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주일예배 설교문

그러나 그 영광의 나라를 위해 이 땅에서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10:22; 막 9:1~50)

작성자송호영|작성시간23.10.23|조회수135 목록 댓글 0

설교제목 : 그러나 그 영광의 나라를 위해 이 땅에서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부 제 : 무엇을 얻느냐가 아니라 무엇을 포기할 수 있느냐의 문제

설교본문 : 마가복음 9:1~50, 예레미야 15:10~21

설 교 자 : 송호영 목사

설 교 일 : 2023년 10월 22일

===============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에 제자들 중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에게

    하나님 나라의 영광을 잠시동안 경험하게 하신 일이 있었습니다.

 

    그들이 경험한 하나님 나라의 영광은 장차 우리도 함께 영원히 누리게 될 영광의 나라입니다.

 

    오늘은 그 세 제자가 경험했고 장차 우리가 누리게 될 하나님 나라의 영광과,

    우리가 이 땅에서 해야 할 사명과의 관계에 대한 말씀을 증거하도록 하겠습니다.

 

 

1 : 하나님 나라의 영광을 미리 경험한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

 

1. 영광의 나라를 미리 보여주신 예수님

 

 1) 변형되신 예수님(9:1~3)

 

            1. 또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기 서 있는 사람 중에

               하나님의 나라가 권능으로 임하는 것을 볼 자들도 있느니라.”

            2. 그리고 엿새 후에 예수께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만을 데리고 따로 높은 산으로 올라가셨더니,

               그때 예수님의 모습이 그들 앞에서 변형되사

            3. 그 옷이 광채가 나며,

               이 세상의 그 어떤 빨래하는 자도 그렇게 희게 할 수 없을 만큼 심히 희어졌더라.

 

    예수께서 제자들과 또 함께 따라온 자들에게

   “여기 서 있는 자 중에 죽기 전에

    하나님의 나라가 권능으로 임하는 것을 볼 자들도 있느니라”하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말씀을 하신 지 엿새 후에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만을 데리고 높은 산에 오르셨습니다.

 

    그때 갑자기 예수님이 제자들 앞에서 변형되셨습니다.

    예수님의 옷에서 광채가 났고,

    그 옷이 희기가 이 세상의 빨래하는 자 중에 그 어떤 사람도 그렇게 할 수 없을 만큼

    심히 희고 눈부신 옷을 입고 계셨습니다.

 

 2) 장차 우리가 천국에서 입게 될 몸을 미리 보이신 것

 

    여기에서 변형됐다는 말은

    단순히 겉으로 보이는 모습만 변했다는 뜻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권능으로 그 본질이 변했다는 뜻입니다.

 

    장차 우리가 주님의 나라에 들어가면 입게 될

    영광스러운 그 몸을 미리 보이신 것입니다.

    지금 우리의 몸과는 전혀 다른 완전히 새로운 존재,

    새로운 피조물의 모습을 주께서 미리 보여주셨습니다.

 

    우리가 주님의 나라에 들어가면

    지금 우리의 몸을 가지고 단순히 영원히 살기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의 나라에 들어갈 때 우리는 지금과는 전혀 다른 완전히 새로운 존재가 됩니다.

    천사들을 몸종으로 부릴 정도로 엄청난 존재로 변화됩니다.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그 모습을 미리 보여주셨습니다.

 

 3) 엘리야와 모세와 함께 대화하신 예수님(4절)

 

            4. 그리고 그 자리에는 엘리야가 모세와 함께 그들 앞에 나타나서

               예수님과 더불어 이야기를 나누거늘

 

    그때 엘리야와 모세가 나타나서 예수님과 함께

    이제 곧 예수께서 겪으셔야만 할 십자가의 고난에 대한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아마도 엘리야와 모세가 예수께 힘과 용기를 주는 자리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엘리야와 모세만 아니라 천사들이 응원한다고 할지라도

    결국 예수께서 혼자 당하시고 혼자 겪으셔야만 할 일입니다.

    이제 서서히 그 고난의 시간이 예수님 앞으로 다가오고 있습니다.

 

 4) 장차 우리가 누리게 될 영광의 나라를 미리 보여주심(5절)

 

            5) 그때 베드로가 나서서 예수께 고하되 “랍비여,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

              우리가 초막 셋을 짓되 하나는 주를 위하여, 하나는 모세를 위하여,

              하나는 엘리야를 위하여 하사이다”하고 말하였으니

 

   “랍비여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이 좋사오니”

    베드로는 엉겁결에 이런 말을 했지만,

    베드로의 이 말 속에는 장차 우리가 들어가게 될 천국이

    얼마나 영광스럽고 좋은 곳인지를 증거하는 말이기도 합니다.

 

    그 나라는 참으로 아름답고 좋고 기쁨이 가득한 나라입니다.

    만일 그곳이 좋은 곳이 아니었다면 주께서 미리 말씀해 주셨을 것입니다.

    그곳이 그렇게도 좋은 곳이기에 예수께서 우리를 그곳으로 데려가시기 위해

    십자가의 고난까지 받으신 것입니다.

 

묵상 : 그 영광의 나라를 소망하며 사는 자들이 되십시오.

 

    그 영광의 나라를 우리가 본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그 광경을 본 제자들이 기록한 복음의 말씀을 보고

    그 나라가 얼마나 놀라운 것인지를 알고 믿습니다.

 

    또 제자들이 그 나라에 들어가기 위해 모두 순교를 당한 일로 말미암아,

    과연 그 나라는 모든 것을 포기하고라도 들어가야만 할

    귀하고 영광스러운 나라인 것을 알고 믿습니다.

 

 

2.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

 

 1) 예수님이 부활하신 후에는 제자들과 우리가 그 나라를 위해 고난을 당해야 합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고 부활하신 후에는

    그 고난을 제자들이 당해야만 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장차 우리가 누리게 될 영광의 나라를 미리 보여주셨습니다.

 

    그 나라에 들어가는 자의 영광이 얼마나 크고 놀라운지

    과연 고난을 당할만한 가치가 있는 것임을 알게 하려고

    미리 그 영광의 나라를 보여주셨습니다.

 

 2) 그 나라에 들어가기 전에 우리가 먼저 해야 할 일 :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7절)

 

            7. 그때 마침 구름이 와서 그들을 뒤덮더니 그 구름 속에서 소리가 나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 하는지라.

 

    그러나 우리가 그 나라에 들어가기 전에 먼저 우리가 이 땅에서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그것은 이 땅에 있는 동안 주께서

    우리에게 명하신 말씀을 듣고 그 말씀에 충성하는 일입니다.

 

    이 땅에 사는 동안 이 땅의 일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일을 바라보며 사는 일을 먼저 해야 합니다.

    주님의 나라의 들어갈 간절한 열망을 가지며

    주께서 오실 그날을 준비하며 사는 삶을 먼저 살아야 합니다.

    그래야 그 나라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2 : 그러나 그 영광의 나라를 위해 이 땅에서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1. 변화산 아래에서 벌어진 일 : 귀신 들려 고통받는 아이

 

 1) 변화산 아래에서 예수님을 기다리고 있는 한 아이의 아픔(14~18절)

 

           14. 이에 그들이 (산에서 내려와) 다른 제자들에게 와서 보니

                큰 무리가 그들을 둘러싸고 있고 서기관(율법학자)들이 그들과 논쟁하더니,

           15. 온 무리가 모두 예수님을 바라보고 몹시 놀라며 곧 달려와서 문안하거늘

           16.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물으시되 “너희가 무슨 일로 그들과 논쟁을 하고 있느냐?”

           17. 무리 가운데 한 사람이 예수께 대답하되

              “선생님, 말 못 하는 벙어리 귀신에 들린 내 아들을 선생님께 데려왔나이다.

           18. 어디서든지 귀신이 그를 사로잡으면(귀신이 그에게 발작을 일으키면)

               아이가 곧 거꾸러져 입에 거품을 흘리고 이를 갈며 몸이 뻣뻣하게 굳어지는지라.

               그리하여 내가 선생님의 제자들에게 그 귀신을 쫓아내 달라고 부탁했으나

               그들이 능히 쫓아내지 못하더이다.”

 

    예수님과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이 변화산에서 특별한 경험을 하고

    산에서 내려와서 다른 제자들이 있는 곳으로 와 보니

    큰 무리가 제자들을 둘러싸고 있었고,

    제자들은 서기관(율법학자)들과 논쟁을 벌이고 있었습니다.

 

    어떤 사람이 귀신 들린 아들을 고쳐 달라며 제자들에게 데려왔으나
    그들이 고쳐주지 못했기 때문에 벌어진 논쟁이었습니다.

 

 2) 변화산에서의 영광과 산 아래의 아픔의 대조 : 상반된 두 그림

 

    우리는 여기에서 정반대의 두 그림을 봅니다.

 

    하나는 예수께서 변화산에서 변형되셨을 때

    베드로가 그곳이 너무 좋아 그곳에 초막 셋을 짓고

    엘리야와 모세와 예수님과 함께 살겠다고 말한 장면(막 9:5)이고,

 

    다른 하나는 귀신 들린 아들로 인하여 고통받는 아버지와,

    이 일로 서기관과 제자들 사이에 논쟁이 벌어진 장면입니다.

 

    첫 번째 그림인 변화산 위에서의 그 영광스러운 일은

    장차 우리가 하나님 나라에서 영원히 누리며 살게 될 일을 나타낸 것이고,

    두 번째 그림인 아들로 인하여 고통받는 아버지와,

    이 일로 일어난 논쟁은 우리가 지금 이 땅에서 경험하고 있는 아픔들입니다.

 

 3) 아직은 이 땅의 아픔의 소리를 들어야 할 때

 

    베드로가 이곳이 좋다고 했던 바로 그곳에 머잖아 우리도 가게 될 것입니다.

    주께서 우리를 그곳으로 인도하시기 위해서 우리에게 오셨습니다.

 

    그러나 그날이 오기까지는 이 땅에 있는 사람들의 아픔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우리를 구하여 달라고 외치는 주님을 알지 못하는 자들의 영들이 부르짖는

    그 아픔의 소리들을 들어야 합니다.

 

 4) 그날이 오기까지 : 아직은 사명의 자리에 있어야 할 성도들

 

    주께서 우리를 그 나라로 인도하시기까지는

   “이곳이 좋사오니”를 외치며 그 자리에 머물러 있으려 하면 안 됩니다.

    주께서 우리를 위해 이 땅에 오셨듯,

    우리도 구원해야 할 자들을 향하여 나아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이 자기들끼리는 아주 신령하고 좋은 공동체를 이루었으나

    그들이 자기들끼리만 그 기쁨을 나누려 하자

    주께서 그들에게 핍박을 가하여 널리 흩어지게 하셨던 것을 기억하십시오.

 

 

2.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1) 아이의 아버지의 요청 : 무엇을 하실 수 있으시면 도와주옵소서(22절)

 

           22. 귀신이 아이를 죽이려고 여러 번 불 속에도 던지고 물속에도 던졌나이다.

                그러나 무엇을 하실 수 있거든 우리를 불쌍히 여기사 도와주옵소서.”

 

    예수님의 제자들이 귀신을 쫓아내지 못하자 아이의 아버지는 예수께 와서

   “무엇을 하실 수 있거든 우리를 불쌍히 여기사 도와주옵소서”하고 간청합니다.

 

    이 요청은 혹시 능력이 있다면 도와달라는 것이니

    전혀 믿음의 간구가 아닙니다.

    이런 믿음으로는 역사가 일어나지 않습니다.

 

 2)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23절)

 

           23. 예수께서 이르시되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 하시니

 

    그러므로 예수께서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하고 그 사람을 책망하십니다.

 

    우리가 주님을 믿고 주께서 우리의 기도를 들으신다면

    이루어지지 못할 일이 없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지금 모든 일을 행하실 수 있는 능력을 가지신 예수께서

    그의 곁에서 그의 간구를 들으실 준비를 하고 계십니다.

    그럼에도 “무엇을 할 수 있거든”이라고 믿음 없는 말을 했으니

    예수께서 책망하신 것입니다.

 

 3) 나의 믿음 없음을 도와주옵소서(24절)

 

           24. 곧 그 아이의 아버지가 큰 소리로 외쳐 가로되

               “내가 믿나이다.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주소서!” 하더라.

 

    주께서 책망하시자 아이의 아버지는 깜짝 놀라 외치며 대답합니다.

   “내가 믿나이다. 나의 믿음 없음을 도와주옵소서.”

 

    주께 자기의 믿음을 확실히 고백하며,

    혹시 자기의 믿음이 주께서 받으실 만한 믿음에 이르지 못했을지라도

    책망하지 마시고 도와 달라는 간청입니다.

 

    주께서 그의 청을 받아들이시고

    그의 아들에게 붙은 귀신을 꾸짖어 내쫓으셨습니다.

    우리의 연약함을 돕기 위해 주께서 이 땅에 오셨습니다.

 

묵상 :

 

    이 아이의 아버지의 기도처럼 우리도 주께

    우리의 연약함과 우리의 믿음 없음을 도와달라고 간구합시다.

    주께서 주님의 성령을 보내셔서 우리를 도우십니다.

 

 

3 : 그 영광의 나라를 가로막는 자들에 대한 예수님의 진노

 

1. 다른 사람을 실족하게 하는 이에 대한 주님의 진노

 

 1) 교회 안에 파당을 만들어 성도를 실족시키는 일을 하지 마십시오(41절)

 

           41. 누구든지 너희가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라(그리스도의 사람이라) 하여

               물 한 잔이라도 주는 자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가 결단코 상을 잃지 않으리라.

 

    그가 단지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마치 내 가족 내 형제를 만난 것처럼 그를 반기며 그에게 물 한 잔이라도 대접하는 자는

    결단코 그 상을 잃지 않으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주님을 믿는 그리스도인 안에서 모든 당파성을 배격하는 말씀입니다.

 

    어느 교단 어느 교파에 속한 자이든, 그가 어떤 스타일의 신앙생활을 하고 있든,

    피부색이 어떻든, 어느 지방 사람이든, 학벌이 어떻든,

    그가 진보에 속한 자이든 혹은 보수에 속한 자이든 상관없이

    그가 주님을 믿어 주의 백성 된 자가 분명하다면

    그것 하나로 한 가족 한 형제처럼 대하라는 말씀입니다.

 

 2) 연약한 자를 실족하게 하는 자는 차라리 연자 맷돌을 그 목에 매어(42절)

 

           42. 또 누구든지 나를 믿는 이 소자(작은 자, 이 미천한 자, 이 보잘것없는 자) 가운데

               하나라도 실족하게 하면(넘어지게 하면, 죄짓게 하면),

               차라리 연자 맷돌을 그 목에 매어 바다에 던져지는 것이 나으리라.

 

    그러나 반대로 주님을 믿는 성도들 중에

    사회적인 신분이 나보다 못한 자라 하여 멸시하고 천대한 자들은

    하나님의 진노를 받게 될 것입니다.

 

    그를 멸시하고 천대한 것 때문에

    그 사람이 마음에 실족하여 주님을 믿는 신앙을 떠나게 되었다든지,

    그 상처 난 마음을 절제하지 못하고 죄를 범하게 되었다면

    차라리 연자 맷돌을 매고 바다에 던져지는 것이 낫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런 자는 살아날까 봐 겁이 나니 아예 다시는 살지 못하도록

    그 무거운 돌을 목에 매고 깊은 바다에 던지라는 말씀입니다.

    그런 자는 살아봐야 다시 다른 사람을 실족하게 할 것이 뻔하기 때문입니다.

 

 3) 교회 안이나 밖이나 사람을 두고 귀족과 천민의 계층을 만들지 마십시오.

 

    세상 사람들이 보는 눈으로 성도들을 바라보지 마십시오.

    사회에서 사장님이라고 교회에서까지 사장님이 아닙니다.

    사회에서 청소부라고 교회에서까지 청소부가 아닌 것입니다.

 

    초대교회에서 많은 노예들이 교회의 감독(오늘날의 목사)이 되었습니다.

    빌레몬은 그의 노예였던 오네시모가 감독으로 있는 교회에서

    집사로서 평생 그를 섬겼습니다.

 

묵상 : 신분의 계층을 만드는 자, 그가 먼저 지옥에 빠지게 될 것입니다.

 

    교회 안이나 밖이나 간에 사람의 신분과 계층을 구별하는 자는

    결단코 지옥의 판결을 벗어나지 못할 것입니다.

    보수 진보의 차이, 부자와 가난한 자의 차이, 학벌의 차이 운운하며 사람을 차별하면

    그 사람이 먼저 하나님께 진노를 받게 될 것임을 기억하십시오.

 

 

2. 자기 자신을 실족하게 하는 것에 대한 태도

 

 1) 그러나 실족하게 하는 것이 내 안에 있다면(43~49절)

 

            (43~49절 성경구절 아래)

 

    그러나 만일 실족하게 하는 것이 나 자신에게 있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예수님은 나를 범죄하게 하는 것이 내 손이라면 차라리 그 손을 찍어 버리고,

    내 발이 나를 넘어지게 한다면 그 발을 잘라 버리며,

    내 눈이 나를 죄에 빠지게 한다면 그 눈을 빼어 버리라고 말씀하십니다.

 

    불구자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건강한 몸으로 지옥에 떨어지는 것보다 낫기 때문입니다.

 

 2) 이 말씀은 내 소중한 것을 포기할 정도로 천국을 간절히 사모하는 자가 되라는 것

 

    이 말씀을 문자 그대로 자기 손과 발을 찍어 내버리라는 뜻은 아닙니다.

    손과 발과 눈은 우리 몸 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지체들입니다.

    이들 중에서 하나만 불구가 돼도 세상 살아가는 데 아주 불편합니다.

 

    그러므로 이것은 내가 손이나 발이나 눈을 아끼는 것처럼

    그렇게 특별히 소중하게 여기는 것들을 잃게 되는 한이 있더라도

    반드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야 한다는 간절한 열망과 열정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묵상 :

 

    이 세상 모든 것을 다 소유했다고 하더라도 영생을 얻지 못하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세상 모든 것을 다 잃는 한이 있더라도

    내가 어떻게 해서든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야 하리라는

    간절한 열망을 품고 살아야 하겠습니다.

 

 

3. 영원한 형벌의 장소인 지옥

 

 1) 예수님의 심판의 경고를 두려움으로 기억하십시오.(42~50절)

 

           42. 또 누구든지 나를 믿는 이 소자(작은 자, 이 미천한 자, 이 보잘것없는 자) 가운데

                하나라도 실족하게 하면(넘어지게 하면, 죄짓게 하면),

                차라리 연자 맷돌을 그 목에 매어 바다에 던져지는 것이 나으리라.

           43. 만일 네 손이 너를 죄짓게(넘어지게) 하거든 그것을 찍어 버리라.

               불구자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손을 가지고 지옥 곧 꺼지지 않는 불에 들어가는 것보다 나으니라.

           44. (없음) (어떤 사본에는 48절과 같은 말씀이 이곳에도 반복하여 기록되어 있습니다.)

               [거기는(지옥에는) 구더기(벌레)도 죽지 않고 불도 꺼지지 아니하느니라.]

           45. 또 네 발이 너를 범죄하게(넘어지게) 하거든 그것을 잘라 버리라. 저는 다리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발을 가지고 지옥에 던져지는 것보다 나으니라.

           46. (없음) (어떤 사본에는 48절과 같은 말씀이 이곳에도 반복하여 기록되어 있습니다.)

              [거기는(지옥에는) 구더기(벌레)도 죽지 않고 불도 꺼지지 아니하느니라.]

           47. 만일 네 눈이 너를 범죄하게(넘어지게) 하거든 그 눈을 빼어 버려라.

              한눈을 가지고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두 눈을 가지고 지옥에 던져지는 것보다 나으니라.

           48. 거기는(지옥에는) 구더기(벌레)도 죽지 않고 불도 꺼지지 아니하느니라.

           49. 사람마다(모든 사람이) 불로써 소금 치듯 함을 받으리라.

              (소금에 절여지듯 불에 절여질 것이다).

           50. 소금이 좋은 것이로되, 만일 소금이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그것을 다시 짜게

               하리요? 그러므로 너희 속(마음)에 소금을 간직하고 서로 화목하라” 하시니라.

 

    모든 것을 다 잃게 되는 한이 있더라도

    어떻게 해서든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야만 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왜 우리는 그 나라에 들어가기 위해서 심지어 우리의 목숨까지 걸어야만 합니까?

 

    그 나라에 들어가지 못하는 자들은

    영원한 형벌의 장소인 지옥에 떨어지게 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거기에는 구더기도 죽지 않고 불도 꺼지지 않는다고 말씀하십니다.

    사람들이 징그러워하는 온갖 벌레들이

    죽지 않고 사람에게 계속 달려들며 불도 영원히 꺼지지 않는 곳,

    그곳이 바로 지옥입니다.

    그 엄청난 곳에서 사람들이 영원히 형벌을 받는 것입니다.

 

 2) 예수께서 세 번 반복하여 경고하신 지옥의 두려움(44, 46, 48절)

 

           (44, 46, 48절 성경구절 위에)

 

    우리 말 개역성경에는 이 말씀이 48절 한 구절만 기록되어 있지만,

    어떤 사본에는 44절, 46절, 48절에 세 번이나 반복해서 기록되어 있습니다.

 

    마가복음 9장 44절과 46절을 보면 ‘없음’이라고 돼 있을 것입니다.

    그 옆에 ‘3)’이라고 작은 글씨가 있고, 성경 맨 아내 작은 글씨를 보면,

    ‘어떤 사본에 44, 46 양절에 48절과 같은 문구가 있음’이라고 돼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말 성경에 빠져 있는 부분을

    제대로 집어넣고 말씀을 읽으면 이렇게 됩니다.

 

    손이 만일 범죄하면 찍어 버리라고 하시고는

    지옥은 벌레도 죽지 않고 불도 꺼지지 않는다고 하셨고,

    또 발이 범죄하면 잘라 버리라고 하시고는

    지옥은 벌레도 죽지 않고 불도 꺼지지 않는다고 다시 반복하셨고,

    눈이 범죄하면 빼어 내버리라고 하시고는

    또다시 지옥은 벌레도 죽지 않고 불이 꺼지지 않는다고 반복하신 것입니다.

 

묵상 :

 

    본문에서 예수님은 지옥에는 절대로 들어가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아주 강력하게 강조하셨습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지옥에 가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우리는 반드시 주님의 나라에 들어가야만 합니다.

    주님의 나라에 대한 간절한 열망과 열정을 잃지 않게 하십시오.

 

 

4. 불로써 소금 치듯 함을 받으리라(49절)

 

           49. 사람마다(모든 사람이) 불로써 소금 치듯 함을 받으리라.

              (소금에 절여지듯 불에 절여질 것이다).

 

    불로써 소금 치듯 함을 받으리라는 것은 다음 두 가지 뜻이 있습니다.

 

 1) 소금으로 절여지듯 지옥에 있는 사람들이 모두 불에 절여지게 된다는 것

 

    첫 번째 뜻은, 바로 전 구절인 48절의 말씀에 이어서,

    지옥이 어떤 곳인지를 설명하는 것입니다.

 

    지옥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가 마치 소금에 절여지듯

    그렇게 불에 절여지게 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배추를 절일 때 배추 안팎에 소금을 골고루 뿌려 배추가 잘 절여지게 하듯,

    생선을 절일 때 생선을 온통 소금 구덩이 속에 집어넣듯,

    지옥에 있는 사람들은 온통 불이 가득한 곳에 빠져서

    그렇게 영원히 살게 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2) 소금으로 정결하게 되듯 불로서 정결하게 된다는 것

 

    그러나 이 말씀에는 또 하나의 뜻이 있습니다.

    하나님께 바쳐질 제물을 소금으로 정결케 하듯 불로써 정결케 하여,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들을 불의 시험을 통해

    정결한 하나님의 백성이 되게 하시리라는 뜻입니다.

 

    우리가 단지 하나님 나라의 열망을 가지고 있는 것만으로는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 없습니다.

    우리 안에 죄가 사라져서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이 돼야만 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불 시험에 지나게 하셔서

    우리에게 있는 속된 것을 제거하시고

    우리를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이 되게 한다는 뜻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 할 때에 믿음도 전혀 없는 오합지졸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광야 40년을 지나는 동안

    훌륭한 믿음을 가진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이 됐습니다.

 

    이처럼 마지막 때에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들을 불 시험에 지나게 하셔서

    하나님의 거룩한 천국 백성이 되게 하시는 것입니다.

 

    다윗에게 기름을 부으신 후 10년간 사울에게 쫓기는 불 시험을 당하게 하신 것처럼,

    하나님 나라에 대한 열망을 가진 자에게 불 시험을 지나게 하셔서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이 되게 하십니다.

 

묵상 :

 

  ➀ 하나님 나라의 열망을 가진 자는 불시험을 이길 수 있습니다.

 

      불시험을 지나는 과정에서

      내가 가진 하나님 나라를 향한 열망이 진짜인지 가짜인지가 구별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힘들고 어려운 고난이 닥칠 때에도

      내가 지금 당하는 시련은 장차 내가 받을 영광과 비교도 되지 않는 것이라 여기고

      감사함으로 이기는 자가 되십시오.

 

  ➁ 마지막 때의 불시험을 이기는 믿음을 가지십시오.

 

      장차 주께서 이 땅에 다시 오시기 전에

      우리가 당해야 할 불시험이 어떤 것인지 우리는 잘 알지 못합니다.

 

      다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그때에 믿음을 가진 자를 볼 수 있겠느냐고 주께서 탄식하실 만큼

      그 시험이 결단코 만만치 않은 시험이 될 것이라는 점입니다.

 

      그러나 그 불시험이 아무리 힘들고 어려운 것이라 할지라도

      하나님 나라에 대한 간절한 열망을 가진 자들은

      반드시 그 시험을 이겨 주님의 나라에 들어가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나라에 대한 열망과 열정을 잃지 않게 하십시오.

 

 

4 : 무엇을 얻느냐가 아니라 무엇을 포기할 수 있느냐의 문제

                (마가복음 8:34~38)

 

           34. 예수께서 제자들과 자기를 따르는 무리를 다 불러놓고 이르시되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35. 누구든지 자기 목숨(생명)을 구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와 복음을 위하여 자기 생명을 잃으면 구원하리라.

           36.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자기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37. 사람이 무엇을 주고 자기 생명과 바꾸겠느냐?

           38. 누구든지 음란하고 죄 많은 이 세대에서 나와 내 말을 부끄러워하면

                 인자도 아버지의 영광으로 거룩한 천사들과 함께 올 때에

                 그를 부끄럽게 여길 것이라.”

 

1. 자기 십자가를 진다는 것은?

 

    자기 십자가를 진다는 것은 다음과 같은 뜻이 있습니다.

 

 1) 주께서 자기의 사명을 지신 것처럼 우리도 각자 맡겨진 사명을 지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사명은 온 세상 만민을 위하여 십자가에 달리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공생애를 시작하시는 그 순간부터

    십자가에 달리실 그 사명을 위해 일하셨습니다.

 

    죄 없는 자로 십자가에 달리셔야 하므로

    40일 동안 마귀에게 시험을 당하셔서 죄 없음을 증명하셨습니다.

    그리고 제자들에게 자신이 누구인지를 알리셔서

    그 제자 중의 하나가 주님은 그리스도시라고 고백하자,

    이젠 십자가에 달려야 할 때가 왔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가 얼마나 고통스러운 것인지를 잘 아시면서도

    그 길을 향하여 달려오셨습니다.

    이처럼 우리도 주께서 우리에게 맡기신 사명에

    끝까지 충성된 자가 되는 것이 바로 자기 십자가를 지는 것입니다.

 

 2) 주께서 원하시면 언제든 내 것을 포기할 수 있는 믿음과 각오로 살아가는 것.

 

    어느 날 제자들을 부르시니 그들은 곧 주님을 따랐습니다.

    이처럼 주께서 나에게 명하시면

    내가 가진 모든 것, 나의 모든 꿈과 계획들을 모두 포기할 수 있는

    그런 믿음과 각오와 결단으로 살아가는 것이 자기 십자가를 지는 것입니다.

 

    내가 소중히 여겼던 모든 것들을 포기할 수 있다는 것은

    내가 그만큼 하나님 나라를 간절히 열망하고 있다는 것을 나타내는 것이 될 것입니다.

 

 3) 주께 무엇을 얻었느냐가 아니라

    주님을 위해 무엇을 포기할 수 있느냐의 문제

 

    오늘날 많은 사람이 주께로부터 무엇을 얻었는지를 가지고

    자기의 믿음의 정도를 나타내려 합니다.

    주께 기도했더니 우리 교회를 얼마나 부흥시켜 주셨다든지,

    주께 기도했더니 우리 가정이 얼마나 부흥했다는 식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져야 할 십자가는 주께 떼를 쓰며 기도하여

    무엇을 더 얻고 무엇을 더 부흥시켰느냐의 하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주님을 위해서 무엇을 포기할 수 있느냐,

    이것이 우리가 져야 할 십자가입니다.

    이것이 바로 주님을 향하여 가져야 할 열망이고 열정입니다.

 

묵상 : 이런 믿음을 가진 자를 통해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를 이루어집니다.

 

    이런 믿음을 가진 자를 통해서 하나님의 역사는 이루어집니다.

    오늘날 우리 시대에도 이런 자들을 통해서

    이 땅의 어디에선가 하나님의 역사는 계속 일어나고 있습니다.

 

 

2. 소금이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50)

 

           50. 소금이 좋은 것이로되,

               만일 소금이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그것을 다시 짜게 하리요?

               그러므로 너희 속(마음)에 소금을 간직하고 서로 화목하라” 하시니라.

 

    이스라엘에는 땅에서 나는 소금(암염巖鹽)이 있습니다.

    암염에서 소금을 빼고 나면, 맛을 잃은 흙과 모래만이 남습니다.

    사람들은 이것도 암염에서 나온 것들이므로 ‘소금’이라고 부르지만,

    흙과 모래만 남은 맛을 잃은 소금입니다.

 

    예수님은 이 맛 잃은 소금을 짜게하기 위해 다시 소금을 뿌리겠느냐 하는 것입니다.

    이런 것들은 아무 것에도 쓸데없어 버려질 수밖에 없습니다.

 

    이것은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신실함을 잃어버린다면

    아무 쓸데 없어 버려지게 된다는 것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주께서 인정하실 만한 참된 믿음을 갖지 못한 사람은

    그날에 버림받아 영원한 멸망을 받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결 론 : 끝까지 이기는 자에게는

 

선지자의 자기 연민의 유혹

 

 1) 선지자의 고독 : 외로움과 고통에 탄식하며 호소하는 예레미야(렘 15:10)

 

           10. 내게 재앙이로다, 내 어머니여.

                어머니께서 나를 온 세계에서 다투는 자와 침을 당할 자로 낳으셨도다.

                내가 아무에게도 빌려주지도 아니하였고 빌리지도 아니하였건마는

                다 나를 저주하는도다.

 

    유다 백성들이 하나님의 말씀도 배척하고 있는 판국이고 보니

    하나님의 신실한 사역자인 예레미야를 배척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그러나 일선에서 사역을 담당하고 있는 예레미야의 입장에서는

    그들에게 잘못한 일도 없는데 당하는 고통일 뿐입니다.

 

    동족 유다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심판을 전하는 예레미야에게 유다 백성들은 물론

    그의 고향 사람들인 아나돗 사람들까지도 암살을 계획하는 지경에 이르고 보니

    예레미야가 고통에 탄식하며 호소합니다.

 

    백성들로부터 끊임없이 조롱과 박해를 받는 자신의 처지를 한탄하던 예레미야는

    자신을 낳아주신 어머니에게 불평하기까지 합니다.

 

 2) 탈진(burnout)에 빠진 예레미야

 

    하나님의 말씀에 열심히 순종했습니다. 참으로 열심히 살았습니다.

    그들에게 거짓을 행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런데도 이런 고통이 쉴 새 없이 밀려오는 것은 어찌 된 일이냐고 한탄합니다.

 

 3) 최선을 다했음에도 보람이 없는 현실에 고통받는 예레미야

 

    그러나 이런 핍박보다 예레미야를 더 고통스럽게 하는 것은,

    이렇게 고통을 받을 만큼 열심히 했음에도 아무런 보람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가 죽을 만큼 열심히 일했으나 말씀을 받는 자도 없고

    유다의 어디에도 구원의 조짐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네게로 돌아오려니와 너는 그들에게로 돌아가지 말지니라(19).

 

           19.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네가 만일 돌아오면 내가 다시 너를 이끌어서 내 앞에 세울 것이며,

                네가 만일 천한 것에서(천한 것을 버리고) 귀한 것을 취할 것 같으면

                너는 내 입처럼 될 것이라.

                그들은 네게로 돌아오려니와 너는 그들에게로 돌아가지 말지니라.

 

    이렇게 지쳐있을 때 자칫하면 세상의 즐거움의 자리로 빠질 수 있습니다.

    세상 즐거움은 먹고 마실 때에,

    또는 그 쾌락에 잠길 때에 곧바로 그 효력이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그 즐거움에 빠져 있는 동안

    잠시라도 내가 어떤 고통 중에 있는지 잊을 수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세상 즐거움의 달콤함에 빠집니다.

 

    그러나 그런 것들은 사명의 자리를 잃게 만듭니다.

    그러므로 그들이 예레미야에게로 돌아오는 일은 하려니와,

    예레미야가 그들에게로 가는 일은 결단코 하지 말라고 엄히 명령하십니다.

 

 

외로움과 고통은 사역을 맡은 이의 훈장 같은 것입니다.

 

    코로나 사태 이후로 많은 사역자들이 외로움과 고통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이 글을 읽고 있는 사람 중에 혹시 본문의 예레미야처럼

    하나님께서 명하신 사역을 담당하는 중에 외로움과 고통에 시달린 자가 있습니까?

 

    만일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도 좌절과 탈진 상태에 있다면

    하나님께서 예레미야에게 말씀하신 것처럼 천한 것과 귀한 것을 구별하십시오.

 

    당신의 사역의 가치평가를 바르게 하십시오.

    정금과 찌꺼기를 구별할 줄 알아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당신을 다시 세우시고

    하나님의 보호막으로 당신을 보호하실 것입니다.

 

    지금 당신을 힘들게 하고 있는 것이 하나님 보시기에 찌꺼기에 불과한 것이라면

    하나님의 은총의 말씀을 붙잡고 다시 일어서십시오.

    그러면 하나님께서 다시 새 힘을 주십니다.

 

 

주님

 

주님의 나라의 그 영광과 기쁨이

얼마나 크고 놀라운지를 깨닫게 하옵소서.

 

그 나라에 들어가기를

간절히 원하고 사모하는 자가 되게 하옵시고,

 

그 나라에 들어가려는 간절함으로

이 땅에서 겪어야 할 아픔과 고난도

달게 받는 자가 되게 하옵소서.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셔서

우리도 능히 주님의 사역을

감당할 수 있게 하옵소서.

 

힘들고 어려울수록

더욱 말씀과 사역의 자리에서 떠나지 않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