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제목 :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설교본문 : 예레미야 29:1~14,
갈라디아서 2:20
설 교 자 : 송호영 목사
설 교 일 : 2023년 12월 2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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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론 :
신앙생활이 어려운 것은 우리에게 복을 주시는 신령한 은혜의 일들이
우리 눈에 보이지도 않고 감각되지도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를 멸망에 이르게 하는 것들은 다 눈에 보이고 감각되니 우리에게 매우 강렬한 유혹이 되는데,
우리를 영생으로 인도하는 신령한 은혜의 세계는 보이지도 감각되지도 않으니
믿는 자들조차 쉽지 않습니다.
예레미야서에는 감각되는 것과 감각되지 않는 이 두 세력의 긴장이 아주 잘 나타나 있습니다.
모두가 눈에 보이는 일에 마음을 빼앗겨 거짓 선지자의 말을 듣고 있을 때
오직 예레미야 한 사람만은
보이지 않고 감각되지 않는 하나님의 신령한 은혜의 법칙을 따라 말씀을 전합니다.
오늘은 성탄절 하루 전 크리스마스 이브입니다만,
요즈음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가 예레미야 때 만큼이나 혼란된 시대이니
예수께서 탄생하신 성탄절에 관한 말씀은 매년 성탄절 때마다 전한 말씀이니
오늘은 예레미야서에 나온 두 세력 간의 이 긴장을 통해
역시 혼란된 이 시대를 어찌 살아가야 할지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제 1 부 : 징계 중에도 돌보시는 하나님
바벨론에 망하기 전 이스라엘은
일제강점기 전 구한말의 조선처럼 혼란과 혼돈의 시대였습니다.
그 중에서도 가장 혼란스러웠던 때는 여호야긴 왕과 왕후 느후스다와 함께
1만여 명이 포로로 사로잡혀 간 후
유다와 예루살렘이 완전히 멸망하기까지의 10년 동안일 것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이 바로 그때의 일입니다.
그때 예레미야는 포로로 잡혀간 사람들에게
앞으로 적어도 두 세대 이상(70년) 동안에는 돌아오지 못할 것이니
그곳에서 집을 짓고 살아갈 궁리를 하라고 편지를 합니다.
그러자 다른 선지자들은 그곳에서 탈출하여 예루살렘으로 돌아오라고 말합니다.
예레미야는 그 편지에서 절대로 예루살렘으로 돌아와서는 안 된다고 경고했습니다.
예루살렘이 아주 참혹하게 멸망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그 후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 성경을 통해 잘 알고 있지만
그 시대를 사는 사람들에게는 매우 혼란스러운 이야기일 수밖에 없습니다.
오늘 말씀에서 예레미야의 말과 그 반대로 말한 선지자들의 말이 어떻게 차이가 있는지,
이 두 세력간의 대결을 보면서 오늘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을 배우게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1. 예레미야와 거짓 선지자의 편지 대결
1) 바벨론에 포로 된 자들에게 편지를 쓴 예레미야(렘 29:1~14)
1. 선지자 예레미야가 예루살렘에서 이 같은 편지를
느부갓네살이 예루살렘에서 바벨론으로 포로로 사로잡아 간 자들 중에
살아남은 장로들과 제사장들과 선지자들과 모든 백성에게 보내었는데
2. 그때는 여고니야 왕과 국모와 환관들과 및
유다와 예루살렘 방백들과 목공들과 철공(대장장이)들이 예루살렘에서 떠난 후라.
3. 유다 왕 시드기야가 바벨론으로 보내어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에게로 가게 한
사반의 아들 엘라사와 힐기야의 아들 그마랴의 손에 위탁하여
이 편지를 전하였더라. 일렀으되
(예레미야가 쓴 편지의 내용)
4.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 내가 예루살렘에서 바벨론으로 사로잡혀 가게 한
모든 포로에게 이같이 이르노라.
5. 너희는 집을 짓고 그곳에서 정착하여 살며, 전원을 만들고 그 열매를 먹으라.
6. 아내를 맞이하여 자녀를 낳으며, 너희 아들로 아내를 얻으며 너희 딸로 남편을 맞아
거기에서 번성하고 쇠잔하지 않게 하라.
7. 너희는 내가 사로잡혀 가게 한 그 성읍이 평안하기를 힘쓰고,
그 성읍의 평안을 위하여 여호와께 간구하라.
이는 그 성읍이 평안해야 너희도 평안할 것이기 때문이라.
(이하 말씀은 성경 참조)
시드기야가 바벨론 왕의 느부갓네살 왕에게
사반의 아들 엘리사와 힐기야의 아들 그마랴를 사신으로 보냈습니다.
예레미야는 바벨론에 포로 된 자들에게 편지를 써서 이 사람들을 통해 전달합니다.
편지의 내용은 포로의 기간이 70년이 될 것이므로 그곳에서 집을 짓고 밭고 일구며
남편과 아내를 맞아 번성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전합니다.
장기 체류할 준비를 하라는 것입니다.
2) 바벨론의 포로 된 자들 중에 나타난 두 명의 거짓 선지자(렘 29: 15, 21)
15. “너희가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바벨론에서 우리를 위하여 선지자들을 일으키셨다’ 하므로
21. 나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골라야의 아들 아합과 마아세야의 아들 시드기야에 대하여 말하노라.
그들은 내 이름으로 너희에게 거짓을 예언한 자들이라.
내가 그들을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의 손에 붙이리니,
그가 너희가 보는 앞에서 그들을 죽일 것이라.
바벨론에 포로 된 자들이 하나님께서 그들 가운데 선지자를 세워
그들을 다시 고향 예루살렘으로 돌아가게 하시리라는 소문을 듣습니다.
골라야의 아들 아합과 마아세야의 아들 시드기야, 이 두 사람은
바벨론에 포로 된 사람들 중에 있었던 많은 거짓 선지자들 중에 대표적인 사람으로,
이들이 예레미야의 예언에 반기를 들고
하나님께서 유다에게 번영과 평화를 주실 것이라고 거짓 예언을 했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이들은 B.C. 597년 바벨론의 2차 포로 이후에도
그들의 거짓 예언을 중단하지 않고 계속하였습니다.
이들의 맹목적인 낙관주의는 바벨론에 포로 된 자들의 마음에 혼란을 일으켜
포로지에서 탈출하여 예루살렘으로 돌아가려는 자들이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3) 유다와 예루살렘은 참혹한 멸망을 당할 것이니
바벨론에 그대로 머물러 있으라(16~20절)
(성경구절은 성경 참조)
이에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다시 한번 유다와 예루살렘을
칼과 기근과 염병으로 철저하게 망하여,
상하여 먹을 수 없는 악한 무화과와 같이 되게 하시리라는 것을 경고하십니다.
그러므로 만일 지금 예루살렘에 간다면 그들과 같은 운명이 될 것이니
딴생각 말고 포로지인 바벨론에 그대로 머물러 있으라는 것입니다,
4) 두 명의 거짓 선지자 내리시는 하나님의 심판(21~23절)
21. 나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골라야의 아들 아합과 마아세야의 아들 시드기야에 대하여 말하노라.
그들은 내 이름으로 너희에게 거짓을 예언한 자들이라.
내가 그들을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의 손에 붙이리니,
그가 너희가 보는 앞에서 그들을 죽일 것이라.
22. 너희 바벨론에 있는 유다의 모든 포로가 그들을 저줏거리로 삼아서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너를 바벨론 왕이 불살라 죽인
시드기야와 아합같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하리니
23. 이는 그들이 이스라엘 중에서 망령되이 행하여 그 이웃의 아내와 행음하며,
내가 그들에게 명하지 아니한 거짓을 내 이름으로 말했기 때문이라.
이것을 내가 알고 있고, 내가 바로 그 증인이니라.
나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셨다” 하였더라.
바벨론에 포로 된 자들의 마음을 뒤숭숭하게 했던 거짓 선지자 아합과 시드기야에게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이 선언됩니다.
그들은 많은 사람이 보는 앞에서 바벨론 왕에 의해 화형당하여 죽게 될 것입니다.
이렇게 하여 그들이 거짓 선지자임을 사람들이 알게 하실 것입니다.
2. 그들이 하나님을 구하고 찾기를 기다리시는 하나님
1) 오직 하나님의 약속만 믿고, 전심으로 하나님을 찾고 구하라(렘 29: 10~11)
10.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바벨론에서 70년이 차면 내가 너희를 권고하고,
나의 선한 말(은혜로운 약속)을 너희에게 실행하여 너희를 이곳으로 돌아오게 하리라.
11.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를 행한 나의 생각은 내가 알고 있으니,
재앙이 아니라 곧 평안이요, 너희 장래에 소망을 주려는 것이 곧 내 생각이라.
포로 기간인 70년이 지나면 재앙은 평안과 소망으로 바뀌게 될 것입니다.
유다 백성들에게 바로 이 평안과 소망을 주시기 위해서
70년간 포로 생활을 하게 하신 것입니다.
그들이 포로 생활을 할 즈음엔 예루살렘 성전이 불에 타 사라지고 없겠지만,
그들이 어디에 있든지 간에 하나님께 구하면 그 기도를 들으실 것이고
전심으로 하나님을 구하며 찾으면 하나님께서 그들을 만나시리라 말씀하십니다.
2) 거짓 선지자와 점쟁이들에게 속지 말고, 꿈 해몽을 요청하지도 말라(8절)
8. 나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이같이 말하노라.
너희들 가운데 있는 선지자들에게 속지 말며, 복술(점쟁이)에게 미혹되지 말며,
너희가 꾼 꿈도 신청하지 말라(꿈해몽 해줄 것을 요청하지도 말라).
하나님의 뜻은 그들이 바벨론 포로 생활을 통해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신실함을 회복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2년 내에 하나님께서 바벨론을 무너뜨리시고
포로 된 자를 고향으로 돌아가게 하리라는 것을 전하는
거짓 선지자들의 말이나 점쟁이들의 말에 속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심지어 꿈을 꾼 후에 꿈 해몽을 요청하지도 말라고 경고하십니다.
그런 쓸데없는 것에 마음 빼앗기지 말고,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며 사는 자가 되라는 것입니다.
3) 하나님을 바라보는 자가 되기 위한 훈련(11~14절)
11.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를 행한 나의 생각은 내가 알고 있으니,
재앙이 아니라 곧 평안이요, 너희 장래에 소망을 주려는 것이 곧 내 생각이라.
12. 너희가 내게 부르짖으며 나에게 와서 내게 기도하면 내가 너희를 들을 것이요,
13. 너희가 전심으로 나를 찾고 찾으면 나를 만나리라.
14.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너희에게 만나지겠고(너희에게 발견될 것이고),
너희를 포로 된 중에서 다시 돌아오게 하되,
내가 쫓아 보내었던 열방(모든 나라들)과 모든 곳에서 모아서
사로잡혀 떠나게 했던 본 곳(너희의 고향)으로 돌아오게 하리라.
나 여호와의 말이니라’하셨느니라.
70년이 지나면 그들도 하나님을 전심으로 구하며 찾는 자들이 될 것입니다.
이 일을 위해 하나님께서 그들을
바벨론 포로라는 고통의 자리로 몰아넣으셨습니다.
그 시간이 지나도 여전히 하나님을 찾지 않는다면 그 고통의 시간은 길어질 것이고,
그 시간 안 되었더라도 하나님을 구하며 찾는다면 그 고통의 시간은 짧아질 것입니다.
제 2 부 : 눈에 보이는 것에 영향받지 마십시오
1. 하나님께서 왜 바벨론 포로지에 머물라고 거듭 강조하시나?
1) 포로 된 자들에게 유다와 예루살렘으로 돌아가지 말라 하신 이유
유다와 예루살렘이 죄에 심각하게 오염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신실한 백성들을 예루살렘에서 아주 먼 거리로 격리하여서
신실한 백성으로 훈련을 시키고자 하신 것입니다.
다른 나라는 그 나라의 우상을 섬겨야만 합니다. 그러므로 신앙의 훈련 장소로 적합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바벨론은 자기들의 신앙을 갖는 것을 허용했습니다.
그러므로 비록 포로 백성으로 고달프기는 할지라도
바벨론은 신앙의 훈련 장소로 최고의 장소였습니다.
그런데 거짓 선지자들은 아직도 여전히 죄에 심각하게 오염된
유다와 예루살렘으로 자꾸만 인도하려 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뜻과 정면으로 반대되는 일입니다.
2) 그러나 이 말씀은 당시 사람들에게는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 말씀이었습니다.
포로 된 자들에게 고향으로 탈출하여 가지 말고
그 포로지에 그대로 남아 있으라는 하나님의 이 말씀은
유다와 예루살렘에 아직 남아 있는 백성들에게나,
이미 바벨론으로 포로로 사로잡혀 간 자들에게나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 말씀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천지를 지으신 창조주이시고, 유다는 그의 백성들인데
어찌하여 저 강도 같은 바벨론 사람의 땅에 그대로 있으라는 것인지
이해가 되지 않는 말씀이었습니다.
3) 하나님의 말씀과 죄에 대한 이해가 없었기 때문
하나님께서는 무려 70년 동안이나
유다 백성들을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 있게 하려 하십니다.
이 엄청난 계획을 느부갓네살이 전면에 나타나기 23년 전부터
예레미야를 통해 계속해서 경고하셨지만
그들은 전혀 알아듣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이 경고를 전혀 알아듣지 못한 이유는 다음 두 가지 때문입니다.
➀ 첫째 :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잘 알지 못했기 때문
일단 백성들 자체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를 원치 않았습니다.
백성들은 그들의 귀를 솔깃하게 할 만한 재미있고 감동적인 설교를 하는
거짓 선지자들의 말에만 귀를 기울였습니다.
그러니 하나님께서 왜 그들에게 진노하시는지 전혀 알지 못했습니다.
➁ 둘째 : 그들이 죄에 대한 감각이 없었기 때문
하나님의 말씀을 바르게 이해했다면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에서 얼마나 떨어져 있는지를 알았을 것입니다.
그들이 얼마나 큰 죄를 범해왔는지를 알았을 것입니다.
그들이 만일 이런 죄에 대한 감각을 가졌더라면
회개까지는 몰라도, 마음에 애통하며 근심하는 정도는 되었을 것입니다.
이 정도만 되어도 하나님께서 그들을 도우려 하셨는데,
죄에 대한 감각이 전혀 없으니 회개도, 죄에 대한 애통함도 없습니다.
➠ 그들이 만일 하나님의 말씀이 잘 이해되지 않았더라도 억지 순종이라도 했더라면
그들이 만일 하나님의 뜻이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하더라도,
그것이 분명 하나님의 말씀이니 억지로라도 순종했더라면
하나님께서 그들을 은혜의 세계로 인도하셨을 것입니다.
그 후에 하나님께서 포로 된 자 중에 에스겔 선지자를 일으키셔서
그들을 하나님의 은혜의 세계로 인도하셨기 때문입니다.
● 묵상 : 그러므로 잘 이해되지 않는 말씀이라도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이 맞다면 순종하십시오.
먼저 내게 주신 말씀이 하나님의 말씀이 맞는지 연구하고 묵상하고 기도하면서
확인하고 또 확인해야 할 것입니다.
요즈음 사교 집단이 엉터리로 전하는 말씀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이 맞는다면 잘 이해되지 않는 말씀이라도 순종하십시오.
하나님의 생각은 우리 생각보다 깊어서 훨씬 더 넓고 깊은 것을 보시기 때문입니다.
만일 하나님의 말씀 중에 내가 이해되는 것만 순종하겠다고 한다면,
자칫 하나님과 대적 관계에 있을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합시다.
2. 보이는 것에 영향받지 마십시오.
1) 사람들이 보기에는 예루살렘에 남아 있는 자가 더 복 있는 자처럼 보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유다와 예루살렘이 죄가 너무 많아
도저히 그곳에서는 사람들을 은혜의 세계로 인도할 수 없으니
저 멀리 바벨론으로 옮겨서 그곳에서 은혜의 훈련을 하려 하셨습니다.
그러나 이런 하나님의 깊으신 뜻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볼 때에는
누가 보더라도 예루살렘에 머물러 있는 것이 더 복 있는 자이고,
바벨론에 포로 된 자들은 하나님께 저주를 받은 사람들인 것처럼 보입니다.
그래서 예루살렘에 남아 있는 자들은
자주 자기들의 의를 자랑하며 포로 된 자들을 조롱했던 것입니다.
2) 영적인 감각이 없으면 복을 저주로, 저주를 복으로 알게 됩니다.
이처럼 영적인 감각을 잃어버린 자들은
무엇이 복이고 무엇이 저주인지 알지 못하게 됩니다.
이런 사람들은 자신에게 복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알지 못하고 보이는 것에 영향을 받아 좌절과 절망 속에 있게 되거나,
반대로 자기에게 저주가 있음에도 복이 있는 것처럼 여기게 됩니다.
➀ 자신에게 있는 복을 저주로 알게 된다면 : 악에 미혹되기 쉽습니다.
만일 바울이 어떤 원인으로
갑자기 영적인 감각을 잃어버려 우울증에 빠졌다면 어찌 될까요?
그러면 자기가 지금 하고 있는 복음 전하는 일이
얼마나 복되고 영광스러운 일인지 알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그는 다만 지금 당하고 있는 그 핍박과 고통만을 보게 될 것이고,
그러면 아주 작은 유혹도 이기지 못하는 사람이 될 것입니다.
➁ 자신에게 있는 저주를 복으로 알게 된다면 : 회개의 기회를 잃게 됩니다.
반대로 지금 유다와 예루살렘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의 무서운 심판을 목전에 둔 사람들인데
자기들이 포로가 되지 않았으니 복 받는 자라고 여기고 있습니다.
그러니 지금이 회개할 마지막 기회라며 외치는
예레미야의 간절한 호소가 들리지 않습니다.
● 묵상 : 눈에 보이는 것에 마음 빼앗기지 마십시오.
만일 당신이 주님을 잘 믿고 있고 날마다 주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고 있다면,
당신은 이미 하나님께서 주신 크고 놀라운 은혜 안에서 살고 있는 자입니다.
그러므로 보이는 것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마치 내가 복을 전혀 받지 못한 사람인 것처럼 좌절하고 절망하지 마십시오.
오히려 큰 복을 내려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찬양하십시오.
눈에 보이는 것 중에 영원한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오직 보이지 않는 가운데 계신 하나님만이 영원하십니다.
주의 은혜 안에 사는 것을 가장 큰 기쁨으로 여기십시오.
제 3 부 : 영의 측면과 육의 측면, 어디에 주목하고 있습니까?
1. 거짓 선지자 스마야가 예루살렘에 보낸 편지
1) 바벨론에 포로 된 자들이 더 복 받은 자들이라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
세상의 눈으로 보면 예루살렘에 아직 남아 있는 사람들이
복을 받은 사람들처럼 보이지만,
신앙의 눈으로 보면 예루살렘은 죄와 쾌락이 난무하는
소돔과 고모라 땅이 된 지 이미 오래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신실한 백성들을 아주 멀리 떨어뜨리셔서
특별한 훈련을 하려 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바벨론에 포로 된 자들 중에는
하나님의 이런 깊으신 뜻을 이해하지 못한 자들이 있었습니다.
이들은 육의 일만 보고
바벨론에 포로된 것이 하나님의 저주를 받는 일이라 여긴 것입니다.
2) 이런 상황에서 예레미야가 보낸 편지는 바벨론에서 큰 반발을 일으켰습니다.
바벨론에 포로 된 것이 저주를 받은 것이고,
예루살렘에 남아 있는 것이 복이라고 여기며 날마다 한숨만 쉬고 있던 사람들에게
바벨론에서 포로 생활을 적어도 70년을 하게 될 것이라고 했던 예레미야의 편지는
포로 된 자들에게 강력한 반발을 불러 일으켰습니다.
3) 거짓 선지자 스마야가 예루살렘에 보낸 편지(24~28절)
24. “너는 느헬람 사람 스마야에게 이같이 말하여 이르라.”
25.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나 예레미야에게
느헬람 사람 스마야에 대하여 이같이 말씀하여 가라사대
네가 네 이름으로(너 스마야가 너의 이름으로) 예루살렘에 있는 모든 백성과
제사장 마아세야의 아들 스바냐와 모든 제사장에게 편지 보내어 이르기를
26. ‘여호와께서 너(스바냐)를 제사장 여호야다를 대신하여 제사장을 삼아
여호와의 성전의 유사(감독자)로 세우신 것은 무릇 미친 자와
자칭 선지자라 하는 자를 차꼬에 채우며 목에 칼을 씌우게 하심이어늘
27. 그런데 너는 어찌하여 너희 중에 자칭 선지자라 하는
아나돗 사람 예레미야를 책망하지 아니하느냐?
28. 대저 그(예레미야)가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 있는 우리에게 편지하기를
‘때가 오래리니(포로로 지내야 할 시간이 오래될 것이니) 너희는 집을 짓고
거기 거하며 전원을 만들고 그 열매를 먹으라 하였다’ 하였느니라.
예레미야의 편지에 반발하는 사람 중에 스마야라는 사람이
당시 예루살렘의 성전 감독으로 있던 제사장 스바냐에게 편지를 보냅니다.
스마야는 예레미야가 포로 생활을
적어도 70년은 더 하게 되리라고 편지를 보냈었다고 말하면서,
이런 미친 예레미야를 어찌하여 그냥 두고 있느냐,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주신 권한을 가지고
저 미친 예레미야와 같은 자를 차꼬와 칼에 채워 벌하지 않느냐’며
스바냐에게 예레미야를 책망할 것을 촉구하는 편지를 보냅니다.
4) 하나님께서 스마야를 벌하리라 말씀하심(31~32절)
31. “너는 모든 포로에게 편지를 보내어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느헬람 사람 스마야에 대하여 이같이 말씀하시되
내가 스마야를 보내지 아니하였거늘
그가 너희에게 예언하고 너희로 거짓을 믿게 하였도다.
32. 그러므로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보라,
내가 느헬람 사람 스마야와 그 자손을 벌하리니,
그가 나 여호와께 패역한 말을 하였음을 인하여
이 백성 중에 살아남아 거할 그의 자손이 하나도 없을 것이라.
내가 이 백성에게 행하려 하는 선한 일을 그가 보지 못하리라’하셨다 하라.
나 여호와의 말이니라.”
그러나 스바냐는 예레미야에게 그 어떤 책망도 하지 않고
스마야의 편지를 읽어 주었습니다.
예레미야가 그 편지를 들은 후에 하나님의 말씀이 예레미야에게 임하였습니다.
예레미야는 하나님의 명령대로 하나님께서 반드시
거짓 선지자 스마야를 벌하시리라는 말씀을 편지를 써서 보냅니다(32절).
2. 영의 일은 보지 못하고 육의 일만 보는 사람들
1) 육의 일만 본 사람들 ➠ 결과적으로 하나님의 일을 방해한 자들이 되었습니다.
우선 이들의 행동은 벌어지는 일들의 육의 측면만을 보고 한 일이었지만,
결과적으로 그들의 일은 신실한 백성을 특별하게 훈련하시려는
하나님의 일을 방해하는 일이 되었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훈련을 방해하려는 이 무리들을
하나님께서는 도저히 그냥 내버려 두실 수 없으셨고,
그래서 그들은 아주 특별한 방법으로 처참한 죽임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스마야의 자손 중에서
살아남을 자가 하나도 없을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2) 모든 일에 두 가지 측면이 있습니다. 영의 측면과 육의 측면입니다.
가령 요셉이 형들에게 팔리고 보디발의 아내의 음모에 휘말려 옥살이를 하게 된 것을
육의 측면으로만 보면 분명히 저주를 받은 것입니다.
그러나 영의 측면으로 보면
더 많은 복을 주시기 위한 하나님의 연단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모두 매사에 하나님께서 의도하신 바가 무엇인지를 깨닫는
영적인 측면을 바라볼 수 있는 눈과 귀와 지혜를 가져야 하겠습니다.
우리가 무엇보다도 먼저 구해야 할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3) 육의 일만 보면 하나님의 적대자가 됩니다.
육의 일만 보는 자들은 열심히 하면 할수록 더욱더 하나님의 적대자가 됩니다.
만일 스마야가 편지를 써서 보내지 않았더라면
하나님께서 그를 저주를 내리셔야 할 자로 여기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만일 우리도 육의 일만 보고 있다면
우리가 열심을 내는 모든 일들이 하나님의 진노를 사게 될 수 있음을 기억합시다.
그러므로 우리가 무엇을 하기 전에
먼저 그 일이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일인지를 따지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이 일이 당신에게 습관화가 이루어지도록 매일 경건의 시간을 가지십시오.
3. 영광의 복을 얻기 전에 먼저 고난의 시간을 지나야 합니다.
1) 하나님께서 예레미야에게 주신 예언의 말씀을 기록하라 명하심(렘 30:1~3)
1. 여호와의 말씀이 예레미야에게 임하여 이르시니라
2. “나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가 이같이 이르노라.
내가 너에게 이른 모든 말을 책에 기록하라.
3.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내 백성 이스라엘과 유다의 포로를 돌이킬 때가 이르리니,
내가 그들을 그 열조(조상들)에게 준 땅으로 돌아오게 할 것이라.
그들이 그것을 차지하리라. 나 여호와의 말이니라.”
하나님께서 예레미야에게 이르시는 말씀을 책에 기록하여 보관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예레미야서 전체를 기록하라는 말이 아니라,
구원의 예언을 따로 모아둔 책을 만들라고 명령하시는 것입니다.
흔히 ‘위로의 작은 책’이라 불리는 예레미야 30장~31장이 바로 그 부분입니다.
이때의 책은 보통 길이 4.5m, 폭 30cm로 된
양피지나 파피루스를 재료로 만든 두루마리 책입니다.
2) 그러나 그 구원의 때가 오기 전에 먼저 고난의 시간을 지나야 합니다(4~7절)
4. 여호와께서 이스라엘과 유다에 대하여 하신 말씀이 이러하니라.
5.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들리는 소리는 온통 떨리는 소리(전쟁과 파괴의 소리) 뿐이니
두려움이요 평안함이 아니로다.
6. 너희는 자식을 해산하는 남자가 있는가 물어보라.
그런데 남자마다 해산하는 여인처럼 손으로 각기 허리를 짚고
그 얼굴빛이 창백하여 보임은 어찌 된 일이뇨?
7. 슬프다 그날이여!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이 크니,
이는 야곱의 환난의 때가 됨이로다마는, 그가 그 환난에서 구하여 냄을 얻으리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예레미야에게 기록하라 하신 그 구원의 때가 오기 전에
유다 백성들은 먼저 엄청난 고난과 재앙의 시간을 지나가야만 합니다.
이 고난의 때가 지금까지 유다를 다스리던 자들에는 종말의 때가 되고,
바벨론에 포로 된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백성의 자리를 회복하는 시간이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내리시는 재앙은 감당하기 힘든 떨림과 두려움입니다.
어떠한 평안도 기대할 수 없는 두려움의 시간입니다.
남자들도 해산하는 여인처럼 두려움에 얼굴빛이 창백하여질 것입니다.
이때에 유다의 거짓된 자들은 모두 제거될 것입니다.
3) 그 고난의 시간이 지나고 위로의 때가 올 것입니다(7~10절)
7. 슬프다 그날이여!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이 크니,
이는 야곱의 환난의 때가 됨이로다마는, 그가 그 환난에서 구하여 냄을 얻으리로다.
8. 나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날에 내가 네 목에서 그 멍에를 꺾어버리며 네 줄을 끊으리니,
이방인이 다시는 너를 종으로 부리지 못할 것이며,
9. 너희는 너희 하나님 나 여호와를 섬기며
내가 너희를 위하여 일으킬 너희 왕 다윗을 섬길 것이라.
10. 그러므로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 종 야곱아, 두려워 말라.
이스라엘아 놀라지 말라. 내가 너를 원방(먼 곳)에서 구원하고,
네 자손을 포로 된 땅에서 구원하리니 야곱이 돌아와서 태평과 안락을 누릴 것이라.
너를 두렵게 할 자가 없으리라.
하지만 그 엄청난 재앙의 시간이 지나고 난 후에
때가 되면 이스라엘과 유다 백성들에게 매에 있던 멍에가 풀어지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유다 백성들을 심판하리라고 말씀하셨다고 하더라도
그들을 모두 다 진멸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때가 되면 포로 되었던 자들이
하나님께서 주셨던 조상들의 땅으로 돌아오게 될 것입니다.
4. 하나님은 우리가 하니님의 거룩한 백성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1) 하나님께서 고난을 통하여 훈련할 자와,
심판하여 멸망시킬 자를 구분하셨습니다(렘 30:4~7).
4. 여호와께서 이스라엘과 유다에 대하여 하신 말씀이 이러하니라.
5.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들리는 소리는 온통 떨리는 소리(전쟁과 파괴의 소리) 뿐이니
두려움이요 평안함이 아니로다.
6. 너희는 자식을 해산하는 남자가 있는가 물어보라.
그런데 남자마다 해산하는 여인처럼 손으로 각기 허리를 짚고
그 얼굴빛이 창백하여 보임은 어찌 된 일이뇨?
7. 슬프다 그날이여!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이 크니,
이는 야곱의 환난의 때가 됨이로다마는, 그가 그 환난에서 구하여 냄을 얻으리로다.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변화될 가능성이 남아 있을 때에는
그 자리에서 이런저런 징계를 통하여 훈련하셨으나,
이제 더 이상 그런 기대감을 가질 수 없을 만큼 유다 백성들이 철저하게 타락하였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마음에 하나님을 사모하는 마음이 조금이라도 있는 자,
비록 죄를 범하고 있을지라도 자기의 죄를 애통하며 슬퍼하는 자를 따로 구분하여
먼 만리타향에 포로가 되게 하셔서 그들을 따로 훈련하려 하십니다.
그리고 그런 애통하는 마음조차 전혀 없는 나머지 백성들은
하나님의 엄청난 심판을 통하여
그 구원의 역사에서 영원히 분리시킬 계획을 세우십니다.
2) 그 일을 행하기 직전에 예레미야에게
그 심판과 구원의 소식을 책으로 기록하게 하십니다(1~2, 11절)
1. 여호와의 말씀이 예레미야에게 임하여 이르시니라
2. “나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가 이같이 이르노라.
내가 너에게 이른 모든 말을 책에 기록하라.
11.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너와 함께하여 너를 구원할 것이라.
내가 너를 흩었던 그 열방(모든 민족)을 진멸한다 할지라도 너는 진멸하지 아니하리라.
그러나 내가 공도로(公道, 법을 따라서) 너를 징책할 것이요,
결코 무죄한 자로 여기지 아니하리라.”
이제 곧 하나님께서 그 일을 시작하시면
대부분의 유다와 예루살렘 백성들이 바벨론에 의해 멸망을 당하고
아주 극소수의 사람들만 바벨론에 포로가 되어 끌려가게 될 것입니다.
그 엄청난 재난이 막 시작되려는 때에
이 구원의 소식을 미리 책으로 기록하라고 말씀하시는 것은,
장차 그들이 다시 돌아오게 될 때에 그 모든 일이
다 하나님의 뜻에 의해 이루어진 것임을 깨달아서,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거룩한 백성으로 살게 하기 위함입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공도로 이루어진 것임을 알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
3) 그러나 그들이 평안할 때에 말씀으로 훈련받았더라면~
제일 좋은 것은 말씀을 통해 훈련을 받는 것입니다.
징계를 받고서라도 훈련을 받는다면 비록 늦었더라도 참으로 다행한 일입니다.
그러나 유다 백성들은 끝내 하나님의 훈련을 거부해
결국 하나님의 구원사에서 제외되는 비극을 경험하고 맙니다.
● 묵상 :
그러므로 우리는 말씀으로 훈련을 받는 성도가 됩시다.
뒤로 미루면 미룰수록 더욱 힘든 훈련에 참여하게 됩니다.
그러다 혹 영원히 훈련받을 기회를 상실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매일 매일 말씀 묵상과 기도를 통해서 훈련받는 신실한 성도가 되십시오.
5. 심판과 구원의 기다리는 긴장된 시간
1) 출애굽 때에도, 바벨론 침략 때에도 반복되는 구원과 심판의 역사
출애굽 때에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안식인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전에
하나님 앞에 불평했던 자들이 40년 동안 광야에서 모두 죽는 심판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바벨론 포로 되었던 자들이
하나님의 주신 땅 가나안으로 다시 돌아오기 전에
바벨론에 의해 유다와 예루살렘이 참혹하게 파멸되는 심판이 있었습니다.
2)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하나님께서 정하신 원칙에 합당한 자들에게만 구원을 베푸십니다.
이 원칙은 세상 만민을 구원하시기 위해
예수께서 다시 이 땅에 오실 때에도 동일하게 적용될 것입니다.
마지막 날에 그 큰 구원의 역사가 일어나기 전에
먼저 세상 만민을 심판하시는 일이 있을 것입니다.
● 묵상 :
우리는 그 큰 구원의 날(어떤 자에게는 큰 심판의 날)이
언제 우리에게 임하여 올지 알 수 없는 긴장된 시간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런 긴장된 시간을 ‘종말론적인 시간’이라고 말합니다.
이 긴장된 시간을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우리는 이 세상살이를 하는 중에 언제나 그날을 맞이할 준비를 하며 살아야 합니다.
결 론 : 이제는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1)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갈 2:20)
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지금 내가 육신의 몸으로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우리가 주의 이름을 부르며 구원받는 자 되게 해 주시기를 간구하면
이전에 우리가 범한 모든 죄는 다 용서함을 받습니다.
그것들이 다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습니다.
이전의 모든 것이 다 사라져 버린 것입니다.
컴퓨터는 삭제해도 다시 복구할 수 있지만,
주께서 용서하신 우리의 죄는 완전히 사라져 버렸습니다.
나는 아직도 여전히 그것을 기억하여 가끔 그 생각을 하면서 부끄러워하지만,
주께서는 완전히 잊어버리셨습니다.
2) 내 안에서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20절)
(20절 성경구절 위에)
죄를 용서해 주신 것뿐만 아니라
우리를 완전히 새로운 피조물이 되게 하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시는 것은
성령께서 내 안에 들어오셔서 나와 함께 사신다는 것을 뜻합니다.
그러나 단순히 성령이 내 안에 들어오셨다는 것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완전히 새로운 피조물이 된 것입니다.
➠ 우리는 주님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습니다(고린도후서 5:17)
17.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주님 안에서 우리는 완전히 새롭게 창조되었습니다.
A가 A′가 된 것이 아니라, A가 B가 된 것입니다.
돼지가 리본을 매단 정도가 아니라 양이 된 것입니다.
이 땅의 사람으로 무엇을 더 얻어 부자가 된 정도가 아니라
완전히 하나님의 백성이 된 것입니다.
이 땅에서부터 이미 천국 백성이 되었습니다.
이 땅에서부터 이미 하나님의 시간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3)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 생명의 지속성(20절)
(20절 성경구절 위에)
그러나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단순히 그의 이름을 부르는 것만을 뜻하는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을 통하여 하나님과 새로운 관계가 열렸으므로,
우리는 계속해서 하나님과 관계를 맺으면서 살아가야 합니다.
지난 주일에 예배드렸는데 이번 주일에 왜 예배를 또 드립니까?
어제 먹은 밥을 오늘도 먹어야 하는 것과 같습니다.
생명이란 지속성을 갖습니다.
어제도 밥을 먹고 오늘도 먹어야만 우리의 생명이 유지되듯,
우리가 주님 안에서 영의 생명을 다시 회복했다면,
하나님과 계속 관계를 맺어 그 생명이 유지되도록 해야 하는 것입니다.
➠ 믿는다는 것은 주님의 시간 속으로, 주님의 질서 속으로 들어가는 것을 뜻합니다.
매일 말씀을 묵상하고 기도하십시오.
매주 주님 앞에 나아가 감사와 찬양의 예배를 드리십시오.
매년 주님의 절기를 지키며 주께서 나를 위해 행하신 일들을 기념하십시오.
그리고 주께서 주신 말씀에 순종하십시오.
주님의 은혜 밖에 있는 자들을
주의 은혜 안으로 인도하는 일에 참여하십시오.
주님을 사랑하며 섬기는 자가 되십시오.
그러면 이 땅에서부터 하나님의 백성이 됩니다.
주님
내가 복 있는 자인지 저주 가운데 있는 자인지
분별할 수 있는 영적인 감각을
잃지 않게 하옵소서.
무엇보다도 어떤 것이 진정한 하나님의 말씀인지
어떤 것이 거짓된 엉터리인지
바르게 분별하게 하옵소서.
주님이 오실 그 날을
항상 준비하며 살게 하옵소서.
이제는 우리도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삶을 살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