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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 설교문

[부활절]저 안식에 들어가기에 힘쓰라(3월 31일; 히 4:1~11)

작성자송호영|작성시간24.04.01|조회수64 목록 댓글 0

설교제목 : 저 안식에 들어가기에 힘쓰라

설교본문 : 히브리서 4:1~11

     참고 : 출애굽기 24장, 마가복음 15~16장, 마태복음 28장

설 교 자 : 송호영 목사

설 교 일 : 2024년 3월 31일(부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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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론 :

 

    오늘은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리신 지 사흘 만에 부활하신 부활절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이 우리에게 특별한 이유는 

    장차 우리도 예수님처럼 부활하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이 우리가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결정적인 근거가 되는 이유는,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을 통하여 하나님과 사람 간에 새로운 계약이 맺어졌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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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거 구약 시대에도 하나님과 사람 간에 맺어진 계약이 있었습니다.

    이스라엘이 출애굽 한 후 하나님께서 시내산에서 십계명을 주신 후

    이 계명을 잘 지키면 그들을 지키시고 돌보시리라고 이스라엘 백성과 계약을 맺으셨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이 그 계명을 잘 지키지 못했으므로

    예수께서 오셔서 친히 십자가에 달리셔서 새로운 계약을 맺을 수 있는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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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러므로 부활절인 오늘 저는
    옛 언약인 구약의 시내산 언약과
    새 언약인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
    그리고 새 언약으로 인하여 우리가 들어가게 될 저 영광의 안식에 대한 말씀을 전하고자 합니다.

 

 

1 : 옛 언약,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언약

 

1. 그의 백성과 언약을 맺으시는 하나님 : 시내산 언약

 

 1) 출애굽의 목적 :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에게 계명과 율법을 주시려는 것(출 24:1~3)

 

            1. 여호와께서 또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아론과 나답과 아비후와

              이스라엘 장로 70명과 함께 나 여호와에게로 올라와서 멀리서 경배하고

            2. 너 모세만 여호와께 가까이 나아오고 그들은 가까이 나아오지 말며,

              백성은 너와 함께 올라오지 말지니라.”

            3. 모세가 내려와서 여호와의 모든 말씀과 율례를 백성들에게 전하매

              그들이 한목소리로 응답하여 이르되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모든 것을 준행하리이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나오게 하신 것은

    그들을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인도하시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런데 곧장 가나안으로 가지 않고

    시내 산으로 가서 십계명을 비롯한 율법을 들려주십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인도하신 진짜 목적이

    가나안 땅이 아니었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 입장에서는 가나안 땅에 빨리 가는 것을 더 원했겠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이 되기를 더 바라셨습니다.

    그래서 그 중간인 시내산에서 멈추어서

    그들이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이 되기 위한 하나님의 말씀과 율법을 주신 것입니다.

 

 2) 하나님께서는 우리 역시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이 되기 위해서는 우리가 하나님과 친교를 맺어야 합니다.

    이 일을 위하여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며 응답해 주십니다.

 

    이때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응답해 주셨다고 기뻐하겠지만,

    하나님께서는 그 기도와 응답의 과정에서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이어지는 교제를 더 주목하십니다.

 

 

2. 언약의 피

 

1) 피의 언약식(출 24:3~8)

 

            3. 모세가 내려와서 여호와의 모든 말씀과 율례를 백성들에게 전하매

              그들이 한목소리로 응답하여 이르되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모든 것을 준행하리이다.”

            4. 모세가 여호와의 모든 말씀을 기록하고 이른 아침에 일어나

              산 아래에 제단을 쌓고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대로 열두 기둥을 세우고

            5. 이스라엘 자손의 청년들을 보내어 여호와께 소로 번제와 화목제를 드리게 하고

            6. 모세가 그 피를 가져다가 절반은 여러 양푼에 담아 놓고, 남은 절반은 제단에 뿌리고

            7. 언약서를 가져다가 백성에게 낭독하여 듣게 하니

              그들이 이르되 “우리가 여호와의 모든 말씀을 우리가 준행하리이다.”

            8 모세가 그 피를 가져다가 백성에게 뿌리며 이르되

             “이것은 여호와께서 이 모든 말씀에 대하여 너희와 세우신 언약의 피니라.”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이 되기 위해

    반드시 지켜야만 하는 하나님의 말씀과 율법은

    출애굽기 20~23장에 나오는 십계명과 그 후속 율법입니다.

 

    그러나 그 말씀을 들은 것만으로

    그들이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들이 그 말씀대로 행하리라고 하나님 앞에 서약해야 하고,

    그 서약을 하나님께서 받아주셔야만 그들이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이 됩니다.

 

    본문에 기록된 의식이 바로 이 언약식입니다.

 

 2) 제단과 백성들에게 뿌려지는 피 : 피차에 생명을 건 언약

 

    먼저 하나님의 제단에 피가 뿌려지고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말씀과 율법을 준수하리라는 응답을 한 후에

    그들에게 나머지 피가 뿌려졌습니다.

 

    이 피로 맺은 언약은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으로 삼으시고

    그들을 지키시며 보호하시리라는 언약을 하셨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고 순종하리라는 언약함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이제 두 당사자 중 어느 하나라도 이 언약을 어기면

    피를 흘린 이 짐승처럼 죽게 되리라는 생명을 건 언약식입니다.

    그런데 친히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과 자신의 생명을 건

    이 언약식을 맺으신 것입니다.

 

 3) 그 언약의 중심에 하나님의 말씀이 있습니다(7~8절)

 

            (7~8절 성경구절 위에)

 

    이 피의 언약식의 중심에 하나님의 말씀이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는 한

    하나님께서 그들을 하나님의 백성으로 여기시고

    그들을 지키시고 돌보시리라는 것이 하나님의 언약입니다.

 

    이 언약은 새로운 언약인 예수님의 피의 언약에서도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예수님을 구주로 믿는 사람은 예수께서 주신 복음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것입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묵상 :

 

    언약의 중심에 말씀이 있으므로

    우리 모두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이 되기 위해

    늘 말씀을 기억하고 묵상하고 기도하기를 쉬지 말아야 합니다.

 

 

3. 모세와 지도자들과 백성들의 위치

 

 1) 모세와 제사장과 70명의 장로들과 백성들의 위치(출 24:1~2)

 

            1. 여호와께서 또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아론과 나답과 아비후와

               이스라엘 장로 70명과 함께 나 여호와에게로 올라와서 멀리서 경배하고

            2. 너 모세만 여호와께 가까이 나아오고 그들은 가까이 나아오지 말며,

               백성은 너와 함께 올라오지 말지니라.”

 

    이 언약식을 맺기에 앞서서 하나님께서 모세와 이스라엘 지도자들을 부르실 때

    하나님과 직접 만나 대화를 나누는 자리에는 모세 한 사람만 있게 하시고,

    그 뒤에 조금 떨어진 자리에

    아론과 나답과 아비후와 70명의 이스라엘의 장로들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산 아래에는 나머지 이스라엘 백성들이 있었습니다.

 

 2) 우리는 이런 모습을 예수께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실 때에도 봅니다.

 

    예수께서 가까운 곳에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따로 있게 하시고,

    저 뒤에 나머지 제자들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제일 안쪽에는 예수께서 홀로 기도하셨습니다.

 

묵상 : 하나님의 은혜의 깊은 자리를 사모하십시오.

 

    더 큰 은혜를 사모하는 자에게

    은혜의 더 깊은 자리에 들어가도록 하나님께서 허락하십니다.

 

    주님을 사랑하기를 사모하십시오.

    주님과의 신비한 친교에 들어가기를 사모하십시오.

    모세처럼 하나님의 은혜의 깊은 곳에 들어가기를 사모하십시오.

 

    주님을 사모하는 자에게 주께서 더 큰 은혜를 베푸십니다.

    세상의 그 어떤 것보다도 주님을 사랑하며 섬기기를 간절히 사모하며 기도하십시오.

 

 

4. 하나님께서 베푸신 만찬에 초대된 지도자들

 

 1) 하나님을 직접 바라보며 함께 음식을 먹는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출 24:9~11)

 

            9. 모세와 아론과 나답과 아비후와 이스라엘 장로 70명이 올라가서

           10.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보니

               그의 발아래에는 청옥을 깔아놓은 것 같고, 그 맑기가 하늘처럼 청명하더라.

           11.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존귀한 자들에게 손을 대지 아니하셨고,

               그들은 하나님을 보고 먹고 마셨더라.

 

    출애굽기 24:9~11의 말씀은 마치 요한계시록의 한 장면을 보는 듯합니다.

    모세와 함께 이스라엘의 장로들이

    하나님께서 강림하신 곳에 초대되어 올라갑니다.

 

    그곳에서 그들은

    육신을 가진 자로서 하나님을 눈으로 직접 뵙는 영광을 얻게 됩니다.

 

    그러나 감히 하나님의 얼굴을 뵙지는 못하고

    그저 얼굴을 숙이고 하나님의 발아래만을 봅니다.

 

    그들이 하나님의 발아래를 보니 마치 청옥(사파이어)을 깔아놓은 것 같고,

    하늘처럼 맑았다고 했습니다.

    그곳에서 그들은 하나님과 함께 먹고 마십니다.

 

 2) 하나님께서 베푸신 계약의 잔치

 

    이 잔치는 1~8절의 피의 언약식을 체결하고 난 후에,

    그 언약이 유효하고 타당한 언약임을 다시 한번 확인하는 의미에서

    언약을 맺은 당사자인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이 함께 식사를 하는

    ‘계약의 식사, 계약의 잔치’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의 지도자들인 70명의 장로들이 특별히 초대되어

    하나님과 함께 먹고 마시는 잔치를 벌이고 있는 것입니다.

 

    그동안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무섭고 두려운 분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십계명을 직접 말씀하실 때

    그들은 죽음의 공포에 떨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하나님께 함께 한 자리에 앉아 먹고 마시며 잔치를 즐깁니다.

 

 3) 하나님과 함께 먹고 마시는 하나님의 백성들 : 성만찬의 예고

 

    하나님 앞에서 누리는 이 만찬과 잔치는

    후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시작된 성만찬(성찬식)을 예고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는 성찬식이 우리 보기에는 초라한 예식 같으나,

    실상은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과 함께 나누는 하나님의 잔치인 것입니다.

 

    이것을 학자들은 ‘메시야 잔치’라고 부릅니다.

    장차 주님이 오실 때 주님과 함께 나누는 혼인 잔치를 일컫는 것입니다.

    그 메시야 잔치를 우리는 매성찬식 때마다 미리 경험하는 것입니다.

 

    ● 묵상 :

 

       성찬식에서 떡과 포도주를 먹고 마실 때마다

       주님과 함께 그 기쁨의 잔치에 함께 참여하리라는 믿음으로 참여하십시오.

       그 기쁨을 우리에게 주신 감격으로 성찬식에 참여하십시오.

       이 믿음으로 참여하는 자만이 그 성찬식의 능력이 그와 함께합니다.

 

 4) 거룩한 교제 :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과 이런 교제를 나누기 위해 부르셨다(11절)

 

           (11절 성경구절 위에)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존귀한 자들에게 손을 대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하나님의 만찬, 하나님의 잔치에 초대하셨기 때문입니다.

    평소 같으면 하나님께서 정해 놓으신 경계선에

    단 한 걸음도 들여놓을 수 없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이때에는 비록 다리만 보았을지라도

    하나님의 모습을 직접 뵈옵고도 죽지 않고

    오히려 하나님과 더불어 먹고 마시는 즐거움을 누렸습니다.

    지존하신 하나님과 그의 만드신 피조물과의 경계가 허물어진 것입니다.

 

    마치 오래전부터 함께 지내온 한 가족처럼

    그들은 하나님 앞에서 그렇게 기쁨의 잔치를 경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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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님께서는 그의 백성과 이런 신령한 교제를 나누기 위해

    그들을 애굽에서 이끌어내셨습니다.

    단지 가나안 땅을 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의 백성과 함께 아버지와 아들의 친교 관계를 맺으시기 위해 부르신 것입니다.

 

 

2 : 새 언약을 위한 예수님의 십자가

 

    하나님과 사람 간에 맺어진 시내산에서의 첫 번째 언약에서는

    하나님의 제단과 이스라엘 백성에 피를 뿌려 피의 언약식을 행함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이 피의 언약식을 통해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지키시고 돌보시는 하나님이 되시고,

    이스라엘은 오직 하나님만을 섬기기로 계약을 맺은 것입니다.

 

➠ 그러나 그들은 이 언약을 어기고 하나님을 배반했습니다.

    그래서 예수께서 오셔서 새로운 언약을 맺으셨습니다.

 

    사람들이 어겼으니 사람들이 죽어야 했으나

    사람들 대신 예수께서 죽으시고 새로운 언약을 맺으셨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로 말미암아 새로 맺어진 계약은

    누구든지 예수를 믿으면 모든 율법을 다 지킨 것으로 인정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의 피로 구원함을 얻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1.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1)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막 15:34)

 

           33. 제 육시(낮 12시)가 되자 온 땅에 어둠이 임하여 제 구시(오후 3)까지 계속하더니

           34. 제 구시(오후 3시)가 되자 예수께서 큰 소리로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하고 부르짖으시니, 이를 번역하면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시 22:1)하는 뜻이라.

 

    예수께서 운명하시기 직전에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고 부르짖으셨습니다.

 

    이 말씀은 다윗이 고통스러울 때

    하나님께 절규하며 부르짖은 말씀이기도 합니다(시편 22:1).

    예수께서 십자가 위에서 운명하시기 직전에

    다윗이 하나님께 부르짖었던 그 절규를 합니다.

 

 2) 우리의 죄를 위하여 철저하게 버림받으신 예수님

 

    예수께서 이렇게 절규를 하신 것은

    적어도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만큼은 우리와 똑같은 인간이셨다는 것을 뜻합니다.

    우리가 십자가에 달렸다면 느꼈을 법한 고통과 두려움과 외로움을

    주께서 그대로 다 느끼신 것입니다.

 

    그렇게 연약한 인간의 모습으로 십자가에 달리셔야

    우리가 구원을 받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하나님의 독생자이시며 성자 하나님의 권위를 가지신

    그리스도의 권능으로 십자가에 달리신 것이 아니라,

    우리와 똑같은 지극히 연약한 사람의 입장에서 십자가에 달리셨습니다.

 

 

2. 휘장이 두 폭으로 휘장이 찢어짐

 

 1) 성소와 지성소를 구분하는 휘장이 찢어짐(막 15:37~38)

 

           37. 예수께서 큰 소리를 지르시고 운명하시다(숨을 거두시다).

           38. 이에 성소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 둘이 되니라.

 

    예루살렘 성전의 성소와 지성소를 구분하던 곳에 있던 휘장입니다.

    이 휘장 안에 있는 지성소는 하나님께서 계신 곳으로

    대제사장도 1년에 한 번 들어갈 수 있는 곳입니다.

 

    대제사장들조차 그 지성소에 들어갈 때

    기절할 정도로 두려워했던 곳이 바로 그 휘장 안입니다.

 

    그러나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운명하시던 바로 그 순간 휘장이 찢어졌습니다.

    이제는 누구든지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 부르며,

    하나님께서 계신 그곳을 아무 두려움 없이 들어갈 수 있게 됐습니다.

    어디서든지 하나님을 부를 때 그곳이 바로 지성소가 되는 은혜의 시대가 된 것입니다.

 

 2) 성소와 뜰을 구분하는 휘장, 이제 그 구분이 사라졌습니다.

 

    또 성소와 뜰을 구분하는 휘장도 있습니다.

    이 휘장은 유대인과 이방인을 구분하는 휘장입니다.

    이방인은 절대로 이 휘장 안으로 들어갈 수 없습니다.

    이방인은 물론 유대인의 여자들도 들어갈 수 없습니다.

 

    그런데 이 휘장도 함께 찢어졌습니다.

    이제 유대인의 남자들뿐 아니라 여자들도, 이방인들도

    모두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 부를 수 있게 됐습니다.

 

    누구든지 어떤 죄를 지은 자들이든지 그가 누구라도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를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주께 죄를 고백하여 그 죄를 용서받은 자라면

    이 세상의 그 어떤 사람이라도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는 자가 된 것입니다.

 

묵상 :

 

    그러므로 언제 어디에서든 하나님을 부르며 기도하십시오.

    답답한 심정을 토로하기도 하고, 감사와 찬양을 드리기도 하고,

    자신의 잘못을 고백하며 용서를 빌기도 하십시오.

 

    그리고 무엇보다도

    나를 하나님의 신령한 은혜의 세계로 인도해 주실 것을 구하고 또 구하십시오.

    기도는 의무이면서 동시에 권리입니다.

 

 

3 : 새 언약의 완성, 예수님의 부활

 

1. 안식 후 첫날 무덤을 찾아간 여인들

 

 1) 첫 번째 부활절 새벽 : 예수님의 무덤을 찾아간 여인들(막 16:1~2)

 

            1. 안식일이 지나자 막달라 마리아와 야고보의 어머니 마리아와 살로메가

               예수께 발라 드리려고 향품을 사 두었다가

            2. 안식일 후 첫날(한 주간의 첫날) 이른 아침 해가 막 돋을 때에 무덤으로 가며

 

    안식일이 끝나는 토요일 6시가 되자

    막달라 마리아와 야고보의 어머니 마리아와 살로메 이 세 여인은
    예수님의 몸에 바를 향유를 미리 사서 준비해 두고,

    이튿날인 주일 아침에 그 향유를 가지고 무덤을 찾아갔습니다.

 

    마태, 마가, 누가, 요한복음을 종합해 보면

    이때 적어도 6명 이상의 여인이 몇 차례에 걸쳐서 무덤을 찾아갔습니다.

 

 3) 가보니 그 돌이 이미 굴려져 있었습니다(막 16:3~4)

 

            3. 그들이 서로 말했습니다.

              “누가 우리를 위하여 무덤 입구에 있는 그 돌을 굴려 주리요?” 하더니

            4. 그런데 눈을 들어 보니 그 돌이 이미 굴려져 있었으니 그 돌이 심히 크더라.

 

    그러나 여인들은 돌을 옮기는 걱정은 무덤 입구에 가서 하기로 하고 무작정 갑니다.

    그런데 무덤에 가보니

    제일 먼저 도착했던 막달라 마리아는 천사들이 돌을 옮기는 것을 보았고

    다른 여인들은 돌은 이미 옮겨졌고 무덤은 비어있는 것을 발견합니다.

 

 

2. 빈 무덤 : 예수님은 부활하셨습니다.

 

 1) 예수님의 무덤은 비어 있습니다(마 28:5~6)

 

            5. 천사가 여자들에게 말했습니다.

             “두려워하지 말라.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을 너희가 찾는 줄을 내가 아노라.

            6. 예수께서는 여기에 계시지 않고, 그가 말씀하시던 대로 살아나셨느니라.

              와서 그가 누우셨던 곳을 보라.

 

    다른 종교들은 모두 창시자의 무덤이 크고 화려한 것을 자랑하지만,

    그 무덤이 아무리 크고 화려해도

    결국 그 종교의 창시자가 죽고 살아나지 못했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 무덤이 비어 있는 것을 자랑합니다.

    빈 무덤은 살아나신 것을 증명하기 때문입니다.

 

 2) 예수님의 무덤이 비어있음을 확인한 여인들

 

    막달라 마리아를 비롯한 몇 명의 여인들이 무덤을 찾았을 때 지진이 났습니다.

    그때 천사들이 여인들이 무덤 안을 들여다볼 수 있도록 하기 위해 돌을 굴려주어서

    여인들이 무덤 안을 들여다볼 수 있었는데, 그때 이미 무덤은 비어 있었습니다.

 

    사도 요한은 그 무덤 안에 예수님의 몸을 쌌던 수건과 세마포가

    몸을 쌌던 그 상태로 그대로 푹 꺼져있었다고 말합니다(요 20:6~7).

 

 3) 주께서 부활하신 것처럼 주님을 믿는 자도 부활하게 됩니다.

 

    우리가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셨다는 것을 비롯해서

    성경에 나온 모든 기적을 행하실 수 있는 분이시라는 것을 믿을 수 있는 것은

    주께서 죽으셨다가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으면 구원을 받게 되리라는 것을 믿을 수 있는 것도

    주께서 다시 살아나셨기 때문입니다.

 

 

4 : 하나님의 안식

 

    히브리서는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로 우리에게 활짝 열린

    영원한 하나님 나라 저 안식으로 들어가자고 호소합니다.

 

 1) 모든 것이 완성된 완전한 나라(히 4:3)

 

            3. 그러나 그 말씀을 믿는 우리는 그 안식에 들어가는도다.

               이는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바와 같으니 “내가 진노하여 맹세한 것과 같이

               그들은 결코 내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시 95:11) 라고 하였으나

               세상을 창조할 때부터 그 일이 이루어졌느니라.

 

    히브리서는 네로 황제의 핍박을 받는 성도들에게

   “저 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쓰는 자들이 되자”(11절)하고 외칩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안식에 들어가자는 것입니다.

 

    히브리서가 말하는 안식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무위(無爲)의 안식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신 후 일곱째 되는 날 안식하셨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안식은 모든 것이 완성되었다는 것을 뜻합니다.

 

    사람을 위해 필요한 모든 것이 다 완성된 곳에서 누리는 참된 평화

    ➜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안식입니다.

 

 2) 하나님께서 주시는 안식 : 구원의 총괄적인 개념(1절)

 

            1. 그러므로 우리가 두려워해야 할 것은 이것이니,

                 하나님께서 주시는 안식에 들어가리라는 약속이 아직 우리에게 남아 있을지라도

               너희 중에 혹 누구라도 거기에 이르지 못할 자가 있을까 하는 것이라.

 

    하나님께서 주시는 안식은

    하나님의 창조 세계의 완성이라는 의미에서의 안식입니다.

    하나님의 즐거움과 하나님의 평화와 하나님의 생명이 가득한 나라

    그 영광의 나라에 들어가서 누리는 영원한 기쁨의 안식입니다.

 

    사도 요한은 이것을 ‘영원한 생명’이라고 표현하였습니다.

    장차 주께서 이 땅에 오셔서 그의 백성을 영원한 나라로 인도하시리라는 것을

    히브리서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안식’이라는 말로 표현하였습니다.

 

 

2. 하나님의 안식에 들어가지 못하는 사람들

 

 1) 하나님의 안식을 소유했다고 생각했던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들(8절)

 

            8. 만일 여호수아가 그들에게 안식을 주었더라면

              (혹은 여호수아가 준 안식이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그 영원한 안식이었다면)

               하나님께서 그 후에 다른 날이 있으리라는 것을 말씀하지 아니하셨으리라.

 

    이스라엘 사람들은 그 옛날 여호수아가

    그의 백성들을 가나안으로 인도한 것을 두고

    하나님의 안식에 들어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혈통으로는 아브라함의 후손이고,

    영토로는 하나님께서 인도하신 약속의 땅 가나안에서 살고 있으니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분명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바로 이런 잘못된 믿음으로

    그들은 그 땅에서 우상을 숭배하는 등 하나님의 말씀을 어기면서 살았습니다.

    그들이 아무리 죄를 범한다고 할지라도 그들이 아브라함의 후손이라는 것과,

    그들이 살고 있는 땅이 가나안 땅이라는 것은 변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아무리 죄를 범했더라도 아브라함의 후손이라는 것은 변함이 없고,

    솔로몬이 아무리 아상숭배를 하고 1,000명의 여자와 헛된 짓을 할지라도

    그가 지은 성전은 그대로 있으니 그들은 여전히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생각했고,

    그들이 거한 땅이 바로 하나님의 안식의 땅이라 생각했습니다.

 

 2) 그 안식에 들어가지 못하는 사람들(2절)

 

            2. 그들과 마찬가지로 우리도 복음을 받은(전해 들은) 자이나

              들은 그 말씀이 그들에게 아무런 유익이 되지 못했던 것은

              그들이 그 복음의 말씀을 듣고도 그것을 믿음과 결부시키지 아니함이라.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고 매사에 불만 불평하던 자들이

    모두 광야에서 죽어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했던 것처럼

 

    하나님께서 주신 약속의 땅이라고 자부했던 그 가나안 땅에서

    오직 자기들만 하나님의 백성이라며 교만을 떨던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안식에 들어가지 못하고 멸망의 사람들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들이 주께서 주신 복음의 말씀을 믿음으로 받아들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묵상 : 우리도 저 안식에서 버림받을 수 있습니다.

 

    출애굽 당시의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다가

    저 안식에 들어가지 못한 것처럼

    우리도 하나님께서 주시고 인도하시는 영광의 안식에 들어가지 못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영원한 안식에 들어가지 못할 것을 두려워하며

    오늘을 신실하게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3. 영원한 안식(4~8절)

 

            4. 제 칠일(일곱째 날, 구약의 안식일)에 관하여는 어딘가에서 이렇게 일렀으되

              “하나님께서 제 칠일에 그의 모든 일을 마치고 쉬셨다”(창 2:2) 하였으며,

            5. 그리고 또다시

              “그들은 결코 내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시 95:11) 하였으니

            6. 그러면 거기에 들어갈 자들이 남아 있거니와

               복음 전함을 먼저 받은 자들은 순종하지 아니함으로 말미암아 들어가지 못하였으므로

              [설명 : 이와 같이 복음을 먼저 전해 들은 자들(출애굽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은

                        복음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았으므로 그 안식에 들어가지 못하였으나,

                        다른 사람들에게는 안식에 들어갈 기회가 아직 남아 있거니와]

            7.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오랜 세월이 지난 후에 앞서 인용한 말씀대로

               다윗을 통하여‘오늘’이라는 날을 다시 정하시고 일렀으되

              “오늘 너희가 그의 음성을 듣거든 너희 마음을 완고하게 하지 말라”

              (시 95:7~8)하였나니

            8. 만일 여호수아가 그들에게 안식을 주었더라면

              (혹은 여호수아가 준 안식이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그 영원한 안식이었다면)

               하나님께서 그 후에 다른 날이 있으리라는 것을 말씀하지 아니하셨으리라.

 

 1) 구약의 가나안 땅은 장차 우리가 누릴 영원한 안식의 예고편에 불과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가나안 땅이 하나님의 약속하신 땅이므로

    그 땅은 영원히 외적의 침략을 받지 않을 것이라 여겼습니다.

    가나안 땅 자체를 하나님의 안식으로 여긴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바벨론에 포로가 되면서

    가나안 땅이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영원한 안식이 아니라는 것이 밝혀졌습니다.

 

    여호수아 때에 가나안 땅에 들어가 하나님의 안식에 들어갔던 것은

    장차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주어질 영원한 하나님의 안식을 상징하는

    그림자요 예고편에 불과했던 것입니다.

 

 2) 잠깐 있는 일시적인 안식이 아니라 영원한 안식으로 우리를 초대한 예수님

 

    여호수아 역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이스라엘 백성을 가나안까지 인도하였으므로 하나님의 충성된 종임에는 분명합니다만,

    그가 인도한 가나안 땅은 일시적인 안식에 불과한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통하여 주시는 안식은 영원한 안식입니다.

    이로써 예수님은 여호수아보다 더 뛰어난 분이시라는 것이 밝혀졌습니다.

 

묵상 : 선지자, 천사, 모세, 여호수아보다 뛰어나신 그리스도

 

    히브리서는 계속해서

    구약 시대에 뛰어났던 사람들과 예수님을 하나하나 비교하여

    아무리 훌륭한 사람이라 하더라도, 그들을 존경의 범위를 넘어서

    숭배하는 데까지 이르러서는 안 된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선지자, 천사, 모세, 여호수아, 아브라함, 다윗, 마리아, 베드로, 바울,

    그 누구라도 예수님이 만드신 피조물에 불과합니다. 

    그러므로 사람을 예수님과 같은 위치에 두는 어리석음을 절대로 범해서는 안 됩니다.

 

 

4. 하루가 늦었다

 

 •‘이르지 못할까 두려워하라’(1절)의 원어의 뜻은 ‘하루가 늦다’입니다.

 

             1. 그러므로 우리가 두려워해야 할 것은 이것이니,

               하나님께서 주시는 안식에 들어가리라는 약속이 아직 우리에게 남아 있을지라도

               너희 중에 혹 누구라도 거기에 이르지 못할 자가 있을까 하는 것이라.

 

    출애굽 때에 가나안을 정탐했던 12명의 정탐꾼 중에서

    여호수아와 갈렙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진격하자고 보고했고,

    나머지 10명은 그들이 보기에 우리가 메뚜기 같았을 것이라고 보고하였습니다.

 

    이때 이스라엘 백성들은 10명의 정탐꾼의 말을 듣고

    밤새도록 하나님을 불평하고 원망했습니다.

 

    이 일로 가나안 땅에 들어가려던 일이 40년 뒤로 미뤄지자,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 원망했던 일을 후회하고 가나안 땅을 진격하려 합니다.

    그러나 그날에는 하나님께서 그들과 함께 하시지 않아 패하여 호르마까지 도망을 합니다.

 

    하루가 늦었던 것입니다.

 

묵상 : 하루가 아니라 단 1초만 늦어도 영원을 잃어버립니다.

 

    주께서 다시 오시는 날 주께서 천사장에게 나팔을 불라고 명하시는 바로 그 순간

    모든 것이 다 끝이 납니다.

    그러므로 하루가 아니라 단 1초만 늦어도 영원한 안식을 잃어버립니다.

    그리고 다시는 회복될 기회를 얻지 못하게 됩니다.

 

 

5. 그러나 이 땅에 살아있는 사람들에게는 저 안식에 들어갈 기회가 아직 남아 있습니다.

 

    아직 죽지 않고 살아있는 사람들에게는 회개의 기회가 아직 남아 있습니다.

    말씀을 듣고 그 말씀에 순종할 기회가 아직 남아 있습니다.

 

    그러나 육신의 생명이 있을 때까지 만입니다.

    육신의 생명이 끝나는 순간, 혹은 주께서 다시 오시는 순간

    저 안식에 들어갈 기회는 끝이 납니다.

 

묵상 : 그러나 문제는 저 안식에 들어갈 기회가

           얼마나 소중한 기회인지를 모른다는 데 있습니다.

 

    저 안식에 들어갈 말씀이 선포되어도 그것이 얼마나 귀한 말씀인지를 모르고,

    그저 내 귀만 즐겁게 하는 말씀들만 찾고 있는 것이 문제입니다.

 

 

결 론 : 저 안식에 들어가기에 힘쓰라(히 4:1~11)

 

            1. 그러므로 우리가 두려워해야 할 것은 이것이니,

              하나님께서 주시는 안식에 들어가리라는 약속이 아직 우리에게 남아 있을지라도

              너희 중에 혹 누구라도 거기에 이르지 못할 자가 있을까 하는 것이라.

           11. 그러므로 우리가 저 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쓸지니,

              이는 누구든지 저 순종하지 않다가 멸망한 자들의

 

  •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좇아가노라(빌립보서 3:12)

 

    가나안 땅이 영원한 하나님 나라를 상징하는 것처럼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에 이르는 과정 역시 성도들의 한 평생의 삶을 상징합니다.

 

    여호수아 때에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았던 자들이

    그 안식에 들어가지 못했던 것처럼

    주님이 다시 오실 때에도 주님의 말씀에 믿음으로 화합하지 않은 자는

    하나님의 영원한 안식에 들어가지 못하게 됩니다.

 

➠ 힘쓰라 : 오늘이 마지막 기회인 것처럼 간절한 마음으로 힘을 다하라는 뜻

 

    우리는 오직 그 나라에 들어가기에 합당한 자가 되도록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힘써 좇아가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언젠가 그날이 정말 마지막이 되는 그날을 우리도 만나게 될 것입니다.

    그날이 오늘이라 여기고 날마다 주님의 백성으로 살아가기에 힘쓰는 자가 되십시오.

 

 

주님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답게

늘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살게 하옵소서.

 

하나님과 거룩한 친교를 맺으며 사는 경건하고 신실한 성도들이 되게 하옵소서.

 

믿음으로 기다리고 기다리며

주님을 기쁨으로 섬길 줄 아는

건강한 믿음의 성도들이 되게 하옵소서.

 

부활하셔서 지금도 살아계신 주님을

날마다 바라보며 살게 하옵소서.

 

주님처럼 우리도 부활하게 되리라는 것을 믿고

강하고 담대하게 살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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