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제목 : 무엇을 간절히 원하고, 무엇을 간절히 갈망하는가
설교본문 : 마가복음 4:1~20
설 교 자 : 송호영 목사
설 교 일 : 2023년 9월 2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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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론 :
1) 믿음이란 : 시간과 가치관과 최종 결단으로 입증됩니다.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롬 1:17)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모든 죄를 사함받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그 의를 인정받아 영원한 영광의 나라에 들어갑니다.
그러면 믿음이란 무엇입니까?
단순히 그 내용을 지식으로 알고 있는 것이 믿음은 아닙니다.
믿음은 ➀ 시간과 ➁ 가치관과 ➂ 최종 결단으로 입증됩니다.
믿기 때문에 지금 주어진 시간을 그 믿음에 합당하게 사용하고,
믿기 때문에 내가 세상과 다른 그 가치관으로 살아갑니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그 믿음에 합당한 결정을 합니다.
마음으로 믿어 입으로 시인하고 선책과 행동으로 나타날 때
비로소 그의 믿음이 거짓이 아닌 참 믿음이라는 것이 밝혀집니다.
네게 주어진 시간을 어떻게 사용하느냐로 주께서 내가 믿음이 합당한 것인지를 판단하시고,
내가 어떤 가치관을 가지고 사느냐로 주께서 내 믿음을 판단하십니다.
그리고 내가 최종적으로 결정한 그 일로 나를 주님의 백성이냐 마귀의 자식이냐를 판결되는 것입니다.
2) 삶의 과정에서 계속 다가오는 양자택일의 순간들 : 그 선택으로 믿음을 입증하십시오.
이번 주부터 다음 주까지 6일간의 추석 연휴가 있습니다.
이 시간을 어떻게 사용할까,
또 매달 내 손에 들어오는 돈을 어떻게 사용할까,
매 순간 내 앞에 선택해야만 하는 일이 다가올 때
나는 어떤 가치관과 기준으로 선택할까,
이것이 믿음입니다.
이런 선택의 과정 없이 단순히 예배를 드리는 것만으로 주님의 백성이 되는 일은 결단코 없습니다.
3) 창세기 11장까지에 나온 선택의 결과들
우리는 최근 창세기 11장까지에서
아담과 하와의 범죄, 가인과 아벨, 노아 홍수, 바벨탑의 일들을 살펴보았습니다.
그리고 세상을 심판만 하시던 하나님께서 세상 사람을 구원하기로 역사의 방향을 바꾸시고,
그 일을 맡을 자로 아브라함을 택하셨다는 것을 살펴보았습니다.
여기에서 한 가지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노아 홍수 때 하나님께서 의인으로 인정하신 자가 노아 한 사람뿐이었다는 것,
그리고 아브라함 때에 이 세상 사람 중에
하나님께 택함 받은 자가 아브라함 한 사람뿐이었다는 점입니다.
이것은 사람이 얼마가 되든 간에
하나님께서 정하신 기준에 맞는 자만 그의 백성으로 인정하신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마지막 때에도 그때처럼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 그 사람만 구원받을 것입니다.
➠ 그러면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은 누구입니까?
마지막 때 하나님의 마음에 합하여 구원받게 될 자는 누구입니까?
오늘 마가복음 4장의 씨 뿌리는 자의 비유를 통해 그것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제 1 부 : 씨 뿌리는 자의 비유
1. 길가에 뿌려진 씨와 같은 사람들(3~4, 14~15절)
3. “들으라. 씨를 뿌리는 자가 뿌리러 나가서
4. 씨를 뿌리는데, 더러는 길가에 떨어지매 새들이 와서 먹어 버렸고,
14. 씨뿌리는 자는 말씀을 뿌리는 것이라.
15. 말씀이 길가에 뿌려졌다는 것은 이런 사람을 두고 하는 말이니,
곧 말씀을 들었을 때에 사탄이 즉시 와서 그 뿌려진 말씀을 빼앗아 가는 것이요,
첫째는 길가에 뿌려진 씨로,
구원받지 못할 자를 의미합니다.
우리나라는 먼저 밭을 갈고 난 후에 씨를 뿌립니다만,
과거 팔레스틴에서는 먼저 씨를 뿌린 후에 밭을 갈아서
길가와 돌밭과 가시덤불에 뿌려진 씨도 나옵니다.
예수께서는 팔레스틴의 이러한 씨뿌리는 방식으로
말씀을 듣는 자세에 따라 사람들을 구분하셨습니다.
주께서 제일 먼저 말씀하신
길가에 뿌려진 씨와 같은 사람은 다음과 같은 사람입니다.
1) 말씀에 아무런 관심도 반응도 없는 사람
길가에 뿌려진 씨와 같은 자들은 말씀을 들을 때
전혀 반응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말씀에 대하여 아무런 감각이 없습니다.
십자가의 은혜의 말씀을 들어도 감동이 없고,
하나님의 심판에 대한 말씀을 들어도 두려움이 없으며,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길에 대한 말씀을 선포해도 아무런 관심이 없습니다.
장차 자기가 당할 일임에도 남의 일 보듯 하는 자들입니다.
이렇게 말씀을 들을 때 무감각, 무관심한 자들은
곧 사탄이 그 말씀을 빼앗아 가서
아무리 말씀을 들어도 믿음을 갖지 못하는 자가 됩니다.
2) 세상 지식과 하나님의 말씀과의 차이 ➠ 생명의 차이
세상의 다른 지식은 열심히 듣지 않아도 내 머릿속에 일정 부분 남아 있습니다.
아무리 공부를 못해도 셈할 줄 알고, 글 읽을 줄 압니다.
열심히 공부하지 않은 자라도 일상생활 하는 데는 지장이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생명처럼 살아 있는 말씀이라
우리 마음에 제대로 심어지지 않으면 자라지 못합니다.
마치 씨를 선반 위에 올려놓기만 하면
100년이 지나도 그 씨에서 싹이 트지도 않고 씨 그대로 있는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영적인 지식이라 열심히 듣지 않으면 사탄이 빼앗아 가서
그가 들은 말씀이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믿음으로 자라게 하지 못합니다.
아브라함이 어떻다든지, 바울이 어떻다든지 정도의 지식이 머리에 남아 있더라도
아브라함처럼 하나님을 믿고 신뢰하는 믿음으로 자라지 못하고,
바울처럼 온몸을 바쳐 주께 충성하는 자가 되지 못합니다.
마귀가 그의 마음에 믿음이 자라지 못하도록 말씀을 빼앗아 가 버려서
마치 씨가 선반 위에 그대로 있는 것처럼
말씀이 내 마음에 깊이 심어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2. 돌밭에 뿌려진 씨 : 말씀을 들을 때는 기쁨으로 받지만…(5~6, 16~17절)
5. 더러는 흙이 얕은 돌밭에 떨어지매 흙이 깊지 않으므로 싹이 곧 나왔지만
6. 해가 뜨자 타져서 뿌리가 없으므로 말라 버렸고,
16. 또 이와 마찬가지로 말씀이 돌밭에 뿌려졌다는 것은 이런 사람을 두고 하는 말이니
그들은 말씀을 들을 때에 즉시 기뻐하며 받아들이지만
17. 그들 속에 뿌리가 없어(신앙이, 말씀이 뿌리내리지 못하여)
잠깐 견디다가 오래가지 못하고,
말씀으로 인하여 환난이나 박해가 일어나면 곧 넘어지는 자들이요.
둘째는 돌밭에 뿌려진 씨로,
신앙생활의 기쁨은 있으나
구원의 열매는 없는 자를 의미합니다.
돌밭에 뿌려진 씨는 돌 위에 있는 얇은 흙에 씨가 뿌려진 것을 말합니다.
씨에서 싹이 터서 뿌리가 나오기는 했지만
흙이 얇아 뿌리가 깊지 않으니 낮의 뜨거운 햇볕에 금방 말라 죽게 됩니다.
1) 자기만족과 자기를 기쁘게 하기 위해서 신앙생활을 하는 자들
돌밭에 뿌려진 씨와 같은 자는 말씀을 들을 때는 기뻐하며 받지만,
그 말씀으로 인하여 환난이나 박해가 일어나면
곧 믿음에서 떠나는 자들을 가리킵니다.
여기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것은
그가 말씀을 들을 때는 기쁨으로 받는다는 것입니다.
자기를 기쁘게 하기 위해 말씀을 듣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기 위해 신앙생활을 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를 기쁘게 하기 위해 신앙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이런 자들은 자기가 듣고 싶은 말이 있었는데
마침 설교에서 그 말씀을 전하니 기쁨으로 받습니다.
“어쩜, 내가 듣고 싶은 말씀만 저렇게 말씀하실까!”
자기 마음의 답답하고 가려운 곳을 건드려 주니 말씀을 들을 때
답답한 가슴이 뻥 뚫리는 시원함을 느낍니다만, 그저 그뿐입니다.
2) 그 속에 뿌리가 없어 환난이나 박해를 견디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는 신령한 하늘의 생명이 담겨있습니다.
그 말씀을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으로 여기고 순종하려는 간절함으로
말씀을 듣는 자들에게는 그 말씀에 담긴 생명이 그 안에 심어져서 자라게 됩니다.
그런데 말씀을 들을 때 자기가 좋아하는 말씀만 들으려 하였으니
그 말씀에 담긴 생명이 심어지지 못합니다. 그래서 그 마음에 생명의 뿌리가 없습니다.
이런 사람은 처음부터 자기 기쁨이 중요하기 때문에
신앙으로 인하여 박해가 오거나 갈등이 생겨서 기쁨이 사라지면 언제든 주님 품을 떠날 사람들입니다.
그 안에 주님을 향한 믿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3. 가시덤불에 뿌려진 씨와 같은 사람들(7, 18~19절)
7. 더러는 가시떨기(가시덤불)에 떨어지매
가시가 무성하게 자라 그 기운을 막으므로 열매를 맺지 못하였고,
18. 또 어떤 이는 말씀이 가시떨기(가시덤불)에 떨어진 것과 같아서
이들은 말씀을 듣기는 하지만
19. 세상의 염려와 재물의 유혹과 기타 여러 욕심(유혹)이 들어와
말씀을 막아 결실하지 못하게 되는 자요,
셋째는 가시덤불에 떨어진 씨로,
세상의 염려와 걱정에 막혀 구원받을 만한 믿음을 얻지 못한 자를 의미합니다.
가시덤불에 떨어진 씨는 뿌리도 내리고 싹과 잎과 줄기도 나왔습니다.
그러나 가시덤불이 햇볕을 막아 열매를 맺지 못합니다.
이처럼 가시덤불에 떨어진 씨와 같은 자들은
신앙의 기초도 있고, 믿음의 고백도 있으며,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도 다 아는 자들입니다.
그러나 세상의 염려와 재물의 유혹과 기타 여러 욕심(유혹)이 들어와
말씀을 막아 결실하지 못하게 되는 자입니다.
➠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지 못하는 자들 : 염려와 근심에 막힌 자들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지 못하는 자들은
말씀을 들어 신앙의 기초는 알지만
염려될 만한 일이 생기면 어김없이 염려와 근심에 사로잡히는 자들입니다.
돈 문제, 건강 문제, 직장 문제, 집 문제들이 생기면
그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는 기도도 안 되고, 예배도 찬양도 안 됩니다.
그것이 해결되면 그제야 한숨을 쉬면서
겨우 다시 신앙생활을 할 수 있는 상태가 됩니다.
이런 자들은 이미 염려와 걱정이 약점이라는 것을 사탄에게 노출되었으므로,
사탄은 그의 앞에 염려 거리들을 계속 만들 것입니다.
그러나 그가 염려한 일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저 내 앞에 어떤 재앙이 닥칠 것만 같은 두려움이 있을 뿐입니다.
그 두려움보다 하나님이 더 크신 분이라는 것을 믿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런 자들은
결단코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믿음에까지 이르지 못합니다.
● 묵상 :
➀ 돌밭과 가시덤불에 떨어진 씨는 주님의 백성이 아닙니다.
돌밭에 떨어진 씨나 가시덤불에 떨어진 씨와 같은 자들은
단지 믿음이 연약한 자들이 아닙니다.
외인에 속한 자들입니다.
하나님의 백성 밖에 있는 자들입니다.
여기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율법의 말씀을 얼마나 잘 지키느냐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나라를 어떻게 여기고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를 얼마나 존귀한 것으로 여기는가,
얼마나 소중히 여기고 갈망하고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➁ 하나님 사랑하기를 구하고,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들으십시오.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고 있더라도
하나님 나라를 세상 그 어떤 것보다도 소중한 것으로 여기고 있지 않는다면,
말라기가 경고했듯
그 모든 신앙의 행위들은 형식적이고 외식적인 신앙생활에 불과합니다.
마음은 딴 곳에 두고 몸만 예배의 자리에 있는 이런 자들을
예수께서 가장 싫어하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사랑하는 마음 주시기를 구하고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들으십시오.
제 2 부 : 누구든지 있는 자는 더 받을 것이요 ➠ 간절함과 갈망
1. 좋은 땅에 뿌려진 씨와 같은 사람들(8, 20절)
8. 더러는 좋은 땅에 떨어지매 싹이 나고 잘 자라서(무성하여) 열매를 맺었으니
30배, 60배, 100배가 되었느니라” 하시고
20. 좋은 땅(옥토)에 뿌려졌다는 것은 이런 사람을 두고 하는 말이니
그들은 말씀을 듣고 잘 받아들여 30배, 60배, 100배의 결실을 맺는 자이니라.
넷째는 좋은 땅에 뿌려진 씨로,
말씀을 듣고 그 말씀을 마음에 새겨 구원에 이르는 자들을 가리킵니다.
1) 좋은 땅에 뿌려진 씨에 속한 자들은 듣기에 불편한 말씀도 받아들입니다.
좋은 땅에 뿌려진 씨와 같은 사람들은
말씀을 기쁨으로 듣고 그 말씀을 마음에 새기는 사람들입니다.
자기가 듣기에 불편한 말씀을 들어도 그 말씀에 순종하려 힘쓰는 자들입니다.
➀ 나의 죄를 지적하는 말씀을 들을 때
내가 잘못을 범하고 있는 부분에 대한 말씀을 들을 때
불편한 감정을 갖게 됩니다.
위에 언급한 사람들은 이런 때 그 말씀을 거부합니다.
신앙생활의 목적이 자기를 즐겁게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좋은 땅에 속한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는 것이 목적이니
이런 불편한 말씀도 마음에 받아들입니다.
그리고 그 말씀대로 살지 못한 자신을 고백하고,
그 말씀대로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줄 것을 청하는 기도를 드립니다.
➁ 내가 유혹받고 있는 부분에 대한 말씀을 들을 때
아직 세상의 유혹을 완전히 벗지 못한 부분에 대한 말씀을 들을 때에도
마음이 불편합니다.
역시 위에 언급한 자들은 이 말씀도 거부합니다.
그러나 좋은 땅에 속한 자들은 이 말씀도 받아들입니다.
자기가 아직 연약하여 이 부분에서 여전히 유혹을 받고 있으니,
혹시 이런 부분에 유혹이 올 때 넘어지지 않게 해 달라고 주께 도움을 청합니다.
이런 자들은 지금은 연약할지라도 점차로 강한 믿음을 가진 자들이 됩니다.
➂ 내가 욕심을 품고 있는 부분에 대한 말씀을 들을 때
돈 욕심, 집이나 차나 직장이나 학교나 인기에 대한 욕심이 떠나지 않아
걱정인 사람들이 그 부분에 대한 말씀을 들을 때
역시 위에 언급한 자들은 듣지 않습니다.
그러나 좋은 땅에 속한 자들은 그 말씀을 듣습니다.
그리고 이런 부분에 욕심이 자기 마음에서 잘 떠나지 않으니,
그 욕심을 버리게 해 줄 것을 기도합니다.
이런 기도가 주께서 기뻐하시는 기도입니다.
➃ 내가 해야 할 사명에 대한 말씀을 들을 때
위에 언급한 사람들은 신앙생활의 목적이 자기감정에 있으므로
헌신이나 사명에 대한 말씀 듣기를 싫어합니다.
그저 복이 되는 말씀만 듣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좋은 땅에 속한 자들은
주께서 명하시는 사명에 대한 말씀을 들을 때 오히려 더 귀 기울여 듣습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면
그에게 하나님의 영광이 임하게 된다는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당장의 이익보다는 지금 불편하고 힘들더라도
먼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는 자가 되려 힘쓰는 것입니다.
2) 좋은 땅에 뿌려진 씨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기 위해 힘쓰는 자들입니다.
무엇보다도 좋은 땅에 뿌린 씨와 같은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기 위해 힘쓴다는 점입니다.
찬송을 부르거나 기도를 하거나 예배를 드릴 때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기 위해 온 힘을 다합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기 위해 말씀을 듣습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려면
내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깨닫고 배우기를 소원합니다.
그러다 알게 되면 그 일에 충성을 다합니다.
그리고 말씀대로 살지 못할 때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지 못해 아쉽고 슬픕니다.
이런 자가 좋은 땅에 뿌려진 씨와 같은 자들입니다.
4) 하나님을 향한 간절한 열망
결국 말씀을 듣는 태도에 따라 구분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어떤 태도를 말하는 것입니까?
몸의 자세가 아니라 마음의 태도입니다.
간절함으로 말씀을 듣고, 그 말씀대로 살려는 간절한 열망을 가진 자입니다.
수가성 우물가의 여자, 현장에서 간음하다 잡힌 여자, 세리와 창기들,
이들은 모두 하나님 나라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죄인들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 마음에 하나님을 향한 간절한 열망이 있음을 주께서 보시고
주께서 친히 그들을 찾으셨고, 그들을 주님의 백성으로 받아들이셨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간절한 열망을 잃지 않게 하십시오.
5) 30배, 60배, 100배의 결실(8, 20절)
(8, 20절 성경구절 위에)
오직 주님만을 사랑하려 힘쓰는 자들,
주께서 주려 하시는 하나님 나라의 복을 세상의 그 어떤 것보다도 소중히 여기고
그 말씀을 듣고 그 말씀을 마음에 새기는 사람들,
그 말씀이 내 안에서 능력으로 나타나기를 간절히 열망하는 자들은
30배, 60배, 100배의 결실을 맺습니다.
집이 30배로 늘어난다는 말이 아닙니다.
교회가 60배, 100배로 부흥한다는 말이 아닙니다.
하나님께로부터 그 믿음을 인정받아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이 된다는 뜻입니다.
● 묵상 :
말씀을 듣고 그 말씀에 따라 내가 어떻게 행동하고 있는지 자신을 살펴보십시오.
말씀을 듣기만 하는 자인지,
말씀을 듣고 그 말씀에 따라 살려 힘쓰는 자인지 나는 누구인지,
이 중에 나는 어디에 속하는 자인지 살펴보십시오.
2. 헤아림의 비유 : 누구든지 있는 자는 더 받을 것이요(24~25절)
1) 헤아리는 자는 그가 헤아리는 만큼 다시 헤아림을 받을 것이요
24. 예수께서 또 가라사대
“너희는 무엇을 듣는가 스스로 삼가라(내 말을 잘 새겨들어라).
너희가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 것이요 또 더 받으리니,
25. 누구든지 있는 자는 더 받을 것이요, 없는 자는 그 있는 것까지도 빼앗기리라.”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도로 헤아림을 받는다는 말을
마태복음 7:2에서는 우리가 다른 사람을 어떻게 대하는지에 따라서
주께서도 그 잣대로 우리를 대할 것이라고 해석합니다.
그러나 마가복음의 본문은
우리가 천국을 어떻게 헤아리느냐의 말씀으로 증거합니다.
2) 이 말씀은 하나님 나라를 어떻게 대하느냐에 대한 말씀입니다.
본문 24~25의 말씀은 우리가 하나님 나라를 어떻게 대하고 있는지,
하나님 나라를 가볍게 여기는지 그 어떤 것보다도 존귀하게 여기고 있는지,
우리가 하나님 나라를 헤아리는 그 헤아림에 따라
하나님께서도 우리를 헤아리시겠다는 뜻입니다.
하나님 나라에 대한 간절한 열망이 있는 자들에게는
하나님 나라에 대한 말씀을 더욱 주시겠지만,
하나님 나라에 대한 열망이 없는 자들에게는
그나마 있는 말씀까지 빼앗아 버리시겠다는 것입니다.
● 묵상 : 무엇보다도 하나님 나라를 갈망하는 자가 되십시오.
만일 당신이 지옥에 간다면 죄를 많이 지었기 때문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간절하게 소원하지도 열망하지도 않았기 때문입니다.
신앙생활을 열심히 했더라도 지옥에 갈 수 있습니다.
교회 봉사도 하고 열심히 신앙생활 했더라도
그 마음에 하나님을 향한 사랑도, 하나님 나라에 대한 간절한 열망도 없다면
말라기의 신앙의 허무주의와 같은 죄를 범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금 이 시간, 이 자리에서
내가 하나님 나라를 어떻게 생각하고 어떻게 헤아리고 있느냐 하는 것이
곧 내가 나를 스스로 심판하는 것과 같은 것임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를 돈벌이나 직장, 학교생활보다 못한 것으로 여기는 자는
그 스스로 자기 영을 파멸로 이끄는 것과 같은 것이고,
하나님 나라를 자기 목숨보다 소중히 여기고 주께 갈망하는 자는
주의 은혜 속에 머물러 있는 자가 되므로 이미 하나님의 백성이 된 것과 같은 것입니다.
제 3 부 : 생명의 원리 :
1. 스스로 자라는 씨의 비유(26~29절)
26. 예수께서 또 가라사대
“하나님의 나라는 사람이 땅에 씨를 뿌리는 것과 같으니,
27. 그가 밤낮 자고 깨고 하는 사이에 그 씨에서 싹이 나고 자라되
그 사람은 그 씨가 어떻게 해서 그리되는지 알지 못하느니라.
28. 땅이 스스로 열매를 맺게 하되, 처음에는 싹이요, 그다음에는 이삭이요,
그다음에는 충실한 알곡이 맺히느니라.
29. 그리고 열매가 익으면 곧 낫을 대나니, 이는 추수 때가 이르렀음이니라.”
1) 스스로 자라서 스스로 열매를 맺는 씨의 비유(27절)
예수께서 또 말씀하셨습니다.
농부가 씨를 뿌렸는데 밤낮 자고 깨고 하는 사이에
씨가 스스로 자라서 열매를 맺었다고 말씀하십니다.
농부는 씨를 뿌리고 잡초를 뽑았을 뿐입니다.
그런데 씨가 저 혼자 자라서 열매를 맺습니다.
농부는 그 씨가 언제 어떻게 자라서 열매까지 맺었는지 모릅니다.
이 모든 일을 그 씨 안에 있는 생명으로 된 것입니다.
그 생명이 스스로 자라서 싹이 나고 잎이 나서 열매까지 맺게 하였습니다.
2) 여기에서 땅은 사람의 마음이고, 씨는 하나님 나라에 대한 복음의 말씀입니다.
씨를 땅에 뿌린 것은 말씀이 사람에게 선포된 것입니다.
농부는 그저 씨를 뿌리기만 했습니다. 그러자 땅이 스스로 그 씨를 자라게 했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말씀을 전하기만 하면
그 말씀에 능력이 있어서 말씀이 스스로 그 사람의 마음에서 자라
그로 하여금 하나님의 신실한 백성이 되도록 인도하는 것입니다.
3) 일을 하시는 이는 우리가 아니라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는 다만 전하기만 하는 것
그러므로 말씀을 전하기 힘들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내가 저 사람을 하나님의 백성이 되도록 내가 설득해야겠다고 다짐하지도 마십시오.
우리는 그저 말씀을 전하기만 하면 됩니다.
그러면 그 말씀이 그를 변화시킵니다.
내가 설득하려 하면 때로 말씀의 범위를 벗어난 말도 하게 됩니다.
우리의 사명은 그에게 말씀을 전하는 것까지 만입니다.
그다음은 성령께서 하십니다.
● 묵상 :
바울도 아테네에서 자기 실력으로 사람을 설득하여
예수님을 믿게 하려다 실패했습니다.
그러나 고린도에서는 자기 실력으로 하지 않고
오직 성령의 능력을 믿으며 복음을 전하기만 하자
오히려 더욱 놀라운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그러므로 오직 성령의 능력을 믿고
복음의 말씀을 있는 그대로 전하기만 하십시오.
2. 지극히 작은 것이라도 : 겨자씨 비유
1) 비유의 핵심 : 지극히 작은 것과 지극히 큰 것과의 비유(30~32절)
30. 예수께서 또 가라사대
“하나님 나라를 무엇에 비교하며, 또 어떤 비유로 나타낼꼬?
31. 하나님의 나라는 겨자씨 한 알과 같으니,
땅에 심길 때에는 땅 위의 모든 씨보다 작은 것이로되
32. 심긴 후에는 그 어떤 풀보다 더 크게 자라서 큰 가지를 내니,
공중의 새들이 그 그늘에 깃들일 만큼 되느니라.”
예수께서 하나님 나라를 겨자씨에 비유하신 것은,
겨자씨가 눈에 잘 띄지 않을 정도로 작은 것이기도 하지만,
유대교의 율법학자들이 세상에서 제일 작은 것을 비유할 때
항상 겨자씨에 비유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비유의 반전은 겨자씨가
새가 깃들일 정도로 큰 가지를 내는 나무로 성장한다고 말씀하신데 있습니다.
겨자씨는 바늘구멍 정도의 크기로 눈에 잘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작으나
다 자라면 보통 1~2미터, 큰 것은 3~4미터까지 자라는 1년생 잡풀입니다.
마태복음 13:32, 누가복음 13:19에서 예수님은
새가 깃들일 정도로 큰 가지를 내는 나무로 성장한다고 비유하셨습니다.
예수께서 겨자씨가 1년생 풀이라는 것을 모르시고 이 말씀을 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나라를 지극히 작은 것과 지극히 큰 것에 비유하신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사람 눈에 띄지 않을 정도로 아주 작은 것에서 시작되지만
세상 모든 것을 다 멸하는 지극히 큰 것이 된다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2) 밤낮 자고 깨고 하는 가운데 스스로 자라 큰 나무가 되는 겨자씨(26~29절)
(26~29절 성경구절 위에)
그러나 겨자씨가 지극히 작은 것일지라도 그 안에 생명이 있습니다.
생명이 없는 것은 아무리 큰 것이라도 시간이 지나면 낡고 쇠하여지지만,
겨자씨는 아주 작은 것일지라도 그 안에 생명이 있으니
밤낮 자고 깨고 하는 가운데 스스로 그 씨가 자라서
새가 깃들일 정도로 크게 되는 것입니다.
내 안에 주님의 말씀이 살아 있다면 비록 내가 지극히 작은 자일지라도
내 안에 있는 주님의 참된 말씀이 내 믿음을 자라게 하여
나를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거룩한 백성이 되게 하는 것입니다.
➠ 그러므로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신령한 말씀을 구하는 자가 되십시오.
30배, 60배, 100배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이 겨자씨 비유도 교회의 부흥에 초점을 맞추어서는 안 됩니다.
30배, 60배, 100배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만한 믿음의 열매를 맺는 것을 가리키는 것처럼,
겨자씨가 새가 깃들일 만큼 큰 나무가 되는 것 역시
하나님께서 받으실만한 참된 믿음을 가진 자로 자라게 된다는 뜻입니다.
3) 새가 깃들이는 큰 나무 : 우리를 평안케 하는 하나님 나라(32절)
(32절 성경구절 위에)
새가 깃들이는 나무는 주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나라가
우리를 영원히 평안하게 하는 복된 곳임을 설명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이 세상에서 제일 아름답고 좋은 곳보다
훨씬 더 아름답고 좋은 곳입니다.
그곳이 그렇게 좋은 곳이 아니었다면
주께서 십자가에 달리시면서까지 우리를 그곳으로 인도하려 하시지 않았을 것입니다.
● 묵상 : 그러므로 눈에 보이는 것에 마음 빼앗기지 말고
지극히 작은 것일지라도 주님의 신령한 것을 구하는 자가 되십시오.
그러므로 눈에 보이는 것에 마음을 빼앗기지 말고,
하나님의 참되신 말씀에 마음을 쏟으십시오.
눈에 보이는 것 중에 영원한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자랑하고 과시할 만한 것을 만들기에 힘쓰지 말고,
내 안에 하나님의 신령한 것을 채우기에 힘쓰는 자가 되십시오.
결 론 : 무엇을 포기하고 무엇을 희생할 것인가
믿음의 복과 상급은
포기와 희생으로 정해집니다.
무엇을 포기하가
무엇을 희생했는가
주께서 주시는 상급이
여기에 있습니다.
주님을 위해 아무것도 포기하지 않고
그 평안과 기쁨만 누리는 방법이란 없습니다.
세상을 위해 주님을 포기했다면
세상도 잃고 주님도 잃겠지만,
주님을 위해 세상을 포기했다면
주께서 주시는 영생의 복도 얻고
이 땅에서도 내가 포기한 것보다 훨씬 크고 아름다운 것을 얻게 됩니다.
믿기 때문에 즐거움으로 포기할 수 있고
믿기 때문에 기꺼이 희생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주님
말씀에 무관심, 무감각한
길가에 떨어진 씨와 같은 자가
되지 말게 하옵소서.
오직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려는 간절함으로
신앙생활을 하게 하옵소서.
그날은 회개의 문이 닫히고
신앙의 때가 끝이 난다는 것을 기억하고
그날이 오기 전에 주를 섬기기에
충성을 다하는 자가 되게 하옵소서.
겨자씨 같은 작은 것일지라도
참 생명이 있다면 자라게 된다는 것을
믿게 하옵소서.
그러므로 눈에 보이는 것에 마음 빼앗기지 말고
오직 주님의 신령한 것을 채우기에
힘쓰는 자가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