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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 설교문

우리를 그리스도의 개선행렬에 참여시키시는 하나님(6월 18일; 고전 2:1~17)

작성자송호영|작성시간23.06.19|조회수116 목록 댓글 0

설교제목 : 우리를 그리스도의 개선행렬에 참여시키시는 하나님

설교본문 : 고린도후서 2:1~17

설 교 자 : 송호영 목사

설 교 일 : 2023년 6월 1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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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론 :

 

    우리의 영원한 지도자요 인도자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뿐입니다.

 

    우리가 아브라함이나 다윗이나 바울이 되지 못할지라도

    누가 이런 신령한 지도자인지, 나를 인도하는 지도자가

    바른 믿음을 가진 자인지는 구별할 수 있어야 합니다.

    잘못된 지도자를 따르는 백성은 그 지도자와 함께 망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 고린도후서 2장에서 바울은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참된 지도자가 누구인지를 증거합니다.

    이 기준으로 고린도교회에 가만히 들어온 자들이 거짓 교사인지 참 교사인지를

    분별하라는 것입니다.

 

➠ 본문의 배경

 

    고린도 교회에 일어난 음행 사건 으로 인하여 바울과 고린도 교회 사이에 문제가 생겼습니다. 

 

    고린도교회의 교인 중에 아버지의 여자와 동거하는 사람이 있었는데,

    고린도교회는 이 사람을 책망하기는커녕 도리어 그 사람을 자랑하기까지 한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5:1~13의 묵상포인트 1번을 참조하십시오.)

 

    그래서 바울이 보낸 강력한 편지(고린도후서 10~13장)에서

    이 문제를 아주 강력하게 책망했습니다.

 

    그리고는 바울은 마음을 졸이며 그 강력한 편지가

    혹 고린도 교회 성도들의 마음을 더 닫게 한 것은 아닌지 걱정했는데

    뜻밖에 그 사람은 물론 고린도교회 전체가

    다 회개하고 주께로 돌아왔다는 반가운 소식을 듣습니다.

 

    이에 바울은 그 범죄한 자가 회개하고 교회로부터 처벌도 받았으니

    이제 그를 용서하고 교회의 성도로 받아주라는 편지를 씁니다.

    이것이 고린도후서 1~9장입니다.

 

    (이 부분에 대하여 좀 더 자세히 알고 싶으신 분은

    고린도전서 큐티 마지막이나 고린도후서 첫 부분에 있는

    ‘부록 : 고린도 전서 고린도 후서 소개’부분을 참조하십시오.)

 

 

1 : 참된 지도자는 누구인가

 

1. 참된 리더십 :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인도하는 자

 

    바울이 고린도에 다시 방문하지 않은 것은

    서로 마음이 좋지 않은 상황에서 다시 고린도에 방문하여

    공연히 그들을 지배하려는 듯한 인상을 주고 싶지 않았기 때문입니다(고린도전서 1:23~24 참조).

    바울은 자신이 믿음을 주관하는 자가 아니라 기쁨을 돕는 자가 되기를 원했습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예수님의 사랑을 가진 리더의 참된 모습을 발견합니다.

 

 1) 주관하는 자가 아니라 기쁨을 돕는 자(2~3절)

 

            2. (나를 기쁘게 해 줄 사람은 너희뿐이라.)

                그런데 내가 너희를 근심하게 하면

                나의 근심하게 한 자밖에 나를 기쁘게 하는 자가 누구냐?

               (설명 : 그런데 내가 너희 마음을 아프게 한다면 나를 기쁘게 해 줄 사람에게

                         내가 오히려 근심(아픔, 슬픔)을 안겨 주는 셈이 되지 않겠는가?)

            3. 내가 이같이 쓴 것은 내가 그곳에 갔을 때에

               마땅히 나를 기쁘게 할 바로 그 사람에게서

               도리어 근심을 얻을까(내가 마음 아픈 일을 당하게 될까) 염려함이요,

               또 너희 무리에 대한 나의 기쁨이 너희 무리의 기쁨인 줄 확신함이로라.

 

    바울이 답답하고 슬픈 마음을 가진 것은

    고린도교회 성도들로부터 자신이 듣기 거북한 말을 들었기 때문이 아닙니다.

 

    이 사건이 단지 바울 개인을 모욕하는 것뿐이었다면

    바울이 그렇게 답답하고 슬프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거짓 교사들의 말만 듣고 복음을 거부하고 있었습니다.

    만일 그대로 간다면 그들은 하나님의 버림을 받게 될 것입니다.

 

    바울은 그들이 복음의 자리에 다시 돌아와

    하나님과 바울과 고린도교회 성도들 모두가 기쁨을 얻는

    참된 기쁨의 자리로 돌아오기를 바랐습니다.

 

 2) 지배하는 자가 아니라 함께 일하는 자(1:23~24)

 

           23. 내가 내 영혼을 두고(내 목숨을 걸고) 하나님을 불러 증거하시게 하노니

                다시 고린도에 가지 아니한 것은 너희를 아끼기 때문이라.

           24) 우리가 너희 믿음을 (우리 마음대로) 주관하려는 것이 아니요

                오직 너희 기쁨을 돕는 자가 되려 함이니, 이는 너희가 믿음에 섰음이라.

 

    바울은 자신을 가리켜 그들이 주께서 주시는 신령한 기쁨을 회복하기 위해

    그들과 함께 일하는 자일뿐이라고 말합니다.

 

    그 일을 이루기 위해 자기는 손 하나 까딱하지 않고

    다른 사람에게 이래라저래라 지시만 내리는 자가 아니라,

    자기도 그들과 함께 일하는 주님의 일꾼에 불과한 자라는 것입니다.

 

 3) 기쁨과 사랑의 회복을 위해 지도력을 사용하는 자

 

    지도자는 다른 사람을 지도하는 역할을 할 뿐입니다.

    다른 사람이 각자 자신의 능력에 따라 이런저런 일을 하듯,

    그는 다른 사람을 지도하는 역할을 할 뿐입니다.

 

    모두가 다 함께 주께서 주시는 참된 기쁨을 얻기 위해

    각자 자기의 맡은 일을 하는 것처럼 지도자 역시

    함께 기쁨을 얻기 위해 지도자의 역할을 담당하는 것입니다.

 

묵상 :

 

    그러므로 지도자는 자기감정 해소를 위해, 지도자라는 자기 자존감을 세우기 위해

    일방적으로 남을 지배하려는 태도를 가져서는 안 됩니다.

    함께 일하는 하나님의 일꾼이라는 것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됩니다.

    당신은 누군가를 주관하는 자가 아니라 그가 참된 기쁨을 얻도록 돕는 자입니다.

    당신의 지도력은 바로 그 일을 위하여 사용되어야 합니다.

 

  ➀ 내 감정이나 자존감을 위해 지도력을 사용하지 마십시오.

 

     오늘날 교회에서 많은 경우에

     내 마음이 불편했다, 혹은 내 자존심이 상했다는 이유로 갈등을 키워갑니다.

 

     특히 당회원(목사와 장로)들이 더욱 그러합니다.

     이들은 자기 직분에 합당한 대접을 받기를 원합니다.

     그 직분에 합당한 자존심에 상처를 입으면 아주 크게 화를 냅니다.

 

     그러나 바울은 오직 그의 성도들이

     하나님 안에서 진정한 기쁨을 회복하기를 원했습니다.

 

  ➁ 우리는 서로의 기쁨을 돕기 위해 있는 자들입니다.

 

     남을 지도하는 직책에 있는 자들은

     내가 마음이 불편하고 마음에 상처를 입은 이유가 무엇인지를 늘 살펴야 합니다.

 

     단지 내 자존심이 상처를 입었기 때문인지,

     아니면 바울처럼 그들이 복음의 자리를 잃어버려

     기쁨을 상실한 것이 안타까웠기 때문인지….

 

     바리새인들처럼 단지 자기 자리에 합당한 대접을

     받지 못한 것 때문에 마음이 상하면

     자칫 나 자신이 하나님께 버림받는 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는 다른 자를 지배하는 자들이 아니라

     서로 기쁨을 돕는 자라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2. 참된 징계 : 사랑하기 위해 징계

 

    서론의 본문의 배경에서 말한 바와 같이

    바울은 고린도교회에 에 아주 강력하게 책망했습니다.

 

    그리고는 혹시 그 편지를 받고 고린도교회가

    더 큰 시험에 들지 않을까 싶은 마음에 마음을 졸이고 있었는데

    뜻밖에 그 사람은 물론 고린도교회 전체가

    다 회개하고 주께로 돌아왔다는 반가운 소식을 듣습니다.

 

    이에 바울은 그 범죄한 자가 회개하고 교회로부터 처벌도 받았으니

    이제 그를 용서하고 교회의 성도로 받아주라는 편지를 씁니다.

    이것이 고린도후서 1~9장입니다.

 

    여기에서 바울은 자기가 그를 징계한 목적은

    그에게 기쁨을 주기 위한 것이었다고 말합니다.

 

 1) 기쁨을 회복하게 하기 위해 징계합니다(4절)

 

            4. 내가 큰 환난과 애통한 마음이 있어 많은 눈물로 너희에게 썼노니

               (대단히 괴롭고 걱정하는 마음, 답답한 마음으로 눈물을 흘리면서 편지를 썼노니)

                이는 너희로 근심하게 하려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내가 너희를 향하여 넘치는 사랑이 있음을 너희로 알게 하려 함이라.

 

    참된 징계는 주님 안에서 참된 기쁨을 얻도록 하기 위한 것이어야 합니다.

    교회에서나 부부간에나 자녀에게나 어디에서든

    누군가에게 징계를 내린다면 기쁨을 회복하기 위한 것이어야 합니다.

 

    지금대로 그냥 가면 그가 반드시 망하게 될 것이니

    그가 기쁨을 잃지 않도록 하기 위해 지도력을 발휘하여 징계하는 것이어야

    하나님 보시기에 합당한 징계가 되는 것입니다.

 

 2) 회개와 믿음을 돕기 위해 징계합니다(4절)

 

            (4절 성경구절 위에)

 

    그런데 주님 안에서 참된 기쁨을 얻기 위해서는

    먼저 신실한 믿음을 회복해야만 합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고린도교회 성도들이 거짓 교사를 따라 믿음을 잃을 위기에 처하자

    강력한 책망이 담긴 편지를 썼던 것입니다.

 

    징계를 하는 직책을 가진 자들은

    자신이 징계를 할 때에 회개와 믿음을 돕기 위한 것인지,

    내 감정을 해소하기 위해서 하는 것인지를 살피십시오.

 

 3) 진정한 사랑을 하기 위해 징계합니다(4절)

 

            (4절 성경구절 위에)

 

    그가 지금처럼 살아가면 주님의 진노를 받아 멸망하게 되므로,

    그가 주님 안에서 참된 믿음을 회복하여

    나와 진정한 사랑을 나눌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징계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내 자존심을 세우기 위해 징계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과 진정한 사랑을 나누기 위해 징계하는 것입니다.

    이런 징계가 사람을 살립니다.

 

➠ 잘못된 징계는 지나친 근심에 빠지게 합니다(7절)

 

            7. 그런즉 너희는 차라리(그보다 더 많이) 그를 용서하고 위로할 것이니

               그가 너무 많은 근심에 잠길까(지나친 슬픔에 짓눌리게 되지 않을까) 두려워하노라.

 

    그러나 오늘날 많은 경우에 내 마음을 시원하게 하기 위해 징계합니다.

    내 감정을 해소하기 위해 책망합니다.

 

    사랑하기 위해 징계하는 자는

    징계를 받는 자의 마음이 상태를 살피면서 징계하지만,

 

    내 감정을 해소하기 위해 징계하는 자는 오직 자기감정에만 관심이 있습니다.

    상대가 내 징계를 듣고 더 감정이 상하였더라도 그런 것은 아무 관심이 없습니다.

    오직 내 감정만 중요할 뿐입니다.

 

    이렇게 내 상한 감정을 해소하기 위해 징계하거나,

    내 자존심을 세우기 위해, 혹은 내 직책의 권위를 내세우기 위해 징계를 한다면

    징계가 그 범위를 넘게 됩니다.

 

    그러면 그는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회개를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징계에 반발을 하여 더욱 멸망의 길로 가게 됩니다.

    그는 다른 사람을 규합하여 징계한 자를 공격하는 자가 될 것입니다.

 

    이런 징계는 사람을 망하게 하고 관계를 망쳐서

    결국 그 공동체도 함께 무너지게 합니다.

 

묵상 :

 

  ➀ 가정에서도 사랑을 위해 징계하십시오.

 

     많은 가정이 깨어지고 있습니다.

     가장 사랑을 나누어야 할 가정에서조차

     자기감정을 해소하기 위한 징계를 내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상대의 기쁨을 돕기 위한 징계가 아니라면

     오히려 반발심만 키우게 된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남편이나 아내나 자녀가 잘못했을 때

     그를 진정으로 사랑하기 위해 징계하는 자가 되십시오.

 

  ➁ 당신이 가진 권력을 기쁨을 돕기 위해 사용하십시오.

 

     특히 당신이 권력을 가진 자라면

     백성들의 기쁨을 돕기 위해 당신이 가진 권력을 사용하십시오.

 

     백성들의 기쁨이 아니라 당신 자신의 기쁨을 위해 그 권력을 사용한다면

     차라리 권력을 가지지 못한 것만 못한 자가 될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초대왕 사울왕을 기억하신다면,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당신이 가진 권력을 사용해야 합니다.

 

 

2 : 교회를 파괴하는 사탄의 계략을 조심하십시오.

 

1. 기쁨을 기대한 사람에게서 도리어 갈등과 슬픔을 느낄 때(2, 7)

 

            2. (나를 기쁘게 해 줄 사람은 너희뿐이라.) 그런데 내가 너희를 근심하게 하면

                나의 근심하게 한 자밖에 나를 기쁘게 하는 자가 누구냐?

               (설명 : 그런데 내가 너희 마음을 아프게 한다면

                         나를 기쁘게 해 줄 사람에게

                         내가 오히려 근심(아픔, 슬픔)을 안겨 주는 셈이 되지 않겠는가?)

            7. 그런즉 너희는 차라리(그보다 더 많이) 그를 용서하고 위로할 것이니

                그가 너무 많은 근심에 잠길까(지나친 슬픔에 짓눌리게 되지 않을까) 두려워하노라.

 

    바울은 고린도교회로부터 큰 기쁨을 얻었습니다.

    아테네 전도에서 크게 실망한 바울이

    그다음 지역인 고린도에서 큰 열매를 맺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바울에게 기쁨을 주었던 그들이 바울에게 지도받기를 거부하고,

    심지어 복음의 말씀까지 거부하여 도리어 바울의 근심거리가 되었습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기쁨을 주는 자들이

    도리어 우리에게 근심과 갈등과 슬픔을 안겨 줄 수도 있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나에게 기쁨을 주는 가족, 나에게 기쁨을 주는 사랑하는 사람,

    사랑하는 애인, 다정한 친구들이 도리어 나에게 근심과 고통을 줄 수 있습니다.

    마지막 때에는 이런 일들이 더욱 극렬하게 일어날 것입니다.

 

    기쁨을 기대한 사람에게서 도리어 근심과 갈등을 얻게 되었다면

    그 마음의 상실감은 그만큼 큽니다.

    그에게 기쁨을 기대한 것이 크면 클수록 그 마음의 상처도 큽니다.

 

    우리 모두 연약한 사람들이니

    친근한 사람들로부터 기쁨과 위로를 받기를 바랍니다만,

    여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묵상 : 주님의 위로로 만족할 줄 아는 자가 되십시오.

 

    결국 우리가 믿고 의지할 자는 오직 주님뿐이라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렇다고 옆에 있는 자와 나누는 사랑과 섬김을 기대하지 말라는 것이 아닙니다.

 

    가장 가까운 자로부터 상처받을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 일을 당했을 때 무슨 이상한 일 당한 것처럼 크게 상처받지 말라는 것입니다.

 

    서로 연약함을 인정하고,

    오직 주님께서 주시는 사랑과 위로에 만족할 줄 아는 성도가 되어야

    마지막 때의 혼란을 이길 수 있습니다.

 

 

2. 사탄의 책략 : 회개를 막고 신앙공동체를 파괴함

 

 1) 징계를 받고 회개했다면 이제는 용서하고 위로하라(6~7절)

 

            6. 이러한 사람이 많은 사람에게서 벌 받은 것이 족하도다.

            7. 그런즉 너희는 차라리(그보다 더 많이) 그를 용서하고 위로할 것이니

                그가 너무 많은 근심에 잠길까(지나친 슬픔에 짓눌리게 되지 않을까) 두려워하노라.

 

    고린도전서와 그 강력한 편지에서

    아버지의 여자와 동거를 한 그 사람을 아주 무섭게 책망했던 바울은,

 

    그 사람이 고린도교회에서 회개를 했고,

    또 교인들로부터 비난과 조롱을 받는 처벌을 받았다면

    그가 다시 신앙공동체로 나오게 하라고 말합니다.

    다시 성도의 교제에 참여하도록 그를 용서하고 위로하고 도와야 한다고 말합니다.

 

    바울은 사랑하기 위해 징계를 할 뿐입니다.

    그러므로 그가 비록 범죄 하여 고린도교회의 신앙에 나쁜 영향을 주고

    많은 사람을 시험 들게 하였더라도,

    그가 회개하고 주께로 돌아왔다면

    그가 다시 신앙공동체에 나오도록 도와야 하는 것입니다.

 

 2) 회개를 못하게 하는 사탄의 계략에 말려들지 마십시오(11절)

 

           11. 이는 우리로 사탄에게 속지 않게 하려 함이라.

                우리가 그 계략(궤계, 속셈)을 알지 못하는 바가 아니로라.

 

    이렇게 그를 용서하고 다시 교회 공동체의 멤버로 활동할 수 있게 도와야

    사탄의 속임수에 빠지지 않게 됩니다.

    사탄의 속임수는 인간의 감정을 이용하여

    회개를 불가능하게 하고 신앙공동체를 파괴하려는 것입니다.

 

    사탄은 그가 진심으로 회개하였더라도

    교회의 성도들로 하여금 그를 향한 불쾌한 감정을 계속 갖도록 하여

    신앙의 자리인 교회에 나오지 못하게 합니다.

 

    그러면 그가 다른 성도들을 규합하여

    그를 받아들이지 않는 자들을 공격하게 될 것입니다.

    결국 교회(신앙공동체)가 파괴되고 마는 것입니다.

 

묵상 :

 

  ➀ 회개하여 주님 앞으로 나오도록 하기 위해 징계하는 것임을 잊지 마십시오.

 

     그러므로 회개한 교인을 용서하고 그가 회복되도록 도와야 합니다.

     우리의 적은 범죄 한 성도가 아니라 사탄입니다.

     우리는 그가 범죄 하였을지라도 다시 주께로 돌아와

     참된 그리스도인이 되도록 도울 책임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가 회개하여 주님 말씀에 순종하려는 마음을 다시 가졌다면

     우리도 마땅히 그를 받아들이고 그를 사랑하며 섬기는 자로 여겨야 하는 것입니다.

 

  ➁ 우리가 싸워야 할 적은 징계를 받은 자가 아니라 사탄입니다.

 

     우리의 적은 그가 아니라 사탄입니다.

     그러므로 같은 식구나 같은 성도끼리 서로 싸우지 말아야 합니다.

     한 번 죄인은 영원한 죄인이라는 식으로 그에게 죄의 주홍글씨를 씌워

     영원히 죄인 취급을 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도 죄를 범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서로 바른 믿음을 갖도록 돕고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3 : 생명의 향기와 사망의 향기

 

1. 그리스도의 향기를 나타내게 하시는 하나님께 감사

 

 1) 디도로부터 들은 좋은 소식

 

    마케도니아에서 바울은 디도에게 고린도교회의 소식을 듣습니다.

    강력한 메시지를 보고 혹시 더 완악해졌으면 어쩌나 걱정했던 바울은,

    고린도교회 성도들이 그 편지를 보고

    회개하며 주께로 돌아오는 은혜로운 일이 일어났다는 소식을 듣습니다.

 

    바울은 그들의 마음을 얻기 위해 그들이 듣기 좋은 말을 전하기보다,

    조금 듣기 거북하더라도 복음의 말씀을 바로 전하려 했는데

    그것이 좋은 효과를 얻은 것입니다.

 

 2) 그리스도를 아는 냄새 : 그리스도의 향기(14~15절)

 

           14. 항상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이기게 하시고

                (혹은, 우리를 그리스도의 개선행렬에 항상 참여시키시고),

               우리로 말미암아 각처에서 그리스도를 아는 냄새(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의 향기)를

               나타내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라.

           15. 우리는 구원 얻는 자들에게나 망하는 자들에게나

                하나님 앞에서(혹은, 하나님께 바치는) 그리스도의 향기니

 

    바울은 누가 뭐라고 해도 오직 예수님의 십자가의 복음만 전합니다.

    이것을 가리켜 그리스도의 향기라고 표현했습니다.

    자기는 입만 열면 예수님의 복음만 나온다는 것을 표현한 것입니다.

    바울은 자신에게서 그리스도의 향기를 나타내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노래합니다.

 

    ➀ 영을 살리는 것은 오직 예수님의 복음뿐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마음을 얻기 위해

       그들이 듣기 좋은 말로 아부성의 편지를 쓰기보다

       복음을 바로 전한 것이 그들이 영을 살리게 한 것입니다.

 

       그러나 이 모든 일은 바울이 한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그를 통하여 하신 일입니다.

       이에 바울은 자신을 통하여 그리스도의 신령한 향기를 나타내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노래하는 것입니다.

 

    ➁ 그러므로 사람이 듣기 좋은 말이 아니라 영을 살리는 말을 하십시오.

 

       물론 바울의 일이 실패로 돌아갔을 수도 있었습니다.

       천하의 바울도 아테네에서는 실패했었습니다.

 

       그랬더라도 바울이 실패한 것은 결코 아닙니다.

       오히려 만일 바울이 세상 사람들이 하는 방식대로

       사람이 듣기 좋은 말로 아부성의 편지를 썼다면,

       설령 고린도교회 성도들이 바울을 받아들이고 바울을 사랑한다고 말했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오히려 실패입니다.

 

       오늘날 많은 교회들이 모든 것을 그저 부흥만을 위해 하려합니다.

       예배도 부흥을 위한 예배, 설교도 부흥에 도움이 되는 설교만 하려합니다.

       그러나 주께서는 부흥이 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복음에 합당한 예배, 복음에 합당한 설교를 하기를 원하십니다.

 

 

2. 사망의 냄새와 생명의 냄새

 

    여기서 ‘냄새’는 로마 황제가

    개선행진을 할 때 길가에 피우던 향에서 나던 냄새이거나,

    쥬피터 신전까지 개선행진할 때

    희생 제물을 바치며 향을 피울 때 나던 냄새를 가리킵니다.

 

    이 향기는 로마 사람들에게는 승리의 냄새요 생명의 냄새가 되겠지만,

    포로들에게는 이제 곧 죽게 되거나 노예가 될 것이니 사망의 냄새가 될 것입니다.

    바울은 하나님과 그리스도에 관한 지식을 전하는 것을 이 향기에 비유하고 있습니다.

 

 1) 생명의 냄새 : 하늘의 시간을 사는 자(14절)

 

            (14절 성경구절 위에)

 

    우리는 주께 예배드리고,

    하나님의 시간 속에서 살며,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사는 것,

    주님을 사랑하며 주께 헌신하며 살아가는 것을 통해

    승리하신 주님의 행렬에 참여합니다.

 

    주님의 행렬에 참여한 자들은

    이 세상에서 주님의 백성답게 착하고 선한 삶을 살아갑니다.

    그리고 그들의 입에서는 주님의 복음의 말씀이 나옵니다.

    이런 자들은 이 땅에서부터 이미 하늘의 시간 속에서 사는 자입니다.

 

 2) 사망의 냄새 : 땅의 시간을 사는 자(14절)

 

            (14절 성경구절 위에)

 

    그러나 땅의 일에만 매여 사는 자들은 땅의 시간을 사는 자들입니다.

    영생을 위한 준비는 전혀 하지 않고

    오직 이 지구 위에서 사는 동안의 일에만 관심이 있습니다.

    이런 자들은 사망의 냄새, 사망의 향기가 납니다.

 

 3) 또 다른 의미 : 복음의 말씀에서 사망을 느끼는가 생명을 느끼는가(15~16절)

 

           15. 우리는 구원 얻는 자들에게나 망하는 자들에게나

                하나님 앞에서(혹은, 하나님께 바치는) 그리스도의 향기

           16. 이 사람에게는 사망으로 좇아 사망에 이르게 하는 냄새요,

                저 사람에게는 생명으로 좇아 생명에 이르게 하는 냄새라.

               누가 이것을 감당하리요?

 

    우리는 예수께서 주신 복음의 말씀에서 생명의 향기를 느낍니다.

    이 말씀으로 영생의 나라에 들어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이 복음의 말씀에서 사망의 냄새를 느낍니다.

 

    이것 역시 로마의 군대에 비유한 말입니다.

    로마 황제가 개선행진을 할 때 나던 냄새에 비유하였습니다.

    이 향기는 로마 사람들에게는 생명의 냄새가 되겠지만,

    포로들에게는 이제 곧 죽게 되거나 노예가 될 것이니 사망의 냄새가 될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주님을 믿는 자들에게는 그 말씀이

    우리를 생명으로 인도하는 생명의 냄새가 되지만,

    주님을 믿지 않는 자들에게는 그저 예수님을 믿다가 핍박받는 것만 보니

    우리를 사망으로 인도하는 사망의 냄새처럼 보이게 되는 것입니다.

 

묵상 : 당신은 복음의 말씀에서 어떤 향기를 느낍니까?

 

    세금 낼 것 다 내고,

    원칙을 다 지켜가며 장사하는 사람을 보고 세상 사람들은

   “너처럼 장사하면 망한다”하고 말할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다가 그동안 사귀었던 세상 친구들을 잃게 되면 사람들은 말할 것입니다.

   “그렇게 살면 너 혼자 고립된다.”

 

    이처럼 세상 사람들은 경건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서 사망의 냄새를 느낍니다.

    그렇게 살면 망하고 죽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믿음의 사람들에게는 이런 사람에게서 생명의 냄새를 느낍니다.

    그렇게 살면 이 땅에서는 조금 고생하겠지만

    주께로부터 영생을 누리게 되기 때문입니다.

 

 

3. 누가 이 일을 감당하리요

 

 1) 누가 이 일을 감당하리요(16절)

 

            (16절 성경구절 위에)

 

    예수님을 믿다가 매를 맞고, 주님의 일을 하다가 죽기도 합니다.

    가진 모든 것을 빼앗기기도 하고, 세상 사람들로부터 조롱을 받기도 합니다.

    그래서 세상 사람들은 이 복음에서 사망의 냄새를 느끼는 것입니다.

    자칫 이 복음을 잘못 믿었다가는 패가망신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믿는 자들에게는 그 모든 것이 주를 위해 당하는 영광스러운 일이 됩니다.

    그러므로 이 일은 오직 믿는 자들만이 감당할 수 있는 일입니다.

 

 2) 신앙생활을 적당히 하려는 자들이 가장 어렵습니다.

 

    아예 믿음이 좋아 성령이 충만하든지,

    아니면 아예 악으로 충만하든지 하면 갈등도 고통도 없습니다.

 

    성령으로 충만하면 늘 주의 은혜 속에서 사니 항상 기쁨과 감사가 넘칠 것이고,

    또 악으로 충만한 사람은 죄를 범하더라도 그 일로 갈등하는 일도 없을 것입니다.

    오히려 더 악을 범하려는 생각만 할 것입니다.

 

    그러나 믿음생활을 적당히 하려는 사람은 이것도 저것도 아닌 사람입니다.

    성령이 충만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악으로 충만하지도 않습니다.

    그러니 세상 유혹과 욕심을 그대로 가진 채

    마음 한편에 “믿음 생활도 해야 할 텐데” 하고 걱정도 하고 있으니,

    갈등은 갈등대로 하고 믿음의 성장도 되지 않습니다.

 

묵상 :

 

  ➀ 그러므로 주님의 성령을 구하고 또 구하십시오.

 

     이런 갈등과 고민을 해결하시는 이도 주님의 성령이십니다(고후 3:18).

     성령이 우리 안에 들어오셔서

     우리 안에 악을 미워하고 하나님을 기뻐하는 마음을 넣어 주십니다.

     그러므로 나같이 못난 사람도 하나님의 거룩한 사람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할 일은 오직 성령을 구하는 일뿐입니다.

     주님의 성령을 구하고 또 구하십시오.

 

  ➁ 주님의 오시는 날을 미리 준비하십시오.

 

     주님 다시 오실 때가 되면

     바울이 살았던 때만큼이나 어려운 혼란의 때가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이 “누가 이 일을 감당하리요”하고 말했던

     그 힘들고 어려운 일도 능히 감당할 수 있는 믿음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결 론 : 우리를 그리스도의 승리의 행렬에 참여시키시는 하나님께 감사

 

    14절의 ‘이기게 하신다(트리암뷰오)’는

    로마의 군사용어로‘개선행렬에 참여시키다’는 뜻입니다.

    로마의 군사들이 어느 지역을 점령한 후에 승리의 개선행렬을 할 때

    그 개선행렬에 참여한다는 뜻입니다.

 

    이처럼 주님을 믿는 자들, 주를 위해 헌신하는 자들은

    그리스도께서 이기신 그 개선행렬에 참여한 자들이라는 것입니다.

 

 1) 로마 군대의 개선행렬의 비유(14절)

 

           14. 항상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이기게 하시고

                (혹은, 우리를 그리스도의 개선행렬에 항상 참여시키시고),

               우리로 말미암아 각처에서 그리스도를 아는 냄새(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의 향기)를

               나타내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라.

 

    바울은 자신이 전한 강력한 복음의 말씀을 듣고 회개하며

    주께로 돌아온 고린도교회의 성도들을 보고 로마의 군대의 개선행렬을 생각합니다.

 

    로마가 어떤 지역을 점령한 후 승리한 장군이

    함께 전쟁에 참여한 자들을 개선행렬에 참여하게 합니다.

    그들은 로마 정부가 주는 큰 상을 받게 됩니다.

 

 2) 우리를 그리스도의 개선행렬에 참여시키시는 하나님(14절)


            (14절 성경구절 위에)

 

    바울은 이 장면에서 승리하신 그리스도의 개선행렬을 생각합니다.

    주께서 모든 악한 영들을 물리치시고 승리의 개선행렬을 하실 때

    그 행렬에 참여한 자들은 주와 함께 영원한 주님의 나라에 들어갑니다.

    그리고 주께서 주시는 기쁨의 큰 상을 받게 됩니다.

 

    주께서 다메섹 도상에서 바울을 그 개선행렬에 참여시키셨습니다.

    그리고 지금 바울을 통해서 고린도교회의 성도들을 그 개선행렬에 참여하게 하셨습니다.

 

묵상 :

 

    예수님을 나의 구주요 나를 구원할 그리스도로 믿고 고백하는 자들이

    이 행렬에 참여한 자입니다.

 

    나를 주님의 승리의 행렬에 참여하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합시다.

    그리고 내 주변에 있는 자들에게 그 승리의 행렬에 참여하도록 권합시다.

    이것이 우리가 해야 할 전도와 선교입니다.

 

 

주님

 

주관하려는 자가 아니라

기쁨을 돕는 자가 되게 하옵소서.

 

지배하려는 자가 아니라

참된 믿음을 갖도록

서로 돕는 자가 되게 하옵소서.

 

징계를 하더라도

사랑하기 위해 징계하는 것이

되게 하옵소서.

 

세상 사람들을 구원의 길로 인도하는

그리스도의 향기로 살아가게 하옵소서.

 

깨어진 가정과 교회들이

하나님 보시기에

건강한 가정과 교회로

회복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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