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제목 :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설교본문 : 요한복음 3:1~21, (참고, 요한복음 4장)
설 교 자 : 송호영 목사
설 교 일 : 2024년 6월 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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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 론 :
오늘 우리는 요한복음이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우리에게 증거하려 했던 예수께서
우리에게 주신 놀랍고 영광스러운 선물이 무엇인지를 살펴보려 합니다.
그것을 요한복음 3장에서는 ‘거듭남’이라는 단어로 설명하고,
4장에서는 거듭남이 무엇인지를 한 여인의 변화된 모습을 통해 설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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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듭남에 대한 말씀은 한 유대인의 관원이 밤중에 몰래 예수님을 찾아온 일에서부터 시작됩니다.
1) 밤중에 예수님을 찾아온 니고데모(3:1~2)
1. (그러나) 바리새인 중에 니고데모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그는 유대인의 관원(지도자, 산헤드린 공의회 의원)이라.
2. 그가 밤에 예수께 와서 이르되
“랍비여, 우리는 당신이 하나님께로서 오신 선생이신 줄 아나이다.
하나님께서 함께하시지 아니하시면
당신이 행하시는 이 표적을 아무라도 할 수 없음이니이다.”
2장에서 예수께서 예루살렘 성전에서 채찍을 내리치시며 크게 진노하시자
이 장면을 보고 많은 사람이 예수께 적대 감정을 가지고 거부했습니다.
그런데 여기 그들과는 다른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밤중에 예수님을 찾아온 니고데모가 바로 그 사람입니다.
그는 바리새인이면서 유대인의 관원이었습니다.
당시 유대인의 사회에서는
바리새인이든지 관원이든지 둘 중의 하나만 있어도 지도자로 대접을 받는데,
이 사람은 두 가지를 다 가졌으니
그야말로 만인의 부러움을 사는 자가 아닐 수 없습니다.
2) 예수께 대한 간절함을 가진 사람 니고데모
니고데모는 관원이었으므로 사람들의 시선이 부담스러워 밤에 몰래 주님을 찾아옵니다.
낮에 당당하게 주님을 찾아뵙지 못한 것은 조금 그렇기는 합니다만,
어쨌든 그는 예수님을 찾아와서
예수님을 가리켜
“당신은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선생이십니다”하고 고백합니다.
3) 거듭남에 대하여 설명하시는 예수님
그러자 예수님은 니고데모에게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을 볼 수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을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선생’이라고 고백하는 정도로는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니고데모에게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필수적인 조건으로 말씀하신
‘거듭남’이 무엇인지 정리하여보겠습니다.
제 1 부 :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1. 거듭남의 뜻(3:3~5)
3. 예수께서 그에게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4. 니고데모가 가로되 “사람이 늙으면 어떻게 날 수 있삽나이까?
두 번째 모태에 들어갔다가 날 수 있삽나이까?”
5.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거듭남으로 번역된 헬라어 ‘아노덴’에는 다음과 같은 세 가지 뜻이 있습니다.
1) 거듭남 : 처음부터, 완전히, 전부
거듭남은 우리 몸의 장기들은 물론이고 우리의 세포들까지
처음부터, 완전히, 우리 몸 전체가 다 새롭게 되는 것을 뜻합니다.
내가 예수 믿은 후 전보다 조금 나아졌다는 것만으로는 안 됩니다.
단 하나의 결점도 없이, 죄도 하나도 없는 완전무결한 상태가 된 것을 가리킵니다.
2) 거듭남 : 두 번째로, 다시
거듭남의 두 번째 뜻은 두 번째로 다시 태어나는 것입니다.
그렇게 완전무결한 것은 마치 두 번째로 다시 태어나는 것과 같습니다.
지금까지의 모든 죄가 다 사라지고 이제 막 태어난 아이처럼
우리가 새롭게 다시 태어나는 것을 가리킵니다.
3) 거듭남 : 위로부터, 하나님께로부터
거듭남의 세 번째 뜻은 위로부터, 하나님께로부터 다시 태어나는 것입니다.
우리의 육신은 전에 어머니에게서 태어났지만,
거듭나는 것은 위로부터 하나님께로부터 태어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로부터 다시 지으심을 받는 것입니다.
다시 창조되는 것입니다.
완전히 새로운 피조물이 되는 것입니다.
2. 거듭남 : 새로운 피조물, 새로운 창조
1) 거듭남 : 물과 성령으로 태어나는 것(5절)
(5절 성경구절 위에)
물로 태어나는 것은 죄를 완전히 씻어내야 하는 것을 뜻하고,
성령으로 다시 태어나는 것은
성령을 통하여 하나님과의 관계가 완전히 회복되는 것을 뜻합니다.
그러므로 거듭남이란 우리의 죄가 아주 작은 먼지만큼도 남아 있지 않게 되는 것,
무결점 무흠의 완전한 상태의 순전한 자가 되는 것이고,
하나님과의 관계 역시 조금의 허점도 없이 완전히 회복된 상태를 뜻합니다.
전보다 조금 나아진 상태가 결코 아닌 것입니다.
2) 거듭남 : 새로운 창조, 새로운 피조물(고후 5:17)
17.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 새로운 피조물(17절) : 카이네 크티시스
‘새로운 피조물’에 해당하는 ‘카이네 크티시스’는
‘새로 창조된 사람, 완전히 새로 지음 받은 사람’을 뜻하는 것으로,
타락한 모든 것이 완전히 소멸되고,
질적으로 전혀 새로운 자, 새로 창조된 자가 된 것을 뜻합니다.
그러므로 거듭남이란 산속에 들어가서
어떤 고통스러운 수행이나 훈련의 과정을 통해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주께로부터 새로 창조되기 전에는 결코 이루어질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께서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달리셔서 우리의 죄가 완전히 씻어져서
우리가 무결점 무흠의 순전한 상태가 되었습니다.
흠과 티가 전혀 없는 하나님의 수준에 이를 만큼 완전한 순결을 이룬 자가 된 것입니다.
그리고 주께서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가 조금의 허점도 없이 완전히 회복된 상태가 되었습니다.
이것이 거듭남입니다.
➠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영으로 난 것은 영이니(3:6)
6. 육에서 난 것은 육이요 성령으로 난 것은 영이니
(사람의 육체는 부모로부터 태어나지만, 영은 성령으로 태어나는 것이니)
사람의 육체는 부모로부터 태어나지만, 영은 성령으로 태어나는 것입니다.
단지 부모로부터 태어난 육체만 가지고 있는 자는 아직 영이 없는 자들입니다.
영은 오직 주께로부터만 얻을 수 있습니다.
주님을 바로 믿고 섬기는 자들만이
성령으로 다시 태어난 영적인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 요한복음에서 말하는 ‘영’이 무엇인지 바르게 이해하십시오.
여기에서 말하는 ‘영’은 우리가 흔히 말하는 ‘영혼’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내 안에 하나님의 신령한 생명과 연결된 부분,
그것을 ‘영’이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생명과 나의 생명이 서로 연결되어서
하나님의 신령한 은혜를 받으며 사는 것,
내 안에 있는 그 신령한 연결점이 ‘영’입니다.
이 신령한 영의 생명을 가진 자가 거듭난 자입니다.
이것이 있는 자는 겉으로 보기에는 똑같아 보여도
완전히 새롭게 창조된 새로운 피조물이 됩니다.
하나님의 자녀 된 권세를 가진 하나님의 영광의 백성이 된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자에게 주께서 주님의 거룩한 영이신 성령을 보내주셔서
내 안에 이 모든 영광스러운 일들이 일어나게 하십니다.
● 묵상 :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그러므로 바울은 고린도후서 5:17에서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하고 외쳤습니다.
우리는 새로 창조된 자,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무엇보다도 새로 지으심을 받은 이 은혜를 기뻐하며 감사해야 합니다.
3. 복음의 핵심 :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16~17절)
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17.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저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1)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십니다.
사람들의 죄를 하나님의 독생자에게 대신 짊어지게 하실 만큼
세상 사람을 사랑하신다는 말씀입니다.
여기에서 말하는 세상은 하나님께서 만드신 모든 피조물 중에서 사람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택하신 백성인 이스라엘뿐 아니라
세상의 모든 인류, 모든 족속을 사랑하십니다.
구약에서 이스라엘을 하나님의 백성으로 택하신 것도
그들을 통해서 세상 만민을 구하시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아브라함에게 주셨던 ‘복의 근원’의 사명이 바로 그것입니다.
➠ 그러나 이스라엘이 세상에 복을 전하는 사명을 끝내 거부하였습니다.
그러나 세상 사람을 구하려는데는 넘기 힘든 중대한 문제가 하나 있었습니다.
세상 사람 중에서 죄 없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이 많으신 분이시기도 하지만, 공의로운 분이시기도 합니다.
하나님의 공의는 죄 있는 자는 반드시 심판을 받아 죽어야만 한다는 것을 뜻합니다.
그래서 구약에서는 죄를 범한 사람을 대신하여 짐승이 죽는 율법을 정하셨는데
그것이 번제와 속죄제입니다.
이것이 대단히 지키기 힘든 율법이라 해도
구약에서는 사람이 구원받는 유일한 방법이었으므로,
이 율법에 이방 사람들에까지 전해졌다면 주께서 오시지 않아도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유대인은 세상 사람을 구하시려는 하나님의 뜻을 끝내 거부했고,
예수께서 이 땅에 계실 때에는 이방인들의 유일한 기도처인 이방인의 뜰을
장사치들의 난장으로 만들어 놓아서 이방인이 구원받을 길을 완전히 막아버렸습니다.
2) 독생자를 주셨으니
그래서 하나님께서 유대인뿐 아니라
이방인들도 구원받을 수 있는 놀라운 계획을 세우셨는데,
이 일을 위해서는 죄가 하나도 없는 완벽한 사람이 필요했습니다.
죄를 지은 자는 이미 자기에게도 죄가 있으므로
다른 사람의 죄를 대신 짊어질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그의 독생자 예수님을 보내셔서
이 땅에 우리와 똑같은 사람으로 살되, 죄 없는 자로 살게 하셔서
세상 만민의 죄를 지고 대신 형벌을 받게 하셨습니다.
3)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그래서 누구든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예수님처럼 죄 없는 자로 여김 받아 천국 백성이 되도록 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누구든 주님을 믿기만 하면
그가 어떤 죄를 지었든지 죄 없는 하나님의 거룩한 자로 인정받게 됩니다.
이 일을 위해 하나님께서 독생자 예수님을 세상에 보내셨고,
이 일을 위해 예수님은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달리셨습니다.
4)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저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고
세상은 이미 그들 스스로 지은 죄로 인하여 심판과 멸망의 자리에 있었으므로
세상을 심판하시는 것이 목적이었다면 그냥 내버려 두면 될 일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서입니다.
사람은 결단코 자기 힘으로 거듭날 수 없으니
예수께서 사람들의 죄를 대신 지시고 죽으시기 위해 오신 것입니다.
● 묵상 : 이처럼 사랑하사 ➠ 우리 대신 그의 독생자를 십자가에 달리게 하실 만큼
예수님의 십자가는 세상 사람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의 세레나데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세상 사람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의 징표입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리시는 이 사명을 감당하셨으므로
하나님께서 세상 사람의 심판과 구원에 관한 모든 일을 예수께 맡겼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누구든지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죄가 완벽하게 하나도 없는 자로 여김 받아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이 됩니다.
이 모든 것이 세상 사람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으로 이루어졌습니다.
그러므로 당신도 예수님을 믿어 주님의 사랑 안으로 들어오십시오.
그래서 멸망받는 자가 되지 말고 구원받는 자가 되십시오.
제 2 부 : 수가성 우물가의 사마리아 여인
요한복음 3장에서 예수께서 니고데모와의 대화 중에 거듭남에 대하여 말씀하신 후
바로 그다음 요한복음 4장에는 사마리아 여인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 여인은 자기 힘으로는 의의 길을 걸을 수 없는 여인이었습니다.
그런데 영적으로 가장 연약한 여인인 수가성 우물가의 사마리아 여인이
예수님과 나눈 두시간 남짓 대화만으로 거듭난 여인이 됩니다.
요한복음 4장에 기록된 사마리아 여인의 변화의 과정을 통해
거듭남이 무엇인지를 살펴보겠습니다.
(설교가 길어져 제목만 기록합니다.
자세한 것은 요한복음 4장 큐티를 참조해 주십시오.)
1. 사마리아 여인을 찾아가신 예수님
1) 우회도로를 이용하지 않고 사마리아를 통과하는 길을 택하신 예수님(3~4절)
3. 이에 유대를 떠나사 다시 갈릴리로 가실새
4. 사마리아로 통행하여야 하겠는지라
2) 사마리아 여인보다 예수께서 먼저 그곳에 와 계셨습니다.(4:5~6)
5. 사마리아에 있는 수가라 하는 동네에 이르시니
야곱이 그 아들 요셉에게 준 땅이 가깝고
6. 거기에 또 야곱의 우물이 있더라.
예수께서 길 가시다가 피곤하여 우물 곁에 그대로 앉으시니
때가 제 육시(낮 12시)쯤 되었더라.
➠ 사마리아 사람들에게 버림받은 여자
2. 사마리아 여인과 예수님과의 대화(7~14절)
7. (마침 그때) 사마리아 여자 하나가 물을 길으러 왔으매 예수께서 물을 좀 달라 하시니
8. 이는 제자들이 먹을 것을 사러 동네에 들어갔음이러라.
9. 사마리아 여자가 가로되
“당신은 유대인으로서 어찌하여 사마리아 여자 나에게 물을 달라하나이까?” 하니
이는 유대인이 사마리아인과 상종치 아니함이러라.
10.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선물과 또 네게 물 좀 달라 하는 이가 누구인 줄 알았더라면
네가 그에게 구하였을 것이요, 그가 생수를 네게 주었으리라.”
11. 여자가 가로되 “주여, 물길을 그릇도 없고 이 우물은 깊은데
어디서 당신이 이 생수를 얻겠삽나이까?
12. 우리 조상 야곱이 이 우물을 우리에게 주었고
또 여기서 자기와 자기 아들들과 짐승이 다 먹었는데,
당신이 야곱보다 더 크니이까?”
13.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이 물을 먹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14. 내가 주는 물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나의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그 사람의 속에서 끊임없이 솟아 나와 영생에 이르게 하는) 샘물이 되리라.”
1) 여인과 단둘이 있기 위해 제자들에게 심부름을 보내신 예수님(7~8절)
2) 대화의 시작 : 예수께서 물을 좀 달라 하시니(7절)
3) 어찌하여 사마리아 여자인 나에게 물을 달라 하시나이까(7~9절)
4) 내가 누구인지 알았더라면 생수를 구하였을 것이라(10절)
5) 내가 주는 물은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14절)
➠ 마셔도 다시 목마른 야곱의 우물 : 세상 기쁨의 한계성을 상징(13절)
3. 근본적인 문제에 도전하시는 예수님
1) 예수님의 불편한 질문 : 가서 네 남편을 불러오라(15~16절)
(15~16절 성경구절 위에)
➠ 성령의 생수를 얻기 위해 반드시 해결해야 할 질문을 던지시는 예수님
“가서 네 남편을 불러오라”
그저 마음 가는 대로 이 남자 저 남자를 만났던 여자였으니
남편이 있을 리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이 질문은 이 여인에게는 대단히 불편한 질문입니다.
가뜩이나 사람들이 자기를 보고 흉을 보니
그것도 싫어서 제일 더운 한낮에 아무도 모르게 조용히 물을 뜨러 온 것인데
이 여자가 가장 감추고 싶은 아킬레스건을 건드리신 것입니다.
2) 그러나 그 불편한 문제가 해결되어야만 합니다.
3) 목마르지 않는 영원한 생수를 주시는 예수님(13~14절)
(13~14절 성경구절 위에)
4) 삶의 현실을 주께 드러내십시오. 주께서 치료하십니다.
이 질문을 통해 여인의 삶의 현실이 드러났습니다.
삶의 현실이 주님 앞에 드러나면 주께서 그 삶의 아픔을 치료하십니다.
여기에서 여인의 가장 큰 장벽이 허물어졌습니다.
예수께서 그녀의 가장 큰 문제를 용서하시면서 해결해 주시자
여인은 곧바로 예배에 관심을 갖게 됩니다.
● 묵상 :
➀ 죄의 문제를 주님 앞에서 해결하십시오.
예수님을 진정으로 만나려면
우리 내면의 깊은 곳에 있는 죄의 문제가 해결되어야만 합니다.
주 앞에 죄의 문제를 드러내고 용서를 구하십시오.
➁ 예수님이 주려 하시는 것이 무엇인지를 배우십시오.
예수님은 여인과 대화하면서 하나님의 선물이 무엇인지, 생수가 무엇인지,
예수님이 누구인지 알게 하는 방향으로 진행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이 세 가지에 대한 것을 우리도 알게 되기를 원하십니다.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선물이 무엇인지,
우리에게 주려 하시는 생수가 무엇인지,
그리고 예수님이 누구이신지 배우십시오.
그리고 주께 알게 해 주시도록 간구하십시오.
4. 아버지께 예배드릴 때가 오나니, 지금이 바로 그때라(19~26절)
19. 여자가 이르되 “주여, 내가 보니 선지자로소이다.
20. 우리 조상들은 이 산에서 예배하였는데
당신네 유대인들의 말은 예배할 곳이 예루살렘에 있다 하더이다.”
21. 예수께서 가라사대 “여자여, 내 말을 믿으라.
이 산에서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고(이 산도 아니고 예루살렘도 아니라.)
(장소를 따지지 않고 어디에서든지) 너희가 아버지께 예배할 때가 이르리라.
22. 너희는 알지 못하는 것을 예배하고 우리는 아는 것을 예배하노니,
이는 구원이 유대인에게서 남이니라.
23. 아버지께 참으로(진정으로, 진실하게) 예배하는 자들은
신령과 진정으로(영과 진리 안에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때라(지금이 바로 그때라).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자기에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24.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영과 진리 안에서) 예배할찌니라.
25. 여자가 이르되 “메시야 곧 그리스도라 하는 이가 오실 줄을 내가 아노니,
그가 오시면 모든 것을 우리에게 알려 주시리이다.”
26.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게 말하는 내가 그로라(지금 너와 말하고 있는 내가 바로 그 메시야니라.)”
1) 예배의 장소를 묻는 사마리아 여인 : 그리심산인가, 예루살렘인가(19~20절)
2) 예배의 공간을 두고 벌인 유대인과 사마리아인 싸움
3) 공간이 아니라 시간 : 아버지께 참으로, 영과 진리로 예배드릴 때가 오나니 지금이 바로 그때라(23절).
그러나 예수님은 예배는 공간의 문제가 아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어디서 드리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어떤 예배를 드리느냐가 중요하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이제 그런 참된 예배를 드려야 할 때가 왔다고 말씀하십니다.
4) 네게 말하는 내가 그로라(25~26절)
예수께서 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해야 할 때가 지금이고,
예배하는 자는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지니라 하고 말씀하시자
여인은 메시야 곧 그리스도라 하는 이가 오실 줄을 내가 아노니
그가 오시면 모든 것을 우리에게 알려 주시리이다 라고 했습니다.
그때 예수께서
‘네게 말하는 내가 그로라(지금 너와 말하고 있는 내가 바로 그 메시야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자 그다음 순간 여자는 물동이를 버려두고
사마리아로 달려가 메시야(그리스도)께서 오셨다고 기뻐하며 증거했습니다.
‘내가 바로 그리스도다’라는 이 한 마디에 여인은 주님을 그의 마음에 영접하고 모신 것입니다.
이것이 믿음이고 이것이 거듭남입니다.
5. 사마리아 여인이 주님을 발견한 이유 : 메시야 대망
1) 메시야(그리스도)가 오시기를 갈망하고 있는 사마리아 여인(25절)
(25절 성경구절 위에)
예수께서 이제는 어디든 상관없이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시대가 열렸다고 말씀하시자
사마리아 여자는 메시야, 곧 그리스도라 하는 이가 오시면
이 모든 것을 알게 하실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 말은 이 사마리아 여자가 그동안
그리스도가 오시기를 갈망하고 있었다는 것을 뜻합니다.
2) 타락한 사마리아 여인의 마음속에 담긴 그리스도를 향한 갈망
예수님은 사마리아 여인과 같이 예수님을 향한 갈망을 가진 자를 찾으셨습니다.
예수님을 향한 갈망을 가진 자이면 노인이라도 만나고(누가복음 2장 시므온과 안나),
사마리아 여인처럼 타락한 사람이라도 만나십니다.
3) 그리스도를 간절히 갈망하는 이 마음을 주께서 받아들이셨습니다.
그 순간 이 여인에게 거듭남이 일어났습니다.
➠ 바로 여기에 복음의 탁월함이 있습니다.
만일 이 여자가 구약의 시대에 있었다면
죽을 때까지 구원받을 기회를 얻지 못했을 것입니다.
구약은 율법을 지킨 자에게만 구원의 기회가 있는데
이 여자는 이미 남자가 다섯이 있었고,
지금 있는 남자도 자기 남편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런 여자도 주님을 간절히 원하고 사모할 수는 있습니다.
이렇게 연약하여 율법을 지킬 힘이 없으나
하나님을 간절히 원하고 사모하는 자, 바로 이런 자들을 위해서 예수께서 오셨습니다.
6. 정리 : 예수께서 사마리아 여인을 찾아가신 이유 ➠ 그리스도를 향한 간절한 열망
타락한 사마리아 사람들로부터도 따돌림을 당할 정도로
여러 남자를 만났던 문란한 사마리아 여인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런 사마리아 여인을
어찌하여 예수께서 친히 찾아가서 만나셨을까요?
이런 여자가 어떻게 해서
예수님과 잠깐 만나는 사이에 거듭난 여인이 되었을까요?
그동안 유대인들은 예수님의 기적을 많이 보았으나,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알아본 사람은 얼마 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 여인 앞에서
한 하나의 기적도 보이지 않으시고 그저 말씀만 하셨습니다.
여인은 말씀만 듣고도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알아보았습니다.
그것도 “내가 바로 그 사람이라”하는 이 한마디를 결정적인 말씀으로 듣고
물동이를 버리고 기뻐하며 사마리아로 뛰어갔습니다.
이 모든 것의 출발점에 무엇이 있습니까?
그리스도를 향한 여인의 갈망입니다.
“그리스도라 하는 이가 오실 줄을 내가 아노니,
그가 오시면 모든 것을 고하시리이다”(25절)
비록 마음의 갈증을 남자를 통해 해결하려 하는 바람에 불륜녀가 되기는 했지만
“그리스도 오시면 나도 달라질 수 있다”는 간절함을 항상 품고 있었습니다.
예수께서 바로 이 여인에게 있는 그 갈망을 보시고 이 여인을 친히 찾아오셨고,
이 여인을 거듭난 자가 되도록 도우셨습니다.
제 3 부 : 영과 진리로 드리는 예배
1. 아버지께서 찾으시는 영과 진리로 드리는 예배(23절)
23. 아버지께 참으로(진정으로, 진실하게) 예배하는 자들은
신령과 진정으로(영과 진리 안에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때라(지금이 바로 그때라).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자기에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이제는 더 이상 예배의 장소나 형식이나 절차는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이제는 마음과 영혼의 중심을 주께 드리는 예배를 드리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예배는 ‘영과 진리 안에서 드리는 예배’라는 뜻입니다.
그중에서 먼저 영으로, 영 안에서 드리는 예배는
영적인 감각으로, 하나님과 영이 서로 연결된 상태에서 드리는 예배를 뜻합니다.
하나님과 영이 서로 교통하고
하나님과 서로 영적인 교류를 하는 자가 드리는 예배입니다.
1) 하나님과의 신비로운 연합 속에서 드리는 예배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요 15:5)
영으로 드리는 예배는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신비로운 연합 속에서 드려지는 예배입니다.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요 15:7).
우리가 주님의 은혜 속에 거하고 주님의 말씀이 우리 안에 거하면
하나님과의 신비로운 연합이 이루어집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내 마음에 품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행하신 일을 기억하고,
그 행하신 일을 기뻐하며 감사하며 찬양하는 것,
이것이 바로 영으로 드리는 참된 예배입니다.
2) 천국의 기쁨으로 드리는 예배 : 메시야 잔치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히 11:1)
마태복음 22:1~14과 누가복음 14:16~24을 보면
주께서 재림하여 오실 때에 주님과 그의 백성들이 함께 나누는 영광의 기쁨을
마지막 왕의 혼인 잔치로 비유하고 있습니다.
그때 신랑인 왕은 예수님이시고, 그 왕의 신부는 구원받은 주님의 백성들입니다.
그 영광의 기쁨은 장차 주께서 다시 오신 후에 경험하게 될 일이지만,
우리는 믿음으로 그 영광의 기쁨을 오늘 이 예배 속에서 경험하며 노래합니다.
믿음은 실상, 그 실체를 바라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 영광의 기쁨을 마치 오늘 이 자리에서 눈으로 보는 것처럼 확실하게 믿는 이들이
지금 그 기쁨에 싸여 있는 것처럼 주께 영광 돌리며 예배드리는 것,
이것이 바로 영으로 드리는 예배입니다.
3) 회개하여 순결한 영이 된 자가 드리는 예배
회개하여 그 영이 깨끗하고 순전하게 된 자만이 이런 예배를 드릴 수 있습니다.
주께 회개하여 그 영이 순결하게 된 자만이
하나님과의 신비로운 연합 속에 들어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자만이 하나님과 그 영이 서로 교통하는 자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과 영이 서로 교통하는 영 안에서 드리는 예배를 드리려면
먼저 자신의 죄를 회개하여 그 영이 깨끗하고 순전한 영이 되게 해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과 영이 서로 통하여
영으로, 영 안에서 예배를 드릴 수 있는 자가 됩니다.
4) 마음을 다하고 정성을 다하고 힘을 다하는 예배 : 왕께 드리는 예배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하나인 여호와시니
너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신명기 6:4~5)
5) 그리고 그보다 더
영으로 드리는 예배는 하나님께 최고의 영광과 영예를 올려드리는 예배입니다.
여러분이 지금까지 살아온 삶 속에서 누군가를 좋아하며 기뻐했던 그 일보다 더,
하나님께 최고의 영광을 올려드리십시오.
하나님은 우리의 찬양을 받기에 합당하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6) 진리로 : 진리이신 예수님을 통해 오직 하나님께만 드리는 예배
오직 보이지 않으시는 가운데 계시는 하나님께만 드리는 예배,
오직 우리의 예배를 받으시는 하나님께만 드리는 예배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의 예배가 오직 하나님께만 드리는 예배가 되려면
우리의 예배를 받으시는 하나님이 누구신지를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능력이 어떠하신지,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그 사람으로 우리를 위해 어떤 일을 하셨는지를 바르게 알아야
내 마음과 뜻과 정성을 주께로 온전히 집중할 수 있습니다.
또 그렇게 하나님을 알고 주께 집중에서 예배를 드린다고 할지라도
주께서 원하시는 방법으로 드리는 예배라야 합니다.
그러므로 예배를 돕는다는 이유로
그 어떤 우상이나 그 어떤 이미지 형상도 만들거나 그 앞에 두지 않고,
오직 보이지 않는 가운데 계시는 하나님께 예수님의 이름으로만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2. 정리 : 거듭난 여인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요한복음 3:3)
요한복음 3장에서 예수님은 사람이 거듭나지 않으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다는 것은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는 뜻입니다.
오직 거듭난 자들만이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 사마리아 여인을 통해 거듭남이 무엇인지 설명하시는 예수님
그러면 거듭났다는 것을 무엇을 뜻하는 것입니까?
어떤 사람이 거듭난 사람입니까?
예수님은 요한복음 4장의 수가성 우물가의 여인과의 대화를 통해
사람이 거듭난다는 것을 무엇을 뜻하는 것인지를 설명하십니다.
1) 버림받은 타락한 여인이 예수님과 잠시 대화를 나누는 중에 거듭난 여인이 되었습니다.
사마리아 사람들로부터도 버림받은 불륜의 여인인 이 사마리아 여인이
예수님과 잠시 대화를 나누는 동안 거듭난 여인이 되었습니다.
요한복음 3장에서 오직 거듭난 자만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고 말씀하신 예수님은,
이 사마리아 여자를 통해서 우리가 어떻게 하면 거듭날 수 있는지를 설명하십니다.
주님이 누구신지를 아는 자,
주님이 우리의 구세주이심을 고백하며 그를 기뻐하고 찬양하는 자는 거듭난 자입니다.
2) 물동이를 버려두고 기뻐하며 그가 만난 주님을 전하는 사미리아 여인(28~30절)
28) 그 여자가 물동이를 버려두고 동네에 들어가서 사람들에게 이르되
29) “나의 행한 모든 일을(나의 모든 과거를) 내게 말한 사람을 와 보라.
이는 그리스도가 아니냐?” 하니
30) 그들이 동네에서 나와 예수께로 오더라.
여자는 예수께서 자신이 바로 그리스도시라고 말씀하시자,
물동이를 그 자리에 버려둔 채 곧바로 마을로 뛰어가서
내가 그리스도를 만났다고 외칩니다.
➠ 생각과 판단의 자리, 몸을 움직이게 하는 그곳에서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그 여인이 이렇게 예수님이 그리스도시라는 것을 믿는 순간,
그리고 그 믿음대로 자기의 입술을 열어 고백했고,
다른 사람들에게 예수님이 그리스도시라는 것을 증거하는 순간
그는 거듭난 자가 되었습니다.
생각과 판단의 자리, 몸을 움직이게 하는
마음 중심의 자리에서 변화가 일어난 것입니다.
● 그러나 이제부터 시작입니다 ●
그러나 이 여인이 비록 거듭났다고는 하지만
그녀가 평생 행하여야 할 길고 긴 신앙생활에서 이제 첫 출발을 했을 뿐입니다.
그동안은 육체적인 생명만 있던 여자가 이제 거듭나서 영의 삶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아직은 영적인 갓난아이에 불과합니다.
앞으로도 한동안은 타락한 삶을 살았던 그녀의 본능이 불쑥 튀어나올 것입니다.
그런 과정에서 많은 갈등과 좌절을 경험하기도 할 것입니다.
● 묵상 : 좌절과 갈등의 불편함을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우리가 비록 거듭난 자일지라도 우리 안에 죄의 본성이 남아 있으므로
거룩함과 타락한 본성 사이에서 수많은 좌절과 갈등을 겪게 될 것입니다.
이런 심정은 분명 유쾌한 감정은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 안에 거룩한 본성이 있기에 이런 영적인 좌절과 갈등이 있는 것입니다.
만일 죄의 본성만 있다면 죄를 지어도 갈등하지 않을 것입니다.
거룩한 본성이 있기에 두 마음 사이에서 갈등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답답하거나 갈등이 있을 때
그 심정을 주께 고백하고 주님과 함께 이기는 자가 되십시오.
2. 예수님을 믿는 사마리아인들(39~42절)
39. 여자의 말이 “그가 나의 행한 모든 것을 내게 말하였다” 증언하였므로
그 동네 중에 많은 사마리아인이 예수님을 믿는지라.
40. 사마리아인들이 예수께 와서 자기들과 함께 유하시기를 청하니
거기서 이틀을 유하시매
41. 예수님의 말씀을 인하여 믿는 자가 더욱 많아
42. (사마리아 사람들이) 그 여자에게 말하되
“이제 우리가 믿는 것은 네 말을 인함이 아니니,
이는 우리가 친히 듣고 그가 참으로 세상의 구주신 줄 앎이니라” 하였더라.
사마리아 여인이 예수께서 자신이 행한 모든 일을 다 말씀하셨다고 말하자
많은 사마리아 사람이 예수님 앞으로 나아와 예수님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들은 예수께 그 마을에 더 머물러 주시기를 간청했고,
이에 예수님은 그 마을에서 이틀을 더 머무르시며 말씀을 전하셨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많은 사람이 예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을 믿은 자들이 사마리아 여인에게 처음에는 당신의 말을 듣고 왔으나
이제는 우리도 예수님을 만나서 그의 말씀을 친히 듣고
그가 참으로 세상의 구주신 줄 알았다고 말했습니다.
● 묵상 : 이제 직접 만날 때가 되었습니다.
사마리아 사람들이 처음에는 그 여인의 말을 듣고 모였으나
나중에는 자신들이 직접 예수님을 만나서
그들도 거듭난 하나님의 백성들이 되었습니다.
처음엔 누구의 도움을 받아 교회에 나오게 되지만,
그다음에는 자신이 직접 예수님을 만나
그들 자신이 거듭난 하나님의 백성들이 되어야 합니다.
계속 사람의 도움만 기대하지 말고 나를 도우시는 주님을 만나십시오.
주께서 당신을 기다리고 계십니다.
결 론 :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16절).
예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 달리셨으므로
수가성 우물가의 그 타락한 사마리아 여인도 거듭난 여인이 될 수 있었습니다.
이것이 요한이 요한복음을 통해 우리에게 증거하는 예수님의 복음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육신을 입고 있는 이 땅의 시간에 있을 때만 거듭날 수 있는 기회가 있습니다.
나를 변화시키고 저 사람도 변화시킬 수 있는 육신의 시간을
하나님의 시간, 하나님의 질서 안에서 사는 복된 시간이 되게 합시다.
주님
우리도 물과 성령으로
새롭게 거듭난 자들이 되게 하옵소서.
우리도 새로 지으심을 받은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들이 되게 하옵소서.
우리도 주께서 주신 이 은혜에
감사하며 찬양하는 자들이 되게 하옵소서.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포기해야 할 것을 포기하고
결단해야 할 것을 결단할 수 있게 하옵소서.
주님의 거룩한 백성이 될 수 없도록
나를 방해하는 모든 장벽으로부터
해방되게 하옵소서.
주님은 환난 중에 만날 큰 도움이시니
사람의 도움보다 주님의 도움을 더 믿고
항상 주님을 찾는 자가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