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제목 : 그러므로 주의 은혜의 자리를 지키십시도.
설교본문 : 갈라디아서 3:10~18, 예레미야 30~31장
설 교 자 : 송호영 목사
설 교 일 : 2023년 12월 31일(송년주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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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론 :
성경이 우리에게 증거하는 하나님은 ‘우리에게 복 주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입니다.
우리에게 복 주기 원하셔서 사랑하는 독생자 예수님까지 보내셨씁니다.
그런데 때때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다면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나?’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어떻게 하나님의 백성이 이방인 바벨론 사람에게 포로 되어 끌려갈 수 있을까,
우리를 사랑하시고 돌보시는 하나님은 어디에 계신가”
아마도 그때 유다 백성들은 하나님을 향하여 이런 절규의 외침을 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복 주시기 위하여 치료하시는 과정입니다.
오늘 말씀은 복 주시기 위하여 치료하고 수술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말씀입니다.
2023년 마지막 날이며 마지막 주일인 오늘
우리에게 복 주시기 위하여 때로 치료하시고 수술하시는 하나님의 모습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제 1 부 : 그의 백성을 치료하고 거룩하고 신실한 백성이 되게 하시는 하나님
1. 영광의 복을 얻기 전에 먼저 고난의 시간을 지나야 합니다.
1) 하나님께서 예레미야에게 주신 예언의 말씀을 기록하라 명하심(렘 30:1~3)
1. 여호와의 말씀이 예레미야에게 임하여 이르시니라
2. “나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가 이같이 이르노라.
내가 너에게 이른 모든 말을 책에 기록하라.
3.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내 백성 이스라엘과 유다의 포로를 돌이킬 때가 이르리니,
내가 그들을 그 열조(조상들)에게 준 땅으로 돌아오게 할 것이라.
그들이 그것을 차지하리라. 나 여호와의 말이니라.”
본문 30:1~3의 상황은 아직 유다가 바벨론에게 망하지 않은 때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유다 백성들이 바벨론에 포로 되어 회개한 후의 일을 미리 말씀하시면서
예레미야에게 이르시는 말씀을 책에 기록하여 보관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예레미야서 전체를 기록하라는 말이 아니라,
구원의 예언을 따로 모아둔 책을 만들라고 명령하시는 것입니다.
흔히 ‘위로의 작은 책’이라 불리는 예레미야 30장~31장이 바로 그 부분입니다.
2) 그러나 그 구원의 때가 오기 전에 먼저 고난의 시간을 지나야 합니다(4~7절)
4. 여호와께서 이스라엘과 유다에 대하여 하신 말씀이 이러하니라.
5.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들리는 소리는 온통 떨리는 소리(전쟁과 파괴의 소리) 뿐이니
두려움이요 평안함이 아니로다.
6. 너희는 자식을 해산하는 남자가 있는가 물어보라.
그런데 남자마다 해산하는 여인처럼 손으로 각기 허리를 짚고
그 얼굴빛이 창백하여 보임은 어찌 된 일이뇨?
7. 슬프다 그날이여!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이 크니,
이는 야곱의 환난의 때가 됨이로다마는, 그가 그 환난에서 구하여 냄을 얻으리로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예레미야에게 기록하라 하신 그 구원의 때가 오기 전에
유다 백성들은 먼저 엄청난 고난과 재앙의 시간을 지나가야만 합니다.
이 고난의 때가 지금까지 유다를 다스리던 자들에는 종말의 때가 되고,
바벨론에 포로 된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백성의 자리를 회복하는 시간이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내리시는 재앙은 감당하기 힘든 떨림과 두려움입니다.
어떠한 평안도 기대할 수 없는 두려움의 시간입니다.
남자들도 해산하는 여인처럼 두려움에 얼굴빛이 창백하여질 것입니다.
이때에 유다의 거짓된 자들은 모두 제거될 것입니다.
3) 그 고난의 시간이 지나고 위로의 때가 올 것입니다(7~11절)
7. 슬프다 그날이여!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이 크니,
이는 야곱의 환난의 때가 됨이로다마는, 그가 그 환난에서 구하여 냄을 얻으리로다.
8. 나 만군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날에 내가 네 목에서 그 멍에를 꺾어버리며 네 줄을 끊으리니,
이방인이 다시는 너를 종으로 부리지 못할 것이며,
9. 너희는 너희 하나님 나 여호와를 섬기며
내가 너희를 위하여 일으킬 너희 왕 다윗을 섬길 것이라.
10. 그러므로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 종 야곱아, 두려워 말라.
이스라엘아 놀라지 말라. 내가 너를 원방(먼 곳)에서 구원하고,
네 자손을 포로 된 땅에서 구원하리니 야곱이 돌아와서 태평과 안락을 누릴 것이라.
너를 두렵게 할 자가 없으리라.
11.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너와 함께하여 너를 구원할 것이라.
내가 너를 흩었던 그 열방(모든 민족)을 진멸한다 할지라도
너는 진멸하지 아니하리라.
그러나 내가 공도로(公道, 법을 따라서) 너를 징책할 것이요,
결코 무죄한 자로 여기지 아니하리라.”
하지만 그 엄청난 재앙의 시간이 지나고 난 후에
때가 되면 이스라엘과 유다 백성들에게 매에 있던 멍에가 풀어지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유다 백성들을 심판하리라고 말씀하셨다고 하더라도
그들을 모두 다 진멸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때가 되면 포로 되었던 자들이
하나님께서 주셨던 조상들의 땅으로 돌아오게 될 것입니다.
2. 하나님의 백성의 중한 병을 치료하시는 하나님
1) 치료될 수 없는 중한 병에 걸린 유다와 예루살렘(12~15절)
12.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네 상처는 고칠 수 없고 네 창상(부상)은 중하도다.
13. 네 송사를 변호할 자가 없고, 네 상처를 싸맬(치료할) 약도 없도다.
14. 너를 사랑하던 자가 다 너를 잊고 찾지 아니하니,
이는 네 허물이 크고 네 죄가 수다함을 인하여
내가 원수를 상하게 하는 그것으로 너를 상하게 하며,
잔악한 자를 징계하는 그것으로 너를 징계한 것이어늘
15. 어찌하여 네 상처를 두고 부르짖느뇨? 네 고통이 낫지 못하리니
네 죄악이 크고 네 죄가 너무 많아 내가 네게 이 일을 행하였음이니라.
유다는 지금 치유될 수 없는 중한 병에 걸렸습니다.
그들의 상황을 항변해 줄 사람도 없고, 그 상처를 치유할 약도 없습니다.
어떤 희망도 가질 수 없는 유다의 상황은 죽음을 눈앞에 둔 상황입니다.
서로 도와주겠다던 유다의 동맹국들도 이제는 그들에게 관심조차 기울이지 않습니다.
이 모든 일을 이루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들의 죄와 허물이 너무나도 컸기 때문입니다.
2) 어찌하여 네 상처를 두고 부르짖느뇨? 네 고통이 낮지 못하리니(15절)
(15절 성경구절 위에)
유다가 치유될 수 없는 중병에 걸린 것은 그들의 죄악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유다 백성들은 병의 근본 원인인 죄의 문제를 두고 기도를 해야 합니다.
그런데 죄의 문제는 기도하지 않고 고통스러운 상처만을 두고 부르짖으니
하나님께서 “어찌하여 네 상처를 두고 부르짖느뇨?”하고 책망하십니다.
● 묵상 : 아픔과 고통, 답답함이 온 까닭이 이루어지게 하옵소서.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어떤 아픔과 고통과 답답한 일을 당하고 있다면
반드시 그 까닭이 있습니다.
하늘을 하는 새도 하나님의 허락 없이는 떨어지는 법이 없는데
하물며 주께서 사랑하시는 우리를
아무런 까닭도 없이 답답하고 고통스럽게 하시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답답하고 고통스러운 일이 생겼다면, 본문의 유다 백성들처럼
무조건 그 답답한 일에서 벗어나게 해 달라고 구할 것이 아니라,
그 일이 일어난 근본 원인이 치료되게 해 달라고 구해야 합니다.
이 아픔이 내게 일어난 그 까닭이 이루어지게 하옵소서.
하나님께서 내게 아픔을 주신 뜻이 이루어지게 하옵소서.
이렇게 기도해야 합니다.
3) 때가 되면 그들의 상처를 다시 치유하실 것입니다(16~22절)
16. 그러나 무릇 너를 삼키는 자는 먹히며(삼킴을 당하며),
무릇 너를 치는 자는 다 포로가 되며, 너를 탈취하는 자는 탈취를 당하며,
무릇 너를 약탈하는 자는 내가 그로 약탈을 당하게 하리라.
17.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들이 너희를 ‘쫓겨난 자라’하며
‘찾아오는 자가 아무도 없는 시온이라’하였은즉,
내가 너를 치료하여 네 상처를 낫게 하리라.
18.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보라, 내가 포로 된 야곱의 장막들을 돌이키고(돌아오게 하고),
그 거하는 곳들을 긍휼히 여길 것이라. 그 성읍은 자기 산에 다시 세워질 것이요,
그 궁궐은 본래대로 거하는 곳이 될 것이며
19. 감사하는 소리와 즐거워하는 자의 목소리가 그중에서 나오리라.
내가 그들을 번성케 하리니 쇠잔치 아니하겠고,
내가 그들을 영화롭게 하리니 비천하지 아니하겠으며,
20. 그 자손은 여전하겠고(옛날과 같이 회복되겠고), 그 회중은 내 앞에 굳게 설 것이며,
무릇 그를 압박하는 자는 내가 다 벌하리라.
21. 그 왕은 그 본족에게서(같은 민족에게서) 나올 것이요,
그 통치자는 그들 중에서 나올 것이며,
내가 그를 가까이 오게 하므로 그가 내게 접근하리라(가까이 오리라).
그렇지 않고 담대히 내게 접근할 자가 누구뇨? 나 여호와의 말이니라.
22. 너희는 내 백성이 되겠고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리라.
그러나 때가 되면 상처에서 새살이 돋듯
하나님께서 그들을 고쳐 치유하실 것입니다.
그들이 그 고통 속에서 죄를 벗고 하나님을 찾는 일을 다시 회복한다면
하나님께서 그들을 고쳐 치유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을 압제하였던 자들이
자기들이 행한 그대로 당하게 될 것입니다.
그때가 되면
➀ 하나님께서 그들을 다시 돌아오게 하시고
그들이 거처하는 곳을 긍휼히 여길 것입니다.
➁ 그들의 성읍이 다시 재건되어 본래 그들이 살던 모습을 회복할 것입니다.
➂ 그 성읍에 감사하는 소리와 즐거워하는 소리로 가득하게 될 것입니다.
➃ 그들이 번성하고 영화롭게 될 것입니다.
➄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자존감이 회복될 것입니다.
➅ 하나님께서 그 백성을 존귀하게 만드시고
더 이상 열방의 조롱이나 비웃음의 대상이 되지 않을 것입니다.
➆ 하나님께서 그 대적을 제거하여 야곱의 자녀들이 예전과 같이 될 것입니다.
➇ 나라를 통치할 통치자가 그 백성 중에서 나올 것이요,
그 통치자가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갈 것입니다.
➈ 그들이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그들의 하나님이 되시는 새로운 언약이 맺어질 것입니다.
➠ 그러나 이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마음에 정하신 일들이 모두 다 이루어진 이후에나
이루어지게 될 것입니다(23~24절).
23. 보라, 여호와의 진노가 발하여 폭풍과 회오리바람처럼 악인의 머리를 칠 것이라.
24. 나 여호와의 진노는 내 마음의 뜻한 바를 행하여 이루기까지는 쉬지 아니하나니,
너희가 말일(그 끝 날)에 그것을 깨달으리라.
회개하여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일이
모두 다 이루어진 후에나 이루어질 것입니다.
그전까지는 하나님의 진노가 그들에게 쉬지 않고 계속될 것입니다.
그래서 이 모든 일이 이루어진 때에야 비로소
하나님께서 이 모든 일을 이루셨음을 그들이 알게 될 것입니다.
제 2 부 : 그날이 오면 새 언약을 세우리니
1. 모든 것이 하나님과의 관계의 회복과 함께 이루어집니다.
1) 모든 복은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을 통해 주어집니다(31:18~20).
18. 에브라임이 스스로 탄식하는 소리를 내가 분명히 들었노니, 이르기를
‘주께서 나를 징벌하시니 멍에에 익숙하지 못한 송아지 같은 내가 징벌을 받았나이다.
주는 여호와시니 나를 이끌어 돌이키소서. 그리하시면 내가 돌아오겠나이다.
19. 내가 돌이킴을 받은(주님을 떠난) 후에 뉘우쳤고
내 볼기를(내 허벅지를, 내 가슴을) 쳤사오니,
이는 어렸을 때의 치욕을 지었으므로(젊은 시절의 수치를 지니고 있으므로)
부끄럽고 욕됨이니이다’ 하도다.
20. 에브라임은 나의 사랑하는 아들 기뻐하는 자식이 아니냐?
내가 그를 책망하여 말할 때마다 깊이 생각하도다.
그러므로 그를 위하여 내 마음이 측은한즉 내가 반드시 그를 긍휼히 여기리라.
나 여호와의 말이니라.
거짓 예언자들은 회개를 하지 않아도,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지 않아도
무조건 유다가 회복되리라고 예언합니다.
그러나 예레미야를 통해 주신 하나님의 말씀은
하나님과의 새로운 언약이 체결되면서
이 모든 회복이 이루어지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장차 왕정도 회복되고
폐허가 된 예루살렘의 모든 것이 재건될 것이라고 예언한 점은 같지만,
그러나 이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과 새로운 언약을 맺는 것과 함께 진행됩니다.
2) 애통하며 회개한 자에게 주시는 복 :
근심한 후에 기쁨을 얻게 할 것임이니라, 네 일에 갚음을 받을 것인즉(13, 16절)
13. 그때에는 처녀는 춤추며 즐거워하겠고 청년과 노인이 함께 즐거워하리니,
내가 그들의 슬픔을 돌이켜(바꾸어) 즐겁게 하며,
그들을 위로하여 근심한 후에 기쁨을 얻게 할 것임이니라.
16.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네 울음소리를 그치고 울지 말며 네 눈물을 금하여 눈물을 흘리지 말라.
네 일(네 수고)에 갚음을 받을 것인즉 그들이 그 대적의 땅에서 돌아올 것이라.
나 여호와의 말이니라.
이스라엘의 회복은 그냥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그들이 자신의 죄를 깨닫고 애통하며 회개할 때
하나님께서 그들을 향하여 긍휼의 마음을 불붙듯 일으키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13절에서는 그들이 근심한 후에 기쁨을 얻을 것이라 했고,
16절에서는 그들이 슬퍼하며 애통한 일에 갚음을 받을 것이라 하셨습니다.
• 예레미야는 예수님이 오시기 600년 전이니
예수님의 일을 장차 이루어질 일로 예언하고 있습니다만,
신약 시대를 사는 우리는 이미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이 모든 복을 받아 누리고 있습니다.
이제 유대인들이 오랜 시간 동안 근심한 후에 예수께로부터 받은 그 복음의 말씀을
우리는 이미 받아서 그 은혜를 누리고 있습니다.
2. 멸하기도 하고 회복하기도 하시는 하나님
1) 그동안은 멸하였으나 이제 새로 세우며 심으리라(31:27~30)
27.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보라 내가 사람의 씨와 짐승의 씨를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뿌릴 날이 이르리니
28. 내가 경성하여(깨어서) 그들을 뽑으며 훼파하며 전복하며 멸하며 곤란하게 하던 것
같이, 경성하여(내가 깨어서) 그들을 세우며 심으리라. 나 여호와의 말이니라.
29. 그때가 오면 그들이 다시는 이르기를
‘아버지가 신 포도를 먹었으므로 아들들의 이가 시다’하지 아니하겠고,
30. 신 포도를 먹는 자마다 그 이가 신 것처럼
각기 자기의 죄악으로만 죽으리라.
그동안은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들을 향하여 뽑으며 무너뜨리며 멸망시키셨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될 때
하나님께서 다시 그들을 심고 세우시리라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그들을 하나님의 영원한 백성으로 삼으리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면서 아비가 먹은 신포도로 아들의 이가 시지 않으리라는
이스라엘의 속담을 인용하십니다.
그때가 되면 아비가 죄를 지었더라도
그 죄로 인하여 아들이 죽는 일이 없을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누구나 각자 자기가 지은 죄로 심판을 받게 되리라는 말씀입니다.
누구든지 하나님 앞에 나와 회개하면, 그들의 조상들이 어찌했든 간에
하나님께서 다시 그들에게 복을 내리실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2) 그날이 오면 새 언약을 세우리니(31절)
31.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보라 날이 이르리니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새 언약을 세우리라.
예레미야는 이제 곧 날이 이르면
이스라엘이 그 죄로 인하여 바벨론에 망하게 되리라는 것을 예언해 왔습니다.
그들이 완전히 무너질 때까지 계속 지켜보시면서 그들을 멸하리라 예언해 왔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결코 그의 백성을
그렇게 망한 상태로 내버려 두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때가 이르면 하나님께서 다시 그의 백성들을 지켜보시면서
심고 세우실 날이 올 것입니다.
그때가 오면 하나님께서 그들과 새 언약을 세우셔서
그들을 다시 하나님의 백성으로 세우시고 하나님의 백성으로 심는 날이 올 것입니다.
➠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새로 맺어지는 새 언약을 의미합니다.
예수께서 우리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달리심으로 인하여,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약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하나님의 백성 삼으시리라는 새 언약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말씀하는 새 언약이란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신 복음의 말씀인 신약성경을 말합니다.
● 묵상 :
새 언약으로 본래 이방인이었던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습니다.
우리를 하나님의 백성 삼으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찬양합시다.
제 3 부 : 그러므로 주의 은혜의 자리를 지키십시오.
1. 그런데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리셔서 이 모든 일을 이루셨습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리셔서 예레미야를 통해 말씀하신 이 모든 일이 이루어졌습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리셔서
누구든지 구원받을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입니다.
1) 누구나 할 수 있도록 수준을 대폭 낮추셨습니다 : 의지하는 것, 구하는 것(갈 2:16)
16. 사람이 의롭게 되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줄 아는고로
우리도 그리스도 예수를 믿나니, 이는 우리가 율법의 행위에서 아니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서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함이라
율법의 행위로서는 의롭다 함을 얻을 육체가 없느니라.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리셔서
그동안 우리가 범한 모든 죄가 다 용서함을 받았습니다.
그러니 이미 수없이 많은 죄를 범한 자에게도
구원의 길이 열린 것입니다.
또 율법을 지킬 힘이 없는 자도
주의 이름을 부르며 구원해 주시기를 간구할 수는 있습니다.
전에는 그 모든 것을 지켜야만 구원을 받을 수 있는데
이제는 주의 이름을 부르며 구원해 주시기를 구하기만 해도 구원을 받습니다.
구하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주께서 누구나 할 수 있도록 수준을 대폭 낮추신 것입니다.
2) 성령을 통하여 우리가 믿는 자가 되도록 힘과 능력을 공급하십니다(20절)
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지금 내가 육신의 몸으로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우리가 구하기만 해도 구원을 받는 자가 될 수 있는 것은
주께서 우리에게 성령을 공급하여 주셨기 때문입니다.
성령에 우리 안에 들어오셔서 우리 마음의 자리를 바꾸시고,
하나님의 능력을 내 안에 넣어 주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의 성품을 닮은 자가 되어 주님을 섬기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3)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20절)
(20절 성경구절 위에)
우리가 주의 이름을 부르며 구원받는 자 되게 해 주시기를 간구하면
이전에 우리가 범한 모든 죄는 다 용서함을 받습니다.
그것들이 다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습니다.
이전의 모든 것이 다 사라져 버린 것입니다.
컴퓨터는 삭제해도 다시 복구할 수 있지만,
주께서 용서하신 우리의 죄는 완전히 사라져 버렸습니다.
나는 아직도 여전히 그것을 기억하여 가끔 그 생각을 하면서 부끄러워하지만,
주께서는 완전히 잊어버리셨습니다.
➠ 내 안에서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20절)
(20절 성경구절 위에)
죄를 용서해 주신 것뿐만 아니라
우리를 완전히 새로운 피조물이 되게 하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시는 것은
성령께서 내 안에 들어오셔서 나와 함께 사신다는 것을 뜻합니다.
그러나 단순히 성령이 내 안에 들어오셨다는 것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완전히 새로운 피조물이 된 것입니다.
2. 율법의 행위 아래 있는 자는 모두 저주를 받은 자이다(갈 3:10)
10. 율법의 행위에 속한(율법을 지켜서 구원받으려는 자들은) 저주 아래 있나니,
기록된바 “율법 책에 기록된 모든 것을 항상 지켜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저주 아래 있는 자라”(신 27:26) 하였음이라.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리셔서 우리같이 부족한 자들도 구원받는 길이 열렸습니다.
그런데 갈라디아 교회에 다시 예레미야 시대의 유다 백성들처럼
율법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주장하는 자들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아주 강렬한 언어로 율법을 지키려는 자들은 하나님의 저주 아래 있다고 경고합니다.
율법을 지키려 애를 쓰는 자가 모두 하나님의 저주 아래 있는 것은
다음과 같은 이유 때문입니다.
1) 첫째 이유 : 모든 율법을 다 지킬 수 있는 자가 하나도 없으므로
➀ 모든 율법을 다 지켜야만 구원을 얻을 수 있습니다(3:10)
(10절 성경구절 위에)
누구든지 율법 책에 기록된 대로 온갖 일을 항상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저주 이래 있는 자라(신명기 27:26)
구약의 율법도 사람을 구원하기 위해 주신 복음의 말씀이지만
율법은 그 율법을 지키는 자만 생명을 얻게 한다는 법령입니다.
그러므로 그 모든 법을 다 지켜야만 생명을 얻는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 있습니다.
그중에 한 가지라도 어기면 저주 아래 있는 자가 됩니다.
➁ 문제는 율법을 지킬 수 있는 자가 하나도 없다는 데 있습니다(12절)
12) 율법은 믿음에서 난 것이 아니라.
“율법을 행하는 자는 그 가운데서 살리라(율법을 지킴으로써 살리라)”(레 18:5) 하였느니라.
너희는 나의 규례와 법도를 지키라 사람이 이를 (모두 다, 완전하게) 행하면
그로 인하여 살리라 나는 여호와니라(레위기 18:5)
율법도 사람을 구원하는 복음이지만
항상 모든 율법을 다 지켜야만 하나님의 백성으로 하나님 안에서 살 수 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그 율법을 모두 다 지킬 수 있는 사람이 하나도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율법을 통해서 구원받겠다고 하는 것은
뒷동산에도 올라가지 못할 정도의 사람이
아무런 장비도 없이 에베레스트 산에 올라가겠다고 말하는 것만큼이나
불가능한 일입니다.
3) 둘째 이유 : 예수님의 십자가를 부인하는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율법을 지키려 애쓰는 자가 모두 하나님의 저주 아래 있는 것은
사람이 그 율법을 다 지킬 수 없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율법으로 사람을 구원할 수 없으니
하나님께서 새로운 법을 세우셨습니다.
법을 만드시고 운영하시는 하나님께서 새 법을 만드셨으니
이제는 오직 그 법을 통해서만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을 통해서만
구원을 받도록 하신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구원을 받을 수 있도록 하셨는데,
이미 폐기된 옛 법을 따르겠다고 하니 저주가 되는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결정적인 것은 율법을 지키려 애쓰는 것 자체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부인하는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율법을 지키려 애쓰는 자체가 저주가 됩니다.
● 묵상 :
바로 이런 이유로 주일을 지키지 않고 안식일을 지켜야 한다든지,
구약의 유월절을 지켜야 한다든지,
또는 본문의 말씀처럼 할례를 받아야 한다든지 하는 것들은
모두 저주를 받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만 구원을 받는다는
이 말씀만을 붙잡고 사는 자가 돼야 합니다.
3. 율법의 기능
그러면 율법의 기능은 무엇입니까?
율법은 하나님의 뜻에 반대되는 것입니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율법은 다음과 같은 방법으로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역할을 합니다.
1) 율법은 예수님이 왜 우리에게 오셔야만 했는지를 알려주는 역할을 합니다(19절)
19. 그런즉 율법은 무엇이냐? 범법함을 인하여 더한 것이라.
천사들로 말미암아 중보의 손으로 베푸신 것인데,
약속하신 자손이 오시기까지 있을 것이라
[설명 : 그러면 율법은 무엇이냐? 율법은 약속된 자손은 그리스도께서 오실 때까지
죄가 무엇인지 깨닫게 하기 위하여 약속 위에 덧붙여 주신 것이라.
이 율법은 천사들을 통하여 한 중보자의 손으로 주신 것이라.]
율법으로 우리는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을 수 없는 죄인들임을 깨닫게 됩니다.
율법은 생명을 제공하기 위해 주어진 것이 아니라 죄를 드러내기 위해 주어진 것입니다.
율법으로 우리가 모두 죄인인 것을 깨닫습니다.
율법으로 우리가 얼마나 하나님을 진노하게 하는 자인지를 알게 됩니다.
율법으로 우리는 도저히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을 수 없는 죄인임을 깨닫습니다.
율법으로 우리는 모두 지옥에 빠질 수밖에 없는 자임을 깨닫습니다.
• 그러므로 율법은 우리가 구원받기 위해서는
하나님께서 창조의 일에 버금가는 엄청난 일을 다시 하셔야만 한다는 것을 알게 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한 죄의 용서는 창조에 버금가는 엄청난 일이었습니다.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께서 독생자 예수님을 우리를 위해 이 땅에 보내셔서
우리의 죄를 대신 짊어지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이미 죄를 범하여 자격을 잃은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게 됐습니다.
2) 율법은 우리를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몽학선생(초등교사)의 역할을 합니다(21~25절)
21. 그러면 율법이 하나님의 약속들과 반대되는(거스르는) 것이냐?
결코 그럴 수 없느니라.
만일 율법이 능히 살게 하는(생명을 줄 수 있는) 것으로 주셨더라면
분명히 의는 율법으로 말미암았으리라.
(분명히 율법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을 수 있었으리라.)
22. 그러나 성경이 모든 것을 죄 아래 가두었으니(죄 아래 갇혀 있다고 말하고 있으니)
이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주신다는 약속을 믿는 자들에게
(그 약속하신 것을) 주려 함이니라.
23. 믿음이 오기 전에는 우리가 율법 아래 매인 바 되고
계시 될 믿음의 때까지 갇혔느니라.
(설명 : 믿음이 오기 전에는 우리는 율법 아래 매어 율법의 감시를 받으면서
죄의 포로가 되어 믿음이 나타날 때까지 갇혀 있었느니라.)
24. 이같이 율법이 우리를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는 몽학선생(초등교사, 개인교사)이
되어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심을 인정받게 하는 것이니라.
25. 믿음이 온 후로는(이제는 그 믿음이 왔으므로)
우리는 더 이상 율법이라는 몽학선생(초등교사, 개인교사) 아래 있지 아니하도다.
로마의 자유인의 아들로 태어났더라도 17세 이하의 아이들은
몽학선생(초등교사)의 지배 아래 있습니다.
몽학선생이 소년들에게 복종과 자율훈련을 가르치고,
학교나 체육관에 데려다주기도 합니다.
소년들이 지시를 따르지 않을 때에는 때로 회초리를 들기도 합니다.
그러나 18세가 되면 자유인이 되고,
더 이상 몽학선생의 지배를 받지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율법은 일종의 몽학선생이 되어
우리에게 믿음의 법을 주시는 예수님이 오시기까지 율법의 지배 아래 있게 했습니다.
율법 아래서 사람들은 자기가 죄인이라는 아픔만 갖고 살았습니다.
그러나 예수께서 이 땅에 오셔서 믿음의 법을 주셨으므로,
우리는 소년이 더 이상 몽학선생의 지배를 따르지 않듯,
율법의 지배를 받지 않고 예수님의 믿음의 법을 따릅니다.
4. 예수님으로 인하여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의 명분을 얻게 되었습니다.
바울은 구약의 율법 아래에 있던 구약의 사람들을
로마의 귀족들의 아이들에 비유합니다.
1) 아버지가 정한 때까지는 종이나 다름없는 로마의 아이들(갈 4:1~2)
1. 내가 또 말하노니 유업을 이을 자(상속자)가 모든 것의 주인이나,
어렸을 때에는 종과 다름이 없어서
2. 그 아버지의 정한 때까지는
후견인과 청지기 아래 있나니(보호자와 관리인의 지시를 받나니)
로마의 귀족이 아들들은 아버지가 가진 모든 것의 주인이 될 사람입니다.
그러나 18세가 되기 전까지는 그를 가르치고 보호하는 노예의 지배 아래 있습니다.
그 노예를 ‘몽학선생(초등교사)’이라고 부릅니다.
몽학선생은 이 소년이 성인이 될 때까지 교사와 후견인과 관리인의 역할을 합니다.
그 동안에는 비록 그가 귀족의 아들이라 해도
이 몽학선생에게 회초리를 맞아가며 훈련을 받습니다.
그러므로 그가 모든 것의 주인이지만 어렸을 때에는 종이나 다름없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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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울은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이 된 것을 로마의 성인식을 비유하여 설명합니다.
2) 로마의 성인식(5절)
(5절 성경구절 아래)
『로마에서는아들로태어나면
한국에서 아들이 대접받는 것과 정반대의 대접을 받습니다.
로마는 아들이 태어나면 독특한 관습을 거치게 합니다.
먼저 아들을 양자삼고 성인식(成人式)을 치르기 전까지는
친아들이라도 아들처럼 대우하지 않습니다.
그 대신 가장 영리한 노예를 아들의 가정교사로 두어
자기 아들로 하여금 종처럼 혹독한 훈련을 받게 합니다.
그리고 어느 정도 시간이 흘러 성인이 되면
아들의 교육을 담당한 가정교사는 주인에게 이렇게 보고합니다.
“주인님, 이제야 아드님께서 인간다운 인간이 되었습니다.
지적, 도덕적인 부분뿐만 아니라
폭넓은 지식과 올바른 정신 그리고 건강한 육체를 갖게 되었습니다.”
주인은 그때야 성인식을 치르고 아들을 진짜 아들로 받아들입니다. 』
- 크리스챤 백과사전 인용
3) 이처럼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이 되어 아바 아버지라 부르게 됐습니다(4~7절)
4. 그러나 때가 차매 하나님께서 자기 아들을 보내셔서 여자의 몸에서 나게 하시고,
또한 율법 아래 나게 하신 것은(율법의 지배를 받게 하신 것은)
5. 율법 아래 있는 자들을 속량하시고
우리로 아들의 명분(아들의 자격)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6. 너희가 아들인고로 하나님께서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주셔서
우리가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느니라.
7. 그러므로 네가 이후로는 종이 아니요 아들이니 아들이면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유업을 이을 자이니라.
로마의 아이들이 그의 아버지가 정한 때가 되면
성인이 되어 그가 아들로서의 모든 것을 누리게 되는 것처럼,
때가 차매(하나님께서 정하신 때가 되니)
하나님께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시고,
그를 통하여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을 우리 안에 넣어 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를 하나님의 아들이 되게 하셨습니다.
➀ 객관적 사실 : 종 ➠ 아들로의 신분의 변화,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7절)
(7절 성경구절 아래)
로마의 아이들이 성인이 되면 그가 가진 모든 것의 주인이 되는 것처럼
우리도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아들이 되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유업으로 주실 하나님 나라에서
모든 것을 누리는 자가 되었습니다.
예수께서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달리심으로
이 모든 것이 우리에게 이루어졌습니다.
우리의 신분이 종에서 하나님의 아들로 변한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믿음 안에 있는 자들은
이미 이 땅에서부터 하나님의 아들이요,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이어받을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입니다.
➁ 주관적 경험 : 성령이 우리 안에 오셔서 증거하심(6절)
(6절 성경구절 아래)
그러나 아직은 육신을 입고 있어서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이 됐다는 것을 잘 인식하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성령께서 우리 안에 오셔서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된 것을 증거하십니다.
우리에게 예수님이 그리스도시라는 것을 믿도록 돕습니다.
우리 안에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을 주셔서,
우리가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이라는 것을 알게 합니다.
결 론 : 신령한 생명이 계속 이어가게 하십시오.
1) 우리는 주님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습니다(고린도후서 5:17)
17.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주님 안에서 우리는 완전히 새롭게 창조되었습니다.
이 땅의 사람으로 무엇을 더 얻어 부자가 된 정도가 아니라
완전히 하나님의 백성이 된 것입니다.
이 땅에서부터 이미 천국 백성이 되었습니다.
이 땅에서부터 이미 하나님의 시간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2)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 생명의 지속성(20절)
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지금 내가 육신의 몸으로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그러나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단순히 그의 이름을 부르는 것만을 뜻하는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을 통하여 하나님과 새로운 관계가 열렸으므로,
우리는 계속해서 하나님과 관계를 맺으면서 살아가야 합니다.
지난 주일에 예배드렸는데 이번 주일에 왜 예배를 또 드립니까?
어제 먹은 밥을 오늘도 먹어야 하는 것과 같습니다.
생명이란 지속성을 갖습니다.
어제도 밥을 먹고 오늘도 먹어야만 우리의 생명이 유지되듯,
우리가 주님 안에서 영의 생명을 다시 회복했다면,
하나님과 계속 관계를 맺어 그 생명이 유지되도록 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신령한 영의 생명이 이어지다가 주께서 다시 오시는 그날을 만날 때
바로 이 사람들이 그 영광의 나라에 들어갈 자들입니다.
다가오는 2024년 한해도
이렇게 영의 생명을 이어가게 하는 한 해가 되도록 합시다.
주님
하나님의 백성 된 기쁨을 알게 하옵소서.
육의 일로 인하여
영의 일을 잃지 않게 하옵소서.
하나님과의 만남의 시간을
반드시 마련하게 하옵소서.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으로
모든 것이 회복되는 복을 체험하게 하옵소서.
2024년 한 해 동안에서
주께서 주시는 영의 생명을 잃지 않고
계속 이어가는 삶을 살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