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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 설교문

하나님의 자유와 요나의 자유의 대결(8월 20일; 욘 4:1~11)

작성자송호영|작성시간23.08.21|조회수230 목록 댓글 0

설교제목 : 하나님의 자유와 요나의 자유의 대결

설교본문 : 요나서 4:1~11(참고, 요나서 3장)

설 교 자 : 송호영 목사

설 교 일 : 2023년 8월 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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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론 :

 

           21.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22. 그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23. 그 때에 내가 그들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마태복음 7:21~23)

 

    예수님의 심판대 앞에서까지 자기가 하나님의 백성인 줄 알고 있다가

    사실은 멸망 받을 자였다는 것을 알게 된다면 얼마나 충격이 클까요?

 

    심지어 선지자 노릇 하고, 주의 이름으로 귀신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기까지 했는데도

    그날 주께로부터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하는 말씀을 듣는 자가 있다니

    얼마나 놀랄만한 일입니까?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습니까?

    어떻게 하면 이런 엉터리 구원 확신이 있을 수 있습니까?

    오늘 그것을 요나서를 통해 살펴보겠습니다.

 

    요나는 선지자이면서도 하나님의 뜻을 정면으로 거부하는 자였습니다.

    그럼에도 스스로 자신을 거룩한 자로 여기고 있었으므로

    요나가 스스로 거룩한 자로 여기고 있었던 이유는 무엇인지,

    그가 하나님을 대적한 것은 어떤 것이었는지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 요나서 요약

 

    하나님께서 요나에게 니느웨로 가서 심판의 메시지를 전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그러나 요나는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기를 거부하고

    다시스(스페인)로 도망하려고 배를 탑니다.

 

    이에 하나님께서 바다에 큰 폭풍을 일으키셔서 요나가 탄 배가 파선의 위기에 몰립니다.

    이에 선원들이 제비를 뽑았는데

    요나가 뽑히자 요나는 모든 재앙이 자기 때문임을 밝힙니다.

 

    파도가 점점 거세지자 사람들은 요나에게 방법을 묻습니다.

    요나는 자신을 바다에 던져야 한다고 말하였으나

    선원들은 어떻게 해서든 배를 육지에 대려 노력합니다.

 

    바다가 점점 더 거칠어지기만 하자 어쩔 수 없이 요나를 바다에 던집니다.

    그러자 바다가 곧 잠잠해집니다.

 

    이에 크게 놀란 선원과 배 안의 사람들이

    여호와께 희생제물을 드리고 서원을 하였습니다.

    요나는 여호와께서 예비하신 큰 물고기 배 속에서 3일 동안 있게 됩니다.

 

    요나는 물고기 배 속이라는 깊은 절망의 늪 속에 던져지고 나서야 비로소 하나님을 찾기 시작합니다.

 

    그러자 여호와께서 그의 기도를 들으시고

    물고기에게 명하셔서 요나를 육지로 토하게 하십니다.

    (더 자세한 것은 요나서 1~2장 큐티를 참조해주십시오.)

 

 

1 : 하나님을 향한 요나의 불평과 저항

 

    (요나의 거짓 신앙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요나서 2장에 나오는 요나의 기도를 자세히 살펴보아야 합니다만,

    그러면 설교가 너무 길어져서 생략합니다.

    혹 시간이 되신다면 요나서 2장의 큐티 묵상포인트를 꼭 살펴보십시오.)

 

 

1. 마지못해 하는 요나의 소극적인 선교

 

    큰 물고기 배 속에서 물이 목에까지 차오른 상태로 사흘을 지낸 요나는

    견딜 수 없는 상태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하나님께 기도를 드립니다.

 

 1) 요나의 거짓된 기도에도 그에게 다시 기회를 주시는 하나님(2:10)

 

           10. 여호와께서 그 물고기에게 명령하시니 물고기가 요나를 육지에 토하니라.

 

    그런데 그때 한 요나의 기도는 한마디로 오만하기 짝이 없는 형편없는 기도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무 잘못도 없는 자기를 들어서 바다 한 가운데 빠뜨리셨다는 것입니다.

    요나는 하나님을 고약한 영감 정도로 치부해버렸습니다.

 

    또 하나님께서 그렇게 자기를 까닭 없이 고통에 빠뜨리셨지만

    자기는 변함없이 하나님의 성전을 바라보았다고 하여

    하나님보다 자기의 의가 더 낫다고 자랑하기까지 했습니다.

    세상에 이런 교만한 기도가 어디에 있습니까?

 

    그럼에도 하나님께서 그의 기도를 들으시고

    물고기에게 명을 내리셔서 물고기가 요나를 육지에 토해내게 하셨습니다.

 

    요나가 이런 엉터리 기도를 했음에도 그를 다시 살리신 것은

    그에게 다시 기회를 주시려는 것입니다.

    사울 왕을 버리신 하나님께서 아말렉 족속을 멸하라는 명령을 내리셔서

    그에게 기회를 한 번 더 주려 하셨던 것과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 요나에게 다시 한번 기회를 주시려는 것입니다.

 

 2) 마지못해 억지로 순종하는 요나(3:1~4)

 

            1. 여호와의 말씀이 두 번째로 요나에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2. “일어나 저 큰 성읍 니느웨로 가서

              내가 네게 명한 바를 그들에게 선포하라” 하신지라.

            3. 요나가 여호와의 말씀대로 일어나서 니느웨로 가니라.

              니느웨는 극히 큰 성읍이므로 한 번 둘러보는 데만

              걸어서 사흘(3일) 걸리는 성읍이라.

            4. 요나가 그 성에 들어가며, 곧 하룻길을 행하며 외쳐 가로되

              “40일이 지나면 니느웨가 무너지리라” 하였더니

 

    요나는 사흘 길 되는 니느웨 성에서 하루 동안만 선교를 했고,

    그나마 ‘40일이 지나면 니느웨가 무너지리라’는

    단 다섯 마디의 말씀만 전했습니다.

 

    망하지 않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설명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한다는 그 어떤 설득도 하지 않았습니다.

    너희들은 반드시 망할 것이라는 저주의 말씀만 선포했습니다.

    마치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처럼 마지못해 억지로 선교를 하였습니다.

 

 3) 책망받지 않을 정도의 소극적인 선교

 

    요나는 자신의 이런 소극적 선교 행위로

    회개할 자는 아무도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의 동족인 히브리인들은

    아모스와 호세아가 목숨을 걸고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도

    그 말씀을 듣는 자가 아무도 없었고, 회개하는 자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하물며 타락한 이방인인 니느웨 백성들이

    자신의 이런 형편없는 설교를 듣고 회개하지는 않을 것이라 여겼습니다.

 

    그러므로 요나는 그저 하나님께 벌 받지 않을 정도만 해야겠다고 생각하고는,

    사흘 길 되는 니느웨 성을 하루만 다니며 선교했고,

    그나마 이 성이 망할 것이라는 말만 하고 다녔습니다.

 

    하나님께서 며칠을 다니라 말씀하지는 않으셨으니

    하루만 다녔어도 야단치지는 않으실 것이라 여기고

    최소한의 범위 안에서만 선교한 것입니다.

 

 

2. 니느웨 백성들의 회개를 받으신 하나님

 

 1) 회개하는 니느웨 백성들(3:5~8)

 

            5. 니느웨 백성이 하나님을 믿고 금식을 선포하고

               (높은 자로부터 낮은 자에 이르기까지) 무론 대소하고 굵은 베 옷을 입은지라

            6. 그 소문이 니느웨 왕에게 들리매

               왕이 보좌에서 일어나 조복을 벗고 굵은 베 옷을 입고 재에 앉으니라.

            7. 왕이 그 대신으로 더불어 조서를 내려 니느웨에 선포하여 가로되

              “사람이나 짐승이나 소 떼나 양 떼나 아무것도 입에 대지 말지니,  

               곧 먹지도 말 것이요 물도 마시지 말 것이며,

            8. 사람이든지 짐승이든지 다 굵은 베 옷을 입을 것이요 힘써 여호와께 부르짖을 것이며,

               각기 악한 길과 손으로 행한 강포에서 떠날 것이라.

            9. 하나님께서 혹시 뜻을 돌이키시고 그 진노를 그치셔서 우리로 멸망치 않게 하시리라.

               그렇지 않을 줄을 누가 알겠느냐?” 한지라.

               그런데 요나의 이런 엉터리 선교에도 니느웨에는 대규모 회개의 운동이 일어났습니다.

 

    니느웨 백성들의 반응은 놀랄만합니다.

    그들은 니느웨가 반드시 망하리라는 요나의 다섯 마디 말을 듣고

    곧바로 굵은 베 옷을 입고 회개했습니다.

 

    왕이 명령하여 회개한 것이 아닙니다.

    낮은 자로부터 높은 자에 이르기까지 백성들이

    다 자발적으로 회개를 한 것입니다.

 

 2) 니느웨의 왕과 백성들의 어리석지만 간절한 기도(8~9절)

 

            (8~9절 성경구절 위에)

 

    모든 백성이 이렇게 자발적으로 회개 운동에 참여하였다는 소식을 왕이 듣고는

    곧바로 왕의 보좌에서 내려와

    왕복을 벗고 굵은 베 옷을 입고 잿더미 위에 앉아 회개를 했습니다.

 

    또 왕이 조서를 내려 니느웨의 모든 백성과 짐승들은

    먹지도 마시지도 말고 오직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할 것을 명하였습니다.

 

    니느웨 왕과 백성들은 회개하면 하나님께서 용서해주시리라는 것을 모릅니다.

    요나가 가르쳐주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요나는 그저 멸망하리라는 말만 하였습니다.

 

    그럼에도 니느웨 왕은 자기들이 그렇게 회개하면

    혹시 하나님께서 재앙을 내리시리라는 그 뜻을 돌이키실지 누가 알겠느냐며

    막연하지만 간절한 회개의 기도를 합니다.

 

 3) 니느웨를 향한 재앙의 뜻을 돌이키신 하나님(10절)

 

           10. 하나님께서 그들의 행한 것,

               곧 그 악한 길에서 돌이켜 떠난 것을 감찰하시고 뜻을 돌이키사

               그들에게 내리리라고 말씀하신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니라.

 

    그들은 하나님께서 자기들의 회개의 기도를 듣고

    재앙을 거두실지 어떨지 잘 모습니다.

    그러나 일단 하나님 앞에 자기들이 간절히 회개하고

    악한 길에서 돌이켜 떠나기로 결심합니다.

 

    하나님의 백성 히브리인들이 결코 하지 않았던 회개를

    타락한 성읍 니느웨가

    요나가 억지로 마지못해 던진 말씀을 듣고 곧바로 실행합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잘 몰랐지만

    이렇게 간절함을 보이면 혹시 용서해 주시리라 생각하고

    하나님 앞에 통회하는 겸손과 악한 길에서 떠나는 모습을 보이는 등

    완전한 회개의 모습을 보였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뜻을 돌이키시고 재앙을 거두셨습니다.

 

 

3. 하나님을 향하여 분노하는 요나

 

 1) 요나는 심히 싫어하고 성내어( 4:1)

 

            1. 요나는 심히 싫어하고 성내며

               -------------

              설명 : 요나의 분노가 온몸을 태울 정도로 극에 달했다는 뜻입니다.

                       요나는 하나님의 자비를 기뻐하지 않고 오히려 분노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니느웨에 대한 재앙을 내리지 않기로 하셨다는 것을 알게 된 요나는

    심히 싫어하고 분노하였습니다.

 

    요나는 하나님을 향하여

    분노가 온몸을 태울 정도로, 이성을 잃을 정도로 분노합니다.

 

 2) 하나님의 은혜와 자비에 대한 분노(2~3절)

 

            2. 여호와께 기도하여 가로되

             “여호와여 내가 고국에 있을 때에 이러하겠다고 말씀하지 아니하였나이까?

              그러므로 내가 빨리 다시스(스페인)로 도망하려 하였사오니,

              주께서는 은혜로우시며 자비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인애가 크시사

              뜻을 돌이켜 재앙을 내리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이신 줄을 내가 았았음이니이다.

              (시편 145:8, 출애굽기 34:6 인용)

            3. 여호와여, 원하건대 이제 이 생명을 취하소서(거두어 가소서).

               이렇게 사느니 차라리 죽는 것이 더 낫겠나이다.”

 

    요나는 자기가 고국에 있을 때부터

    하나님께서 니느웨 백성들을 용서하시라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자기가 전한 그 말을 통해서 니느웨 백성들을 회개시키실 것이고,

    그러면 니느웨 백성들이 용서받고 재앙도 받지 않게 되리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일이 못마땅하여 다시스로 도망하려 했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니느웨에 도착해서도

    가능하면 하나님의 말씀을 적게 전하려 애를 썼던 것인데,

 

    그가 불과 다섯 마디의 말씀만 전했음에도

    니느웨의 온 백성들이 회개하는 것을 보고 요나는 분노를 느꼈고,

    그들이 회개하는 모습을 보고 그 죄를 용서하시고 재앙을 거두시는

    하나님의 은혜로우심과 자비하심에 극도의 분노를 느낍니다.

 

 3) 네가 성내는 것이 어찌 합당하냐?(4절)

 

            4.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네가 성내는 것이 어찌 합당하냐?” 하시니라.

 

    이에 하나님께서 요나에게

   “네가 성내는 것이 어찌 합당하냐?”하고 물으십니다.

 

    이 세상을 만드신 하나님께서 이 세상 사람 중에서

    어떤 사람을 구원하고 어떤 사람을 멸망시키시는 권한이 없겠습니까?

    한낱 피조물에 불과한 요나가

    조물주이신 하나님께서 자기의 뜻에 따라

    누구를 용서하시고 구원하시는 것을 두고 분노할 수 있겠습니까?

 

    이에 하나님께서 그에게 물으십니다. “네가 성내는 것이 어찌 합당하냐?”

 

요나의 불평을 통해서 본 거짓 그리스도인, 잘못된 경건

 

    요나는 기도하는 사람이요(2절)

    하나님을 향한 정기적인 예배에 참여하고 있는 자입니다.

    그리고 시편 145:8과 출애굽기 34:6의 말씀을 인용할 정도로

    말씀도 잘 알고 있습니다.

 

    요나는 이런 일들을 근거로

    자신을 스스로 충직한 하나님의 사람으로 여기고 있습니다.

    그러나 요나서는

    그가 실상은 하나님의 백성이 아니라 지옥의 자식이라고 증거합니다.

 

    우리는 요나의 불평을 통해서 거짓 그리스도인의 모습을 봅니다.

    이름뿐인 그리스도인, 교회에 다니기만 할 뿐

    실제는 지옥에 속한 멸망의 자식들이 누구인지를 요나는 우리에게 가르쳐줍니다.

 

    ➀ 하나님을 알지만, 하나님의 뜻에는 반대하는 자

 

       요나는 하나님이 은혜와 자비가 풍성한 하나님이신 것은 알지만

       그 뜻에 반대합니다.

 

       요나는 자기가 하나님이 누구신지 알고 있으니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여기고 있습니다.

       그러나 실상 그는 하나님의 뜻을 반대하고 있으니 지옥의 자식입니다.

 

       이처럼 많은 사람이

       하나님에 대하여 아는 것을 하나님을 믿고 섬기는 것으로 착각합니다.

       이것은 영지주의적인 이단의 사고방식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에 대하여 아는 것뿐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내 마음에 받아들이고

       그 말씀에 순종하는 자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➁ 독점욕과 이기심 : 타인에 대한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없음

 

       요나는 말끝마다 자기는 여호와의 성전을 생각하는 자라고 했습니다.

       요나의 말 자체로만 보면

       이 세상에 요나처럼 신실한 사람은 없을 정도입니다.

 

       그렇게 하나님 앞에서 자기의 의를 자랑하고 과시했지만,

       유대인이 아닌 이방인에 대하여는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전혀 없습니다.

       이방인들이 구원받기를 바라기는커녕 혹시

       그들이 단 한 명이라도 구원을 받게 될까 봐 염려하기까지 합니다.

 

       구원의 은혜는 오직 자기들만 받아 누려야 한다는 이 영적인 독점욕에서

       우리는 가짜 그리스도인의 모습을 봅니다.

 

    ➂ 하나님의 일을 훼방하고 있음에도 자신은 경건한 자라고 생각하는 자

 

       요나는 하나님의 일을 훼방하고 있음에도

       자기는 경건한 자라고 여기고 있습니다.

       실상 지옥의 자식이면서

       하나님의 백성의 위치에 서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이 오늘날에도 아주 많이 있습니다.

       나는 혹시 요나와 같은 자는 아닌지 늘 자신을 살피고 또 살펴야 하겠습니다.

 

    ➃ 형식만 갖추면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 : 바리새적인 신앙

 

       요나처럼 기도를 하거나 성경 말씀을 인용할 줄 아는 등

       경건의 형식만 갖추면 된다고 여기는 사람들은

       자칫 요나와 같은 잘못된 신앙에 빠질 수 있습니다.

 

       참된 경건은 내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을 바꾸려는 것이 아니라,

       그 기도를 통해 자신을 변화시키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나 요나는 기도를 통해 하나님을 바꾸려 했고,

       하나님께서 자기 마음대로 하시지 않자 분노하기까지 했습니다.

 

       요나처럼 거짓된 신앙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는

       내 마음에도 잘못된 죄의 때가 낄 수 있음을 깨닫고

       늘 겸손하게 말씀으로 나를 비추는 일을 게을리하지 말아야 합니다.

 

 

2 : 하나님의 긍휼과 요나의 오만함, 이기심의 대결

 

1. 박 넝쿨과 벌레

 

 1) 니느웨가 망하는 것을 보려는 요나의 헛된 열심(4:5)

 

            5. 요나가 성에서 나가서 그 성 동편에 앉되 거기서 자기를 위하여 조막을 짓고,

               그 그늘아래 앉아서 성읍이 어떻게 되는 것을 보려 하니라.

 

    요나서 전체를 통해서 요나가 이렇게 열심을 낸 적은 없었습니다.

    배가 큰 풍랑을 만나 깨어질 듯할 때에도 그는 배 밑에 들어가 깊은 잠에 빠졌었고,

    니느웨 성에서 선교활동을 할 때에도 사흘 길 중에서 하루만 다녔고,

    그것도 다섯 마디만 전했습니다.

 

    그러나 니느웨 성이 망하는 장면을 지켜보기 위해서는

    성을 가로질러서 사흘 길을 걸어 초막을 짓고 38일을 더 기다립니다.

 

    요나는 하나님의 책망하심에도 니느웨성이 망해야만 한다는 생각을 버리지 않습니다.

    요나는 니느웨 성이 망하는 장면을 보기 위해 성(城)을 가로질러서

    성 동편 밖에 있는 동산 위에 올라가서 초막을 짓습니다.

 

    하나님께서 전하라 하신 말씀을 전할 때에는 사흘 길 중 하루만 걷더니,

    니느웨 성이 망하는 것을 보기 위해서는

    사흘 길을 온전히 다 걸어서 성 동편으로 갔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하루도 견디기 힘든 태양빛을 받으며 남은 38일을 더 기다립니다.

 

 2) 요나를 위해 박 넝쿨을 준비하신 하나님과 요나의 기쁨(6절)

 

            6. 하나님 여호와께서 박 넝쿨을 준비하사 요나 위에 가리우게 하셨으니,

               이는 그 머리를 위하여 그늘이 지게 하며 그 괴로움을 면하게 하려 하심이었더라.

               요나가 박 넝쿨을 인하여 심히 기뻐하였더라.

 

    요나가 햇볕의 뜨거움에 견디기 힘들어 할 즈음에

    하나님께서 그를 위하여 박 넝쿨을 준비하셔서 시원한 그늘을 만드셨습니다.

 

    요나는 자신을 위하여 베푸신 하나님의 은혜에 크기 기뻐합니다.

    하나님께서 자기를 즐겁게 하실 때에는 하나님의 은혜를 찬양하며 감사합니다.

 

 3) 벌레가 박 넝쿨을 갉아 먹으니 요나가 다시 분노(7~8절)

 

            7. 그러나 하나님께서 벌레를 준비하셔서

               이튿날 새벽에 그 박 넝쿨을 씹게(갉아먹게) 하시매 곧 시드니라.

            8. 해가 뜰 때에 하나님께서 뜨거운 동풍을 준비하셨고

              해는 요나의 머리 위로 내리쬐니 요나가 혼미하여 스스로 죽기를 구하여 가로되

             “내 생명을 거두어 주옵소서. 이렇게 사느니 차라리 죽는 것이 낫겠나이다.”

 

    그러나 그날 밤 하나님께서 벌레를 준비하셔서 그 박 넝쿨이 시들게 하시자

    요나는 다시 차라리 죽게 해 달라며 또다시 하나님께 원망을 합니다.

 

    벌레는 요나를 깨닫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은혜의 행위였습니다.

    그러나 오직 자기를 즐겁게 하는 일에만 집중하고 있는 요나는

    하나님께서 그를 깨닫도록 하기 위해 내리신 그 벌레의 의미를 깨닫지 못합니다.

    그저 자기를 불쾌하게 했다며 하나님을 향하여 또다시 분노할 뿐입니다.

 

요나의 자기중심적 태도에서 본 거짓 그리스도인

 

    ➀ 요나처럼 파괴적인 일에 열심인 사람들

 

       오늘날에도 요나와 같은 신앙을 가진 사람들을 종종 봅니다.

       말씀과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을 배우는 데에는 게으른 사람들이

       남을 비판하고 공격하는 데에는 열심을 내는 사람들입니다.

 

       이런 파괴적인 열심을 가진 사람들의 가장 큰 특징은

       자기중심적이라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요나처럼 자기와 같은 뜻은 정의라고 하고,

       자기와 다른 뜻은 모두 악이라고 규정합니다.

 

    ➁ 자기 생각과 다르면 모두 악이라 규정하는 사람들

 

       요나는 심지어 하나님마저도 자기 뜻에 동조하지 않는다며

       하나님이 악을 행하셨다고 공격하기까지 했습니다.

       자기 생각과 다르다는 이유로 하나님까지 악으로 규정한 것입니다.

 

       요나는 하나님을 향하여

      “내가 고국에 있을 때에 이러하겠다고 말씀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하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마치 검사가 피고인을 추궁하듯 요나는 하나님을 향하여 호령을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 시대의 바리새인들의 신앙관이

       바로 이런 자기중심적인 신앙관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자기중심적인 신앙관을 대단히 싫어하십니다.

 

       혹시 내 안에는 요나나 가룟 유다와 같은

       이런 파괴적인 열심이 있지 않은지 나를 돌아봅시다.

 

    ➂ 자기를 즐겁게 하는 일에만 열심을 내는 사람들

 

       신앙생활을 하더라도 자기를 즐겁게 하는 일에만 열심을 내는 사람들이

       바로 요나와 같은 사람들입니다.

 

       가령 바울이 자기를 즐겁게 하는 일에만 열심을 내었다면

       그렇게 많은 지역에 복음을 전하는 일이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면 내가 원치 않는 일이라도 했기에

       그를 통해 많은 사람이 주님을 믿을 수 있었습니다.

 

       내가 원하는 설교만 듣기를 원하고,

       내가 좋아하는 찬송만 부르기를 원하고,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하고만 봉사를 하고,

       내가 좋아하는 프로그램만 참여하는 그리스도인은

       자기를 위한 신앙이지 하나님을 섬기는 신앙이 아닙니다.

 

       이렇게 회개 없는 은혜,

       용서받지 않은 자의 즐거움을 조장하는 행위는

       은혜가 아니라 종교적 감정놀음에 불과합니다.

 

➠ 이렇게 자기를 즐겁게 하는 일에만 열심을 내는 자들은

    이런 종교적 감정놀음을 하나님의 은혜라 착각하게 되기 쉽습니다.

 

    이런 자들은 신앙생활을 하는 목적이 처음부터 자기만족에 있기 때문에

    분위기가 자기를 불편하게 하는 방향으로 흘러가면 참지를 못합니다.

 

    요나처럼 그 일이 아무리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이라 할지라도

    내가 만족하지 못하면 분노하게 되는 것입니다.

    (종교적 감정놀음에 대하여는 디모데전서 3:14~4:5 큐티의 묵상포인트 5번

    ‘거짓된 경건, 위장된 경건을 조심하십시오’를 참조하십시오).

 

 

2. 니느웨를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

 

 1) 네가 수고도 하지 않은 것을 그렇게 아꼈다면(4:9~10)

 

            9. 하나님께서 요나에게 이르시되

            "네가 이 박 넝쿨로 인하여 성냄이 어찌 합당하냐?”

              그가 대답하되 “내가 성내어 죽기까지 할지라도 합당하니이다.”

           10.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네가 수고도 아니하였고, 네가 재배한 것도 아니며,

               그저 하룻밤에 났다가 하룻밤에 말라버린 이 박 넝쿨도 네가 아꼈더든

 

    박 넝쿨이 자기를 시원하게 할 때에는

   “그러면 그렇지 하나님께서 나를 버리실 리가 없지”하며 만족해하던 그가

    하나님께서 벌레를 준비하셔서 단 하루 만에 박 넝쿨을 시들게 하시자

    차라리 죽여 달라며 다시 하나님께 원망을 쏟아냅니다.

 

    그러나 그 박 넝쿨을 위해 요나가 수고한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가 씨를 뿌리지도 않았고, 재배하지도 않았습니다.

    그 모든 일을 하나님께서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그것을 다시 시들게 하신다 할지라도

    그가 불평할 이유는 없습니다.

 

 2) 12만 명이 넘는 저 니느웨 백성들을 아끼는 것이 합당치 아니하냐(11절)

 

           11. 하물며 이 큰 성읍, 니느웨에는 좌우를 분변치 못하는 자가 십이만여 명이요,

               육축도 많이 있나니 내가 아끼는 것이 어찌 합당치 아니하냐?”

 

    이렇게 그가 단 한 번도 수고한 일이 없는 박 넝쿨에 대하여도

    그가 그렇게 아끼며 사랑했다면,

    하나님께서 12만 명이 넘는 저 니느웨 백성들을 불쌍히 여기시는 것이

    마땅하지 아니하냐고 말씀하십니다.

 

묵상 : 박 넝쿨과 벌레에 모두 감사하는 자가 됩시다.

 

    박 넝쿨은 때때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은혜라면

    벌레는 때때로 우리가 느끼는 아픔과 슬픔일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요나를 깨닫게 하시려고 벌레를 준비하신 것처럼

    우리의 잘못을 깨닫게 하시기 위해 때때로 우리의 삶에 고난을 준비하십니다.

 

    그러나 요나가 벌레를 두고 원망했던 것처럼 삶의 아픔을 불평하기만 하면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를 깨달을 수 없습니다.

 

    다윗처럼 아픔과 슬픔에 대하여도 감사합시다.

    그래야 주께서 주시는 말씀을 바르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3. 하나님의 낯을 피할 수 있는 곳이 있습니까?

 

    요나가 하나님을 피하여 다시스로 도망할 때를 다시 한번 살펴봅시다.

    하나님께서 바다 위로 대풍(큰바람)을 보내셔서

    큰 폭풍이 일어나 배가 거의 부서지게 되었습니다.

 

    선원들이 두려워하며 배 안에 있는 짐을 모두 바다에 던졌지만 소용없게 되자

    이 일이 누구로 말미암아 일어난 일인지를 알기 위해 제비를 뽑았는데

    제비가 요나에게 당하였습니다.

 

 1) 요나의 위선적인 신앙(1:3, 9)

 

            3. 그러나 요나가 여호와의 얼굴을 피하려고 다시스(스페인)로 도망하려 하여

               길을 떠나 욥바로 내려갔더니, 마침 다시스(스페인)로 가는 배를 만난지라.

               여호와를 피하여 도망하기 위해 선가(뱃삯)를 주고 그들과 함께 배에 올랐더라.

            9. 요나가 대답하되 “나는 히브리 사람이요,

               바다와 육지를 지으신 하나님을 경외하는(섬기는) 자로라” 하고

 

    선장은 요나에게

    어느 나라 사람이며 무엇 때문에 이 배를 탔는지를 물었습니다.

 

    그러자 요나는 선원들 앞에서 자기는 바다와 육지를 지으신

    하늘의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라고 말하고는,

    지금 여호와의 낯을 피하여 도망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자기로 말미암아 이 폭풍이 오게 된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요나는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하여 다시스로 도망하고 있으면서,

    말로는 여호와를 가리켜 하늘과 땅을 지으신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명령에 저항하고 정반대로 행동하고 있으면서

    말로는 온 우주의 하나님이시라 고백하고 있습니다.

 

    말과 행동이 다른 요나,

    입술로만 하나님을 찬양하는 요나는

    매너리즘에 빠진 거짓된 신앙인의 전형적인 모습을 갖고 있습니다.

 

 2) 교회 안의 무신론자 요나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라고 고백하면서도

    요나는 이스라엘의 지역만 벗어나면 하나님의 낯을 피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라고 말하면서도 하나님의 명령을 거부하고 있는 요나는

    교회 안의 무신론자입니다.

    교회에 열심히 출석하고 있으니 사람들이 보기에는 꽤 신실한 신앙인처럼 보이지만,

    실상 하나님의 능력과 권세를 무시하는 무신론자인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풍랑으로 요나를 찾아가셨고,

    그래도 그가 피하니 제비뽑기로 그를 찾아가셨습니다.

 

묵상 : 요나처럼 행하는 어리석은 신앙인들

 

    많은 사람이 이런 요나의 생각을 어리석다며 웃습니다만,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같은 오류를 범합니다.

 

    교회에서는 열심히 하나님을 섬기지만

    세상에서는 마치 그리스도인이 아닌 것처럼 행동하는 사람들 역시

    요나처럼 교회만 벗어나면 하나님의 낯을 피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낯을 피할 수 있는 곳은 없습니다.

    우리는 교회에서나 세상에서나 어디에서든지

    예수님을 믿는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신실한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3 : 하나님의 자유와 요나의 자유의 대결

            ➠ 자기 자신을 위한 자유와, 하나님이 사람을 추적하여 사로잡는 자유

 

 1) 요나의 자유 : 자기 자신을 위하여 쓰는 자유

 

    하나님을 피하여 자기 자신을 위하여 다시스로 가는 배를 타고,

    자기 자신을 위하여 잠에 빠졌습니다.

 

    사명의 자리인 니느웨로 가기보다 세상의 모든 즐거움이 있는 다시스로 갑니다.

    고리타분하고 칙칙한 선지자의 사명을 감당하기보다

    이제 나 자신을 위해 시간과 돈을 투자하겠다는 것입니다.

 

    무엇이든 마음에 원하는 대로 할 수 있는 그야말로 자유의 땅입니다.

    무엇보다도 그 당시 세계에서는

    다시스가 이스라엘 땅에서 가장 먼 곳에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을 떠나 자유를 얻기 위해 곧바로 욥바로 갔더니

    마침 다시스로 가는 배가 출항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곧바로 뱃삯을 지불하고 배에 올라탄 후에 배 제일 밑으로 가서 잠에 빠졌습니다.

 

    이제 하나님의 얼굴을 피할 수 있게 되었다고 생각하고는

    마음 편히 잠에 빠진 것입니다.

 

 2) 하나님의 자유 : 하나님이 사람을 추적하여 사로잡는 자유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요나가 다시스로 가는 배를 탄 바로 그 순간부터

    하나님으로부터 이탈하는 요나를 추적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가벼운 미풍(微風) 정도로 여기고 배 밑에서 잠에 빠진 요나를

    하나님께서 거대한 폭풍으로 추적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선원들이 배 안에 있는 짐을 모두 다 던져도 멈추지 않으셨고,

    결국 요나가 제비를 뽑아 바다에 던져질 때까지

    하나님께서는 그 폭풍을 멈추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의 추적은 요나가 바다에 빠진 후에도 계속되었습니다.

    요나는 하나님께서 미리 준비하신 큰 물고기 배 속에서 3일을 지냈고,

    그 속에서 요나가 하나님께 항복하는 기도를 드리고 나서야

    비로소 그 물고기 배 속에서 풀려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뜻에 반기를 들고 저항하여

    자기 마음이 원하는 대로 자유를 누리기 위해 돈과 시간을 낭비했다가

    실컷 고통만 당하고 만신창이가 된 채 그 자리로 다시 돌아온 것입니다.

 

 3) 구원받은 자의 자유 : 하나님께로부터 구원받은 자가 누리는 영생의 자유

 

    요나서는 하나님의 선지자 요나는 하나님을 저항한 못된 자로 나오는 데 반하여,

    하나님의 뜻에 가장 멀리 있었던 배 안의 선원들과 니느웨 백성들이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하는 자로 나옵니다.

 

    그들이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할 때 선원들은 폭풍에서 구원을 받을 수 있었고,

    니느웨 백성들 또한 하나님의 심판의 재앙에서 구원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뜻에 저항하지 않고

    그 뜻에 순종하기 위하여 부르짖어 기도하는 자,

    그들에게 하나님의 은혜의 기쁨이 내려집니다.

    이런 자들이 바로 하나님의 참된 자유를 누릴 자들입니다.

 

묵상 : 내 안에서 요나의 자유와 하나님의 자유가 다투고 있습니다.

 

    지금 요나의 자유와 하나님의 자유가 다투고 있습니다.

    요나는 자기 마음대로 하려 하고 있고,

    하나님은 요나를 추격하여

    본래 있어야 할 그의 사명의 자리로 돌아가게 하려 하고 있습니다.

 

    만일 이 다툼에서 요나가 이기면 요나는 멸망하는 자가 되고,

    요나가 하나님 앞에 굴복하면 그는 구원받는 자유를 얻는 자가 됩니다.

 

    요나가 끝까지 자기의 자유를 고집을 부여야 할까요,

    아니면 하나님 앞에 굴복하는 자가 되어야 할까요?

    당신은 어떤 사람이 되기를 원하십니까?

 

 

결 론 : 신앙의 중심은 하나님입니다.

 

    요나는 하나님을 바라보지 않고 성전을 바라보았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도 없고,

    하나님께 순종하려는 마음도 없이 그저 절기를 지키기에만 바빴습니다.

 

    그러다 하나님께서 명령을 내리시자

    그 명령이 자기 생각과 다르다며 그 명령에 반대되는 행동을 했습니다.

    그러면서도 자기는 스스로 하나님의 거룩한 선지자라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요나서는

    선지자이며, 성경도 많이 알고 있고, 안식일과 모든 절기를 꼬박꼬박 지키며,

    십일조 등 예물도 잘 바치는 요나가 하나님께 버림받고,

 

    성경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던 선원들과 니느웨 백성들이

    하나님께 사랑을 받았다는 점을 기록하여

    참된 신앙이 무엇인지 우리에게 가르쳐줍니다.

 

    신앙의 중심은 하나님입니다.

    나를 지키시고 돌보시는 하나님을 신뢰하고 의지하는 믿음

    하나님을 향한 사랑,

    사랑하는 하나님과 날마다 교제하며 동행하는 일,

    그리고 그 사랑과 믿음으로 주께서 명하신 일을 기쁨으로 감당하는 봉사와 섬김,

    이것이 신앙입니다.

 

    이 건강하고 신실한 참된 믿음을 가진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

 

 

주님

 

하나님의 사역을 맡기를 싫어하는

요나와 같은 사람들이 되지 말고

즐거운 마음으로 기꺼이

주님의 사역에 참여하게 하옵소서.

 

절대 주권을 가지신 하나님 앞에

겸손하게 하시고

말씀에 굴복하게 하옵소서.

 

하나님의 일을 일으키는

성도와 교회가 되게 하옵소서.

 

세상 모든 만민이 구원받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하심을 따라

우리도 세상을 구원하는 일에

참여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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