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제목 : 아브라함을 부르신 하나님
설교본문 : 창세기 11:1~9, 27~12:9
설 교 자 : 송호영 목사
설 교 일 : 2023년 9월 17일
============================
우리는 지난주에 하나님께서 세상을 심판하셨던
노아 홍수에 대한 말씀을 살펴보았습니다.
노아의 홍수는 하나님께서 노아의 8식구를 제외한
이 땅의 모든 사람을 다 심판하신 일이었으므로
여러 가지 면에서 마지막 주께서 재림하여 오실 때의 예고편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오늘은 그 후에 하나님께서 세상을 구하기 위해 하신
특별한 일에 대한 말씀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하나님께서 노아 홍수로 세상을 심판하신 후
역사의 패러다임을 심판에서 구원으로 바꾸셔서
이 일을 담당할 자를 세우십니다.
그가 바로 아브라함입니다.
오늘은 홍수 이후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택하여 세우시기까지의 과정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제 1 부 : 노아 홍수 이후의 세상, 니므롯족과 에벨족
1. 고대 바벨론을 일으킨 특이한 사냥꾼인 니므롯
1) 강력한 제국을 일으킨 니므롯(10:8~9)
8. 구스는 또 니므롯을 낳았으니, 그는 세상에서 처음 나타난 영걸(용사)이라.
9. 그가 여호와 앞에 특이한 사낭꾼이 되었으므로 속담에 이르기를
“아무는 여호와께서 알아주시는 니므롯 같은 사냥꾼이로다” 하더라.
창세기 10장은 노아의 족보에 대한 기록입니다.
그런데 그 족보 중에 우리의 눈길을 끄는 것은 함의 후손인 ‘니므롯’입니다.
다른 사람은 그 이름만 간단히 기록하고 넘어가는데,
니므롯에 대하여는 그가 하나님 앞에 특이한 사냥꾼이라는 소개와 함께
그가 사냥한 나라와 종족들의 이름을 일곱 절이나 될 정도로 길게 나열합니다.
이것은 니므롯이 고대의 가장 강력한 제국이었던
고대 바벨론 제국을 일으킨 자이기 때문입니다.
2) 노아 홍수 이후에 세계적인 제국이 다시 나타났습니다.
노아 홍수 이전에 당시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나라를 세웠던 자는 라멕이었는데,
홍수 이후에 또다시 세계의 모든 나라들을 호령한
강력한 제국을 건설한 니므롯이 나타났습니다.
2. 셈의 후손 에벨족(10:21)
21. 셈은 에벨의 모든 자손의 조상이요 야벳의 형이라. 셈에게도 아들들이 태어났으니
홍수 이전에 가인의 후손 라멕과 상대되는 사람들로 셋의 후손들이 있었다면,
홍수 이후에 고대 바벨론 제국의 니므롯과 상대 되는 사람들은
셈의 후손은 ‘에벨’족입니다.
에벨족은 강력한 힘과 화려한 도시의 매력을 두루 갖춘
바벨론 제국의 니므롯과는 여러 가지 면에서 반대되는 종족입니다.
노아 홍수 이전에 셋의 후손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에벨족 역시 소박하게 하나님만 섬기며 살던 자들로
세상 사람들이 주목할 만한 것이 아무것도 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에벨족을 주목하셨습니다.
그들이 노아처럼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특히 에벨의 후손 중에 아브라함을 주목하며 보셨습니다.
3. 니므롯족과 에벨족 : 반복되는 역사의 두 축
1) 가인의 도성과 같은 죄의 도시를 이룩한 니므롯
악한 영들은 노아 홍수의 일로 세상 사람들이
부와 권력과 명예와 세상의 향락에 쉽게 넘어진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 이후로 악한 영들은 악에 속한 자들을 부추겨서
그들로 하여금 부와 권세와 세상 향락의 문화를 이루도록 하고,
그 죄의 향연으로 하나님의 백성들을 미혹합니다.
그래서 죄의 욕망을 가진 라멕이나 니므롯 같은 사람들을 부추겨서
죄악이 가득한 도시 문명을 만들게 했습니다.
2) 사탄은 니므롯을 통해 더욱 강력한 가인의 도성을 세웠습니다.
그래서 사탄은 니므롯을 통해 홍수 이전에 있었던 라멕의 도시보다
훨씬 더 강력한 힘을 가진 고대 바벨론 제국을 일으키게 합니다.
그 이후로 바벨론은 죄와 향락의 문화를 대표하는 대명사가 되었습니다.
요한계시록에서도 세상이 무너진다는 것을 바벨론이 무너진다고 표현합니다.
3) 니므롯족과 에벨족은 세계사의 두 세력을 대표합니다.
가인의 후손은 가인 ➠ 라멕 ➠ 니므롯으로 이어지고
아벨의 후손은 아벨 ➠ 셋 ➠ 에벨로 이어집니디.
니므롯족과 에벨족은 앞으로 전개될 세계사의 두 기둥이 될
두 세력, 두 사상을 대표합니다.
• 니므롯족은 부와 권력으로 세상에 자신을 드러내려는
육에 속한 세상, 악에 속한 세상을 대표하고,
• 에벨족은 하나님의 언약을 믿고 영원한 미래를 바라보며 사는
하나님의 백성들을 대표합니다.
니므롯족은 자신이 가진 힘으로 세상을 자기 마음대로 움직이려 하는 자들이고,
에벨족은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세상을 살아가는 자들입니다.
4) 역사는 이 두 세력 간의 각축전입니다.
역사는 니므롯과 에벨족, 이 두 세력 간의 각축전입니다.
이것은 가인과 아벨에서부터 주님 오시는 마지막 날까지 계속될 것입니다.
얼핏 보기에는 역사가
교만한 정복자인 니므롯의 바벨론 제국이 바라는 대로 흘러가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언제나 진실한 소수의 사람과 함께 하셨습니다.
5) 얼핏 보면 가인의 도성이 강력해 보이지만, 결국 하나님의 심판으로 멸망합니다.
홍수 이전에 라멕의 세력이 강력하였으나
하나님께서 그 세력을 120년에 제한을 두셨던 것처럼,
니므롯의 바벨론 제국도 바벨탑 사건으로 무너집니다.
이것은 우리 눈에 가인의 도성이 강력해 보이지만,
결국에는 멸망하고 말 죄의 도성입니다.
● 묵상 : 하나님께서는 소수의 하나님의 백성을 통해 역사를 이끌어가십니다.
역사 속에서는 언제나 죄의 도성이 더 강력해 보입니다.
그들이 역사를 주관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소수의 진실한 사람 에벨족 중에서 아브라함을 불러내셔서
그로 하여금 하나님의 복을 세상에 전하는 복의 근원이 되게 하십니다.
그리고 그 후손 중에 다윗을 두셨고,
결정적으로 그 후손 중에서 예수님이 나오게 하셨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인생을 살아갈 때에
어떤 가치관을 가지고 살아야 하느냐 하는 것을 생각하게 합니다.
많은 사람이 이 세상에 살아갈 때
남에게 과시할만한 것을 갖추고 살기를 원합니다.
많은 경우 그것은 부와 권세와 명예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영원한 미래를 소망하며 사는 자들을 주목하십니다.
당신의 인생의 꿈은 니므롯족이 꿈과 같은 것입니까?
에벨족과 같은 것입니까?
제 2 부 : 바벨탑
1. 고대 바벨론 제국의 도성 지구라트(Ziggurat)
노아의 홍수 이후에 이 땅에 사람이 많아지자
다시 노아 홍수 이전의 라멕이 세운 네피림족과 같은 거대 문명이 탄생합니다.
1) 홍수 이후에 다시 고대 바벨론 제국이 세워짐(11:1~2)
1. 온 땅의 구음이(언어가) 하나뿐이었으며, 모두가 같은 말을 썼더라.
2. 이에 사람들이 동쪽으로 옮기다가 시날 땅에서 평야를 만나 그곳에서 정착하고는
그때에는 온 세상에 하나의 언어만 있었으므로
모든 사람이 같은 말을 사용하였습니다.
그때 사람들이 동쪽으로 옮겨가다가 시날에 평야가 있는 것을 발견하고
그곳에 정착하며 큰 도시를 세웠습니다.
그 도시는 창세기 10장에서 이미 언급한 ‘니므롯의 바벨론 제국’입니다.
2) 건축 기술의 획기적인 변화 : 흙 대신에 벽돌을 사용함(3절)
3. 그들이 서로 말하되 “자, 우리가 벽돌을 만들어 견고히(단단히) 굽자”하고
돌 대신에 벽돌을 쓰고, 진흙 대신에 역청을 사용하고,
그때 그들은 돌 대신에 벽돌을 사용하고,
흙 대신에 역청을 사용한 새로운 건설 기법을 개발합니다.
이것은 당시 사회에 엄청난 변화를 가져오는 획기적인 발견이었습니다.
돌의 무게 때문에 높은 건물을 지을 수 없었는데
벽돌은 작아서 다루기도 쉬운데다가,
흙 대신에 역청을 사용하여 작은 벽돌을 서로 연결하여 돌처럼 단단하게 건물을 짓고,
뿐만 아니라 훨씬 높은 건물도 지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고대 바벨론의 이러한 건물을 ‘지구라트(Ziggurat)’라고 합니다.
지구라트는 오늘날에도 불가사의한 일이라고 할 정도로 놀라운 건축물이었습니다.
2. 바벨탑 : 무엇이 문제인가?
1) 바벨탑을 쌓는 동안 하나님께서 언어를 혼잡하게 하심(11:5~7)
5. 여호와께서 사람들이 쌓고 있는 성과 (도시와) 탑을 보시려고
강림하셨더라(내려오셨습니다).
6.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이들이 모두 한 족속이요
모두 한 언어로 말하고 있어서 이 같은 일을 시작하였으니
이후로는 그들이 경영하는 일을(그들이 하고자 하는 일을) 금지할 수 없으리로다.
7. 자, 우리가 내려가서 그들의 언어를 혼잡하게 하여
그들의 말을 서로 알아듣지 못하게 하자” 하시고,
그들은 이러한 획기적인 새로운 건축법을 이용하여
하늘에까지 닿게 하는 엄청난 탑을 짓기로 결정합니다.
그것이 바벨탑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바벨탑을 짓는 중에 하나님께서 내려오셔서 그것을 보시고
그들이 말을 하나로 사용하여 이런 일이 일어났다고 말씀하시고는
그들의 말을 혼잡하게 하여 서로 말을 알아듣지 못하게 하십니다.
그래서 그들이 세상에 흩어지게 되었고,
도성을 짓는 일과 바벨탑 건설은 중단이 되고 말았습니다.
2) 왜 바벨탑을 쌓지 못하게 하셨을까?
노아 홍수 이전의 라멕의 도시는 죄와 향락이 가득한 도시였습니다.
그러므로 노아의 홍수의 심판은 당연하고 마땅한 결과였습니다.
그러나 바벨탑은 단지 탑을 쌓는 일인데
이것이 왜 하나님의 심판의 대상이 되는지 잘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여기에는 하나님께서 대단히 싫어하시는 다음과 같은 죄가 담겨 있습니다.
1) 흩어짐을 면하자 : 서로 하나가 되기 위해 바벨탑을 쌓았습니다.
➀ 온 세상이 하나의 언어로 한마음으로 살아간다는 것이 왜 문제였을까(6절)
6.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이들이 모두 한 족속이요
모두 한 언어로 말하고 있어서 이 같은 일을 시작하였으니
이후로는 그들이 경영하는 일을(그들이 하고자 하는 일을) 금지할 수 없으리로다.
하나의 언어를 가지고 모두가 한마음으로 하나가 된 사람들,
이것은 우리가 모두 꿈꾸는 이상적인 사회의 모습입니다.
가정이 하나가 되고, 교회가 하나가 되고, 나라의 온 백성들이 한마음이 되는 것은
참으로 생각만 해도 기분이 좋은 아름다운 모습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이 아름다운 모습을 보시고
그들을 그냥 두어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하셨습니다.
그래서 언어를 혼잡하게 하여 기껏 하나가 된 사람들을 세상으로 흩으셨습니다.
➁ 무엇이 문제입니까? : 자기들만을 위한 하나였으므로
하나님께서는 자기들에게 있는 힘을 다른 사람들을 섬기는 데 쓰기를 원하십니다.
주변의 연약한 자들을 불쌍히 여기고, 그들을 돕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나 이 사람들은
오직 자기들 그룹 안에 있는 자들의 기쁨과 즐거움만을 생각했습니다.
그들도 사랑을 말하고, 섬김과 도움을 말하지만
어디까지나 자기들 그룹 안에 있는 사람들에게 한정된 것이었습니다.
가령 강남에 거주하는 사람들끼리, 같은 문중이나 같은 학벌의 사람들끼리~,
이렇게 그 그룹에 속한 사람들에게만 한정된 사랑과 섬김은
오히려 하나님의 심판이 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나눔 없는 혼자만의 독식은 탐욕으로 우상숭배와 같은 죄라는 것을 기억합시다.
2) 우리 이름을 내고 : 자기들의 이름을 내기 위해 바벨탑을 쌓았습니다(4절).
4. 그들이 또 말하기를, “자 우리가 우리를 위하여 성읍과 도시를 세우고,
그 안에 탑을 쌓아서 그 탑이 하늘까지 닿게 하여 우리의 이름을 내고,
온 땅에 흩어짐을 면하자(온 땅에 흩어지지 않게 하자).”
우리도 세상에 자기 이름을 전하고 알립니다만,
우리가 전하고 알리는 것들은 대부분 자기의 사업을 위한 것들입니다.
자기의 상호를 알리고, 자기의 직장을 알리는 정도입니다.
그런데 만일 어떤 사람이
자기가 하나님보다 더 위대한 힘과 능력을 가졌다고 자랑하고 다닌다면
이것은 차원이 다른 이야기입니다.
그것이 사람이 아니라 어느 집단이나 국가라 할지라도
자기들의 능력이 하나님보다 더 크다고 자랑하는 것은
분명 사람의 영역을 넘어서는 하나님을 향한 도전이 됩니다.
3) 그들은 바벨탑을 쌓아 그 탑이 하늘에 닿게 하자고 했습니다.
➡ 자기들의 힘으로 쫓겨난 낙원인 하나님 나라로 들어가려 했습니다(4절)
(4절 성경구절 위에)
고대 바벨론 제국을 세운 니므롯족은
자기들이 얼마나 위대하고 대단한 사람인지를 세상 사람들에게 알리기 위한
어떤 특별한 것을 만들기를 원했습니다.
그러다 생각한 것이 하늘에까지 닿는 탑을 만들자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에덴동산에서 내쫓으셨으니,
자기들의 힘으로 하늘의 낙원에 다시 들어가자는 것입니다.
3. 하나님의 심판 ➠ 소통의 불화 : 언어의 혼잡
➠ 노아 홍수에 이은 두 번째 심판 : 언어의 혼잡(11:7~8)
7. 자, 우리가 내려가서 그들의 언어를 혼잡하게 하여
그들의 말을 서로 알아듣지 못하게 하자” 하시고,
8. 여호와께서 그곳에서 그들을 온 땅에 흩으셨으므로
그들이 성을 쌓는 일을 그만두었더라.
하나님의 첫 번째 심판은 노아의 홍수였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는 다시는 사람으로 인하여 세상의 모든 생물을
함께 망하게 하지 않겠다고 노아에게 다짐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이번에는 다른 방법으로 세상 사람들을 심판하십니다.
언어를 다르게 하여 서로 간에 소통이 이루어지지 않게 하신 것입니다.
여기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죄의 결과는 소통의 불화’라는 것입니다.
오늘날 많은 가정이 깨어지고 있습니다.
교회에서도 소란한 소리들이 많이 들리고 있습니다.
사회적으로도 아픈 소리들이 많이 들리고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이 다 죄의 결과입니다.
제 3 부 : 죄악의 땅에서 아브람을 택하여 부르심(복이 되게 하려고)
1. 구원의 역사를 시작하신 하나님 : 벨렉의 집안을 주목하여 보심
1) 셈의 후손인 벨렉 족속(11:16~17)
16. 에벨은 34세에 벨렉을 낳았고
17. 벨렉을 낳은 후 430년을 더 살면서 자녀들을 낳았으며,
바벨이 ‘혼잡’이란 뜻이라면, ‘벨렉’은 ‘나눔’이란 뜻입니다.
니므롯족의 바벨론이 자기들만을 위해 흩어지기를 거부할 때,
셈의 후손인 벨렉의 족속은
하나님께서 주신 복을 나누며 사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모든 사람이 오직 자기의 욕망을 이루기 위해서 앞으로 달려갈 때,
셈의 후손 중에 에벨과 벨렉은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가장 귀한 가치로 여기고,
자기가 가진 것을 이웃과 나눌 줄 아는 소박한 삶을 살았습니다.
2) 소박하게 하나님만 섬기며 살았던 사람들
세상 사람들의 가치관으로 볼 때
에벨과 벨렉의 삶은 전혀 눈에 띄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이들을 가리켜 실패한 인생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들 눈에 띄는 삶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돈을 많이 번 것도 아니고, 큰 성을 쌓은 것도 아니고,
인기를 얻은 것도 아니니
세상의 눈으로 볼 때는 아무것도 이룬 것이 없어 보입니다.
● 묵상 : 그러나 하나님께서 이들을 주목하셨습니다.
세상이 어떻게 변하든 간에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는 그들의 삶을 하나님께서 주목하셨습니다.
그러다가 그들의 후손인 아브람을
하나님의 택한 백성으며 복의 근원으로 부르신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모두 나를 몰라준다고 할지라도
오직 하나님께서 우리를 주목하신다는 것을 기억합시다.
하나님께서 주목하여 보시면 역사가 일어납니다.
2. 하란 땅에서 머무르는 데라와 아브람
1) 갈대아 우르에서 아브람을 부르신 하나님(27~28절, 12:1)
27. 데라의 자손은 이러하니라.
데라는 아브람과 나홀과 하란을 낳았고, 하란은 롯을 낳았으며,
28. 하란은 자기가 태어난 갈대아 우르에서 그의 아버지 데라보다 먼저 죽었더라.
1.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네 고향과 네 친척과 네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갈대아 우르에서 몇 대를 걸쳐 살았던 아브람에게
어느 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본토 친척 아비집을 떠나 내게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창 12:1).
하나님께서 아브람을 좋은 땅, 좋은 곳 갈대아 우르에서
척박한 땅 가나안으로 불러내셨습니다.
왜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을 좋은 땅에서 더 살기 힘든 땅으로 불러내셨습니까?
갈대아 우르는 사람이 살기에는 좋은 땅이지만,
우상숭배가 가득하고 육신의 향락이 가득한 곳이기 때문입니다.
그곳은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도저히 제정신을 가지고 살 수 없는 곳입니다.
그래서 아브람을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으로 삼기 위해 거친 땅으로 불러내십니다.
2) 온전히 순종하지 못하고 중간에 하란에서 멈춘 아브람(11:31~32)
31. 데라는 자기의 아들인 아브람과, 하란에게서 난 그 손자 롯과,
아들 아브람의 아내이자 자기의 며느리인 사래를 데리고
함께 갈대아 우르를 떠나 가나안 땅으로 가고자 하더니,
그러나 그들은 (가나안 땅으로 가는 도중에) 하란 땅에 이르러서 거기에 머물렀으며,
32. 데라는 205세까지 살다가 하란 땅에서 죽었더라.
그런데 아브람은 처음에 말씀을 온전히 순종하지 못하고
아버지 데라와, 조카 롯을 함께 데리고 갑니다.
그 결과 하나님께서 명하신 가나안까지 가지 못하고
중간 지역인 하란 땅에서 머무르게 되었습니다.
아브람은 아버지 데라가 죽고 나서야 비로소 가나안으로 갈 수 있게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온전히 순종하지 못하여
아버지 데라가 죽을 때까지 신앙의 행진이 멈추어지게 된 것입니다.
● 묵상 :
하나님의 말씀에 온전히 순종하지 못하면 그만큼 하나님의 응답이 늦어집니다.
출애굽 할 때 본래 하나님의 계획은
호렙산에서 하나님께로부터 말씀을 받은 후 곧바로 가나안으로 들어가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온전히 믿지 못하고 불평과 원망을 하여
오던 길을 되돌아가 광야에서 40년을 지낸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께서 우리에게 말씀을 주실 때 순종하기를 기뻐하는 자가 됩시다.
하나님은 기쁨으로 순종하는 자에게 큰 복을 내리십니다.
3. 죄악의 땅 갈대아 우르인가, 신앙의 땅 가나안인가?
➠ 여기에서 나의 삶의 목적이 무엇인지를 스스로 자신에게 질문하여 봅시다.
내가 바라고 원하는 것이 죄악의 땅 갈대아 우르인지,
아니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땅 가나안인지를 질문하여 봅시다.
갈대아 우르는 세상 사람들이 원하는 것이 모두 있는 곳입니다.
멋진 곳, 젊음이 있는 곳입니다.
그러나 이기적인 욕망이 가득한 곳입니다.
반면에 가나안은 일부 옥토를 제외하고는 대부분이 사막 지역입니다.
그러나 그곳은 하나님과 사귈 수 있는 곳입니다.
아브람이 갈대아 우리에서 떠났다고 해서
우리가 모두 이 세상을 떠나 산속으로 들어가라는 말이 아닙니다.
이 세상 한복판에서 사람들과 함께 더불어 살더라도
우리의 가치관, 우리의 꿈은 하나님의 신령한 것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 묵상 :
무엇을 꿈꾸고 있습니까? 당신은 어떤 사람을 성공한 사람으로 여깁니까?
하나님께서도 그 생각에 동의하시는지 생각해봅시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사람이 되기에 힘쓰는 자가 되십시오.
4. 하나님의 역사의 패러다임의 변화(심판에서 구원으로)
1) 그동안 있었던 두 번의 심판 : 노아의 홍수, 바벨탑
아담과 하와가 범죄하여 죄가 사람들에게 들어온 후로
벌써 두 번이나 세상 만민을 향한 심판이 있었습니다.
한 번은 노아 홍수로 세상 사람들을 모두 멸망시키신 일이고,
또 한 번은 바벨탑 사건으로 인하여
언어를 혼잡하게 하여 사람들을 세상으로 흩으신 일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앞으로는 심판이 아니라
세상 사람들을 구하는 일을 하시기로 그 계획을 바꾸셨습니다.
2) 심판에서 구원으로의 변화 : 아브람을 택하심(12:1~3)
1.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네 고향과 네 친척과 네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2.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너에게 복을 주어서 네 이름을 창대하게(네가 크게 이름을 떨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 것이라(혹은, 복의 근원이 될 것이라).
3. 너를 축복하는 사람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사람에게는 내가 저주를 내릴 것이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니라” 하신지라.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에 사는 사람 중에서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을 선택하여
그에게 사람 구하는 일을 맡기기로 작정하셨습니다.
그리고 사람을 구하는 그 중요한 일을 맡을 자로 선택받은 자가 바로 아브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람을 선택하시기 위하여
노아의 아들 셈부터 주목하여 보셨습니다.
그리고 셈의 9대 후손인 아브람을 택하셔서
그를 세상에 하나님의 복을 전할 ‘복의 전달자’로 택하신 것입니다.
5. 신앙의 훈련을 위하여 : 네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라
1) 이 일을 위해 아브람이 먼저 복 있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2절)
(2절 성경구절 위에)
아브람이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을 세상에 전하는 ‘복의 전달자’가 되기 위해서는
그 자신이 먼저 ‘복이 있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본문에서는 아예 아브람이 ‘복이 되리라’라고 하여
‘복’ 그 자체가 될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2) 복 있는 자가 되려면 ➠ 그보다 먼저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이 되어야 합니다.
아브람이 복이 되려면
먼저 아브람이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이 되어야만 합니다.
그런데 아브람의 고향 갈대아 우르는
하나님의 백성이 살기에는 여러 가지로 부적절한 곳이었습니다.
갈대아 우르는 당시 고대 수메르 문화의 중심지였던 곳으로,
사치와 향락과 우상숭배가 가득한 죄의 중심지였습니다.
그 속에서 아브람 역시 얼마간 죄의 문화 속에 살고 있었으므로
아브람이 세상 사람들에게 복을 전하는 복이 되려면
그 죄의 소굴인 갈대아 우르에서 나와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으로 훈련받을 다른 곳으로 가야만 했습니다.
3) 그러므로 먼저 그를 거룩한 백성으로 훈련시킬 곳으로 옮기십니다 :
네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게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1절)
(1절 성경구절 위에)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아브람에게
그를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으로 훈련시키기 위하여
“네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라”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그가 갈대아 우르에서 살 때에 처음 말씀하셨지만,
아브람은 그 말씀을 온전히 순종하지 못하고
아버지 데라와 조카 롯과 함께 떠났습니다.
그래서 아버지 데라가 죽을 때까지
갈대아 우르와 가나안 땅의 중간 지역인 하란 땅에 머무릅니다(창 11:31~32).
그러다 아브람의 아버지 데라가 죽자 하나님께서 다시 아브람에게 말씀하십니다.
“네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게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 가인, 라멕, 니므롯족의 화려한 도성에서
셋, 노아, 에벨족의 소박한 땅으로 다시 인도하신 하나님
아브람이 살던 갈대아 우르는 고대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중심도시입니다.
당시 세상에서 가장 화려하고 살기 좋은 도시 갈대아 우리는
가인과 라멕과 니므롯족을 이어받은 죄악의 도성입니다.
그곳이 아무리 화려하고 살기 좋더라도 하나님을 섬길만한 곳은 아닙니다.
그러므로 아브람을 하나님께서 그 화려한 도성 갈대아 우르에서
다시 이전에 셋과 노아와 에벨족이 살았던 소박한 땅으로 인도하십니다.
오직 하나님만을 바라보며 사는 것이 가장 복되고 좋은 삶이기 때문입니다.
세상에서 아무리 좋은 것이라 해도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과는 비교도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더 좋은 것을 주시기 위해 아브람을
잠시 고난의 자리인 가나안의 남부 네게브 지방으로 인도하십니다.
4) 이것은 우리도 아브람처럼 산속으로 들어가라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우리도 신앙을 위해서는
부모 형제를 모두 떠나야 한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아브람의 경우 특별한 사명이 있었고,
또 당시 갈대아 우르에서는 그 사명을 감당하기 어려웠으므로
그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로부터 떠나라 하신 것이지만,
우리는 이미 그 신앙의 자리에서 살고 있으므로
부모 형제를 떠날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아브람이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났다는 것은
하나님을 섬기지 못하게 하는 일들,
세상에 얽매어 있는 것들로부터 벗어나야 한다는 것으로 적용할 수 있습니다.
● 묵상 : 하나님을 섬기지 못하게 방해하는 것으로부터 벗어나십시오.
그것이 돈이든, 혹은 사랑하는 친구들이든,
혹은 내가 벗지 못하고 있는 죄의 습관들이든 간에
하나님을 섬기지 못하게 방해하는 것들로부터 벗어나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결국 내가 벗지 못한 그 멍에로 인하여
구원에 이르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결 론 : 말씀을 따라갔다 : 명하신 대로 행하였다
아브람 역시 갈대아 우르에서 태어나 그 곳에서 살면서
자연스럽게 그 시대의 죄의 문화에 젖어 살았습니다.
겉으로 나타난 모습으로만 본다면
아브람이나 다른 사람들이나 별로 차이가 나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다른 점이 있습니다.
어느 날 하나님께서 그에게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라 하셨을 때
그는 즉시 그 말씀대로 행하였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아브람은 말씀에 순종하기 위하여 위험을 감수해야만 했습니다.
아브람은 그에게 위험한 일이 있음을 알고도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했습니다.
아브람이 말씀에 순종하기 위하여 감수해야만 했던 위험한 일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아브람은 말씀에 순종하기 위해 목숨을 걸었습니다.
당시 친척들이 살고 있는 고향을 떠나는 것은 목숨을 내놓는 것과 같습니다.
오늘날처럼 치안이 잘 지켜지는 때가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친척들이 사는 곳에 함께 있어야 서로서로 도와 생명을 지킬 수 있었는데,
친척들을 떠나 먼 타국에서 혼자서 살아가야 한다는 것은
언제 죽을지 모를 위험천만한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아브람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만 듣고 즉시 그 말씀에 순종합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그를 지켜주시리라는 약속 한마디만 믿고
그 말씀에 순종하기 위해 자기의 목숨을 겁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믿음의 사람 아브라함이
처음 아브람이란 이름을 가졌을 때부터 그가 믿음의 사람이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2) 아브람은 말씀에 순종하기 위해 그의 인생의 꿈을 버려야만 했습니다.
갈대아 우르에 있을 때 아브람이 가졌던 인생의 꿈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곳에서 그는 크게 이름을 떨칠만한 원대한 꿈을 가지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모든 꿈을 다 버리고 떠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명하신 가나안 땅은 대부분이 척박한 사막 지역으로
그곳에서는 도저히 자신의 이름을 낼 만한 일을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아브람은 하나님께서 가나안으로 가라고 명하시는 그 명령만 듣고
그가 젊은 시절 가졌던 모든 꿈을 버리고 그곳으로 떠납니다.
3) 아브람은 말씀에 순종하기 위해
좋은 땅을 버리고 척박한 땅으로 이주해야만 했습니다.
갈대아 우르는 관계시설까지 완비된 곳이므로
몇 년간 비가 오지 않아도 농사를 지을 수 있는 곳입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이 정착한 가나안 땅의 남부 지역인 네게브 사막은
말 그대로 사막이니 비가 오지 않으면 전혀 농사를 지을 수 없는 땅입니다.
나쁜 땅에서 좋은 땅으로 이주하는 경우는 있으나,
좋은 땅에서 나쁜 땅으로 이주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아브람은 하나님께서 원하시니 아무것도 따지지 않고 순종하였습니다.
4) 마침내 들어갔다(5절)
5. 아브람은 아내 사래와 조카 롯과, 그들이 하란에서 모든 재산과,
그들이 하란에서 얻은 사람들을 데리고 가나안 땅을 향하여 떠나서
마침내 가나안 땅에 들어갔더라.
아브람이 마침내 가나안 땅에 들어갔습니다.
위에 언급한 많은 위험 요소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브람은 마침내 하나님께서 명하신 곳에 도착하였습니다.
마침내 하나님의 명령대로 순종한 것입니다.
우리도 하나님께서 내게 명하신 일들이 마침내 이루어질 때
하나님께서 나를 위해 준비하신 복들이 나에게 임하게 될 것입니다.
● 묵상 : 그러나 이제부터 훈련이 시작된 것입니다.
➠ 가나안에 도착한 순간부터 신앙의 훈련은 시작되었습니다.
하지만 가나안 땅에 도착했다고 해서 모든 것이 끝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람을 척박한 땅 가나안으로 불러들인 것은
그를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으로 훈련시키기 위해서입니다.
아브람은 그 땅에서 비가 오지 않을 때에도 하나님을 믿을 수 있는지,
그의 아내가 임신이 불가능한 여자인데도
그 아내를 통해서 수많은 자손을 주시리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을 수 있는지를 훈련받게 될 것입니다.
마치 우리가 세례를 받은 후 그때부터 본격적인 신앙의 훈련이 시작되는 것처럼,
가나안 땅은 하나님을 믿기는 하지만
아직은 갈대아 우르에서의 죄의 습관을 완전히 벗지 못한 아브람이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으로 변화되는 신앙의 훈련장입니다.
주님
하나님 없는 화려한 꿈을 꾼
니므롯족과 같은 사람들이 되지 말고,
소박하지만 하나님을 섬기는
에벨족과 같은 사람들이 되게 하옵소서.
인생의 즐거움만을 위해 살지 말게 하시고
영원한 미래를 소망하며 사는 자들이 되게 하옵소서.
우리도 아브람처럼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자들이 되게 하옵소서.
우리도 아브람처럼
말씀에 순종하기 위해 치러야 할 대가를
기쁘게 감당하게 하옵소서.
우리도 아브람처럼 신앙의 훈련장을 떠나지 말게 하옵소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자가 되기에
힘쓰는 자가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