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제목 : 하나님의 애타는 세레나데, 어서 돌아오라
설교본문 : 예레미야 14:1~15:9(참고, 예레미야 13장)
설 교 자 : 송호영 목사
설 교 일 : 2023년 10월 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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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론 : 성경은 복과 저주에 대한 하나님의 말씀
1) 아브라함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주신 복에 대한 말씀
최근 몇 주 동안 우리는 아브라함을 통해 하나님께서 주신 복에 관한 말씀을
아브라함의 삶의 각 단계별로 정리하여 살펴보았습니다.
아브라함도 많은 실수와 문제들이 있었지만,
하나님쩨서 그에게 어떤 징조나 신호를 보내실 때마다
아브라함은 언제가 그가 있어야 할 믿음과 사명의 자리로 돌아왔습니다.
그러다 모리아 산에서 아들을 바치라는 하나님의 최종 시험까지 통과하여
아브라함은 하나님께로부터 세상에 복을 전할 사명을 감당할 자로 인정받게 되었습니다.
2) 그러나 성경에는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것에 대한 경고의 말씀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에 대한 말씀만 들으면 신앙이 바르게 설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일이 무엇인지에 대한 말씀도 들어야 균형 잡힌 신앙을 가질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은 이스라엘이 바벨론에 망하기 전에 활동했던
선지자 예레미야가 전한 말씀을 통해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것이 무엇인지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3) 본문의 이해를 위한 사전 설명
예레미야는 남왕국 유다가 바벨론에 망하기 전에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던 선지자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간절하게 말씀을 전해도 도무지 듣는 사람이 없어서
예레미야는 평생 고난과 고통 속에 살았던 선지자였습니다.
처음 20년은 장차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이 나타나서 유다를 멸망시키리라고 했는데,
그때 느부갓네살은 아직 나타나지도 않았던 때였습니다.
그러므로 예레미야의 말을 듣지 않던 사람들이라도 20년이 지난 후
정말로 느부갓네살이 나타났을 때는
예레미야를 통해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어야 했습니다.
그럼에도 사람들이 듣지 않자
하나님께서 점차 강한 재앙을 내리시고,
그때마다 예레미야는 이 징조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전하고 외쳤습니다만, 아무 소용 없었습니다.
우리도 장차 주께서 오실 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예레미야를 통해 주셨던 징조와 그 징조에 대한 말씀들을
주의 깊게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제 1 부 : 하나님의 애타는 세레나데, 어서 돌아오라
먼저 살펴볼 예레미야 13장은 유다가 망하기 10여년 쯤 전의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주시는 회개의 때가 얼마 남지 않은 대단히 임박한 때입니다.
예레미야는 이제 곧 왕과 왕비가 사로잡혀 갈 것이라고 말합니다.
예레미야의 말대로 왕과 왕비가 사로잡혀 갔습니다만,
이것은 우리가 흔히 말하는 미래를 말하는 예언이 아닙니다.
예레미야가 전하는 말이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이라는 것을 알게 하기 위해
곧 일어날 일을 예레미야에게 알려주신 것입니다.
1. 최고의 권력자 왕과 왕후에게 외쳐라
1) 저 왕과 왕후에게 이르기를 … 영광의 면류관이 내려졌다 하라(13:18~19)
18. “너는 저 왕과 왕후에게 고하여 이르기를
‘ 스스로 낮추어 앉으라.
관, 곧 영광의 면류관이 (네 머리에서) 내려졌다’하라.
19. 남방(유다 남쪽 네게브 지방)의 성읍들이 봉쇄되고
그 성읍들을 열어줄 자가 없고,
온 유다가 다 포로로 잡혀가되 온전히 잡혀가도다.
하나님께서 예레미야에게 왕과 왕후에게 가서
그들이 곧 당하게 될 일을 선포하라고 말씀하십니다.
파괴할 적들은 북쪽에서 몰려올 것이고,
예루살렘에서 남쪽으로 달아나는 길은 모두 막혀버렸습니다.
유다의 성읍들이 이미 적들의 손에 들어갔기 때문입니다.
이제 곧 백성들은 물론 왕과 왕비도 폐위되어 사로잡혀 갈 것입니다.
유다가 완전히 멸망할 주전 587년의 꼭 10년 전인 주전 597년에
여호야긴 왕과 왕비 느후스다가 사로잡혀 간 것을
예레미야가 미리 예언하고 있습니다.
2) 임박한 심판 : 너희 발이 흑암한 산에 거치기 전에(13:15~16)
15. 너희는 들을지어다. 귀를 기울일지어다. 교만하지 말지어다.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16. 그가 흑암을 일으키시기 전,
너희 발이 흑암한 산에 거치기(걸려 넘어지기) 전,
너희 바라는 빛이 사망의 그늘로 변하여 침침한 흑암이 되게 하시기 전에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 영광을 돌리라.
예레미야는 심판의 어두움이 밀려오기 전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 말합니다.
심판이 대단히 임박했으므로 이 일을 서둘러야 한다며 애절하게 외칩니다.
지금이라도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오면
히스기야 시대의 은혜를 다시 베풀어 주실 것입니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듣는 사람이 없습니다.
2. 고질적이고 체질화된 죄악의 무서움
1) 악의 굴레에 깊이 빠져버린 유다와 예루살렘(13:23, 27)
23. 구스(에디오피아) 사람이 그 피부를, 표범이 그 반점을 변하게 할 수 있느뇨?
만일 그렇게 할 수 있다면 악에 익숙한 너희도 선을 행할 수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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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내가 너의 간음과 사특한 소리와 들의 작은 산 위에서 행한
네 음행의 비루한(역겨운, 가능스러운) 것을 보았노라.
화 있을진저 예루살렘이여! 네가 얼마나 오랜 후에야 정결하게 되겠느뇨?”
하나님께서는 유다 백성들이 들의 작은 산 위에서의 가나안의 풍요제에 참여하여 행하는
온갖 악한 일들을 다 보았다고 말씀하십니다(27절).
그러나 유다 백성들은 어느 누구도 이것을 죄로 여기는 자가 없습니다.
이미 오랫동안 그들 모두가 다 해왔던 일로, 일종의 문화현상이 되어버렸으므로
그것을 죄로 여기는 자가 없는 것입니다.
도리어 이것이 무슨 문제가 되느냐고 묻습니다.
유다 백성들은 구스(에디오피아) 사람들이 검은 피부를 변하게 할 수 없고,
표범이 그 반점을 바꿀 수 없는 것처럼 선을 행할 수 없는 사람들이 되어버렸습니다.
회개를 하고 하나님의 말씀의 자리로 돌아오는 일이 불가능한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죄가 습관이 되어 더 이상 죄를 죄로 여기지 않는 풍토가 깊이 뿌리를 내렸습니다.
2) 죄가 문화가 되면(악에 익숙한) : 수치심도 없이 죄에 빠지게 됩니다(23절)
(23절 성경구절 위에)
유다 백성들은 죄를 짓는 것이 자연스러운 일이 되었습니다.
죄가 그 사회의 문화가 되어버렸습니다.
죄가 습관이 되어서 죄를 더 이상 죄로 여기지 않는 풍토가
사회 전반에 만연하게 되었습니다.
죄를 우습게 보는 이러한 그들의 삶의 태도를 보시고
하나님께서 유다 백성들에게 더 이상 회개가 불가능한 자들이라는 판결을 내리셨습니다.
살아 있으나 사실상의 최종적인 심판을 받은 것입니다.
3) 그들이 검불처럼 흩어지고, 수치가 드러나며, 발뒤꿈치가 상하리라(21~22절)
21. 너의 친구 삼았던 자를 그가 네 위의 수령으로(우두머리로) 세우실 때에
네가 무슨 말을 하겠느냐? 너희가 고통에 사로잡힘이 해산하는 여인 같지 않겠느냐?
22. 네가 심중에 이르기를 ‘어찌하여 이런 일이 내게 임하였는고’하겠으나
네 죄악이 크므로 네 치마가 들리고 네 발뒤꿈치가 상함이니라.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그들을
바람에 날리는 검불(초개)처럼 흩으시리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들의 치마를 얼굴에까지 들려 수치를 온 천하게 드러내고
그들의 발뒤꿈치도 상하게 하리라 말씀하십니다.
바벨론에게 포로가 되어 끌려가는 모습을 표현한 것입니다.
● 묵상 : 그러므로 죄가 습관화되지 않도록 주의하십시오.
혹 우리 사회에서 습관처럼 아무렇지도 않게 행하는 일 중에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것이 있는지 살펴봅시다.
또 이 정도는 상관없을 것이라며 생각 없이 행하는 일 중에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것이 있는지 살펴봅시다.
죄가 작은 욕망으로 싹을 트려 할 때에는 말씀과 기도로 쉽게 잘라버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죄가 습관이 되고, 죄가 고질적인 체질화가 되면
중독증 환자처럼 고치기가 대단히 어려워집니다.
3. 어서 돌아오라 : 다급하게 외치는 예레미야
1) 네 아름다운 양 떼가 어디 있느뇨(13:20)
20. 너는 눈을 들어 북방에서 오는 자들을 보라.
네가 받았던(돌보던) 양 떼, 네 아름다운 양 떼가 어디 있느뇨?
하나님께서 예루살렘의 왕과 관리들에게 북방에서
바벨론의 침략군들이 쳐들어오는 모습을 보라고 말씀하시며,
그들에게 주셨던 아름다운 양 떼, 유다의 백성들이 어디에 있느냐고 물으십니다.
그들이 해산하는 여인처럼 침략군들로부터 고통을 받을 때에
유다의 왕과 관리들과 백성들이
하나님의 백성이라 자부했던 그들에게 이런 참혹한 일이 일어났다는 것에
큰 충격을 받을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2) 친한 친구였던 바벨론 사람들에게 당하는 참담한 고통(21절)
21. 너의 친구 삼았던 자를 그가 네 위의 수령으로(우두머리로) 세우실 때에
네가 무슨 말을 하겠느냐? 너희가 고통에 사로잡힘이 해산하는 여인 같지 않겠느냐?
유다 백성들이 침략을 받아 망했다는 것보다 더 크게 충격을 받은 것은
다른 사람들이 아니라 그들이 친구처럼 여겼던 바벨론 사람들에게
이런 참혹한 일을 당했다는 데 있습니다.
바벨론은 유다의 친구였습니다,
히스기야 왕 때에는 왕이 병이 들었을 때
병문안 사절단을 보낼 정도로 가까운 사이였습니다(이사야 39: 1~3).
그러나 이제 그들이 믿었던 자들로부터 침략을 당하고 포로가 될 것입니다.
3) 이런 상황에서도 그들의 돈과 권력만 믿고 안전하다고 외치는 권력층들
그러나 유다와 예루살렘의 권력을 잡은 자들은 교만하여 자기들은 안전하다는 생각에
빠져 예레미야가 전하는 간절한 호소를 귓전으로도 듣지 않습니다.
➠ 멸망으로 치달아 가는 예루살렘을 바라보고 슬퍼하는 예레미야(17절)
17. 너희가 이 말을 듣지 아니하면
나의 심령이 너희 교만을 인하여 은근히(은밀한 곳에 숨어서) 곡할 것이며,
여호와의 양무리가 사로잡힘을 인하여 눈물을 흘리며 통곡하리라.
그들이 끝내 하나님께로 돌아오지 않는다면
이제 곧 멸망을 더 이상 피할 수 없게 될 것입니다.
예레미야는 유다 백성들이 심판의 길로만 향하여 가는 것을 보고
슬픔에 빠져 은근히(남의 눈에 띄지 않는 곳에) 물러가서 슬퍼할 수밖에 없다고 말합니다.
아무도 자기 말을 듣지 않으니 외로움에 울고,
자기 말을 듣지 않으면 그들이 당하게 될 일을 생각하며 안타까움에 웁니다.
제 2 부 : 심판의 이유, 하나님보다 다른 것을 더 신뢰한 것
1. 하나님보다 바알을 더 신뢰한 사람들(13:25)
(25절 성경구절 아래)
1) 유다 백성들이 하나님보다 바알을 더 신뢰한 이유
25절의 ‘거짓을 신뢰하였다’는 말이 성경의 원어에는
‘그 거짓’처럼 거짓 앞에 정관사가 붙어 있습니다.
그들이 하나님보다 바벨론 사람들을 더 신뢰하고,
하나님보다 바알을 더 신뢰하고 있으면서
스스로 자기들을 가키려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말하는
바로 ‘그 거짓’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들이 하나님보다 바알을 더 신뢰한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➀ 바알을 섬기는 나라들이 더 잘살고 있으므로
그들이 하나님보다 바알을 더 신뢰한 것은
바알을 섬기는 나라들이 이스라엘보다
더 잘살고 더 강력한 나라를 이루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어리석은 유다의 통치자들과 백성들이
하나님보다 바알이 더 힘이 센 신이라 여기고,
하나님을 떠나 바알을 섬기고 있는 것입니다.
➁ 유다보다 더 강력한 힘을 가진 나라들과 협력관계를 이루기 위해
바알을 섬기는 나라들이 유다보다 더 강력한 나라이므로,
이들 나라들과 좋은 협력관계를 이루기 위해서는
그 나라들이 섬기는 제사 의식에 참여해야만 합니다.
그래서 선지자들은 다른 나라를 의지하지 말라고 경고했던 것인데,
유다 백성들은 단순히 외교적 제스처로 참여하는 것이 아니라,
아예 그 우상을 국가의 종교로 받아들여
거리마다 우상으로 가득한 나라로 만들어버렸습니다.
➂ 바알이 더 재미가 있으므로
하나님께서는 회개를 요구하시지만 바알은 회개를 요구하지 않습니다.
더구나 바알의 의식에는 화려한 춤과 음악과 쾌락이 있으므로
하나님보다 바알에 더 쉽게 빠져드는 것입니다.
2) 그러나 바알도, 친구 나라도 모두 유다를 배반했습니다(21, 25절)
21. 너의 친구 삼았던 자를 그가 네 위의 수령으로(우두머리로) 세우실 때에
네가 무슨 말을 하겠느냐? 너희가 고통에 사로잡힘이 해산하는 여인 같지 않겠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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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이는 네 응득(네 몫)이요,
내가 헤아려 정하여 네게 준 네 분깃이니,
네가 나를 잊어버리고 거짓을 신뢰하는 까닭이라.
그러나 그들이 신뢰하는 바알은 그들을 도울 힘이 없고,
그들이 신뢰하여 친구처럼 여겼던 바벨론은
그들을 극도의 수치를 드러내게 하면서 포로로 잡아갔습니다.
그들이 하나님보다 그 거짓을 더 신뢰하였기 때문입니다.
● 묵상 : 당신이 하나님보다 더 신뢰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당신의 마음을 하나님보다 더 붙잡고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신앙의 문제보다 당신에게 더 염려와 걱정이 되게 하는 일이 무엇입니까?
하나님보다 더 신뢰하는 것을 계속 내 마음에 채우고 사는 것을
하나님께서 아주 싫어하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더 의지하고 있음을 나타내 보이십시오.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고 계심을 믿는다면
세상의 일이 잘 안되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염려와 걱정을 떨쳐 버리십시오.
하나님의 사랑을 믿는다면서 계속 염려하고 걱정한다면
하나님보다 다른 것을 더 의지하는 것으로 여기십니다.
2. 하나님이 채찍 : 기근의 대재앙은 마지막 회개의 기회
1) 극심한 가뭄의 대재앙(14: 1~6)
1. 가뭄에 대하여 예레미야에게 하신 여호와의 말씀이라.
2. “유다야 슬퍼하며,
성문의 무리가 곤비하여(성읍마다 백성들이 기력을 잃고) 주저앉아 애통하니,
예루살렘의 부르짖음이 위로 오르도다.
3. 귀인(귀족)들은 자기 사환(하인)들을 보내어 물을 길어오라 하였으나,
그들이 우물에 갔어도 물을 얻지 못하여 빈 그릇으로 돌아오니
(그 종들이) 부끄럽고 근심하여 그 머리를 가리우며(어찌할 바를 모르며),
4. 땅에 비가 없어 지면이 갈라지니, 밭 가는 자가 부끄러워
네가 무슨 말을 하겠느냐? 너희가 고통에 사로잡힘이 해산하는 여인 같지 않겠느냐?
그 머리를 가리는도다(농부들도 애태우며 어찌할 바를 모르는도다).
5. 들의 암사슴은 새끼를 낳아도 풀이 없으므로 내어버리며,
6. 들나귀들도 자산(벌거숭이 산) 위에 서서 시랑(豺狼, 승냥이와 이리)처럼 헐떡이며
풀이 없으므로 눈이 아득하여 하는도다(그 눈이 흐려지는도다).”
예레미야는 여호야김 왕 때에 있었던 극심한 기근의 상황을 생생하게 묘사합니다.
제일 먼저 농부가 피해를 봅니다.
밭이 모두 갈라져서 아무런 일도 할 수가 없습니다.
어지간해서는 꿈쩍도 하지 않던 귀족들조차
물을 구하러 사환을 보내지만 사환은 빈 그릇만 가져올 뿐입니다.
예루살렘의 지도자들이 성문에 모여 논의하지만 아무런 대책이 없습니다.
새끼를 잘 돌보기로 유명한 암사슴도 갓 태어난 새끼를 버리고 풀을 구하러 갑니다.
평소에 헐벗은 산에서 지내기를 좋아하는 들나귀들도
물을 구하지 못해 거친 숨을 몰아쉽니다.
2) 대재앙은 더 무서운 심판을 막기 위해 보내시는 하나님의 징조와 호소
하나님께서는 회개의 기회를 주시기 위해 심판을 내리시기 전에
기근이나 홍수, 지진과 같은 징조를 보이시는데,
이번에는 엄청난 기근으로 그 징조를 보이셨습니다.
심판의 경고와 함께 주어지는 이런 재난은 단순한 천재지변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심판을 반드시 내리시리라는 경고성의 재난입니다.
이스라엘이 출애굽 할 때 애굽의 모든 집의 맏아들을 죽이시는 심판을 하실 때에도
그 경고로 여러 가지의 재앙을 내리셨습니다.
➠ 바벨론 침략보다는 작은 재앙인 기근을 먼저 보내신 것 : 깨닫게 하기 위해
기근도 견디기 힘든 재난임에는 틀림이 없으나
유다에 곧 닥쳐올 바벨론 침공을 통한 심판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닙니다.
그러므로 기근의 재앙이 임했을 때에라도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와야 합니다.
➠ 그러나 유다 백성들은 단순한 자연재해로만 여깁니다.
그러나 유다 백성들은
하나님의 경고로 받아들이지 않고 단순한 기상 이변으로 여깁니다.
기근이라는 채찍과 함께 하나님께서 주시는 마지막 회개의 기회는
이렇게 헛되이 지나가고 있습니다.
예레미야가 그 기근의 의미를 설명해 주어도 그들은 귀담아듣지 않습니다.
● 묵상 :
예수께서 다시 재림하여 오시기 전에도
이런 재앙들을 통해 마지막 심판을 경고하시는 일들을 하시리라 말씀하셨습니다.
최근에 일어나고 있는 여러 재앙을 단순한 기상 이변으로 여기지 말고
주께서 내리시는 심판의 경고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3. 하나님의 진노 : 내가 그들의 기도와 예배를 모두 거절하리라
1) 예레미야의 탄식의 기도(14:7~9)
7. “여호와여, 우리의 죄악이 우리에게 대하여 증거할지라도,
주는 주의 이름을 위하여 일하소서(주의 이름을 위해서라도 선처해 주옵소서).
우리의 타락함이 많으니이다. 우리가 주께 범죄하였나이다.
8. 이스라엘의 소망이시요, 곤란한 때의 구원자이시여,
어찌하여 이 땅에서 거류하는 자처럼, 하룻밤을 묵으러 들른 행인처럼 행하시나이까?
9. 어찌하여 놀라 벙벙하는 자(깜짝 놀라 어쩔 줄 모르는 사람)처럼 행하시며,
구원함을 잃은 용사처럼 행하시나이까?
여호와여, 주는 오히려 우리 중에 계시고 우리는 주의 이름으로 일컫는 자이오니,
우리를 버리지 마옵소서.”
가뭄으로 유다의 온 땅이 너무나도 참담하게 되자
예레미야는 하나님 앞에 중보의 기도를 합니다.
기도를 하다가 예레미야는
어찌하여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을 지나가다가 하룻밤을 지내는 나그네처럼 여기시는지,
어찌하여 놀라 벙벙하는 자처럼 고통에 빠진 유다 백성들을
그저 지켜보고만 계시는지를 한탄하며 묻습니다.
유다 백성들이 비록 하나님 앞에 범죄 하였고 타락하였을지라도
주의 이름을 위하여 그들을 버리지 마시기를 간구합니다.
2) 하나님의 답변 : 그들을 위하여 복을 구하지 말라(10~11절)
10. 여호와께서 이 백성에 대하여 말씀하시되
“그들이 어그러진 길을 사랑하여 그 발을 금하지(멈추지) 아니하므로
나 여호와가 그들을 받지 아니하고,
이제 그들의 죄를 기억하고 그 죄를 벌하리라’ 하시고,
11. 여호와께서 또 내게 이르시되 ‘너는 이 백성을 위하여 복을 구하지 말라.
그러나 하나님께서 예레미야의 기도를 받지 않으시고,
(예레미야 7:16, 11:14에 이어 세 번째로)
더 이상 이 백성을 위하여 기도하지 말 것을 명하십니다.
이제는 그들을 위하여 더 이상 복을 구하는 기도를 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3) 그들이 드리는 일체의 예배와 예물 모두 거절하리라(12절)
12. 그들이 금식할지라도 내가 그 부르짖음을 듣지 아니하겠고,
번제와 소제를 드릴지라도 내가 그것을 받지 아니할 뿐 아니라
칼과 기근과 염병으로 그들을 벌하리라.
이제는 유다 백성들이 행하는 일체의 기도와 예배(번제와 소제)를
모두 거절하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심판에 대한 확정된 판결이 이미 내려졌다는 말씀입니다.
이제 그들에게 남은 것은 칼과 기근과 전염병뿐이라고 말씀하십니다.
➠ 그러나 아직 기회가 완전히 끊어진 것은 아닙니다.
이것은 그들의 기도와 예배를 정말로 모두 거부하시겠다는 뜻이 아닙니다.
이제라도 그들이 하나님께서 받으실 만한 참된 기도와 예배를 드린다면
하나님께서 기뻐하며 받으실 것입니다.
정말로 기회가 모두 끊어졌다면 이 경고의 말씀조차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 하지만 그 전에 먼저 죄에서 떠나 회개하고 주께로 돌아와야 합니다.
그들이 하나님께서 받으실 만한 기도와 예배를 드리려면
먼저 그들의 행동 중에 하나님께서 싫어하실 만한 것을 제거하고 돌이킨 후에
하나님께로 돌아와 기도하고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지금이라도 그렇게 한다면 히스기야 때의 기적을 다시 한번 경험할 수 있습니다.
● 그러나 그렇게 하기에는 시간이 너무 없습니다. 너무 늦었습니다(10절).
(10절 성경구절 위에)
그들이 돌이켜 하나님께로 돌아오기에는 죄의 습관에 너무 깊이 빠졌습니다.
자기들이 죄 가운데 행하였다는 것을 지금 깨달았다고 하더라도
돌이켜 죄에 길에서 떠나기가 어려운데
지금도 여전히 깨닫는 자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이제는 그들의 기도와 예배를
더 이상 받지 않으시겠다는 최종 판결의 말씀을 하시는 것입니다.
● 묵상 :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최근에 지구촌에서 일어나고 있는 여러 재앙을 우리에게 주시는 경고로 받아들이고
돌이켜 하나님께로 돌아와 기도하고 예배드리는 성도들이 되어야 합니다.
머뭇거리다가는 유다 백성들처럼 어어 하다가 심판을 당하게 됩니다.
4. 답답한 현실 : 거짓 설교를 더 좋아하는 백성들
1) 거짓 평안만 전하는 거짓 선지자들(14:13)
13. 이에 내가 말하기를 “슬프도소이다, 주 여호와여 보시옵소서.
선지자들이 그들(이 백성)에게 이르기를
‘너희가 칼을 보지 아니하겠고 기근이 너희에게 이르지 아니할 것이라.
여호와께서 이곳에서 너희에게 확실한 평강을 주리리라’하나이다.”
14) 그러자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선지자들이 내 이름으로 거짓 예언을 하도다.
나는 그들을 보내지 아니하였고, 그들에게 명하거나 말하지 아니하였거늘,
그들이 거짓 계시와 복술(점술)과 허탄한 것과
자기 마음의 속임으로(그들의 마음에서 꾸며낸 거짓말로) 너희에게 예언하는도다.
하나님께서는 유다의 심장부인 예루살렘에까지
칼과 기근과 온역(전염병)의 심판이 이르게 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12절).
그러나 유다의 선지자들은
하나님께서 이렇게 진노의 심판의 말씀을 하시는 중에도
계속해서 유다에 그 어떠한 천재지변이나,
칼과 같은 인위적인 재앙도 결단코 일어나지 않고
오직 평안만 있으리라는 설교만 합니다.
유다의 선지자들은
유다 백성들이 드리는 기도와 예배를 하나님께서 받으셨으므로
그들에게 하나님의 평화가 임할 것이라고 거짓 평안을 설교하였습니다.
2) 듣기에만 좋은 거짓 설교
이런 설교는 듣기에는 참 좋습니다.
복을 선포하고 있으니 은혜로운 설교라 할 만합니다.
그러나 문제는 유다 백성들이 혼합주의를 버리지 않았고,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죄를 돌이켜 돌아오지도 않았는데도,
그런 상태에서 드리는 기도와 예배를 받으시며 평화가 임할 것이라고 설교했으니
거짓 설교가 되는 것입니다.
이런 거짓 설교는 지옥에 빠질 죄로 규정한
술객들의 점술 행위(요한계시록 21:8)와 같은 심판을 받습니다(15절).
3) 거짓 설교를 좋아한 백성들의 최후(14~16절)
14. 그러자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선지자들이 내 이름으로 거짓 예언을 하도다.
나는 그들을 보내지 아니하였고, 그들에게 명하거나 말하지 아니하였거늘,
그들이 거짓 계시와 복술(점술)과 허탄한 것과
자기 마음의 속임으로(그들의 마음에서 꾸며낸 거짓말로) 너희에게 예언하는도다.
15. 그러므로 내가 보내지 아니하였어도 내 이름으로 예언하여 이르기를
‘칼과 기근이 이 땅에 이르지 아니하리라’하고 말하는 선지자들에 대하여
나 여호와가 이같이 이르노라. 그 선지자들은 칼과 기근에 멸망할 것이요,
16. 그들의 예언을 받은(그 예언을 들은) 백성은
기근과 칼로 인하여 예루살렘 거리에 던짐을 당할 것인즉,
그들을 묻어 줄 사람이 없을 것이요, 그 아내와 그 아들과 그 딸들도 그렇게 되리니,
이는 내가 그들의 죄악을 그들 위에 퍼부을 것임이로다.
그러나 그런 거짓 설교를
예레미야의 설교보다 더 좋아한 백성들에게도 책임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심령을 치료하는 설교보다는 듣기에 좋은 설교만을 선택한 그들도
거짓 선지자들과 똑같이 심판을 당할 수밖에 없습니다.
● 묵상 : 잘못된 거짓 은혜, 거짓 설교에 미혹되지 마십시오.
은혜받았다는 것은
내 마음에 감동이 되고 흡족한 상태가 된 것을 뜻하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죄를 깨닫게 되어 회개를 할 수 있게 되었을 때
은혜받았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많은 경우에
자기의 마음에 흡족한 상태가 된 것을 은혜받았다고 말합니다.
내 마음에 흡족한 것은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심판의 주체는 하나님이시므로 하나님 마음에 흡족해야 하는 것입니다.
제 3 부 : 시대의 징조를 분별하는 눈을 가진 예레미야의 탄식
1. 예레미야의 탄원의 기도를 거절하신 하나님
1) 예레미야에게 미리 보이시는 예루살렘의 참담한 광경(14:17~18)
17. “너는 이 말로 그들에게 전하여 이르라.
‘내 눈이 밤낮으로 그치지 아니하고 눈물을 흘리리니,
이는 처녀 딸 내 백성이 큰 파멸, 중한 창상으로(매우 중한 상처로) 인하여 망함이라.
18. 내가 들에 나간즉 칼에 죽은 자요, 내가 성에 들어간즉 기근으로 병든 자며,
선지자나 제사장이나 다 땅에 두루 다니며(온 나라를 헤매며)
어찌할 바를 알지 못하는도다.”
하나님께서 예레미야에게
곧 일어날 예루살렘의 참혹한 모습을 미리 보여주십니다.
예루살렘의 거리마다 시체로 가득합니다.
부모와 자녀가 함께 죽는 참혹한 모습도 있습니다.
유다에 평화로운 일만 일어나리라고 설교했던 선지자들은
어찌할 바를 몰라 이리저리 다니며 방황하기만 합니다.
2) 유다 민족을 대신하고 죄를 고백하는 예레미야(20절)
(20절 성경구절 아래)
예레미야는 유다 민족이 주님 앞에 죄를 범하였다는 사실을 인정합니다.
예레미야 자신을 포함하여
그들 모두가 주님 앞에 죄를 범했음을 고백합니다.
만일 이 죄의 고백을 유다 백성들이 했더라면,
그들 중에 소수의 사람이라도 했더라면 주께서 그들을 멸하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레미야 홀로 이 기도를 하고 있습니다.
3) 예레미야의 탄원의 기도(19~22절)
19. 주께서 유다를 온전히 버리시나이까? 주의 심령이 시온을 싫어하시나이까?
어찌하여 우리를 치시고 치료하지 아니하시나이까?
우리가 평강을 바라도 좋은 일이라고는 하나도 없고,
치료 받기를 바라도 놀람을(두려운 일만을) 보나이다.
20. 여호와여, 우리가 우리의 악과 우리 조상의 죄악을 인정하나이다.
우리가 주께 범죄하였나이다.
21. 그러나 주의 이름을 위해서라도 우리를 미워하지 마옵소서.
주의 영광의 보좌를 욕되게 마옵소서.
우리와 세우신 주의 언약을 기억하시고 폐하지 마옵소서.
22. 열방(이방 민족들)의 허무한 것 중에 능히 비를 내리게 할 자가 있나이까?
하늘이 능히 소나기를 내릴 수 있으리이까?
우리 하나님 여호와여, 그리하는 자가 주가 아니시니이까?
그러므로 우리가 주를 앙망하옵는 것은 주께서 이 모든 것을 만드셨음이니이다.
이에 예레미야가 유다 백성의 죄를 치료해 주실 것을
다시 한번 탄원의 기도를 드립니다.
4) 예레미야의 간절한 탄원의 기도를 거절하신 하나님(15:1)
1. 그때 여호와께서 나에게 이르시되
“모세와 사무엘이 내 앞에 섰다 할지라도 내 마음은 이 백성을 향할 수 없나니,
이 백성을 내 앞에서 쫓아내리라.
하나님께서 예레미야의 간곡한 탄원의 기도를 한마디로 거절하십니다.
모세와 사무엘은 이스라엘과 하나님 사이를 중재한 대표적인 인물입니다.
그러나 지금은 모세와 사무엘이 다시 유다와 하나님 간에 중재자로 나선다고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듣지 않으리라 말씀하십니다.
그동안 요시야 왕 때에 제사장 힐기야가 읽어준 말씀을 듣거나,
예레미야가 증거한 말씀을 듣고 어찌 행하였나 하는 것에 따라
하나님께서 각 사람의 심판을 정하셨고,
그 정해진 대로 이제 심판이 진행되리라는 것입니다.
이미 저 북쪽 지방에서부터 이미 심판은 시작되었습니다.
2. 예고된 대로 진행되는 심판
1) 하나님께서 정하신 대로 각자의 형벌의 자리로 나아갈 것이라(15:2)
2. 그들이 만일 네게 말하기를 ‘우리가 어디로 가야 하느냐’하고 묻거든
너는 그들에게 이렇게 말하라.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가 어디로 가든지 죽을 자는 죽음으로 나아가고,
칼을 받을 자는 칼로 나아가고, 기근을 당할 자는 기근으로 나아가고,
포로 될 자는 포로 됨으로 나아갈지니라’하셨다 하라.
하나님께서는 유다 백성들에게 이미 예고한 대로
칼과 전염병으로 인한 죽음과 기근과 포로의 재앙으로
각자 정해진 대로 심판을 받게 되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전쟁 중에 우연히 죽거나 병이 드는 것 같아도
모두가 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대로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미 정하신 대로 칼에 죽을 자는 칼로 죽고,
병에 죽을 자는 병으로 죽을 것이며,
기근을 당할 자는 기근에 처하고,
포로가 될 자는 포로가 될 것이라고 전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렇게 해서 죽은 자들은
개와 새와 짐승들이 그 시체를 찢으며 먹어 치울 것입니다.
죽어서도 치욕을 당하는 완전한 심판의 상태입니다.
2) 므낫세 왕 때 있었던 타락을 벗지 못했으므로(3~4절)
3.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그들을 네 가지로 벌하리니,
곧 죽이는 칼과 찢는 개와 삼켜 멸하는 공중의 새와 땅의 짐승으로 할 것이며,
4. 유다 왕 히스기야의 아들 므낫세가 예루살렘에서 행한 짓을 인하여
내가 그들을 세계 열방 중에 흩으리라.
유다 백성들에게 이렇게 참혹한 심판이 내려지게 된 것은
히스기야의 아들 므낫세 때로부터 시작된 유다 백성들의 죄악 때문입니다.
유다 백성들이 가나안의 우상숭배에 심각하게 빠지고,
특히 종교적인 매음 행위가 전 유다에 확산이 된 때가 바로 므낫세 때입니다.
므낫세는 히스기야가 죽을병에서 기적적으로 나은 후 15년을
더 산 기간에 낳은 아들입니다.
히스기야가 이때에 하나님께 감사하며 신실한 삶을 살지 않고
하나님을 온전히 섬기지 않았으므로,
그때 낳은 아들이 유다 역사상 최고로 악한 왕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사야 선지자는
남왕국 유다를 망하게 한 주범으로 히스기야를 꼽았습니다(이사야 39장).
3) 요시야 왕 때의 회개의 기회를 버린 유다와 예루살렘에 대한 심판 :
요시야 왕 때 회개의 기회가 있었습니다.
므낫세 왕이 죽은 후 잠시 그의 아들 아몬이 왕위에 있다가 신복에게 살해당해 죽고,
아몬의 아들 요시야가 왕이 되었습니다.
요시야 왕은 8살 때에 왕이 되었고,
왕이 된 지 8년이 되던 해부터 예루살렘 성전을 보수하고,
유월절을 지키고, 우상의 제단들을 모두 헐었으며,
제사장 힐기야로 하여금 성전에서 발견한 율법을 백성들 앞에서 읽게 하는 등
신앙 회복을 위해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러나 백성들은 요시야 왕이 보는 앞에서만 적당히 회개하는 척하고,
왕이 지나간 후에는 다시 우상숭배를 행하였습니다.
그래서 므낫세 왕 때의 타락을 끝내 벗지 못했고, 바로 이런 이유로
하나님께서 유다와 예루살렘에 이런 참혹한 심판을 내리시는 것입니다.
● 묵상 : 회개의 기회가 끝나기 전에 어서 주께로 돌아오십시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아직은 심판이 시작되지 않고 심판의 징조로 이런저런 일들만 일어나고 있으니
돌이켜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올 수 있습니다.
그러나 유다 백성들처럼
언젠가 하나님께서 심판을 시작하시는 신호로 천사장의 나팔 소리가 울리게 되면
더 이상 회개의 기회는 없습니다.
그날이 오기 전에 돌이켜 회개하여야 합니다.
그리고 말씀에 순종하는 신실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결 론 : 충분히 막을 수 있었던 심판이었습니다.
1) 회개의 기회를 날려버린 유다와 예루살렘 : 회개를 전하는 설교를 비웃고 조롱함
요시야 왕 때 제사장 힐기야가 읽어주는 말씀을 듣고 회개하였더라면,
예레미야가 간곡하게 회개하라고 외쳤을 때에 듣고 회개하였더라면
심판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죄의 습관이 깊어 회개가 잘 안되면
회개할 수 있도록 도와달라는 기도만이라도 했다면
그들은 하나님의 영적인 치료를 받고 이런 참혹한 심판을 면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거짓 평화를 전하는 설교만을 듣기를 원했습니다.
그리고 회개하기를 거부하며 회개를 전하는 설교를 비웃고 조롱했습니다.
2) 이제는 하나님께서 그들의 회개를 기다리다 지쳤다고 말씀하십니다(6절).
6.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네가 나를 버렸고 내게서 물러갔으므로
네게로 내 손을 펴서 너를 멸하였노니,
이는 내가 뜻을 돌이키기에 염증이 났음이로다(너를 불쌍히 여기기에도 지쳤음이로다).
이제는 더 이상 하나님께서 그들의 회개를 기다리지 않겠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기다림에도 끝이 있습니다.
그 전에 말씀의 자리로 돌아와야 합니다.
3) 일곱 아들을 낳은 여인도 기절하여 쓰러지리라(7~9절)
7. “내가 그들을 그 땅의 여러 성문에서 키로 까불러 그 자식을 끊어서
내 백성을 멸하였나니, 이는 그들이 그 길에서 돌이키지 아니하였기 때문이라.
8. 그들의 과부가 내 앞에 바닷모래보다 더 많아졌느니라.
내가 대낮에 훼멸할(파멸시킬) 자를 그들에게로 데려다가
그들과 청년들의 어미를 쳐서 놀람과 두려움을 그들에게 졸지에 임하게 하였으며,
9. 일곱 자식을 낳은 여인에게는 쇠약하여 기절하게 하며,
아직 대낮인데도 그의 해가 떨어져서 그 여인으로 수치와 근심을 당하게 하였느니라.
그 남은 자는 그 대적의 칼에 붙이리라. 나 여호와의 말이니라.”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유다의 사내아이들을 모두 죽여서
대를 끊기게 하리라고 말씀하십니다.
과부가 바다의 모래처럼 많아지고,
일곱 아들을 낳은 여인도 자기를 부양할 아들이 없어 쇠약하여지다가
결국 기절하게 되는 일이 일어나리라 말씀하십니다.
예레미야가 묘사한 이 참혹한 광경은
주전 579년 여호야긴 왕이 항복하기 직전의 예루살렘을 제외한 유다의 상황입니다.
적군이 대낮에 유다의 지방 성읍을 습격하여
그들을 부양할 사내아이들을 모두 죽였습니다.
그러므로 여인들은 그들을 부양할 자들이 하나도 없게 되었습니다.
● 묵상 :
하나님의 기다림에도 끝이 있습니다.
그 전에 말씀의 자리로 돌아와야 합니다.
그 전에 당신과 가까운 사람들을 주님 품으로 인도해야 합니다.
그 시간이 지나면 하나님께서 정하신 대로 심판이 진행될 뿐입니다.
그 때에는 그 누구도 그 심판을 막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아직 기회가 있을 때,
시간이 지나기 전에 주님께로 돌아오십시오.
그리고 주님 품으로 인도하십시오.
주님
내 안에 교만이 자라지 않게 하시고,
늘 겸손하여 주께 충성되게 하옵소서.
세상보다 하나님을 더 신뢰하게 하옵소서.
죄가 고질적인 습관으로 자리 잡기 전에
회개하여 영적인 건강함을 유지하게 하옵소서.
주께서 주시는 징조와 신호들을
분별할 수 있는 지혜를 주옵소서.
하나님께서 받으실 만한
참된 기도와 예배를 드리게 하옵소서.
내 마음을 즐겁게 하는 설교보다
내 심령을 치유하는 참된 설교를
듣는 귀를 주옵소서.
장차 주께서 재림하여 오실 때에도
예고된 대로 심판이 진행되리라 믿고
그날을 준비하게 하옵소서.
아직 기회가 있을 때 우리의 이웃들을
주님 품으로 인도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