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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예배 설교문

은혜의 보좌 앞으로 나아가자(4월 7일; 히 4:12~16)

작성자송호영|작성시간24.04.08|조회수130 목록 댓글 0

설교제목 : 은혜의 보좌 앞으로 나아가자

설교본문 : 히브리서 4:12~16

      참고 : 출애굽기 32:1~10, 레위기 10:1~10

설 교 자 : 송호영 목사

설 교 일 : 2024년 4월 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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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론 :

 

    지난주 설교의 마지막 부분에서 회개와 믿음의 고백에도 때가 있다는 말씀으로,

    히브리서 4:1의 ‘하루가 늦다’를 살펴보았습니다.

 

• 지난주 마지막 말씀 : ‘이르지 못할까 두려워하라’(히 4:1)의 원어의 뜻은 ‘하루가 늦다’입니다.

 

            1. 그러므로 우리가 두려워해야 할 것은 이것이니,

               하나님께서 주시는 안식에 들어가리라는 약속이 아직 우리에게 남아 있을지라도

               너희 중에 혹 누구라도 거기에 이르지 못할 자가 있을까 하는 것이라.

 

    출애굽 때에 가나안을 정탐했던 12명의 정탐꾼 중에서

    여호수아와 갈렙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진격하자고 보고했고,

    나머지 10명은 그들이 보기에 우리가 메뚜기 같았을 것이라고 보고하였습니다.

 

    이때 이스라엘 백성들은 10명의 정탐꾼의 말을 듣고

    밤새도록 하나님을 불평하고 원망했습니다.

 

    이 일로 가나안 땅에 들어가려던 일이 40년 뒤로 미뤄지자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 원망했던 일을 후회하고 가나안 땅을 진격하려 합니다.

    그러나 그날에는 하나님께서 그들과 함께 하시지 않아 패하여 호르마까지 도망을 합니다.

 

    하루가 늦었던 것입니다.

 

 2) 믿음 : 알 수 없는 미래에 대하여 하나님의 선하심을 믿고 선택하는 것

 

    우리가 주께 믿음을 고백할 때는 미래를 알지 못할 때,

    그래서 어떻게 선택해야 할지 모를 때입니다.

    미래를 모르니 불안하지만 하나님의 선하심을 믿고 주님의 말씀을 선택합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그런데 이미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일이 다 일어난 후에

    그제야 비로소 내가 믿노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하루가 늦은’ 것입니다.

    죽은 후에 심판대 앞에서 ‘주여 내가 죄를 범하였나이다’하고 말한다면,

    그 역시 ‘하루가 늦은’ 것입니다.

 

 3) 하루가 늦지 않기 위해 우리가 해야 할 일 : 말씀(영의 양식)을 가까이

 

    육신의 건강을 위해 좋은 음식을 먹는 것이 필수인 것처럼

    영의 건강을 위해서도 영의 양식인 하나님의 신령한 말씀을 먹어야 합니다.

 

    오늘 말씀은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에게 어떻게 작용하는지,

    또 말씀을 가까이하지 않을 때 어떤 위험한 일이 일어나는지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 : 출애굽 후 이스라엘의 첫 번째 위기(아론의 황금송아지)

 

1. 사람을 의지하는 신앙의 위험

 

 1) 하나님이 아니라 모세가 그들을 인도했다고 말함(출 32:1)

 

            (1절 성경구절 아래)

 

    모세가 십계명을 받기 위해 하나님의 산 호렙에 올라갔을때

    까딱 잘못했으면 그때 이스라엘 민족은 아예 통째로 사라질 뻔한 일이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이 몽땅 지옥에 지옥의 멸망에 빠질뻔한 이 엄청난 위기는

    이스라엘 민족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낸 자가

    하나님이 아니라 모세라고 알고 있었던 오해에서부터 출발합니다.

 

    그들은 모세 뒤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보지 못하고

    눈앞에 있는 모세만 본 것입니다.

    그런데 모세가 하나님께 계명을 받기 위해 거의 40일째 산에서 내려오지 않고 있으니

    그들은 불안해진 것입니다.

 

 2) 우리는 여기에서 사람을 지나치게 의지하는 신앙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를 봅니다.

 

    미디안 광야에서 양이나 치던 80 노인을 불러서

    그에게 능력을 주시고 지금까지 이스라엘을 인도하게 하신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설령 모세가 사라진다고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여전히 살아계시니 염려하거나 걱정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 모든 일을 한 장본인이 모세라고 생각하니까

    이런 두려움과 걱정이 밀려온 것입니다.

 

 묵상 : 목회자도 평신도도 다 이 문제를 조심해야 합니다.

 

  • 이 글을 읽으시는 분이 목회자라면

 

    성도들이 나를 지나치게 의존하도록 하지 마십시오.

    우리는 성도들이 하나님과 만나도록 돕는 역할을 할 뿐입니다.

    나를 지나치게 의존하게 하는 것은

    하나님께 돌아갈 영광을 가로채는 것이 될 수 있음을 기억하십시오.

 

  • 또 이 글을 읽으시는 분이 평신도라면

 

    그 누구도 하나님보다 더 의지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결단코 잊지 마십시오.

    아무리 바울 같은 능력이 있는 자라도

    그 역시 예수님의 도우심이 없으면 구원받을 수 없는 죄를 가진 사람일 뿐입니다.

 

    역사를 주관하시는 이는 오직 하나님뿐임을 기억하십시오.

 

 

2. 인간의 필요에 의한 종교적 절충주의의 위험 혼합주의

 

1) 이 문제를 좀 더 분석하여 봅시다(1~4절)

 

            1. 백성이 모세가 산에서 내려옴이 더딤을 보고 백성들이 모여 아론에게 이르러 말하되

             “일어나서 우리를 인도할 신을 우리를 위하여 만들라.

              이 모세, 곧 우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사람은 어찌 되었는지 알지 못함이니라.”

            2. 아론이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의 아내와 자녀의 귀에서 금고리를 빼어 내게로 가져오라.”

            3. 모든 백성이 그 귀에서 금귀고리를 빼어 아론에게로 가져오매

            4. 이에 아론이 그들의 손에서 금귀고리를 받아 송아지 모양의 거푸집에 붓고

              조각칼로 다듬어 송아지 형상을 만드니, 그들이 말하되

             “이스라엘아, 이는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너희의 신이로다” 하는지라.

 

    이 사건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민족 전체를 아예 말살하시려 했던 사건이므로

    우리는 이 사건을 좀 더 면밀하게 분석할 필요가 있습니다.

 

    사건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세를

    거의 40일 동안이나 보지 못하게 된 데서 시작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모세 대신에

    그들의 마음을 진정시킬 만한 신적인 형상을 갖기를 원했습니다.

 

    그래서 아론에게 찾아가서

    그들이 의지할 만한 신을 만들어달라고 요청합니다.

 

 2) 아론의 치명적인 오해

 

    ➀ 아론은 왜 그렇게도 빨리 황금송아지를 만들었을까?

 

       여기에서 우리가 이해하기 힘든 것은,

       이제 곧 초대 대제사장이 될 아론이 어쩌면 그렇게도 쉽게

       이스라엘 백성들의 요구를 따라서 황금송아지를 만들었을까 하는 점입니다.

 

       본문을 보면 아론은 그들이 아론에게 요구하자마자

       잠시도 머뭇거리지 않고 곧바로 금귀고리들을 빼내서 가져오라고 명합니다.

 

    ➁ 아론은 하나님께 예배드리기만 하면

       그 앞에 있는 형상물(symbol)은 어떤 것이든 상관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아론은 왜 그렇게도 빨리 황금송아지를 만들었을까요?

       우리는 그 해답을 5절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그는 황금송아지를 만들어 놓고 “내일은 여호와의 절일이다”하고 선언합니다.

 

       아론은 황금송아지를 단지 하나님을 이미지화한 형상물(Symbol)로 여긴 것입니다.

       황금송아지를 만들어 놓았더라도

       실제로 살아계신 하나님께 예배드린다면 아무 문제가 없을 것이라 여긴 것입니다.

 

 3) 인간의 필요에 따른 종교적 절충주의의 위험

 

    ➀ 사람들은 그 황금송아지를 보고 “이것이 너희의 신이다”하고 외쳤습니다(4~6절).

 

            4. 이에 아론이 그들의 손에서 금귀고리를 받아 송아지 모양의 거푸집에 붓고

               조각칼로 다듬어 송아지 형상을 만드니, 그들이 말하되

              “이스라엘아, 이는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너희의 신이로다” 하는지라.

            5. 아론이 보고 그 금송아지 앞에 제단을 쌓고는 공포하여 이르되

             “내일은 여호와의 절일이니라”하니

            6. 이튿날 백성들이 일찍이 일어나서 (그 황금송아지 앞에서)

              번제를 드리며 화목제를 드리고 앉아서 먹고 마시며 일어나서 뛰놀더라.

 

       그러나 황금송아지를 보아도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만을 생각할 것이라는 아론의 생각은

       너무나도 순진한 생각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황금송아지를 보자마자

      “이스라엘아, 이는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너희 신이로다” 하였습니다.

 

       하나님을 형상화한 이미지물로 여긴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그들을 인도하여 내신 분이

       하나님이 아니라 바로 그 황금송아지라고 말한 것입니다.

 

    ➁ 황금송아지를 보고 그들이 경험했던 애굽의 신 아피스를 떠올렸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황금송아지를 보자마자

       그들이 애굽에서 보았던 풍요의 신 아피스(Apis)를 생각했습니다.

 

       아론은 비록 황금송아지 앞에서나마

       여호와의 절기가 바로 지켜지기를 원했으나(5절),

       이스라엘 백성들은 처음에만 번제와 화목제를 드렸을 뿐,

       그다음 순간 곧바로 아피스 신 앞에서 행하였던

       성적 행위를 포함한 집단 광란의 축제를 벌인 것입니다.

 

    ● 묵상 : 우리는 때때로 내가 생각했던 성과가 나오지 않을 때 이런 유혹을 받습니다.

 

       내가 아무리 열심히 목회를 해도 교회가 성장이 되지 않을 때

       다른 방법을 택하려는 유혹을 받습니다.

 

       그래서 가톨릭의 관상기도법에 기웃거리고,

       불교의 선이나 단전호흡의 방법을 도입한 영성훈련법에도 기웃거립니다.

       그리고는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을 만나기 위한 방법일 뿐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본문은 인간의 필요에 의한 종교적인 절충주의가

       곧바로 혼합주의로 빠지고 마는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줍니다.

       이 모든 과정에 마귀의 유혹이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사람이 저지를 수 있는 죄 중에 가장 무서운 죄가 우상숭배와 혼합주의입니다.

       힘들더라도 신앙의 순수함을 지키려 힘쓰는 자가 되십시오.

 

 4) 순전한 예배 : 다른 것이 섞이지 않은 오직 하나님만을 섬기는 예배

 

    하나님께서는 순전한 예배를 원하십니다.

    순전하다는 것은 다른 것이 아무것도 섞이지 않은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께 올려드리는 빵도 누룩을 넣지 않은 순전한 떡이라야 하는 것도

    순전한 예배가 되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직 보이지 않는 가운데 계신 하나님, 바로 그분만 의지하고

    그 하나님께만 예배드리는 자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3. 이스라엘을 네 백성(모세의 백성)이라고 말씀하신 이유(7~8)

 

            7. 이에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내려가라. 네가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너의 백성이 부패하였도다.

            8. 그들이 내가 그들에게 명한 길을 그토록 빨리 저버리고

              자기를 위하여 스스로 송아지를 부어 만들고는

              그 앞에 숭배(예배)하며 그것에게 제물을 바치면서 말하기를

             ‘이스라엘아, 이는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너희의 신이라’ 하였도다.”

 

    그들이 황금송아지를 자기들의 신이라고 고백한 바로 그 순간,

    그들은 더 이상 하나님의 백성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내 백성”이라고 하지 않으시고 “네 백성”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더 이상 하나님과 관계가 없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다른 죄를 지었을 때에는

    하나님께서 그들을 징계하실지라도 여전히 “내 백성”이었습니다.

    그러나 다른 것을 두고 ‘나의 신’이라고 고백하는 순간

    그들은 하나님과 관계가 끊어진 버림받은 백성들이 되고 만 것입니다.

 

 

4. 종교적 감정놀음을 조심하십시오. 기쁨이라고 해서 다 복이 아닙니다.

 

 1) 성령을 통한 즐거움과 단순한 종교적 유희에서 오는 즐거움을 분별하십시오.

 

    여기에서 우리가 조심해야 할 또 한 가지는

    종교적인 행위를 통한 기쁨과 즐거움이 다 성령을 통한 것은 아니라는 점입니다.

 

    그들은 황금송아지 앞에서 먹고 마시며 기뻐하며 뛰놀았습니다.

    그들은 정말 모처럼 즐거움에 흠뻑 빠질 수 있었습니다.

    그야말로 엑스타시의 종교적 황홀경과 함께

    은혜받는 기쁨을 체험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들의 기뻐하는 모습을 보시고

    그들을 아예 당장 진멸하려 하실 만큼 진노하셨습니다.

 

 2) 종교적 감정놀음에 빠지지 않도록 조심하십시오.

 

    그러므로 본문은 우리가 경험하는 기쁨과 즐거움이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 아니라면,

    그것은 단순한 종교적 감정놀음에 불과한 것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우리에게 강력하게 경고합니다.

 

    미국의 백인들이 흑인들을 노예로 삼고,

    서양 사람들이 연약한 나라들을 식민지화하고 그들을 탄압하면서,

    또 한 편으로는 경건한 얼굴을 하고 열광적으로 찬송하며 기도하고 있다면

    그것은 결코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예배나 기도가 아닙니다.

 

 3) 열광주의는 세상의 쾌락만큼이나 위험한 유혹거리라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세상의 죄악과는 달리 열광주의는

    신실한 삶을 살고자 하는 경건한 그리스도인들에게 더 많은 유혹이 됩니다.

    열광주의는 기쁨을 얻는 데까지 걸리는 시간이 짧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기쁨을 얻으려면

    먼저 말씀을 통하여 자신의 죄를 깨닫고

    ➠ 회개를 하고

    ➠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이 되고

    ➠ 말씀과 기도로 경건의 훈련을 받고

    ➠ 성령과의 교제가 깊은 단계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얻을 수 있습니다.

 

    이렇게 되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립니다.

    이스라엘 백성들 역시 출애굽을 한 후에 이렇게 되기까지 40년이 걸렸습니다.

 

➠ 그러나 황금송아지 앞에서의 광란의 축제는 즉시 기쁨을 가져다주었습니다.

 

    정상적으로 얻는 기쁨은 무려 40년이나 걸렸는데

    그날에는 불과 한 시간도 걸리지 않아 그 황홀경에 빠졌습니다.

    그러니 유혹이 됩니다.

 

    그러나 이런 기쁨은 하나님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 죄에서 오는 기쁨일 뿐입니다.

    이것이 열광주의입니다.

 

    손뼉 치면서 온몸에 땀이 흠뻑 적셔질 만큼 열광적으로 찬송하고 기도했을지라도,

    그것이 하나님을 향한 것이 아니라면

    우리끼리만의 즐거운 종교적 감정놀음에 불과합니다.

 

    무엇이든 정상적인 과정을 거치지 않고

    빠르게 결과를 얻게 해 주겠다고 말하는 것은 가짜입니다.

    거짓된 기쁨인 열광주의에 속지 마십시오.

 

 

2 : 하나님께서 정하신 질서대로, 이것이 믿음

 

1. 나답과 아비후에게 내려진 즉각적인 심판

 

 1) 나답과 아비후의 죽음(레 10:1~2)

 

            1. 아론의 아들 나답과 아비후가 각기 자기의 향로를 가져다가

               여호와께서 명하시지 않은 다른 불을 담아 여호와 앞에 분향하였더니

            2. 불이 여호와 앞에서 나와 그들을 삼키매

              그들이 여호와 앞에서 죽은지라.

 

    아론의 첫째 아들과 둘째 아들인 나답과 아비후가 각기 자기의 향로를 가져다가

    여호와의 명하시지 않은 다른 불을 담아 여호와 앞에 분향하였습니다.

    그러자 불이 여호와 앞에서 나와 그들을 삼켜 그들이 여호와 앞에서 죽었습니다.

 

    이에 모세는 아론의 사촌인 이사엘과 엘사반에게

    시신을 진 바깥으로 메어 내라고 명합니다.

 

    또한 아론과 남은 두 아들에게는 머리를 풀거나 옷을 찢는 등

    그 어떤 슬픔의 표현도 하지 말고,

    장례에 참여하기 위해 회막문 바깥으로 나가지도 말라고 명하면서,

    그래야만 그들도 죽지 않을 것이라고 엄히 경고합니다.

 

 2) 나답과 아비후의 치명적인 실수 : 엄청난 은혜를 받은 후에 교만에 빠진 나답과 아비후

 

    9:24에서 아론과 그의 네 아들은 엄청난 기적의 체험을 했습니다.

    그들이 대제사장과 제사장이 된 후 처음으로 행한 제사에서

    하나님께서 친히 영광을 나타내셨기 때문입니다.

 

    그것도 지성소 위에 있는 불기둥에서 불이 나와

    번제단 위에 있는 제물과 기름을 모두 태우심으로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그들이 하나님의 능력을 나타내는

    놀라운 능력의 사자가 된 듯한 느낌이 드는 기가 막힌 체험을 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 엄청난 은혜를 받은 후 나답과 아비후는

    다음과 같은 치명적인 실수를 범하고 말았습니다.

 

    ➀ 대제사장만이 할 수 있는 분향을 그들이 행하였습니다.

 

       나중에는 일반 제사장들이 제비를 뽑아 선택된 자가 들어가 분향을 했습니다.

       세례요한의 아버지 사가랴 역시 제비를 뽑아 주의 성소에 들어가서 분향을 하다가

       천사를 통해 그가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을 요한이라 하라는 음성을 듣습니다(누가복음 1:5~9) 

 

       그러나 처음에는 대제사장인 아론에게 분향하라 명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대제사장 아론에게

       하루 두 차례 등불을 끄고 켤 때 분향하도록 명하셨습니다(출 30:7~9).

 

       그런데 대제사장도 아닌 아론의 두 아들이

       마치 자기들이 대제사장이나 된 듯 분향단에서 분향하는 잘못을 저질렀습니다.

 

    ➁ 다른 향로를 사용했습니다.

 

       이때 분향하는 향로는 반드시 성소 안에 있는 향로,

       즉 지성소의 휘장 앞에 있는 정금 향로에 향을 넣어 분향해야 합니다.

       그런데 그들은 하나님께서 정하시지 않는

       각기 자기의 향로를 가지고 와서 하나님께 분향을 했습니다.

 

    ➂ 다른 불을 사용했습니다.

 

       이때 향로 안에 들어갈 숯불은

       반드시 항상 꺼지지 않게 항상 불을 피워두고 있는 번제단에서 가져와야만 합니다.

       그런데 나답과 아비후는 자기 임의로 다른 불을 향로에 담아 분향한 것입니다.

       레위기는 바로 이것이 나답과 아비후가 저지른 결정적인 잘못이었다고 지적합니다.

 

    ➃ 포도주와 독주를 마신 후에 분향을 하였습니다.

 

       유대의 전승에 의하면 이 때 나답과 아비후는

       포도주와 독주를 마신 후 잔뜩 취한 상태에서 분향을 했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이유로 하나님께서는 나답과 아비후의 시신이

       진 밖으로 내보내진 직후인 본문 9절에서 하나님께서 아론에게

       회막에 들어갈 때에는 절대로 포도주와 독주를 마시지 말라고 명하신 것입니다.

 

 3) 그러므로 복을 받았을 때 교만하지 않게 조심하십시오.

 

    나답과 아비후는 포도주와 독주를 마신 상태에서,

    대제사장만이 할 수 있는 일을 하였고,

    향로도 하나님께서 정하시지 않은 것을 사용했으며,

    결정적으로 하나님께서 정하시지 않은 불을 자기 마음대로 가져다가 분향을 했습니다.

 

    이 모든 일이 그들이 첫 번째 제사를 드린 후에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난 것을 경험한 직후에 일어난 일입니다.

 

➠ 그러므로 내가 바라던 일이 이루어졌을 때,

    많은 사람이 부러워하는 직책과 직분을 받게 되었을 때 교만하지 않게 조심하십시오.

 

    특히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였거나, 내가 기도한 것이 응답되었을 때,

    하나님의 놀라운 기적을 체험했을 때 교만하지 않게 조심하십시오.

    자칫하면 나답과 아비후처럼 복이 저주가 됩니다.

 

묵상 : 이 일들은 말씀을 가볍게 여기는 자의 비극입니다.

 

    아론의 두 아들 나답과 아비후는

    매일 아침 성막에서 분향하는 일에 대한 하나님의 말씀을 가볍게 여기다가 하나님의 진노를 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으로 생명을 주십니다.

    그러므로 말씀을 가볍게 여기는 것은 곧 내 생명을 가볍게 여기는 것과 같다는 것을 항상 기억하십시오.

 

 

2. 나를 가까이하는 자 중에 거룩함을 나타내리라(3)

 

            3. 모세가 아론에게 이르되 “이는 여호와의 말씀이라. 이르시기를

              ‘나는 나를 가까이하는 자 중에 내가 거룩하다 함을 얻겠고

              (내게 가까이 다가오는 자들에게 나의 거룩함을 보이겠고),

              온 백성 앞에 내가 영광을 얻으리라

             (온 백성 앞에서 내가 내 영광을 나타내리라)’하셨느니라.”

              이에 아론이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잠잠하니

 

    나답과 아비후가 여호와의 불에 살라 죽임을 당한 직후에 하나님께서는

   “나를 가까이 하는 자 들에게 나의 거룩함을 나타내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문자적으로 보면 제사장에게 하나님의 거룩함을 나타내리라는 말씀입니다만,

    제사장인 나답과 아비후가 죽은 직후에 주신 말씀이므로,

    제사장이 아니라 하나님께 가까이하려는 자,

    하나님과 친밀한 교제를 하고 있는 신실한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거룩함과 하나님의 능력과 은혜를 나타내 보이시겠다는 말씀입니다.

 

묵상 :

 

    하나님께 가까이 하는 자,

    하나님의 말씀을 존중히 여기고 그 말씀대로 살기에 힘쓰는 자,

    하나님의 은혜 안에 있게 해 주실 것을 간절함으로 간구하는 자,

    하나님께서 이런 자 중에 거룩함을 나타내십니다.

 

 

3 : 은혜의 보좌 앞으로 나아가자

 

1. 살았고 운동력이 있는 말씀

 

    하나님의 말씀은 세상의 다른 책과는 다른 운동력과 생명력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말씀의 원리대로 지금도 일하시기 때문입니다.

 

  • 운동력과 능력과 권세가 있는 하나님의 말씀(히 4:12)

 

           12.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있고 운동력이 있어(힘이 있어서),

                좌우에 날이 선(양쪽에 날이 선) 어떤 검보다도 더 예리하여(날카로워)

                사람의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나니(판단하나니, 밝혀내나니, 숨은 의도를 드러내나니)

 

    하나님께서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있었고, 하늘에 해와 달과 별이 있으라 하시니

    우리가 보는 저 광활한 우주의 별들이 생겼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말씀은 마치 살아있는 생명체처럼

    그 말씀 자체에 힘과 권세와 운동력이 있습니다.

 

    우리가 말씀을 묵상할 때 그 말씀의 능력이 나를 변화시킵니다.

    그래서 그 말씀을 묵상할 때 말씀이 우리 안에 들어와서

    우리의 잘못된 부분을 제거하고, 연약한 부분은 세워주며, 병든 부분을 치료합니다.

 

 1) 하나님의 말씀은 좌우에 날이 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여기에서 양쪽에 날이 선 검은 로마의 병사들이 사용하는

    ‘글라디우스(Gladius)’라는 검입니다. 폼페이에서 발견된 글라디우스 검은

    길이 60~65cm, 폭 5cm, 무게 700그람 정도로, 그 끝이 짧은 삼각형입니다.

 

➠ 로마제국을 세운 로마의 양날 검 글라디우스

 

    로마의 군병들은 방패의 뒤에서 상대의 가슴이나 복부를 이 검으로 찔렀습니다.

    당시 일반적인 병법은 사람의 몸을 베는 것인데,

    상대의 갑옷과 뼈를 끊으려면 상당한 힘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이 검은 자리만 제대로 잡으면 불과 5cm만 찔러도 치명상을 입기 때문에

    힘들이지 않고 적을 물리칠 수 있었습니다.

    로마는 이 병법으로 당시 세계를 제패하여 대제국을 이룹니다.

    그러므로 당시 로마의 이 검은 로마제국의 힘을 상징하는 것이었습니다.

 

➠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로마의 글라디우스 검보다도 더 능력과 운동력이 있습니다.

 

    말씀이 우리 안에 들어와 우리 마음과 생각을 찔러 쪼개며 수술합니다.

    우리를 수술하여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으로 변화시킵니다.

 

 2)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 말씀은 우리의 병든 부분을 치료하고 수술합니다

 

    말씀은 외과 의사가 예리한 칼을 들고 우리 몸을 수술하는 것과 같이

    우리의 마음을 찔러 쪼갭니다.

    단순히 마음을 아프게 하고 회개하는 마음을 일으키는 것이 아닙니다.

    심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합니다.

    우리의 세포 하나하나에까지 말씀의 능력이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마음에 있는 부정적인 생각을 바로잡습니다.

    닫힌 마음을 엽니다. 헌신을 포기하고 싶은 생각을 바꾸어 더욱 헌신하게 합니다.

    탐욕과 이기심과 정욕과 미움과 증오심을 치유합니다.

 

    그리고 세상을 사랑하는 마음을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바꿉니다.

    마음과 생각과 영까지 우리의 인격 전체를 치유하는 것입니다.

 

 3) 말씀은 우리의 마음속에 있는 것을 드러냅니다(12~13절)

 

           12.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있고 운동력이 있어(힘이 있어서),

                좌우에 날이 선(양쪽에 날이 선) 어떤 검보다도 더 예리하여(날카로워)

                사람의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나니(판단하나니, 밝혀내나니, 숨은 의도를 드러내나니)

           13. 하나님께서 지으신 것 중에 그 어떤 것이라도

               하나님 앞에서 나타나지 않음이 없고(숨길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고),

               우리를 상관하시는(우리의 결산을 받으실 이, 우리의 모든 것을 심판하실) 이의

               눈앞에 만물이(모든 것이) 벌거벗은 것같이 드러나느니라.

 

    말씀이 우리의 마음에 있는 욕구, 본능, 열정, 느낌, 동기 등

    내 마음에 있는 생각의 모든 것을 조사하고 조사합니다.

    그 말씀 앞에서 우리의 모든 것이 드러납니다.

 

 4) 말씀은 나에게 활력과 에너지를 줍니다(12절)

 

    말씀이 나를 변화시키도록 나를 말씀에 내맡길 때

    말씀은 내 안에 활력과 에너지를 줍니다.

    자동차를 움직이는 엔진처럼 말씀이 내 안에 신령한 에너지를 공급합니다.

 

묵상 : 묵상은 내 마음의 생각을 드러내기 위해서 합니다.

 

    말씀을 묵상할수록 내 마음에 숨겨진 것이 드러납니다.

    마음의 숨긴 것이 드러나니 때로 마음이 아프고 괴롭지만

    그렇게 말씀을 통해 내 마음이 드러나야 성령께서 나를 치유하십니다.

    묵상할 때 일어나는 갈등이나 마음의 아픔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2. 말씀이 내 안에서 운동력을 발휘하게 하십시오.

 

    그러나 소설을 읽듯이 그저 읽기만 한다고 해서 그 능력이 나타나는 것이 아닙니다.

    말씀이 내 안에 들어와 나의 심혼 골수를 쪼개기까지 할 수 있도록 하려면

    다음과 같은 방법으로 말씀을 묵상해야 합니다.

 

 1) 성령이 이르시는 말씀을 들으십시오.

 

    하나님의 말씀의 능력은 사람의 존재 자체를 바꾸는 엄청난 능력입니다.

    그러나 기록된 말씀을 소설 읽듯이 그저 무덤덤하게 읽으면

    그 어떠한 능력도 나타나지 않습니다.

 

    기록된 말씀을 통해서 성령께서 나에게 이르시는 말씀을 듣고 그 말씀을 받아들일 때

    말씀이 가진 모든 능력이 나에게서 나타나게 됩니다.

 

➠ 보이지 않는 성령께서 하시는 말씀을 어떻게 알아들을 수 있습니까?

 

    말씀을 읽고 그말씀이나에게무엇이라말하는지를

    기도하는마음으로읽고 묵상하고, 또 읽고 묵상하기를반복하십시오.

    그러면 그 말씀 안에서 내가 들어야 할 말씀을 성령께서 알게 하십니다.

 

    때로 성령께서는 그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이 누구신지를 알게 하십니다.

    때로는 내가 어떤 잘못을 했는지 깨닫게 하십니다.

    때로 내가 하나님 앞에서 어떤 일로 헌신해야 하는지를 알게 하십니다.

    때로 성령께서는 다른 사람과의 인간관계에서 내가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

    하나님의 백성 공동체 안에서 내가 무슨 일을 해야 하는지도 알게 하십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회개해야 할 것과 감사해야 할 것, 찬양하고 헌신해야 할 것,

    간구해야 할 것들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큐티(성서 묵상)입니다.

 

➠ 성령이 나에게 이르는 말씀을 받을 때 말씀은 나에게 능력이 됩니다.

 

    성령이 주시는 말씀을 들을 때

    말씀이 나의 생명을 더욱 활력 있게 하는 에너지를 줍니다.

    어떤 사람이 되어야 내가 제일 행복한 사람이 되는지를 말씀이 나를 분석하여

    그 방향으로 나를 인도합니다.

 

    그러므로 성령이 나에게 이르는 말씀을 찾는 일을 게을리하지 마십시오.

 

 2) 오늘 말씀을 통해 나를 드러내십시오.

 

    나는 단지 말씀을 묵상하고 있을 뿐입니다.

    그 말씀 속에 담긴 하나님의 뜻을 찾기에 힘썼을 뿐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성령께서 나에게 주시는 말씀을 찾는 일을 하는 동안

    그 말씀이 내 안에 들어와 나의 잘못된 부분을 수술하고 고칩니다.

 

 3) 우리의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체휼하지 아니하는 자가 아니요(14~15절)

 

           14. 우리에게 하늘로 올라가신 큰 대제사장이 계시니 곧 하나님의 아들 예수시라.

                우리가 믿는 도리(믿는 신앙)를 굳게 잡을지어다.

           15. 우리의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체휼하지 아니하는(동정하지 않으시는, 동정하지 못하시는) 이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마찬가지로 시험을 받으신 이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하지만 우리가 말씀으로 변화되는 중이라 할지라도 또 넘어지고 넘어질 것입니다.

    말씀으로 은혜받고 나오자마자 곧 싸우고 다투기를 반복할 것입니다.

    주께서 우리를 부르시기까지 우리가 얼마나 유혹에 넘어지고 죄를 범할까요?

 

➠ 우리가 이렇게 연약한 자일지라도

    감히 주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고 자부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우리의 대제사장이신 예수님은

    우리의 연약함을 체휼하지(동정하지) 않는 분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리와 같이 한결같이 시험을 받으셨던 분이시기에

    우리의 아픔과 고통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넘어지고 또 넘어질지라도

    주께 나아가면 주께서 우리를 또 받아주시고 또 받아주십니다.

 

    주께서 부르시는 그날까지 주님의 은혜의 자리를 포기하지만 않는다면

    주께서는 결코 우리를 버리지 않으십니다.

 

묵상 : 말씀으로 묵상할 때 마음에 찔리는 일이 일어납니다.

 

    때로 그 말씀대로 살지 못하는 자신을 발견할 때면 가슴이 답답해지기도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못한 자신을 발견할 때면 두렵기까지 합니다.

 

    그러나 이렇게 말씀을 볼 때마다 두렵고 답답할지라도 말씀을 멀리하지 마십시오.

    지금 말씀을 통해 나를 드러내면 구원을 받게 되지만, 이 일을 뒤로 미루다가

    심판대 앞에서 드러나는 일을 맞게 되면 영원한 저주를 받게 됩니다.

 

    그러므로 부담스럽더라도 지금 말씀을 통해 나를 드러내려 하십시오.

    넘어지고 또 넘어질지라도 말씀과 기도로 주님 앞에 나아가기를 주저하지 마십시오.

 

 

3. 은혜의 보좌 앞으로 나아가자

 

  1) 히브리서는 사람을 세 가지로 구분합니다(12절).

    육신의 영역에 머무는 자, 혼의 영역에 머무는 자, 영의 영역에 머무는 자입니다.

 

           (12절 성경구절 위에)

 

    육은 육신의 본능의 영역이고, 혼은 생각과 정서와 자아의 영역입니다.

    그리고 영은 인간의 가장 깊은 곳으로 하나님과 만나는 자리,

    하나님을 인식하는 자리로서 신앙의 영역입니다.

 

 2) 혼에 속한 사람 : 거듭나지 못한 사람

 

    바울은 중생하지 못한 사람을 혼적인 사람(고린도전서 2:14)이라고 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신앙생활을 하는 목적이 자기 마음의 평안에 있습니다.

 

    불안과 우울증과 좌절감에 빠진 자들이

    마음의 평안을 얻을 때 은혜를 받았다고 생각하고,

    바로 이런 마음과 정서의 안정감을 얻기 위해 신앙생활을 한다고 합니다.

 

 3) 그러나 우리는 더 깊은 은혜의 보좌 앞으로 나아갑시다(16절)

 

           16.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긍휼(자비)하심을 받아

                때를 따라(필요할 때마다) 도움을 주시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으로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히브리서는 우리에게 신앙의 더 깊은 중심점인

    하나님의 은혜의 보좌로 나아갈 것을 촉구합니다.

 

    하나님의 은혜의 보좌 앞으로 더욱 깊이 나아가는 것은

    마음의 평안보다는 갈등과 불안감이 더 증폭될 수 있습니다.

    말씀대로 살지 못한 자신을 발견할 때 마음이 불안해지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 이것은 수술을 받을 때 불안하고 아픈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영적인 일에 있어서도 말씀이 나를 치료하는 과정에 있을 때에는

    불안하고 두려운 것입니다. 몸과 마음이 힘들고 아픈 것입니다.

    이런 경우 마음의 불안감은 치료의 과정이므로 기뻐하고 즐거워해야 할 일입니다.

 

    그러나 말씀으로 수술을 받을 때 나타나는 이런 불안과 두려움의 감정이 싫어

    말씀에 자신일 비추어 보는 일을 게을리 하고

    단지 마음의 평안만을 위해 신앙생활을 한다면

    병증은 그대로 두고 진통제만 맞는 것과 같은 일이 됩니다.

 

묵상 : 그러므로 더 깊은 은혜의 세계, 더 깊은 신앙의 중심점으로 들어가십시오.

 

    머지않은 장래에 우리를 향하신 예수님의 긍휼이 끝나는 날이 옵니다.

    그때에는 때를 따라 돕는 은혜도 중단이 되고, 오직 심판만 있습니다.

    그날이 오기 전에 그 긍휼함과 은혜를 힘입어 신앙의 더 깊은 곳에 들어가십시오.

 

 

주님

 

성령이 나에게 이르시는 말씀을

듣는 귀가 열리게 하옵소서.

 

말씀을 통해 나를 드러내는 일을

중단하지 않게 하옵소서.

 

감상적인 감정의 변화가 아니라

주님 안에서의 참 기쁨과 평강을

온전히 누리게 하옵소서.

 

늘 하나님과 가까이하며 사는 자가

되게 하옵소서.

 

참된 것과 거짓된 것을

늘 분별하며 살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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