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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 설교문

[추수감사절]요셉의 믿음, 기다림과 견딤과 인내(11월 19일; 창 41:17~45)

작성자송호영|작성시간23.11.20|조회수284 목록 댓글 0

설교제목 : 요셉의 믿음, 기다림과 견딤과 인내

     부제 : 역사를 보는 두 시각, 역사의 주인을 누구라고 믿는가?

설고본문 : 창세기 41:17~45(참고, 39~41장)

설 교 자 : 송호영 목사

설 교 일 : 2023년 11월 1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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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론 : 야곱의 아들들의 이야기

 

    야곱의 아들들 중에서 특히 주목할 만한 사람은 요셉과 유다입니다.

    오늘은 그 중에서 요셉의 믿음의 이야기를 살펴보려 합니다.

 

    요셉의 믿음의 주제는 기다림과 견딤과 인내입니다.

    그의 인내력으로 견딘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믿기에 기다리고 견딘 것,

    이것이 요셉의 믿음의 주제입니다.

 

    먼저 요셉이 형들에게 미움을 받아

    노예로 팔렸다가 애굽의 총리가 되기까지의 과정을 살펴보겠습니다.

 

1) 형들의 미움을 받은 요셉

 

    야곱은 노년에 얻은 아들 요셉을 특별히 사랑해서

    열두 아들 중에서 요셉에게만 채색옷을 지어 입혔습니다.

    또 요셉은 형들의 허물을 아버지에게 일러바치곤 하였으므로

    요셉은 형들에게 시기와 미움을 받았습니다.

 

    거기에다 요셉이 형들의 곡식 단이 자기의 곡식 단에게 절을 하는 꿈과,

    해와 달과 열한 별이 자기에게 절하는 꿈을 꾸었다는 말을 한 후부터

    더욱 요셉을 미워하게 됩니다.

 

 2) 요셉을 구덩이에 던진 형제들

 

    그 후 야곱은 그의 아들들이 양을 치기 위해

    과거 그가 가나안의 타락한 문화에 빠졌었던 세겜까지 갔다는 소리를 듣고,

    혹 그의 아들들이 가나안의 우상 문화에 빠질까 염려되어

    사랑하는 아들 요셉을 세겜으로 보냅니다.

 

    요셉은 형을 찾아 80km쯤 떨어진 세겜으로 갔다가

    다시 그곳에서 24km 떨어진 도단까지 갑니다.

 

    요셉의 형들이 멀리서 그가 오는 것을 보고 요셉을 죽이려 하자

    르우벤이 나중에 구할 생각에 비어 있는 구덩이에 던져 넣자고 말합니다.

    이에 그들은 요셉의 채색옷을 벗기고 물이 없는 빈 구덩이에 던져 넣습니다.

 

 3) 보디발의 집에 노예로 팔려 간 요셉

 

    요셉의 형들이 요셉을 구덩이에 던져 넣고 음식을 먹다가

    마침 지나가는 이스마엘 상인들을 봅니다.

    유다는 동생을 살릴 생각에 그를 죽이지 말고 저 미디안 상인들에게 팔자고 제안합니다.

 

    형제들이 유다의 제안을 받아들여

    그들은 이스마엘의 미디안 상인들에게 은 20세겔을 받고 팔아넘깁니다.

 

    요셉의 형들은 숫염소를 죽은 후 요셉의 옷에 묻혀서 아버지에게로 가져갑니다.

    야곱은 자기 아들이 맹수에 찢겨 죽은 줄 알고 애통해합니다.

 

    요셉은 바로의 신하 보디발에게 팔려 노예가 됩니다.

 

 

1 : 절망의 구덩이에 빠진 요셉

 

1. 구덩이에 빠진 것과 같은 요셉의 인생

 

 1) 완전한 절망 안으로 들어간 요셉

 

    요셉이 미디안의 이스마엘 사람들에게 노예로 팔리기 전에

    형제들로 인하여 빠졌던 구덩이는

    앞으로 13년여 동안 요셉이 살아갈 삶의 모습을 나타냅니다.

 

    전혀 빠져나올 수 없는 완벽한 절망의 공간 구덩이는

    요셉이 노예와 감옥살이로 완전한 절망의 삶을 살아가게 되리라는 것을

    암시하는 것이었습니다.

 

 2) 보디발의 집에 씨종으로 팔린 요셉(39:1)

 

            1. 요셉이 이끌려 애굽으로 내려가매

              바로의 신하인 시위대장(왕의 경호실장) 애굽 사람 보디발이

              요셉을 그리로 데려간 이스마엘 사람들에게서 그를 사니라.

 

    어느 나라든지 외국인에게 노예가 된 사람들은

    그의 자녀에 자녀까지 영원히 노예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더구나 당시 세계 최강의 나라인 애굽의 2인자 보디발의 집에 팔렸으니,

    요셉의 인생은 속된 말로 끝장난 것이었습니다.

    빛이 조금도 보이지 않는 완전한 암흑입니다. 단 1%의 희망도 그에게는 없습니다.

    그 자녀에 자녀 대대로 노예로 살아가는 씨종으로 요셉은 팔렸습니다.

 

 

2. 요셉에게 내려진 시험

 

 1) 그러나 요셉은 그런 완전한 절망의 삶에서도 전혀 실망하지 않았습니다.

 

    괴로워하지도 않았고, 우울증에 사로잡히지도 않았습니다.

    그는 언제나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자신과 함께하신다는 것을 믿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2) 요셉의 하는 모든 일에 복을 주신 하나님(39:2~3)

 

            2.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하시므로 요셉이 형통한 자가 되어

               요셉이 그의 주인 애굽 사람의 집에 있으니

            3. 요셉의 주인이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하심을 보며,

               또 여호와께서 그의 범사에(그가 하는 일마다) 형통하게 하시는 것을 보았더라.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요셉에게 복을 내리셨습니다.

    그로 인하여 그의 주인인 보디발의 집의 모든 것에 복을 내리셨습니다.

 

    복이 있는 집에 요셉이 들어간 것이 아닙니다.

    그 땅이 좋은 명당이라 복이 임한 것도 아닙니다.

    요셉이 복이 있는 사람이니 그로 말미암아 그의 집이 복을 받은 것입니다.

 

 3) 요셉을 유혹하는 보디발의 아내(39:7)

 

            7. 얼마쯤 시간이 흐른 후에 그 주인의 아내가 요셉에게 눈짓하다가

               동침하기를 청하니(자신과 함께 침실에 가자고 유혹하니)

 

    그러던 어느 날 주인의 아내가 요셉에게 눈짓하며 침실로 가자고 유혹합니다.

    당시 애굽 사람들은 히브리 남자들을 좋아했다고 합니다.

    더구나 요셉은 그의 어머니 라헬을 닮아서 용모가 빼어나고 아주 멋진 남자였습니다.

 

    요셉은 주인께서 그의 소유의 모든 것을 맡기셨으나,

    단 하나 그의 아내만은 맡기지 않으셨다며 거절했습니다.

    요셉은 하나님 앞에 죄를 범할 수 없다며

    아예 그 여자와 한 자리에 같이 있지도 않았습니다.

 

 4) 자신을 자유인으로 풀어줄 능력이 있는 자의 유혹을 거절한 요셉

 

    우리는 요셉이 이 여인의 유혹을 거절했다는 것에 주목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이것은 그의 삶이 완전한 절망의 상태에서 온 것이기 때문입니다.

 

    자신을 자유인으로 만들어 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자신을 노예로 팔아버린 형들에게

    원수를 갚을 힘과 권세가 있는 자의 유혹을 거절한 것입니다.

 

 

3. 누명을 쓰고 옥에 갇힌 요셉

 

 1) 요셉을 유혹하는 보디발의 아내

    그 여인은 요셉을 자유인으로 만들 권세를 가진 자입니다(39:11~12).

 

           11. 그러던 어느 날 요셉이 시무하러 그 집에 들어갔더니

               마침 집안에 그 집 종들이 하나도 거기 없었더라.

           12. 주인의 아내가 요셉의 옷자락을 붙잡고 가로되 “나와 함께 침실로 가서 동침하자.”

               요셉이 붙잡힌 자기 옷을 그 여인의 손에 버려둔 채

               뿌리치고 도망하여 집 밖으로 나가매

               주인의 아내는 요셉을 아주 끈질기게 유혹했습니다.

               주인의 아내는 요셉의 준수한 용모에 반하여 요셉을 요구했으나,

               요셉의 입장에서는 그 여인이 주인의 아내라는 점이 유혹 거리가 됩니다.

 

    지금 요셉은 구덩이 안에 빠진 것처럼 완전한 절망의 상태에 있었고,

    주인의 아내는 그런 요셉을 자유인으로 만들어 줄 수도 있고,

    상황에 따라서는 형들에게 복수를 할 수도 있었기 때문입니다.

 

 2) 그러나 요셉은 하나님의 뜻을 따르기로 합니다.

 

    요셉은 아예 유혹을 받을만한 자리를 만들지 않습니다.

    그 옛날 하와는 선악과 주위를 맴돌다가

    스스로 유혹에 빠져 선악과를 따먹고 말았습니다.

    그러므로 요셉은 아예 유혹을 받을만한 자리를 만들지 않기로 합니다.

 

 3) 어느 날 집안에 그 여인과 단 둘만 있는 상황이 벌어지고(39:11~12)

 

            (11~12절 성경구절 위에)

 

    그러나 아무리 조심해도 어쩔 수 없는 경우가 있습니다.

    아예 그럴 여지를 만들지 않기 위해

    주인의 부인이 있는 집안으로는 아예 발을 들여놓지를 않았는데,

    어느 날 그 집 안으로 들여가야만 할 일이 생겼습니다.

 

    그런데 마침 그 집 안에 다른 종들이 하나도 없고

    그 주인의 아내 혼자만 있는 것입니다.

    아마도 주인의 아내가 일을 꾸미고 다른 종들을 다 내보냈을 것입니다.

 

 4) 요셉에게 강간범의 누명을 씌우는 보디발의 아내(13~18절)

 

           13. 여인은 요셉이 그 옷을 자기 손에 버려둔 채 집 바깥으로 뛰어나가는 것을 보고

           14. 집에서 일하는 종들을 불러 그들에게 이르되

              “보라, 주인이 우리를 희롱하려고(웃음거리로 만들려고)

               히브리 사람을 우리에게 데려왔도다.

               그가 나를 겁간코자(욕보이려고) 내게로 달려들기에 내가 크게 소리 질렀더니

           15. 그가 나의 소리 질러 부름을 듣고 그 옷을 내게 버려둔 채

               바깥으로 도망하여 나갔느니라” 하고

           16. 주인의 아내는 주인이 집에 돌아올 때까지 그 옷을 곁에 두고 있다가

           17. 주인이 돌아오자 이 일에 대하여 그에게 고하여 가로되

              “당신이 우리에게 데려다 놓은 저 히브리 사람이 나를 희롱하려고 내게 달려들기로

           18. 내가 사람 살리라고 고함을 질렀더니,

               그가 자기 옷을 나한테 버려두고 집 밖으로 도망하여 나갔나이다.”

 

    주인의 아내는 요셉의 옷을 아주 단단히 붙잡고는

    침실로 가자고 거의 협박하듯 말하였습니다.

    그러자 요셉은 그 옷을 여인의 손에 버려둔 채 바깥으로 뛰어나갔습니다.

 

    여인은 요셉이 옷까지 벗어두고 황망하게 도망하는 모습을 바라보고는

    요셉을 죽이기로 결심합니다.

 

    남편이 돌아오자, 여인은 요셉의 옷을 내밀며 요셉이 자기를 겁탈하려 했으며,

    자기가 놀라 소리를 지르자, 옷만 놔둔 채 도망갔다고 거짓말을 합니다.

 

 5) 왕에게 모반한 자가 들어가는 감옥에 들어간 요셉(19~20절)

 

           19. 주인은 자기 아내가 자기에게 고하기를

              “당신의 종이 나에게 이런 짓을 했다”하는 말을 듣고 심히 노한지라

           20. 이에 요셉의 주인이 요셉을 잡아 옥에 넣으니 왕의 죄수를 가두는 곳이었더라.

               요셉이 감옥에 갇혔으나

 

    이런 경우 보통은 노예가 주인을 겁탈하려 했으니

    전후 사정 따질 것도 없이 무조건 사형입니다.

    그런데 어찌 된 영문인지 주인은 크게 화를 내면서도

    요셉을 죽이지 않고 그의 집 안에 있는 감옥에 집어넣습니다.

 

묵상 : 세상에는 보디발의 아내와 같은 교활한 자들이 있습니다.

 

    그 여인은 단지 요셉이 자기의 제안을 거절했을 뿐인데,

    보디발의 집안 전체를 희롱한 것처럼 몰아갑니다.

    악은 자기가 저질러놓고 요셉이 악의 근원인 것처럼 몰아갑니다.

 

    세상에는 이렇게 자기가 한 일을 덮기 위해

    다른 사람에게 뒤집어씌우는 일들이 종종 있습니다.

 

    하지만 역사의 주인이신 하나님께서 이 일을 보셨습니다.

    땅이 보고 하늘이 보고 하나님께서 보셨습니다.

    그러므로 당장은 이런 사람이 승리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역사는 사필귀정(事必歸正), 하나님 뜻대로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당장의 이익에 급급하지 말고 늦더라도 주님 뜻대로 살아갑시다.

 

 

2 : 역사의 주인을 누구로 믿느냐에 대한 질문과 시험

 

1. 이것은 역사의 주인이 누구라고 믿느냐에 대한 질문입니다.

 

➠ 이것은 역사의 주인이 ‘누구라고 믿느냐’하는 것에 대한 질문입니다.

 

    세상에는 두 종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하나는 자신이 역사의 주인이라 믿는 사람들,

    다른 하나는 하나님께서 역사의 주인이라 믿는 사람들입니다.

 

 1) 자신이 역사의 주인이라 믿는 사람들

    ➠ 자신이 역사의 주인이라고 믿는 사람

 

    자신이 역사의 주인이라는 것은

    자신이 계획하고 자신이 생각한 대로

    자기 인생을 살아간다는 뜻입니다.

 

    이런 사람은 겉으로는 거룩하게 보일지라도

    결국 자기를 위해 사는 인생입니다.

 

  • 만일 요셉이 자기가 자기 인생을 산다는 이런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이었다면

 

    만일 요셉이 자기가 계획하고 자기가 생각한 대로

    자기 인생을 살아가는 적극적인 사고방식의 소유자였다면

    보디발의 아내의 유혹을 결코 이길 수 없을 것입니다.

 

    이것은 단순히

    한 여인이 한 남자를 유혹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요셉에게 자유를 줄 수 있고, 뿐만 아니라

    자신을 노예로 팔아넘긴 형제들에게 복수할 힘을 가진 여인이

    그에게 마음을 주고 있다고 표현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요셉이 그 여인을 유혹해야 할 판에 그 여인이 먼저 요셉에게 다가왔으니

    노예로 있는 요셉에게 이보다 더 좋은 기회는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 묵상 : 당신은 어떻습니까?

 

       만일 당신이 당신 자신의 인생을 살아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당신이 자신의 인생의 주인이라고 생각하신다면, 삶의 고통의 문제는 물론

       죽음까지도 모두 스스로 책임져야 합니다. 당신이 인생이 주인이라고 했으니~

 

 2) 하나님이 역사의 주인이라 믿는 사람들

 

    ➀ 그러나 하나님께서 역사의 주인이시라고 믿는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역사의 주인이라 믿는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정하신 인생의 질서대로 살아갑니다.

 

       아무리 완전한 절망이 내 앞을 가로막고 있더라도

       인간의 꼼수로 그 절망적인 상황을 벗어나려 하지 않습니다.

       일이 더디 되더라도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대로 합니다.

 

    ➁ 하나님은 내 인생을 만드시는 건축가와 같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능력이 있는 건축가라 하더라도

       좋은 건축 자재가 있어야 건물을 지을 수 있습니다.

 

       훌륭한 능력의 건축가도 준비되어 있고,

       건물을 지을 좋은 도구들도 다 준비되었는데,

       건물을 지을 모래와 자갈과 벽돌이 없다면 건물을 지을 수 없습니다.

 

    ➂ 훌륭한 건축가이신 하나님께서 나의 인생을 만드실 준비를 하고 기다리고 계십니다.

 

       인생을 만들 훌륭한 도구들인 주님의 천사들도 대비 상태에 있습니다.

       그러나 모래와 자갈과 벽돌이 있어야 합니다.

 

       오늘 내가 주님 말씀대로 살아가는 것이

       나의 내일을 만드실 하나님께 모래와 자갈과 벽돌이 되는 것입니다.

       오늘 내가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

       오늘 내가 하나님을 사랑하며 섬기는 것이

       나의 내일을 건축하려는 하나님 앞에 좋은 건축 자재들이 되는 것입니다.

 

 3) 하나님께서 나의 내일을 만드신다는 것을 믿은 요셉

 

    요셉은 오늘이 아무리 어두운 절망이라 하더라도

    하나님께서는 나의 내일을 만드실 수 있다는 것을 믿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는 항상 변함없이 하나님 앞에 성실한 삶을 살아갈 수 있었습니다.

 

    보디발의 아내의 유혹은

    완전한 절망의 상태에 있는 요셉에게 큰 유혹 거리가 되기는 했지만,

    요셉은 하나님의 뜻대로 살기로 결심합니다.

 

    이 일이 세상 사람들이 보기에는 어리석게 보이지만,

    시간이 조금 더 흐른 후에는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하고 계신다는 것을 온 세상 사람들이 알게 될 것입니다.

 

 

2. 역사를 보는 두 가지 시각

 

  • 하나님의 말씀대로 하였으나 도리어 감옥에 들어간 요셉

 

    요셉이 보디발의 아내의 유혹을 거절한 것은 분명 잘한 일입니다.

    그러나 그 결과 요셉은 왕의 죄수들이 들어가는 감옥에 들어갑니다.

 

    노예가 주인을 겁탈하려 했다는 누명을 썼으니

    보통의 경우라면 당장 사형 당했을 것이지만,

    보디발이 요셉을 신임하여 그나마 감옥에 들어간 정도로 마무리가 된 것입니다.

 

    그러나 옥에 들어간 것이 사형당한 것보다 낫다고는 하지만,

    그 감옥이 왕의 죄인들이 들어가는 곳입니다.

    죽지 않으면 나올 수 없다는 무시무시한 감옥이란 말입니다.

 

  • 이 사건에는 역사를 보는 시각이

    다음 두 가지로 나누어집니다.

 

    이것을 보고

    각자 자신은 어디에 속하는지를 살펴봅시다.

 

1) 영적인 시각 : 여호와께서 요셉을 형통케 하시므로

 

    영적인 시각 ➠ 이것은 사람을 신앙적인 관점에서 보는 것을 뜻합니다.

 

    그가 비록 노예가 되었고, 또 감옥에 갇혔더라도

    그의 믿음을 보고 판단하는 것, 이것이 바로 영적인 시각입니다.

 

    요셉이 보디발의 집에 팔려서 노예가 되었을 때를 생각해 보십시오.

    한 번 노예가 된 사람은 그 자식에 자식까지 영원히 노예가 됩니다.

    완전한 절망입니다.

 

    그런데 창세기는 요셉이 완전한 절망의 상태인 노예가 되었다는 소식을 전하면서도

    ‘여호와께서 요셉을 형통케 하시므로’라는 말을

    후렴구처럼 반복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요셉을 형통케 하시므로

    요셉이 하는 일마다 다 잘되었다는 것입니다.

 

 2) 세상적인 시각 : 그러나 그의 신분은 더욱 더 깊은 나락으로 떨어지고...

 

    세상적인 시작 ➠ 이것은 세상 사람들의 관점에서 보는 것을 뜻합니다.

 

    그가 하나님의 사랑을 받았다면

    분명 세상일에서도 나아져야 할 텐데 왜 더 꼬이기만 하는가,

    이렇게 눈에 보이는 대로만 판단하는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요셉을 형통케 하셨다면

    요셉을 힘들게 하고 있는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되어야 할 것입니다.

 

    요셉을 힘들게 하는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그가 여전히 노예 신분을 가졌다는 것입니다.

 

    왜 여호와께서 요셉을 형통케 하셨다면서

    요셉으로 인하여 보디발의 집이 잘되게만 하시고,

    정작 요셉의 고민인 노예는 풀어주지 않으시는 것일까요?

 

    더구나 요셉이 보디발의 아내의 끈질긴 유혹도 이겨냈다면

    잘했다고 칭찬해 주셔야 마땅한 일인데 왕의 죄수들의 감옥이라니요.

 

    더 깊은 나락으로 요셉을 끌어 내리시고는

    ‘여호와께서 형통케 하시므로

    그가 감옥의 모든 일을 맡아서 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묵상 : 어떤 눈으로 역사를 볼 것인가 ➠ 영적인 감각을 예민하게 하십시오.

 

  • 내가 역사의 주인이라 생각하는 사람들은 주변 상황을 내 입장에서 해석합니다.

 

    요셉이 만일 자신이 역사의 주인이라는 사고방식을 가진 사람이었다면,

    그가 가진 가장 큰 문제인 노예의 상태를

    어떻게 해서든 자기 힘으로 풀어보려 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주인의 아내가 자기를 좋아한다는 것을

    결코 그냥 넘길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냥 넘기기에는 그녀가 가진 힘이 너무나도 큽니다.

    애굽의 2인자의 아내이니

    요셉이 바라는 모든 것을 해줄 수 있는 권세를 가진 자입니다.

 

    아마도 그때 요셉의 주변에서 이런 좋은 기회를 놓쳐서는 안 된다며

    조언을 하는 사람들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영적인 예민함을 갖고 있지 않으면

    나를 도우시는 하나님은 보이지 않고 나를 힘들게 하는 주변 상황만 보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아무리 의지력이 좋아도 편법의 유혹을 이길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항상 하나님과 동행하여 영적인 감각이 둔해지지 않게 해야 합니다.

 

 

3 : 요셉에게 다가온 여호와의 날(요셉이 총리가 됨)

 

1. 창세기 40(요약)

 

    바로를 측근에서 섬기던 두 관원장이 바로에게 죄를 짓고 요셉이 있는 감옥에 들어옵니다.

    어느 날 그들이 꿈을 꾸었으나 그 꿈을 해몽하는 자가 없어 근심합니다.

    그러나 요셉이 그들의 꿈을 해몽해 주었고,

    그들은 요셉이 해몽한 대로 바로의 생일이었던 3일 후에

    술 맡은 관원장은 복직이 되고 떡 굽는 관원장은 처형을 당합니다.

 

    요셉은 술 맡은 관원장에게 자신을 기억해달라고 요청하나,

    술 맡은 관원장은 요셉을 잊어버립니다.

 

 

2. 2년 후에 바로가 꿈을 꾸다

 

 1) 요셉의 기다림 : 믿음 있는 자만이 기다릴 수 있습니다.

 

    요셉은 술 맡은 관원장이 감옥을 나가던 날

    자신의 억울한 사연을 바로 왕에게 알려줄 것을 간곡하게 부탁했었습니다.

    그런데 아무 소식이 없습니다.

 

    그렇게 또 2년의 시간이 흘렀습니다.

    이때의 2년이 요셉에게는 가장 힘들고 어려운 때였습니다.

 

 2) 요셉에게 다가오는 여호와의 날 : 애굽의 바로 왕이 이상한 꿈을 꿈(41:1~7)

 

            1. 그때로부터 만 2년이 지난 후에 바로가 꿈을 꾼즉

               그가 나일 강가에 서 있었는데

            2. 보니 아름답고 살이 찐 암소 일곱 마리가 강에서 올라와

               갈밭에서 풀을 뜯어 먹고 있었고

            3. 그 뒤에 또 흉악하고 바싹 마른 암소 일곱 마리가 나일 강에서 뒤따라 올라와서

               먼저 올라온 소들과 함께 강가에 섰더니

            4. 그 흉악하고 마른 일곱 암소들이 아름답고 살이 찐 일곱 암소들을 잡아먹은지라.

               바로는 곧 잠에서 깨었다가

            5. 다시 잠이 들어 꿈을 꾸니

               이번에는 한 줄기에 무성하고 충실한 일곱 이삭이 나오고

            6. 그 뒤를 이어서 동풍에 시들어 바싹 마른 일곱 이삭이 돋아났는데

            7. 그 바싹 마른 이삭들이 토실토실하고 충실한(잘 여문) 일곱 이삭을 삼킨지라.

               바로가 깨어나 보니 꿈이라.

 

    그렇게 힘든 2년의 시간이 흐른 뒤 어느 날

    애굽의 바로 왕이 참으로 이상한 꿈을 꿉니다.

 

    꿈에 그가 나일 강가에 서 있었는데

    난데없이 강에서 아주 아름답고 살이 찐 암소 일곱 마리가 올라오더니

    그 뒤를 따라 아주 흉측하게 마른 암소 일곱 마리가 올라와서

    먼저 올라온 살찐 암소들을 잡아 먹어버렸습니다.

    놀라서 깨어보니 꿈이었습니다.

 

    바로 왕은 다시 잠을 자다 두 번째 꿈을 꿉니다.

    이번엔 한 가지에 일곱 이삭이 돋아나

    아주 튼튼하게 잘 자라서 충실한 열매를 맺었습니다.

    그런데 곧이어 동풍에 시든 것과 같이 아주 바짝 마른 일곱 이삭이 돋아나더니

    앞서 나온 튼튼한 이삭들을 삼켜버리는 것입니다.

 

 

3. 드디어 때가 왔습니다.

 

 1) 애굽의 지혜자들은 해석할 수 없는 꿈 : 그들의 신(神)인 암소가 죽는다고 하니

 

    바로 왕은 이튿날 아침이 되자마자 애굽의 모든 점성가와 지혜자들을 불렀습니다.

    그러나 그들 중에서 이 꿈을 해석할 자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들이 이 꿈을 해석하지 못한 것은

    이 꿈이 그들의 신앙을 완전히 무너뜨리는 내용을 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암소는 애굽에서 농사를 주관하는 애굽의 신 가운데 하나인

    ‘이시스(Isis)’의 상징물입니다.

    그러므로 왕의 꿈에 아주 살찐 암소들이 일곱 마리나 나왔다면

    애굽이 크게 부흥하게 될 꿈이라 해석될 수 있었을 텐데,

    그 후에 바짝 마른 암소들이 나와 살진 암소들을 잡아먹었다고 하니

    해석이 불가능해진 것입니다.

 

    그들 입장에서 보면 자기들의 신이 그들 스스로 자기들을 잡아먹은 것이 되니

    이해할 수 없는 것은 당연합니다.

 

 2) 일곱 이삭의 꿈 : 역시 애굽의 신 나일 강에 대한 꿈이니 해석이 불가능

 

    그다음 꿈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한 가지에 아주 충실한 열매를 맺은 일곱 이삭이 돋아났는데,

    그 뒤에 바짝 마른 일곱 이삭이 돋아나 충실한 열매를 맺은 이삭을 삼켜버렸습니다.

    그런데 그 가지가 심어진 곳이 나일 강가입니다.

 

    나일강은 애굽 사람들에게 나일 강은 태양신 못지않은 생명의 원천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나일 강에서 충실한 이삭이

    바싹 마른 이삭에게 삼켜져서 사라지는 이상한 꿈을 꾸었으니

    애굽 사람 중 누가 이 꿈을 해석할 수 있었겠습니까?

 

    혹 해석한 자가 있다 해도

    그것을 입 밖에 내면 불경죄가 되니 말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 하나님께서는 오직 요셉만이 해결할 수 있는 큰 문제를 애굽의 왕에게 일으키셨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역사의 주인이시라는 것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애굽이 아무리 크고 강한 나라라 하더라도

    애굽에 사로잡힌 한 히브리 소년 요셉 외에는 아무도 해결할 수 없는 일을

    하나님께서는 얼마든지 일으키실 수 있는 분이신 것입니다.

 

 

4. 하나님께서 하실 일을 미리 알리셨으니 그 일을 준비하라

 

 1) 요셉의 해몽 : 7년 풍년과 7년의 흉년(25~31절)

 

           25. 요셉이 바로에게 고하되

               “바로의 꿈은 하나이라. 하나님께서 그 하실 일을 바로에게 보이심이니이다.

           26. 일곱 좋은 암소는 7년이요 일곱 좋은 이삭도 7년이니,

                그 꿈은 하나이라(그 꿈은 같은 내용이라.)

           27. 그 후에 올라온 파리하고 흉악한 암소 일곱 마리 역시 7년이요,

                동풍에 말라 속이 빈 일곱 이삭도 7년 흉년이니,

           28. 내가 바로에게 고하기를

               ‘하나님께서 그 하실 일로 바로에게 보이신다’ 함이 이것이라.

           29. 지금부터 7년 동안에는 온 애굽 땅에 큰 풍년이 있겠고

           30. 그 후(그 7년이 지난 후)에 7년의 흉년이 뒤따르므로

                애굽 땅에 있던 풍년을 다 잊어버리게 되고, 이 땅이 기근으로 멸망되리니

           31. 후에 든 그 흉년이 너무 심하므로

                그 전에 풍년이 이 땅에 있었는지 기억조차 못 하게 되리이다.”

 

    그러나 요셉은 애굽이 망하게 되리라는 운명론으로 해석하지 않았습니다.

    요셉은 미래의 일을 준비하게 하기 위해

    하나님께서 하고자 하실 일을 미리 알리신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요셉은 하나님께서 하실 일을 아주 구체적으로 설명합니다.

    암소 일곱 마리와 일곱 이삭은 각각 7년을 의미하는 것이고,

    살진 것은 풍년이요 마른 것은 엄청난 흉년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요셉은 지금부터 7년 동안은 엄청난 풍년이 있겠지만,

    그 뒤로 오는 7년은 앞에 풍년이 있었는지 기억도 하지 못할 만큼

    엄청난 흉년이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2) 요셉을 통하여 미래의 일을 미리 대비하게 하신 하나님

 

    하나님께서 요셉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하실 일을 미리 알게 하신 것은

    미래의 일을 미리 준비하도록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에게도 장차 이 땅을 심판하러 오시리라는

    미래의 일을 성경 말씀을 통해 미리 알게 하셨습니다.

 

    요셉이 흉년의 때를 아주 지혜롭게 준비한 것처럼,

    우리도 말씀으로 장차 이 땅에 일어날 일을 미리 알고

    그날을 지혜롭게 준비하는 자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5. 요셉을 총리로 세움

 

1) 요셉은 바로 왕에게 다가올 7년의 대흉년에 대한 대비책을 말합니다(32~36절)

 

           32. “바로께서 꿈을 두 번 겹쳐 꾸신 것은

                하나님께서 이 일을 정하셨음이라. 이 일을 속히(서둘러) 행하시리니

           33. 이제 바로께서는 명철하고 지혜 있는 사람을 택하여 애굽 땅을 치리하게 하시고,

           34. 바로께서는 또 이같이 행하사 국중(애굽 전국)에 여러 관리를 두어

                그 7년간 풍년이 계속될 동안에 애굽 땅의 5분의 1을 거둬들이되

           35. 그 관리로 장차 다가올 풍년의 모든 곡물을 거두고

                그 곡물을 바로의 손에 돌려(바로의 권한 아래 두어)

                양식을 위하여 각 성에 쌓아두고 지키게 하소서.

           36. 이와 같이 그 곡물을 이 땅에 저장하여 애굽 땅에 임할 7년 흉년을 예비하시면

                땅이 이 흉년을 인하여 멸망치 아니하리이다.”

 

    먼저 바로가 같은 꿈을 두 번 반복해서 꾼 것은

    하나님께서 이 일을 이미 결정하셨고,

    또 이 일을 아주 서둘러서 행하실 것임을 알리신 것이라는 점을 지적하였습니다.

 

    그러므로 빨리 명철하고 지혜 있는 자를 세워서 그로 애굽 전역을 다스리게 하고,

    그 아래 감독관들을 세워 애굽 전역에서 7년의 풍년 동안

    추수한 것의 5분의 1을 거두어들여 각 성의 저장고에 저장하게 하면

    그 뒤에 올 7년 대흉년에도 애굽이 망하지 않고 견딜 수 있으리라고 말합니다.

 

 2) 요셉을 통하여 하나님의 능력을 알게 된 바로 왕(37~39절)

 

           37. 바로와 그 모든 신하가 이 일을 좋게 여긴지라

           38. 바로가 그 신하들에게 이르되

               “이와 같이 하나님의 신이 감동한 사람을 우리가 어찌 얻을 수 있으리요” 하고

           39. 바로가 요셉에게 이르되 “하나님께서 이 모든 것을 네게 보이셨으니

                너처럼 명철하고 지혜 있는 자가 또 있겠느냐?

 

    왕은 하나님에 대하여는 잘 알지 못하지만, 자기 꿈을 해석하는 요셉을 보고

    하나님이 자기들이 믿는 신보다 더 뛰어난 신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는 즉시 요셉의 제안에 응답합니다.

 

    바로는 그의 신하들에게 “이처럼 하나님의 영에 감동된 사람을

    우리가 또 어디에서 구할 수 있겠는가?”하고 물은 뒤 그 일을 즉시 하도록 명하고,

    요셉에게 그 일을 담당할 애굽의 총리가 되어 줄 것을 부탁합니다.

 

 3) 애굽의 총리, 애굽의 이인자가 된 요셉(40~43절)

 

           40. 너는 내 집을 치리하라. 내 백성이 다 네 명을 복종하리니

                나는 너보다 높음이 이 왕의 보좌뿐이니라.”

           41. 바로가 또 요셉에게 이르되 “내가 너로 애굽 온 땅의 총리로 세우노라” 하고

           42. 자기의 인장 반지(왕의 옥새 반지)를 빼어 요셉의 손가락에 끼우고

                그에게 세마포 옷(고운 삼베옷)을 입히고 금사슬을 목에 걸고

           43. 자기에게 있는 버금 수레(왕의 두 번째 수레)에 그를 태우매

                무리가 그 앞에서 소리 지르기를 “엎드리라(무릎 꿇고 절하라)” 하더라.

                바로가 그로 애굽 전국을 다스리는 총리로 세웠더라.

 

    왕은 요셉에게 자신의 옥새가 붙어 있는 인장 반지를 주고,

    왕이 가진 모든 권한을 요셉에게 줍니다.

 

    바로는 요셉보다 자신이 높은 것은 그가 왕의 보좌에 있는 것뿐이라고 말하여,

    이제부터 실질적인 권력자는 요셉임을 애굽 온 천하에 알렸습니다.

    바로 왕은 백성들이 요셉이 어떤 사람인지를 알게 하도록 버금수레를 요셉에게 줍니다.

 

    버금수레는 왕의 두 번째 수레로 지금으로 치면 대통령 전용 차량에 해당합니다.

    그것을 요셉에게 주어, 누구든지 요셉을 볼 때마다

    그가 왕 다음의 권력자임을 알게 하였습니다.

 

 

6. 요셉을 위하여 애굽의 왕조까지 바꾸신 하나님 : 여호와 이레

 

 1) 어떻게 천한 노예의 신분인 요셉이 갑자기 총리가 될 수 있었을까?

 

    여기에서 한 가지 궁금한 것이 있을 것입니다.

    아무리 요셉이 지혜 있는 말을 했다고 해도

    어떻게 감옥에 갇혀 있던 이방인을 당장에 한 나라의 총리가 되게 할 수 있습니까?

 

    그것은 그때 애굽의 왕조가

    애굽의 원주민이 아닌 이방인이 왕이 되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본래 애굽의 원주민들은 이스라엘 사람들을 아주 싫어합니다.

    그러나 요셉이 애굽에 있을 당시의 애굽의 바로왕은

    ‘힉소스 족’이라는 이방인이었습니다.

 

    그러므로 힉소스 왕조의 바로 왕은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관대하였고,

    따라서 요셉이 애굽의 총리가 되는 데 아무런 문제가 없었습니다.

 

 2) 요셉을 위하여 애굽의 왕조까지 바꾸신 하나님

 

    우리는 여기에서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발견합니다.

    하나님께서 요셉 한 사람을 위하여 애굽의 왕조까지 바꾸셨다는 점입니다.

 

    요셉이 애굽에 종으로 팔려 가기 전부터

    하나님께서는 이 일을 위하여 애굽의 왕조까지 바꾸고 때를 기다리셨습니다.

 

    역시 여호와 이레의 하나님이십니다.

    요셉이 그곳에 가보니

    그곳에 이미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다 준비하고 기다리고 계셨던 것입니다.

 

묵상 : 그러므로 우리 앞에 어떤 어려움이 있더라도 두려워하거나 염려하지 마십시오.

 

    우리 앞에 하나님께서 이미 모든 것을 다 준비해 놓고 기다리고 계십니다.

    우리는 다만 하나님과 동행하며

    날마다 내가 해야 할 일에 충성하며 사는 것입니다.

 

 

결 론 : 하나님 경험을 하십시오

 

 1) 하나님 경험은 삶의 어려움을 믿음으로 극복할 때

 

    하나님 경험은 요셉처럼 절망의 구덩이에 빠진 것 같은 상황에서도

    하나님을 믿고 참고 견딜 때 찾아오는 하나님의 은총을 통해 경험합니다.

 

    이런 하나님 경험이 없이는 믿음 생활을 바르게 할 수 없습니다.

    느껴지지도 않고 경험되지도 않은 일에 목숨을 걸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2) 요셉의 경우 기다림과 견딤과 인내를 통해 하나님 경험을 했습니다.

 

    우리가 다음 주에 살펴볼 유다는

    하나님을 위한 자기 포기와 희생을 통한 하나님 경험이었습니다만,

    요셉은 구덩이와 같이 완벽한 절망 속에서도

    기다림과 견딤과 인내를 통해 하나님 경험을 했습니다.

 

    그러나 무작정 견디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믿기에 견디는 것,

    이것이 믿음이고 이 믿음의 견딤을 통해 하나님 경험을 하게 됩니다.

 

 3) 삶의 모든 과정에 하나님 경험을 위한 시험들이 있습니다.

 

    삶의 과정을 통해 하나님 경험을 합니다.

    어떤 일이 하나님께서 나에게 내리시는 시험인지 우리는 모릅니다.

 

    모르는 중에 내 앞에 있는 일을 믿음으로 선택하고, 믿음으로 견디고, 믿음으로 순종할 때

    주께서 나를 도우시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그 과정에서 아브라함도 야곱도 요셉도 점차 믿음이 나아진 것입니다.

 

 

주님

 

나의 삶이 힘들고 어려울지라도역사의 주인이신 하나님을 믿고

강하고 담대하게 살게 하옵소서.

 

일이 더디 되더라도

못된 꼼수를 부리지 말게 하시고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게 하옵소서.

 

오늘도 변함없이 나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볼 수 있는

영적인 예민함을 갖게 하옵소서.

 

하나님의 뜻이 내 뜻보다

더 확실한 길임을 믿게 하옵소서.

 

하나님의 일은

오직 하나님께서 주시는 지혜로만

알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하게 하옵소서.

 

그러므로 우리에게도

하나님의 뜻을 알도록 지혜를 주옵소서.

 

요셉처럼 날마다 주님과 동행하며

각자 맡겨진 일에 충성하며 살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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