪 속에 빠져들어 가면서도

    그것을 전혀 알지 못하는 사람이 되게 하므로 그 어떤 것보다도 위험한 일입니다.

 

묵상 :

 

    주께서 이 땅에 오시기 전의 혼란의 때가

    바로 신앙의 허무주의가 만연한 때입니다.

 

    신앙생활을 하기는 하지만 믿음이 비밀도 없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도 없고,

    예배의 감격도 없이 그냥 하는 사람들 속에서

    세상 사람과 다를 바 없는 타락한 모습이 발견됩니다.

 

    그러나 그들 자신은 그것이 타락인지 죄인지도 전혀 알지 못합니다.

    우리는 이미 그런 시대 속에 살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정신을 차려야 합니다.

 

 

3. 하나님께서 속히 임하시리라 : 크고 두려운 심판(3:5)

 

            5. 내가 심판하러 너희에게 임할 것이라.

              술수하는(점치는) 자에게와 간음하는 자에게와 거짓 맹세하는 자에게와

              품군의 삯에 대하여 억울하게 하며 과부와 고아를 압제하며

              나그네를 억울하게 하며 나를 경외하지 아니하는 자들에게

              속히 증거하리라(내가 속히 가서 그들의 죄를 낱낱이 드러내리라).

 

   “하나님께서는 악한 사람들이라도 전혀 심판하실 리가 없다.

    오히려 저 가난하고 착하고 선한 사람들보다

    우리처럼 악한 사람들을 더 아끼시고 좋아하신다.

    그러기에 이렇게 몇 대를 걸쳐서 우리가 재앙도 없이 잘 사는 게 아니냐?”라고 하면서

 

    오직 돈이 최고라고 생각하는 신앙의 허무주의에 빠진 사람들을 향하여

    하나님께서 속히 임하여 오실 것이라고 경고하십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심판하기 위해 내려오십니다.

 

    말라기는 주님의 심판을 받을 자들을 나열했으나,

    그들은 결국 ‘나를 경외하지도 않은 자(하나님을 경외하지 않은 자)’입니다.

    앞에 나열한 ‘술수하는 자 … 나그네를 억울하게 하는 자’는

    그들이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기 때문에 나타난 결과들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는 자, 신앙의 허무주의에 빠진 자들은

    그것이 점치는 것이든, 돈에 대한 탐욕이든, 도덕적인 타락이든 간에

    아주 작은 유혹도 이기지 못하는 자들이 됩니다.

 

    그들을 심판하기 위해 다시 이 땅에 내려오십니다.

    그날은 그들에게 아주 크고 두려운 날이 될 것입니다.

 

묵상 :

 

    ‘깨는 자나 응답하는 자는 물론이요, 만군의 여호와께 제사를 드리는 자도

    여호와께서 야곱의 장막에서 끊어 버리시리라’(말 2:12).

 

    깨는 자나 응답하는 자(유혹하는 자나 유혹에 넘어진 자) 모두가

    다 하나님께 심판을 받게 됩니다.

    이렇게 죄 속에 빠져 사는 자들은

    그들이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고 예물을 바칠지라도 심판의 저주를 피할 수 없습니다.

 

 

4. 그 전에 새로운 언약의 사자를 너희에게 보내리라

 

    그러나 크고 두려운 심판을 내리시기 전에

    주께서 이 땅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은혜를 베풀 언약의 사자를 보내실 것입니다.

    말라기가 말한 언약의 사자는 우리의 구주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1) 불과 잿물로 연단하여 레위 자손을 깨끗하게 하리라(3:1~3)

 

            1. “나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보내리니 그가 내 앞에서 길을 예비할 것이요,

               또 너희의 구하는 바(너희가 오랫동안 기다린) 가 홀연히 그 전(성전)에 임하리니,

               곧 너희의 사모하는바 언약의 사자가 임할 것이라.

            2. 그의 임하는 날을 누가 능히 당하며

               그의 나타나는 때에 누가 능히 서리요(누가 살아남을 수 있겠는가)?

               그는 금을 연단하는 자의 불과 표백하는 자의 잿물과 같을 것이라.

            3. 그가 은을 연단하여 깨끗하게 하는 자같이 앉아서 레위 자손을 깨끗하게 하되

               금, 은같이 그들을 연단하리니,

               그들이 의로운(공의로운, 올바른) 제물을 나 여호와께 드릴 것이라.

 

    그가 불과 잿물로 연단하여 레위 자손을 깨끗하게 하실 것입니다.

 

    레위 자손이란 예수님을 믿는 그리스도인들을 말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예배드리는 자가 레위 자손인데,

    이제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 앞에 나아와 예배를 드리기 때문입니다.

 

    불과 잿물은 예수님의 피와 성령의 도우심을 뜻합니다.

    예수님의 보혈의 피로 우리의 죄가 모두 사라지고,

    성령의 도우심으로 거룩한 능력을 회복하여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거룩한 백성이 됩니다.

 

 2) 그들이 여호와께 기쁨이 될 공의로운 제물을 바칠 자들이 될 것이라(3:4)

 

            4. 그때에 유다와 예루살렘의 헌물이

               옛날과 고대와 같이(그 처음처럼) 나 여호와께 기쁨이 되려니와

 

    예수님을 믿는 그리스도인들이

    모두 하나님께서 기쁨으로 받으실 공의로운 제물이 됩니다.

 

    우리가 바치는 예물이 아니라 예수님을 믿는 우리 자신이 바로 공의로운 제물입니다.

    자기들 자신을 하나님께서 받으실 거룩하고 산 제물로 바치는 자들,

    하나님께서 받으실 참된 예배를 드리는 자들이 바로 그들입니다.

 

● 묵상 :

 

    마지막 심판을 내리시기 전에

    먼저 예수께서 우리에게 오셔서 성령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성령께서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십니다.

    그러므로 항상 주의 성령을 구하는 자가 되십시오.

 

 

결 론 : 신앙의 허무주의를 이기고 깨어서

           주의 날을 기다리는 자가 되십시오.

 

 1) 항상 기도하며 깨어있는 자가 되십시오.

 

   “이러므로 너희는 장차 올 이 모든 일을 능히 피하고

    인자 앞에 서도록 항상 기도하며 깨어 있으라.”(눅21:36 )

 

    하나님이 계시지 않은 것처럼 느껴지는 허무주의가

    이 세상과 교회를 가득 채우고 있습니다.

    그런 허무주의에 휩쓸리면

    말라기가 경고한 그 흉악하고 부끄러운 죄에 쉽게 빠져들게 됩니다.

 

    그러므로 허무와 공허에 빠지지 말고

    주님 오시는 그날까지 참된 믿음의 삶을 사는 거룩한 백성이 되십시오.

 

 2) 불과 잿물로 연단하여 구원받을 자를 고르실 것입니다.

 

    주께서 이 땅에 오실 마지막 때에도

    말라기 때와 같은 허무주의가 가득한 때가 될 것입니다.

    말씀대로 살아봐야 아무 소용 없을 것 같은 공허와 허무감이

    교회와 성도들에게 가득하게 될 것입니다.

 

    이런 상황은 믿음을 바로 가지려는 자들에게는

    견디기 힘든 시련과 고통의 때가 될 것입니다.

    그야말로 은을 연단하는 불과 잿물과 같은 시간입니다.

 

묵상 :

 

    하나님께서는 그 연단의 시간을 통해 구원받을만한

    참된 믿음을 가진 자를 고르십니다.

 

    주께서 반드시 이 땅에 오셔서 세상을 심판하실 것입니다만,

    그 전에 시련과 연단을 통하여

    참된 믿음을 가진 자와 가짜 짝퉁 믿음을 가진 자를 고르실 것임을 기억하고

    끝까지 믿음을 지키는 자가 되십시오.

 

 

주님

 

우리를 위해 이 땅에 오셔서

부활의 첫 열매 되신 주께 감사하며 찬양합니다.

 

부활에 참여하기 위하여

거룩하고 신실한 삶을 사는 자가

되게 하옵소서.

 

시험에 들게 마옵시고

악한 자의 유혹에서 우리를 구하여 주옵소서.

 

다른 사람의 마음에

슬픔과 아픔을 주는 자가 되지 말게 하옵소서.

 

죽은 낙엽처럼 세상에 휩쓸려

악에 빠져 사는 자들이 되지 말게 하옵소서.

 

마지막 때의 불과 잿물과 같은 연단의 시간을 잘 이겨

구원받는 자가 되게 하옵소서.

 

이 악한 세상을 분별할 지혜와 명철을

잃어버리지 않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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