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제목 :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설교본문 : 요한복음 5:1~29, 참고 시편 34편
설 교 자 : 송호영 목사
설 교 일 : 2024년 6월 1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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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자신의 몸으로 기적을 체험했으나
거듭나지 못한 사람을 통해 거듭남이 무엇인지를 다시 한 번 살피고,
이어서 예수께서 이 땅의 모든 사람을 심판하는 권세를 가지셨다는 말씀을 전하겠습니다.
그리고 시편 34편의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선하심을 맛보아 아는 자가 되자는 말씀으로 마지막 결론을 맺겠습니다.
제 1 부 : 예수님을 대하는 세 종류의 사람
1. 예수님을 대하는 갈릴리 사람과 사마리아 사람의 차이
1) 예수님을 영접한 갈릴리 사람들 : 기적을 보았으므로(요 4:43~45)
43. 이틀이 지나매 예수께서 거기(사마리아)를 떠나 갈릴리로 가시며
44. 친히 증언하시기를 “선지자가 고향에서는 높임을 받지 못한다” 하시고
45. 갈릴리에 이르시매 갈릴리인들이 그를 영접하니
이는 자기들도 명절에 갔다가
예수께서 명절 중 예루살렘에서 하신 모든 일을 보았음이더라.
예수님은 사마리아에서 이틀을 머무신 후 갈릴리로 가셨습니다.
갈릴리 사람들도 사마리아 사람들처럼 예수님을 환영하며 영접하였습니다만,
갈릴리 사람들은 사마리아 사람들과는 조금 다른 이유로 예수님을 영접하였습니다.
사마리아 사람들은 예수님의 말씀만 듣고도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고 영접하였는데,
갈릴리 사람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들을 때에는 예수님을 거부하다가
예루살렘에서 예수님이 기적을 행하실 때의 모습을 본 사람들이 예수님을 알아보자
그때부터 예수님을 영접하였습니다.
이에 예수님은 선지자가 고향에서는 환영을 받지 못한다는
유대인의 오랜 속담을 인용하시면서
그들의 믿음 없음을 간접적으로 책망하셨습니다.
2) 오직 말씀만으로 믿은 사마리아 사람들(4:31~34, 42)
31. 그 사이에 제자들이 청하여 이르되 “랍비여 잡수소서”
32. 이르시되 “내게는 너희가 알지 못하는 먹을 양식이 있느니라.”
33. 제자들이 서로 (수군거리며) 말하되 “누가 잡수실 것을 가져다드렸는가?” 하니
34.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의 양식은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며
그의 일을 온전히 이루는 이것이니라.
42. (사마리아 사람들이) 그 여자에게 말하되 “이제 우리가 믿는 것은 네 말을 인함이
아니니, 이는 우리가 친히 듣고 그가 참으로 세상의 구주신 줄 앎이니라” 하였더라.
보고 믿는 믿음은
계속 눈에 보이는 증거를 요구하므로 그리 훌륭한 믿음이 되지 못합니다.
이스라엘이 출애굽 할 때에 홍해를 마른 땅처럼 건넌 후에
온 세상을 다 얻은 것처럼 기뻐하며 하나님을 찬양했으나,
불과 3일이 채 못 되어 하나님을 불평하고 원망했던 것처럼
보고 믿는 믿음은 그 믿음이 변하기 쉽습니다.
예수님은 기사와 표적을 보지 않고
오직 말씀만으로 예수님을 믿은 사마리아 사람들의 믿음을 기뻐하며 칭찬하셨습니다.
우리도 사마리아 사람들처럼 말씀을 듣고 믿어 주께 칭찬받는 성도들이 됩시다.
2. 왕의 신하의 아들을 고치신 예수님(4:46~54)
46. 예수께서 다시 갈릴리 가나에 이르시니 전에 물로 포도주를 만드신 곳이라.
왕의 신하가 있어 그 아들이 가버나움에서 병들었더니
47. 그가 예수께서 유대로부터 갈릴리에 오셨다는 소식을 듣고 (예수께로) 가서 청하되
“내려오셔서 내 아들의 병을 고쳐주소서” 하니 그의 아들이 거의 죽게 되었음이라.
48.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표적과 기사를 보지 못하면 도무지 믿지 아니하리라”
49. 신하가 이르되 “주여, 내 아이가 죽기 전에 내려오소서.”
50.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라 네 아들이 살았다” 하신대
그 사람이 예수의 하신 말씀을 믿고 가더니
51. 그가 집으로 내려가는 길에서 그 종들이 오다가 만나서 아이가 살았다 하거늘
52. 그 낫기 시작한 때를 물은즉
“어제 일곱 시(오후 1시)에 열기가 떨어졌나이다” 하는지라.
53. 그의 아버지가 예수께서 “네 아들이 살았다”라고 말씀하신 그때인 줄 알고
자기와 그 온 집이 다 믿으니라.
54. 이것은 예수께서 유대에서 갈릴리로 돌아오신 뒤에 행하신 두 번째 표적이니라.
1) 예수께 거절당한 왕의 신하(46~48절)
왕의 신하는 그의 아들의 병을 치유해 주실 것을 예수께 부탁드리기 위해
가버나움에서 32km나 떨어진 가나까지 걸어왔습니다.
쉬지 않고 걷는다고 해도 9시간은 족히 걸리는 거리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책망이 담긴 듯한 다소 불편한 말씀과 함께 그의 요구를 거절하십니다.
2) 왕의 신하의 믿음과 그의 아들을 고치신 예수님(49~50절)
이렇게 거절당했음에도 다시 한번 예수께 간청하자
예수께서 그의 믿음을 보시고 “가라. 네 아들이 살아 있다”하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자 왕의 신하는 그 말씀을 믿고 즉시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3) 왕의 신하의 온 가족이 예수님을 믿음(50~53절)
왕의 신하가 집으로 가는 도중에 그를 마중 나온 자기의 종들을 만났습니다.
종들이 그에게 아들이 살아났다고 알려줍니다.
왕의 신하는 그 아이가 낫기 시작한 때가 언제인지 물으니
종들은 어제 7시(오후 1시)쯤부터 열이 떨어졌다고 알려줍니다.
왕의 신하는 그때가
예수께서 그 아이가 살아 있다고 말씀하신 바로 그때인 것을 알게 되었고
왕의 신하와 그의 온 집안이 다 예수님을 믿었습니다.
➠ 세 부류의 사람들 중 당신은 누구입니까?
요한복음 1장~4장까지에서 나온 사람들은 세 종류로 구분됩니다.
➀ 말씀만 듣고 믿은 사람들
첫째로 예수님의 말씀을 듣는 것만으로도
예수님이 그리스도(메시야)임을 믿고 예수님을 영접한 자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유대인들로부터 가장 천대를 받으며 살았던 사마리아 사람들입니다.
➁ 기적을 보고 믿은 사람들
두 번째로 말씀을 들을 때는 영접하지 않다가
예루살렘에서 예수님의 기적을 본 자들의 증언을 듣고 나서야
비로소 예수님을 영접한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갈릴리 사람들입니다.
➂ 기적을 보고도 믿지 않은 사람들
세 번째는 예루살렘의 유대인들로서,
이들은 예수님의 기적을 직접 눈으로 보고도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은 사람들입니다.
● 이 세 부류의 사람들 중에서 나는 누구인지 자신을 살펴봅시다.
제 2 부 : 38년 된 병자를 고치신 예수님(기적을 체험했으나 거듭나지 못한 사람)
요한복음 5장에서는 위의 세 종류의 사람 외에 또 한 종류의 사람을 소개합니다.
베데스다 연못가에 있던 38년된 병자의 이야기입니다.
그는 예수님의 능력을 자신의 몸으로 직접 체험하고도 예수님을 믿지 않았습니다.
1. 베데스다 못가의 병자들
1) 양문 곁에 있는 베데스다 연못(요 5:1~4)
1. 그 후에 유대인의 명절이 되어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올라 가시니라.
2. 예루살렘에 있는 양문(羊門) 곁에
히브리 말로 ‘베데스다’라 하는 연못이 있는데 거기 행각 다섯이 있고
3. 그 안에 많은 병자, 소경, 다리 저는 자, 혈기 마른 자(중풍병자)들이 누워
[물의 동함을(물이 움직이기를) 기다리니
4. 이는 이따금 주의 천사가 가끔 못에 내려와 물을 동하게 하는데(물을 휘저어 놓는데),
동한 후(물이 움직인 후)에 먼저 들어가는 자는 어떤 병에 걸렸든지 낫게 됨이러라]
예루살렘 성전에 들어갈 때
하나님께 제물로 바칠 양을 가지고 들어가는 문이 ‘양문(羊門)’입니다.
양문 곁에 베데스다라는 연못이 있었는데
그 연못에는 간헐적으로 물이 솟아오르는 샘이 있었습니다.
2) 연못만 바라보는 사람들
간헐적으로 못의 물이 움직이는 현상을 당시 사람들은 신기하게 보았고,
그것은 분명 천사가 물을 움직이는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이런 생각으로 언제부터인가 이 베데스다 연못에는 병자들이 모여들었고,
물이 움직일 때 제일 먼저 들어간 사람은
병이 낫는다는 민간신앙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3) 베데스다 연못은 이 세상을 상징합니다.
주위에 수많은 병자가 모여 있는 베데스다 연못은
온갖 아픔과 문제를 가지고 있는 이 세상을 상징합니다.
질병의 문제들을 가지고 있으나 스스로 해결할 능력이 없습니다.
그저 물이 움직이면 그 물속으로 제일 먼저 들어가야 하리라는
막연한 기대감만 가지고 있을 뿐입니다.
● 묵상 : 이처럼 세상 것에 마음을 빼앗겨 영생을 잃어버리는 자들이 되지 마십시오.
세상에 있는 동안에만 잠시 우리에게 도움을 줄 뿐
영생을 가져다주지 못하는 이런 것들에 마음을 빼앗겨
하나님을 섬기는 자리를 잃어버리는 자들이 되지 마십시오.
2. 38년 된 병자
1) 38년 동안 기다려 온 사람(5:5~7)
5. 거기 삼십팔 년 된 병자가 있더라.
6. 예수께서 그 누운 것을 보시고 병이 벌써 오랜 줄 아시고 이르시되
“네가 낫고자 하느냐?”
7. 병자가 대답하되 “주여, 물이 동할(물이 움직일) 때에
나를 못에 넣어 줄 사람이 없어 내가 가는 동안에 다른 사람이 먼저 내려가나이다.”
수많은 병자들 중에 38년 동안 병들어 자리에 누운 자가 있었습니다.
이 사람은 자리에 누워 있었으므로
연못의 물이 움직일 때 자신의 힘으로는 물에 들어갈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누군가 물이 움직일 때 물에 자신을 연못에 넣어 줄 것을
지난 38년 동안 기다려 왔습니다.
2) 절망에 빠진 사람들 : 하나님의 의에 이를 수 없는 사람들
이 사람이 병을 앓은 지 38년이나 되었다는 것과,
베데스다 연못의 물이 움직일 때 그를 도울 자가 아무도 없다는 것은
이 사람이 지금 절망의 상황에 있다는 것입니다.
수가 성 우물가의 사마리아 여인 역시 남자가 여섯이나 된다는 것은
그가 자신의 힘으로는 결단코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의에 이를 수 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3. 네가 낫고자 하느냐
1) 예수께서 물으신 근본적인 질문 : 네가 낫고자 하느냐(5:7~9)
7. 병자가 대답하되 “주여, 물이 동할(물이 움직일) 때에
나를 못에 넣어 줄 사람이 없어 내가 가는 동안에 다른 사람이 먼저 내려가나이다.”
8. 예수께서 이르시되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하시니
9. 그 사람이 곧 나아서 자리를 들고 걸어가니라. 이날은 안식일이니
예수께서 이 병자에게 물으셨습니다. “네가 낫고자 하느냐?”
그러자 이 병자는 대답 대신에
그동안 아무도 자신을 못에 넣어 주지 않았다며 하소연을 했습니다.
예수님은 길게 탄식하며 하소연을 하는 그 병자에게
일어나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고 명하셨습니다.
그 순간 그 병자는 곧 다리에 힘이 생겨 자리를 들고 걸어갔습니다.
2) 문제 해결을 위한 핵심적인 질문
“네가 낫고자 하느냐?”라고 하신 이 질문은
그 병자의 삶의 근본을 변화시킬 핵심적인 질문입니다.
문제의 핵심은 병의 치료이지 연못에 빨리 들어가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3) 삶의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오신 예수님
이와 마찬가지로 예수님은 우리에게도 삶의 근본에 관한 질문을 하십니다.
“네가 기뻐하고 즐거워하기를 원하느냐, 네가 행복하기를 원하느냐?”
예수님은 우리에게 기쁨과 즐거움으로
만족한 참 행복을 주시려고 우리에게 오셨습니다.
● 묵상 : 곁가지 문제에만 빠져 있는 세상
그러나 너무나도 많은 사람이 이 병자처럼
주께서 주시려는 것과 다른 것을 구합니다.
“네가 낫기를 원하느냐,
기쁨과 즐거움으로 참 행복을 누리는 삶을 살기를 원하느냐?”하는 질문에
“주님, 돈을 주십시오. 직장을 주시고 건강한 몸을 주십시오…”하고 기도합니다.
주께서 우리에게 참 기쁨과 참 행복을 주시기 위해 오셨습니다.
주께서 당신의 삶의 근본적인 아픔을 치유하시고 해결해 주시기 위해 오셨습니다.
그러므로 나를 치료하시는 주께로 나아가십시오.
4. 병든 자에 대한 유대인의 시각
➠ 생명보다 자기들의 전통을 더 중요하게 여기는 유대인들
38년이나 자리에 누워 꼼짝 못 했던 병자가 완전히 나아서 자유함을 받았으니
모두 함께 기뻐하며 환영해야 할 터인데
유대인들은 자리를 들고 가서 안식일의 규례를 어긴 것에만 주목합니다.
유대인들의 교회 전통(미쉬나)에
안식일에 해서는 안 되는 세부 사항이 39가지나 규정되어 있습니다.
이를테면 밭갈이, 바느질, 사냥, 도살, 바느질, 불을 켜거나 끄는 일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중에는 공공장소에서 짐을 옮기는 것도 금지사항 중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이 병자가 짚으로 만든 작은 멍석을 들고 간 것이
자기들이 임의로 만든 금지사항인 해서는 안 될 일을 한 것이라며 비난한 것입니다.
5. 기적을 체험하고도 거듭나지 못한 자
➠ 고침 받은 자의 둔감한 죄
1) 자기를 치유하여 준 예수님을 유대인에게 보고한 병자(14~16절)
14. 그 후에 예수께서 성전에서 그 사람을 만나 이르시되
“보라 네가 나았으니 더 심한 것이 생기지 않게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 하시니
15. 그 사람이 유대인들에게 가서 자기를 고친 이는 예수라 하니라.
16. 그러므로 안식일에 이러한 일을 행하신다 하여
이때부터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핍박하게 된지라
병자는 유대인들에게 자기의 병을 고쳐준 이는 예수님이시라고 보고하였습니다.
그러자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핍박하기 시작합니다.
병자는 자기를 고쳐주신 예수님을 오히려 박해를 받게 했습니다.
고침 받은 자가 의도적으로 예수님을 곤경에 빠뜨리려 하지는 않았지만,
그가 신중하게 처신하지 못한 결과로 예수님이 핍박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 사람은 예수께서 곤경에 빠지든 말든
자기와는 상관없는 일이라는 태도를 보입니다.
병이 나았으니, 그것으로 그만이라는 것입니다.
이 사람은 38년의 질병에서 고침 받은 후에
이렇게 자신을 치유해준 예수님을 곤경에 빠뜨리기만 했을 뿐,
예수께 그 어떤 감사의 표현도 믿음의 고백도 하지 않았습니다.
2) 육신의 병은 치유되었으나 영적인 병은 고침 받지 못한 자
만일 베데스다 연못가의 이 38년 된 병자가 오늘날의 사람이었다면
그는 아마도 이교회 저교회 다니면서 주님의 능력으로 자신의 병을 고침 받았다고 간증하고 다닐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거듭나지 못했습니다.
이 사람은 육신의 병만 고침 받은 사람입니다.
38년 된 병자는 주님의 은총으로 병이 낫는 기적을 체험했으나 주님을 영접하지 않았습니다.
38년 된 병을 고침 받은 기쁨에만 사로잡혀
자기를 구해주신 이가 어떤 분인지,
그를 통해서 그가 얻을 수 있는 은혜가 얼마나 큰지 알아보려고도 하지 않았습니다.
육신은 치유되었으나 영은 치유되지 못한 거듭나지는 못한 사람입니다.
● 묵상 :
오늘날 너무나도 많은 사람이
이 병자와 같이 이 세상 것에만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복은
우리가 보는 이 세상 것보다 훨씬 더 크고 영원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 것을 얻으려는 것에만 마음을 쏟지 말고,
주께서 주려 하시는 영원한 복을 사모하는 자가 되기 바랍니다.
제 3 부 : 심판하는 모든 권세를 가지신 예수님
1. 아버지와 하나이신 아들(성자 예수님)
1) 삼위일체이신 하나님(19절)
19. 그러므로 예수께서 저희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들이 아버지의 하시는 일을 보지 않고는 아무 것도 스스로 할 수 없나니,
아버지께서 행하시는 그것을 아들도 그와 같이 행하느니라.
예수께서 하나님을 자신의 친아버지라 여겼다고 해서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죽일 마음을 굳히게 된 것을 아신 예수께서
하나님과 자신과의 관계를 밝히십니다.
아버지이신 하나님께서는 아들이신 예수님께 무엇이든 다 보이시고 알리십니다.
아들 몰래 아버지 하나님께서 혼자서 하시는 일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또 아들이신 예수님 역시 아버지의 뜻에 반하여 혼자 독단으로 하시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아버지는 하늘에 계시고 아들은 이 땅에 계셔서
아버지와 아들이 서로 다른 곳에 위치하여 계시지만,
항상 같은 생각과 같은 뜻을 가지고 계시니 둘이면서 동시에 한 몸입니다.
성령 또한 이와 같으니 이를 가리켜 ‘삼위일체(三位一體)’라고 합니다.
서로 계신 위치는 다르지만 한 몸이라는 뜻입니다.
2) 아버지가 생명의 근원이신 것처럼 아들도 생명의 근원이시라(26절)
26. 아버지께서 자기 속에 생명이 있음같이
아들에게도 생명을 주어 아들 안에 있게 하셨고
[혹은, 아버지가 생명의 근원이신 것처럼 아들도 생명의 근원이 되게 하셨고]
아버지께서 세상을 창조하신 창조주이신 것처럼
아들 또한 세상을 창조하신 분이십니다.
아버지께서 세상의 모든 생명체에게 생명을 주신 생명의 근원이신 것처럼
아들 또한 모든 만물에 생명을 주신 생명의 근원이십니다.
세상을 창조하신 일도,
세상을 유지하시는 모든 일도 다 아버지와 아들이 함께 하셨기 때문입니다.
3) 아들을 공경하는 자는 곧 아버지를 공경하는 것이요(23절)
23. 이는 모든 사람으로 아버지를 공경하는 것 같이 아들을 공경하게 하려 하심이라.
아들을 공경치 아니하는 자는 그를 보내신 아버지를 공경하지 아니하느니라.
아버지와 아들이 서로 다른 위치에 있다 할지라도
생각과 뜻과 모든 것이 다 같으셔서 한 몸과 같으니
아들을 공경하는 자는 곧 아버지를 공경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아들을 공경하는 것이 곧 아버지를 공경하는 것이라 말씀하신 이유는,
예수께서 우리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달리셨으므로
아버지를 대하고 섬길 때 반드시 아들을 통해야만 하도록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일부 사교 집단에서 예수님은 아들이시니
자기들은 아들과는 상대하지 않고 아버지이신 하나님과 직접 상대하겠다고 하며,
아들이신 예수님을 선지자 중의 하나로 취급하는 것은 대단히 잘못된 일입니다.
우리는 반드시 예수님을 통해서 하나님을 섬기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예수님을 통하지 않고 직접 하나님과 마주할 방법이
우리에게는 없다는 것을 꼭 기억해야 합니다.
2.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1) 아버지께서 아무도 심판하지 아니하시고 심판하는 일을 다 아들에게 맡기셨으니(22절)
인자됨을 인하여 심판하는 모든 권세를 주셨느니라(27절)
22. 아버지께서 아무도 심판하지 아니하시고 심판하는 일을 다 아들에게 맡기셨으니
27. 또 인자됨을 인하여(아들이 인자가 되었으므로) 심판하는 모든 권세를 주셨느니라.
27절의 ‘인자됨’은
예수께서 사람으로 이 땅에 오셔서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달리신 것을 뜻합니다.
예수께서 세상 만민을 구하기 위해 십자가에 달리신 그 일로 인하여
성부 하나님께서 성자 예수께 사람을 심판하는 모든 권세를 맡기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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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판에 관한 모든 것을 맡기셨다고 했으나
실상은 구원에 관한 일을 맡기신 것입니다.
예수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이 사람을 구하시기 위한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24절)
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설명 : 누구든지 내 말을 듣고 나 보내신 일을 믿는 자는
영원한 생명을 가지고 있고 심판도 받지 않을 것이니,
그는 이미 죽음의 세계에서 벗어나 생명의 세계로 들어섰느니라.]
성부 하나님께서 성자 예수께 구원과 심판에 관한 모든 것을 맡기셨으므로
주님의 말씀을 듣고, 또 주님을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심판에 이르지 않습니다.
주께서 자기의 이름을 그들에게 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주님을 믿는 자들은 누구든지 주의 이름으로 불리게 됩니다.
2)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24절)
이처럼 아버지 하나님께서 갖고 계신 모든 권능과 권세를
아들이신 예수께서 똑같이 갖고 계시니,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예수님이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분이심을 믿는 자는
이미 영생을 얻은 자이며, 이미 이 땅에서부터 영원한 생명을 갖고 사는 자입니다.
그러므로 이 땅에서 주님의 음성을 들으며 사는 자는
이미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진 자들입니다.
그들은 심판을 받지 않습니다. 이미 심판을 통과하여 사는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3) 그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곧 이때라(25절)
25.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죽은 자들이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곧 이때라.
(그 음성을) 듣는 자는 살아나리라.
누구든지 주님의 음성을 들으면
이 땅에서부터 이미 천국 백성으로 살아갈 수 있는 날이 옵니다.
예수님은 그때가 바로 지금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께서 공생애로 활동하시던 그 순간부터
주께서 주신 복음의 말씀을 듣고 주님을 믿으며 사는 자는
그 영원한 생명이 살아나서 거듭난 자로, 새로 지으심을 받은 새로운 피조물로,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으로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금은 은혜의 때요, 구원의 날입니다.
주님 안에 있는 자는 이미 영원한 생명을 가지고 있고 심판도 받지 않을 것이니,
그는 이미 죽음의 세계에서 벗어나 생명의 세계로 들어선 자들입니다.
4) 생명의 부활과 심판의 부활(27~29절)
27. 또 인자됨을 인하여(아들이 인자가 되었으므로) 심판하는 모든 권세를 주셨느니라.
28. 이를 기이히 여기지 말라(이 말에 놀라지 말라).
무덤 속에 있는 자가 다 그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29. 그때가 오면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
[혹은, 선한 일을 행한 자는 부활하여 생명의 나라에 들어가고,
악한 일을 행한 자는 부활하여 심판(멸망)을 받게 될 것이라.]
그러나 무덤에서 다시 살아나서 부활한다고 해서
다 하나님 나라로 들어가는 것이 아닙니다.
부활은 부활이되 심판을 받아 멸망에 이르는 부활도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 안에서 죽는 자들은 생명의 부활로 나와 영생의 나라로 들어가게 되지만,
믿음 없이 죽은 자들은 심판의 부활로 나와서
주님 앞에서 심판을 받은 후에 영원한 멸망의 자리인 지옥으로 떨어지게 될 것입니다.
● 묵상 : 그러므로 믿는 자가 되고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마십시오.
주님을 믿든지 믿지 않든지 우리가 한 그 선택에 따라 심판을 받게 됩니다.
그러므로 사실상 우리가 우리 자신을 스스로 심판하는 것과 같습니다.
주님을 믿는 길을 택한 자들은 영생을 택한 자들이고,
세상을 택한 자들은 주님을 버렸으므로
스스로 자신이 자신을 멸망으로 몰아간 것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믿는 자가 되고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마십시오.
3 . 예수님의 영광을 알아보지 못하는 유대인들
1) 성경을 열심히 연구하고 있음에도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하는 유대인들(39절)
39.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상고(연구)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언하는 것이로다.
유대인들은 성경공부를 매우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매일 하루 세 차례 이상 말씀을 암송하며 묵상했습니다.
말씀을 잊지 않기 위해 모자나 소매에 말씀을 써놓기도 했고,
방의 이곳저곳에 말씀을 써놓기도 했습니다.
집안의 어른은 저녁 식사 때마다
자녀들에게 말씀을 가르치고 나서 식사를 하게 할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열심히 성경을 연구하고 상고했으면서도
성경이 증거하고 있는 예수님을 그들이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2) 믿어야 알게 되는 신비
바른 믿음을 갖지 못하면
성경을 보아도 성경이 증거하는 하나님의 신비로운 세계를 발견하지 못합니다.
바른 믿음을 갖지 못하면 거짓 선지자들을 너무도 쉽게 추종하고,
너무도 쉽게 악한 영이 파놓은 함정에 빠집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과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간절함으로 성경을 보면 주께서 그 뜻을 알게 하십니다.
유대인들보다 성경을 잘 모르는 사마리아 사람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듣기만 하고도 ‘구세주’라고 그 믿음을 고백했던 것도
바로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간절함이 없이 성경통독 100번을 하는 것보다,
그 말씀의 뜻을 알기를 간절히 사모하는 마음으로 단 한 번을 읽는 것이 더 낫습니다.
● 묵상 :
예수님은 마지막 때가 가까이 올수록
거짓 선지자들이 많아질 것이라고 경고하셨습니다.
앞으로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세상은 물론 교회까지 혼란스러워질 것입니다.
바른 믿음을 갖기 힘든 세상이 되어갈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른 믿음을 가진 자가 될 수 있도록
주께 말씀을 바로 깨닫게 해주시기를 기도하고 또 기도하십시오.
결 론 : 하나님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지어다(시편 34편)
(이 부분은 요약한 것이니 자세한 것은 시편 34편 큐티를 참조해주십시오.)
1. 하나님을 찬양해야 할 이유
• 시편 34편의 역사적 배경
다윗이 사울에게 막 쫓기기 시작할 때의 일입니다.
제사장 아히멜렉에게 가서 제사장만이 먹을 수 있는 제단 앞에 놓은 진설병을 얻어먹고,
그가 골리앗에게서 빼앗은 칼을 받아 정처 없는 도피 생활을 시작합니다.
다윗은 사울이 있는 이스라엘 땅은 어디에도 안전한 곳이 없다고 생각하고는
적국인 블레셋으로 도망을 합니다.
그런데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블레셋 왕 아기스의 신하들이 다윗을 한눈에 알아봅니다.
그때 다윗은 순간적으로 기지를 발휘하여 대문짝에 어기적거리며 침을 흘렸습니다.
그러자 블레셋 왕 아기스가 그의 신하들에게
저런 미친 자를 내 집에 들어오게 했느냐고 호통을 칩니다.
그렇게 해서 천신만고 끝에 블레셋에서 쫓겨난 다윗이
아둘람 굴로 도망한 후에 지은 시가 바로 시편 34편입니다.
1) 여호와를 항상 송축하며 찬양하리라(1~3절)
1. 내가 여호와를 항상 송축함이여, 내 입술로 항상 주를 찬양하리로다.
2. 내 영혼이 여호와를 자랑하리니
곤고한(비천한, 겸손한) 자들이 이를 듣고 기뻐하리로다.
3. 나와 함께 여호와를 광대하시다 하며 그의 이름을 높이세.
4. 내가 여호와께 간구하매 내게 응답하시고
내 모든 두려움에서 나를 건지셨도다.
5. 그들이 주를 앙망하고(바라보고) 광채를 입었으니(광채를 내었으니),
그 얼굴이 영영히 부끄러움을(수치를) 당하지 아니하리로다.
6. 이 곤고한( 비천한) 자가 부르짖으매 여호와께서 들으시고
그 모든 환난에서 구원하셨도다.
7. 여호와의 천사가 주를 경외하는 자들을 둘러 진을 치고 그들을 건지시는도다.
8. 너희는 여호와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지어다.
그에게 피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9. 너희 성도들아 여호와를 경외하라.
그를 경외하는 자에게는 부족함이 없도다.
10. 젊은 사자는 궁핍하여 주릴지라도
여호와를 찾는 자는 모든 좋은 것에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다윗이 블레셋 왕 아기스에게 붙잡히지 않은 것은 참으로 다행한 일입니다만,
사울에게 쫓기는 삶은 이제 시작에 불과합니다.
더구나 그가 피한 아둘람 동굴은 사람들이 지내기 대단히 어려운 바위산입니다.
그러나 다윗은 이 막막하고 답답한 때에
자신을 도운 하나님을 기뻐하며 하나님께 시편 34편의 노래를 부릅니다.
다윗은 그의 평생에 항상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며
그를 송축하고 찬송하리라고 노래합니다.
하나님께서 그를 위해 행하신 일들을 사람들에게 자랑하며 찬양할 것이며,
여호와의 그 광대하신 이름을 높이며 찬양하겠다고 말합니다.
찬양하리라는 것을 세 번이나 반복하며 노래하는 것은
그만큼 하나님의 도우심을 기뻐하고 있다는 것을 나타낸 것입니다.
2) 내게 응답하시고 두려움에서 건지셨으므로(4, 6절)
3) 주의 천사를 동원하여 나를 건지셨으므로(7절)
4) 주를 앙망하는 자는 그 얼굴에 광채가 나고 수치를 당하지 아니하리라(5절)
5) 모든 좋은 것에 부족함이 없으리로다(9~10절)
2. 그러므로 너희는 여호와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지어다(8절)
(성경구절 위에 있음)
1) 날마다 주님과 교제함으로 여호와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게 됩니다.
이렇게 주께서 주신 기쁨으로 가득 찬 다윗은
그의 백성들에게 여호와의 선하심을 맛보아 아는 자가 되라고 외칩니다.
날마다 하나님과 교제함을 통해
하나님이 얼마나 선하신 분이신지를 경험해 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말씀을 묵상하고 기도하는 일을 통해 하나님과 교제합니다.
하나님과 교제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선하심을 날마다 맛보면서 사는 자들입니다.
2) 어려운 일을 당할 때 부르짖어 기도함으로 여호와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게 됩니다.
또한 살아가면서 여러 가지 어려운 일들을 만날 때
주께 기도하고 그 응답을 받는 과정에서 하나님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게 됩니다.
이스라엘이 출애굽을 한 후 광야 40년을 지나면서
하나님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게 되었고,
그 결과 가나안 땅에 들어갈 때는 이스라엘 가장 신실한 백성이 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어려운 일을 당한다고 해서 다 여호와의 선하심을 맛보게 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 고통의 과정에서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하고 응답받는 과정에서
하나님을 경험하여 알게 됩니다.
➠ 하나님을 경험한 신앙에서 아둘람 굴에서의 다윗의 고백이 나왔습니다.
다윗은 아버지와 형들의 사랑을 받지 못하고
홀로 양을 치며 외롭게 지내던 어린 시절 하나님을 벗 삼아 그 외로움을 달랬습니다.
그러다 맹수와 만났을 때 하나님께서 그를 도우신 일들을 경험합니다.
늘 하나님과 교제하며 살던 그 신앙이 사울에게 쫓기던 10년의 시간을 더욱 아름답게 했습니다.
● 묵상 : 하나님께서 주신 감사와 기쁨을 표현하는 자가 되십시오.
말씀을 묵상하고 기도하다가 주님의 은혜를 알게 되었다면
바로 그때 그 기쁨을 주께 표현하십시오.
어려운 일을 당했을 때 기도하였더니 주께서 응답해 주셨다면
역시 그 기쁨을 표현하십시오.
시편을 보면서 우리는 다윗이 하나님께 기쁨을 표현하는 법을 배웁니다.
표현하는 법을 잘 모른다면 다윗이 지은 시편을 외워서라도 하십시오.
하나님께서 이것을 아주 기뻐하십니다.
주님
주님 내게 오셔서
나의 아픔과 갈등의 근본적인 문제를
치유하고 해결하여 주옵소서
눈앞의 문제를 해결하기에 급급하여
더 좋은 길을 알려주시는
주님의 말씀을 듣지 못하는
어리석음을 벗어버리게 하옵소서.
나의 고집으로 인하여
주님의 일을 훼방하는 일이
일어나지 않게 하옵소서.
우리도 다윗처럼 여호와의 선하심을
맛보아 아는 자가 되게 하옵소서.
우리도 다윗처럼 주를 즐거워하며
기뻐하는 자가 되게 하옵소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법을 배워
주를 기쁘시게 해 드리는 자가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