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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 설교문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 그리고 유다(11월 26일; 창 44:14~45:5)

작성자송호영|작성시간23.11.26|조회수138 목록 댓글 0

설교제목 :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 그리고 유다

설교본문 : 44:14~45:5, 49:8~12

설 교 자 : 송호영 목사

설 교 일 : 2023년 11월 2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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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론 :

 

1) 야곱의 믿음을 이어받은 요셉과 유다

 

    창세기는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 이어지는 복의 흐름을 증거하였습니다.

 

    그리고 야곱의 열두 아들 중 요셉과 유다의 믿음을 소개합니다.

 

    많은 경우에 유다보다는 요셉의 이야기가 더 많이 알려져 있습니다.

    노예와 감옥살이를 했던 사람이 갑자기 당시 최 강대국의 총리가 되었으니 그럴만합니다.

    신데렐라도 이런 신데렐라가 없습니다.

 

    그러나 창세기는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이어지던 신령한 복의 흐름이

    요셉이 아니라 유다에게로 이어진다고 말하여

    화려한 요셉보다 초라한 유다의 믿음을 더 중요하게 평가합니다.

 

 2) 맏아들이 받는 두 몫의 복을 받은 요셉, 신령한 복의 흐름을 이어받은 유다

 

    요셉은 형들로 인하여 노예 상인에게 팔려 애굽의 군대장관 보디발의 노예가 되고

    다시 보디발의 아내의 모함을 받아 옥에 갇혔지만

    그 고난에도 절망하거나 원망에 빠지지 않고 믿음을 잘 지켜

    애굽의 총리가 되고

    7년 대흉년 때에 그 인근의 모든 백성을 살리는 자가 됩니다.

 

    그러므로 야곱은 죽기 전 요셉에게 두 몫의 복을 줍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내리셨던 복의 흐름은

    야곱에서 요셉이 아니라 유다로 흘러갑니다.

 

    왜 야곱이 그렇게도 사랑하는 요셉에게 두 몫의 복을 주면서도

    진짜 중요한 이스라엘의 복의 흐름은 유다에게 흘러가게 되었을까요?
    오늘 그 부분에 관한 말씀을 전하겠습니다.

 

    오늘 말씀은 하나님께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시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말씀이기도 합니다.

 

    이것은 요셉과 유다를 보는 하나님의 시각을 나타내는 것이므로

    창세기를 읽는 우리들이 중요하게 보아야 할 점입니다.

 

 

1 : 유다의 위기, 유다의 타락

 

1. 유다의 제안에 따라 이스마엘의 노예 상인에게 팔린 요셉(37:25~28)

 

           25. (요셉이 빈 구덩이에 빠져 있는 동안)

               요셉의 형들이 앉아서 음식을 먹다가 눈을 들어 본즉

               마침 길르앗으로부터 낙타를 타고 한 무리의 이스마엘 상인들이 오는데

               그 낙타들에 향품과 유향과 몰약이 가득 싣고 애굽으로 내려가는 길이라.

           26. 유다가 자기 형제에게 이르되

              “우리가 우리 동생을 죽이고 그의 피를 덮는다고 한들 무슨 이득이 있겠는가?

           27. 그러니 그 아이에게 손을 대지 말고

               차라리 그 아이를 이스마엘 사람들에게 팔아넘기자.

               어찌 되었든 그는 우리와 살과 피를 나눈 형제가 아니냐?”

               그러자 다른 형제들이 그의 말을 청종하였더라

           28. 그러는 동안에 미디안 사람 상인들이 (그들의 곁을) 지나는지라.

               그들이 요셉을 구덩이에서 끌어올리고 은 20개에 그를 이스마엘 사람들에게 팔아넘기매

                그 상인들이 요셉을 데리고 애굽으로 갔더라.

 

    유다는 그의 형제들이 요셉을 결국은 죽게 하리라는 것을 알고는

    그들이 받아들일 수 있는 제안을 합니다.

 

    유다는 마침 그 곁을 지나고 있던 이스마엘 사람 미디안 상인들에게

    요셉을 노예로 팔아넘기자고 말합니다.

 

    그러면 적어도 동생을 죽이는 것은 아니고,

    그 후의 일은 하나님께서 어떻게든 그를 살리실 것이라 믿었기 때문입니다.

 

 

2. 형제들과 홀로 떨어져 나와 가나안 여자와 결혼한 유다

 

1) 요셉을 노예로 팔아넘긴 후에 형제들과 따로 떨어져 지내는 유다(38:1)

 

            1. 그 후(요셉의 형들이 요셉을 미디안 상인에게 팔아넘긴 후)에

               유다는 자기 형제들로부터 떨어져 나와

              ‘히라’라고 불리는 아둘람 사람에게로 나아가니라.

              (‘히라’라고 부르는 아둘람 사람에게 가서 그와 함께 거하니라.)

 

    자신의 제안에 따라 요셉이 미디안 상인에게 팔려 간 후에

    유다는 형제들에게서 떨어져 나와

    그곳에서 약 25km쯤 떨어진 가나안의 아둘람으로 가서 지냅니다.

 

    동생을 노예로 팔아넘겼다는 것에 마음에 큰 부담을 느끼고

    형제들과 떨어져 혼자 있기로 한 것입니다.

 

    이유가 어찌 되었든 동생 요셉을 팔아넘기자고 말한 자가 바로 자신이었으니

    무슨 변명을 하겠습니까?

 

    이런 이유로 마음이 불편해진 유다는

    도저히 형제들과 함께 있을 수가 없어 가나안의 아둘람으로 홀로 떠난 것입니다.

 

 2) 가나안에 홀로 떨어져 자신을 파괴하며 타락한 삶을 살았던 유다(2절)

 

            2. 유다는 거기에서 가나안 사람 수아라는 사람의 딸을 보고 그를 데리고 와서 동침하니

 

    마음이 울적하고 불편할 때 홀로 떨어져서 조용한 시간을 갖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조용한 시간을 가지며 묵상하는 것을 피정(避靜)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유다는 묵상하기 위해 따로 홀로 떨어진 것이 아닙니다.

    가나안의 타락한 도시에서

    자기를 잊어버릴 만큼 타락한 삶에 빠지기 위해 떨어져 나간 것입니다.

 

    그곳에서 유다는 가나안의 한 여인을 만나 결혼을 합니다.
    에서가 가나안 여인과 결혼한 것과 같은 일을 행한 것입니다.

 

 

3. 유다의 두 아들의 죽음(요약)

 

    형제들로부터 떨어져 나온 유다는 아둘람 사람과 함께 기거하다가

    그곳에서 가나안 여자 수아와 동침하여 엘, 오난, 셀라의 세 아들을 낳습니다.

 

    유다는 맏아들 엘을 위하여 아내를 맞아 주었는데 그가 다말입니다.

    그런데 엘이 하나님 보시기에 악하여 죽는 일이 일어나자

    유다는 오난에게 형수에게로 들어가서 형의 후손을 잇게 하라고 명합니다.

 

    오난은 형의 후손을 낳지 않으려고 땅에 설정합니다.

    이 일이 하나님 보시기에 악하여 그 역시 죽게 됩니다.

 

    그러자 유다는 막내인 셀라마저 죽을까 염려하여

    다말을 그의 아버지의 집인 친정으로 보냅니다.

 

 

4. 하나님의 징계를 며느리 다말의 탓으로 돌리는 유다

 

    두 아들의 죽음은 가나안 여자와 결혼한 유다 때문에 일어난 일입니다.

    그러나 유다는 그 모든 일을 며느리 다말의 탓으로 돌립니다.

 

    여기에서 유다는 치명적인 잘못 두 가지를 범합니다.

 

 1) 회개를 거부하고, 자포자기하며 타락의 길로 들어간 유다

 

    ➀ 엘과 오난의 죽음은 유다의 타락의 결과물

 

      “세상에 내가 동생을 노예로 팔아먹다니~”

       형제들에게 실망하고, 자기 자신에게 실망한 유다는

       한동안 정신을 잃을 정도로 가나안의 타락한 문화에 빠져들었습니다.

 

       그러므로 유다의 두 아들의 죽음은

       자신이 요셉을 노예로 팔아넘기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자책감을 핑계로

       가나안의 쾌락에 빠진 유다 자신 때문에 일어난 일입니다.

 

    ➁ 회개를 거부하고 다른 사람 탓으로 돌리는 유다

 

       유다는 맏아들 엘이 죽었을 때 하나님께 회개했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정신 차리지 않고 가나안의 타락한 도시에 머물러 있었습니다.

       그래서 둘째 아들 오난이 죽게 된 것입니다.

 

       둘째 아들 오난이 죽은 후에도 유다는 여전히 회개하기를 거부하고

       두 아들이 죽은 책임을 아무 잘못도 없는 며느리 다말의 탓으로 돌린 것입니다.

 

 2) 가정을 일으키는 모든 책임을 다말에게만 지우는 유다(38:11)

 

           11. 유다가 그의 며느리 다말에게 이르되 “내 아들 셀라가 자랄 때까지

               너는 네 친정에 가서 수절하고 기다리고 있어라” 하니

               유다는 셀라마저도 그의 형들처럼 죽을까 염려함이라.

               다말은 그의 아버지의 집(친정)에 있으니라.

 

    유다는 며느리 다말에게

    그의 아버지 집인 친정에 가서 막내 셀라가 자랄 때까지 기다리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유다는 셀라가 자라도 셀라를 다말의 처소에 보낼 생각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유다는 다말을 풀어주어 다른 사람에게 결혼할 수 있도록 해 주어야 합니다.

    그런데 유다는 다말에게 친정으로 가서 수절하고 있으라고 말합니다.

 

    아들 셀라에게는 형의 후손을 잇게 하는 동생의 책임을 감당하게 하지 않으면서,

    며느리인 다말에게는 수절하며 모든 책임을 감당하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다른 사람과 결혼도 못하게 하고, 남은 세월 수절하며 홀로 지내라는 것입니다.

 

 

2 : 유다의 가문을 위해 목숨을 건 다말의 헌신(꼬엘)

 

1. 유다를 유혹할 계획을 세우는 그의 며느리 다말

 

1) 창녀의 복장을 하고 시아버지를 기다리는 며느리 다말(38:12~16)

 

           12. 그 후 오랜 세월이 지난 뒤에 수아의 딸인 유다의 아내가 죽은지라.

                유다가 위로를 받은 후에(애도하는 기간이 지난 후에)

                그의 친구 아둘람 사람 히라와 함께 자기의 양들의 털을 깎으러 딤나로 갔더니,

           13. 그때 어떤 사람이 다말에게 이르되

               “네 시아버지가 자기의 양털을 깎으려고 딤나로 올라온다” 한지라.

           14. 이에 다말은 과부의 의복을 벗고, 너울(베일)로 얼굴을 가리고 몸을 감싸고는

               담나로 가는 길에 있는 에나임 입구에 앉아 있으니,

               이는 막내아들 셀라가 다자랐는데도

               유다가 자기를 셀라의 아내로 주지 않았음을 인함이라.

           15. 다말이 얼굴을 가리고 있었으므로 유다가 그를 보고 창녀(신전 창기)로 여기고

           16. 유다가 길가에 있는 다말에게로 나아가서 가로되

               “나로 네게 들어가게 하라” 하니, 그가 자기의 며느리인 줄 알지 못하였음이라.

                다말이 가로되 “나에게 들어오시는 대가로 무엇을 주겠느뇨?”

 

    유다의 아내가 죽은 후 그의 친구 아둘람 사람 히라와 함께 양털을 깎으러

    딤나로 내려갔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그의 며느리 다말은 과부의 의복을 벗고,

    너울(베일)로 얼굴을 가리고 몸을 감싸고는 딤나로 가는 길 곁의

    에나임 입구에 앉아서 시아버지 유다를 기다립니다.

 

    다말의 이 복장은 가나안의 신전 창기의 복장입니다.

 

 2) 다말이 가나안의 신전 창기의 복장을 하고 시아버지 유다를 유혹하려 하고 있습니다.

 

    우리 입장에서 보면 참으로 기가 막힌 일입니다.

    그러나 창세기는 다말의 이러한 도전적인 행위를 의로운 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죽은 그녀의 남편의 후사를 잇기 위한 행동이기 때문입니다.

 

    시아버지 유다가 그의 아들 셀라를 다말에게 주지 않으니,

    다말은 할 수 없이 시아버지 유다를 통해서라도 남편의 후사를 이으려고

    목숨을 걸고 이 일을 행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2. 며느리 다말을 창녀로 여기고 동침하는 유다

 

문제는 다말이 아니라 유다에게 있습니다(15~16절)

 

            (15~16절 성경구절 위에)

 

    문제는 유다입니다.

    유다는 다말을 그저 가나안의 신천 창기로만 보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유다가 만일 다말과 동침을 하면

    이것은 단순히 어떤 남자가 길에서 만난 창녀와 그렇고 그런 일을 한 것이 아니라,

    가나안의 우상숭배에 참여하는 것이 됩니다.

 

    신전 창기와의 동침은 우상 앞에 절하는 우상숭배와 같은 일입니다.

    그런데 유다가 먼저 다말에게 동침하기를 청합니다. 이것은 유다가 그만큼

    가나안의 우상숭배와 타락한 문화에 빠져 있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더구나 옆에 그의 친구 히라가 있는 상황에서 이 같은 일을 저질렀습니다.

 

 

3. 유다로 말미암아 임신한 다말

 

1) 시아버지를 통하여 임신을 한 다말(17~18절)

 

           17. 유다가 가로되 “나의 가축 중에서 염소 새끼 한 마리를 네게 주리라.”

                다말이 가로되 “당신이 그것을 주실 때까지 담보물을 내게 주겠느뇨?”

           18. 유다가 가로되 “어떤 담보물을 네게 주랴?”

               다말이 가로되 “당신의 도장과 끈과 손에 있는 지팡이로 하라.”

               유다가 그것들을 다말에게 맡기고 그에게로 들어갔더니,

               다말이 유다로 말미암아 임신하였더라.

 

    사실 다말은 그의 시아버지 유다가 막내 아들인 셀라를 주지 않는 것에 대하여

    이의를 제기하고 정식으로 다른 사람에게 시집을 갈 수 있었습니다.

    남편이 죽은 마당에 다말이 수절하며 살아야 할 이유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다말은 시아버지 유다마저도 외면하고 있는 죽은 남편의 후사를 잇기 위해

    시아버지를 유혹하는 도전을 감행합니다.

    이 일로 그녀가 임신을 하였습니다.

 

 2) 담보물로 유다의 도장과 끈과 지팡이를 요구한 다말

 

    다말은 그 아기의 아버지가 시아버지인 유다임을 증명하는 것으로,

    유다의 도장과 끈과 지팡이를 담보물로 갖고 있습니다만,

 

    유다가 만일 자기의 행동이 알려질까 두려워

    그 담보물이 자기 것이 아니라고 한다면,

    다말은 자칫하면 돌에 맞아 죽든지 혹은 불에 태워 죽임을 당하게 됩니다.

 

    시동생 셀라와 시아버지 유다가 외면하는 그들의 집안일에

    이방 여인 다말이 자기 목숨을 걸고

    죽은 남편의 후사를 잇기 위한 도전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3) 죽은 남편의 꼬엘의 책임을 감당하기 위해 목숨을 거는 다말

 

    후사를 얻기 위해 도움을 주는 자를 ‘꼬엘’이라고 합니다.

 

    사실 죽은 남편 엘의 꼬엘은 시동생 셀라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나 유다도 셀라도 도무지 관심이 없으니

    다말이 시아버지 유다를 유혹해서라도 아기를 가져야 하겠다고 나섰습니다.

 

    이렇게 해서 죽은 엘의 아내인 다말 그 자신이 꼬엘이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창세기는 다말을 의로운 여인으로 칭송하는 것입니다.

 

묵상 : 예수님도 우리를 돕기 위해 오신 꼬엘입니다.

 

    다말은 목숨을 걸기만 했지만,

    예수님은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달리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성경에 나온 모든 꼬엘 중에서도 가장 위대한 꼬엘입니다.

 

 

4. 창피 당하지 않기만을 바라는 유다

 

 1) 친구 히라를 보냈으나 신전창기를 찾지 못한 유다(38:20~22)

 

           20. 유다는 자기의 친구 아둘람 사람을 시켜서 염소 새끼 한 마리를 보내고

               그 여인의 손에서 그 담보물을 찾아오게 하였으나 그가 그 여인을 찾지 못한지라.

           21. 유다의 친구가 그곳 사람들에게 물어 가로되

               “여기 길 곁 에나임에 있던 그 창녀가 어디 있느냐?

               그들이 가로되 “이곳에는 창녀가 없느니라.”

           22. 그가 유다에게로 돌아와 가로되 “내가 그 여자를 찾지 못하였고,

                그곳 사람들도 이르기를 ‘이곳에는 창녀가 없다’ 하더라.”

 

    유다는 처음에 주기로 한 염소 새끼를 주기 위해 그의 친구 히라를 보냈습니다.

    그런데 히라가 가보니 그곳에는 신전 창기가 없다고 말하더라며 그냥 왔습니다.

 

    그러자 유다가 자칫하면 큰 창피를 당할 우려가 있으니

    이 일을 더 이상 말하지 말고 묻어주자고 말합니다.

 

 2) 갑자기 부끄러움을 느끼는 유다(23절)

 

           23. 유다가 가로되 “그 여자가 가진 것을 갖도록 그냥 놔두라.

                우리가 부끄러움을 당할까 하노라. 어쨌든 나는 이 염소 새끼를 보내었으나

                그대가 그를 찾지 못하였느니라.”

 

    조금 전까지만 해도 친구에게 담보물을 찾아오라고 할 정도로 당당했던 유다가

    갑자기 몸을 사리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자신이 동침한 여자가 창기가 아니라면 필경 누군가의 아내이거나 처녀일 것이므로

    그 일이 밝혀진다면 그 자신이 돌을 맞게 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유다는 “우리는 염소 새끼를 주려 했고, 가보니 없어서 못 주었고~

    그럼 우리 할 일을 다 한 것이 아닌가?”

    이렇게 말하며 스스로 자신의 행위를 위로합니다.

 

 

5. 다말을 불태워 버리라 명하는 유다

 

1) 다말을 불태워 죽이라고 명하는 유다(38:24)

 

           24. 석 달쯤 지난 후에 어떤 사람이 유다에게 고하여 가로되

               “네 며느리 다말이 행음하였고(창녀 짓을 하였고) 

                그 행음함을 인하여 임신하였느니라.”

                이에 유다가 가로되 “그를 끌어내어 불사르라.”

 

    유다가 다말과 동침한 지 석 달쯤 지난 후에

    다말이 행음하여 아이를 가졌다는 소문이 들려왔습니다.

    그러자 유다는 전후 사정을 따져 묻지도 않고 다말을 불에 태워 죽이라고 명령합니다.

    정말로 다말이 행음하였다 하더라도 돌을 던져서 처형해야 합니다.

 

    불에 태워 죽이는 것은 어머니에게 성폭행한 자에게나 행하는 극형인데,

    유다는 다말에게 이런 극형을 명합니다.

    더구나 다말은 그의 남편이 이미 죽었고, 막내 셀라를 유다가 그에게 주지 않았으니

    엄밀하게 따지면 음행도 아니었습니다.

 

 2) 두 아들의 죽음이 며느리 다말의 탓이라 여기는 유다

 

    유다는 아직도 그의 두 아들이 죽은 것이 다말 탓이라고 여기고 있습니다.

    다말을 악귀가 붙은 여자라고 여기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악귀가 붙은 저 재수 없는 여인 다말 때문에 자기 두 아들이 죽었는데,

    음행을 했다고 하니까 이것 잘됐다 싶은 마음에

    저 여자를 불에 태워 죽이라고 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6. 가정을 일으키기 위해 목숨을 건 다말 : 그 의를 인정받음

 

 1) 아이의 아버지가 유다임을 밝히는 다말(25절)

 

           25. 다말이 끌려 나올 때 사람을 보내어 시아버지에게 이르되

              “이 물건의 임자로 말미암아 임신하였나이다.

               청컨대 보소서. 이 도장과 그 끈과 지팡이가 뉘 것이니이까?” 한지라.

 

    불에 태워 죽임을 당하는 처형을 당할 처지에 있음에도

    일체 말을 하지 않고 있던 다말은,

    처형을 당하기 직전에 유다로부터 받은 담보물인 도장과 그 끈과 지팡이를 내어놓으며

    이 물건의 임자가 아이의 아버지라고 말합니다.

 

 2) 그가 나보다 옳도다(26절)

 

           26. 유다가 그것들을 알아보고 가로되 “그가 나보다 옳도다.

               내가 내 아들 셀라를 그 아이에게 주지 않아서 이 아이가 이런 일을 행한 것이로다.”

               유다가 이렇게 말하고는 그 뒤로 다시는 그를 가까이하지 아니하였더라.

 

    유다는 그 물건이 자신의 것임을 알아보고는

   “네가 나보다 옳도다”하고 선언합니다.

 

    ‘너의 의가 나의 의보다 낫다’는 것은 히브리어로‘체다가 밈멘니’로,

    여기에서 ‘체다카’는 하나님의 의를 말할 때 사용하는 단어입니다.

    유다는 며느리 다말을 향하여 하나님의 의를 가진 자라고 선언하고 있습니다.

 

 3) 유다 집안의 꼬엘의 책임을 감당하기 위해 자기의 목숨을 건 다말

 

    그동안 유다는 요셉을 죽이려 했던 형제들과,

    그 속에서 어쩔 수 없이 동생을 노예로 팔아넘겨야만 했던 자신의 행동에

    큰 실망감을 느껴 자기 자신은 물론 가족까지 무너뜨리는 일을 할 만큼

    파괴적인 타락에 빠져 있었습니다.

    그저 되는 대로, 닥치는 대로 살아왔습니다.

 

    그런데 그가 악귀가 붙은 여자로 여기고 그를 불에 태워 죽이려 했었는데,

    놀랍게도 그 여자가 유다의 집안을 일으키기 위해

    자기의 목숨을 걸고 ‘꼬엘’의 역할을 하고 있었습니다.

 

 3) 하나님의 의를 가진 자 다말(26절)

 

            (26절 성경구절 위에)

 

    형을 대신하여 형수에게 들어가서

    형의 후손을 잇게 해줄 책임은 본래 둘째 아들 오난에게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꼬엘의 책임을 거부하고 바닥에 설정하여 아이를 낳지 못하게 하자,

    하나님께서 그 죄를 물어 그를 죽이셨습니다.

 

    그런데 다말은 유다가 그의 아들 셀라를 주지 않는 상황에서

    자기 목숨을 걸고 꼬엘의 책임을 감당하자

    하나님께서 유다를 통하여

    ‘하나님의 의를 가진 자’라는 선언을 하게 하신 것입니다.

 

➠ 다말은 쌍둥이를 낳았습니다. 그들이 바로 베레스와 세라입니다(27~30절)

 

           27. 다말이 해산할 때가 되었는데, 보니 쌍둥이라.

           28. 다말이 아이를 낳을 때 한 아이가 손을 밖으로 내미는지라.

                산파가 가로되 ‘이 아이가 먼저 나온 아이라’하고 붉은 줄을 가져 그 손에 묶었더니

           29. 그 손을 다시 안으로 들이며 그 아우가 먼저 나오는지라.

                그러자 산파는 가로되 “어찌하여 네가 터뜨리고 먼저 나왔느냐?” 하였으므로

                그 아이의 이름을 베레스라 불렀고,

           30. 그를 뒤따라 나온 아이, 곧 손에 붉은 줄을 묶은 아이가 나오니

                그 아이의 이름을 ‘세라’라고 불렀더라.

 

    그리고 베레스의 후손 가운데 다윗 왕이 있고,

    그 족보를 통하여 예수께서 이 땅에 오셨습니다.

 

    가족을 일으키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건 다말의 행동을,

    하나님의 구원 사역에 참여한 자들에게 주는 ‘의’의 칭호를 붙여주시고,

    그의 후손도 대대로 복이 되게 하셨습니다.

 

묵상 :

 

  ➀ 믿음을 위해 다말이 포기해야만 했던 것

 

      창세기 38장은 죽은 남편 엘의 후사를 잇기 위해

      시아버지 유다를 유혹한 다말의 행동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실 만한 믿음의 행동이라고 증거합니다.

 

      그러나 이 일을 위해 다말은 자기의 생명을 포기해야 했습니다.

      만일 유다가 그 사실을 밝히기를 거부했다면

      다말은 꼼짝없이 화형을 당해 죽었을 것입니다.

 

  ➁ 그 도전의 결과 다말이 얻은 복

 

      생명을 잃을 수도 있는 이 위험한 도전의 결과

      다말은 하나님의 의를 가진 자로 평가를 받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스라엘의 가장 위대한 왕 다윗의 증조모가 되기도 합니다.

 

 

7. 바로 그 꼬엘의 책임을 감당하기 위해 예수께서 우리에게 오셨습니다.

 

 1) 속량자 꼬엘 다말

 

    꼬엘이란 속량자를 말합니다.

    자기 몸값을 지불하지 못해 노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자를 대신하여

    속량금을 지불하여 그에게 자유를 주는 자가 바로 속량자 ‘꼬엘’입니다.

 

    그리고 죽은 형을 대신하여 형수에게로 들어가서

    형의 후손을 잇게 한 동생이 ‘꼬엘’입니다.

    나오미의 며느리 룻에게 기업 무를 책임을 감당한 보아스가 바로 대표적인 꼬엘입니다.

 

 2) 구약성서에 나오는 꼬엘은 예수님의 그림자입니다.

 

    이 땅에 우리를 구하러 오신 예수님이 바로 꼬엘로 오셨습니다.

    우리가 지은 죄로 영원히 멸망을 당하게 되었지만,

    우리 중 어느 누구도 자기의 힘으로 멸망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이렇게 허물과 죄로 죽게 된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고

    우리를 살리시기 위하여, 우리를 돕기 위하여 주께서 오셨습니다.

 

    유다의 며느리 다말은 꼬엘의 책임을 감당하기 위하여 목숨을 걸기만 했지만,

    예수님은 이 책임을 감당하기 위하여 십자가에까지 달리셨습니다.

 

묵상 :

 

    우리를 구하시기 위해 스스로 꼬엘이 되기로 작정하시고

    스스로 우리 대신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의 사랑에 감사하며 찬양합시다.

 

 

3 : 다말에서 시작된 유다의 위대한 헌신

 

1. 자신이 베냐민의 담보가 되겠다고 말하는 유다

 

 1) 기근은 심해지고, 양식은 떨어지고(43:1~2)

 

            1. 그 땅에 기근이 심해지고

            2. 그들이 애굽에서 가져온 곡식을 다 먹으매 그 아비가 그들에게 이르되

               “다시 가서 우리를 위하여 양식을 조금 사 오너라.”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기근이 심해집니다.

    애굽에서 가져온 곡식도 이제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야곱은 아들들에게 빨리 가서 곡식을 사오라고 말합니다.

 

    그러자 유다가 막내 베냐민을 보내지 않으면

    자기들을 결단코 애굽에 가지 않겠다고 말합니다.

    애굽의 총리가 막내를 데려오지 않으려거든

    자기의 얼굴 볼 생각도 하지 말라고 엄히 말했기 때문입니다.

 

 2) 유다가 자신이 친히 베냐민을 위한 담보가 되겠다고 약속함(9절)

 

            9. 내가 그를 위하여 담보가 되오리니(내가 그 아이의 안전을 책임지겠으니),

              그 책임을 나에게 물으소서.

              만일 내가 그를 아버지께 다시 데려와 아버지 앞에 세우지 못한다면,

              내가 영원히 죄를 지리이다(내 평생에 아버지 앞에 죄인이 되리이다).

 

    이제 더 이상 머뭇거릴 여유가 없는데도 야곱이 머뭇거리자

    다시 유다가 자신이 친히 베냐민을 위한 담보가 되겠다고 말합니다.

 

    담보란 빚진 자가 빚을 갚지 못할 때 그를 대신하여 책임지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유다가 베냐민을 위하여 자신이 담보가 되겠다고 한 것은,

    만일 베냐민을 데려올 수 없는 상황이 생기면 그 일을 자신이 당하고,

    베냐민은 어떻게 해서든 아버지께로 데려오게 할 것이라고 말한 것입니다.

 

    르우벤은 즉흥적으로 울컥하여 한 말이었으나,

    유다는 정말 죽을 때까지 베냐민을 대신하여

    자신이 고난을 당할 결심을 하고 말한 것입니다.

 

 3) 유다의 이 고백은 그의 며느리 다말 때문에 일어난 일입니다.

 

    유다가 이렇게 베냐민을 위하여

    자신이 친히 담보가 되겠다는 희생의 결단을 할 수 있었던 것은

    그의 며느리 다말 때문이었습니다(38장 참조).

 

    다말이 불에 타 죽게 될 것을 각오하고

    시아버지 유다를 통하여 남편 엘의 자손을 남긴 것을 보고 충격을 받은 유다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 자신을 희생할 수 있는 믿음을 가진 자가 된 것입니다.

 

    며느리 다말에 이어 유다까지

    예수님을 닮은 희생적 결단을 하는 것을 보신 하나님께서,

    복의 흐름을 맏아들 르우벤도 아니고, 놀라운 믿음을 보여준 요셉도 아니고,

    다말과 유다의 가문으로 이어가게 하신 것입니다.

 

 

2. 형들을 시험하는 요셉 베냐민의 위기를 대한 형제들의 태도(요약)

 

    요셉은 청지기에게 모든 형제의 자루에 돈을 도로 넣으라고 명하고,

    특히 베냐민의 자루에는 돈과 함께 자기의 은잔도 넣으라고 명합니다.

 

    이튿날 형제들이 성에서 멀리 나가지 못했을 무렵

    요셉은 청지기에게 형제들을 쫓아가게 합니다.

    청지기는 요셉이 시킨 대로 그들에게 어찌하여 선을 악으로 갚느냐고 호통을 칩니다.

 

    형제들은 누구든 은잔이 발견된 자는 죽을 것이고 나머지는 모두 종이 되겠다며 장담합니다.

    그러나 그들의 생각과는 달리 베냐민의 자루에서 요셉의 은잔이 발견되자,

    형제들은 모두 옷을 찢고 성으로 돌아갑니다.

 

    형제들이 요셉의 집에 도착하자

    요셉이 여전히 그곳에 있으면서 그들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들이 요셉 앞에 엎드리자 요셉이 호통을 치며 추궁합니다.

    그리고는 은잔이 발견된 자만 자기의 종이 되고 나머지는 평안히 집으로 가라고 말합니다.

 

    그러자 유다가 나서서 아버지의 생명과 아이의 생명이 서로 결탁되었다고 말하며,

    아이가 가지 않으면 아버지가 죽을 것이라고 호소합니다.

    그러므로 자신이 아이 대신 종이 되게 하고,

    아이는 형제들과 함께 아버지께로 돌아가게 해줄 것을 간절히 호소합니다.

 

 

3. 그 아이 대신 나를 종으로 삼고 아이를 풀어주옵소서.

 

 1) 베냐민 대신 종이 되겠다고 탄원하는 유다(44:32~33)

 

           32. 주의 종이 내 아비에게 아이를 담보하기를

               ‘내가 이를 아버지께로 데리고 돌아오지 아니하면

                영영히 아버지께 죄를 지리이다’ 하였사오니

           33. 청컨대 주의 종으로 아이를 대신하여 있어서 주의 종이 되게 하시고

                아이는 형제와 함께 도로 올려보내소서.

 

    전에는 아버지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있는 요셉을 미워하여

    형제들에게 유다가 먼저 노예로 팔자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아버지를 위하여

    아버지가 특별히 아끼며 사랑하는 베냐민을 살려두기 위해

    자신이 평생 노예가 되겠다고 말합니다.

 

    전에는 아버지가 요셉만을 편애한다고 하여 질투하였으나,

    이제는 베냐민을 사랑하는 아버지를 위하여 베냐민을 구해달라고 요청합니다.

    아버지를 기쁘시게 해 드리기 위하여

    아버지가 사랑하는 베냐민을 대신해서 자기의 목숨을 걸려 하고 있습니다.

 

 2) 유다의 회개(16절)

 

           16. 유다가 대답하여 가로되 “우리가 내 주께 무슨 말을 하오리이까?

               무슨 설명을 하오리이까? 어떻게 우리의 정직을 나타내리이까?

               하나님께서 종들의 죄악을 적발하셨으니(밝히셨으니)

               우리와 이 잔이 발견된 자가 다 내 주의 종이 되겠나이다.”

 

    베냐민이 아니라 자신들에게 죄가 있다고 말한 것입니다.

 

    유다는 그가 22년 전에 요셉을 팔아넘기자고 제안했던

    그 일을 고백하며 회개하는 것입니다.

    유다는 그 일을 기억하며 베냐민 대신 자신이 종이 되겠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유다는 은잔이 발견되는 것을 통해서

    자기들이 저지른 죄악이 적발되었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진심으로 회개하는 유다의 이 행동, 이 일이

    유다가 하나님의 복을 받게 된 결정적인 이유입니다.

 

    그 후에 유다가 베냐민 대신 종이 되겠다고 말한 것도 칭찬받아 마땅한 일이지만,

    그 일은 유다가 과거의 잘못을 깨닫고 진심으로

    그 일을 회개하는 마음을 가지니 가능한 일입니다.

 

    그리고 베냐민이 종이 될 위기에 닥친 것은

    바로 자기의 잘못 때문에 생긴 일이라는

    유다의 깨달음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3) 다른 형제들보다 더 예민한 영적인 감각을 가진 유다

 

    유다가 잘못을 진심으로 회개하며 다른 형제들보다 한 걸음 더 다가가서(18절)

    요셉 앞에 엎드려 이 탄원을 간절하게 한 것은,

    유다가 다른 형제들보다 영적인 감각이 더 예민해졌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은잔이 발견된 것은 베냐민인데,

    유다는 그 모든 것이 자기의 잘못으로 된 일이라고 여깁니다.

 

    그가 만일 영적인 감각이 둔한 자였다면 베냐민을 몰아세웠을 것입니다.

    요셉처럼 아버지의 사랑을 독차지하고 있는 베냐민에 대한 미움을

    분명히 그렇게 표현하였을 것입니다.

 

 3) 며느리 다말로 인하여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된 유다(긍정의 나비효과)

 

    유다는 그의 며느리 다말로 인하여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게 되었고,

    그의 아버지 야곱만큼이나 영이 건강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 모든 일이 자기의 잘못으로 된 것이라 여기게 되었고,

    동생 베냐민 대신에 평생 노예가 되겠다는 말을 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결 론 : 형제의 찬송이 될 유다지파

 

 1) 야곱은 장차 유다의 후손 중에서 왕이 나올 것이라고 말합니다(49:8~12, 18)

 

            8. 유다야, 너는 네 형제의 찬송이 될지라.

               네 손이 네 원수의 목을 잡을 것이요 네 아비의 아들들이 네 앞에 절하리로다.

            9. 유다는 사자 새끼로다. 내 아들아 너는 움킨 것을 찢고 올라갔도다.

               (혹은, 사냥한 것을 먹고 자기의 굴로 되돌아올 것이라.)

               그의 엎드리고 웅크림이 수사자 같고 암사자 같으니 누가 감히 그를 범할 수 있으랴?

           10. 홀이(임금의 지팡이가) 유다를 떠나지 아니하며,

               치리자의 지팡이가 그 발 사이에서 떠나지 아니하시기를

               실로가 오시기까지(혹은, 권능으로 그 자리에 앉을 분이 오시기까지) 미치리니

               그에게 모든 백성이 복종하리로다.

           11. 그의 나귀를 포도나무에 매며, 그 암나귀 새끼를 아름다운 포도나무에 맬 것이며,

                또 그 옷을 포도주에 빨며 그 복장(그의 겉옷)을 포도즙에 빨리로다.

           12. 그 눈은 포도주로 인하여 붉겠고, 그의 이는 우유로 인하여 희리로다.

           18. 여호와여, 나는 주의 구원을 기다리나이다.

 

    유다 지파는 이스라엘의 모든 지파 중에서 가장 강한 지파가 될 것이며,

    젊은 사자처럼 힘이 강하여 그 누구도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자들이 될 것입니다.

 

    삶이 풍부해질 것이며,

    포도나무가 너무 흔하여 포도주가 빨래하는 물처럼 많아질 것이고,

    나귀를 아주 좋고 아름다운 포도나무에 맬 정도로 흔하게 될 것이라고 예언합니다.

 

 2) 아브라함의 복의 근원의 복을 이어받은 유다

 

    야곱은 맏아들이 가질 두 몫의 복은 요셉에게 주었으나,

    아브라함과 이삭과 자신에게 이어지는 복은

    유다에게 흘러갈 것이라고 선언하였습니다.

 

    이것은 유다가 베냐민을 대신하여 속량(꼬엘)의 역할을 담당했기 때문입니다.

    그가 실제로 베냐민을 대신하여 노예가 되지는 않았으나,

    그가 이 일을 각오함으로

    형제간의 화해가 이루어지도록 하는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습니다.

 

    이 일로 유다는 예수님의 십자가를 닮은 일을 하게 되었고,

    화평케 하는 자에게 복을 주신다는 예수님의 말씀에도 합당하여

    복의 흐름이 그에게로 흘러가게 된 것입니다.

 

묵상 1 : 여호와여, 나는 주의 구원을 기다리나이다.

 

    야곱은 하나님께서 세상 만민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시리라는 것을 멀리서 바라봅니다.

    그래서 그 기도를 드리는 것입니다.

   “여호와여, 나는 주의 구원을 기다리나이다.”

 

    이렇게 하여 야곱은 소위 말하는

    메시야 대망을 가장 먼저 가진 자가 되었습니다.

 

    야곱은 유다의 후손으로 오신 예수님을 통해 이루어지는 그 구원의 역사에

    자신도 참여하게 해주실 것을 간구하는 것입니다.

 

    야곱의 이 기도는 그의 열두 아들 중에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 이어지는 복의 흐름이

    유다에게로 흘러간다는 곳을 확증하는 것이 되었습니다.

 

묵상 2 :

 

    하나님께서는 시련을 잘 이긴 요셉과 자기의 목숨을 건 유다를 모두 칭찬하셨으나,

    주님을 위해 내가 마땅히 받을 권리를 포기한 유다를 더 칭찬하셨습니다.

 

    아브라함 : 갈대아 우르보다 가나안 땅을 더 복 있는 좋은 땅으로 여겼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이 있으므로, 

    더 나은 가치로 여기고 그것을 선택하는 것, 이것이 믿음입니다

    이삭은 더 나은 가치를 지키기 위해 온유함을 보였고,

    야곱은 더 나은 복을 얻기 위해 평생 간절한 마음으로 구했습니다.

    요셉은 더 나은 가치를 가지고 있으므로 그 엄청난 고통을 이겨냈고,

    유다는 그것을 얻기 위해 자기의 소중한 것을 포기하는 믿음을 보였습니다.

    이런 이유로 야곱에게 주신 복의 정점은 유다에게로 이어집니다.

 

    주님의 영광을 위하여 내가 좋아하는 것을 포기할 때

    주께서 크게 기뻐하십니다.

 

    나를 향한 주님의 뜻이 어디에 있는지를 주께 물으십시오.

    그리고 그 일을 위해 내가 무엇을 어찌해야 하는지를 물으십시오.

 

 

주님

 

내 마음을 무너뜨릴 만한 감정의 변화를 겪었을 때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도와주옵소서.

 

다른 사람에게 치명적인 상처가 될 말들을

함부로 말하거나 전하지 않게 하옵소서.

 

우리도 유다처럼 주께서 기뻐하시는 일을 분별하게 하시고

그 일을 선택할 용기와 결단력을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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